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청소기로 미세먼지를 흡입한 후 물걸레로 깨끗하게 닦아내고 싶다. 능선에서 도심의 아파트를 바라다본다. 한정된 토지를 공유하며 허공에 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소공포증은 없을 것이다. 공간을 찾아 늘어나는 회색의 도심 고층아파트보다 점점 줄어드는 너른 들녘의 휑함이 더 눈에 들어온다.

 

숲 향기

 

오늘도 날렵한 산꾼처럼 장시간 길 없는 숲을 해치고 다닌다. 내가 걸어 들어온 숲에 자연이 숨죽이며 깨어나고 있다. 내 시선은 나뭇가지 사이의 허공을 향하고 있지만 내 평화로운 마음은 숲속을 향해 열려 있다. 마음으로 자연을 느껴본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연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

숲에는 나무 하늘엔 흰 구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날마다 새로워진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좋은 향기가 난다. , 낙엽, 나무 향기에 취한다. 속살을 다 드러낸 나무뿌리를 보고 마음이 상하기도하지만, 동물 발자국이나 분변을 보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벗을 본 것처럼 반갑기만 하다. 산에는 여러 존재가 다채롭게 서식하고 고유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정상에 서면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평온해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화를 시작한다. ‘대지가 너무 메말라 가는데 비를 내려 주시겠어요?’ 하늘이 대답한다. ‘비가 오면 추위가 찾아올 텐데 헐벗은 산이 감기라도 걸릴까 봐 걱정이야.’ 자연은 온몸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비를 피하려고 우산을 드는 건 사람밖에 없다.

 

들어서다

 

내가 지나간 자리, 눈에 잘 띄는 나뭇가지에 빨간 끈을 매어 놓는다. 구봉산 능선길을 놔두고 깎아지른 능선 암벽 밑으로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돌너덜 위에 썩지 않고 쌓인 낙엽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자니 여간해서 속도가 나지 않는다. 사람 발자국 없는 곳이지만 야생동물이 이동한 흔적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 흔적을 따라 걸어갈 때면 고마운 마음에 발을 살포시 올려놓게 된다. 그 옛날, 숲속을 지나간 흔적은 이내 길이 되기도 한다.

산은 그저 견딘다. 더워도 견디고 추워도 견딘다. 꽃이 져도 견디고 잎이 떨어져도 견딘다. 바람에 나무가 꺾이고 넘어져도 견디고 암벽이 갈라져 암석이 떨어져도 견딘다. 아무 말 없이 견디기만 하는 산이 안쓰러워 오늘도 산을 찾아 위로의 말을 전한다. 소나무 그늘에 홀로 붉게 물든 단풍이 있다. 산의 활엽수 나무는 대부분 잎을 다 떨구었는데 외로이 홀로 서서 하늘을 향해 일인시위 중이다.

나무가 나무를 때린다. 바람이 세게 불기라도 하면 큰 나무의 가지가 휘청거리며 작은 나무의 얼굴을 때린다.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바람결에 취해 자꾸 따귀를 때린다. 가끔은 큰 나무의 그런 행동을 말려도 보고 타일러도 본다. ‘같이 잘 지내야지라고 말은 하지만, 바람이 부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라 내 마음만 애가 탈 뿐이다. 세상을 사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겨울이지만 바람을 맞고 싶을 정도로 더운 한낮이다. 바람이 불어오자 즐거운 세상 소식을 들은 것처럼 입꼬리가 올라가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높이 올라야 더 멀리 볼 수 있기에 가파른 암벽 능선을 과감히 기어오른다. 솟구쳐 흐르는 땀 줄기가 식어 한기를 느낄 때까지 노루벌을 바라보며 서 있다. 산에 오면 언제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다가온 겨울이 부끄러워 홍조 띤 잎으로 어색하게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본다. 노루벌을 흐르는 물소리에서 힘겹게 한해를 살아온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섞여 있다. 차가워진 수온만큼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큰소리로 외쳐본다. ‘조금만 더 힘내자고요!’

