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이맘때에 인제를 갔었다.

어느 지역을 간다고 말하는 순간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나는 오늘 인제에 간다. 늘 만나던 노은동 약속장소에서 K형과 만났다. 이른 아침이라 단골 카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선택된 곳이 파리바게뜨였다. 장거리 여행을 하기 전 승용차에 휘발유를 넣듯 커피는 우리에게 에너지를 제공한다.

월요일인데도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유성에서 출발하여 청주, 오창, 진천, 충주, 홍천을 거쳐 인제로 향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후텁지근하게 느껴지던 바깥 기온은 점점 내려갔다. 아침 하늘은 아이가 생떼를 부린 듯 흐렸다.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것처럼 엷은 먹색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입김을 세게 불면 엷은 먹색 구름이 흩어져 맑은 하늘이 나올 것 같았다.

 

통영 바닷가의 하늘

 

1년 만이다.

원통에 있는 다들림막국수에 왔다. 과속도 하지 않았는데 약속 시각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일행을 기다리며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입구에 간판이 없었더라면 그냥 시골의 여느 집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작년에 왔을 때도 이곳이 식당이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현관 앞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식당의 수호신처럼 자리하고 있다.

맛집이 없는 고장은 없다.

인제에 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막국수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인제에 오면 막국수를 먹고 있다. 막국수는 춘천이 아니라 인제에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제에는 막국수 맛집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중 합강막국수, 다들림막국수, 방동막국수, 옛날원대막국수를 추천하고 싶다. 식당마다 고유의 육수 제조법이 있어 막국수 맛이 다 다르다.

 

다들림막국수
식당내부

 

비빔 막국수 3, 물 막국수 1, 편육 주세요.

내가 인제에 올 때마다 물 막국수를 먹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모닝커피를 마시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행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미리 주문했다. 점심시간 전이라 식당에는 우리만 있었지만 금방 모든 자리가 다 찰 것이다. 면을 뽑는 기계음이 들리고 주방의 분주한 움직임은 다양한 소리로 알 수 있었다.

모든 음식은 색감이 있다.

음식은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맛이 달리 표현된다. 맛으로 표현되는 음식은 주관적이지만 색감으로 표현하는 음식은 객관적이라 더 좋다. 두부는 노르스름하고, 수육은 밝은 회색을 띠고, 상추는 녹색이고, 김치는 빨간색이다. 막국수의 달걀은 하얗고, 오이는 밝은 연두색이고, 면은 옅은 자색이고, 김 가루는 까맣다.

 

두부
편육(15,000원)과 기본반찬
물막국수 7,000원
비빔막국수 8,000원

 

막국수를 먹으면 좋은 이유가 있다.

물 막국수는 시원하고 비빔 막국수는 매콤하다. 비빔 막국수를 먹다가 육수를 넣어 물 막국수로 먹을 수도 있다. 면은 탱탱하지만 부드럽고 얼린 살얼음 육수가 시원하다. 막국수를 먹으면 덤으로 편육(수육)까지 먹게 된다. 과식과 폭식을 해도 배가 더부룩하지 않다. 식후 금방 배가 꺼져 또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막국수를 먹으면 온몸이 서늘해진다.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개인적인 취향을 고려하여 식당마다 양념을 따로 준비해 두고 있다. 막국수에 설탕, 식초, 겨자, 들기름을 넣는 것에 대한 고민은 행복한 고민이다. 막국수를 먹는 순간만큼은 모든 일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막국수를 먹는 행위에 마음을 다하고 색감을 즐기며 먹으면 된다. 그냥 천천히 육수를 마시면 머릿속의 번잡함은 소리 없이 사라진다.

막국수를 먹은 뒤 카드로 계산을 했다.

은행 계좌에 존재하는 돈이지만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돈을 사용했다. 존재하지만 사용할 때는 없는 돈을 쓴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무엇을 먹고 다니든지 나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의 총량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옛날원대막국수
곰취수육 20,000원
곱배기 막국수 10,000원

 

한계령을 넘었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도시 생활로 찌든 내 안의 번뇌를 깨끗하게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내 모든 발걸음에 선명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걸어온 발자국이 아쉽지 않게.

도로에 한여름 냄새가 난다.

한낮의 불볕더위가 공기를 뜨겁게 달궈 시큼한 냄새가 난다. 살아 있는 식물은 메말라 앙상해지고 그림자의 그늘은 점점 좁아진다. 햇빛의 딱딱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원통에서 한계령을 넘어 필례약수에 왔다.

