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가 아직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다. 온돌방이 뿜어내는 열기를 식히려고 창문을 조금 열었는데 찬 공기가 확 밀려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바람은 포악한 괴성을 질렀다. 어제와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오전 7시가 지나 아침을 먹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온몸을 강타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게 아니라 몽둥이로 때리는 것 같았다. 정말 인정사정없이 불어댔다. 이렇게 바람을 맞다가는 온몸에 멍이 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어제와 달리 너무 추웠다.

오픈 시간 전이라 커피는 포기하고 모텔로 돌아왔다. 모텔 방의 온기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약속 시각까지 온돌방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일정대로 목적지에 못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It’s my life(중략).”

전화벨은 고요한 모텔 방의 정적을 깨웠다. 성두가 10분 후에 도착한다고 해서 배낭을 메고 모텔 입구로 나갔다. 2022 12월에 규슈여행을 함께 다녀오고 1 3개월 만이었다. 아침에 못 마신 커피를 사 들고 진남시장에 갔다. 점심때 먹을 회와 간식으로 먹을 토스트를 사서 차로 돌아왔다. 바람은 여전히 멈출 기미가 없었다. 차에서 토스트를 먹고 해안도로를 따라 백야항으로 향했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백야도 여객선 대기실은 굳게 닫혀 있었고 입구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A4용지에 적혀 있었다. ‘금일 기상악화로 인하여 입, 출항이 통제되었습니다. 061-686-6655 태평양해운.’ 이미 짐작했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때로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내가 처한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배가 뜨지 않는다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체 야영지를 찾아 백야도와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야영할 곳은 생각보다 많이 있을 테니 어떤 걱정도 들지 않았다. 우린 야영 전문가니까.

제일 먼저 백야등대로 향했다. 등대 아래 바닷가에 해양낚시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관광객이나 낚시꾼이 많이 찾는 장소였다. 다음으로 백호산 자락 남쪽 몽돌해변에 갔다. 상화도와 하화도가 한눈에 들어왔고 인적이 없어 한적하고 좋았다. 하지만 탁 트인 곳이라 바람을 막아주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화백해안길은 바다와 맞닿은 곳이었고 물결이 바람에 출렁거리며 연신 흰 물거품을 만들었다. 바람이 멈추길 기다리는 어선은 파도가 만들어낸 너울에 육중한 몸체가 좌우로 흔들렸다. 힛도는 마땅한 야영지를 찾을 수 없었다. 힛도에서 산을 넘어 삼섬으로 걸어가 봤지만 마을 공동양식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안포리 해안가를 따라 안일초등학교까지 바닷가마을을 돌아다녔다.

어느덧 오후 2시가 지났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백야등대에 왔다. 이곳이 우리에겐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었다. 바람을 피해 전망대 한쪽에 아기자기한 자리를 마련했다. 양지바른 곳이라 따스한 햇볕이 내리쬈다. 소주가 아닌 위스키에 회를 먹기 시작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든든해지니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미 마음속에 야영지를 정했기에 급할 이유가 없었다. 해가 지기 1시간 전에 그곳으로 이동했다. 서풍이 불어오고 성난 파도를 일으키며 포효하는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바다와 맞닿은 절벽 위의 옛 해안초소가 있던 자리를 야영지로 정했다. 야영준비를 거의 다 마쳤을 때 저 멀리 낭도 넘어 고흥반도 쪽으로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저녁을 먹고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어두워진 바다를 바라봤다.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위태롭게 서 있는 해송이 바람을 막아주었고 야영지 주변의 찔레 덩굴이 우리를 보호하듯 사주경계를 섰다. 바닥은 칡덩굴과 낙엽들이 깔려 푹신한 감촉이 포근함을 더해줬다. 무엇보다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조용하고 아늑한 장소라 좋았다.

야영지의 텐트는 아늑한 요람처럼 작은 공간이지만 그 무엇보다 평온했다. 매트 위에 놓인 침낭 안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강풍이 만들어낸 성난 파도 소리와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의욕 없이 지내는 일상의 느린 흐름 속에 갑자기 큰 파도가 몰아쳤다. 야영하다 보면 현실 속에서 표류 중인 나를 일깨우며 삶의 방향을 잡고 더 적극적으로, 더 멀리, 더 깊이 있게 행동할 수 있게 만든다.

나는 야영을 통해 신체의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자연으로 들어가 내적 성숙을 확장하고 있다. 자연 속에 헐벗은 채 내동댕이쳐졌을 때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살기 위한 처절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된다.