 

 

더 많은 경험을 하려면 여행을 떠나는 것이 가장 좋다. 나중에 떠난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절대로 못 떠나게 된다. 생각했다면 무조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감정의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보이는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돈은 경험을 사는 데 써야만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아무튼

 

공기가 차갑다. 해가 떠서 세상을 눈부시게 비추는데 바람이 불어와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하늘이 파랗다. 아무튼, 하늘이 파란 건 좋지만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갖는 건 싫다. 엄청 조용한 아침이다. 아침의 조용함은 자연 속에서밖에 있을 수 있는 조용함이다.

느슨해진 계절을 즐기는 가을이다. 가을 단풍의 색채는 눈을 만족하게 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새벽에 내린 안개비가 먼지를 뒤집어쓴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 버렸다. 아침 햇살이 자작나무숲을 비출 때 오랜만에 나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 기분을 아는가? 신선한 공기를 오감으로 느꼈을 때 전해지는 감각의 떨림이 좋다. 자작나무숲을 바라보는데 어느 필터가 필요하겠는가? 순수한 아침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만이다.

바람은 한쪽으로만 불지 않는다. 바람결에 자작나무의 몸짓이 만든 청량한 소리가 들려온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똑같은 소리는 하나도 없다. 소리의 파동이 미세하지만, 차이가 있다. 감각이 무뎌져 가는 요즘, 받아들려고 노력하니 다시 거짓말처럼 감각이 살아났다. 영롱한 햇빛이 지면을 내리쬐고 있다. 눈을 뜨니 눈부시다. 너무도 강렬한 빛이라 태양과 맞서길 거부한다. 고개를 숙여 항복을 선언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아주 가끔 그런 순간이 나를 압도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 그렇다. 강렬한 햇빛을 받은 자작나무 흰 나무껍질이 거울처럼 빚을 반사하여 내 몸을 비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무대 위 가수처럼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방향을 잃은 여행자처럼 한동안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루아침에

 

계절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제까지는 녹음이 짙은 나뭇잎에 불과했는데 하루아침에 빨간 사과처럼 발그레하게 단풍이 들었다. 그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지. 기쁨은 찰나의 순간에 느끼게 된다. 내가 단풍을 갈망하기에 진정으로 자유롭게 갈망하기에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숲을 물들인 것이다. 나무가 만든 단풍은 세월의 흐름과 같이 조금씩 변화하는 삶의 예술 작품이다.

나는 바다만큼 산도 좋아한다. 여름밤 모래 해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아 파도가 만들어낸 물의 속삭임을 듣곤 한다. 가을 낮 단풍든 우듬지 나뭇잎이 바람과 함께 산중 춤판을 벌이면 나무 아래에서 하염없이 혼자 서 있곤 한다. 파도와 같이 나무도 귓속말로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누가 더 좋은데.’바다에는 모래와 파도가 있고, 산에는 야생화와 나무가 있다.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언제나 일상을 벗어난 느낌이 든다. 일상을 벗어나는 것은 언제나 멋진 일이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 좁은 곳에서 살았다. 세상에 나가기 위해 나는 지금의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드넓은 세상에 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심신의 역량을 최대치로 키울 보다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여행은 적어도 넓은 세상으로 가는 하나의 통로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을은 짐을 꾸리고 여행을 떠나기에 아주 좋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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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가장 드문 월요일에 계룡산을 찾곤 한다. 계룡산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은 삼불봉이다. 삼불봉에 서서 한참 동안 주변 풍광을 살펴본다. 봄엔 생명의 기운이 돋아나고 여름엔 녹음으로 가득 차고 가을엔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겨울엔 헐벗은 가지에 눈 코드를 입는다.

