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인제 금산 인제 금산. 쳇바퀴치고는 좀 긴 걸음들을 무시로 옮기고 있었다.

 

인제에 들어 처음 찾은 곳은 상남면 미산동이다. 미산약수교 앞에 서서 개인약수를 품은 계곡을 바라본다. 올라가는 길이 눈에 선하고, 마음은 이미 저 앞으로 가고 있었다.

동행한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내린천에서 솟구치는 날카로운 바람에 흠칫 놀라 벌써 저만큼 나아간 정신을 끌어당긴다. 지역과 사람과 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아직은 찬 바람 속을 날고, 급히 한마디 보태느라 개인약수는 잊은 지 오래다. 그렇게 소개인동이며, 의식동 등을 돌고 돌아 인제의 짧은 걸음을 마쳤다.

다음날 곰배령을 찾아들었다. 기린면의 골짜기며 산봉우리들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림들이다. 오랜만에 스쳐 가는 그리운 풍경들, 방동리와 진동리의 골짜기들은 가만히 웅크린 채 숨죽여 봄을 준비하고, 곧추선 봉우리들은 아직 떠나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겨울을 무심한 듯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설피 마을까지만 겨우 걸음 하였다. 더 갈 수 없는 곰배령은 진부령 너머 해금강처럼 다음에 오라고, 좀 더 따스한 날에 걸음 하라고, 그렇게 그리움 짙은 손짓을 한다.

또 그리움이야! 허허허.’

 

다시 찾은 인제는 여전히 겨울을 털어내지 못하고, 제 죄인 양 새색시 걸음을 하는 내린천의 흐름은 시리게 곱다.

북사면에 기대어 사는 나무와 바위들은 여전히 추위에 떨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도 따스한 볕이 드는 남사면 나무들의 허물을 벗듯 허연 기운을 가지 끝으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래 얼마 남지 않은 게야!’

내린천을 따라 걸었다. 길 아닌 길을 걷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의 틀 안에서, 그 길이 결국 길벗들의 길이 되리라는 소망으로, 그렇게 그날도 거친 걸음을 하였다. 그래도 내린천을 곁에 두고 걷는 걸음이, 호위무사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변곡점마다 곁에 서서 지친 걸음을 다독여주는 인제의 봉우리들과 함께 걷는 걸음임에, 그날도 걸음만큼 행복했었다.

 

금산에 들었다.

천내리며, 길곡리며, 신안리며, 산안리 등을 돌고 돌았다. 제법 온기를 품은 볕이 골짜기마다 내려앉고, 삶터마다 작은 연둣빛 생명을 밀어 올리고 있다. 물론 잠깐 이는 바람 곁에는 아직도 찬 기운이 동행한다.

금산의 산들은 인제의 산들을 닮았다. 그 풍채와 상관없이 곧추선 봉우리들은 어깨를 으쓱대며 제 자랑질이 한창이다. 곧추선 만큼 깊은 것이 골짜기요, 그 걸음은 한없이 거칠어진다.

때론 한 걸음을 앞쪽에 놓지 못하고 주저앉을 때가 있다. 그 정도쯤 인제와 금산은 거칠게 닮았다. 그 길 아닌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길벗들의 길을 본다.

 

머지않은 날에 인제에 들 것이다.

이미 곰배령이며 백두대간의 걸음을 예정해 놓은 것으로 묶인 걸음의 서운함을 달래는 중이다. 작년 봄에 걸음 하였던 방태산의 가식 없는 선물 보따리들이 눈에 선하다. 얼레지, 바람꽃, 박새, 모데미풀, 연영초 등속은 기어이 백만 송이의 꽃으로 고운 화원을 그려내었다.

그만큼이 아니라도 좋다. 연둣빛 움틈이 시작되는 날 인제의 봄을 마중하러 갈 것이다. 오늘 금산에서 노란 첫봄을 보았다. 이미 남쪽에서 물밀 듯 밀려드는 봄소식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신안리 고운동 골짜기에 핀 생강나무꽃은 올해 나의 첫봄이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여행의 들뜸으로 인한 부산스러움은 없다. 늘 그랬던 것처럼 시간에 쫓기어 변화되어 가는 차창 밖의 흐름도 외면한 채 길을 재촉했다. 조금만 더 여유로웠더라면 인제에 잠시 들러 막국수 한 그릇의 즐거움을 위장에 담아 갔었을 텐데 그날도 초행길인 양 낯선 여행을 하고 있었다. 두 주일 전쯤 그렇게 진부령에 발을 디밀었다.

