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의 전원을 켜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지금은 술친구가 된 K형의 전화였다. 벌써 32년 된 인연 사이에 긴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내일과 모레 일정이 어떻게 되나?”

특별한 것은 없는데요.”

그럼 울진 놀러 가자.”

좋아요.”

K형은 내가 저녁을 먹을 때쯤 전화를 종종 한다.

전화를 끊고 보니 부재중 전화가 이미 와 있었다. 늘 그렇지만 저녁을 먹느라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울진 일정은 이렇게 잡혔다.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아침 820, K형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은 비교적 선선했지만, 자전거를 20분 넘게 타고 온 나는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벌써 더위를 느끼면 안 되는데 예년보다 빨리 날씨가 더워지는 것 같았다.

우리에겐 루틴 같은 것이 있다.

내가 승용차에 가방을 넣어두면 K형은 편의점으로 나는 커피숍으로 간다. K형은 담배와 물을 사고 나는 샷이 추가된 아메리카노를 산다. 아메리카노는 기온에 따라 HOT 또는 ICE를 선택한다. 이번엔 당연히 ICE를 선택했다. 모든 것이 준비된 후 K형과 나는 승용차를 타고 울진을 향해 출발했다.

 

울진 두천리 모내기한 논

 

3시간 20분의 긴 이동이 시작되었다.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답답하고 에어컨을 켜면 약간 쌀쌀함을 느꼈다. 날씨만큼 목요일 아침의 고속도로는 꽉 막히지도 그렇다고 뻥 뚫리지도 않았다. 앞차의 속도에 맞춰 뒤차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울진은 경상북도에 있다.

울진에 올 때마다 강원도에 왔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제, 양양, 평창, 춘천, 화천 등 강원도를 가끔 돌아다니다 보니 울진도 당연히 강원도라 생각한 것이다. 고속도로 졸음쉼터에서 화장실을 다녀온 것 빼고는 쉬지 않고 계속 운전을 했다. 그러고 보니 1년 만에 다시 울진에 왔다.

 

하원2교
울진종합버스터미널

 

울진에서 짬뽕을 먹었다.

K형이 월요일에 가봤다는 기절초뽕에 들어갔다. 이름만큼 특별하지 않은 여느 중국집 실내여서 약간 실망했었다. K형이 추천한 짬뽕은 숙주나물이 고명으로 가득 올려진 짬뽕이었다. 면과 숙주를 같이 먹으면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국물은 빨갛지만 맵지 않고 깔끔하며 시원했다.

기절초뽕에 한 번 더 갔다.

울진 산야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일로 일정이 하루 늘어났다. 이튿날 저녁에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짬뽕과 탕수육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소맥을 말아 목구멍으로 넘겼다. 막소주만 고집하는 K형은 술이 고팠는지 구포식 소맥이라며 직접 소맥을 말아 나에게 건넸다. 단무지를 안주 삼아 한잔, 양파를 안주 삼아 또 한잔, 그렇게 4잔쯤 마셨을 때 짬뽕과 탕수육이 나왔다.

 

울진마집 - 기절초뽕

 

승용차는 불영계곡 도로를 달렸다.

몇 년 전에 왔었던 곳을 다시 찾은 것이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고 야속한 세월만 흘렀다. 나는 산을 바라보면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무작정 산에 올랐다. 보통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지만, 오늘은 차를 타고 임도를 따라 높은 곳에 올랐다.

처음 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풍경을 한 번이라도 구경해본 사람이라면 또다시 산을 찾게 된다. 풍경 사워, 아름다운 풍경이 온몸과 정신까지도 말게 씻어줬다. 눈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었다. 전후좌우에 드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바람이 와락 내게 안겼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오랫동안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이런 포옹도 좋네라고 생각했다.

 

불영계곡 - 하원리, 아미사 입구
대흥리 임도

 

산을 하나 넘었을 뿐인데 세상이 갑자기 낯설고 이상해졌다.

지난겨울, 산불은 매일 번져 나갔다. 소방헬기로 물을 뿌리고, 소방차로 물을 뿌리고, 수많은 사람이 투입되어 잔불을 제거했다. 산불은 바람에 의해 퍼져서 그 면적을 넓혀 나갔고 오래도록 타다가 비에 의해 완전히 소멸하였다.

산불피해지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다.

산불이라는 화마를 만나 죽을 고비를 겪었을 뿐이다. 그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 예전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 , , , 도로, 강 등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공허했다.

 

금강소나무숲길(보부상길 입구-두천리)
두천리 마을 산불피해지
두천리 산불발화지점
대형산불 실화자 찾는 현수막

 

봄이 되기까지 산불의 흔적은 처참했다.

울진의 산은 초록의 천위에 실수로 먹물을 부어 놓은 것 같았다. 산은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검게 탄 잿더미였다. 산불의 흉터는 먹색으로 남았지만 봄이 되면서 그 흉터는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큰 산불을 겪고도 산은 생명의 씨앗을 틔웠다.

상처가 흉터가 되고 새살이 돋듯 잿더미 속에서도 희망의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산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더디 간다는 것은 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때처럼 긴 하루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호월1리

 

어둠은 무언가에 쫓기듯 물러났다.

새벽 5시가 넘으면 어느새 해가 떠올랐다. 모텔 창문으로 환해진 울진 시내를 내다봤다. 바람은 가로수를 마구잡이로 흔들고 있지만 시원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더위와 싸워야 하는 힘겨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오늘은 얼마나 걸어야 할까?

불영계곡 아미사에서 산에 들어섰다. 나는 가보지 않은 산을 돌아다닌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걷는 길을 기획하고 조사에 참여하는 일만으로도 희열을 만끽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 오르고 또 올랐다.

깊은 산속 이름 없는 고개의 소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었다. 청량함이 가득한 산골 바람은 더위를 식혀 주었다. 소나무 우듬지를 흔들리게 만드는 그 바람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바다에서 높이 물결치는 파도 소리 같은 허공의 바람 소리였다.

 

아미사 옆 숲길
초롱꽃
꼬리진달래
소나무
울진군 금남면 수곡리
울진군 금남면 수곡리

 

깊은 계곡 바위에 서 있었다.

여러 갈래로 흐르는 물처럼 내 마음도 여러 갈래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물이 흐르지 않아 속살을 드러낸 바닥은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듯 보였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맑고 투명했으며 수면 아래로 군데군데 두껍게 낙엽이 쌓여 있었다. 흐름이 느린 물줄기에는 사분음표 모양의 올챙이가 불안정한 상태로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계곡의 물은 아래로 흘러갔다.

비가 오지 않아 유량은 적었지만, 낙차 큰 암반 지형에선 파도처럼 걷잡을 수 없는 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염없이 물이 불어나지도 않고 물살도 세지 않아서 장마철을 제외하면 계곡물을 이용하기엔 안전했다. 계곡을 건너고 또 건넜다. 일 년 중 가장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었다. 이태백이 술에 취하듯 나는 계곡에 취했다.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보부천길
울진군 하원면 소광리 보부천길
울진군 하원면 소광리 보부천길

 

맑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후드득, 후드득.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은 이내 빗줄기로 변했다. 급한 대로 숲속 나무 밑으로 가서 넓은 잎사귀로 머리를 가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엷은 구름이 퍼져 있을 뿐 대체로 맑았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구나!’ 비는 곧 멈췄고 구름을 걷어낸 태양이 숲의 가지 틈새로 빛을 쏟아냈다.

들꽃처럼 희망의 꽃을 피우자.

화마가 덮친 후 예전 생활로 돌아오기까지는 꽤 시일은 걸릴 것이다. 화마가 덮친 후 새싹이 움트고 꽃을 피우기까지 들꽃은 시련을 견디어 꽃을 피웠다. 무수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비록 삶은 고되겠지만 상황은 호전될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하원리 불영계곡
하원리 불영계곡
하원리 불영계곡
백선
함박꽃나무
붓꽃

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석양이 질 무렵,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남쪽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한층 더 짙은 먹색이 되었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2시간이 지났을 때 공기에서 생선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통영에 왔다.

