오늘 또 병이 도졌다. 여행 병이 도져서 통영 여행 중에 제주여행을 위한 항공권을 예약했다. 남들은 여행을 떠날 여유가 없어 늘 아쉬워하는데 난 병이 도지면 여행이 최우선이 되고 나머지는 그다음으로 밀린다. 경제적인 이유를 우선 생각했다면 나는 여행을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수입은 줄겠지만,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훨씬 많다. 나에게 여행은 생각날 때 계획하고 결정하면 그만이다. 그게 나의 지병이다.

살아있기에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이기 위해 여행을 다닌다. 여행을 다니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생존본능이다. 낯선 곳의 정겨움과 아름다움에 끌려 답답한 도시의 삶에 당당히 맞서게 된다. 여행은 나만의 피신처가 되어준다.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해마다 제주를 3번 이상 찾고 있다. 3월 말 4월 초는 봄바람이 솔솔 부는 오름에서 명상하는 것이 좋다. 5월 말 6월 초와 9월 말 10월 초는 자연의 푸르름 속에 텐트를 치고 누워있는 것이 좋다. 11월 말 12월 초는 제철 생선인 방어를 먹기 위해 모슬포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 여행을 못 간다고 투정 부릴 이유는 없다. 그냥 훌쩍 떠나면 된다.

 

제주 백패킹

 

백패킹이 좋은 이유는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좋다는 점이다. 책을 읽거나, 명상하거나, 의자에 앉아 멍을 때리기를 하면 된다. 느릿느릿 주변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시간에 틈이 많아 시간의 자유를 느끼며 일상을 보낼 수 있다.

백패킹은 자신을 성찰하면서 내면을 돌아보게 된다. 내면에는 외부 사람에게 표현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갈등이 있다. 자연과 즐겁게 놀이하듯 내면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자연의 소리와 함께 내면이 소리를 내고 내 몸 깊은 곳까지 소리의 울림이 머물게 된다. 나만의 빛으로 다시 반짝이게 되는 순간이다. 마침내 나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내가 여기에 있어 참 좋다.

나무가 만들어낸 그늘을 찾아 나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장렬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햇빛과 마주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다. 백패킹을 즐기는 나에게는 해, 달, 들판, 바다 등 모든 자연이 친구가 되어준다.

지구가 만들어낸 공기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낀다. 여름이 찾아오면 선풍기, 에어컨의 인공바람보다 자연 바람의 시원함을 느끼고 싶어진다. 나무 그늘에서 갓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 더위도 사라지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진다. 자연 바람은 은은한 시원함을 느끼게 해 준다. 자연 바람이 알아서 온도를 조절해 준다. 오늘도 자연 바람을 맞으며 한량처럼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숲에서는 새소리를 실은 바람 소리가 바다에서는 바람의 출렁임을 실은 파도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수평선에서 시작된 붉은 빛이 바다와 하늘을 점점 붉은 빛으로 물들였다.

밤에는 어둠이 세상을 지배한다. 도시의 밤은 어둠을 그대로 두지 않고 불을 밝힌다. 도시의 불빛은 하늘에 빛나는 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껏 밤하늘의 별을 못 보고 지내고 있다. 별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불타오른다. 도시의 불빛이 별을 숨기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도시의 불빛보다 별빛이 더 아름답게 세상을 비춘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진실을 숨기는 것이다.

백패킹을 할 때 인위적으로 만든 야영장을 이용하면 하수이다. 진정한 고수는 자연을 벗으로 삼아 조용히 야영한다.

 

여행과 자유

 

여행을 혼자 다닌다고 외로울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누군가와 꼭 감정을 공유해야만 즐거운 여행이 되는 건 아니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더 좋아지게 된다. 더 좋아지게 되면 점점 즐거워지고 자주 혼자 여행을 다니게 된다. 문득 도시에서 도망치고 싶어질 때 절대로 망설이지 않는다. 누구도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드넓은 자연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이다.

여행을 계획하면 진정한 자유가 없다. 계획의 그물을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된다. 여행은 나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여행 중에 만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해 내면의 자아를 만나게 된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냄으로써 자아가 성장한다. 여행을 통해 자아와 교감을 나누고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된다. 자아를 만나기 위한 여행은 언제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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