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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유럽 - 3일차(6/9), 체코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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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nceslas Square
천문시계
구시가광장

 

불도 끄지 않고 세상 모르게 잠들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깼는데 창밖은 이미 밝음이 어둠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오전 520분쯤 숙소를 나섰다. 한적한 오전 시간에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천문시계가 있는 구시가지 광장은 생기를 잃은 듯 고요하고 적막했다. 동영상을 찍으려고 오전 6시까지 기다렸지만, 천문시계는 조용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해골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천문시계, 틴 성모 마리아 성당, 얀 후스 동상 등을 여러 각도에서 사진만 찍었다.

 

카를교 가는 길
카를교
얀 네포무츠키 동상

 

 

 

 

카를교로 향했다.

밤의 열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도로 곳곳에 그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이른 영업을 시작하는 상점들은 분주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도시의 아침은 어느 곳이나 똑같은 분위기인 것 같다. 카를교는 결혼사진 촬영지로 인기가 있었다. 한낮의 북적거리는 카를교를 피해 이른 시간에 결혼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얀 네포무츠키 동상이 따뜻한 시선으로 신랑 신부를 바라보는 듯 했다. 소수의 관광객도 삼삼오오 사진을 찍으며 카를교를 걷고 있었다. 이른 아침의 카를교에서 30인의 성인 동상과 내가 만나 오늘 하루의 서막을 열었다.

 

페트린 언덕에서 바라본 프라하
페트린 정원

 

 

 

 

숲으로 들어섰다.

중세 신성로마제국의 거리를 벗어나면 페트린 언덕에서 프라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야 내려다볼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를 우리는 가끔 잊고 살고 있다. 조용한 숲과 정원, 멀리 보이는 프라하성, 프라하 시내의 모습이 좋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오르막을 오를 때 느끼는 육체적 고통은 이렇게 치유가 되었다.

 

카를교에서 바라본 부다성
프라하 시내
화약탑
스타버스

 

어느새 아침 햇볕이 따가웠다.

도로를 걷는데 진한 커피 향기가 내 코를 자극했다. 다시 구시가지 광장을 지나 화약탑과 마주했다. 검게 그을린 듯한 건물이 역사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 전에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체코에서 첫 커피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어제의 일들을 두서없이 생각나는 것들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몸이 경험하는 것을 글로 써두면 나중에 그게 바로 여행기가 된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스타벅스에서 있다가 점심을 먹으러 갔다.

 

K-remember, 소고기 쌀국수와 넴(롤)

 

식당 이름은 K-remember이며 베트남 음식점이었다.

어제부터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소고기 쌀국수와 야채 튀김을 주문했다. 진한 소고기 육수와 고수의 만남이 내 입맛에 잘 맞았다. 한국식 국밥은 아니지만, 빵보다는 내 입맛에 더 잘 맞는 음식이었다. 굵은 땀방울까지 흘리며 국물까지 다 마시니 배가 무척 불렀다. 포만감을 느낀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행복한 일이었나? 행복은 단순하고 일상적인 순간에서 느닷없이 찾아왔다.

 

호스텔 야외 테라스

 

오늘 오전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맥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더운 한낮에는 휴식을 취하고 오후 5시경 오후 여행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비셔흐라드
드보르자크
국립명예묘지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체코도 이상기후로 인해 날씨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다. 2시간가량 매섭게 쏟아지던 비가 멈추더니 이내 햇빛이 구름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더 뜨겁고 후텁지근하잖아.’

오후 4시가 지나 숙소를 나섰다.

부채를 손에 쥐고 걸으면서 햇빛을 가렸다가 부채질을 하다가 하면서 비셔흐라드로 향했다. 벽돌로 쌓아 올린 성벽은 왜 비셔흐라드가 고지대의 성벽인 줄 말해주고 있었다. 요새화된 성안에는 성당, 묘지, 박물관, 정원 등이 있으며 성벽에 올라서면 프라하성과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처럼 나도 성벽에 걸터앉아 먼발치의 프라하성과 시내를 내려다보며 고풍스러운 풍경에 젖어 들었다. 시원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국립명예묘지와 신전에 도착하게 된다. 체코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인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 체코 대표 화가인 알폰스 무하도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Kozlovna Apropos, 꼴레뇨와 코젤 다크 맥주

 

비세흐라드에서 내려와 블타바강을 따라 걸었다.

한두 방울씩 내리는 비를 친구 삼아 어제보다 북적거린 거리의 사람들을 피해 코젤다크맥주(Kozlovna Apropos)에 들어섰다. 다행히 대기 없이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바로 주문도 했다. ‘Koleno and dark beer please!’ 체코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꼴레뇨는 유독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이었다. 우리의 족발을 기름에 튀긴 그런 음식이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이라는데 오늘 꼴레뇨는 겉질속촉(겉은 질기고 속은 촉촉하다)였다. 껍질이 껌보다 질기고 딱딱했지만 고기는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혼자서 1kg인 꼴레뇨를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나의 식탐을 내가 잊고 있었다. 코젤다크 맥주 2잔과 함께 다 먹어버렸다. 많은 종류의 맥주를 마셔봤지만 코젤다크는 내 인생 최고의 맥주가 되었다.

 

카를교
프라하성 입구
성 비투스 대성당
스타벅스 전망대

 

 

 

 

포만감을 느끼며 프라하성으로 향했다.

날씨는 더더욱 후텁지근해졌고 경사지의 계단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오르막 계단이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때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계단을 올라 프라하성에 단숨에 올라섰다. 등산전문가라는 사실이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인적이 적어진 프라하성은 건축물의 재료 색깔처럼 을씨년스러웠다. 발걸음이 향하는 데로 정처 없이 성을 배회했다. 성안에서의 삶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성의 규모와 그 안의 건축물들의 웅장함을 떠나 갇혀 지낸다는 점이 나하고는 절대 맞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성을 빠져나와 스타벅스 인근 전망대에 오면 성벽 아래로 프라하 시내가 광활하게 드러났다. 같은 프라하지만 페트린 언덕, 비셰흐라드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프라하 거리
카를교

 

 

 

 

 

다시 긴 계단을 내려와 블타바강에 왔다.

대체 태양은 언제 지는 거야?’ 야경을 보려고 했지만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오늘도 야경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다가 구시가광장의 소란스러움을 목격했다. 시계를 보니 이제 곧 오후 9시가 된다. 재빠르게 동영상을 찍을 준비를 했다. 아홉 시가 되자 해골이 줄을 잡아당기며 종을 울리고 예수의 열두 제자가 순서대로 나왔다 들어갔다. 공연이 끝나자 구시가광장의 모든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드디어 봤네.’ 이게 뭐라고, 안 보면 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로 더위를 물리치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 내일은 34일간 숙박한 프라하 숙소를 떠나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야간 기차를 타고 떠날 예정이다. 오늘도 프라하의 밤은 영원히 잠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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