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야성의 부름 - 2월 부산여행

나만의 글쓰기/여행이야기

by 배고픈한량 2022. 3. 8. 13:57

본문

음악을 듣던 나는 책으로 눈을 돌렸다.

책꽂이에 두서없이 쌓여둔 책들의 제목을 훑어내렸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에밀레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등이 눈에 들어왔지만, 오늘따라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는 두꺼운 매트가 깔린 탁자 옆으로 갔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다섯 권의 책들이 놓여 있었다. 전기장판이 켜진 매트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손을 뻗어 책들을 한 권씩 훑어보았다.

 

 

그중 책 한 권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책을 손에 들고 다시 한번 제목을 살폈다.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이다. 나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노안이 찾아온 눈동자에 선명한 글씨가 펼쳐졌다. 무언가에 홀린 듯 이불 속으로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나는 책에 빠져버렸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부르르 떨렸다. 가끔 내쉬는 호흡과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책을 읽는 동안에 나를 휘감은 흥분은 내 얼굴에 홍조를 띠게 했다.

 

 

야성의 부름은 벅이 주인공이다.

벅은 늑대 개다. 미국 남부에서는 인간의 사랑을 받던 개였다.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광풍으로 하루아침에 썰매 끄는 개로 팔려 알래스카로 떠나게 된다. 가혹한 매질 속에 생존을 위한 처세술, 강자가 되기 위한 싸움기술 등을 배우게 된다. 그 과정에 자신을 부르는 자연의 소리를 듣게 된다.

벅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벅이 처한 가혹한 환경은 인간이 사는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은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지 말고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계를 뛰어넘어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 나가야 한다.

 

 

나는 모험과 여행을 즐긴다.

오늘 오후에 부산에 왔다. 부산에 여러 번 왔었지만, 동래구에서 숙박하는 건 처음이다. 이번 여행은 도심 번화가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 속에서 지내야 한다.

나는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

잠잘 곳은 정해졌으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금상첨화다. 음식은 여행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이다. 나에게 먹는 것을 빼놓는 여행은 상상하기 힘들다.

 

 

부산에서 8끼를 먹었다.

곰장어, 돼지국밥, 회정식 코스, 삼겹살, 호텔 조식 등. 음식은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반드시 입맛을 돋게 만드는 요소와 함께해야 한다. 그 요소는 술이 될 수도 음악이 될 수도 있다.

명심해야 한다.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모험과 여행을 즐기듯 음식을 즐겨야 한다. 한계를 뛰어넘을 때까지 먹고 마셔야 한다. 술에 취하듯 음식에 취해야 한다.

 

 

또 하루가 밝았다.

하루에 아침은 두 번 찾아오지 않는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내게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비록 나는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30분이 지났다.

금성산 자락 옥련암에 왔다. 차는 인근의 아파트 건물 앞 빈 공터에 세웠다. 등산화를 신고 천천히 산을 올랐다. 많은 사람이 산을 찾고 있다. 도심 인근의 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산이 메말랐다.

바람에 휘날리는 건 희뿌연 먼지였다. 아름드리 소나무의 뿌리는 땅 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등산로는 훼손이 심해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양심도 메말랐다.

사람의 발길이 닿은 산 곳곳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눈곱만한 도덕심도 찾을 수 없었다. 생활 쓰레기, 음식물, 과일 껍질 등이 숲의 민낯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가본 산 중에서 가장 더러운 산이었다.

 

 

더는 안된다.

산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산을 이대로 버려뒀다가는 다시는 산의 기능을 회복할 수 없다. 이곳에 온 목적이 하나 있다. 내가 사흘 동안 이 산을 헤매고 다닌 이유와 같다.

나는 산에 대한 도덕적 신념을 갖고 있다.

나의 신념은 확고부동하며 살아있는 산 그 자체다. 산속의 나무, , , 곤충 등과 함께 있을 때의 청량함이 좋다. 산과 공존하는 조화로운 삶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 내디뎌 본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