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잤다.

그래 봐야 오전 6시가 막 지났을 뿐이다. 욱신거리는 종아리를 손으로 주무르며 텐트에서 나왔다. 카누와 시에라컵을 들고 정수기로 갔다. 온수 버튼을 누르고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았다. 카누를 컵에 부었다. 커피 입자가 물에 녹아들면서 순식간에 검은 아지랑이가 나타났다.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금방이라도 햇빛이 비처럼 쏟아질 것 같았다.

햇반과 라면을 끓였다.

파김치를 곁들여 느긋하게 아침을 먹으면서 어젯밤 마시다 남은 막걸리로 반주를 했다. 아침 후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거나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변함없이 괭이갈매기는 날아들었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우리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해는 공기를 뜨겁게 데우기 시작했고 우리는 나무 그늘에 앉아 한가한 아침을 즐겼다.

 

휴식
청명한 하늘
괭이갈매기

 

한낮이 되어 일주 버스를 타고 도동에 왔다.

관광객들이 비좁은 골목을 배회하며 무리를 이루고 걸었다. 이사부 초밥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지만 예약하지 않아 먹을 수가 없었다. 어제 브레이크 타임(Break Time)이라 못 먹었던 만원의 행복을 다시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사장님께서 아는 체를 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뷔페식이라 음식도 다양하고 맛도 좋아서 풍족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K는 초밥을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나는 모든 음식을 다양하게 먹었다.

점심 후 호박 막걸리를 구매했다.

하루 만에 다시 나타난 우리를 보고 반가우셨던지 앉은 자리에서 막걸리 한 병을 두 번에 걸쳐 전부 따라 주셨다. 꿀꺽꿀꺽 목 넘김이 정말 좋았다. 술은 역시 낮에 먹는 술이 최고였다. H 마트에 들러 참외와 방울토마토를 샀다. 도동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도넛과 꽈배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제보다 두 개 더 많은 6개씩 2봉지를 구매했다. 물론 나는 설탕을 듬뿍 뿌려달라고 했다. 어느새 에코백이 가득 찼다. 2시간의 짧은 도동 외출을 이렇게 마쳤다.

 

일주버스
만원의 행복
도동 호박막걸리 이송옥할머니

 

학포야영장으로 돌아와 익숙한 텐트를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잠깐의 도동 방문은 알차고 실속있었다. 도동에서 사 온 호박 막걸리, 꽈배기와 도넛, 방울토마토와 참외를 꺼내놓고 의자에 몸을 맡겼다. 두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들었다. 파도가 부르는 손짓을 거역할 수 없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학포해변으로 내려갔다.

철썩철썩, 촤르르

한낮의 학포해변은 스노클링(snorkeling)을 하는 사람들과 스킨스쿠버(skin scuba)를 배우는 사람들,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었다. 학포해변은 모래는 없고 오직 몽돌만이 가득했다. 나는 바다에 반사된 햇살에 눈이 부셔 고개를 숙였다.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몽돌 해안에 앉아 있었다.

 

학포 몽돌해변

 

밖에서 보는 바다는 잔잔해 보였다.

바다는 내게 목욕탕 같은 곳이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물장구를 치던 어릴 적 놀이터인 셈이다. 바다의 수면은 따뜻한 온탕 같고 바닷속은 차가워 냉탕 같았다. 맨발에 느껴지는 몽돌의 촉감은 부드러웠지만,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미끄러웠다. 바닷속의 물살은 거칠었고 파도는 흰 거품을 일으키며 해안으로 밀려들었다. 맨몸으로 수영 중인 나도 파도에 밀려 해안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학포해변은 울릉도 서쪽으로 시야가 트여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수상/수중 레포츠를 즐긴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드넓은 바다에 갇혀 있는 것이다. 괭이갈매기가 바위에 앉아 우리를 희롱하다 드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학포 몽돌해변_수영, 스노클링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바다의 짠 내가 없어지자 몸이 한결 산뜻해졌다. 수영복도 잘 빨아서 양지바른 곳에 널어놓았다. 따뜻한 커피를 마신 후 매트를 깔고 그늘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어둠은 서서히 찾아왔다.

수영 후 지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참치 범벅(참치를 겨자 소스에 비빈 음식)을 만들었다. 밥 한 수저에 참치 범벅을 올린 후 깻잎으로 싸서 먹었다. 담백한 맛, 단맛 짠맛이 궁합이 좋았다. 옆 텐트에서 골뱅이 무침과 김치전을 주셨다. 호박 막걸리를 안 마실 수가 없었다.

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 때문에 그늘을 찾게 되지만 해가 지면 풀벌레 소리와 새의 지저귐을 시점으로 기온이 서늘해졌다. 나는 랜턴을 켜 놓은 텐트 안에서 그 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밤의 이야기는 내일 또 계속될 것이다.

 

학포마을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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