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내린 시간 오전 9

나는 기차 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며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을 배회했다. 5분도 되지 않은 사이에 무작정 유달산을 향해 골목을 걸었다. 오래된 건물들이 삐뚤빼뚤 제각각의 형태로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길게 서 있었다. 그리고 구석진 곳에 노란색 리무진 택시가 건물 가까이에 주차되어 있었다.

 

지치지 않고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가진 한정성의 짧은 목포여행이 시작되었다. 배에서 내린 후 두 다리는 날아갈 듯 가벼워 보였지만 배낭을 짊어진 어깨는 천만 근의 쇳덩이가 짓누르는 듯 움츠러들었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반바지에 반소매 차림으로 맨손으로 계단 난간을 잡고 계단을 올랐다.

 

슬로아일랜드
목포해상케이블카
목포골목
목포근대역사관 옆 계단

 

노적봉을 뒤로하고 유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짧은 보폭 다음에는 길고 무더운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으로 이어졌다. 마지막까지 타오르는 불꽃처럼 오랫동안 나도 짧은 보폭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 누구도 나처럼 빨리 발의 놀릴 수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면서 대학루, 달선각, 유선각에서 본 목포의 항구풍경을 잠깐씩 즐길 수 있었다. 유달산 케이블카, 관운각, 마당바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힘이 소진되었고 얼굴을 흐르는 땀은 눈으로 흘러 들어가 따가웠다.

 

노적봉
대학루에서 바라본 목포시내
일본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 전정
달선각에서 바라본 목포시내
유선각

 

일등바위에 올라섰다.

이곳이 유달산 정상이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 듯 보이는 하나하나의 색조가 숨을 쉬듯 살아 있었다. 초록이 숲 너머 무지개색 지붕의 다양한 건물이 들어서 있고, 에메랄드빛의 바다에 흔 물거품으로 획을 그으며 오가는 배들, 바다 건너까지 연결된 곡선미를 한껏 뽐내고 있는 목포대교, 얇은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달리도를 포함한 다도해의 섬들이 있었다.

뒤쪽으로는 북항까지 이어진 목포 해상케이블카가 바다와 산을 굽이쳐 지나가고 목포 시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었다.

 

유달산 일등바위
목포영웅 촬영지
다도해와 목포대교
유달산 케이블카

 

나는 사람들 틈을 피해 재빠르게 유달산을 내려갔다.

목포 시내를 걷는 동안 들뜬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목포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태생이 똑같은 ‘1972년부터~ 목포원조 맑은뼈해장국 해남해장국을 찾았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도 나왔던 곳이다.

 

원조돼지뼈해장국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팔각회향 추출물을 첨가한 깔끔한 국물맛과 돼지 뼈에 붙어있는 푸짐한 고기가 나를 설레게 했다. 막걸리 한잔 마시고 손으로 뼈를 들고 입으로 최대한 많은 고기를 흡입했다. 마무리로 깍두기를 먹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맛도 맛이지만 골수를 빨아먹는 재미가 있었다.

 

목포시내 영산로
해남해장국
원조돼지뼈해장국

 

목포는 항구였다.

내 가슴과 자연이 강렬하게 공명하는 순간이 여러 번 찾아왔었다. 바다를 이동시키는 원양의 바람, 바람에 밀려가는 파도의 출렁거림, 파도의 쏠림에 옮겨가는 여객선, 유달산과 바다를 지나가는 목포 해상케이블카 자연과 문명은 구분되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

 

오전이 천국에서의 삶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기차를 타고 목포를 떠날 때 나는 웃음을 지었다. 항구, 여객선, 바다, 갈매기, 목포 해상케이블카, 목포대교, 달리도, 캠핑장, 염전, 석양, , , 유달산 등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을 가슴에 담았다.

 

유달산
달리도 백패킹

또다시 길을 나섰다.

