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쯤 서천의 벗으로부터 문득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벗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본래에도 자신만만하고 활달한 벗이긴 하나, 그날의 목소리는 더욱 기운찼다.

서천에 한번 와야것다.”

그려

그렇게 오랜만에 벗을 만난다. 그 잘난 전화기 덕분에 목소리로만 간간이 인사치레를 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벗을 본 것이다.

왔어, 현장에 가봐야 할 거 아녀?”

그려

그렇게 찾은 곳이 종천면에 있는 치유의 숲이다. 치유의 숲 입구에 저수지가 있고 그 둘레를 따라 무장애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본래의 업무인 유아숲 체험시설은 뒷전으로 밀리고 오랜만에 만난 벗은 노린재나무의 가치며, 저수지 옆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신갈나무 고목의 삶터며, 저수지 주변에 살고 있는 수달 이야기며, 끝없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그의 말 끄트머리에 주석을 달 듯 그대의 이야기가 옳으며, 저 정도 크기의 노린재나무면 족히 수십년의 삶을 살아냈을 법하고 또 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하여, 신갈나무 고목의 옆에서 무심한 듯 졸고 앉아 있으며 좋겠다는 이야기며, 수달이 살고 있는 이 삶터가 얼마나 중요성이 있는지 등속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내고 있었다.

오십을 넘은 중년의 두 사내는 마술에 걸린 듯 그렇게 끊임없는 수다를 풀어내며, 오후 시간을 저수지 위에 드리워진 산 그림자에 던지고 있었다.

세시쯤인가 사무실에 도착한 그가 묻는다.

막걸리 할 껴, 소주 할 껴?”

소주

그렇게 우리 둘은 서천특화시장 2층에 자리를 잡았다. 활어회와 쭈꾸미가 상 위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서로의 술잔을 채우기 바빴다. 그렇게 바삐 오가는 술잔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허공으로 유영을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야기거나 오랜만에 만나니 정말 반갑다는 등의 이야기는 없다. 그저 수다스럽게 변한 두 중년의 남정네는 활어회가 남을 만큼의 수다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오랜만의 낮술은 기어이 해를 서쪽 바다로 던져 버리고 말았다.

 

며칠 후 다시 인제 내린천에 들었다. 원대리 입구의 원대교에서부터 피아시까지 내린천의 비탈을 따라 걷은 걸음이었다. 인제의 산들은 여지없이 뒤축을 잡아당기고, 폭설에 부러진 고목들과 가시덤불들은 좀 쉬었다 가라고 옷소매를 당긴다.

얼마쯤이나 갔을까, 기어이 나타나서 길을 막는 암벽에 결국 걸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늘 길 아닌 길을 걸으며 쏟아내는 한숨같은 소리를 오늘도 결국은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 있었다. 결국 나무와 바위에 구걸을 하며 겨우 내린천으로 내려왔다. 거만하게 곧추선 암벽에 그만 기가 죽어 천변에 지천으로 깔린 너럭바위에 주저 앉았다. 여울목인 그곳은 무심히 흐르는 내린천이 아니었다. 물이 많지않은 시기인데도 내린천의 노여움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한 만큼의 소리를 내며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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