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xbus 정류장, 빈

 

 

 

 

새벽에 홀로 깨어 좁은 공간의 침대에서 넓은 창문을 바라봤다. 녹색의 잎이 얼마나 무거운지 가지가 땅으로 휘어져 포물선을 그렸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떠들고 있었다. 오전 6시가 지날 때까지 침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긴바지를 입고 Flixbus 정류장으로 갔다.

오늘은 슬로바키아 수도인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날이다.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브라티슬라바는 빈에서 1시간 2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버스는 빈 공항을 거쳐 달리던 속도 그대로 국경을 지나쳤다. 어떠한 검문검색도 없었다. 이윽고 버스는 Most SNP에서 멈췄다.

 

조형물
골목계단
Most SNP 다리

 

 

 

 

브라티슬라바 성
브라티슬라바 정원

 

또 다른 나라에 발을 디뎠다.

일주일 만에 4개국이다. 낯선 곳이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은 장소처럼 여겨졌다. 눈앞에 보이는 브라티슬라바성으로 향했다. 초입 부분에 조형물이 서 있는데 Most SNP 다리건설로 사라진 시나고그 탑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성이다 보니 당연히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야 했다.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길 계단에 그늘이 져서 시원했다. 성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힘도 들지 않았다. 브라티슬라바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고 특히 Most SNP 다리가 눈에 띄었다. 성은 천천히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성 뒤편 바로크 양식의 정원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브라티슬라바 성벽마을
성 마르틴 대성당
성 마르틴 대성당 앞 광장

 

 

 

 

성에서 내려와 중세시대의 성벽이 남아 있는 곳을 지났다. 현대와 중세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었다. 중세 성벽을 걷다 보면 고딕 양식의 성탑이 있는 성 마르틴 대성당이 나왔다. 성탑은 도시방어의 요새로도 사용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었다. 내부는 엄숙한 분위기였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은은하게 내부에 퍼져나갔다.

 

구시가광장
청동 조각상

 

구시가지에 들어섰다.

많은 단체관광객이 구시가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다 보니 관광지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었다. 식당들이 영업을 시작했고 야외 테라스에는 커피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파리의 개선문과 비교하면 허접해 보이는 미카엘 문을 통해 예전 사람들은 구시가지로 들어왔다. 이색적인 청동 조각상을 마주했다면 구시가지 광장에 서 있는 것이다. 광장은 만남의 장소였고 평화로웠다. 구시가지는 작은 규모이지만 건물 사이의 골목들이 아기자기하고 특색 있었다.

 

Jasmin  식당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브라티슬라바성 밑에 있는 Jasmin 식당에 갔다. 중국 요리전문점이라 당면, 채소, 달걀, 두부를 넣은 볶음면과 생맥주를 주문했다. 중세 성벽을 마주하고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했다. 간장과 칠리소스를 첨가하면서 연신 젓가락질을 했다. 일주일 만에 매콤한 것이 몸에 들어가니 숨죽여 지내던 몸의 피들이 들끓는 듯 용솟음치고 있었다. 맥주까지 마셨는데 겨우 12.9유로 나왔다.

 

 

 

 

 

공원 의자

 

국립극장에서 Most SNP 버스 정류장까지는 공원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거진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쉼터로서 좋은 장소였다. 식당가를 따라 나무 아래 의자들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의자에 앉아 Billa에서 사 온 맥주를 마시며 포도를 먹었다. 외국에서 이렇게 한적하게 쉬고 있는 나 자신이 좋았다. 그렇게 1시간 넘게 앉아 있었고 나만 아이스크림을 안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기부터 노인까지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선 맥주를 마시는 내 모습이 더 이상했을 것이다.

 

구도심
아이스크림

 

다시 구도심을 걸었다.

빈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도 아이스크림을 샀다. 콘에 파스타치오와 브라우니 두 종류를 올렸다. 가격이 4유로인데 맥주와 포도 가격의 2배였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아이스크림이 빨리 녹아 연신 혓바닥으로 빨아 먹어야 했다. 아이스크림이 딱히 맛있는 건 아니고 여름이니까 먹는 것 같았다. 난 맥주가 훨씬 더 좋다.

 

Most SNP  다리
Most SNP  다리에서 바라본 강가와 브라티슬라바 성

 

Most SNP 다리를 한 바퀴 돌고 Flixbus를 탔다.

꾸벅꾸벅 졸다 보니 어느새 빈에 도착했다.

 

알베르티나
왕궁 정원, 모짜르트 동상
호프부르크 왕궁
성 슈테판 대성당
오레파극장

 

호스텔로 돌아와 샤워한 후 맛보기 빈 도심 여행을 떠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이동했다. 많은 서양 음악가들이 이곳을 본거지로 삼은 이유를 아주 조금 알 것 같았다. 오페라극장을 가는 도중에 우연히 발견한 Naschmarkt가 인상적이었다. 역시 시장은 꼭 방문해야 한다.

