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존재는 자연에 있어 대역죄인이다. 자유로운 존재라고 주장하지만, 불법 활동으로 자연이 훼손되었으니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유전자 보호구역을 무단 침입하여 야생화를 짓밟고 쓰레기를 내버렸다. 자연에 피해를 준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기적인 자신의 욕구 충족이 우선이고 진정한 자연의 돌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연과 우리의 위치를 바꾸어 자연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은 무시무시한 파괴자로 보일 것이다. 자연은 해의 흐름에 따라 하루를 살지만,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고 하루를 산다. 자연은 언제나 그곳에 평화롭게 있었는데 인간이 갑자기 다가가니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위치를 바꾸어 생각함으로써 자연을 어떻게 보존해야 훼손을 덜 하게 될지를 알게 된다. 인식의 기준을 잠시 바꾸어 보아야 진정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곰배령 가는 길

 

곰배령으로 향하는 길은 닫혀 있다. 오직 허가받은 사람만이 강선마을을 지나 좁은 숲길과 계곡을 따라 걸어갈 수 있다. 노루귀, 괭이눈, 바람꽃, 개별꽃, 모데미풀, 제비꽃, 현호색, 미나리아재비, 한계령풀, 얼레지 등 숲에서 발견한 야생화는 경이롭다. 겨우내 숨어 지내던 식물들이 봄소식에 깨어나 생명의 빛을 발산하고 있다. 숲길은 좁고 자연은 시련에 훼손되었지만 완전한 만족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이 길을 따라 걷는다. 오랜 세월 버텨온 야생화가 만들어낸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 그 길에 있다.

맑은 날,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빛이 숲에 끝없이 펼쳐질 때 활짝 꽃을 피운 야생화를 본 적이 있는가? 야생화는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저마다의 색깔로 활짝 피어난다. 나는 야생화가 활짝 핀 숲속을 거닐고 있다는 것에 대해 신비함을 느낀다. 계절은 정해진 절기로 순환하면서 쉼 없이 변화하고 있다. 숲은 분주히 깨어나는 생명체들로 가득 차 있다. 나 또한 숲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자연에서 자유를 느낀다. 가장 원초적인 세계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느낌과 감각에 자극을 주어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늘 변화를 원한다.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은 자연에서 봄의 새싹, 야생화 등 역동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자연을 보고 진리 탐구를 하기보다는 미적 탐구를 통해 감성적으로 느껴야 한다. 자유를 꿈꾸는 사람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은 자연에서 찾아야 한다.

 

적당한 무관심

 

곰배령에 올라서면 평화로운 자연풍경이 펼쳐진다. 우뚝 솟아있는 나무 아래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점점 길어진다. 산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지키려면 적당하게 무관심해야 한다. 너무 지나친 관심은 자연에 고통을 줄 뿐이다. 쓱 스쳐보면서 마음속으로 감탄해야 진정으로 자연을 위한 것이다.

큰 산맥은 여러 갈래의 지맥을 품고 있다. 웅장한 산봉우리는 호주머니의 송곳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그 산이 어느 산의 봉우리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작은 봉우리가 없으면 큰 산맥도 없는 것이다. 곰배령에서 점봉산, 설악산 중청과 대청을 바라본다. 마음은 소박해지고 사사로운 욕심은 어느새 사라지게 된다.

 

아름다운 기억

 

세월과 함께 잊히는 것도 있지만 자연과의 추억은 세월과 함께 아름다운 기억이 짙어진다. 찾아오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사람과의 만남처럼 산이 정답게 느껴진다. 농익은 자연풍경이 계절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슬프도록 푸르고 싶은 하늘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자연과 사귀기 위해 이곳에 홀로 머물러야겠다. 자연은 홀로 있는 사람에게만 가슴을 연다.

 

기린에서 길을 들자면 방동리도 멀다. 도시의 삶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더 가야 방동리가 나오나? 할 것이다.

진동리는 그다음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동네가 진동리다. 초입에 들어서 한참을 가다 보면 아침가리계곡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온다. 여기인가 싶지만 어림도 없다. 오늘 가야 할 지표는 설피 마을, 부지런히 페달을 가속한다. 마치 군 경계 하나쯤을 넘었을까 하는 지루함이 몰려들 때쯤 조침령터널을 마주하며 좌회전을 한다. 설피 마을의 초입이다. 그렇게 깊은 골을 품고 사는 마을이 진동리다.

 

진동호를 돌고 돌아 말안장으로 훅 들어선다. 백두대간이다. 오늘은 단목령으로 길을 잡는다. 이렇게 부드럽고 두터운 대간이 있을까! 늘 대간은 가파르고 곧추서고 칼 능선으로 길잡이 노릇을 한 터였다. 너무 낯선 두터운 대간을 걷는다. 우뚝 선 나무들도 있지만 역시 대간이다. 제멋에 겨운 군상들이 대간을 호위한다. 제멋대로 생긴 그들은 나름, 모두가 백 년의 세월 동안 백두대간을 지키는 장군들이다.