계룡산의 매력은 많은 조망에 있다. 곳곳에 숨어 있는 바윗덩어리들은 험준한 산맥으로 시선을 확장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있다. 높은 바위에서 내려다볼 때 불쑥 솟아오른 굴곡진 능선, 주름치마 같은 산맥의 주름, 저수지를 둘러싼 황금 들판은 계절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게 만든다.

계룡산의 또 다른 매력은 계절감이다. 봄의 노란 생강나무꽃이, 여름의 푸른 소나무 솔잎이, 가을의 청량한 은선폭포 물소리가, 겨울의 하얀 운해의 관음봉이 산을 찾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산은 매일 조금씩 변해간다. 변화는 관심을 가지고 볼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산의 나무는 올해도 나이테를 하나 더 만들었다.

 

나는 산꾼이다

 

봉우리든, 나무든, 암석지든, 새들이든, 꽃이든 숲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애정을 갖는 사람이다.

자연은 언제나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좋아하는 숲은 가식적 포장이 없는 세월의 흐름을 몸소 보여준다.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암석,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울창한 나뭇가지, 비가 오면 큰 소리로 울어대는 폭포의 비명 등을 볼 수 있다. 누구나 똑같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보다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특이한 아름다움에 더 관심을 가진다.

숲속 작은 오솔길에 해가 비추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며 해를 맞이한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수풀 사이로 기웃기웃 수줍게 해바라기 하는 구절초가 화들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숲속 바위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물의 흐름은 알지 못한다. 굽이굽이 흘러가면서 이끼들이 들러붙은 바위에 부딪힌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흩어졌다가 물은 다시 흐른다. 흐르는 물은 손으로 움켜쥘 수 없지만, 손바닥을 모으면 담을 수 있다. 한번 흘러간 물은 긴 흔적을 남기면서 빠르게 숲속으로 사라진다. 여전히 물은 흐른다.

 

들어서다

 

벌써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풍경보다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좋다. 조촐한 풍경 속에는 어딘가에 예술적 미학이 있다. 산이 양팔을 벌려 껴안듯 자리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늘이 하늘이고 산줄기가 산줄기이고 땅이 땅인 자리에서. 하늘과 산줄기와 땅이 경계처럼 구분되기보다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맞닿은 곳에서 소통하고 싶다.

자연의 품인 산을 난 자주 찾고 있다. 도시 생활에 피곤함을 느낄 때 아픈 상처를 치료하러 산에 들어선다. 세상이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업신여기고 외면해도 자연의 품인 산은 절대로 나를 외면하지 않는다. 오늘은 산에서 숨을 쉬고 상처를 치유한다.

처음엔 아는 만큼 보였지만 지금은 느끼려고 노력한 만큼 자세히 보인다.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우연히 과거의 산과 만나 하나의 완전체가 되었다.

 

여름이 지나면 어김없이 가을이 온다. 당연한 자연의 순리다. 조석으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추석을 보내고 다시 서대산을 찾았다. 여름이 그려 놓은 짙은 녹음 위로 가을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늘로 뻗은 가지에는 생명의 기운을 가득 담은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눈으로 보는 세상은 차갑고 단편적인 모습이지만 마음으로 보는 세상은 따듯하고 휘황찬란한 모습이다.

 

10월의 진달래꽃

 

하룻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시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흐른 듯 여름이 초겨울로 바뀌어 있었다. 여름에서 겨울로, 순식간에 세월을 잡아먹을 것 같은 수상한 10월 중순이다. 새벽만큼 기온은 내려가지 않는다. 움츠렸던 세상도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능선을 타고 오르는 발걸음이 무겁다. 나뭇가지를 흔들며 불어오는 찬 바람 속에 희미한 봄의 꽃향기가 느껴진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핀다. 진달래꽃이다. 진달래꽃이 피었으니 곧 여름이 시작된다는 건가? 추위가 물러가고 더위가 온다는 의미인가?