오페라극장을 시작으로 알베르티나, 왕궁 정원, 호프부르크 왕궁, 마리아테레지아 광장에서 성 슈테판 대성당까지 짧은 시간 동안 돌아보았다. 빈 여행은 내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오후 9시가 넘으니 가스등이 켜지고 도심의 상가는 하나둘 문을 닫았다. 어둠과 조명 사이에 중간 빛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빈의 밤은 그렇게 잠들었다.

호스텔 야외 테라스

 

열린 창문 사이로 새벽 청소 차량의 시끄러운 기계음이 들려왔다. 나이가 들다 보니 한번 잠에서 깨면 더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어제 휴무일이었던 Great Market Hall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전 6시부터 영업하니까 지금 나가면 딱 맞겠네.’ 슬리퍼를 신고 고양이 세수만 하고 호스텔을 나왔다.

 

Great Market Hall

 

프라하와 달리 부다페스트의 거리는 한산했다.

오전 6시부터 영업한다더니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열지 않았다. 청과류 상점과 햄, 고기를 파는 상점만이 먼저 문을 열고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주정뱅이처럼 이리저리 거닐다가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역시 커피는 아침에 먹어야 한다.

 

토카이 포도주
아침식사

 

오전 7시가 되자 하나둘 상점 문이 열렸고 내가 점찍어 두었던 상점도 문을 열었다. 카드로 드라이 토카이 포도주를 샀고 남은 헝가리 동전을 사용하려고 상점들을 기웃거렸다. 빵집에서 요구르트와 빵을 사는 것으로 동전을 모두 사용했다. 호스텔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즐거웠다. 호스텔의 야외테라스에서 요구르트와 빵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곳 호스텔에서 사람도 만나고, 잠도 자고, 음식도 먹어서 좋았다.

 

Great Market Hall

 

 

 

평소보다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다. 호스텔을 체크아웃하고 다시 Great Market Hall을 찾았다. 분주한 시장풍경이 보고 싶었다. 역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괜스레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람들을 살펴봤다. 사는 게 다 이런 것이다.

 

헝가리 국립박물관
부다페스트 거리
부다페스트 Keleti역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들린 헝가리 국립박물관, 어느 나라인지 모르지만, 단체관광이 진행 중이었다. 박물관 내부는 구경하지 않았지만, 공원같이 조성된 외부 풍경이 더 맘에 들었다.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추억을 기억하려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도심 속 평범한 모습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기차역으로 걸어갔다. 나는 이방인이라서 모든 것들이 새롭고 특이하게 다가왔다.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 순간 부다페스트에 작별을 고했다. ‘Thanks, your kindness’

 

부다페스트에서 빈 가는 길
빈 중앙역
Do step inn Hostel

 

빈역까지는 2시간 40분이 걸렸다.

역 바로 건너에 있는 Do step inn Hostel에 왔다. 온라인 체크인과 잠시 사투를 벌이고 20여 분 만에 내 공간에 들어섰다. 왜 많은 사람이 체크인을 힘들어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아고다 숙박 후기에 체크인 방법을 자세하게 올려놓았다. 처음엔 빈에서 최고로 저렴한 가격이라 걱정했는데, 이 정도 시설과 접근성이라면 가성비 최고인 호스텔이었다.

 

벨베데레 궁전

 

짐 정리를 마치고 벨베데레 궁전에 갔다.

오늘은 유난히 바람이 세게 불었다. 프라하, 부다페스트에서 감동하였던 건축물들이 이제는 그게 그 모습 같아서 빈에서는 아무렇지 않았다. 궁전을 처음 마주한 느낌도 그저 그랬다. 유서 깊은 건축물이 있는 궁전인데 동네 공원처럼 이용되고 있었다. 아무 곳에서나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쓰레기를 버리고, 잔디 말고는 궁전을 관리한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궁전 건물을 들어갈 때만 입장료를 낸다지만 궁전 전체의 관리가 너무 허술한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관심조차 없었던 클림트나 에곤 실레의 작품을 본들 뭐가 그리 좋겠는가? 단지 사진을 찍고 간다는 자기만족에 그칠 뿐이었다. ‘유서 깊다라는 말의 의미를 한참 동안 되새겨 봤다.

 

SALM BRAU, spareribs 와 맥주

 

궁전을 나와 SALM BRAU에 갔다.

야외 테이블에 앉은 후 spareribs와 맥주를 주문했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그것이 이 식당이 맛집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왔더니 바로 음식도 나왔다. 커다란 돼지갈비와 구운 감자,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돌았다.

한쪽씩 칼로 썰어 접시에 담아 감자와 함께 소스를 찍어 먹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손으로 들고 먹어야 제맛 아닌가? 당연히 손으로 들고 야무지게 뜯어 먹었다. ‘바로 이 맛 아닙니까!’ 접시에 뼈들이 쌓일 때마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모처럼 빵류가 아니 고기로 식사를 하니 포만감도 좋고 기분까지 좋아졌다.

 

Do step inn Hostel, 공용공간

 

포만감으로 충만한 배를 만지며 벨베데레 궁전을 되돌아 걸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유서 깊은 장소를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영 아니올시다가 많았다. 조금 더 쌀쌀해진 바람을 맞으며 호스텔로 돌아왔다. 샤워하고 맥주 한 캔을 마셨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여기까지.