월요일 오전 651, 첫배를 타고 두미도에 가야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 번째 방문이다. 통영여객터미널 인근에 숙소를 정했다. 밤늦은 시간이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불 켜진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 낼 아침 또한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원조설렁탕, 수육 - 통영맛집

 

월요일 새벽 5.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나는 일어났다. 간단히 세안하고 짐을 꾸려 숙소를 나왔다. 이른 새벽이지만 서호시장은 활기찼다. 불 켜진 식당에서 복국을 먹었다. 어두웠던 새벽은 어느새 사라지고 해가 떠올랐다. 새롭게 단장한 통영항여객터미널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바다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면 비로소 바다가 보이는데 출발한 항구는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본 사람은 바다는 넓고 육지는 좁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육지가 좁아서 바다로 나아가면 바다는 더 넓어지고 거기서 또 작은 섬을 만나게 된다.

 

부일식당, 복국 - 통영 서호시장 맛집
통영 바다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두미도

 

두미도는 살아 숨 쉬는 섬이다.

바다는 다정하게 섬을 껴안아 주고 있었다. 섬은 봄비와 봄볕에 숲이 부풀고 땅에 생명의 기운이 돌았다. 나무는 꽃을 통해 대기의 수분을 흡수했고, 초록의 잎을 통해 봄볕을 간직했다. 하늘도 아기 돌보듯 섬을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미도 북구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건물 앞 조형물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1월에 다녀가고 3개월도 안 지났다. 만남이란 언제나 반가운 것이다. 짐을 놓아두고 두미도 옛길을 걸었다.

 

두미도의 봄
두미도 바다펜션 - 북구항

 

두미도 옛길은 발칵 뒤집혔다.

봄날의 두미도 옛길은 깊은숨을 쉬었고 더욱 견고해졌다. 봄비가 내려 풀과 야생화가 뒤섞여 자랐고 흙이 부풀기 시작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길 위에 그림자도 흔들렸다. 나무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벚꽃길에 들어섰다.

벚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려서 연분홍빛 벚꽃잎이 길 위에 떨어졌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에서 빛이 들어와 땅에 닿았다. 떨어진 벚꽃잎은 빛을 받아 반짝이며 뒤섞였다. 육지는 벚꽃이 만개했는데 두미도는 벌써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두미도 옛길
홀아비꽃대

 

둥글레
남산제비꽃
꽃깔제비꽃
고은마을 벚꽃길 - 두미도 옛길

 

나는 천황산을 다시 찾았다.

숲의 나무 색깔이 바뀌었다. 만개한 진달래꽃, 벚꽃이 봄볕을 받아 그 색깔이 숲으로 퍼져나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숲의 색깔이 파도쳤다. 섬을 찾는 사람들과 섬사람들은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두미도 옛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숲속은 더 짙은 녹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숲의 색깔은 나무 우듬지 위를 굽이쳐 파도를 일으키듯 바다로 흘러갔다. 산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졌다.

 

천황산 등산로 조망점
진달래

 

산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순간 나는 돌출된 바위에 두 다리로 섰다. 두 다리가 바위에 닿았을 때 닿는 느낌으로 바위가 단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구항 선착장 공사는 마무리단계에 들어섰고 어선이 흰 거품 자국을 남기며 바다를 스쳐 갔다. 욕지도가 보이는 바다는 아득하니 멀었다.

계절이 바뀌었다.

핏빛처럼 붉게 핀 진달래는 바람에 흔들거렸다. 산은 각양각색의 색깔로 물들었고 새 생명이 움트는 나무에선 아기 젖내 같은 냄새가 났다. 바닷바람이 땀으로 젖은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등산을 시작한 지 4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두미도 남구항
청석마을과 동뫼섬
천황산 숲속
천황봉

 

안 가본 길을 갔다.

나는 투구봉 등산로는 가본 적이 없었다. 천왕산 정상에서 암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마치 바다가 하늘처럼 보이는 북구항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큰 바위와 그 바위에 붙어있는 바위솔, 숲을 뒤덮고 있는 현호색 군락지는 내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등산로는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등산로라고 생각했다. 등산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멀었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지만 걷고 또 걸어 임도에 도착했다.

 

현호색
투구봉
북구항
임도

 

섬의 밤은 고요했다.

낮의 선착장 공사 소음은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자리돔 회, 돼지고기 볶음, 데친 나물들(두릅, 방풍나물, 꾸지뽕잎), 달래, 돌나물 등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특별히 할 것도 할 일도 없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섬은 밤은 생각보다 길었다.

새벽부터 안개가 짙었다.

바닷가에 안개가 끼면 바다는 무언가에 놀란 듯 창백해져 수면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았다. 바다의 표면을 타고 배가 왔는데 바다의 배는 보이지 않고 뱃고동 소리만 들렸다. 안개 속에 배 엔진 소리만 가득했다. 바다엔 안개뿐이었다. 안개 때문에 배는 보이지 않았다. 안개 속에서 배에 탔다. 배 위에서 안개를 마시고 바람을 마셨다. 배는 천천히 두미도를 떠났다.

 

저녁식사
안개
안개낀 북구항에 접안중인 바다누리호

꽃피는 4월이다.

갑천 변 벚꽃은 이미 꽃을 피워 벚꽃 터널을 만들었다. 제방에 심어진 샛노란 개나리꽃과 어우러져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새벽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식목일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이 되었다. 밤새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다 온몸이 찌뿌드드한 상태로 일어났다. 냉수로 세수를 하고 계절과 어울리는 봄옷을 입었다. 오늘 난 머리털 나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섬으로 출발했다.

 

 

지난 10년 동안 강진, 해남, 완도를 갈 때마다 수없이 지나갔던 그 길이었다.

유성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정읍IC로 빠져나왔다. ‘띵띵 띵띵내비게이션은 광주까지 가라며 한동안 경고음을 울렸다. 그런 울림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갓진 시골길을 달렸다. 어느새 내비게이션도 경로 재탐색을 통해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10여 분 후 선운산IC를 통과하여 서해안 고속도로에 다시 진입했다.

2시간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에게 그다지 특별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는 그런 길이었다. 목포IC를 벗어나 압해대교를 건너 신안군으로 들어섰다. 도로변 불 켜진 커피숍에 들어갔다. 분위기 좋고 경치도 좋았지만 한가하게 앉아 커피를 마실 시간은 없었다.

 

 

송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10분이었다.

차량에 앉아 해무 낀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지금 나는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로 갈 생각이다. 매표소에 들어가 왕복 배편을 예매했다. 소악도 선착장에 내린 후, 진섬, 딴섬,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로 이동할 예정이다.

여객선은 검은 매연을 내뿜기 시작했다.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해무로 인해 시계는 좋지 않았다. 천사대교의 형태가 아주 흐릿하게 보였다.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선실에 들어왔다. 배는 당사도를 거쳐 40분 만에 소악도 선착장이 있는 진섬에 도착했다.

 

 

나는 배에서 내렸다.

해무인지 미세먼지인지 구별할 수 없지만, 바닷가 특유의 짭짤함이 공기에 묻어 있었다. 썰물 때라 갯벌 바닥은 그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섬이라고 바다와 갯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천장굴산, 개바우산, 앞산, 범바우산, 큰잔동산 등 구릉지 같은 산도 있었다.

선착장 옆 숲에는 철탑 가는 길이 있었다.

나는 그 길로 들어섰다.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렸다. 4m 정도의 길이 능선을 타고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자연훼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황량함이 느껴지는 숲에도 자줏빛 붉은 꽃, 진달래꽃이 피어 있었다. 벌써 꽃을 피우다니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달래꽃을 보고 길 복원에 대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시몬의 집이 있었다.

기점·소악도는 순례자의 섬이라고 불린다. 순례자의 섬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졌다. 12 사도 이름을 따서 지은 작은 예배당이 노두길로 연결된 5개의 섬에 산재해 있다. 순례자의 섬을 찾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기점 선착장에서 하선한다. 섬과 섬을 연결한 노두길을 걸어 12 사도 예배당을 돌아본 후 소악도 선착장에서 다시 승선한다.

예배당은 바닷가, 갯벌, 호수, 언덕 등에 자리하고 있다.

1. 베드로의 집 2. 안드레아의 집 3. 야고보의 집 4. 요한의 집 5. 필립의 집 6. 바르톨로메오의 집 7. 토마스의 집 8. 마태오의 집 9. 작은 야고보의 집 10. 유다 타대오의 집 11. 시몬의 집 12. 가롯 유다의 집이다.

 

시몬의 집
가롯유다의 집
유다 타대오의 집
작은야고보의 집
마태오의 집
토마스의 집
바르톨로메오의 집
필립의 집
베드로의 집

 

순례자의 섬에는 섬과 섬을 잇는 4개의 노두길이 있다.