대간은 이제 막 첫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다. 박새, 한계령풀, 노랑제비꽃 그리고 얼레지. 사이사이에 노루귀도 얼굴을 내민다. 아직은 이른 봄을 준비하는 대간을 따라 단목령에 들었다. 훅 들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나선 길에 두터움으로 다가오는 대간을 벅차게 안고 도는 하루가 간다. 대간의 오른쪽으로 보이는 양양의 바다는 덤이다.

 

다음날 다시 들어선 진동호의 산허리, 오늘은 조침령이다. 역시나 두텁고 평활한 산맥이 길라잡이로 나선다. 1000고지에서 삶터를 본다. 얼마쯤인가 걸음을 하였다. 대간을 호위하는 군상들은 제모습을 감추고, 겨우 살아낸 못생긴 나무들이 열병식을 한다. 그들의 삶터는 틈이 없다. 얽히고설키고, 내가 살아있음을 선포해야 하는 그들은 만 가지 모양으로 대간을 지키고 있다. 그렇게 허리를 감고 도는 바람을 벗으로 삼아, 아직은 서늘한 대간은 꿈을 꾼다. 왼쪽으로 보이는 양양의 바다는 오늘도 덤이다.

 

일주일 후에 다시 든 진동리, 오늘은 곰배령이다. 모두 '천상의 화원'이란다. 사실은 늘 꿈꾸었다. 곰배령, 곰배령, 곰배령. 탐방센터를 지나 계곡을 따라 길을 나선다. 초입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속새, 얼레지, 바람꽃, 투구꽃, 개별꽃, 애기괭이눈, 한계령풀 그리고 모데미풀. 사실을 고백하자면 알 수 없어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수백 가지다. 아직은 봄의 초입인 진동리에는 준비하는 봄의 무게가 더 깊다. 알 수 없어 부르지 못하는 그대들의 품에, 미안하지만 오늘도 걸음을 한다.

곰배령을 지나 능선에 든다. 고운 생명의 움틈을 발아래 두고 아직은 시린 거친 걸음을 걷는다. 머리가 시릴 만큼 진동리 능선의 4월의 바람은 거칠다. 얼마를 걸었을까, 저만큼에서 설악산 대청봉이 사람 좋은 웃음으로 고개를 내민다. '그래 설악산이구나, 네가 설악인 거야!‘

오랜만에 방동리 너머 진동리의 삶을 산다. 거친 산들의 아래에, 그렇지만 초라하지 않게 두터운 삶을 살아내는 진동리. 백두대간도 진동리를 지날 때면 거친 걸음을 멈추고 따스하고 두터운 품에 잠시 숨을 쉰다. 그 품속에서 우리는 함께 숨을 쉰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얼마 전쯤 서천의 벗으로부터 문득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벗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본래에도 자신만만하고 활달한 벗이긴 하나, 그날의 목소리는 더욱 기운찼다.

서천에 한번 와야것다.”

그려

그렇게 오랜만에 벗을 만난다. 그 잘난 전화기 덕분에 목소리로만 간간이 인사치레를 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벗을 본 것이다.

왔어, 현장에 가봐야 할 거 아녀?”

그려

그렇게 찾은 곳이 종천면에 있는 치유의 숲이다. 치유의 숲 입구에 저수지가 있고 그 둘레를 따라 무장애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본래의 업무인 유아숲 체험시설은 뒷전으로 밀리고 오랜만에 만난 벗은 노린재나무의 가치며, 저수지 옆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신갈나무 고목의 삶터며, 저수지 주변에 살고 있는 수달 이야기며, 끝없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그의 말 끄트머리에 주석을 달 듯 그대의 이야기가 옳으며, 저 정도 크기의 노린재나무면 족히 수십년의 삶을 살아냈을 법하고 또 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하여, 신갈나무 고목의 옆에서 무심한 듯 졸고 앉아 있으며 좋겠다는 이야기며, 수달이 살고 있는 이 삶터가 얼마나 중요성이 있는지 등속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내고 있었다.

오십을 넘은 중년의 두 사내는 마술에 걸린 듯 그렇게 끊임없는 수다를 풀어내며, 오후 시간을 저수지 위에 드리워진 산 그림자에 던지고 있었다.

세시쯤인가 사무실에 도착한 그가 묻는다.

막걸리 할 껴, 소주 할 껴?”

소주

그렇게 우리 둘은 서천특화시장 2층에 자리를 잡았다. 활어회와 쭈꾸미가 상 위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서로의 술잔을 채우기 바빴다. 그렇게 바삐 오가는 술잔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허공으로 유영을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야기거나 오랜만에 만나니 정말 반갑다는 등의 이야기는 없다. 그저 수다스럽게 변한 두 중년의 남정네는 활어회가 남을 만큼의 수다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오랜만의 낮술은 기어이 해를 서쪽 바다로 던져 버리고 말았다.

