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년 전 사월 어느 봄날, 오래 묵은 빚의 이자라도 갚는 심정으로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나들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는커녕 늘 마음으로는 죄인이다.
유성 나들목을 지나 자연스럽게 우회전을 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대전 IC에서 국도로 길을 잡았다. 왜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흑석리를 지나고 우명동을 지나면서 길은 논산 벌곡으로 접어든다.
"진산 가려고?“
"어떻게 허다 보닝께 이리루 왔구먼!“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자주 다니던 드라이브 코스였지만 꼭 우연만은 아니었다. 왠지 모를 끌림으로 차는 자꾸만 고향 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매년 봄날 하루쯤은 시간을 내어, 들로 혹은 산으로 쏘다니며 나물 사냥을 하곤 했었다. 국수딩이든 벌금자리든 냉이든 달래든 돌미나리든 돌나물이든 취나물이든 두릅순이든 다래순이든 때론 산부추나 도라지나, 우리에겐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루 종일 함께하며 웃고 떠들고 힘들다고 투정하다가, 저녁 무렵 나름대로 어렵게 얻은 노획물을 풀어놓고 소주 한잔을 기울이면 족할 일이었다.
덕곡리 도산리를 지나고, 행정리 두지리를 지나 묵산리에 접어든다. 접바위 지나 을음실, 그래 고향이다. 그렇게 이년 전 고향 땅을 걸음 하였다.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을음실, 깊은 내력은 알 수 없으나 뫼 산자가 셋이요, 새가 우는 마을이란 이름을 가진 것이 내 고향임은 변함이 없다.
백마가 끄는 수레가 개울을 건너는 날, 급히 몸을 피한 물비늘을 찬란하게 앉고 도는 햇살의 눈 부심이 사는 땅. 더위에 지친 각다귀들이 잠시 쉬는 밤, 소금밭처럼 하얀 별 무리를 이기겠다고 그 여린 빛을 뽐내던 반딧불이가 살던 땅. 그런 삶터가 을음실이다.
을음실은 그런 터였다. 진산 읍내에서 문우고개를 넘어서고 심방골을 지나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옥순이가 나온다. 신작로에서 보면 왼쪽의 산기슭이 옥순이다. 어린 기억으로 보면 그곳에서 고향의 삶터가 시작된다.
옥순이에는 구백 평쯤 되는 밭이 있었다. 어린 시절 동생을 업고 엄니 젖을 먹이러 다니던 나름 고단했던 기억, 어린 아들의 넉넉한 시험성적에 고구마 가득한 지게를 성큼성큼 지고 가시던 아버지의 첫 웃음 짓던 기억 그리고 늦은 오후 무렵 비탈밭에 지친 엄니가 풀린 다리를 이기지 못해 밭 아래로 구르셨던 전설 같은 기억들이 옥순이의 편린들이다.
옥순이를 지나면 쪽다리가 나온다. 미루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던 쪽다리는 마음에 터다. 어느 봄 늦게 집에 오던 날, 미루나무는 그 큰 몸에 하얀 옷을 걸치고 저 멀리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순간 뒷머리가 쭈삣섰다. 분명 귀신이었다. 허나 망설임도 잠시 이내 씩씩한 걸음을 내디뎠다. 쪽다리 양짓녘에 할아버님께서 누워 계심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쪽다리를 지나 멍미를 돌아서면 마을이 나왔다. 그래 을음실이다. 마을은 겨우 몇십 평쯤 되는 산 아래 여기저기에 집터를 꾸미고 살았다. 몇백 평쯤 되는 농토를 위해 누구의 삶터든 소박한 그런 마을이었다.
아랫말과 윗말을 지나면 옹달샘의 터 얼깅이가 나온다. 그곳에서부터 다시 농토가 시작된다. 바로 뒷짐메다. 제법 번번한 모양새를 갖춘 뒷짐메는 을음실의 곡창지대다. 그곳에 팔백 평쯤 되는 논이 있었다. 어린 나에겐 뒷짐메도 옥순이 만큼이나 멀고 고된 걸음으로만 기억된다.
도대체 세월은 무슨 마법을 부렸을까! 옥순이 비탈밭에서 다리가 풀려 밭 아래로 구르셨던 엄니의 아들은 반백의 늙은 군인이 되고, 그의 아들은 오늘 논산훈련소로 떠났다. 아무리 오래전 기억이라고 치도곤을 놓아도 엊그제의 일처럼 고향의 기억이 솟구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삶은 김과 짧음으로, 거침과 부드러움으로 그리고 찬란함과 시린 볕으로 서로 그렇게 순치하며 사는 것인가 보다.
그해 뒷짐메 끄트머리 골짜기인 채도골에 들었다. 입구에는 미나리농장이라고 쓰인 정갈한 표지판이 있었다. 평소 나물을 좋아하던 차여서 망설임의 시간도 없이 채도골로 들게 된 것이다. 얼마쯤을 올라갔을까, 아내가 소리친다.
"저게 무슨 꽃이에요?“
"뭔 꽃, 나는 못 봤는디!“
"차 좀 뒤로 빼봐요, 이쁜 꽃이 있었단 말이에요.“
"이쁜 꽃은 무슨" 기어를 넣고 천천히 후진하였다.
"저 꽃, 말이에요, 저 꽃 이름이 뭐예요?“
'아! 얼레지!‘
그렇게 이년 전 고향 땅에서 오십 수년 만에 얼레지를 보았다. 늘 지리산에서만 강원도에서만 볼 줄 알았던 얼레지를 채도골에서 본 것이다.
작년에도 채도골에 걸음을 하였으나, 늦은 걸음을 탓하며 얼레지는 꽃을 보여주지 않았다. 올해는 이미 너무 늦은 줄 알면서도 자꾸만 고향 땅이 나를 당긴다. 아니 내 마음이 이미 줄달음을 치는 걸 거다. 그렇게 조만간 걸음 해야겠다. 늦은 얼레지 핑계 삼아 채도골에 들어 짙푸른 고향의 미나리 한 아름 안고 실컷 울어봐야겠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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