노두는 밑물 때는 사라지고 썰물 때에 모습을 드러낸다. 노두는 광맥·암석·지층·석탄층 따위가 땅거죽에 드러난 부분을 말한다. 지금은 노두를 시멘트로 포장해 놓아 차량도 이동할 수 있다.

조심! 밀물 때 통행금지

노두길은 밑물이 되면 물에 잠긴다. 물이 찰랑거려서 길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물살이 세고 파래 등으로 매우 미끄럽다. 물이 차면 차량은 물론 사람도 절대로 건너가면 안 된다. 3~4시간이 지나면 썰물이 된다.

 

 

아쉬움이 남는다.

길을 만든다고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려 자연을 훼손했다. 산자고, 보춘화 등 섬 야생화 보호와 훼손된 숲의 복원이 시급했다. 자연 그대로인 노두가 아닌 시멘트로 포장된 노두길이라 감흥이 덜했다. 밀물이 되어 바다에 잠기는 노두길과 그 위의 예배당(8. 마테오의 집)을 보지 못했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다.

노두길을 따라 만나게 되는 12개의 예배당은 조용히 묵상하기 좋을 정도의 공간이다. 나에게는 푸른 바다와 마주 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만들어진 길은 없다.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는 종교를 떠나서 섬의 자연과 더불어 편안하게 명상하며 걷는 그런 길이다.

 

산자고
보춘화

 

순례자의 섬을 다 돌아봤다.

물론 모든 예배당을 다 가본 것은 아니다. 안드레의 집과 야고보의 집은 가지 않았다. 나는 숲길과 노두길을 중심으로 섬을 걸었다. 대기점 선착장에 있는 베드로의 집에서 배를 기다렸다. 오후 432분 다시 배를 탔다.

배고픔이 극에 달했다.

아침은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셨다. 점심에는 캔맥주를 마시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막 배를 타고 기점·소악도에서 송공항으로 나왔다. 대전을 가려면 목포를 지나가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목포에 올 때마다 꼭 들리는 유달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선경준치회집에 갔다.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주문했다. 꼭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먹어봐야 한다. 일단 한번 잡숴봐!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대기점선착장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갈치구이(4미 이상)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아귀탕

올해만 두 번째 방문이다.

오후 340, 보름 만에 다시 단양을 향해 출발했다. 맑은 하늘 아래를 달리던 차는 어느새 비구름 속에 갇히고 말았다. 포세이돈의 삼지창이 대지를 때린 듯 하늘의 수문이 열렸다.

오늘의 맑음은 어제의 비로 대체되었다.

비는 창문 표면으로 한두 방울씩 떨어졌고 와이퍼를 느린 속도로 작동시켰다. 제천을 지날 때는 많은 비가 내렸다. 비의 양에 비례해 와이퍼 속도를 빠르게 또는 느리게 조절했다. 와이퍼는 비를 닦고 되돌아오면서 창문을 조금씩 흐리게 만들었다. 2시간 후,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북단양IC를 지나쳤다.

 

 

비는 내리고 또 내렸다.

단양에 도착했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봄비는 겨울 가뭄에 바싹 메말라 죽어가던 대지를 촉촉이 적셨다. 대지는 봄비로 인해 생명수를 얻은 셈이다. 단양에 올 때마다 숙박하던 그라다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빗속을 뚫고 찾아온 벗이 반가웠나 보다. 단양에 사는 지인과 삼겹살에 술잔을 마주 잡았다. 계산 없는 즐거움이 술자리에 가득 찼다. 비 오는 밤이라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밤은 점점 깊어졌다.

비로 인해 어둠이 더욱 까맣게 변했다. 남한강과 소백산과 하늘의 경계가 없어졌다. 남한강을 비추던 조명은 어둠 속에서 한층 더 선명해졌다. 비는 조명에 취한 듯 멋진 야경을 부러워하며 남한강으로 떨어졌다. 남한강도 이내 조명에 불타고 말았다.

 

 

흰 구름이 소백산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오전 7, 아침을 먹으려고 모텔을 나왔다. 상상의 거리에서 남한강 건너 소백산을 바라봤다. 어제 보았던 소백산의 풍경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고요함을 배우고 한가로움을 훔쳤다.

내 마음에 틈이 있어야 빛이 스며들 수 있다. 내 마음이 넓어지니 구름 덮인 산을 보고도 그 매력을 빠져 고요함을 즐기게 되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이 나의 한가로움이 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단양시장 내 충청도순대에 갔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왔던 식당이다. 그동안 단양에 올 때마다 각기 다른 음식을 먹었다. 아침에는 주로 황태해장국을, 점심에는 자장면을, 저녁에는 마늘 소고기, 마늘 떡갈비, 장어, 삼겹살, 쏘가리 매운탕을 먹었다.

편의점 커피를 마신 후 차에 탑승했다.

황정산 자연휴양림으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차는 단양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대강면을 지나 황정리에 들어섰다. 대흥사를 지나 구불구불한 숲속 도로를 천천히 운전 중이었다.

 

 

눈으로 확인된 것은 두 마리였다.

머리는 검은색이고 가슴 주변으로 금빛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한 마리는 산 경사지의 콘크리트 축대벽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도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멸종위기 야생동물 급인 담비였다.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량 소리에 놀랐던지 단비는 혼비백산하여 숲으로 달아났다. 나는 지금까지 단비를 5번 정도 목격했다. 모두 다 깊은 산속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도로변에서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비를 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의 흥분된 감정은 내 머릿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단비를 두 눈으로 봤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운아인 셈이다.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단비의 흔적을 뒤로 한 체 석화봉으로 향했다. 휴양림에서 석화봉까지는 길이 나 있다. 세 군데이고 모두 등산로이다. 나는 C 코스로 접어들었다. 이 등산로는 찾기가 쉬웠다. 계곡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등산로는 점점 넓어지고 경사는 완만해졌다.

때죽나무, 신갈나무도 있지만, 대부분은 굴참나무였다. 굴참나무는 굵고 곧게 뻗어 있었다. 말라 비틀어진 숲에도 노란 꽃을 피우며 존재를 과시하는 나무가 있었다. 굴참나무 아래로 샛노란 연둣빛 꽃을 피운 생강나무였다. 아직 만개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올해 처음 생강나무꽃을 본 것이다.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다채로운 꽃과 열매를 맺는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숲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낙엽은 먼지처럼 숲에 쌓여있다. 생명력을 읽은 나뭇잎들이 낙엽이 되어 오랫동안 켜켜이 숲에 쌓인 것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스럭부스럭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리느라 분주했다. 나는 그 소리가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색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부추겨 줄 뿐이었다.

낙엽은 그냥 버려진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 자궁 같은 곳이다. 두껍게 쌓인 낙엽 속에서 땅은 양분과 수분을 흡수하고 추운 겨울 동안 씨앗은 얼지 않고 땅속에서 견딜 수 있다.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점점 깊은 계곡으로 들어갔다.

등산로는 계곡 끝에서 능선과 연결되었다. 그 지점에서 하얗게 말라버린 투구꽃 열매를 발견했다. 화려한 꽃만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고 매우 당황스러웠다. 능선은 가팔랐다. 굴참나무가 주를 이루는 계곡과 달리 소나무가 점점 많아졌다. 등산로 주변으로 사방오리도 몇 그루 자생하고 있었다.

처녀치마를 발견했다.

처녀치마는 낙엽에 덮여 있었다. 얼핏 봐서는 처녀치마인지 아닌지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손으로 낙엽을 치우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고 녹색의 잎만이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한껏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꽃의 아름다움을 말해주고 있었다.

 

 

숲이 노래했다.

양지바른 곳에는 햇빛이 노래했고 가파른 능선에선 바람이 노래했다. 바람의 노래에 화답하듯 소나무 우듬지가 부드럽게 춤을 추었다.

일종의 풍경놀이를 시작했다.

그저 말없이 정상에 올라 숲의 기묘한 형태를 바라봤다. 맑은 하늘,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각양각색의 구름, 아직 겨울이라고 말하고 있는 눈 덮인 소백산 연화봉 정상,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산맥들과 그 속의 기암괴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시간 풍파를 견뎌낸 소나무가 서 있다. 척박한 곳에서도 숲의 포용력과 충만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숲은 아름다움과 끔찍함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다. 숲은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나는 숲을 관찰하지만, 숲은 나를 관찰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숲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이다. 오늘 난 석화봉을 오르내리면서 숲이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프롤로그]

 

나는 지금 여행기를 쓰고 있다.