 

며칠 후 다시 인제 내린천에 들었다. 원대리 입구의 원대교에서부터 피아시까지 내린천의 비탈을 따라 걷은 걸음이었다. 인제의 산들은 여지없이 뒤축을 잡아당기고, 폭설에 부러진 고목들과 가시덤불들은 좀 쉬었다 가라고 옷소매를 당긴다.

얼마쯤이나 갔을까, 기어이 나타나서 길을 막는 암벽에 결국 걸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늘 길 아닌 길을 걸으며 쏟아내는 한숨같은 소리를 오늘도 결국은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 있었다. 결국 나무와 바위에 구걸을 하며 겨우 내린천으로 내려왔다. 거만하게 곧추선 암벽에 그만 기가 죽어 천변에 지천으로 깔린 너럭바위에 주저 앉았다. 여울목인 그곳은 무심히 흐르는 내린천이 아니었다. 물이 많지않은 시기인데도 내린천의 노여움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한 만큼의 소리를 내며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금산 인제 금산 인제 금산. 쳇바퀴치고는 좀 긴 걸음들을 무시로 옮기고 있었다.

 

인제에 들어 처음 찾은 곳은 상남면 미산동이다. 미산약수교 앞에 서서 개인약수를 품은 계곡을 바라본다. 올라가는 길이 눈에 선하고, 마음은 이미 저 앞으로 가고 있었다.

동행한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내린천에서 솟구치는 날카로운 바람에 흠칫 놀라 벌써 저만큼 나아간 정신을 끌어당긴다. 지역과 사람과 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아직은 찬 바람 속을 날고, 급히 한마디 보태느라 개인약수는 잊은 지 오래다. 그렇게 소개인동이며, 의식동 등을 돌고 돌아 인제의 짧은 걸음을 마쳤다.

다음날 곰배령을 찾아들었다. 기린면의 골짜기며 산봉우리들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림들이다. 오랜만에 스쳐 가는 그리운 풍경들, 방동리와 진동리의 골짜기들은 가만히 웅크린 채 숨죽여 봄을 준비하고, 곧추선 봉우리들은 아직 떠나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겨울을 무심한 듯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설피 마을까지만 겨우 걸음 하였다. 더 갈 수 없는 곰배령은 진부령 너머 해금강처럼 다음에 오라고, 좀 더 따스한 날에 걸음 하라고, 그렇게 그리움 짙은 손짓을 한다.

또 그리움이야! 허허허.’

 

다시 찾은 인제는 여전히 겨울을 털어내지 못하고, 제 죄인 양 새색시 걸음을 하는 내린천의 흐름은 시리게 곱다.

북사면에 기대어 사는 나무와 바위들은 여전히 추위에 떨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도 따스한 볕이 드는 남사면 나무들의 허물을 벗듯 허연 기운을 가지 끝으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래 얼마 남지 않은 게야!’

내린천을 따라 걸었다. 길 아닌 길을 걷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의 틀 안에서, 그 길이 결국 길벗들의 길이 되리라는 소망으로, 그렇게 그날도 거친 걸음을 하였다. 그래도 내린천을 곁에 두고 걷는 걸음이, 호위무사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변곡점마다 곁에 서서 지친 걸음을 다독여주는 인제의 봉우리들과 함께 걷는 걸음임에, 그날도 걸음만큼 행복했었다.

 

금산에 들었다.

천내리며, 길곡리며, 신안리며, 산안리 등을 돌고 돌았다. 제법 온기를 품은 볕이 골짜기마다 내려앉고, 삶터마다 작은 연둣빛 생명을 밀어 올리고 있다. 물론 잠깐 이는 바람 곁에는 아직도 찬 기운이 동행한다.

금산의 산들은 인제의 산들을 닮았다. 그 풍채와 상관없이 곧추선 봉우리들은 어깨를 으쓱대며 제 자랑질이 한창이다. 곧추선 만큼 깊은 것이 골짜기요, 그 걸음은 한없이 거칠어진다.

때론 한 걸음을 앞쪽에 놓지 못하고 주저앉을 때가 있다. 그 정도쯤 인제와 금산은 거칠게 닮았다. 그 길 아닌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길벗들의 길을 본다.

 

머지않은 날에 인제에 들 것이다.

이미 곰배령이며 백두대간의 걸음을 예정해 놓은 것으로 묶인 걸음의 서운함을 달래는 중이다. 작년 봄에 걸음 하였던 방태산의 가식 없는 선물 보따리들이 눈에 선하다. 얼레지, 바람꽃, 박새, 모데미풀, 연영초 등속은 기어이 백만 송이의 꽃으로 고운 화원을 그려내었다.

그만큼이 아니라도 좋다. 연둣빛 움틈이 시작되는 날 인제의 봄을 마중하러 갈 것이다. 오늘 금산에서 노란 첫봄을 보았다. 이미 남쪽에서 물밀 듯 밀려드는 봄소식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신안리 고운동 골짜기에 핀 생강나무꽃은 올해 나의 첫봄이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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