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거리 여행자다. 나는 집이 좋지만, 집에 있으면 곧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나는 거리의 현실을 직시하지만, 꿈속에 살려고 늘 노력 중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여행은 생활이며 생존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어느 장소를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여행은 떠나고 싶을 때 과감히 떠날 수 있는 결단력만 있으면 된다. 여행 장소를 보는 시각은 사물을 얼마나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은 다 다르고 다른 인생의 길을 걷는다. 인생이 그러한데 더군다나 똑같은 여행은 있을 수 없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여행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완벽한 여행 준비는 없다. 시험공부 하듯 여행을 준비하면 세세한 것에 대한 순간의 몰입을 방해받는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마음에 울림을 주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다. 일단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상이 잘 내려다보이는 비행기 창가 좌석에 앉아 농도 짙은 어둠이 깔린 창공을 손바닥으로 지우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밖을 내다봐도 창공에 불빛 한점 보이지 않는다. 비행기는 어둠보다 더 진한 암흑 속을 통과 중이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제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바다를 발밑에 두고 머리로 창공을 이고 있어야 한다. 일주일 후에 다시 돌아갈 바다를 건너고 있다.

 

한라산(관음사~성판악, 영실~어리목)

 

비가 내려 마음이 심란하다. 관음사에서 백록담으로 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무모해 보인다.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비바람은 점점 강력해진다. 악천후로 고생하면서도 결국 정상에 올랐다. 또렷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숙소에서 젖은 등산화를 말리며 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눈이 내린다. 새벽 눈 같은 마음으로 복잡하고 어지러운 내 마음을 눈처럼 희고 깨끗하게 씻어 주었으면 한다. 갑작스러운 추위로 도로에 쌓인 눈이 얼어버렸다. 6시에 숙소를 나왔지만, 도로통제로 인해 영실 주차장에는 11시쯤 도착했다.

세상은 온통 흰 눈으로 덮여있다.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눈의 충돌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흰 눈이 세상을 향해 자유낙하를 하고 있다. 나무에 쌓인 눈을 두 손으로 모아본다. 솜이불처럼 가볍지만 차갑다. 바람결에 흩날리지 않으려고 서로서로 팔짱을 끼고 버티고 있다. 한라산에서 눈을 보니 강아지처럼 그저 좋다.

눈보라에 사방이 난리가 났다. 제정신 못 차릴 정도로 차가운 눈보라의 춤사위가 예사롭지 않다. 나는 장갑을 끼고 모자를 눌러쓴 후 주머니에 장갑 낀 손을 넣었다. 산 아래는 고요하고 맑은데 산 위로 올라갈수록 날린 눈과 눈보라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산을 뒤덮은 수천만 개의 눈이 얼어 얼음꽃이 피었다. 눈이 괜히 온 게 아니었다. 바람에 길게 뻗은 눈길 위를 걷는다. 내가 가야 할 길이다. 겨울 산을 올라봐야 산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

어디서 오는 바람인가? 부드러운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고 지나간다. 나무에 눌어붙은 흰 눈에서 맑고 투명한 냉기가 흘러나온다. 산은 높고 햇살은 더욱 눈에 부시다. 무서운 기세로 폭설이 몰아친 후에 찾아온 짧은 평화의 순간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이 기쁨을 누린다. 한 줄기 빛이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땅에 안착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함박눈이 내려 세상을 온통 하얗게 뒤덮어도 한줄기 햇빛만으로도 눈을 녹여 땅속에 스미게 한다.

해발고도가 높아 춥지만, 마음은 시원하고 흰 눈은 차갑지만, 가슴은 포근하다. 눈은 하늘에서 흐르고 풀덤불 위에도 나무에도 상고대 꽃이 피는 자리가 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사는 모습이 의젓해 보인다. 구름을 뚫고 터벅터벅 산을 올라 그 좋은 자리에 왔다. 흰 이불 덮고 미동도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은 듯 고요함이 가득하다.

 

이중섭 미술관

 

나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가? 눈은 뜨고 있는데 아무것도 본 것이 없다. 항상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하다. 어떤 일을 결정짓지 못하고 정신없이 분주한 생활을 하다 보니 필요한 것만 보게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한 행동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분주해도 여유는 순간마다 찾아오는데 잡으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사물을 자세히 보면 묘한 기쁨과 쾌락을 얻을 수 있다.

작품은 작가의 정신세계가 추구하는 것을 눈의 호기심을 위해 재현하는 것이다. 눈은 작가의 정신세계의 일부 또는 전부가 반영된 작품을 보는 것이 된다. 예술성은 작가의 정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아름다움은 오직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작품에 기울이는 관심으로 드러난다.