여행기는 방랑자 in JEJU라는 제목이다. 나는 어째서 제주 백패킹을 여행기로 쓰고 있는가? 백패킹은 10년 동안 꾸준히 해왔던 나의 모험 여행 중 하나이다. 특히 제주에서의 백패킹은 언제나 특별한 나만의 순간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증가하는 시점이다.

이런 시국에 다른 사람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경험을 했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제주 자연과 함께했다. 그 순간들을 내 가슴속에 한 번 더 새기고 싶었다.

 

 

 

[내가 늘 가고자 했던 곳]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67일간의 제주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다.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다. 유성온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석역에서 하차했다. 6번 출구로 나가 오송행 B1 버스를 탔다. 세종 도심을 관통하여 40여 분 만에 오송역에 도착했다.

공항행 버스를 기다렸다.

배낭은 벤치에 올려놓았다. 가는 곳이 다른 버스가 들어왔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분주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청주공항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창문 틈으로 생기있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버스는 바람을 가르며 공항에 도착했다.

 

김장비닐 안에 배낭을 넣었다.

온라인 체크인을 이미 했기에 수화물로 배낭을 맡겼다. 평소 배낭 무게보다 4kg이나 적은 8kg이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캠핑장비만을 가져왔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보안 절차를 받으러 갔다.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보조배터리, 랜턴, 라디오, 물은 에코백에 담겨 있었다. 1분도 지나기 전에 보안 절차가 끝났다. 탑승장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연착 없이 바로 탑승이 시작되었다. 탑승권을 확인하는 기계의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탑승구로 느지막하게 향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탑승은 이미 끝났다. 짐을 선반에 넣는다고 길게 줄 서게 되는 일도 없었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진에어 승무원의 움직임이 활기찼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항상 웃고 있는 표정이란 걸 눈동자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비행기가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몸이 흔들거렸다. 승무원들은 안내방송을 진행되고 있었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28년 전에 군 복무했던 활주로를 행하여 비행기가 이동 중이었다.

벨 소리가 울렸다.

, , . 이어서 승문원의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좌석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동체는 흔들림이 없었다.

굉음과 함께 앞으로 달려가던 비행기는 바퀴가 활주로를 벗어났다. 이 순간 엔진 소리를 제외한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양력을 받아 상승만 하던 비행기는 이내 수평을 유지했다.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진 후 기내의 공기는 소음과 함께 안정을 되찾았다.

햇살이 눈에 부셨다.

경량 재킷을 입고 있기엔 더웠다. 청명한 하늘은 아니지만, 햇살이 창을 통해 기내로 들어왔다. 비행기는 780km/h로 허공을 가르며 움직였다. 도시, , 하늘, , 바다, 구름, 나는 창밖의 풍경변화를 보고 그 속도를 인식할 수 있었다.

 

비행이 끝났다.

우리 비행기는 곧 제주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중략)”승무원의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회전하는 동안 제주 시가지가 점점 크게 보였다. 이륙할 때와 비슷한 굉음을 내며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제주에 발을 디뎠다.

올해 첫걸음이었다. 해마다 3~4번 왔지만, 올해는 몇 번이나 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수화물로 보낸 배낭을 찾았다.

 

 

 

[제주 백패킹 1일차 함덕해수욕장]

 

이제 어디로 갈까?

정해진 곳은 없었다. 10분여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무작정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 가는 곳 중 한 곳이 내가 머물 야영지가 될 것이다. 제주 백패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탄 버스는 326번이었다.

공항에서 제주 동쪽으로 가는 노선이었다. 동문시장을 거쳐 조천, 함덕을 지나간다. 나는 결정을 지체하지 않았다. 오늘의 야영지는 함덕해수욕장 야영장으로 결정했다. 1시간여의 버스 여정을 마무리하고 함덕 환승 정류소에서 하차했다.

 

6개월 만이었다.

작년 6월과 9월에도 이곳에서 야영했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없는 동안 변화된 모습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날씨가 흐린 탓에 석양이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다. 어서, 텐트를 치러 야영장으로 가자.

바닷바람이 거셌다.

바람을 피해 워싱턴 야자수 아래 텐트를 쳤다. 장소 선택하는데 2분 텐트 치는 데 5분 걸렸다. 넓은 야영장이 휑뎅그렁했다. 군데군데 텐트가 쳐져 있었지만, 사람의 흔적은 수일 동안 없었던 것 같았다.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예상은 했었지만, 석양의 모습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인근 마트로 향했다. 제주에서의 첫날밤, 술이 빠져서야 하겠는가? 부시리회, 소주, 맥주 등을 샀다.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고 텐트로 돌아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텐트에 조명을 밝혔다.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는 야영할 때마다 꼭 가지고 다니는 장비 중 하나다. 내가 자연에 파묻혀 있는 동안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소중한 친구다.

아는 형님과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제주 왔음. 바람 겁나게 붐. 아무도 없는 함덕해수욕장에서 텐트 치고 야영하고 있음. 지금 소맥에 부시리회 먹고 있는 중. 라디오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노래가 나옴. 그곳이 바로 이곳이라 문자 보냄. 언제 함께 옵시다. 얼어 죽지는 않게 해 줄게.”

핫팩을 꺼냈다.

고요한 사방에 들리는 거라곤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잎 소리뿐이었다. ·하의 보온 옷(우모복)을 입고 배에 핫팩을 붙였다. 보온 신발(다운 슈즈)에 핫팩 하나씩 넣고 신었다. 무거운 동계 침낭 대신 가져온 경량 침낭으로 들어갔다. , 생각보다 괜찮았다.

 

 

 

[제주 백패킹 2일차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새벽 450분에 잠에서 깼다.

추워서가 아니라 오줌이 마려웠다. 눈을 뜨고 보니 전혀 춥지 않고 몸에 온기가 느껴졌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보니 밖의 쌀쌀함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야영할 때 발이 시린 것을 가장 싫어한다. 이번 제주 백패킹에 보온신발을 가져온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커피를 마셨다.

카누가 아닌 맥심을 선택했다. 자고 일어나니 달곰함이 그리워졌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은 후에 빗, 수건, 칫솔, 치약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방금 청소를 마친 듯 한결 깨끗한 화장실이 좋았다. 거울을 보니 아직은 몰골이 괜찮아 보였다. 겨우 하룻밤이었으니까.

서우봉에 올랐다.

이곳에 올 때마다 들렀지만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유채밭에 유채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파종하지 않을 듯했다. 간간이 올라온 노란 유채를 보며 밭길을 따라 걸었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을 보고 생각했다. 이곳이 무릉도원이구나. 이젠 떠나볼까?

 

이른 점심을 먹었다.

함덕에 오면 늘 순풍 해장국을 갔었다. 그때마다 뒷집 식당도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식당 이름이 제라진 밥상이다. 문을 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뷔페 음식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 주셨다.

7,900원을 선 결제했다.

식당 안 한갓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접시를 가지러 가면서 대충 훑어보았다. 샐러드, 완숙 달걀, 유부초밥, 탕수육, 돼지고기 볶음, 떡볶이, 콩나물, 무생채, 마늘, , 상추를 담았다. 두 번째로 잔치국수와 김치찌개를 가져왔다. 세 번째로 보리밥에 나물, 채소, 고추장을 올린 후 참기름을 두 바퀴 뿌렸다.

막걸리는 네 번째로 가져왔다.

뷔페 음식을 접시에 담으면서 막걸리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술값이 인상되었는데 아직도 막걸리가 2,500원이었다. 술값을 결제하니 쟁반에 잔과 막걸리를 주셨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닭볶음탕도 나왔다.

막걸리 한 모금씩 마시면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점심 특선인데 내가 일찍 들어와서 직접 접시에 담아 가져다주셨다. 술안주가 추가되었으니 한잔 안 마실 수 있겠는가? 아주 개인적인 맛 평가지만 전체적으로 음식 맛이 좋았다. 음식 중 김치찌개와 닭볶음탕이 가장 맛있었다. 다음엔 꼭 라면도 먹어봐야겠다.

잘 먹었습니다.

순풍 해장국보다 훨씬 맛있어요.’ 내 말에 순풍 해장국 득을 크게 본다며 겸손해하셨다. 테이블마다 비닐장갑, 소독제, 물티슈가 놓여 있었다. 손님이 나가면 바로 테이블을 소독제로 닦았다. 들고 나는 손님들을 친절하게 대하셨다. 오늘 난 뷔페 음식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제라진 밥상은 나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에 왔다.