부다페스트행 슬리핑 기차, 3층 침대

 

오늘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어김없이 일어났다.

요람 속의 아기처럼 기차의 주기적인 흔들림이 편안했다. 좁은 3층 침대라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뭐하고 시간을 보내야 하나 고민하다 와이파이가 된다는 것을 알고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인스타에 동영상을 올리고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한국처럼 와이파이 속도가 빠르지 않지만, 인터넷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객차 통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3층 침대에서 내려온 후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객차 통로의 통창으로 밖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왠지 익숙했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드넓게 펼쳐진 평야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녹색의 카펫이 세상에 깔렸고 청명한 날씨에 두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 도시락

 

아침 도시락이 배달되었다.

부다페스트에 도착 1시간 전이었다. 어제저녁에 주문한 아메리카노, 오렌지 주스, , 버터, 잼 등이 들어있는 도시락을 승무원이 가져다주었다. 2층 침대를 들어 올리고 3명이 나란히 1층 침대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역시 아침에 커피를 마셔야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제대로 들었다.

 

부다페스트 Nyugati palyaudvar역
도심거리
성 이슈트반 대성당
성 이슈트반 대성당에서 도나우강까지 직선으로 뻗은 아름다운 거리
세체니 다리와 부다 왕궁

 

오늘은 일요일이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후 알았다. 거리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차량도 거의 없었다. 방향감각을 익히려고 구글맵을 켜고 이동을 시작했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까지 걸었는데 인도가 자전거도로와 구분되어 있었다. 높지 않은 건물 사이에는 노면전차를 위한 시설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유로를 헝가리 화폐로 환전했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웅장했고 주변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장엄했다. 드넓은 광장에 서서 한 바퀴 돌아보면 그 분위기에 바로 숙연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에서 도나우강까지 직선으로 뻗은 아름다운 거리를 걸었다. 도나우강에서는 왼편으로 세체니 다리가 보였고 강 건너 언덕에는 부다 왕궁과 어부의 요새가 보였다.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까지 강을 따라 걸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유대인에게 신발을 벗게 하고 총살한 곳에 신발 60켤레의 조형물이 있었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칠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조그마한 조형물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 잊지 말고 꼭 기억하자!

 

세체니 다리
자유의 여신상
겔라트 힐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

 

부다 지역으로 갈 수 없었다.

세체니 다리로 건너려고 했는데 공사 중이었다. 에르제베트 다리까지 내려가서 부다 지역으로 넘어갔다. 일요일이라 도심에는 작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다. 치타텔라를 가려고 계단을 올랐다. 배낭을 메고 지그재그 오르막길을 계속 올랐다. 정상에 오른 순간 철망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부다페스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지만 공사 중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자유의 동상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자유의 다리가 있는 겔라트(Gellert) 온천으로 하산을 했다.

 

Pizza Manufaktura

 

Great Market Hall은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숙소 가는 길에 Pizza Manufaktura에서 피자를 먹었다. 피자를 먹는 동안 소낙비가 내렸다. 열대지방의 소나기처럼 맑은 날에 갑자기 비가 내렸다. 나도 스콜(Squall)처럼 피자를 강렬하게 먹어치우고 체크인을 하러 예약한 호스텔로 갔다.

 

Maverick Urban Lodge

 

샤워하니 살 것 같았다.

야간 슬리핑 기차를 탔고, 배낭을 메고 부다페스트 도심에서 치타텔라까지 한나절을 걸어 다녔다. 땀으로 범벅된 옷을 벗어 던지고 끈적한 몸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오후 5시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야경은 꼭 볼 것이다.

 

부다 왕궁
부다 왕궁에서 바라본 풍경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밖에 나왔다.

바람이 불어 꽤 쌀쌀해진 저녁인데 내 복장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나는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이 복장이 제일 편안했다. 걷는 건 나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호스텔이 있는 페스트 지역에서 자유의 다리를 건너 부다 왕궁까지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었다. 성은 곳곳이 공사 중이어서 성이라는 느낌보단 공사장에 관광하러 온 기분이 들었다. 거대한 투룰(Turul) 청동상만이 이곳이 왕궁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부다 왕궁은 세체니 다리와 성 이슈트반 대성당을 조망할 수 있는 야경명소다.

 

마차슈 성당
어부의 요새

 

어부의 요새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일 먼저 마주한 마차슈 성당은 후기 고딕 스타일 성당으로 대칭이 아니라는 점이 특이했다. 고깔 모양의 7개 탑이 있는 어부의 요새는 도나우강과 페스트 지역을 한눈에 내려다 불 수 있는 곳으로 헝가리 땅에 처음 정착한 7개 부족을 상징한다.

 

어부의 요새안을 걷다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야경은 그리 쉽게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시간을 보내려고 성벽 주위를 걸었다. 사람들이 사는 삶의 현장이기에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와 함께 산책하거나, 의자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삶 속에 내가 무작정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들은 그런 나를 가만히 받아주었다.