나는 서대산 암벽 밑에 우두커니 서 있다. 옛길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결국 옛길은 흔적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오소리 등이 다닌 동물 길만이 급경사 사면에 완만하게 이어져 있다. 그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깊은 산 속 계곡의 암반 위로 투명한 액체가 줄지어 쏟아진다. 음침한 분위기 속에 흐르는 폭포수의 소음이 낙엽 썩은 냄새를 잊게 만든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 숨을 깊게 들이쉰다. 참 이상한 현상이다. 암벽으로 둘러싸인 곳인데 곳곳에 암벽을 타고 폭포수가 흐르고 있다. 눈앞의 암벽은 나를 움츠러들게 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암벽 앞에서는 차가운 바람만큼 내 마음도 냉랭해지고 만다.

 

산속을 헤매는 이유

 

언젠가부터 숲은 생명을 잉태한다. 호흡은 거칠어지고 가시에 찔려 피가 나기도 한다. 부지런히 숲속을 헤매는 것에도 가속이 붙는다. , 열매, 녹음, 단풍, 버섯, 폭포 등 형태는 다 제각각이지만 생명력을 가진 모든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숲이 품고 있는 생명을 보고 있노라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나는 늘 책과 더불어 산을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다. 겨울과 봄에는 산으로 여행을 다니고, 여름과 가을은 주로 책을 읽는다. 계절이 바뀌어 세상이 흥분의 도가니에 젖어 있을 때마다 나를 성장시키는 일에 전념했다. 내가 산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소중한 생명의 예쁜 몸짓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하늘의 뜻이지만 너무도 일찍 겨울이 찾아오는 것이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처음부터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없다. 경험을 통해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많이 안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이 많은 것이다. 경험이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겪은 체험이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것이 아니다. 경험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이다. 앎의 활용은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잘하느냐, 잘못하느냐를 결정한다. 앎의 활용을 잘하는 쪽으로 힘쓰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경험의 축적은 언제나 소중하다.

 

여행은 여행 경험의 여부에 따라 빈도가 달라진다. 그동안의 여행 경험은 자신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고 다음 여행에 꼭 필요한 새로운 동기를 부여했다. 여행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이며 여행이 없다면 진정한 삶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행은 삶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맛있는 음식과 같다. 여행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질병의 만병통치약이다.

새로운 구상은 일상의 공간을 벗어난 휴가지에서 일어난다. 휴가지에서는 내 인생이 새롭게 전개될 것이다. 휴가를 즐기는 동안 기분 좋고 부드러운 흥분을 경험하게 된다. 드넓은 바다와 석양이 만들어낸 빛의 오묘함을 보고 한낮의 구름 없는 새파란 하늘을 가만히 바라본다. 휴가는 인생의 살아 숨 쉬는 발자국이며 살아있음, 여유와 기쁨을 의미한다.

 

혼자 놀기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제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무작정 걷는다. 마음에 드는 한적한 장소에 텐트를 치고 나만의 공간을 구축한다. 여행은 예고도 없이 불쑥 새로운 장소에 나타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어둠이 사라지고 해가 뜨면 지난날의 발자취가 인적 없는 해변에 뒤섞여 있다. 속이 다 비칠 정도로 맑은 바다는 솔솔 부는 바람에 수줍어하며 잔잔한 파도를 만든다. 해변을 맨발로 걸으면 일렁이는 파도처럼 자신을 숨기려고 모래는 유난히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지른다.

나는 텐트 밖으로 액자 같은 구름을 보고 있다. 길고 넓게 펼쳐진 솜이불 같아서 그 위에 눕고 싶다. 구름을 보고 있으니 동심의 세계로 돌아온 것처럼 즐겁다. 이게 백패킹을 하는 이유이다.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 구름이 하늘을 자유롭게 떠다니듯 나도 그렇게 흘러가면서 이 시간을 즐기면 된다.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면서 느긋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외로움을 좋아하고 즐기는 법을 알고 있다. 꽃이 해를 향해 방향을 돌리는 것처럼 나는 원래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서 여행을 떠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일상을 보낸다.