이곳에 인제 천리길이 있다. 길에도 목적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인데 목적 없이 만들어진 길이라면 쓸모없는 길이 되고 만다. 더군다나 걷는 사람에게 허무감을 주기 쉽다.

 

한계령
한계령휴게소
점봉산 자락(오색방향)

 

지난주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불볕더위라 낮에 햇빛을 받으면 그늘을 찾게 된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 천둥소리와 함께 먹장구름이 산릉선을 넘어와 순식간에 폭우가 쏟아졌다. 눈앞의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렸다.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끄듯 리모컨으로 비를 멈추게 하고 싶었다.

인제에서의 밤은 길었다.

여느 때처럼 저녁을 먹고 술자리가 이어졌다. 늘 보는 사람들이지만 마치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밤늦게까지 왁자지껄했다. 밤이 길었던 만큼 아침은 금방 찾아왔다. 산을 감싸고 있는 안개 같은 흰 구름이 산들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아침 기온은 높았으나 체감온도는 훨씬 낮게 느껴졌다.

 

인제 전통시장

 

인제의 산은 푸르다.

푸른 숲, 내가 찾아간 필례약수의 주변 숲도 푸르렀다. 불볕더위를 이겨낸 찰피나무와 까치박달 나무가 열매를 흐드러지게 맺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필례약수를 가다 보면 찰피나무 가지 틈으로 맑은 하늘이 숨어 있다. 구름을 뚫고 빛이 대지에 닿으면 음지가 사라지고 양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양지는 음지를 없애버린다. 마치 음지는 가짜이고 양지가 진짜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낮의 따가운 햇볕이 도로 위로 쏟아졌다.

햇빛이 장맛비처럼 강렬하게 내비친다. 햇빛을 머리에 이고 걷자니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떨어진다. 아지랑이가 꿈틀거리는 필례계곡에는 사람들이 나무 그늘서 삼삼오오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필례계곡
필례약수
찰피나무
까치박달나무

 

숲속에 앉아 계곡을 흘러가는 물을 바라봤다.

굳었던 몸이 이완되면서 마음마저 차분해진다. 내 호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내 안의 계곡 속에 빠져들었다. 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편안함이 나에게 찾아들었다. 맑은 물처럼 내 의식도 점점 맑아지고 있다.

이곳만큼 숨쉬기 좋은 장소도 없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숲을 이뤄 우거져 있고 맑은 계곡이 사시사철 흐른다. 무심코 쉬는 숨이 아니라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복식호흡을 해야 한다. 호흡에 집중하면 마음과 몸이 편안해진다.

 

5단 폭포

 

숲길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숲길 조사가 고되고 힘들수록 숲길을 더 놓은 길이 될 수 있다. 숲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숲 안을 들여다보면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난공불락의 요새 같이 지형이 험한 숲에 숲길 조사자의 열정이 더해지면 불가능할 것 같은 숲길 노선에 서광이 비치며 온기로 채워진다.

덤불 숲, 흔들리는 이끼긴 돌, 무더위,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 갈증, 산모기의 공격. 느릿느릿 움직이는 뱀, 모든 역격을 이겨내고 지금 내가 내딛는 걸음이 좋은 숲길이 된다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

 

필례약수에서 바라본 귀둔리 야산

더 많은 경험을 하려면 여행을 떠나는 것이 가장 좋다. 나중에 떠난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절대로 못 떠나게 된다. 생각했다면 무조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감정의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보이는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돈은 경험을 사는 데 써야만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아무튼

 

공기가 차갑다. 해가 떠서 세상을 눈부시게 비추는데 바람이 불어와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하늘이 파랗다. 아무튼, 하늘이 파란 건 좋지만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갖는 건 싫다. 엄청 조용한 아침이다. 아침의 조용함은 자연 속에서밖에 있을 수 있는 조용함이다.

느슨해진 계절을 즐기는 가을이다. 가을 단풍의 색채는 눈을 만족하게 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새벽에 내린 안개비가 먼지를 뒤집어쓴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 버렸다. 아침 햇살이 자작나무숲을 비출 때 오랜만에 나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 기분을 아는가? 신선한 공기를 오감으로 느꼈을 때 전해지는 감각의 떨림이 좋다. 자작나무숲을 바라보는데 어느 필터가 필요하겠는가? 순수한 아침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만이다.