과연 삶이란 무엇일까? 또 그 삶을 살아가는 나는 누구일까?

 

카톡이 온 것은 어제 오전 910분이었다. 2월도 오늘이 지나면 하루밖에 남지 않는다. 세월의 흐름이 연령대의 속력으로 흐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의식하면서도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서서히 곪아가는 종기 같은 내 마음을 한순간에 해방해준 카톡이 그런 순간에 온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이 빠른 나이기에 순식간에 모든 것을 결정했고 일정을 조율했다. 삼일절 연휴가 코앞이지만 어렵사리 왕복 기차표를 예매했고 내일 묵을 여수 숙소도 예약했다. 멈춘 것 같은 심장이 다시 요동치며 뛰기 시작했을 때의 쾌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세심하게 계획된 여행도 좋지만, 때론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이 삶에 더 많은 활력소를 준다. 자 떠나자. 매화가 활짝 핀 남쪽 섬으로. 이제 남은 건 백패킹 배낭을 꾸리는 일만 남았다.

 

 

가슴이 설레는 아침이다. 이것저것 백패킹 장비를 찾느라 아침부터 분주히 집안을 돌아다녔다. 텐트, 침낭, 우모 복, 매트, 탁자, 의자, 버너, 코펠, 가스, 랜턴, 핫팩, 위스키, 견과류, 라면, 햇반, 김치, 고추 절임, 커피, 세면도구를 방에 늘어놓고 테트리스 오락게임을 하듯 배낭에 차곡차곡 넣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소일거리삼아 집에 필요한 식재료를 사기 위해 두 곳의 마트를 다녀왔다. 하늘은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지만 비는 아직 내리지 않았다. 점심을 먹은 후 여수로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이런 짐이 하나 더 늘겠는걸.

큰 배낭을 메고 우산을 쓴다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평일 한가한 오후였지만 지하철은 이상하리만치 사람들로 북적였다. 집을 나온 지 40분 만에 서대전역에 도착했고 다시 40분을 기다리고 나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연휴 전날이라 기차는 만석이었다. 다행히도 어제 기차표를 급하게 예약할 때 앞 좌석을 선택할 수 있어 큰 배낭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서대전에서의 짧은 정차를 마친 여수행 무궁화호 1503은 소름 돋을 정도로 큰 쇳소리를 내면서 출발했다. 3시간 4분간의 긴 장편 영화를 보는 이제 막 보기 시작한 듯 창밖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점점 빠르게 사라지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바뀐 것은 구례구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기찻길 주변으로 매화가 봄을 알리듯 활짝 피어있었다.

 

 

여천역에서 내렸다. 비가 내려 해가 지기 전인데도 어스름이 깔린 분위기였다. 큰 배낭을 메고 우산을 쓴 채 빗속을 걸었다. 오늘 묵을 모텔은 여수시청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2km 남짓을 직진만 하면 된다. 버스를 탈 때 수반되는 기다림, 버스 내 공간확보, 도로정체를 겪는 것보다 육체적으로는 힘듦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체크인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진남시장으로 향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왔다식당으로 향했다. 뜨끈한 내장국밥에 여수생막걸리까지 배부르게 저녁을 먹었다.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는 비가 그친 상태였다. 어둠이 장악한 세상에 항거라도 하듯 여수 거리는 밝은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수시청 옆 골목의 밤 경치는 휘황찬란했다. 날씨는 온화했고 산책하듯 골목을 걷다 보면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선소유적지 안내판을 봤고 자연스레 발걸음이 가막만 최북단으로 향했다. 이곳은 고려 시대부터 선소마을을 형성하여 배를 만들었던 장소로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이순신 장군이 나대용 장군과 함께 거북선을 만든 곳이다. 또한, 뒤로는 병사들의 훈련장과 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는 망마산이 자리한 천혜의 요새이다. 밤이라 인적이 없어 더욱 쓸쓸한 선소유적지, 배를 매어두던 계선주가 있는 자리에서 바라본 야경이 아름다웠고 지금도 그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내가 다시 모텔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8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603호 문을 열었을 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온기는 나를 둘러싼 모든 액운을 스르륵 녹여버렸다. 간단한 샤워 대신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몸을 담갔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 순간이었다. 이보다 더 좋은 기분은 오늘 없었다. 모텔의 온돌방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요를 깔고 최후의 만찬을 즐기듯 몸을 지진다. 이때까지 몇 시간 후에 찾아올 기상변화를 짐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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