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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유럽 - 2일차(6/8), 체코 체스키크룸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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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a Terra 호스텔, 로비 테라스
프라하 노면전차
프라하 도심거리

 

시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한밤중인 새벽 130분에 잠이 깼다. 공용침실(dormitory)을 나와 글을 써보려고 휴게실에서 따뜻한 차(석류)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빗방울이 너른 대지 위에 마구잡이로 쏟아지듯 생각의 일면들이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흩어졌다. 정신을 집중하여 한 문장씩 써 내려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도가 높아졌고 그만큼 시간도 빠르게 흘렀다.

 

이른아침의 도심거리
철로 옆 인도교
블타바강

 

조금 일찍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체스키크룸로프로 가는 날이다. 어제 안 가본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늦게 지는데도 다음날 그 해가 너무 일찍 떴다. 오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 프라하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나에게는 무척이나 이국적인 거리의 풍경들이었다. 익숙해지면 별것 아니라고 느끼겠지만 이곳에서의 4일이라는 체류 기간은 익숙해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인 것 같았다.

 

RegioJet 버스
체스키크룸로프 버스정류장
체스키크룸로프 지도

 

오전 8

RegioJet 버스는 프라하에서 출발했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편안한 버스는 아니었다. 요금은 Flixbus에 비해 싸지만, 의자 간격이 너무 좁고 안전띠는 너무 내 몸을 조여와 이동하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다. 다만 운전사의 능숙한 운전은 어떤 위협적인 느낌도 들지 않게 도로를 빠르게 내달렸다. 도로공사 중인 일부 정체 구간과 두 번의 터미널 경유로 예정시간보다 지체된 11시에 체스키크룸로프에 도착했다.

 

목재 인도교
카약체험

 

 

 

캠프장

 

나는 목적지가 달랐다.

버스를 타고 온 사람 대부분이 체스키크룸로프 시내로 향했다. 나 혼자만이 조금 떨어진 캠프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번 유럽여행의 원래 계획은 캠핑이었다. 인원 구성의 어려움 때문에 결국 혼자서 자유여행으로 오게 된 것이다. 허공에 가득한 공기만큼 아쉬움이 크기에 꼭 캠프장을 먼저 방문하고 싶었다.

한참을 도로를 걷다가 캠프장으로 들어서는 목재 인도교를 지났다.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목재 인도교에서 카약체험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캠핑하는 동안 꼭 해보고 싶엇떤 수상 스포츠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말없이 서서 그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강변 사이의 숲길을 걸어 캠프장에 왔다. 텐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도 이렇게 야영을 하면서 이곳에 머무를 수 있었을 텐데. 나무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캠프장과 블타바강 풍경을 두 눈에 넘칠 듯 담았다.

 

체스키크룸로프
자메츠카 정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 한번 쳐다보고 몇 방울 떨어지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비를 꺼내 입고 체스키크룸로프성으로 행했다. 골목을 걷다가 오르막을 올라 자메츠카 정원에 도착했다.

정원은 넓었다.

어느새 비도 그쳤다. 여백이 있으니 한결 더 여유로운 공간처럼 생각되었다. 분수에서 물장난하는 아이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잠시 그친 비가 또다시 내렸다. 정원의 큰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이곳에서는 비를 피하기에 이보다 좋은 공간은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들던 사람들이 비 그치기를 기다렸다. 나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비 내리는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겨두었다. 비가 와도 여행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순간들이었다.

 

스크라비토양식
성에서 바라본 체스키 크룸로프
해자의 곰
블타바강
늦은 점심식사

 

조금 잦아든 빗속을 그냥 걸었다.

망토 다리를 지나 스크라비토 양식의 성벽을 보면서 체스키크룸로프성으로 들어섰다. 비는 곧 폭우로 변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겠다는 나의 굳은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어느 곳을 바라보던, 어떤 기기로 사진을 찍던, 모두가 사진가가 될 수 있는 그런 풍경이었다. 성의 해자를 지키는 곰을 보고 블타바강을 따라 걸었다. 강을 따라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갈 무렵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이발사의 다리가 보이는 블타바강의 작은 카페에 들어섰다. ‘beer, please!’ 이보다 맛있는 맥주는 지금 이 순간에는 어디에도 없었다. 치즈, 올리브유 등이 섞여 있는 소스를 찍어 먹는 샌드위치를 안주 삼아 맥주를 3잔이나 마셨다.

 

이발사의 다리

 

 

 

망토다리
망토다리, 체스키 크룸로프 성과 성탑
체스키크룸로프 버스정류장

 

비는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우산은 없지만, 우비가 있으니 다닐만했다. 그러고 보니 우산은 관광객들만 쓰고 다니고 현지인들은 우비를 주로 입고 다녔다. 아직 안 가본 골목길을 걷고, 망토 다리 아래도 가고, 눈이 오면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개처럼 얼마 남지 않은 체스키크룸로프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보냈다.

오후 5

오전에 내렸던 장소에서 다시 RegioJet 버스를 탔다. 불편한 3시간의 이동시간을 온몸으로 잘 견뎌내고 다시 프라하로 돌아왔다. 야경을 보려고 했지만, 시차와 긴 버스탑승으로 피곤이 누적되어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녹초가 도니 몸을 겨우 추슬러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세상 이보다 편하고 좋은 곳이 있을까? 이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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