 

어부의 요새
국회의사당 야경
에르제베트 다리

 

어스름이 깔릴 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렇다면 곧 야경이 펼쳐진다는 건데, 어느 자리에 있든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오후 9시쯤 가스등에 불이 들어오고 어둠이 세상을 조금씩 집어삼킬 때 내가 보고 싶었던 야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유람선이 도나우강을 떠다니고 웅장한 국회의사당 건물은 불빛 충만한 모습을 드러냈다.

부다 지역에서 바라본 페스트 지역의 야경은 화려하진 않지만, 핵심이 있어 더 내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부다페스트의 밤거리는 옹색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호스텔로 돌아와 맥주를 마신 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의 첫날 밤이자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이른 새벽의 블타바강
댄싱 하우스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에 잠이 깼다. 오전 5시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깨는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사흘 동안 야경을 제대로 못 봐서 어둠이 장악한 정적의 프라하는 어떤지 보려고 새벽 거리로 나왔다. 하늘은 짙은 청록색이었고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는 텁텁하지 않고 상쾌했다.

 

 

 

 

 

새벽 415

대중교통이 24시간 동안 운행되나? 의문스러웠다. 조용할 거란 내 생각과 달리 도로에는 노면전차, 버스, 자동차들이 분노의 질주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내 발자국을 어둠 속에 남기며 블타바강까지 걸어갔다. 블타바강에 가까워질수록 짙은 어둠은 흰 안개와 배턴터치를 했다. 새벽 안개의 포위망을 벗어나려고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나 혼자 외로운 사투를 펼쳤다.

 

신호등
농산물 직판장 (Farmers’ Saturday market)

 

공용침실(dormitory)은 여전히 한밤중이었다.

내가 샤워하고 짐 정리를 마치는 동안 바깥은 이미 해의 세상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은 전혀 포착할 수 없었다. 오전 830분을 지나 체크아웃을 했다. 3일 밤을 편하게 보낸 호스텔을 이젠 떠나야 한다. 호스텔에 짐을 맡겨두고 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장이 서는 농산물 직판장(Farmers’ Saturday market)이 열리는 블타바강으로 향했다.

 

농산물 직판장 (Farmers’ Saturday market)

 

현지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규모가 작고 파는 물건도 한정적이었지만 시장의 정겨움이 가득한 재래시장이라 나를 즐겁게 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왔다 갔다를 반복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사는 이름 모를 빵과 카푸치노를 사서 현지인들처럼 강변에 앉아 먹었다.

아침 식사로 조금 부족한 것 같아 구운 토스트에 채소소스를 올려주는, 아마도 가장 인기 있는 빵을 줄을 서서 샀다. . 온갖 종류의 빵을 먹어보고 있지만 내 입맛에는 모든 빵이 그저 그런 맛일 뿐이다. 홀쭉한 배에 포만감 일부를 더하는 정도로 여겨졌다. 그래도 좋았다. 나는 가장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많이 걷지도 않고, 한 장소에서 충분히 휴식하며,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름 모를 곡이 연주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게 힐링이니까!

 

 

 

 

보트
도심 공원 행사

 

하늘은 나의 여유로움을 시샘했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농산물 직판장을 나와 블타바강을 따라 걸어갔다. 주말이라 어느 곳이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평일에 보기 힘든 패들 보트를 타고 블타바강을 유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각종 행사도 도심 공원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이방인이 내가 그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랄만한 일이었다.

 

Mlynska kavarna

 

다리쉼을 하려고 카페에 들어갔다.

물론 맥주 한잔 마시는 것 이외에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들어간 것이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고풍스러운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이곳 카페에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카페 종업원들이 일하면서 힐끗힐끗 나를 쳐다봤다. 관광지와 조금 떨어진 곳에만 가도 전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프라하성 가는 길
굴뚝빵으로 바라본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또다시 길을 걸었다.

프라하성에 다시 가려고 다른 길로 들어섰다. 모든 길은 올라가려는 사람들과 내려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러거니 말거나 난 체코의 굴뚝 빵을 사 들고 계단을 열심히 올랐다. 프라하성은 그야말로 사람들의 전시장 같았다. 의자에 앉아 굴뚝 빵을 먹으며 성 비투스 대성당을 동경의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30여 분을 성당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프라하성은 성이라기보다는 조그만 마을 같은 느낌이 더 들었다. ‘나만 그런가?’

 

프라하성 올라오는 길
K-remember, 분짜와 코젤 맥주

 

햇볕이 따갑다.

부채를 펼쳐 해를 가려보지만, 햇빛을 피할 수는 없었다. 무더위에 시원한 국물이 내 입맛을 자극하지만, 딱히 먹을만한 음식이 생각나지 않았다. 빵 종류는 먹기 싫고 매콤한 것이 당기는데. 태국 라면보다는 역시 시원하고 매콤한 베트남 분짜가 좋을 듯했다. 내 발걸음은 K-remember로 향했다.