바람은 한쪽으로만 불지 않는다. 바람결에 자작나무의 몸짓이 만든 청량한 소리가 들려온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똑같은 소리는 하나도 없다. 소리의 파동이 미세하지만, 차이가 있다. 감각이 무뎌져 가는 요즘, 받아들려고 노력하니 다시 거짓말처럼 감각이 살아났다. 영롱한 햇빛이 지면을 내리쬐고 있다. 눈을 뜨니 눈부시다. 너무도 강렬한 빛이라 태양과 맞서길 거부한다. 고개를 숙여 항복을 선언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아주 가끔 그런 순간이 나를 압도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 그렇다. 강렬한 햇빛을 받은 자작나무 흰 나무껍질이 거울처럼 빚을 반사하여 내 몸을 비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무대 위 가수처럼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방향을 잃은 여행자처럼 한동안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루아침에

 

계절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제까지는 녹음이 짙은 나뭇잎에 불과했는데 하루아침에 빨간 사과처럼 발그레하게 단풍이 들었다. 그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지. 기쁨은 찰나의 순간에 느끼게 된다. 내가 단풍을 갈망하기에 진정으로 자유롭게 갈망하기에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숲을 물들인 것이다. 나무가 만든 단풍은 세월의 흐름과 같이 조금씩 변화하는 삶의 예술 작품이다.

나는 바다만큼 산도 좋아한다. 여름밤 모래 해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아 파도가 만들어낸 물의 속삭임을 듣곤 한다. 가을 낮 단풍든 우듬지 나뭇잎이 바람과 함께 산중 춤판을 벌이면 나무 아래에서 하염없이 혼자 서 있곤 한다. 파도와 같이 나무도 귓속말로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누가 더 좋은데.’바다에는 모래와 파도가 있고, 산에는 야생화와 나무가 있다.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언제나 일상을 벗어난 느낌이 든다. 일상을 벗어나는 것은 언제나 멋진 일이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 좁은 곳에서 살았다. 세상에 나가기 위해 나는 지금의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드넓은 세상에 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심신의 역량을 최대치로 키울 보다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여행은 적어도 넓은 세상으로 가는 하나의 통로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을은 짐을 꾸리고 여행을 떠나기에 아주 좋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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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존재는 자연에 있어 대역죄인이다. 자유로운 존재라고 주장하지만, 불법 활동으로 자연이 훼손되었으니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유전자 보호구역을 무단 침입하여 야생화를 짓밟고 쓰레기를 내버렸다. 자연에 피해를 준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기적인 자신의 욕구 충족이 우선이고 진정한 자연의 돌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연과 우리의 위치를 바꾸어 자연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은 무시무시한 파괴자로 보일 것이다. 자연은 해의 흐름에 따라 하루를 살지만,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고 하루를 산다. 자연은 언제나 그곳에 평화롭게 있었는데 인간이 갑자기 다가가니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위치를 바꾸어 생각함으로써 자연을 어떻게 보존해야 훼손을 덜 하게 될지를 알게 된다. 인식의 기준을 잠시 바꾸어 보아야 진정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곰배령 가는 길

 

곰배령으로 향하는 길은 닫혀 있다. 오직 허가받은 사람만이 강선마을을 지나 좁은 숲길과 계곡을 따라 걸어갈 수 있다. 노루귀, 괭이눈, 바람꽃, 개별꽃, 모데미풀, 제비꽃, 현호색, 미나리아재비, 한계령풀, 얼레지 등 숲에서 발견한 야생화는 경이롭다. 겨우내 숨어 지내던 식물들이 봄소식에 깨어나 생명의 빛을 발산하고 있다. 숲길은 좁고 자연은 시련에 훼손되었지만 완전한 만족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이 길을 따라 걷는다. 오랜 세월 버텨온 야생화가 만들어낸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 그 길에 있다.