막걸리 두 병을 사 들고 어제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어갔다. 내가 빨리 걸으면 걸을수록 남쪽에 떠 있는 해와 점점 가까워졌다. 나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긴 머리카락을 흐트러지게 했다.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걷고 있는 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등허리에 땀이 흥건했다. 잠시 쉬었다 가려고 웅장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 그늘에 앉았다. 익어가는 대추를 바라보며 뜨거워진 몸의 열기를 식혔다.

그늘을 만들지 못하는 나무는 이미 나무가 아니다. 그늘이 움직인다는 것은 나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나무 그늘의 위치와 모양이 바뀌어야 한다.

 

지주식 김양식장
느티나무

 

길 위를 지키는 사마귀가 있었다.

갈막잔등으로 향하는 언덕길 모퉁이를 돌아서니 한낮의 햇빛을 받아 한층 더 달궈진 콘크리트 위에 권투 자세를 취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단지 이 길을 걸었을 뿐이야.’

내 말을 이해한 듯 사마귀는 길 한쪽으로 물러났다.

만나서 반가웠어.’

나 때문에 놀라지 않았지.’

길 위에 인사말을 남기고 나는 다시 길을 걸었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낯선 만남이 나의 마음에 가냘픈 흥분을 일으켰다. 바람에 흔들리는 길섶의 풀 소리가 내 심장 소리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땀에 젖어도 가벼운 오늘 하루의 무게를 야영장까지 짊어지고 걸었다.

 

사마귀
갈막잔등 전망대에서 바라본 다도해

 

바다와 인접한 야영장은 공기 냄새가 달랐다.

졸참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해의 위치가 변화면서 나도 그늘을 찾아 이동해야 했다. 도시의 삶은 자연이 어떻게 변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다. 나는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려고 자연과의 밀접한 접촉을 자주 하고 있다. 그만큼 자연에 내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지나치게 빠른 이동보다는 느린 속도로 자연을 느끼는 그런 여행이 좋다. 속도가 느린 만큼 감성의 온도는 더욱 높아진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백패킹과 독서 - 인생의 베일(서머싯 몸)
멍때리는 나
막걸리와 꽁치찌게로 저녁식사

 

슬그머니 어둠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젖어있던 고독감은 어둠이 더해져 더욱 짙어졌다. 고요하기 그지없는 이 밤은 여느 때와는 아주 달랐다. 이상한 느낌이 든다. 신경이 날카로워서 잠을 자고 싶지만 잠을 이룰 수 없다.

나무에서 떨어진 잔가지와 솔잎 등을 모아 바닷가에 불을 피웠다. 바싹 마르지 않은 솔잎 때문에 흰 연기가 피어났지만, 불꽃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뚜렷한 형태를 보이지 않는 불꽃은 지금의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달리도 야영장에서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의 종착지에 도달할 때까지 나는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달리도에서의 두번째 밤
불멍

불놀이야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달리도에서 두 번째 밤은 깊고 어두웠다. 이슬을 가득 머금은 텐트를 정리하여 배낭을 꾸렸다. 첫배를 타고 목포로 나갈 생각이다. 사위는 아직 어둡지만 나는 떠날 준비가 끝났다. 마지막 남은 비상식량인 사과를 베어 물고 길을 나섰다.

아직 가보지 않은 해안길을 따라 남부염전으로 향했다. 폐허가 된 북부염전과는 달리 남부염전은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일손을 놀리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섬을 방랑하는 즐거움을 아는가?

모험과 탐험에 대한 호기심과 용기가 있다고 방랑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방랑은 내가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떠도는 것이 방랑이고 달리도에서 내가 걸은 그 길이 방랑길이 되는 것이다.

나는 0831분 첫 배를 탔다. 나의 달리도 백캐핑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한적한 해안길
남부염전
슬로아일랜드를 타고 목포로 go

여전히 어스름이 깔린 새벽이다

텐트에서 눈을 떴다. 나는 결코 불면의 밤을 보낸 것이 아니다.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을 뿐이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어디인지

나는 지금 어떻게 밤을 보내고 있는지

어둠이 뒤덮고 있는 바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늘에 총총한 별들은 무엇을 비추고 있는지…….