시원한 코젤 맥주와 고수를 한 접시 추가했다. 분짜는 1997년 베트남에서 처음 먹어본 그 분짜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유럽 여행에 한국 음식은 전혀 가져오지 않았다. 평소처럼 현지식을 먹겠다고 다짐했는데. 여행일정이 많이 남아 있는 지금, 어떻게 견디어 낼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호스텔 야외 테라스

 

남은 체코 화폐를 다시 유로로 환전했다.

맡겨둔 짐을 찾으러 호스텔에 다시 왔다. 부다페스트행 야간열차 시간이 4시간 정도 남아 로비의 테라스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글을 쓰고 있다. 기차를 타는 순간, 체코 여행은 마무리되고 헝가리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처음엔 34일이 길게 느껴졌는데 지금 보니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언제나 여행은 하지 못한 것과 안 가본 곳이 더 잔상으로 남아 여행 내내 후회의 마음을 갖게 한다. 그래서 또 여행을 떠나는 것이겠지만.

 

프라하 중앙역, 부다페스트행 야간 슬리핑 기차

 

프라하 중앙역은 정적이 감돌았다.

부다페스트행 야간 슬리핑 기차는 3S 플랫폼에서 탑승을 시작했다. 나는 인도인 부부와 같은 객실을 배정받았는데 내가 3층 침대였다. 불현듯 오래전 인도에서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밤이 깊어 3층 침대에 눕자마자 불을 껐고 흔들리는 기차 진동을 느끼며 잠에 빠져들었다.

Wenceslas Square
천문시계
구시가광장

 

불도 끄지 않고 세상 모르게 잠들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깼는데 창밖은 이미 밝음이 어둠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오전 520분쯤 숙소를 나섰다. 한적한 오전 시간에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천문시계가 있는 구시가지 광장은 생기를 잃은 듯 고요하고 적막했다. 동영상을 찍으려고 오전 6시까지 기다렸지만, 천문시계는 조용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해골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천문시계, 틴 성모 마리아 성당, 얀 후스 동상 등을 여러 각도에서 사진만 찍었다.

 

카를교 가는 길
카를교
얀 네포무츠키 동상

 

 

 

 

카를교로 향했다.

밤의 열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도로 곳곳에 그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이른 영업을 시작하는 상점들은 분주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도시의 아침은 어느 곳이나 똑같은 분위기인 것 같다. 카를교는 결혼사진 촬영지로 인기가 있었다. 한낮의 북적거리는 카를교를 피해 이른 시간에 결혼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얀 네포무츠키 동상이 따뜻한 시선으로 신랑 신부를 바라보는 듯 했다. 소수의 관광객도 삼삼오오 사진을 찍으며 카를교를 걷고 있었다. 이른 아침의 카를교에서 30인의 성인 동상과 내가 만나 오늘 하루의 서막을 열었다.

 

페트린 언덕에서 바라본 프라하
페트린 정원

 

 

 

 

숲으로 들어섰다.

중세 신성로마제국의 거리를 벗어나면 페트린 언덕에서 프라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야 내려다볼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를 우리는 가끔 잊고 살고 있다. 조용한 숲과 정원, 멀리 보이는 프라하성, 프라하 시내의 모습이 좋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오르막을 오를 때 느끼는 육체적 고통은 이렇게 치유가 되었다.

 

카를교에서 바라본 부다성
프라하 시내
화약탑
스타버스

 

어느새 아침 햇볕이 따가웠다.

도로를 걷는데 진한 커피 향기가 내 코를 자극했다. 다시 구시가지 광장을 지나 화약탑과 마주했다. 검게 그을린 듯한 건물이 역사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 전에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체코에서 첫 커피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어제의 일들을 두서없이 생각나는 것들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몸이 경험하는 것을 글로 써두면 나중에 그게 바로 여행기가 된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스타벅스에서 있다가 점심을 먹으러 갔다.

 

K-remember, 소고기 쌀국수와 넴(롤)

 

식당 이름은 K-remember이며 베트남 음식점이었다.

어제부터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소고기 쌀국수와 야채 튀김을 주문했다. 진한 소고기 육수와 고수의 만남이 내 입맛에 잘 맞았다. 한국식 국밥은 아니지만, 빵보다는 내 입맛에 더 잘 맞는 음식이었다. 굵은 땀방울까지 흘리며 국물까지 다 마시니 배가 무척 불렀다. 포만감을 느낀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행복한 일이었나? 행복은 단순하고 일상적인 순간에서 느닷없이 찾아왔다.

 

호스텔 야외 테라스

 

오늘 오전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맥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더운 한낮에는 휴식을 취하고 오후 5시경 오후 여행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비셔흐라드
드보르자크
국립명예묘지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체코도 이상기후로 인해 날씨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다. 2시간가량 매섭게 쏟아지던 비가 멈추더니 이내 햇빛이 구름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더 뜨겁고 후텁지근하잖아.’

오후 4시가 지나 숙소를 나섰다.