맑은 날,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빛이 숲에 끝없이 펼쳐질 때 활짝 꽃을 피운 야생화를 본 적이 있는가? 야생화는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저마다의 색깔로 활짝 피어난다. 나는 야생화가 활짝 핀 숲속을 거닐고 있다는 것에 대해 신비함을 느낀다. 계절은 정해진 절기로 순환하면서 쉼 없이 변화하고 있다. 숲은 분주히 깨어나는 생명체들로 가득 차 있다. 나 또한 숲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자연에서 자유를 느낀다. 가장 원초적인 세계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느낌과 감각에 자극을 주어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늘 변화를 원한다.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은 자연에서 봄의 새싹, 야생화 등 역동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자연을 보고 진리 탐구를 하기보다는 미적 탐구를 통해 감성적으로 느껴야 한다. 자유를 꿈꾸는 사람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은 자연에서 찾아야 한다.

 

적당한 무관심

 

곰배령에 올라서면 평화로운 자연풍경이 펼쳐진다. 우뚝 솟아있는 나무 아래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점점 길어진다. 산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지키려면 적당하게 무관심해야 한다. 너무 지나친 관심은 자연에 고통을 줄 뿐이다. 쓱 스쳐보면서 마음속으로 감탄해야 진정으로 자연을 위한 것이다.

큰 산맥은 여러 갈래의 지맥을 품고 있다. 웅장한 산봉우리는 호주머니의 송곳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그 산이 어느 산의 봉우리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작은 봉우리가 없으면 큰 산맥도 없는 것이다. 곰배령에서 점봉산, 설악산 중청과 대청을 바라본다. 마음은 소박해지고 사사로운 욕심은 어느새 사라지게 된다.

 

아름다운 기억

 

세월과 함께 잊히는 것도 있지만 자연과의 추억은 세월과 함께 아름다운 기억이 짙어진다. 찾아오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사람과의 만남처럼 산이 정답게 느껴진다. 농익은 자연풍경이 계절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슬프도록 푸르고 싶은 하늘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자연과 사귀기 위해 이곳에 홀로 머물러야겠다. 자연은 홀로 있는 사람에게만 가슴을 연다.

 

기린에서 길을 들자면 방동리도 멀다. 도시의 삶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더 가야 방동리가 나오나? 할 것이다.

진동리는 그다음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동네가 진동리다. 초입에 들어서 한참을 가다 보면 아침가리계곡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온다. 여기인가 싶지만 어림도 없다. 오늘 가야 할 지표는 설피 마을, 부지런히 페달을 가속한다. 마치 군 경계 하나쯤을 넘었을까 하는 지루함이 몰려들 때쯤 조침령터널을 마주하며 좌회전을 한다. 설피 마을의 초입이다. 그렇게 깊은 골을 품고 사는 마을이 진동리다.

 

진동호를 돌고 돌아 말안장으로 훅 들어선다. 백두대간이다. 오늘은 단목령으로 길을 잡는다. 이렇게 부드럽고 두터운 대간이 있을까! 늘 대간은 가파르고 곧추서고 칼 능선으로 길잡이 노릇을 한 터였다. 너무 낯선 두터운 대간을 걷는다. 우뚝 선 나무들도 있지만 역시 대간이다. 제멋에 겨운 군상들이 대간을 호위한다. 제멋대로 생긴 그들은 나름, 모두가 백 년의 세월 동안 백두대간을 지키는 장군들이다.

대간은 이제 막 첫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다. 박새, 한계령풀, 노랑제비꽃 그리고 얼레지. 사이사이에 노루귀도 얼굴을 내민다. 아직은 이른 봄을 준비하는 대간을 따라 단목령에 들었다. 훅 들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나선 길에 두터움으로 다가오는 대간을 벅차게 안고 도는 하루가 간다. 대간의 오른쪽으로 보이는 양양의 바다는 덤이다.

 

다음날 다시 들어선 진동호의 산허리, 오늘은 조침령이다. 역시나 두텁고 평활한 산맥이 길라잡이로 나선다. 1000고지에서 삶터를 본다. 얼마쯤인가 걸음을 하였다. 대간을 호위하는 군상들은 제모습을 감추고, 겨우 살아낸 못생긴 나무들이 열병식을 한다. 그들의 삶터는 틈이 없다. 얽히고설키고, 내가 살아있음을 선포해야 하는 그들은 만 가지 모양으로 대간을 지키고 있다. 그렇게 허리를 감고 도는 바람을 벗으로 삼아, 아직은 서늘한 대간은 꿈을 꾼다. 왼쪽으로 보이는 양양의 바다는 오늘도 덤이다.