 

가을 남자

 

해가 떠 있으면 더위를 못 견디어 그늘을 찾고 해가 지고 바람이 부채질을 하면 옷을 겹쳐 입게 된다. 긴 머리카락이 흩날리듯 바람은 흘려보내면 되는데 내 마음은 갈 곳 잃어 방황한다. 계절은 늘 바뀌는데 유독 가을을 타는 이유를 모르겠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부니 이젠 몸마저 춥다.

나는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에 나섰다. 붉게 타오르는 석양이 고요히 바다를 내리비추고 있다. 높은 곳에서 노을 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무겁게 짓눌려 있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며 평온함이 찾아온다. 밝음이 사라지니 야심한 시각처럼 괴괴한 적막감이 흐른다. 저 멀리 어둠을 밝힌 불빛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밀려온다. 지금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욕망은 불꽃과 같이 뚜렷한 형태를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부는 날처럼 불꽃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크게 밝아지거나 커질 듯 사그라진다. 보드카에서 나는 술향기가 좋으니 어둠이 짙어갈수록 술향기도 짙어진다. 어디에서 부는 바람인지 모르지만 온종일 날아갈 듯 바람이 세다.

 

행복이 시간을 멈추게 하지는 않는다. 56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번 여행은 많은 흔적을 남겼다. 비박 지에서의 하루가 모여 제주 백패킹 여행이 되었다.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었다. 제주도의 자연은 어느새 가을옷으로 갈아입었다. 곧 추위가 시작되는 겨울도 찾아올 것이다.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난 대단한 일을 해냈다.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다짐하지만 나는 향수에 젖어 다시 제주 백패킹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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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잘 하는 게 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미지의 공간으로 불시착한 내 모습을 상상한다. 난 편안함 속에서 늘 새로운 장소를 갈망한다. 나는 원래 집에 있기를 좋아하지만, 그 시기에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려고 항상 장소를 물색 중이다. 내 인생에서 여행의 꿈은 늘 그렇게 자리한다.

 

기차 여행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간다. 내가 탄 객실에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기차는 다른 객실의 사람들을 태우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시 출발한다. 아침 햇살에 밝게 빛나는 시골 풍경은 기차가 달릴수록 빠르게 사라졌다가 이내 느리게 나타나고 있다. 창밖 풍경은 온통 녹색으로 뒤덮인 시골 풍경이다. 기차 여행을 꿈꾸던 지난날의 젊은 시절이 꿈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옅은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날, 늦여름의 더운 숨결이 불어온다. 불국사의 석교나 석문은 고통과 전쟁, 행운과 번영 등 모든 것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하루의 시간대나 날씨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게 느껴진다. 나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지냈기에 그들의 소리 없는 몸짓에 더 시선을 기울인다. 고통과 슬픔을 이겨낸 그들은 말한다.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보면서 귀 기울여 내가 말하는 소리를 들어봐

나는 즐거운 떠돌이다. 낯섦을 음미하면서 즐겁게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나는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장소에서도 한걸음 뒤로 물러나 진지하게 즐거움을 만끽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자가 훌륭한 방랑자이다. 나에게 방랑은 가장 큰 즐거움이자 죽을 때까지 함께 하고 싶은 소중한 친구이다.

길은 장소를 이동할 수 있는 땅 위의 공간을 말한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걸어 다니는 공간에 나와 다른 사람들의 흔적이 뒤섞여 있다. 곧게 뻗고 시야가 뻥 뚫린 넓은 길을 걷는 것보다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아무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며 떠도는 것이 좋다. 골목길의 매력은 좌우로 조금씩 꿈틀거리며 나아간 길을 따라 무한정 옆길로 샐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름이 만들어낸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골목길은 우리의 숨은 명품 길이다.