부채를 손에 쥐고 걸으면서 햇빛을 가렸다가 부채질을 하다가 하면서 비셔흐라드로 향했다. 벽돌로 쌓아 올린 성벽은 왜 비셔흐라드가 고지대의 성벽인 줄 말해주고 있었다. 요새화된 성안에는 성당, 묘지, 박물관, 정원 등이 있으며 성벽에 올라서면 프라하성과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처럼 나도 성벽에 걸터앉아 먼발치의 프라하성과 시내를 내려다보며 고풍스러운 풍경에 젖어 들었다. 시원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국립명예묘지와 신전에 도착하게 된다. 체코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인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 체코 대표 화가인 알폰스 무하도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Kozlovna Apropos, 꼴레뇨와 코젤 다크 맥주

 

비세흐라드에서 내려와 블타바강을 따라 걸었다.

한두 방울씩 내리는 비를 친구 삼아 어제보다 북적거린 거리의 사람들을 피해 코젤다크맥주(Kozlovna Apropos)에 들어섰다. 다행히 대기 없이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바로 주문도 했다. ‘Koleno and dark beer please!’ 체코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꼴레뇨는 유독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이었다. 우리의 족발을 기름에 튀긴 그런 음식이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이라는데 오늘 꼴레뇨는 겉질속촉(겉은 질기고 속은 촉촉하다)였다. 껍질이 껌보다 질기고 딱딱했지만 고기는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혼자서 1kg인 꼴레뇨를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나의 식탐을 내가 잊고 있었다. 코젤다크 맥주 2잔과 함께 다 먹어버렸다. 많은 종류의 맥주를 마셔봤지만 코젤다크는 내 인생 최고의 맥주가 되었다.

 

카를교
프라하성 입구
성 비투스 대성당
스타벅스 전망대

 

 

 

 

포만감을 느끼며 프라하성으로 향했다.

날씨는 더더욱 후텁지근해졌고 경사지의 계단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오르막 계단이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때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계단을 올라 프라하성에 단숨에 올라섰다. 등산전문가라는 사실이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인적이 적어진 프라하성은 건축물의 재료 색깔처럼 을씨년스러웠다. 발걸음이 향하는 데로 정처 없이 성을 배회했다. 성안에서의 삶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성의 규모와 그 안의 건축물들의 웅장함을 떠나 갇혀 지낸다는 점이 나하고는 절대 맞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성을 빠져나와 스타벅스 인근 전망대에 오면 성벽 아래로 프라하 시내가 광활하게 드러났다. 같은 프라하지만 페트린 언덕, 비셰흐라드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프라하 거리
카를교

 

 

 

 

 

다시 긴 계단을 내려와 블타바강에 왔다.

대체 태양은 언제 지는 거야?’ 야경을 보려고 했지만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오늘도 야경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다가 구시가광장의 소란스러움을 목격했다. 시계를 보니 이제 곧 오후 9시가 된다. 재빠르게 동영상을 찍을 준비를 했다. 아홉 시가 되자 해골이 줄을 잡아당기며 종을 울리고 예수의 열두 제자가 순서대로 나왔다 들어갔다. 공연이 끝나자 구시가광장의 모든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드디어 봤네.’ 이게 뭐라고, 안 보면 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로 더위를 물리치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 내일은 34일간 숙박한 프라하 숙소를 떠나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야간 기차를 타고 떠날 예정이다. 오늘도 프라하의 밤은 영원히 잠들지 않았다.

Luma Terra 호스텔, 로비 테라스
프라하 노면전차
프라하 도심거리

 

시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한밤중인 새벽 130분에 잠이 깼다. 공용침실(dormitory)을 나와 글을 써보려고 휴게실에서 따뜻한 차(석류)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빗방울이 너른 대지 위에 마구잡이로 쏟아지듯 생각의 일면들이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흩어졌다. 정신을 집중하여 한 문장씩 써 내려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도가 높아졌고 그만큼 시간도 빠르게 흘렀다.

 

이른아침의 도심거리
철로 옆 인도교
블타바강

 

조금 일찍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체스키크룸로프로 가는 날이다. 어제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늦게 지는데도 다음날 그 해가 너무 일찍 떴다. 오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 프라하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나에게는 무척이나 이국적인 거리의 풍경들이었다. 익숙해지면 별것 아니라고 느끼겠지만 이곳에서의 4일이라는 체류 기간은 익숙해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인 것 같았다.

 

RegioJet 버스
체스키크룸로프 버스정류장
체스키크룸로프 지도

 

오전 8

RegioJet 버스는 프라하에서 출발했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편안한 버스는 아니었다. 요금은 Flixbus에 비해 싸지만, 의자 간격이 너무 좁고 안전띠는 너무 내 몸을 조여와 이동하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다. 다만 운전사의 능숙한 운전은 어떤 위협적인 느낌도 들지 않게 도로를 빠르게 내달렸다. 도로공사 중인 일부 정체 구간과 두 번의 터미널 경유로 예정시간보다 지체된 11시에 체스키크룸로프에 도착했다.

 

목재 인도교
카약체험

 

 

 

캠프장

 

나는 목적지가 달랐다.

