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새벽 5. 이불 밖을 벗어났을 뿐인데 온몸이 서늘하다. 비가 내렸고 그 비가 눈으로 변했다. 그리고서 겨울다운 한파가 찾아온 것이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보일러를 가동한다. 화장실 입구 왼쪽 벽면에 있는 전원을 어둠 속에 누른다. 문을 열고 화장실 불을 켠 후 보일러 스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길게 뻗은 연통이 용트림하듯 큰 소리를 내지며 보일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마치 뱃고동 소리처럼 새벽하늘에 우렁찬 외침으로 절규한다.

엄마 방으로 간다. 어둠 속에 텔레비전이 켜져 있고 이미 깨어 있는 엄마는 밀크커피를 마시고 있다. 방 안 공기에는 달곰한 커피 향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듯 내 코를 자극한다. 포트에는 이미 끓은 물이 있다. 방 불을 켜고 나도 커피를 탄다. 잠자느라 당이 떨어졌는지 입에 대기도 전에 냄새에 푹 빠져버린다.

 

오늘은 일찍 집을 나선다. 크리스마스 때에 맹추위가 기성을 부리다 연말이 되면서 따듯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해가 바뀐다는 것은 50대에 들어선 나에게 죽음이 한 발짝 더 다가왔다는 의미이다. 삶 속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내 삶을 더 충만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육체가 움직일 수 있을 때 마음이 원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게 나이니까.

한파가 지나고 기온이 예년 기온을 회복한 것 같다. 아침을 먹고 배낭에 이것저것을 챙겨 넣는다. 오랜만에 계룡산을 갈 생각이다. 107번 버스를 타고 동학사정류장에 왔다. 주차장과 도로에는 눈이 쌓여 있다. 터벅터벅 도로를 걷는다. 오늘은 동학사로 가서 천정골로 하산할 생각이다. 구름이 점점 산을 집어삼키고 있다. 나는 점점 구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동학사를 지나 등산로 초입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쉼 없이 걷는다. 물도 먹지 않고 쉬지도 않고 정상까지 한 번에 올라간다. 주차장에서 관음봉 정상까지 정확히 1시간 30분이 걸렸다. 오랜만에 산행의 짜릿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구름에 휩싸인 산은 나를 지워버리고 있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 전에 하산을 시작한다.

바람은 구름을 뚫고 갑사에서 불어와 산릉을 넘어 동학사로 향한다. 올해의 온갖 사연들이 바람에 실려 와 상고대가 피어있는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내 마음을 세차게 때린다. 시계가 없어 삼불봉을 오르지 않고 남매탑으로 내려간다. 허기진 배를 전투식량으로 채우고 천정골로 하산을 한다.

 

요즘 하루가 신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여행준비를 마치려고 한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로 유럽여행을 갈 계획이다. 아직 5개월도 더 남았지만, 하루하루가 설레는 기분이다. 일정을 계획하고 세부적인 것들을 알아보는 과정이 재미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에 애정을 쏟는다는 것은 삶의 활력을 준다. 그 뭔가가 난 여행이니까 더 좋다.

이제 하루 남았다. 정확히 12시간 30분 남았다.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 건가? 스스로가 분주해진다. 내년도 계획도 세우고 올 한해를 정리해야 한다. 할 일이 많은데 머리는 쇠망치에 맞은 듯 띵하다. 차분차분 한가지씩 저리를 해야 하는데. 내년에는 화려한 한량이란 신조로 현실의 비루한 한량을 벗어나 보자.

 

비가 내린다. 2023년의 마지막 날이라 구슬피 우는 건가? 아니면 묵을 때를 씻어버리고 싶은 마음인가? 세상은 고요한 적막이 어둠과 함께 찾아왔다. 가로등 불빛이 대로에 띄엄띄엄 희망의 빛을 발산할 때 그곳에서 한줄기 비가 불빛을 가른다. 오늘은 저무는 해를, 내일은 떠오르는 해를 기다릴 테지. 그게 인생이다.

 

Good By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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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야크 마운틴북 명산100 도전기 97, 함백산 산행



작년 12월 축령산 산행에 이어

오랜만에 명산100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산행을 아예 안 한것은 아니지만

4좌 남겨둔 명산100 완주를 위해서 오늘 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가는날이 장날이란 표현이 딱 맞습니다.


평소 혼잡함때문에 주말산행을 거의 하지 않는데

제가 함백산을 찾은 오늘이 바로 일요일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항재에 도착한 버스들은

셀수도 없을 정도의 등산객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이젠 착용을 끝으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잠시만 멈춰있어도 곧 등산객들의 틈바구니속에 갖히게 됩니다.


춥지도 않고 화창한 일요일입니다.


많은 눈이 올거라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눈은 내릴 기미가 없고 등산로에 쌓인 눈만이 나를 반겨주고 있습니다.





한명, 두명....

서른명... 마흔명...

아이고 백명도 넘었는데...


발걸음이 쉴새없이 점점 빨라졌지만 그 발걸음이 무색하게

언제 산행을 시작했는지 모르는 한무리의 등산객들은 가는 곳마다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하늘에 제를 지내는 함백산 신원단을 지나

함백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급경사지의 등산로에도

이미 수없이 많은 등산객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등산로를 조금 벗어나서

경사진 숲을 힘차게 오른 후에 함백산 능선에 올랐습니다.





능선에서 우뚝커니 서서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했습니다.


마치 하얀 구름속에서 걸어 나온듯

사람들의 행렬은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암반위로 우뚝 솟아있는 함백산 정상은

협소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몰려 있을 수 없습니다.


인증사진을 먼저 찍기 위해서 무질서하게 사투를 버리고 있는 등산객과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파속에서 나는 과연 인증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정상 주변에서 잠시 기회를 엿보다

찰나의 순간의 이용하여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함백산 정상 표지석의 '함'자만 겨우 보였습니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디카를 이용하여 셀카모드로 잽싸게 인증사진을 다시 찍었습니다.

참으로 숨가뿐 순간이었습니다.





서두른 보람은 있습니다.


등산객들의 인파에 둘러싸이지 않았다는 것과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절약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늦게 시작한 산행임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먹기엔 너무 이른 시간입니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은대봉으로 향했습니다.


내 평소 산행속도를 보아

은대봉에서 점심을 먹으면 될 거라 판단했습니다.





단단한 속살은 고사가 되어도

살아있는 속살보다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흰 두루마기를 걸친 함백산 자락에 서있는

주목나무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합니다.





중함백을 지나고... 눈쌓인 백두대간 능선을

먼저 지나간 등산객들의 흔적들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적조암 갈림길에서 한 무리의 등산객들을 지나치니

그제서야 조용하게 눈쌓인 숲길을 혼자서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은대봉에 도착을 했습니다.


은대봉 넓은 헬기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차와 함께 간단히 행동식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함백산 정상에서 은대봉까지 오는 동안

많은 등산객들이 버젓이 취사 하고 있는 모습을 여러번 봤습니다.


산을 좋아해서 산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눈치를 보거나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않고

보란듯이 뻔뻔하게 취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씁쓸함을 느끼며 두문동재로 하산을 했습니다.


등산객들의 인파속을 뚫고

만항재에서 두문동재까지 2시간 30분도 안 걸려서 도착을 한 것입니다.

두문동재삼거리까지 눈으로 통제된 도로를 걸었습니다.


블랙야크 명산100 도전자분들은 산에서 취사를 안 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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