 

서귀포 앞바다

 

폭설이 내린 뒤 하늘의 기척은 말쑥하고 아름답다. 버스를 타고 중문에 왔다. 바닷가 기암절벽이 조금씩 무너진 자리를 보고나니 마음이 내려앉는다. 기온은 따뜻하지만, 파도는 크게 일렁인다. 얼굴을 때리는 바닷바람은 뼛속까지 한기가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외투의 옷깃을 세운다. 해변의 모래는 스펀지같이 푹신하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자국이 찍혀다 이내 사그라진다. 희고 길게 뻗은 햇빛이 구름을 가로지르며 바다 한가운데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길을 걷다가 길을 잃었다. 바람이 온몸으로 세상을 흔들리게 만드는 동안 태양도 온몸으로 세상에 빛을 뿌리고 있다. 서귀포 앞바다 가를 지나가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훔쳐보고 있다. 멋들어진 호텔과 쭈뼛쭈뼛 서 있는 워싱턴 야자수가 누가 지나가나 눈길도 주지 않고 몰래 쳐다보고 있다. 이런 곳을 내가 지나가고 있다. 비로소 세상을 담은 바다를 들여다본다. 오늘 하루도 금세 지나간다.

오늘 하루 잘 보냈는가? 짧은 겨울 해가 서산 뒤로 저물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밤이 찾아오면 오늘도 넉넉하지 않은 마음 살피려고 달을 보며 서 있다. 모든 것이 풍족하게 넘쳐나는 세상살이도 남의 호흡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부족하게 보인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라는 속담처럼 나만의 호흡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나의 삶을 알차게 살아야 세상이 아름답다.

 

목욕합시다

 

여행은 몸으로 하는 공부다. 글씨나 숫자로 하는 공부보다 몸으로 하는 공부가 발뒤꿈치에 굳은살이 박인 것처럼 오래 기억된다. 여행할 때 사람들의 감각은 고양이처럼 예민하고 생쥐처럼 빠르게 반응한다. 특히 눈은 세상을 그저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세상의 사물을 깊게 들여다보는 눈이어야 한다. 반짝이는 두 눈빛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여행자가 풍경의 아름다움에만 심취해 있으면 하수이고, 풍경과 어우러져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으면 고수이다.

제주에서 일주일 동안 혼자 목욕을 했다.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며 비에 목욕했다. 윗세오름을 오르면서는 세상을 하얗게 만든 눈으로 목욕했다. 해안가를 걸으면서 몸이 날아갈 듯한 바닷바람에 목욕했다. 해가 뜬 한낮에는 따뜻한 햇볕에 목욕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어서 제주 오셔서 같이 목욕 안 하시렵니까? 올해가 힘들다면 내년에 꼭 함께 목욕합시다.

 

 

한라산 산행 - 영실매표소에서 어리목까지



어제는 성판악에서 관음사로 산행하면서

멀리 양 어깨를 길게 펼치고 앉아 있는 위용이 장엄한 한라산과

동능정상에서 백록담의 아름다움을 아주 잠깐이지만 구경했습니다.






전날 서귀포에서 숙박한 우리는

숙소인근의 천년맛집에서 시래기국으로 아침식사를 한 후

130번 버스를 타고 중문초등학교에 왔습니다.


중문초등학교에서 교차로 방향으로 200m 걸어가면 1100도로입구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740번(중문사거리-제주터미널)을 타고 영실매표소로 가면 됩니다.





영실매표소에서는

도로옆 목재테크로드를 따라 걷게 됩니다.


2.5km 목재테크로드는 지루할수도 있지만

도로 주변의 숲을 감상하면서 걷다보면 어느덧 영실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 구간을 걷기 싫으시다면

영실매표소에서 택시를 타고 영실까지 가면 됩니다.





영실의 해발고도는 1,280m이고

윗세오름을 오르기 위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영실은 윗세오름에 도달하기 위한 최단코스의 시작점입니다.


산행이 시작되면 우거진 소나무 숲이 나타납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게 잘 자라서 솔숲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소나무가 울창한 솔숲 옆에는 아름다운 계곡도 흐릅니다.

여름이면 시원한 물소리가 산속 에어컨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영실기암과 비폭포 - 2013년 6월]

[2016년 12월]



한여름 폭우가 내리고 난 후에는

영실 기암절벽 사이로 폭포가 흘러내려 장관을 이루기도 합니다.


영주십경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영실 기암은

한라산의 원시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곳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보다 더 청명한 날은 없을 듯 싶습니다.

주변풍광이 선명하고 아주 또렷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데크계단을 따라 걷고 있는 발걸음에

미지의 힘이 작용하여 새로운 기운이 저절로 솟아나고 있습니다.


가만히 쳐다만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야... 좋다!!!