 

밤의 야경

 

어둠의 그림자가 동궁과 월지 사이를 감돌고 있다. 나는 해가 지기 전에 월지 인근을 어슬렁어슬렁 거닐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718, 동궁과 월지의 조명이 켜졌다. 더운 여름날 저녁 풍경으로 이보다 매력적인 아름다움은 없을 것이다. 월지에 빠진 동궁의 그림자는 참으로 신비스러운 풍광이다. 방금 이곳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으며 야경을 즐기고 있다. 야경을 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이곳의 모든 것은 어둠과 불빛이 융화된 듯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숱하게 많은 여행을 다녀도 결국 남는 건 여행의 추억뿐이다. 첨성대를 밝히는 조명을 제외하고 주변은 밤의 어둠에 장악되어 있다. 유구한 역사가 일곱 가지 색처럼 자연스럽게 내 앞에 흘러간다. 새로운 역사가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새롭고 밝은 인생이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행복으로 가는 여행

 

나는 종종 시간에 대해 고민한다. 인생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시간여행을 의미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특별히 나를 위한 시간은 많지 않은데, 시간의 흐름이 너무 빨라지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떠나보낸 슬픔은 삶이 무한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세월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행복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즐거운 이야기가 생겨난다. 즐거운 이야기가 생겨나는 그 길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나만의 고민거리를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갑작스럽게 접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는 여행이다. 여행은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한 활동이다. 여행의 길은 세월의 길이만큼 길지 않지만, 시간에 대한 새로운 체험이다.

 

 

여행은 여행을 떠나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짐은 단출하지만, 실속 있고 가벼워야 한다. 여행은 낯선 장소의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어디를 갈지 정하지 않아도 늘 새로운 길과 만나게 된다. 여행의 가치는 여행에 저당 잡힌 시간만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행자의 삶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더우면서 시원한 순간

 

장마철 하늘은 온종일 잿빛 구름이다. 요즘 날씨가 왜 그런지 궁금하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같이 두꺼운 잿빛 구름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새벽엔 비가 오고 낮에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다 소나기를 퍼붓는다. 여름 날씨는 내게 어리광을 부리는 듯하다. 소중한 것을 주머니 깊숙이 숨겨둔 어린아이처럼.

녹음이 한층 더 짙어진 메타세퀘이어 길을 걷는다. 무성한 가지가 만들어낸 그늘은 도시의 활화산 같은 열기를 차단해주고 있다. 맴맴 맴맴 당차고 길게 매미가 울어댄다. 천적을 피해 오랜 세월 숨어 있던 매미가 딱딱한 껍데기를 깨고 자유의 함성을 쉼 없이 내지른다. 내 가슴속에도 뜨거운 피가 휘도는 느낌이다.

자연은 누군가를 더 좋아하지 않고 세상 만물을 공평하게 대한다. 햇빛이 구석구석 빠짐없이 비추는 것도 누군가를 더 좋아하거나, 누군가를 더 싫어하는 차별은 없는 것이다. 자연은 안락함과 편안함을 제공하는데 사람만이 자기 분수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의 무게

 

비 내리는 숲에는 물을 머금은 이끼가 있다. 이끼는 무질서하게 얽혀 있고 나름의 기하학적 무늬를 이루고 있다. 세월이 만들어낸 이끼의 진한 초록색이 돌에 달라붙어 넓은 초원을 이루고 있다. 초원에 자리를 잡은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허공에 떠다니는 듯하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분다. 습도는 점점 높아만 간다. 낮의 햇살은 먹장구름에 갇히고 곧 비가 쏟아질 듯 후텁지근하다. 얼굴에 땀 줄기가 흐르면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시원한 곳을 찾아 피서를 떠난다. 하늘은 폭포수처럼 비를 쏟아내고 있다.

비가 들이친 자리에 빗방울이 맺혔다. 빗방울이 더해지는 순간 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빗방울처럼 오래된 기억들도 어느 순간 맺혔다가 스르륵 사라진다. 빗방울처럼 기억은 층층이 쌓여 흔적만 남겨 놓고 사라지고 추억을 가슴에 새길 뿐이다.

