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본다.

표정은 정직하다. 속마음은 항상 표정에 드러난다. 속마음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다. 땅의 이력은 겹겹이 쌓인 세월의 층으로 알 수 있고 사람의 이력은 얼굴로 드러난다. 얼굴을 보면 나를 알 수 있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면 깨닫게 된다. 지난날의 내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자기가 누군지 알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내가 초상이란 제목의 글을 쓰는 이유는 나에게 정직하기 위해서 나를 글로 풀어보려는 것이다.

 

거울을 본다.

등뼈를 곳곳이 세우고 서서 고개를 좌측으로 돌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는 자태가 진지하고 엄숙하다. 운동화를 싣고 청바지와 흰색 오리털 재킷을 입은 모습이 단순하고 깔끔하다. 차림에서 벌써 성격이 드러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다가 길을 막으면 고이고 물길을 터주면 다시 흐른다. 나는 물처럼 순응하며 살 수 없다. 내 이름 속에는 나만의 성품이 숨어 살고 있다. 인생에서 견딜 수 없는 벽과 마주하게 되면 변화를 주어야 한다.

 

눈에 띈다.

말꼬리처럼 머리를 뒤로 묶은 단신의 남자는 이중섭 거리의 인파 속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퍼석하고 가는 머리카락을 빗질해 한 손으로 움켜쥐고 고무줄로 묶어놓았다. 묶이지 않은 앞 머리카락이 산들바람에 기분 좋게 흩날린다. 새치가 있는 갈색 곱슬머리다.

햇볕에 약간 그을렸지만, 여전히 맑은 얼굴빛을 안경과 마스크로 가리고 있다. 왼쪽 눈썹 끝이 말아 올라가는 눈썹을 가졌다. 안경 렌즈를 통해 보이는 두 눈은 쏘아보고 있는 듯한 강한 눈빛이다.

 

눈매는 부드럽다.

눈은 작은 타원형이고 쌍꺼풀이 없다. 흰 공막에 실핏줄이 군데군데 있지만, 홍채와 동공은 또렷하다. 강력한 눈빛에 비해 눈초리는 예리하게 처져 있다. 눈언저리에는 사선으로 금은 그은 듯 주름 자국이 있다.

작은 눈 사이로 콧마루가 길게 뻗어 있다.

곧게 내려오다 인중을 만난 콧날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안경을 오래 껴서 그런지 콧등에 안경 자국이 있다. 안경을 벗으면 눈과 콧등이 살짝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입술은 가늘다.

입술 선은 또렷하고 입술 색은 붉은색이다. 지그시 다문 입술에서 굳은 다짐을 엿볼 수 있다. 입을 꼭 다문 가는 입술 주위로 가는 수염이 보인다. 한올 한올 따로 자라는 수염은 빽빽하지 않고 부드럽다.

귀는 눈보다 아래에 위치한다.

귀는 작고 귓불은 둥글다, 왼쪽 귓불에는 귀걸이가 걸려 있다. 광대뼈는 튀어나오지 않고 볼살은 탱탱하다.

 

얼굴은 갸름하다.

얼굴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는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너무 가까이 쳐다보면 시야가 매몰된다.

지적인 인상이다.

나의 매력은 단순히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다. 흘깃 쳐다보는 사람들 속에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의연함에서 흘러나왔다.

언제나 맑은 얼굴빛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얼굴에 삶이 녹아있다. 지나온 내 삶에 고난이 많다고 해서 내 삶이 아닌가? 내 얼굴에 지나온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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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일상탈출을 꿈꾼다.

엎치락뒤치락 자다 깨면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고 별일도 없는 일상이 반복된다. 뻔한 일상은 나태한 생활의 연속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므로 항상 매 순간을 충실히 보내고 싶다.

나는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돈이 많다고 훌쩍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비로소 떠날 수 있다. 신선한 자연과 만나게 되면 한껏 몸을 움직여도 지친 마음은 자연이 알아서 다독여줄 것이다.

 

내 삶은 내 것이 되어야 한다.

타인에게 의지하는 삶은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한다. 내가 떠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창문 밖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즐기기 위하여, 느리게 방랑하며 나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곳에 머물러 안주하는 것은 내 삶이 아니다. 거친 세상 속에서 육체적으로 힘들더라도 영혼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생각이 고정될 수는 있어도 고정된 아름다움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달리는 삶의 시간을 감당하려면 주위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관찰자의 충만한 눈을 가져야 한다. 들여다본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성장을 멈춘 한겨울, 눈 덮인 산을 오를 때 나는 살아 있는 걸 느낀다. 한 걸음씩 내딛는 발자국마다 세월을 견딜 준비를 하게 된다. 게다가 아주 강렬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 욕망은 걸음마다 부풀어 팽창한다.

 

감각의 문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외부의 모든 것들이 오감을 통해 내 몸으로 스며들면 온통 기분 좋은 떨림으로 가득 차게 된다. 내 최초의 감각을 깨운 것은 캠핑이었고 감각을 확장하고 발전시킨 것은 숲길이다.

숲은 내 영혼의 휴식처다.

고요한 숲길에 검은 그림자가 숲을 누비며 움직인다. 숲은 자연의 소리로 나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자 자연에 푹 젖어 들게 된다. 나는 숲을 좋아하고 숲은 그런 나를 반겨준다.

 

나는 숲에서 땀을 흘리는 육체노동이 좋다.

비가 와도 폭염주의보가 발령돼도 눈이 와도 한파주의보가 발령돼도 전국 어디든 숲길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육체는 볼펜이고 숲은 공책이 된다. 육체는 내 생각을 전달받아 움직이게 되고 숲에는 내 생각이 표현된 숲길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숲길을 개척하기 위해 미지의 숲으로 들어서는 모험을 즐기지만 길을 잃을까 봐 걱정하지는 않는다. 숲은 순수의 공간이고 끊임없이 향기로운 내음을 생산하는 순환의 공간이다.

 

내음이 없는 숲은 사막처럼 삭막하다.

이미 닦여져 있는 숲길에서는 많은 사람의 체취가 섞여 있다. 이런 곳에서는 내 감각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인적이 거의 없는 덤불 숲속을 정신없이 헤맨다.

나뭇가지에 뺨을 맞기도 하고 가시에 온몸이 긁히기도 한다. 숲속에서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지 푸석거리는 소리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난다. 어떤 시련이 있어도 좋은 숲길을 찾고자 하는 내 마음은 한결같다.

 

오늘도 나는 일상을 탈출하여 숲에 왔다.

숲 내음 가득한 바람이 부드럽게 나를 감싸 안아준다. 길동무인 바람이 인도하는 곳으로 숲속을 걷는다. 숲속을 거닐 때 내 마음은 고요하고 차분해진다. 계곡물이 흐르고 새소리가 들리는 바위에 앉아 명상에 빠져든다. 들숨과 날숨의 호흡 속에 숲과 하나 되는 이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내가 걸었던 그 길이 나만의 숲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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