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멈췄다.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밤의 세계는 숨을 쉬지 않는 듯 무거웠다. 밤손님처럼 그 거리를 숨죽이듯 걸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새벽 4시 35분
먼동이 기지개를 시작할 때 인천공항행 버스를 탔다. 어둠을 물리친 햇빛은 의기양양한 자태로 뽐내기 시작했고 그 빛 속을 버스는 내달렸다. 강력한 추진력으로 대기를 뚫고 나로호가 우주로 날아가듯 2시간 50분 만에 인천공항 2터미널에 도착했다.
6개월 만이다.
돌아올 곳이 있기에 나는 다시 먼 곳으로 떠난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법의 하나다.
오전 11시 20분
대한항공 비행기가 활주로에 섰다. 곧이어 육중한 몸체는 활주로를 힘차게 박차고 뛰어올라 하늘을 구름처럼 유영하기 시작했다. 체코 프라하까지는 12시간 10분이 걸린다. 4편의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동안 2번의 식사와 1번의 간식을 먹었는데도 아직 2시간이나 남았다. 10시간 넘게 앉아만 있었더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괜스레 좁은 통로를 왔다 갔다 했다. ‘휴, 나도 이제 늙었구나!’
여기는 프라하
반나절 넘는 비행시간에 비해 입국심사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여행사마다 줄지어 늘어선 한국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사라진 후에서 비로소 119번 버스를 탔다. 버스에 동양인은 나 혼자였지만 전혀 위축되지는 않았다. 인생은 언제나 이상야릇한 구석이 있지만, 내 인생이 여행 그 자체이기에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탄 후 프라하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순간 잘 익은 수박이 칼날의 스침에 쫙 갈라지듯 내 입이 크게 벌어졌다. 중세 신성로마제국시대의 건축물이 내 앞을 가로 막고 서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 넓은 광장과 주변의 중세 건축물, 거리의 이국적인 사람들과 노면전차 등을 살펴봤다. 무언가가 내 머리를 세게 후려친 기분이었다. 유로를 체코 화폐로 환전을 하고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7시가 지났다. 체크인하자마자 짐도 정리하기 전에 샤워했다. 뱀이 허물을 벗듯 끈적했던 몸이 매끈하고 시원했다.
해가 지지 않는 저녁 거리를 걸었다.
숙소를 기준으로 도로를 따라 블타바강으로, 블타바강에서 강변길을 따라 카를교로, 카를교에서 구시가지로, 구시가지에서 다시 숙소로 2시간 만에 돌아왔다. 자세한 프라하 구경은 남은 일정에 다시 하면 되기에 가끔 구글맵을 보면서 지리를 익히려고 노력했다. 프라하 지리를 익히는데 이만큼 좋은 방법도 없었다.
강바람이 시원했고 도심길에 만난 공원은 현지인들의 유쾌한 휴식공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낮의 맑음은 저녁의 어스름으로 대체되었고 간간이 빗줄기가 내리기도 했다. 마트에서 맥주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평소보다 긴 하루를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다. 7시간 시차 때문에 일어날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나 자신이 낯설다. ‘누구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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