[병풍바위]

[오백나한]



한라산 정상의 남서쪽 산허리에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들이 하늘로 솟아 있는 모습을 병풍바위라 부릅니다.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과 흡사하다 하여 영실이라고 일컫는데

병풍바위위 능선으로는 오백나한(오백장군)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춘화, 녹음, 단풍, 설경 등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모습과

울창한 수림이 어울려 빼어난 경치를 보여주는 명승지입니다.





2012년 훼손된 등산로를 정비하여

새롭게 목재데크 계단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용공간과 보존공간의 명확한 구분은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영실기암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영실기암의 아름다움과 견줄만한 것이

주변 이곳저곳에 솟아오른 세계 최대의 오름 군락지입니다.


오름은 제주어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작은 화산체를 말합니다.

제주에는 360여개의 크고 작은 오름이 있으며 한라산천연보호구역 내에는 46개의 오름이 있습니다.





구상나무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분포하고 있는 특산종입니다.


한라산 해발 1300m 이상 고지대에 구상나무 숲이 있으나

현재는 나무의 활력이 저하되어 말라 죽는 현상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구상나무 숲이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오랫동안 한라산을 아름답게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구상나무 숲의 아름다움에 취해 걷다보니

어느덧 선작지왓이라고 부르는 초원지대가 나타났습니다.


'서 있다',

작지'돌',

은 제주 사투리로서 '밭'을 뜻합니다.





저멀리 백록담 화구벽도 보입니다.


봄에는 돌 틈사이로 피어나는 산철쭉과 털진달래가 붉게 꽃의 바다를 이루고,

여름에는 하얀 뭉게구름과 함께 녹색의 물결을 이루어 산상의 정원을 연출하고,

가을에는 작은 나무들이 단풍을 만들어내고,

겨울에는 눈부신 아름다운 설경을 만들어내는 장소입니다.






시원한 한라산의 물맛을 느끼면서 노루샘을 지났습니다.

노루샘은 사제비샘과 더불어 영실-어리목 코스의 오아시스 그 자체입니다.


위세오름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시야에는 윗세오름 대피소가 들어왔습니다.





12월초순이지만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습니다.


바람막이 점퍼차림에

목에는 니트워머를 착용하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윗세오름에서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남자

넌 누구냐???






산행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배낭을 벗었습니다.


윗세오름에 올랐으니

대피소에서 컵라면(1,500원)을 사서 꼭 먹고 하산을 해야 합니다.

컵라면을 들고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라산 산행의 묘미는 언제나 컵라면입니다.






컵라면도 먹으면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습니다.


위세오름 주변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천천히 둘러보고 어리목으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윗세오름에서 만세동산까지는 목재데크를 따라 걸어가면 됩니다.

 





만세동산은 예전에 한라산에 우,마를 방목했을 때

높은 곳에서 말이나 소들을 감시했다고 하여 망동산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고도차가 거의 없는 고산평원으로

노루의 출현 빈도가 높은 편이라고 하지만 오늘은 노루가 목격되지 않았습니다.





제주시내와 바다, 오름 풍경을 구경하면서

돌계단을 따라 하산을 하면 사제비동산을 지나게 됩니다.

사제비동산은 원래 아름다운 숲길과 산철쭉, 털진달래가 장관을 이루는 초원입니다.

 

2012년 4월 24일 발생한 산불의 흔적은

지금은 다행이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릿대 등 하층식생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사시사철 그 물줄기가 그칠줄 모르는 사제비샘은

노루샘과 더불어 영실-어리목 코스의 오아시스 그 자체입니다


사제비동산부터는 경사지의 하산길이 시작됩니다.

경사지의 하산길에는 웅장한 서어나무도 만나게 되고 신갈나무 숲도 지나게 됩니다.





이 숲은 녹음이 짙을때는 청량함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낙엽이 지고 겨울이 되면 또다른 것을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신갈나무, 서어나무 등 키 큰 나무의 가지에 붙어 사는 반기생식물인 겨우살이는

숲이 겨울잠에 빠져 있을 때 빨강, 노랑의 신비한 보석같은 열매를 맺어 겨울을 나는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됩니다.





경사진 등산로가 끝나가고 어리목이 가까우면

한밝천 Y계곡에 난 어리목 목교를 만나게 됩니다.


한밝천 목교 개통으로 등산객의 안전한 산행과

갑작스런 호우로 인하여  하산도중 고립 방지와 아울러

인적단절로 하천의 생태자원보호와 동물의 이동통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목교를 지나면

어리목은 지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영실과 더불어 길목이라는 뜻의 어리목은

한라산을 찾는 탐방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입니다.





어리목에서도 도로옆 목재데크를 따라

약 1km 걸어서 내려가면 1100도로 어리목버스정류장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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