버스를 타고 온 사람 대부분이 체스키크룸로프 시내로 향했다. 나 혼자만이 조금 떨어진 캠프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번 유럽여행의 원래 계획은 캠핑이었다. 인원 구성의 어려움 때문에 결국 혼자서 자유여행으로 오게 된 것이다. 허공에 가득한 공기만큼 아쉬움이 크기에 꼭 캠프장을 먼저 방문하고 싶었다.

한참을 도로를 걷다가 캠프장으로 들어서는 목재 인도교를 지났다.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목재 인도교에서 카약체험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캠핑하는 동안 꼭 해보고 싶엇떤 수상 스포츠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말없이 서서 그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강변 사이의 숲길을 걸어 캠프장에 왔다. 텐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도 이렇게 야영을 하면서 이곳에 머무를 수 있었을 텐데. 나무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캠프장과 블타바강 풍경을 두 눈에 넘칠 듯 담았다.

 

체스키크룸로프
자메츠카 정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 한번 쳐다보고 몇 방울 떨어지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비를 꺼내 입고 체스키크룸로프성으로 행했다. 골목을 걷다가 오르막을 올라 자메츠카 정원에 도착했다.

정원은 넓었다.

어느새 비도 그쳤다. 여백이 있으니 한결 더 여유로운 공간처럼 생각되었다. 분수에서 물장난하는 아이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잠시 그친 비가 또다시 내렸다. 정원의 큰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이곳에서는 비를 피하기에 이보다 좋은 공간은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들던 사람들이 비 그치기를 기다렸다. 나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비 내리는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겨두었다. 비가 와도 여행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순간들이었다.

 

스크라비토양식
성에서 바라본 체스키 크룸로프
해자의 곰
블타바강
늦은 점심식사

 

조금 잦아든 빗속을 그냥 걸었다.

망토 다리를 지나 스크라비토 양식의 성벽을 보면서 체스키크룸로프성으로 들어섰다. 비는 곧 폭우로 변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겠다는 나의 굳은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어느 곳을 바라보던, 어떤 기기로 사진을 찍던, 모두가 사진가가 될 수 있는 그런 풍경이었다. 성의 해자를 지키는 곰을 보고 블타바강을 따라 걸었다. 강을 따라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갈 무렵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이발사의 다리가 보이는 블타바강의 작은 카페에 들어섰다. ‘beer, please!’ 이보다 맛있는 맥주는 지금 이 순간에는 어디에도 없었다. 치즈, 올리브유 등이 섞여 있는 소스를 찍어 먹는 샌드위치를 안주 삼아 맥주를 3잔이나 마셨다.

 

이발사의 다리

 

 

 

망토다리
망토다리, 체스키 크룸로프 성과 성탑
체스키크룸로프 버스정류장

 

비는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우산은 없지만, 우비가 있으니 다닐만했다. 그러고 보니 우산은 관광객들만 쓰고 다니고 현지인들은 우비를 주로 입고 다녔다. 아직 안 가본 골목길을 걷고, 망토 다리 아래도 가고, 눈이 오면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개처럼 얼마 남지 않은 체스키크룸로프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보냈다.

오후 5

오전에 내렸던 장소에서 다시 RegioJet 버스를 탔다. 불편한 3시간의 이동시간을 온몸으로 잘 견뎌내고 다시 프라하로 돌아왔다. 야경을 보려고 했지만, 시차와 긴 버스탑승으로 피곤이 누적되어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녹초가 도니 몸을 겨우 추슬러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세상 이보다 편하고 좋은 곳이 있을까? 이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인천공항 2터미널

 

모든 것이 멈췄다.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밤의 세계는 숨을 쉬지 않는 듯 무거웠다. 밤손님처럼 그 거리를 숨죽이듯 걸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새벽 435

먼동이 기지개를 시작할 때 인천공항행 버스를 탔다. 어둠을 물리친 햇빛은 의기양양한 자태로 뽐내기 시작했고 그 빛 속을 버스는 내달렸다. 강력한 추진력으로 대기를 뚫고 나로호가 우주로 날아가듯 2시간 50분 만에 인천공항 2터미널에 도착했다.

6개월 만이다.

돌아올 곳이 있기에 나는 다시 먼 곳으로 떠난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법의 하나다.

 

KE969, 12시간 10분의 비행

 

오전 1120

대한항공 비행기가 활주로에 섰다. 곧이어 육중한 몸체는 활주로를 힘차게 박차고 뛰어올라 하늘을 구름처럼 유영하기 시작했다. 체코 프라하까지는 12시간 10분이 걸린다. 4편의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동안 2번의 식사와 1번의 간식을 먹었는데도 아직 2시간이나 남았다. 10시간 넘게 앉아만 있었더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괜스레 좁은 통로를 왔다 갔다 했다. ‘, 나도 이제 늙었구나!’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
공항버스

 

 

 

 

지하철
Wenceslas Square

 

 

 

 

Luma Terra 호스텔

 