 

일주일 후에 다시 든 진동리, 오늘은 곰배령이다. 모두 '천상의 화원'이란다. 사실은 늘 꿈꾸었다. 곰배령, 곰배령, 곰배령. 탐방센터를 지나 계곡을 따라 길을 나선다. 초입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속새, 얼레지, 바람꽃, 투구꽃, 개별꽃, 애기괭이눈, 한계령풀 그리고 모데미풀. 사실을 고백하자면 알 수 없어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수백 가지다. 아직은 봄의 초입인 진동리에는 준비하는 봄의 무게가 더 깊다. 알 수 없어 부르지 못하는 그대들의 품에, 미안하지만 오늘도 걸음을 한다.

곰배령을 지나 능선에 든다. 고운 생명의 움틈을 발아래 두고 아직은 시린 거친 걸음을 걷는다. 머리가 시릴 만큼 진동리 능선의 4월의 바람은 거칠다. 얼마를 걸었을까, 저만큼에서 설악산 대청봉이 사람 좋은 웃음으로 고개를 내민다. '그래 설악산이구나, 네가 설악인 거야!‘

오랜만에 방동리 너머 진동리의 삶을 산다. 거친 산들의 아래에, 그렇지만 초라하지 않게 두터운 삶을 살아내는 진동리. 백두대간도 진동리를 지날 때면 거친 걸음을 멈추고 따스하고 두터운 품에 잠시 숨을 쉰다. 그 품속에서 우리는 함께 숨을 쉰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누구나 유토피아, '이 세상에 없는 장소'를 꿈꾸며 세상을 살고 있다. 현실 상황이 복잡하고 힘들수록 이상에 대한 염원을 끝없이 추구하려고 한다.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유토피아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삶이 즐거워지려면 마음과 상반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육체와 정신의 조화 속에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 나 좋을 대로, 자유와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면 어디에도 없는 곳과 만나는 순간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떠돌이 여행자

 

봄의 산뜻함이 좋고 여름의 싱그러움이 좋다. 가을의 풍요로움이 좋고 겨울의 총명함이 좋다. 내 인생은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었다. 인생은 떠돌이 여행자다.

나는 가끔 도보여행하면서 경험주의자가 되고자 한다. 세상의 모든 것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가장 멋진 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은 마음의 길을 따라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사는 것이다.

훌쩍 떠나온 인제 여행이 기쁘다. 공기가 바람에 녹아 솜사탕같이 달콤한 한밤 공기는 싱그러운 냄새를 품고 있다. 지금 이곳은 흐르는 시간이 느려지는 기분이다.

 

숙취

 

간밤에 마신 알코올의 취기가 아직 남았는지 머리가 무겁다. 술이 덜 깼는데 날씨가 화창해 왠지 슬픔이 몰려온다.

함께한 상대와 분위기에 따라 주량은 달라진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지만 많이 마시면 마약과 같은 것이다. 숙취가 주는 지속적인 머리의 통증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을 주고 있다. 아침에 먹은 막국수의 소화되지 않은 것들을 원대리 야산의 급경사지에서 쪼그리고 앉자 비워내야만 했다.

 

숲을 보다

 

숲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내가 처음으로 본 것은 미세하게 자라고 있는 나무의 생명력이다. 숲속으로 더 들어가니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생명줄을 놓아버린 전도된 나무와 부러진 나무들이 있었다. 본시 아름드리나무들이 들어차 있었는데 폭설에 그 기상이 꺾이고 만 것이다.

숲의 햇빛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더욱 밝은색으로 지면을 비춘다. 바싹 말라버린 낙엽 사이에서 생명력을 키워낸 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숲에 들어왔던 햇빛은 다시 반사되어 숲을 빠져나간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변해 버린다.

 

천상의 화원

 

내가 돌단풍을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올망졸망 제각각 놓여 있는 돌들 사이에서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민 작은 생명체 같은 것이 있었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을 거로 생각하는 장소에 생명의 씨앗을 키웠다.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자연의 피사체의 사진을 조심스럽게 찍었다. 그것은 내가 본 백만 송이 돌단풍 중 하나에 불과했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돌이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돌단풍은 돌이 삶의 지표가 되는 것이다.