그런 게 궁금했을 뿐이다.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벗어나 나의 행위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목포구등대
새벽에 홀로깨어

 

그렇게 새벽을 맞았다.

새벽이슬이 내리고 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해풍이 찝찝하게 내 피부에 와 닿는다. 새벽에는 쌀쌀했다. 청명한 가을밤, 별이 이처럼 빛나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검은 어둠 위에 별이 총총한 밤하늘과 대비되어 텐트주위는 휑한 느낌이 들었다.

태초의 사람들은 하늘에 흩어져 있는 별들을 그냥 바라보지는 않는다. 북두칠성처럼 별과 별을 이어서 하나의 별자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모습 속에 견우직녀와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적어 넣었다. 말하자면 별을 만들어낸 것은 하늘이지만 별자리를 만들어낸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 이어령, 책 한 권에 담긴 뜻(2022, p18)

 

별과 별자리 그리고 불켜진 텐트

 

아침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다도해는 자욱한 물안개가 하얗게 퍼져 있다. 긴 어둠의 터널에서 겨우 빠져나왔을 때는 해는 이미 뒷산 능선에 걸려 있었다. 아침 8시가 지나 산을 넘어온 햇살의 손길이 미치자 텐트 표면의 이슬은 알전구에 불이 켜진 듯 빛을 발하고 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신 후 나는 길을 나섰다. 차가 지나갈 수 있는 비포장도로는 바퀴가 지난 자리를 제외하곤 이름 모를 풀로 뒤덮여 있었다. 아름다운 오솔길이 아니라 방치된 비포장도로 그 자체였다.

나무에 가려 바다는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람을 타고 함께 날아온 공기에서 짠 내음만이 날 뿐이었다. 걷는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이기에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싶었다. 오늘 날씨는 걷기에 덥지 않고 선선했다. 숲길을 벗어나니 무화과밭 사이로 몽돌해수욕장이 보였다.

공기의 고요 속에 잔잔한 파도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몽돌은 거의 다 사라지고 고장이 나고 방치된 어선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목포구등대
달리도 야영장의 아침
해안길
몽돌해수욕장

 

시선이 바다를 향한다.

손으로 흉터를 긁듯 그런 괴로움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 나타날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칡덩굴 사이의 좁은 흙길을 벗어나며 여태껏 보지 못한 바다의 생물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작은 붉은 깃발처럼 숲과 바다를 가로질러 분주하게 이동하는 도둑게였다.

한참을 더 걸어 나는 도두마을에 도착했다. 담 너머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도로에 떨어졌다. 떨어진 감을 바라보며 나는 햇살이 골고루 비추는 마을의 공간 속으로 기어들었다. 농사일에 바쁜 마을 어르신들과 인사도 나누고 어망촌에서 지금은 폐허처럼 변한 황량한 염전을 바라보며 과거의 융성했던 염전 모습을 떠올려 봤다.

나의 상상 속에는 그 옛날 햇빛에 작열하는 반듯반듯한 염전의 반짝임을 볼 수 있었다.

 

칡덩굴
도둑게
율도와 맥도가 보이는 해안길
떨어진 감 - 도두마을
도두마을 들녘
폐허로 변한 북부염전
달리도항 바다

 

이른 점심을 먹었다.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동명마을에 도착했다. 문득 점심은 사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도의 유일한 식당, 숙자네식당에서 단돈 9,000원에 사 먹는 시골밥상은 그 어떤 만찬보다 식욕을 돋웠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길 수 있는 야외에 자리했다. 밥 한 숟가락을 먹고, 반찬 한 젓가락을 먹고, 막걸리 한모금을 마셨다. 낯선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렇게 밥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이 순간과 잘 어울렸다.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바로 이런 것이다.