함덕에서 201번 버스를 탄 후 우당 도서관에서 하차했다. 도로를 건너 6호 광장에서 231번 버스로 갈아타고 1시간 10분 만에 도착했다. 해송 숲 사이의 길을 걸어가니 매표소가 나왔다. 입장료 1,000원과 전기사용료 2,000원을 현금 결제했다. 야영데크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예약했다.

03데크의 이름은 상사화였다.

매표소 우측의 해송 숲에 야영장이 있었다. 우거진 숲을 뚫고 햇살이 데크에 내려앉았다. 밤과 달리 한낮 기온은 따뜻했다. 텐트를 전기를 사용하기 편한 방향으로 쳤다. 장기 백패킹을 할 때 핸드폰, 보조배터리, 랜턴의 충전은 필수요소다. 공중화장실 등에서 도둑전기를 사용하지 말고 떳떳하게 돈을 내고 사용하자.

 

야영테크를 따라 걸었다.

대부분이 해송 숲이고 일부 삼나무 숲을 통과했다. 휴양림 외곽을 한 바퀴 돈 것이다. 복수초를 제외한 다른 야생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

붉은오름에 올랐다.

급경사지에 설치된 침목 계단을 올랐다. 오름 정상까지 350m였다. 내 직업이 직업인지라 걷는 것과 산을 오르는 것은 선수급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제주목장과 주위의 오름 군이 흐릿하게 보였다. 날씨 탓인가? 내가 가본 오름 중에서 이렇게 감흥이 없었던 곳이 또 있을까? 발길을 돌려 야영데크로 돌아왔다.

커피를 마셨다.

텐트 앞에 앉아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점에 점점 도달할수록 우렁찬 수증기를 내뿜었다. 시에라컵에 카누를 탔다. 뜨거울 때 한 모금을 마셨다. 목을 타고 흐르는 커피가 쉬고 있던 몸의 감각을 일깨웠다. 숲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까마귀가 울부짖었다.

이쪽에서 울면 저쪽에서 화답했다. 아무래도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생긴 것 같다. 짧은 숲속 명상을 마치고 복근 운동까지 했다. 한낮에 텐트에 누워 밖을 내다봤다. 고즈넉한 숲속 풍경은 내가 늘 상상 속에서 그리던 백패킹의 모습이었다.

 

숲의 어둠은 빨랐다.

밝음은 눈 깜짝하는 사이에 물러갔다. 한순간에 찾아온 어둠에 잠시 당황했다. 휴양림 야영장이라 데크로드에 조명이 들어왔다. 텐트에도 랜턴을 켰다. 어둠은 늘 나에게 공포감을 준다.

즉석 육개장을 끓였다.

휴양림은 쓰레기를 되가져가야 한다. 최소한의 장비로 백패킹을 다니는 나는 쓰레기 발생을 줄이려고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 한 끼쯤은 이렇게 먹어도 상관없다. 밤하늘의 별을 벗으로 삼아 소주 한잔 주고받기엔 그만인 음식이다.

 

 

 

[제주 백패킹 3일차 화순금모래해수욕장]

 

밤은 추웠다.

한낮의 따뜻함은 어둠이 가져가 버렸다. 물론 불량 핫팩이 문제였지만 숲은 내 생각보다 더 추웠다. 보온 옷(우모복)과 보온 신발(다운 슈즈)로 완전무장하고도 침낭 속에서 몸을 움츠렸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아침이 밝았다. 어둠이 떠난 순간 나는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침 명상을 했다.

화장실에 뜨거운 물이 나왔다. 이런 호사가 다 있었다. 용모를 단정히 한 후 휴양림 내곽을 산책했다. 텐트로 돌아와 커피와 크런치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텐트 옆 빈 데크 공간에서 반가부좌를 했다. 아침마다 하는 20분 명상을 붉은오름에서 했다. 내가 늘 꿈꾸었던 모습이었다.

오늘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안개가 숲을 조금씩 점령하고 있다. 예정보다 일찍 휴양림을 나서야 할 것 같다.

 

30분을 기다렸다.

버스가 늦게 온 게 아니라 내가 일찍 나온 것이었다. 선택은 할 수 없었다. 231번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 안이 따뜻했다. 버스 안에서 다음 야영지를 고민했다. 일단 종점까지 가기로 했다.

교통카드가 사라졌다.

종점에 왔는데 하차를 못 했다. 기사님께 말씀드리고 좌석 수색에 들어갔다. 교통카드는 의자와 등받이 틈으로 떨어져 있었다. 1분 만에 다시 교통카드를 찾았다.

환승을 했다.

서귀포 () 터미널에서 202번 버스를 탔다. 오늘의 야영지는 화순 금모래해변으로 정했다. 야영지에서 산방산을 조망할 수 있다. 안덕계곡을 지나 화순리에서 하차했다. 마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텐트를 쳤다.

12년 전 걸어서 이곳을 지나갔었다. 무더운 여름날 해변에서 해병대가 훈련하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야영장은 유료지만 비수기엔 그냥 사용할 수 있는 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도 다른 야영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랜 기간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텐트가 흉물처럼 보였다. 야영장 앞쪽 모래 해변은 공사 중이라 온종일 소음이 컸다.

그 많던 금모래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올레길을 걷지 않았다. 나만의 추억이 있는 길을 다시 걸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듯 이곳도 많이 변했다. 해안과 인접한 길을 따라 산방산까지 걸어갔다. 아침과 달리 따뜻해진 날씨가 반갑지 않게 느껴졌다.

마트에 갔다.

산방산에서 도로를 따라 안덕 하나로마트까지 걸었다. , 맥주, 포도주, 즉석밥, 라면, 김치, 고기, 배추를 샀다.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을 위해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양만큼 샀다. 에코백에 다 안 들어가 결국 물은 손으로 들고 야영지로 갔다. 마을 길에 있는 팽나무 한그루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가 저물고 나니 추워졌다.

해안가라 그런지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이런 날에는 김치찌개가 최고였다. 냄비에 고기, 김치를 넣고 물을 부어 끓였다. 어느 정도 끓었을 때 소금으로 간을 했다. 뽀글뽀글 끓고 있는 냄비를 보니 군침이 흘렀다. 소주 대신 선택한 포도주가 김치찌개와 궁합이 잘 맞았다.

 

 

 

[제주 백패킹 4일차 올레 휴]

 

술기운에 잠이 들었다.

새벽엔 비까지 내렸다. 바람은 밤보다 더 강하게 불어왔다. 동트기 전 일어나 고민을 시작했다. 오늘 어디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하룻밤 더 야영할 것인가? 결정하기 전에 커피를 마셨다. 따뜻한 온기가 서서히 온몸에 퍼졌다. 비 때문에 배낭 꾸리기가 쉽지 않겠지만 여기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사전 투표를 했다.

배낭을 메고 화순리 정류장으로 향했다. 아침 공기는 새벽보다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사전 투표 현수막을 보고 안덕면사무소까지 걸어갔다. 1.5km의 오르막을 배낭을 메고 걸었다. 사전 투표로 인해 예정에 없던 왕복 3km를 더 걷게 되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길가에 핀 매화를 보고 이제는 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사전 투표를 마치고 다시 언덕을 내려왔다. 안덕 하나로마트에서 포도주와 골뱅이, 파 등을 샀다. 그 이상은 배낭을 넣을 수 없었다. 오늘 야영지에 대한 부푼 희망을 간직한 체 202번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향했다. 서귀포 () 터미널에서 201번 버스로 환승 후 동쪽으로 향했다.

시흥리에서 하차했다.

이동시간만 2시간이 걸렸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농로를 따라 뚜벅뚜벅 오름을 향해 걸어갔다. 경사진 오름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쉼 없이 올라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이마와 등의 땀을 순식간에 식혀주었다. 전망대에서 지미봉, 종달리, 우도, 성산항, 성산 일출봉 등을 감상했다. 경치 한번 끝내주네!

 

오름 야영을 포기했다.

울진, 강릉, 동해의 산불로 민감한 시기에 오름에서 야영은 할 수 없었다.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 경치를 다시 한번 눈에 가득 담았다. 오름을 내려와 종달리를 거쳐 해변까지 걸어갔다. 해안가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더욱 사나워졌다.

내 의지에 상관없이 발이 걸어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름을 오르내렸는데 바람까지 나를 막아섰다. 무거운 배낭을 벗어버리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꿋꿋이 그냥 걸을 수밖에 없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이런 고생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비웃듯 종달 해변은 고요했다. 서둘러 텐트를 치려고 배낭을 벗었다.