한낮의 태양은 하늘 높이 떠 있고 내린천은 미세한 거품을 일으키며 찰랑찰랑 흘러간다.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는 반대편 강기슭, 물에 빠지더라도 열정적으로 건너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봄날의 내린천은 돌단풍의 보금자리이고 물소리의 힘찬 외침 속에서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내린천

 

내린천은 물길이 트면 그 방향으로 흐른다. 어떤 가식적인 치장은 허용되지 않는다. 내린천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여주고 있다. 계절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기적과 흐르는 물로 인한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물살이 주는 공포 때문에 처음엔 별로 내키지 않았다. 오랜 산행으로 세숫대야에 찬물을 받아놓고 족욕을 하듯 그냥 발을 내린천에 담그고 싶었다.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바위에 철퍼덕 앉았다. 물이 주는 시원함에 잔뜩 취해서 세수도 했다. 오 맙소사. 1분도 안 지났는데 발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몸서리치며 얼른 물에서 발을 뺐다.

흐르는 물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물에 반사된 내 머리가 보인다. 이런 것을 보게 되면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내린천의 흐르는 물속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매우 친밀하고 떨어질 수 없는 친한 물고기와 물의 사귐인 수어지교(水魚之交)의 사자성어처럼 그걸 말로 표현하려 노력했지만,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인생

 

시간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세월은 흐르는 내린천처럼 쉬지도 않고 계속 흘러간다. 때로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완만하게, 때로는 급류를 만난 성난 강물처럼 거침없이, 마치 폭포수처럼 끊임없이 흘러내릴 뿐이다. 인생은 물처럼 흐르기 위해 사는지도 모른다. 흘러가는 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어느새 거대한 바다와 마주하게 된다. 바다는 물이 더해져도 흘러넘치지 않는다.

오늘도 내 인생은 내린천처럼 흐른다.

 

 

얼마 전쯤 서천의 벗으로부터 문득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벗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본래에도 자신만만하고 활달한 벗이긴 하나, 그날의 목소리는 더욱 기운찼다.

서천에 한번 와야것다.”

그려

그렇게 오랜만에 벗을 만난다. 그 잘난 전화기 덕분에 목소리로만 간간이 인사치레를 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벗을 본 것이다.

왔어, 현장에 가봐야 할 거 아녀?”

그려

그렇게 찾은 곳이 종천면에 있는 치유의 숲이다. 치유의 숲 입구에 저수지가 있고 그 둘레를 따라 무장애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본래의 업무인 유아숲 체험시설은 뒷전으로 밀리고 오랜만에 만난 벗은 노린재나무의 가치며, 저수지 옆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신갈나무 고목의 삶터며, 저수지 주변에 살고 있는 수달 이야기며, 끝없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그의 말 끄트머리에 주석을 달 듯 그대의 이야기가 옳으며, 저 정도 크기의 노린재나무면 족히 수십년의 삶을 살아냈을 법하고 또 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하여, 신갈나무 고목의 옆에서 무심한 듯 졸고 앉아 있으며 좋겠다는 이야기며, 수달이 살고 있는 이 삶터가 얼마나 중요성이 있는지 등속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내고 있었다.

오십을 넘은 중년의 두 사내는 마술에 걸린 듯 그렇게 끊임없는 수다를 풀어내며, 오후 시간을 저수지 위에 드리워진 산 그림자에 던지고 있었다.

세시쯤인가 사무실에 도착한 그가 묻는다.

막걸리 할 껴, 소주 할 껴?”

소주

그렇게 우리 둘은 서천특화시장 2층에 자리를 잡았다. 활어회와 쭈꾸미가 상 위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서로의 술잔을 채우기 바빴다. 그렇게 바삐 오가는 술잔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허공으로 유영을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야기거나 오랜만에 만나니 정말 반갑다는 등의 이야기는 없다. 그저 수다스럽게 변한 두 중년의 남정네는 활어회가 남을 만큼의 수다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오랜만의 낮술은 기어이 해를 서쪽 바다로 던져 버리고 말았다.

 

며칠 후 다시 인제 내린천에 들었다. 원대리 입구의 원대교에서부터 피아시까지 내린천의 비탈을 따라 걷은 걸음이었다. 인제의 산들은 여지없이 뒤축을 잡아당기고, 폭설에 부러진 고목들과 가시덤불들은 좀 쉬었다 가라고 옷소매를 당긴다.