최대한 숨을 크게 들이쉬려고 노력했다. 공기는 생각보다 훨씬 비릿한 냄새가 난다. 땅에서 불쑥 솟아오른 듯, 형제바위 사이로 보이는 세상은 호수의 물안개처럼 잔잔하게 얼어붙은 안개를 하늘로 빨아들이고 있다. 비가 내리면서 햇빛조차 비치지 않는 푸른 숲은 이른 아침의 호수를 연상케 하고 있다.

 

걷고, 보고, 찍고, 사색하기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을 견뎌내면 소나기가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듯 삶의 쉼표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비록 짧은 국내 여행이지만 낯선 장소에서 만나게 될 모든 것이 색다른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다. 걷고, 보고, 찍고, 사색하는 동안 여행지를 명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방랑벽인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여전히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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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은 즐겁다. 목적지까지의 이동 시간이 길더라도 여행 일부이기에 순간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주로 숲으로 여행을 떠난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만족감보다 오르는 과정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낀다. 산 정상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산속을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는 것에 더 매력을 느낀다.

 

다시 찾은 계룡산

 

마음 내키는 대로 슬슬 걸었다. 자연은 그 자체가 가장 아름다워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울창한 숲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천정골 계곡에서 신선이 되어 유유자적 노닐고 있다.

숲에는 물이 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처럼 바위로 떨어져 산산이 흩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짙어지듯 그 물소리가 더 짙어진다.

숲속을 걸어 다니면 많은 소리가 들린다. 메마른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의 청량함을,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가지의 시원함을,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의 멋짐을, 최고의 시간이고 최고의 순간이다. 나비는 오늘 아침 정말 상쾌하지 않니? 이리저리 풀 위를 날아다니는 게 너무 근사한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갓난아기의 천진난만함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 것 같은 시간이다.

 

공기의 움직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뭇가지의 흔들림으로 공기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비록 장벽이 있더라도 공기는 구부러져 흐른다. 공기는 꼭 직선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공기가 지나간 자리에 엄청난 고요가 찾아온다. 숨소리가 그렇게 큰 소음일 줄 미처 몰랐다. 공기의 움직임을 우리는 바람이라 부른다. 센 바람과 마주하지 않으면 공기의 흐름이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없다.

하늘은 왜 파랗게 보이는 걸까? 공기 알갱이들이 태양에서 오는 모든 빛 중에서 파장이 짧은 파란빛을 가장 많이 산란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기가 없는 달은 하늘이 검게 보인다.

같은 산이라도 해도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산의 모습은 달라진다. 계절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여 바라보면 계절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언제나 맑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좋은 곳이 된다.

구름은 왜 하얗게 보이는 걸까? 구름은 크고 작은 물방울로 이루어졌고 모든 색깔은 빛을 발산시킨다. 구름에 반사된 모든 빛이 섞여 하얗게 보인다.

능선을 타고 넘는 골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땀에 젖은 온몸의 세포를 일깨우기 충분할 정도로 계곡의 시원함과 능선의 뜨거움이 함께 노란 생명의 꽃향기를 실어왔다. 꽃이 피어 단 하루밖에 가지 않는다는 원추리. 마른 땅 위에 무릎을 꿇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계룡산에서 원추리를 볼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

 

내 맘대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변하고 더욱 단단해졌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명상하고, 공부하고, 운동한다. 모든 행동이 다르게 보이지만 똑같은 목표를 위해 힘쓰고 있다. 나의 성장을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서 오늘도 내 맘대로 노력 중이다.

절실하게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절실함이 더해질수록 희망이 커져 더 고통스럽다. 절실함에 걸맞은 노력이 필요하다. 한 발짝 한 발짝 노력이 더해지면 소복소복 눈이 쌓이듯 내가 희망하는 곳까지 닿을 수 있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조급하게 행동하지 마라. 절실함에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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