 

일기예보를 검색하지 않았다.

서둘러 휴대전화로 일기예보를 검색했다. 일요일까지 제주 전 해안지역에 강풍 주의보가 발령되어 있었다. 이런 날은 해안가에서 야영할 수 없었다. 날은 이미 저물고 있었다. 아고다 앱으로 서귀포에 숙소를 예약했다. 다시 2시간을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갔다. 나흘 만에 샤워했고 빨래까지 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결국 제자리였다.

 

 

 

[제주 백패킹 5일차 금릉해수욕장]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바람은 여전히 강하게 불었지만, 오후쯤이면 약해질 것이다. 서귀포에서 하룻밤 편안하게 쉰 숙소를 나왔다. 202번 버스를 타러 갔다. 오늘은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금릉해변 야영장으로 갈 생각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버스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2시간을 이동하여 금릉해변에 도착했다.

금릉해변의 바다는 3월의 파도로 가득했다. 해변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고운 모래 입자가 바람에 흩날렸다. 야영장이 조금 변했다. 작년 6, 이곳에서 야영했었다. 그 당시 야영장을 정비한다는 현수막이 있었다. 오늘 와서 보니 야영장이라고 쓴 안내판을 제외하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해안가에 방풍림으로 워싱턴 야자나무를 심었을 뿐이다. 여전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인적없는 텐트는 곳곳에 많았다. 자주 야영하던 장소에 텐트를 쳤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물을 끓였다. 커피는 이곳에서 마셔야 제대로 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30분 정도 숙면을 했다.

해변이 바라다보이는 야영지에서 낮잠을 잔 것은 오랜만이었다. 에코백을 어깨에 걸쳐 메고 길을 나섰다. 이곳에서 야영할 때마다 한림까지 걸어서 다녀왔었다. 오늘도 주변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향나무와 대웅전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월계사를 만났다. 안 가본 길을 걸을 때마다 약간의 흥분과 희열을 느꼈다.

한림 하나로마트에 도착했다.

특별히 살 것은 없었으나 걷다가 보이기에 그냥 들어갔다. 진열상품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둘러봤다. 견물생심이라고 캔맥주와 봉지라면을 샀다. 낱개라면은 이곳에서만 팔았다. 컵라면은 편리하지만, 쓰레기가 너무 많이 발생한다.

이른 저녁을 먹었다.

한림시장의 풍년 순대국밥에서 내장국밥을 먹었다. 제주도지사 원희룡과 가수 이정이 다녀간 곳이었다. 12년 전, 올레길을 걸었을 때 나도 이곳에서 국밥을 먹었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음식 맛은 변함없이 좋았지만, 청결은 아쉬웠다. 주변 정리가 안 되어서 산만하고 지저분하게 보였다.

금릉 야영장까지 또 걸었다.

왼쪽으로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였다. 도로변 맛집에는 여전히 긴 줄이 서 있었다. 나는 관심이 없는 척 무심히 그들을 지나쳤다. 낮보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협재해변에 들어선 순간 흰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파도를 보았다. 텐트로 돌아와 라디오를 켰다. 아직 오후 5시였다.

 

석양은 없었다.

바람이 구름을 몰고 왔다. 틀림없이 해는 바다 저쪽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낮에 있던 몇몇 사람조차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바람 때문에 더는 밖에 머물 수가 없었다. 보온 옷(우모복)과 보온신발(다운 슈즈)로 완전무장을 했다. 한 꺼풀 덧씌워진 나는 비로소 따뜻함을 느꼈다.

알코올이 온몸에 퍼졌다.

텐트에는 맥주와 포도주가 있었다. 입가심으로 맥주를 마신 후 포도주를 마셨다. 물론 물로 입안을 헹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드디어 포도주 마개를 열었다. 코로 향기를 맡고 한 모금 가득 입안에 담았다. ‘이 가격에 이런 맛이 나다니.’ 자꾸 마시고 싶은 맛이었다. 시중에서 구매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과 어둠은 경쟁이라도 하듯 점점 거세지고 주위는 암흑으로 변해갔다.

 

 

 

[제주 백패킹 6일차 이호테우해수욕장]

 

알람 소리에 깼다.

한 번도 중간에 잠에서 깨지 않고 푹 잤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이 실질적인 마지막 야영하는 날이다. 숙소를 예약할지 다른 곳에서 야영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왔다. 라디오를 켠 후 물을 끓여 커피를 마셨다.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바람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202번 버스를 타고 현사마을에서 하차했다.

월요일 오전 11, 해송 숲 야영장. 내가 이호테우해변을 구경하려고 그곳에 간 것 아니었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트로이 목마 등대 때문도 아니었다. 야영장에서 야영할 수 있는지 확인하러 간 것이었다. 여기도 다른 야영장과 다르지 않았다. 인적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텐트로 야영장은 꽉 찼다. 나의 결정은 빨랐다. 해송 숲 가장자리 빈 곳에 텐트를 쳤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애기동백나무가 심겨 있었다.

예전에 야영장으로 이용되었던 해송 숲은 쓰레기도 없고 방치된 텐트도 없어서 깨끗하고 보기 좋았다. 왜 자연은 가꾸고 보호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등대를 구경한 후 해안가를 따라 도두봉까지 걸었다. 그리 높지 않은 도두봉에 산책하듯 올랐다. 드넓은 활주로가 펼쳐진 제주공항과 흰 눈이 남아있는 백록담 북벽의 한라산이 한눈에 조망되었다.

 

동태찌개에 단무지 반찬은 이상하지 않은가?

도두봉에서 내려와 오일등식당으로 향했다. 사라봉 인근의 슬기식당과 쌍벽을 이루는 동태찌개 전문점이다. 반찬으로 단무지, 김치, 깻잎, 고추가 나왔다. 동태찌개는 양푼 한가득 나왔다. 알 가득하고 푹 익은 무가 식감을 자극했다. 식욕을 더 돋우기 위해 막걸리도 마셨다. 낮술은 진리다. 마지막 야영 날이라 종류별로 술을 먹는구나! 야영장으로 돌아가기 전 마트에 들러 포도주를 구매했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했다.

술을 깨기 위해 야영장까지 걸었다. 재킷을 벗어야 할 정도로 한낮은 더웠다. 햇볕 아래 있으면 그늘이 그립고 그늘에 있으면 햇볕이 그리웠다. 관광객들은 모래 해변에서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가로운 풍경을 나만이 즐기는 건 아니었다.

비행은 계속되었다.

공항과 인접한 곳이라 항공기의 이착륙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술기운의 지속을 위해 캔맥주와 포도주를 연이어 마셨다. 평소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여행만 오면 이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다.

해변이 소란스럽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석양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주 백패킹을 하는 동안 나도 제대로 된 석양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 틈에 끼여 해변을 걸었다. 핸드폰 사진 촬영을 수동으로 조절하여 석양을 찍었다. 작품 하나 건진 듯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 석양이었다.

 

어둠이 주위를 장악했다.

마지막 야영을 위해 랜턴을 켜지 않았다. 남은 이소가스를 약하게 켜놓고 텐트 안에서 조금씩 포도주를 마셨다. 낮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라기보다는 적막하다는 느낌이었다. 제주 백패킹의 마지막 야영은 이렇게 지나갔다.

 

 

 

[제주 백패킹 7일차 제주공항]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춥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랜턴을 켜 놓고 소란스럽지 않게 배낭을 꾸렸다. 이번 제주 백패킹은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야영했다. 텐트, 보온 옷(우모복), 보온 신발(다운 슈즈), 경량 침낭, 담요, 랜턴, 라디오, 소형냄비, 소형버너, 시에라컵이 전부다. 40L 배낭에 모든 장비를 다 넣었다. 배낭을 어깨에 짊어졌다. 왜 이렇게 가볍지!

새벽어둠을 뚫고 걸었다.

제주 백패킹의 유종의 미는 공항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새벽어둠을 뚫고 날이 밝을 즘 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 한산한 도로의 여명이 아름다웠다. 배낭을 수화물로 맡기고 보안 절차를 마쳤다. 탑승구로 향하는 길에 면세점을 구경했다. 신축된 18번 탑승구로 향했다. 평소보다 한적한 공항 탑승장이었다. 느지막하게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의 제주 백패킹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음악을 듣던 나는 책으로 눈을 돌렸다.

