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의 블타바강
댄싱 하우스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에 잠이 깼다. 오전 5시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깨는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사흘 동안 야경을 제대로 못 봐서 어둠이 장악한 정적의 프라하는 어떤지 보려고 새벽 거리로 나왔다. 하늘은 짙은 청록색이었고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는 텁텁하지 않고 상쾌했다.

 

 

 

 

 

새벽 415

대중교통이 24시간 동안 운행되나? 의문스러웠다. 조용할 거란 내 생각과 달리 도로에는 노면전차, 버스, 자동차들이 분노의 질주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내 발자국을 어둠 속에 남기며 블타바강까지 걸어갔다. 블타바강에 가까워질수록 짙은 어둠은 흰 안개와 배턴터치를 했다. 새벽 안개의 포위망을 벗어나려고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나 혼자 외로운 사투를 펼쳤다.

 

신호등
농산물 직판장 (Farmers’ Saturday market)

 

공용침실(dormitory)은 여전히 한밤중이었다.

내가 샤워하고 짐 정리를 마치는 동안 바깥은 이미 해의 세상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은 전혀 포착할 수 없었다. 오전 830분을 지나 체크아웃을 했다. 3일 밤을 편하게 보낸 호스텔을 이젠 떠나야 한다. 호스텔에 짐을 맡겨두고 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장이 서는 농산물 직판장(Farmers’ Saturday market)이 열리는 블타바강으로 향했다.

 

농산물 직판장 (Farmers’ Saturday market)

 

현지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규모가 작고 파는 물건도 한정적이었지만 시장의 정겨움이 가득한 재래시장이라 나를 즐겁게 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왔다 갔다를 반복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사는 이름 모를 빵과 카푸치노를 사서 현지인들처럼 강변에 앉아 먹었다.

아침 식사로 조금 부족한 것 같아 구운 토스트에 채소소스를 올려주는, 아마도 가장 인기 있는 빵을 줄을 서서 샀다. . 온갖 종류의 빵을 먹어보고 있지만 내 입맛에는 모든 빵이 그저 그런 맛일 뿐이다. 홀쭉한 배에 포만감 일부를 더하는 정도로 여겨졌다. 그래도 좋았다. 나는 가장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많이 걷지도 않고, 한 장소에서 충분히 휴식하며,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름 모를 곡이 연주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게 힐링이니까!

 

 

 

 

보트
도심 공원 행사

 

하늘은 나의 여유로움을 시샘했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농산물 직판장을 나와 블타바강을 따라 걸어갔다. 주말이라 어느 곳이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평일에 보기 힘든 패들 보트를 타고 블타바강을 유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각종 행사도 도심 공원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이방인이 내가 그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랄만한 일이었다.

 

Mlynska kavarna

 

다리쉼을 하려고 카페에 들어갔다.

물론 맥주 한잔 마시는 것 이외에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들어간 것이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고풍스러운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이곳 카페에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카페 종업원들이 일하면서 힐끗힐끗 나를 쳐다봤다. 관광지와 조금 떨어진 곳에만 가도 전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프라하성 가는 길
굴뚝빵으로 바라본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또다시 길을 걸었다.

프라하성에 다시 가려고 다른 길로 들어섰다. 모든 길은 올라가려는 사람들과 내려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러거니 말거나 난 체코의 굴뚝 빵을 사 들고 계단을 열심히 올랐다. 프라하성은 그야말로 사람들의 전시장 같았다. 의자에 앉아 굴뚝 빵을 먹으며 성 비투스 대성당을 동경의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30여 분을 성당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프라하성은 성이라기보다는 조그만 마을 같은 느낌이 더 들었다. ‘나만 그런가?’

 

프라하성 올라오는 길
K-remember, 분짜와 코젤 맥주

 

햇볕이 따갑다.

부채를 펼쳐 해를 가려보지만, 햇빛을 피할 수는 없었다. 무더위에 시원한 국물이 내 입맛을 자극하지만, 딱히 먹을만한 음식이 생각나지 않았다. 빵 종류는 먹기 싫고 매콤한 것이 당기는데. 태국 라면보다는 역시 시원하고 매콤한 베트남 분짜가 좋을 듯했다. 내 발걸음은 K-remember로 향했다.

시원한 코젤 맥주와 고수를 한 접시 추가했다. 분짜는 1997년 베트남에서 처음 먹어본 그 분짜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유럽 여행에 한국 음식은 전혀 가져오지 않았다. 평소처럼 현지식을 먹겠다고 다짐했는데. 여행일정이 많이 남아 있는 지금, 어떻게 견디어 낼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호스텔 야외 테라스

 

남은 체코 화폐를 다시 유로로 환전했다.

맡겨둔 짐을 찾으러 호스텔에 다시 왔다. 부다페스트행 야간열차 시간이 4시간 정도 남아 로비의 테라스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글을 쓰고 있다. 기차를 타는 순간, 체코 여행은 마무리되고 헝가리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처음엔 34일이 길게 느껴졌는데 지금 보니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언제나 여행은 하지 못한 것과 안 가본 곳이 더 잔상으로 남아 여행 내내 후회의 마음을 갖게 한다. 그래서 또 여행을 떠나는 것이겠지만.

 

프라하 중앙역, 부다페스트행 야간 슬리핑 기차

 

프라하 중앙역은 정적이 감돌았다.

부다페스트행 야간 슬리핑 기차는 3S 플랫폼에서 탑승을 시작했다. 나는 인도인 부부와 같은 객실을 배정받았는데 내가 3층 침대였다. 불현듯 오래전 인도에서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밤이 깊어 3층 침대에 눕자마자 불을 껐고 흔들리는 기차 진동을 느끼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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