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67일간의 제주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다.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다. 유성온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석역에서 하차했다. 6번 출구로 나가 오송행 B1 버스를 탔다. 세종 도심을 관통하여 40여 분 만에 오송역에 도착했다.

공항행 버스를 기다렸다.

배낭은 벤치에 올려놓았다. 가는 곳이 다른 버스가 들어왔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분주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청주공항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창문 틈으로 생기있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버스는 바람을 가르며 공항에 도착했다.

 

 

김장비닐 안에 배낭을 넣었다.

온라인 체크인을 이미 했기에 수화물로 배낭을 맡겼다. 평소 배낭 무게보다 4kg이나 적은 8kg이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캠핑장비만을 가져왔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보안 절차를 받으러 갔다.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보조배터리, 랜턴, 라디오, 물은 에코백에 담겨 있었다. 1분도 지나기 전에 보안 절차가 끝났다. 탑승장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연착 없이 바로 탑승이 시작되었다. 탑승권을 확인하는 기계의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탑승구로 느지막하게 향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탑승은 이미 끝났다. 짐을 선반에 넣는다고 길게 줄 서게 되는 일도 없었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진에어 승무원의 움직임이 활기찼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항상 웃고 있는 표정이란 걸 눈동자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비행기가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몸이 흔들거렸다. 승무원들은 안내방송을 진행되고 있었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28년 전에 군 복무했던 활주로를 행하여 비행기가 이동 중이었다.

벨 소리가 울렸다.

, , . 이어서 승문원의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좌석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동체는 흔들림이 없었다.

굉음과 함께 앞으로 달려가던 비행기는 바퀴가 활주로를 벗어났다. 이 순간 엔진 소리를 제외한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양력을 받아 상승만 하던 비행기는 이내 수평을 유지했다.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진 후 기내의 공기는 소음과 함께 안정을 되찾았다.

햇살이 눈에 부셨다.

경량 재킷을 입고 있기엔 더웠다. 청명한 하늘은 아니지만, 햇살이 창을 통해 기내로 들어왔다. 비행기는 780km/h로 허공을 가르며 움직였다. 도시, , 하늘, , 바다, 구름, 나는 창밖의 풍경변화를 보고 그 속도를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35C 선반 번호를 확인했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오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멈춰섰을 때 내 좌석은 아기 의자처럼 보였다. 3열 좌석 가운데에 앉은 그는 체격이 우람했다. 엉덩이는 좌석에 꽉 꼈고 무릎은 앞 좌석에 닿았다. 그는 한 치의 여유 공간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는 창밖만을 바라봤다.

그는 좌석의 불편함을 참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가끔 몸을 좌우로 움직였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야 했다.

마침내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바로 좌석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서자 그는 한결 편안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비행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즐거운 제주여행 되시길.

 

 

눈치채지 못했다.

수화물을 맡기고 보안 절차를 통과한 후 탑승을 기다렸다. 탑승이 시작됨과 동시에 탑승구에 긴 줄이 생겼다. 나는 줄 서는 걸 싫어한다. 평소처럼 계속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통로좌석을 선택하는 건 조금이라도 늦게 타기 위한 나만의 선택이었다.

탑승구로 향했다.

손에 들고 있는 검정 가방을 제외하고는 흰 모자, 흰 마스크, 흰옷, 흰 신발이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떤 잘못도, 어떤 거리낄 일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35C, 나는 선반의 번호를 확인하자마자 좌석에 앉았다. 그녀가 나를 지나쳐갔다. , 나도 모르게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안전띠를 매려고 몸을 움직이다가 좌석 틈으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내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과연 우연일까?

마침내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나는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렸다. 근데 내가 왜 그래야 했지.

 

 

비행이 끝났다.

우리 비행기는 곧 제주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중략)”승무원의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회전하는 동안 제주 시가지가 점점 크게 보였다. 이륙할 때와 비슷한 굉음을 내며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제주에 발을 디뎠다.

올해 첫걸음이었다. 해마다 3~4번 왔지만, 올해는 몇 번이나 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수화물로 보낸 배낭을 찾았다.

이제 어디로 갈까?

정해진 곳은 없었다. 10분여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무작정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 가는 곳 중 한 곳이 내가 머물 비박지가 될 것이다. 제주 비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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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꾸었다.

지금보다 어릴 적에 더 많은 꿈을 꾸었다.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여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악몽을 종종 꾸었다. 악몽을 꾼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오줌을 싸고 말았다. 졸지에 오줌싸개가 된 것이다.

하늘을 나는 꿈도 꾸었다.

나비처럼 유유자적하게 꽃과 하늘 사이를 날아다녔다. 마음만 먹으면 꿈속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꿈속은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를 모르는 대다수를 위해 나를 소개하겠다. 나는 꿈을 꾸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살아있다는 것에 원초적 행복을 느낀다. 오늘날처럼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 순수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

예전에 그랬다는 말이다.

누구도 나를 길들일 수 없다. 내 신조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악습은 따르지 않는다. 예외는 없다. 내 신조에 어긋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는 늘 행복한 꿈을 꾸며 그 꿈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

 

 

어린 시절이 그립다.

꿈을 꿀 수 있는 그때가 그립다. 삶이 다른 두 세상을 살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 행복한 꿈을 꾸었다.

