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문자 한 통이 왔다. 늘 오는 스팸 문자겠지.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대학 동기의 모친상 부고 문자였다.

죽음. 50대인 나에게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하나의 사건이 되어버렸다. 잠들기 전에 수원행 기차표를 예약했다. 30년 전에 가본 수원은 내 기억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오후 126분 무궁화호 기차를 탔다. 기차는 만석이었고 각자의 목적지에서 내리고 새롭게 타는 사람들이 반복될 뿐이었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영어회화를 들으면서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 눈 쌓인 풍경에 가끔 눈을 돌렸다.

수원역을 벗어나자 정면으로 쭉 뻗은 도로가 펼쳐졌다. 버스를 타지 않고 양지바른 길을 따라 그냥 걸었다. 한파가 막바지라서 음지는 엄청 추웠고 점퍼가 아닌 외투를 걸친 나는 더 추위를 느꼈다. 20여 분을 걸었을 때 팔달문과 마주했고 아무 생각 없이 팔달산을 올랐다. 성벽을 따라 걷다가 서장대에서 수원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성벽을 따라 화서문과 장안문을 지나 화홍문까지 왔다. 성벽 길을 내려와 방화수류정을 감상하고 하천길을 따라 걸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430분이었다. 천천히 성빈센트병원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조의금 봉투를 쓰고 8호실로 향했다. 방명록에 서명하고 조의금을 조문함에 넣었다. 상주 자리에 상주가 없어 기다리다 조문객과 이야기 중인 상주를 발견했다. 어색하지만 조문객과 상주의 예를 갖추고 조문을 마쳤다. 저녁을 먹고 혼자 소주를 마시면서 빈소에 남아 있었다. 일가친척을 제외하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끔 두세 명의 지인들이 찾아왔다. 점심때 대학 동기 2명이 다녀간 것을 제외하고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어색한 것보다는 오랜 시간 뻘쭘하게 혼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인터넷의 발달은 조문 방식도 바꿔놓았다. 먼 거리이지만 마음을 내어 찾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는 이미 지난 것 같다. 요즘은 많은 사람이 계좌에 조의금을 이체하고 카톡으로 조의를 표하고 있다.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과연 인간관계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담배 피우러 나가자는 상주의 말에 밖으로 나왔다. 그때가 오후 730분이었다. 상주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무거웠다. 세상은 네온사인이 어두워진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거리의 인파를 지나 수원역까지 터벅터벅 걸었다. 낯선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쓸쓸한 기분을 음악으로 달래며 밤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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