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를 가는 날이 밝았다.

새벽부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집을 비우는 동안 큰 문제가 생기지 않게 사전조치를 취해야 했다. 40년도 넘은 오래된 단독주택에 살다 보면 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보수를 해야만 한다. 아침을 먹기 전인데도 온몸이 땀으로 젖어버렸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날씨는 눈부실 정도로 화창하고 더웠다. 더운 정도가 너무 지나쳐 모든 것이 다 녹아버릴 것 같았다. 아직 6월도 안 되었는데 올여름을 어떻게 넘길까 살짝 걱정되었다. 점심을 먹고 샤워를 했다. 어젯밤 대충 챙겨둔 백패(backpack) 장비들을 배낭에 넣었다. 갈등은 항상 이 순간에 찾아왔다. 배낭여행을 하다 보니 무게를 고려해서 배낭에 장비를 챙겨야 한다. 장비를 가지고 갈까 말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백팩장비

 

대전역에서 기차를 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기차역은 도착한 사람들과 떠나려는 사람들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학생, 아장아장 걷는 아기 손을 잡은 젊은 부부, 휴가를 즐긴 뒤 복귀하는 군인, 데이트를 즐긴 후 이별하는 연인, 중절모를 쓰고 낡은 양복을 입고 있는 70대 초로의 노인 등 각자의 용무를 위해 기차역을 찾은 것이다.

1년 만에 타는 기차였다.

11자 철로를 빠르게 움직이는 기차의 흔들림은 이번 울릉도 여행을 더욱 설레게 하고 있었다. 지저분한 창문 너머로 보이는 기차 밖 세상은 뜨거운 열기로 점점 끓어오르고 있었다. 5월 말인데도 독기를 품은 해는 강렬한 빛을 세상에 계속해서 내리쬐고 있었다. 기차속도와 비례하여 사라져가는 풍경이 내 인생의 슬라이드를 보는 듯 애틋하기만 다가왔다.

 

대전역

 

해가 진 후에 기차는 포항역에 도착했다.

나는 동대구에서 합류한 K와 함께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듯 기차는 사람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기차역 대합실을 벗어나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낮의 열기가 밤까지 이어지고 있다. 셔틀버스를 타고 포항 영일만항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어두워진 거리엔 가로등과 네온사인만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드디어 뉴씨다오펄(NEW SHIDAO PEARL)과 마주했다.

배는 조명을 받아 더욱 위세 등등하게 보였다. 배를 보고나니 뱃멀미는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뱃멀미 안녕.’ 곧 승선이 시작되었고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인파가 사라질 때쯤 유유자적 배를 탔다.

 

 

좌석은 6인실 7516_2였다.

샤워실과 화장실까지 갖추어진 2층 침대 3개의 6인실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6인실처럼 꾸며져 있어 울릉도 여행을 한층 더 실감이 나게 했다. 출항까지는 아직 30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출항 전에 잠이 들면 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침대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엔진이 점화되고 스크루의 회전이 빨라질수록 배의 흔들림이 점점 잦아졌다. 이런 불규칙한 흔들림은 내 감각을 일깨우고 있었다. 배가 일정 속도의 추진력이 생겼을 때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배는 불빛 한점 없는 망망대해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울릉도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다.

 

6층 6인실(화장실 및 샤워실)
5층 식당 및 공연장
뉴씨다오펄(NEW SHIDAO PEARL)

나는 꿈을 꾸었다.

지금보다 어릴 적에 더 많은 꿈을 꾸었다.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여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악몽을 종종 꾸었다. 악몽을 꾼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오줌을 싸고 말았다. 졸지에 오줌싸개가 된 것이다.

하늘을 나는 꿈도 꾸었다.

나비처럼 유유자적하게 꽃과 하늘 사이를 날아다녔다. 마음만 먹으면 꿈속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꿈속은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를 모르는 대다수를 위해 나를 소개하겠다. 나는 꿈을 꾸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살아있다는 것에 원초적 행복을 느낀다. 오늘날처럼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 순수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

예전에 그랬다는 말이다.

누구도 나를 길들일 수 없다. 내 신조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악습은 따르지 않는다. 예외는 없다. 내 신조에 어긋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는 늘 행복한 꿈을 꾸며 그 꿈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

 

 

어린 시절이 그립다.

꿈을 꿀 수 있는 그때가 그립다. 삶이 다른 두 세상을 살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 행복한 꿈을 꾸었다.

내 이름은 문성식이다.

나는 대전 유성에서 태어났다. 유성에서 초, , 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다녔다. 유성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 이후 베트남,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지금은 일과 모험과 여행을 적절하게 공유하며 나 하고픈 대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

 

 

내 맘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버릇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휴가철 전이나 후에, 주말이나 공휴일 말고 평일에, 나는 해마다 여행을 떠났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

15년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제주도에 갔다.