내 이름은 문성식이다.

나는 대전 유성에서 태어났다. 유성에서 초, , 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다녔다. 유성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 이후 베트남,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지금은 일과 모험과 여행을 적절하게 공유하며 나 하고픈 대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

 

 

내 맘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버릇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휴가철 전이나 후에, 주말이나 공휴일 말고 평일에, 나는 해마다 여행을 떠났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

15년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제주도에 갔다.

3월 초에는 오름에 올라 봄바람을 맞았다. 5월 말이나 6월 초에는 백패킹을 하며 제주 자연을 느꼈다. 9월 말이나 10월 초에는 곶자왈을 걸으며 숲 향기를 맡았다. 12월 초, 중순에는 눈 덮인 한라산에 올랐다.

 

 

처음엔 그랬다.

여행은 신발이 닳도록 낯선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다녀야만 했다. 나의 발자취가 허무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남들에게 자랑하는 보여주기식 여행이 힘들고 피곤했다. 여행을 다닌다고 삶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주 찾고 오래 머물렀다.

호젓하게 앉아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았다. 노을에 물들어가는 바다의 몸부림을 볼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새 소리를 통해 숲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현실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숨통이 트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나의 꿈은 내가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것은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고, 하고자 하는 것은 글쓰기이다.

생각을 글로 쓰고 있다.

하루 세 끼를 먹듯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 있다. 습관처럼 볼펜을 쥐고 메모지에 끄적거린다. 숨을 쉬듯 한 글자씩 써 내려 가다 보면 어느새 말하는 것처럼 생각이 글로 표현된다. 여행기나 단편을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도 난 떠날 준비를 한다.

가본 적은 없으나 들어본 적은 있는 장소로 향할 것이다. 내 앞에 어떤 여행지의 모습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여행은 경험과 더불어 추억을 남긴다. 나는 여행을 통해 꿈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나에게 여행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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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과 다른 점이 없었다.

125,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서관을 나왔다. 왕복 8차선 도로의 인도를 걸었다. 수년 동안 보아오던 흔한 거리의 풍경이 펼쳐졌다.

10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사이 태양은 조금 더 높이 떠올랐다. 햇살이 지표면으로 엄청난 광선을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이 순간 계절이 변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햇볕은 따뜻했다.

2월의 어느 수요일, 하늘은 구름 한 점도 없다. 모든 게 밝고 고요하며 바람마저 향기롭다. 향기는 새롭지 않았다. 오랫동안 맡아오던 익숙한 냄새였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햇살의 온기가 열린 창문 사이를 통과하여 실내로 들어왔다. 바람의 향기에 햇살의 열기가 더해져 방안으로 퍼져나갔다.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떡볶이는 가래떡에 채소 등을 넣어 볶거나 끓인 음식이다. 유튜브(youtube)에서 떡볶이를 검색했다. 백종원의 요리 비책을 보고 황금비율 양념장 제조법을 습득했다.

주방에 들어섰다.

냄비에 물을 붓고 진간장, 설탕, 고춧가루를 섞은 뒤 양배추와 대파를 잘게 썰어 넣었다. 뽀글뽀글 끓어오를 때 삶은 달걀과 어묵을 넣고 졸이기 시작했다. 떡볶이 고유의 색깔이 드러나고 특유의 향이 코를 찔렀다.

 

 

떡볶이를 먹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기 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양치질을 했다. 입안이 상쾌해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에 자전거를 탔다.

선글라스로 바꿔 쓰고 두꺼운 장갑을 꼈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 안장을 장갑 낀 손으로 닦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안장을 닦았다.

 

 

햇볕 속으로 뛰어들었다.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굴렸다. 한참 동안 그렇게 했다. 가고 싶은 곳을 가서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왔다. 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수목원에 도착했다.

수목원 가장자리를 천천히 걸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쪼개지듯 빛의 파편이 쏟아졌다. 추운 겨울은 천천히 물러가고 있었다.

 

 

남은 오후를 집에서 보냈다.

혼자 집에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다. 할 일이 있었고 방해받기 싫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때때로 라디오를 듣거나 낮잠을 잤다.

마당으로 나갔다.

자갈이 깔린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 지붕 위까지 올라간 감나무를 바라보았다. 이파리를 떨군 가지는 외로움이 가득 박혀 있었다. 오후였지만 마당은 그늘져 서늘했다.

 

 

도로의 밤은 환했다.

어두운 도로는 가로등이 밝혔다. 가로등은 왕복 8차선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졌다. 도시에는 어둠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골목의 밤은 어두웠다.

어둠 속을 말 없이 천천히 걸었다. 굉음을 지르며 요란하게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바라봤다. 매캐한 경유 냄새가 골목까지 끼쳐왔다.

 

 

졸음이 몰려왔다.

오늘 하루의 일들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몸 안의 긴장감이 빠져나가고 몽롱함이 찾아왔다. 더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넓은 방 한쪽 구석에 누웠다.

방 안에는 책상, 작은 옷장 2, 탁자 2, 40인치 텔레비전이 있었다. 미닫이 유리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탁자 위 조명을 껐다. 고요한 몸짓으로 어둠에 녹아들어 잠들었다.

이 모든 일이 수요일 하루에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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