여기는 프라하

반나절 넘는 비행시간에 비해 입국심사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여행사마다 줄지어 늘어선 한국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사라진 후에서 비로소 119번 버스를 탔다. 버스에 동양인은 나 혼자였지만 전혀 위축되지는 않았다. 인생은 언제나 이상야릇한 구석이 있지만, 내 인생이 여행 그 자체이기에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탄 후 프라하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순간 잘 익은 수박이 칼날의 스침에 쫙 갈라지듯 내 입이 크게 벌어졌다. 중세 신성로마제국시대의 건축물이 내 앞을 가로 막고 서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 넓은 광장과 주변의 중세 건축물, 거리의 이국적인 사람들과 노면전차 등을 살펴봤다. 무언가가 내 머리를 세게 후려친 기분이었다. 유로를 체코 화폐로 환전을 하고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7시가 지났다. 체크인하자마자 짐도 정리하기 전에 샤워했다. 뱀이 허물을 벗듯 끈적했던 몸이 매끈하고 시원했다.

 

블타바강에서 바라본 프라하성
중세건축물
공원의 아이
카를교의 모습
해가지는 구시가지
천문시계

 

 

 

 

해가진 후의 Wenceslas Square
코젤 맥주

 

해가 지지 않는 저녁 거리를 걸었다.

숙소를 기준으로 도로를 따라 블타바강으로, 블타바강에서 강변길을 따라 카를교로, 카를교에서 구시가지로, 구시가지에서 다시 숙소로 2시간 만에 돌아왔다. 자세한 프라하 구경은 남은 일정에 다시 하면 되기에 가끔 구글맵을 보면서 지리를 익히려고 노력했다. 프라하 지리를 익히는데 이만큼 좋은 방법도 없었다.

강바람이 시원했고 도심길에 만난 공원은 현지인들의 유쾌한 휴식공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낮의 맑음은 저녁의 어스름으로 대체되었고 간간이 빗줄기가 내리기도 했다. 마트에서 맥주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평소보다 긴 하루를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다. 7시간 시차 때문에 일어날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나 자신이 낯설다. ‘누구냐 넌!’

1월 첫째 주 목요일

아침에 나는 카키색 바지에 검은 스웨터를 입고 검은색 목도리를 한 후 아이보리색 점퍼를 입었다. 발목까지 오는 운동화를 신고 검은 장갑을 낀 체 미세먼지가 하늘을 여러 번 덧칠한 희끄무레한 하늘을 올려다본 후 길을 걸었다.

내가 걷는 왕복 8차선 도로는 지하터널을 빠져나온 차량이 학교 앞 횡단보도 앞에서 속력을 줄였고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엄마 손에 이끌려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길가에 아무렇게 놓인 공유 전동킥보드는 이용자의 비양심만큼 녹슬어 있었다. 오늘 한낮의 기온이 영상 7까지 올라가는 겨울치고는 따뜻한 1월의 한낮이다.

 

스물다섯 살 여름

나의 첫 해외여행으로 한 달 동안 베트남을 다녀왔다. 그 이후 싱가포르, 인도, 네팔,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 홍콩, 마카오, 러시아를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10개월 동안 다녀왔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낯선 나라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도시를 봤고 농촌을 봤고 산을 봤고 강과 바다를 봤다. 밤이 되면 지는 해의 자취를 따라 하늘을 봤고 달과 별을 봤다. 하지만 결국 내가 본 것은 낯선 사람들 속에 머물고 있던 나 자신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스무살이라는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남들이 흘리는 눈물보다 더 빨리 우리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위 문장을 각색하여 내 남은 인생을 표현해 봤다.

똑같은 365일이지만 작년보다 올해가, 똑같은 24시간이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더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는 오십 살이 지나고 나면 오십 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십 살 이후가 오는 것이다.

나는 더는 스무 살이 아니다. 그보다 두 배 반이나 더 나이를 먹었다. 스무 살 때의 내 모습에서 이미 많이 변환 내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십 살, 내 나이다.

생물학적 오십은 작년 가을이었지만 어쨌든 202315일 나는 정확히 만 오십 살이 되었다. 100세 달리기에서 이제 반환점에 도달했는데 나머지 50년을 더 열심히 달려야 하나 아니면 다른 길로 빠질까 고민 중이다.

처음의 40년은 뭣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삼십 대까지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지만 고단한 현실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다. 사십 대까지는 이기지도 못하는 현실과 치고받고 싸우느라 나를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될 대로 되겠지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나에게 사십 살 이전은 그런 시절이었다.

사십 대에 들어선 후 최근까지 무척 계획적인 삶을 살았다. 뭐든지 계획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룬 성과도 여럿 있었지만, 삶이 조금씩 지쳐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나는 상상을 한다.

오십 살의 여섯 번째 달에는 자동차를 타고 동유럽을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름 오십 년을 그럭저럭 잘 살았으니까 6월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스물다섯 살에 베트남을 다녀온 후 죽기 전에 전 세계를 여행해야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웠었다. 돈 때문에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여행에 필요한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느라 아주 계획적으로 돈을 모았다. 나에게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니 망설이지 말고 떠나자!

이제 나의 무대는 유럽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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