바다는 살아있다. 바다는 고요하고 움직임도 없는데 잔잔한 파도에 정박한 배가 움찔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달리도항
숙자네식당 시골밥상

달리도에 도착했다.

내가 걸어야 할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된 해안 길이다.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어느 섬에나 볼 수 있는 그런 조금은 밋밋한 길을 걸었다. 넓은 바다에 지주식 김 양식장이 펼쳐져 있고 해안가 모퉁이를 굽이 돌아가는 길은 인적 없는 쓸쓸한 곡선으로 뻗어 있었다.

새로 지어진 마을회관

파란색·빨간색 양철지붕

이지러진 담벼락

밭에 길게 늘어선 비닐하우스

논의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벼

길가의 해당화…….

꾹 눌러쓴 모자 아래로 보이는 원달마을은 정적이면서 단출한 풍경이다. 나는 그 길을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었다.

 

달리도항
슬로아일랜드
해안길
원달마을 입구
원달마을

 

언덕을 올랐다.

희미하게만 보이던 언덕길은 전봇대를 따라 원달마을 뒤편의 갈막잔등이라 부르는 곳을 른다. 그 길은 가난하고 굴곡진 옛사람들의 삶의 길이었다. 뱃고동 소리가 가끔 들릴 뿐 길 위에는 고요의 무게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크고 무거운 바위가 길 한가운데를 막고 서 있는 듯한 막막함이 있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을 걸을 때 나는 고요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발소리에 놀라 갑작스럽게 날아오르는 꿩처럼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야영장에 헐떡이며 도착했다.

 

원달마을과 갈막잔등
갈막잔등에서 바라본 다도해
달리도 야영장
야영데크

 

텐트를 쳤다.

텐트 뒤로는 산이 둘러싸고 있고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의자에 앉아 있으니 정말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 옆에 벗어놓은 운동화와 그 속에 넣어둔 양말,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책

주파수를 찾고 있는 잡음 소리 내는 라디오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의 모습

배의 움직임이 만든 파도가 밀려와 해안가의 바위와 부딪치는 소리

텐트 옆 졸참나무 열매가 떨어져 굴러가는 소리…….

지금 내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다. 또다시 졸참나무 열매가 떨어졌을 때 나는 혼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곳은 고독의 자리이며 눈으로 볼 수 없는 무언가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 가을이 찾아오고 있었다.

 

내 텐트
잔잔한 파도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이지만 따가운 한낮의 열기를 피해 졸참나무 그늘에 숨어 있었다. 광활한 바다를 지나온 해풍을 맞으니 한결 기분이 상쾌해졌다.

알코올 중독은 절대 아닌데 캔이나 병에든 것을 보면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 결국 유혹에 빠지고 만다. 특히 소주병보다 캔맥주나 병맥주를 보면 그 안에 든 액체를 내 위장에 쏟아버려야 직성이 풀린다. 입안을 가득 채운 맥주가 내 좁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하나의 예술적 행위이다. 천천히 마실수록 예술적 감흥은 더욱 짙어진다.

나는 빈 맥주캔을 바라보며 앉아 있을 뿐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마저 떠나버리면 이곳은 누가 찾아오겠는가?

 

낮술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석양이 만들어낸 몽환적이고 황홀한 광경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가을 하늘의 청명한 구름을 삼켜 버리는 어둠의 물결이 밀려왔다. 낮 동안 불타오르던 해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면서 수줍어하는 첫날 밤 새색시의 연지곤지 찍은 볼처럼 광활한 하늘을 검붉게 물들였다. 나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말없이 노을을 바라보며 자연의 신비에 관해 골똘히 생각해본다.

내가 달리도에 있는 까닭은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아름다운 석양에 타는 저녁놀을 보기 위해서다. 넓은 공간에 나의 작은 텐트가 나의 종착지인 셈이다.

아름다운 석양을 보고 집으로 향하는 날이 나의 방랑이 끝나는 날이다.

 

달리도 석양
달리도 백패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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