3월 초에는 오름에 올라 봄바람을 맞았다. 5월 말이나 6월 초에는 백패킹을 하며 제주 자연을 느꼈다. 9월 말이나 10월 초에는 곶자왈을 걸으며 숲 향기를 맡았다. 12월 초, 중순에는 눈 덮인 한라산에 올랐다.

 

 

처음엔 그랬다.

여행은 신발이 닳도록 낯선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다녀야만 했다. 나의 발자취가 허무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남들에게 자랑하는 보여주기식 여행이 힘들고 피곤했다. 여행을 다닌다고 삶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주 찾고 오래 머물렀다.

호젓하게 앉아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았다. 노을에 물들어가는 바다의 몸부림을 볼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새 소리를 통해 숲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현실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숨통이 트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나의 꿈은 내가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것은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고, 하고자 하는 것은 글쓰기이다.

생각을 글로 쓰고 있다.

하루 세 끼를 먹듯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 있다. 습관처럼 볼펜을 쥐고 메모지에 끄적거린다. 숨을 쉬듯 한 글자씩 써 내려 가다 보면 어느새 말하는 것처럼 생각이 글로 표현된다. 여행기나 단편을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도 난 떠날 준비를 한다.

가본 적은 없으나 들어본 적은 있는 장소로 향할 것이다. 내 앞에 어떤 여행지의 모습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여행은 경험과 더불어 추억을 남긴다. 나는 여행을 통해 꿈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나에게 여행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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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과 다른 점이 없었다.

125,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서관을 나왔다. 왕복 8차선 도로의 인도를 걸었다. 수년 동안 보아오던 흔한 거리의 풍경이 펼쳐졌다.

10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사이 태양은 조금 더 높이 떠올랐다. 햇살이 지표면으로 엄청난 광선을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이 순간 계절이 변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햇볕은 따뜻했다.

2월의 어느 수요일, 하늘은 구름 한 점도 없다. 모든 게 밝고 고요하며 바람마저 향기롭다. 향기는 새롭지 않았다. 오랫동안 맡아오던 익숙한 냄새였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햇살의 온기가 열린 창문 사이를 통과하여 실내로 들어왔다. 바람의 향기에 햇살의 열기가 더해져 방안으로 퍼져나갔다.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떡볶이는 가래떡에 채소 등을 넣어 볶거나 끓인 음식이다. 유튜브(youtube)에서 떡볶이를 검색했다. 백종원의 요리 비책을 보고 황금비율 양념장 제조법을 습득했다.

주방에 들어섰다.

냄비에 물을 붓고 진간장, 설탕, 고춧가루를 섞은 뒤 양배추와 대파를 잘게 썰어 넣었다. 뽀글뽀글 끓어오를 때 삶은 달걀과 어묵을 넣고 졸이기 시작했다. 떡볶이 고유의 색깔이 드러나고 특유의 향이 코를 찔렀다.

 

 

떡볶이를 먹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기 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양치질을 했다. 입안이 상쾌해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에 자전거를 탔다.

선글라스로 바꿔 쓰고 두꺼운 장갑을 꼈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 안장을 장갑 낀 손으로 닦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안장을 닦았다.

 

 

햇볕 속으로 뛰어들었다.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굴렸다. 한참 동안 그렇게 했다. 가고 싶은 곳을 가서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왔다. 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수목원에 도착했다.

수목원 가장자리를 천천히 걸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쪼개지듯 빛의 파편이 쏟아졌다. 추운 겨울은 천천히 물러가고 있었다.

 

 

남은 오후를 집에서 보냈다.

혼자 집에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다. 할 일이 있었고 방해받기 싫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때때로 라디오를 듣거나 낮잠을 잤다.

마당으로 나갔다.

자갈이 깔린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 지붕 위까지 올라간 감나무를 바라보았다. 이파리를 떨군 가지는 외로움이 가득 박혀 있었다. 오후였지만 마당은 그늘져 서늘했다.

 

 

도로의 밤은 환했다.

어두운 도로는 가로등이 밝혔다. 가로등은 왕복 8차선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졌다. 도시에는 어둠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골목의 밤은 어두웠다.

어둠 속을 말 없이 천천히 걸었다. 굉음을 지르며 요란하게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바라봤다. 매캐한 경유 냄새가 골목까지 끼쳐왔다.

 

 

졸음이 몰려왔다.

오늘 하루의 일들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몸 안의 긴장감이 빠져나가고 몽롱함이 찾아왔다. 더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넓은 방 한쪽 구석에 누웠다.

방 안에는 책상, 작은 옷장 2, 탁자 2, 40인치 텔레비전이 있었다. 미닫이 유리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탁자 위 조명을 껐다. 고요한 몸짓으로 어둠에 녹아들어 잠들었다.

이 모든 일이 수요일 하루에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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