책꽂이에 두서없이 쌓여둔 책들의 제목을 훑어내렸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에밀레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등이 눈에 들어왔지만, 오늘따라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는 두꺼운 매트가 깔린 탁자 옆으로 갔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다섯 권의 책들이 놓여 있었다. 전기장판이 켜진 매트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손을 뻗어 책들을 한 권씩 훑어보았다.

 

 

그중 책 한 권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책을 손에 들고 다시 한번 제목을 살폈다.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이다. 나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노안이 찾아온 눈동자에 선명한 글씨가 펼쳐졌다. 무언가에 홀린 듯 이불 속으로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나는 책에 빠져버렸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부르르 떨렸다. 가끔 내쉬는 호흡과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책을 읽는 동안에 나를 휘감은 흥분은 내 얼굴에 홍조를 띠게 했다.

 

 

야성의 부름은 벅이 주인공이다.

벅은 늑대 개다. 미국 남부에서는 인간의 사랑을 받던 개였다.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광풍으로 하루아침에 썰매 끄는 개로 팔려 알래스카로 떠나게 된다. 가혹한 매질 속에 생존을 위한 처세술, 강자가 되기 위한 싸움기술 등을 배우게 된다. 그 과정에 자신을 부르는 자연의 소리를 듣게 된다.

벅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벅이 처한 가혹한 환경은 인간이 사는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은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지 말고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계를 뛰어넘어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 나가야 한다.

 

 

나는 모험과 여행을 즐긴다.

오늘 오후에 부산에 왔다. 부산에 여러 번 왔었지만, 동래구에서 숙박하는 건 처음이다. 이번 여행은 도심 번화가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 속에서 지내야 한다.

나는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

잠잘 곳은 정해졌으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금상첨화다. 음식은 여행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이다. 나에게 먹는 것을 빼놓는 여행은 상상하기 힘들다.

 

 

부산에서 8끼를 먹었다.

곰장어, 돼지국밥, 회정식 코스, 삼겹살, 호텔 조식 등. 음식은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반드시 입맛을 돋게 만드는 요소와 함께해야 한다. 그 요소는 술이 될 수도 음악이 될 수도 있다.

명심해야 한다.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모험과 여행을 즐기듯 음식을 즐겨야 한다. 한계를 뛰어넘을 때까지 먹고 마셔야 한다. 술에 취하듯 음식에 취해야 한다.

 

 

또 하루가 밝았다.

하루에 아침은 두 번 찾아오지 않는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내게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비록 나는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30분이 지났다.

금성산 자락 옥련암에 왔다. 차는 인근의 아파트 건물 앞 빈 공터에 세웠다. 등산화를 신고 천천히 산을 올랐다. 많은 사람이 산을 찾고 있다. 도심 인근의 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산이 메말랐다.

바람에 휘날리는 건 희뿌연 먼지였다. 아름드리 소나무의 뿌리는 땅 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등산로는 훼손이 심해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양심도 메말랐다.

사람의 발길이 닿은 산 곳곳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눈곱만한 도덕심도 찾을 수 없었다. 생활 쓰레기, 음식물, 과일 껍질 등이 숲의 민낯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가본 산 중에서 가장 더러운 산이었다.

 

 

더는 안된다.

산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산을 이대로 버려뒀다가는 다시는 산의 기능을 회복할 수 없다. 이곳에 온 목적이 하나 있다. 내가 사흘 동안 이 산을 헤매고 다닌 이유와 같다.

나는 산에 대한 도덕적 신념을 갖고 있다.

나의 신념은 확고부동하며 살아있는 산 그 자체다. 산속의 나무, , , 곤충 등과 함께 있을 때의 청량함이 좋다. 산과 공존하는 조화로운 삶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 내디뎌 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미도에 왔다.

여행은 나에게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특히 섬 여행은 내가 유일하게 매력을 느끼는 취미 생활이 되고 있다. 새로운 생각을 위해서는 언제나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

여행은 자유로워야 한다.

여행의 최대 장점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다. 진정한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바다누리호
두미도 북구항

 

두미도는 느낌이 있다.

섬의 모양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이 아니라 섬에 숨어 있는 마을 터, 옛길 등에서 풍겨 나오는 임의로 할 수 없는 불변의 것에서 이끌림을 느낀다. 나는 이 이끌림 때문에 두미도를 다시 찾게 되었다.

섬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차를 타고 임도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면 이색적인 풍경은 볼 수 있어도 섬을 관찰할 수는 없다. 어떤 장소를 잠깐 지나치는 게 아니라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천황산에서 바라본 북구항
천황산에서 바라본 청석마을, 동뫼섬

 

두미도에는 마을이 산재해 있다.

북구 항에서 반시계방향으로 고운, 설풍, 덕리, 순천, 대판, 청석, 남구 항, 사동으로 이어진다. 섬은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다. 가구 수도 얼마 안 되고 없어진 마을도 있다.

섬은 시간여행을 준비 중이다.

자연스럽게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으면 잿더미 속에서도 한줄기 생명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살고 싶은 섬, 두미도 가꾸기 사업의 하나로 작년 말부터 남구 항에서 사동, 북구 항, 고운, 설풍까지 옛길을 복원 중이다.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남구항
설풍마을에서 바라본 고운마을

 

섬 속에 옛길이 묻혀 있다.

섬은 옛길을 둘러싸고 옛길은 세월의 흐름에 잊혀 있었다. 콘크리트 임도의 편리함 때문에 옛길은 무시되었다. 삶을 되돌아볼 때 옛길은 소중한 삶의 흔적이며 추억이 된다.

마을은 옛길을 통해 이어진다.

옛길을 따라 삶의 공간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보석의 아름다움이 사람들을 홀리듯 옛길의 복원이야말로 두미도 사람들과 두미도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게 할 것이다.

 

북구항에서 고운마을 가는 옛길

 

마을 사이의 거리는 시간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덤불을 걷어내고 무너진 돌담을 다시 쌓으면 옛길은 선의 흔적을 걷는 길로 드러낸다. 설풍에서 묵은 밭 사이로 난 좁은 돌담길을 따라 서남쪽으로 걸어가면 덕리를 만나게 된다. 무거운 돌절구를 지고 오갔던 옛길이다.

그 옛길을 찾아 헤매던 중 칡을 보았다.

칡의 굵기는 얼마나 될까? 바위 밑까지 뻗어 있는 칡은 이제까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굵은 것이다. 칡의 즙은 쌉쌀하지만 건강한 맛이다. 칡을 보고 있으니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칡은 오랫동안 인적이 드문 장소에 있어서 이렇게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설풍마을에서 덕리마을 가는 옛길 입구

 

덕리는 돌담만 남았다.

덕리는 산속 깊숙이 떨어진 외딴 마을이지만 돌구덕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칼로 두부를 잘라놓듯 돌담만 남은 옛 집터는 한때 반듯한 집들로 동네를 이루고 살던 곳임을 말해준다.

풍경을 바라보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해안 절벽과 돌구덕이 아무리 지척이라도 절대로 한걸음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돌구덕 풍경을 보고 파도와 바람 소리를 듣는데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다 다르다. 각자가 지닌 마음속 세계의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덕리마을(겨울)
덕리마을(봄)
돌구덕
돌구덕 파노라마 사진

 

절벽 위에 길이 있다.

덕리에서 돌구덕을 발아래로 내려다보며 길을 걷는다. 낭떠러지 위 바위를 쪼아 만든 길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절벽 구간을 지나 동백숲에 다다르면 이내 임도와 만나게 된다.

임도가 옛길이다.

대판을 지나 청석까지는 옛길을 넓혀 임도로 만든 길이다. 따분하게 느껴지는 임도가 절대 아니다. 대판의 비탈은 고즈넉하고 청석의 들판은 평화롭다. 두미도 꼬리인 동뫼섬을 바라보며 임도를 걷는 즐거움이 있다

 

절벽 길
조망점
임도에서 바라본 동뫼섬

 

고갯길을 넘는다.

청석 임도에서 다시 대숲으로 들어선다. 대판과 청석 사람들이 남구 항을 가기 위해 넘어 다녔던 고갯길이다. 지금은 천왕봉 등산로와 인접하고 있다. 고개를 넘으면 남구 항이 한눈에 보인다.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다르다.

들으려는 의지가 있기에 귀가 있고 보려는 욕망이 있기에 눈이 있는 것이다. 섬에서 생활이 외로울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살아가는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행복의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남구항 동백 숲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았다.