얼마쯤이나 갔을까, 기어이 나타나서 길을 막는 암벽에 결국 걸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늘 길 아닌 길을 걸으며 쏟아내는 한숨같은 소리를 오늘도 결국은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 있었다. 결국 나무와 바위에 구걸을 하며 겨우 내린천으로 내려왔다. 거만하게 곧추선 암벽에 그만 기가 죽어 천변에 지천으로 깔린 너럭바위에 주저 앉았다. 여울목인 그곳은 무심히 흐르는 내린천이 아니었다. 물이 많지않은 시기인데도 내린천의 노여움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한 만큼의 소리를 내며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금산 인제 금산 인제 금산. 쳇바퀴치고는 좀 긴 걸음들을 무시로 옮기고 있었다.

 

인제에 들어 처음 찾은 곳은 상남면 미산동이다. 미산약수교 앞에 서서 개인약수를 품은 계곡을 바라본다. 올라가는 길이 눈에 선하고, 마음은 이미 저 앞으로 가고 있었다.

동행한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내린천에서 솟구치는 날카로운 바람에 흠칫 놀라 벌써 저만큼 나아간 정신을 끌어당긴다. 지역과 사람과 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아직은 찬 바람 속을 날고, 급히 한마디 보태느라 개인약수는 잊은 지 오래다. 그렇게 소개인동이며, 의식동 등을 돌고 돌아 인제의 짧은 걸음을 마쳤다.

다음날 곰배령을 찾아들었다. 기린면의 골짜기며 산봉우리들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림들이다. 오랜만에 스쳐 가는 그리운 풍경들, 방동리와 진동리의 골짜기들은 가만히 웅크린 채 숨죽여 봄을 준비하고, 곧추선 봉우리들은 아직 떠나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겨울을 무심한 듯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설피 마을까지만 겨우 걸음 하였다. 더 갈 수 없는 곰배령은 진부령 너머 해금강처럼 다음에 오라고, 좀 더 따스한 날에 걸음 하라고, 그렇게 그리움 짙은 손짓을 한다.

또 그리움이야! 허허허.’

 

다시 찾은 인제는 여전히 겨울을 털어내지 못하고, 제 죄인 양 새색시 걸음을 하는 내린천의 흐름은 시리게 곱다.

북사면에 기대어 사는 나무와 바위들은 여전히 추위에 떨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도 따스한 볕이 드는 남사면 나무들의 허물을 벗듯 허연 기운을 가지 끝으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래 얼마 남지 않은 게야!’

내린천을 따라 걸었다. 길 아닌 길을 걷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의 틀 안에서, 그 길이 결국 길벗들의 길이 되리라는 소망으로, 그렇게 그날도 거친 걸음을 하였다. 그래도 내린천을 곁에 두고 걷는 걸음이, 호위무사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변곡점마다 곁에 서서 지친 걸음을 다독여주는 인제의 봉우리들과 함께 걷는 걸음임에, 그날도 걸음만큼 행복했었다.

 

금산에 들었다.

천내리며, 길곡리며, 신안리며, 산안리 등을 돌고 돌았다. 제법 온기를 품은 볕이 골짜기마다 내려앉고, 삶터마다 작은 연둣빛 생명을 밀어 올리고 있다. 물론 잠깐 이는 바람 곁에는 아직도 찬 기운이 동행한다.

금산의 산들은 인제의 산들을 닮았다. 그 풍채와 상관없이 곧추선 봉우리들은 어깨를 으쓱대며 제 자랑질이 한창이다. 곧추선 만큼 깊은 것이 골짜기요, 그 걸음은 한없이 거칠어진다.

때론 한 걸음을 앞쪽에 놓지 못하고 주저앉을 때가 있다. 그 정도쯤 인제와 금산은 거칠게 닮았다. 그 길 아닌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길벗들의 길을 본다.

 

머지않은 날에 인제에 들 것이다.

이미 곰배령이며 백두대간의 걸음을 예정해 놓은 것으로 묶인 걸음의 서운함을 달래는 중이다. 작년 봄에 걸음 하였던 방태산의 가식 없는 선물 보따리들이 눈에 선하다. 얼레지, 바람꽃, 박새, 모데미풀, 연영초 등속은 기어이 백만 송이의 꽃으로 고운 화원을 그려내었다.

그만큼이 아니라도 좋다. 연둣빛 움틈이 시작되는 날 인제의 봄을 마중하러 갈 것이다. 오늘 금산에서 노란 첫봄을 보았다. 이미 남쪽에서 물밀 듯 밀려드는 봄소식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신안리 고운동 골짜기에 핀 생강나무꽃은 올해 나의 첫봄이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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