 

대관령의 넉넉함이나 미시령의 더딘 아름다움과는 사뭇 다르게 진부령은 늘 시리게 서럽다. 향로봉을 향해 백두대간의 걸음을 더는 옮길 수 없어서인지, 고성전망대에서 바라본 갈 수 없는 해금강의 아름다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진부령은 오늘도 서럽게 나를 맞는다.

오랜만에 흘리에 들렀다. 흘리는 넉넉해야만 한다. 백두대간 위에 선 그 만큼의 넉넉한 땅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허나, 흘리도 여전히 쓸쓸한 풍경으로 이방인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은 겨울 끝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바람도 잦아들고 날도 많이 풀려 봄바람을 기다리는 때다. 곧 겨울을 밀어낸 움틈이 시작되면 진부령이나 흘리나 연둣빛 웃음으로 이웃을 맞을 것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선유실리로 이어지는 임도에 들었다.

 

넓게 펼쳐진 임도를 따라 늘어서 있는 나무들은 손짓으로 인사하며 우리 일행을 반기고, 저만큼 보이는 탑동리 너머 간성의 바다는 코발트 빛으로 어서 오라고 수작을 한다. 간성의 바다는 금강산 아래 해금강과 연이어 있다. 그리움 한 조각을 바람에 실어 간성의 바다에 보내본다. 혹여 바다의 흐름이 남쪽으로 향하는 때면 어떻게 하나라는 쓸데없는 걱정이 머리를 조여온다.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녀석을 밀어버렸다.

오늘은 이만큼으로 좋다. 시리게 서러운 진부령에도 연둣빛 움틈이 봄바람을 타고 올 때쯤이면 따스해 지리라.

 

다음날 평창의 발왕산에 올랐다. 초입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가슴팍을 후비는 냉기에 덕지덕지 옷을 겹쳐 입고, 장갑에, 모자에 정신이 없었다. 스키장 입구는 많은 이들의 걸음으로 분주하다. 추워질수록 행복한 그들은 리프트를 타기 위한 긴 줄 앞에서 마냥 즐거워한다.

잠깐의 절차를 마치고 곤돌라를 타고 발왕산에 오른다. 넉넉한 걸음으로 오르는 곤돌라 아래 여러 개의 활강코스가 눈에 들어온다. 날렵한 맵시를 뽐내며 활강하는 그들에게 발왕산은 온전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사방을 할퀴면서도 앓는 소리조차 없이 몸을 맡기고 누워있는 발왕산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스키를 타본 경험은 없지만, 굳이 스키장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늘 그렇듯이 할퀴어진 세상을 보는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그것도 삶의 한 방향이라고 되뇌며 발왕산에 도착했다.

 

영하 19.7, 발왕산이 이방인을 맞는다. 칼바람까지 더해진 정상은 체감온도 영하 30도 이하다. 즐거운 걸음을 하던 이방인들은 앙칼진 발왕산의 외침에 스카이워크 아래 대피소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내빼기 일쑤다.

옷깃을 여미고, 모자를 눌러쓰고 발왕산을 맞이한다. 백 년의 세월을 살아낸 나무들은 여유로운 몸짓으로 산을 지키고, 산 아래 군상들은 오늘도 올망졸망 제멋으로 삶을 산다.

발왕산의 하늘은 푸르다. 발아래 흰 눈을 덧대어 그 푸르름이 더 하겠지만,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발왕산은 늘 푸르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묘한 확신이 칼바람을 타고 가슴으로 온다. 옆구리 한쪽에 그 큰 생채기를 안고 살면서도 의연하게 푸르른 발왕산에도 연둣빛 움틈이 곧 올 것이다.

 

어제 진부령의 봄이 66.9cm의 눈에 묻혔다는 소식이 바람을 타고 온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그 두꺼운 눈 이불 속에서 연둣빛 움틈은 봄을 재촉하고, 곧 나는 진부령으로 따스한 봄을 맞이하러 갈 것이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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