몸과 마음의 안식을 위해 23일 동안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건물 앞에는 재활용품을 이용하여 만든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비닐하우스 같은 두미 쉼터에는 난로도 설치되어 있어 휴식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살고 싶은 섬은 두미도다.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은 한호수 사장님 부부가 운영 중이다. 캐나다에서 20여 년 동안 관광업을 하다 귀국한 후 두미도의 매력에 반해 이주하셨다. 두미도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다.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
두미도 바다 펜션 (민박)
저녁식사
두미쉼터

 

섬의 밤은 먹색이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고기잡이배의 불빛만이 넓은 바다를 좁게 비추고 있다. 밤바다의 경외감에 빠져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점점 옅어진다.

섬의 새벽은 짙은 먹색 빛깔에서 엷은 안개 빛깔로 바뀌고 있다.

나의 육체, 어둠에서 나와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머릿속 생각의 끈을 마음껏 풀어 놓는다. 창의적인 사고는 늘 나를 성장시킨다.

오늘도 살고 싶은 섬, 두미도에서 불멸의 희망을 꿈꾼다.

 

북구항 조형물(두미도 바다 팬션)

나는 길거리 여행자다. 나는 집이 좋지만, 집에 있으면 곧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나는 거리의 현실을 직시하지만, 꿈속에 살려고 늘 노력 중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여행은 생활이며 생존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어느 장소를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여행은 떠나고 싶을 때 과감히 떠날 수 있는 결단력만 있으면 된다. 여행 장소를 보는 시각은 사물을 얼마나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은 다 다르고 다른 인생의 길을 걷는다. 인생이 그러한데 더군다나 똑같은 여행은 있을 수 없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여행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완벽한 여행 준비는 없다. 시험공부 하듯 여행을 준비하면 세세한 것에 대한 순간의 몰입을 방해받는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마음에 울림을 주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다. 일단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상이 잘 내려다보이는 비행기 창가 좌석에 앉아 농도 짙은 어둠이 깔린 창공을 손바닥으로 지우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밖을 내다봐도 창공에 불빛 한점 보이지 않는다. 비행기는 어둠보다 더 진한 암흑 속을 통과 중이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제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바다를 발밑에 두고 머리로 창공을 이고 있어야 한다. 일주일 후에 다시 돌아갈 바다를 건너고 있다.

 

한라산(관음사~성판악, 영실~어리목)

 

비가 내려 마음이 심란하다. 관음사에서 백록담으로 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무모해 보인다.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비바람은 점점 강력해진다. 악천후로 고생하면서도 결국 정상에 올랐다. 또렷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숙소에서 젖은 등산화를 말리며 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눈이 내린다. 새벽 눈 같은 마음으로 복잡하고 어지러운 내 마음을 눈처럼 희고 깨끗하게 씻어 주었으면 한다. 갑작스러운 추위로 도로에 쌓인 눈이 얼어버렸다. 6시에 숙소를 나왔지만, 도로통제로 인해 영실 주차장에는 11시쯤 도착했다.

세상은 온통 흰 눈으로 덮여있다.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눈의 충돌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흰 눈이 세상을 향해 자유낙하를 하고 있다. 나무에 쌓인 눈을 두 손으로 모아본다. 솜이불처럼 가볍지만 차갑다. 바람결에 흩날리지 않으려고 서로서로 팔짱을 끼고 버티고 있다. 한라산에서 눈을 보니 강아지처럼 그저 좋다.

눈보라에 사방이 난리가 났다. 제정신 못 차릴 정도로 차가운 눈보라의 춤사위가 예사롭지 않다. 나는 장갑을 끼고 모자를 눌러쓴 후 주머니에 장갑 낀 손을 넣었다. 산 아래는 고요하고 맑은데 산 위로 올라갈수록 날린 눈과 눈보라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산을 뒤덮은 수천만 개의 눈이 얼어 얼음꽃이 피었다. 눈이 괜히 온 게 아니었다. 바람에 길게 뻗은 눈길 위를 걷는다. 내가 가야 할 길이다. 겨울 산을 올라봐야 산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

어디서 오는 바람인가? 부드러운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고 지나간다. 나무에 눌어붙은 흰 눈에서 맑고 투명한 냉기가 흘러나온다. 산은 높고 햇살은 더욱 눈에 부시다. 무서운 기세로 폭설이 몰아친 후에 찾아온 짧은 평화의 순간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이 기쁨을 누린다. 한 줄기 빛이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땅에 안착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함박눈이 내려 세상을 온통 하얗게 뒤덮어도 한줄기 햇빛만으로도 눈을 녹여 땅속에 스미게 한다.

해발고도가 높아 춥지만, 마음은 시원하고 흰 눈은 차갑지만, 가슴은 포근하다. 눈은 하늘에서 흐르고 풀덤불 위에도 나무에도 상고대 꽃이 피는 자리가 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사는 모습이 의젓해 보인다. 구름을 뚫고 터벅터벅 산을 올라 그 좋은 자리에 왔다. 흰 이불 덮고 미동도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은 듯 고요함이 가득하다.

 

이중섭 미술관

 

나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가? 눈은 뜨고 있는데 아무것도 본 것이 없다. 항상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하다. 어떤 일을 결정짓지 못하고 정신없이 분주한 생활을 하다 보니 필요한 것만 보게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한 행동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분주해도 여유는 순간마다 찾아오는데 잡으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사물을 자세히 보면 묘한 기쁨과 쾌락을 얻을 수 있다.

작품은 작가의 정신세계가 추구하는 것을 눈의 호기심을 위해 재현하는 것이다. 눈은 작가의 정신세계의 일부 또는 전부가 반영된 작품을 보는 것이 된다. 예술성은 작가의 정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아름다움은 오직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작품에 기울이는 관심으로 드러난다.

 

서귀포 앞바다

 

폭설이 내린 뒤 하늘의 기척은 말쑥하고 아름답다. 버스를 타고 중문에 왔다. 바닷가 기암절벽이 조금씩 무너진 자리를 보고나니 마음이 내려앉는다. 기온은 따뜻하지만, 파도는 크게 일렁인다. 얼굴을 때리는 바닷바람은 뼛속까지 한기가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외투의 옷깃을 세운다. 해변의 모래는 스펀지같이 푹신하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자국이 찍혀다 이내 사그라진다. 희고 길게 뻗은 햇빛이 구름을 가로지르며 바다 한가운데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길을 걷다가 길을 잃었다. 바람이 온몸으로 세상을 흔들리게 만드는 동안 태양도 온몸으로 세상에 빛을 뿌리고 있다. 서귀포 앞바다 가를 지나가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훔쳐보고 있다. 멋들어진 호텔과 쭈뼛쭈뼛 서 있는 워싱턴 야자수가 누가 지나가나 눈길도 주지 않고 몰래 쳐다보고 있다. 이런 곳을 내가 지나가고 있다. 비로소 세상을 담은 바다를 들여다본다. 오늘 하루도 금세 지나간다.

오늘 하루 잘 보냈는가? 짧은 겨울 해가 서산 뒤로 저물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밤이 찾아오면 오늘도 넉넉하지 않은 마음 살피려고 달을 보며 서 있다. 모든 것이 풍족하게 넘쳐나는 세상살이도 남의 호흡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부족하게 보인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라는 속담처럼 나만의 호흡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나의 삶을 알차게 살아야 세상이 아름답다.

 

목욕합시다

 

여행은 몸으로 하는 공부다. 글씨나 숫자로 하는 공부보다 몸으로 하는 공부가 발뒤꿈치에 굳은살이 박인 것처럼 오래 기억된다. 여행할 때 사람들의 감각은 고양이처럼 예민하고 생쥐처럼 빠르게 반응한다. 특히 눈은 세상을 그저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세상의 사물을 깊게 들여다보는 눈이어야 한다. 반짝이는 두 눈빛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여행자가 풍경의 아름다움에만 심취해 있으면 하수이고, 풍경과 어우러져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으면 고수이다.

제주에서 일주일 동안 혼자 목욕을 했다.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며 비에 목욕했다. 윗세오름을 오르면서는 세상을 하얗게 만든 눈으로 목욕했다. 해안가를 걸으면서 몸이 날아갈 듯한 바닷바람에 목욕했다. 해가 뜬 한낮에는 따뜻한 햇볕에 목욕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어서 제주 오셔서 같이 목욕 안 하시렵니까? 올해가 힘들다면 내년에 꼭 함께 목욕합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