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30(수) ~ 12. 06(화) / 6박 7일 

북규슈(후쿠오카, 나가사키, 쿠마모토, 모지코, 시모노세키 등)를

자유 여행으로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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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여행 5일차]

하카타에서 모지코 가기,

시모노세키 여행[간몬연락선, 가라토시장, 간몬 해저 터널],

모지코[모지항, 블루잉모지(ブルーウィングもじ), 오뎅 야마구치(おでんの山口)],

후쿠오카 부산정(釜山亭)

 

어느 일요일 아침, 하카타 거리

 

해도 없는 아침인데 세상은 이미 훤했다.

새벽어둠을 틈타 비는 세상의 묵은 때를 씻어버렸다. 호텔 방에선 빗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창문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희미한 흔적을 남겼을 뿐이다. 나는 침대 이불에서 나와 창문 밖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어떻게 회색 구름이 새긴 것인지 하늘이 우울해 보였다.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새로 내린 비 위에 내 발자국이 찍혔다. 선명했던 발자국은 찰나의 순간에 번져 바닥에서 사라졌다. 나는 생각했다. 비에 대해 그만 무심해지자. 우리는 봄비 같은 겨울비를 맞으며 하카타역으로 행했다. 일요일 아침, 하카타 거리는 청소 차량만이 분주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내가 지나간 다음에도. 계속 그렇게.

 

JR 북규슈 레일패스
하카타-고쿠라, SONIC 5 특급열차
고쿠라-모지코, JR 가고시마 본선
모지코역
모지항 여객선 매표소
간몬 연락선

 

하카타에서 특급열차를 탔다.

고쿠라에서 JR 열차로 갈아타고 모지코까지 왔다. 모지코역을 등지고 왼쪽 도로를 건너 바닷가 쪽으로 걷다 보니 모지항 여객선 터미널이 보였다. 모지코역을 나와 잰걸음으로 모지항 승선장까지 이동했다. 모지항의 넓은 공터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요금은 편도 대인 400

승선권을 뽑아 배를 타러 승선장에 가니 해협이 눈에 들어왔다. 기타큐슈 모지항에서 시모노세키 가라토까지는 날씨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보통 5~1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비가 온 후 바다는 청색이 짙어져 검게 보였다. 정박해 있던 배는 검정 물결의 일렁거림에 크고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지항
간몬대교
간몬연락선

 

바닷바람이 검은 바다를 겨울빛으로 물들였다.

북동쪽으로는 혼슈와 규슈를 연결하는 간몬대교(関門橋)가 해협 위를 가로질러 허공에 떠 있었다. 간몬대교 그림자가 더해져 바다는 원래 색보다 더 짙어졌고 그것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검정 바다는 윤기가 넘쳤다.

잔잔한 파도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배의 갑판에 올라 시모노세키를 바라봤다. 검은 바다가 마치 현해탄 같았다. 배의 진행 방향과 속도에 따라 바람이 바뀌었다. 바다 위에는 긴 흰 물거품이 남아 배가 지나온 흔적이 그어졌다. 나는 시모노세키에 그렇게 도착했다.

 

가라토 여객터미널 앞
가라토시장
가라토시장 안
해산물덮밥과 성게덮밥
가라퇴장 앞 바닷가 산책로
덮밥 먹방

 

가라토시장(唐戸市場)과 마주했다.

시장 안을 비추는 조명은 인파에 뭉개져 명암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시끄러움, 혹은 뒤엉킨 혼란과 흥분감 사이의 들뜬 기분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시장은 서늘했고 비린내가 가득 퍼져 있었다. 그나마 천장이 높아 비린내 농도가 심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초밥을 사기 위해 인파 속에 있던 나는 파도가 앞의 파도를 밀어내듯 뒷사람들의 걸음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초밥을 사러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시장 안을 표류하던 나는 인적이 그나마 적은 상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게 덮밥을 발견하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바로 이런걸 꿩 먹고 알 먹고라고 표현한다. 시장 밖으로 나오자마자 흥분상태에서 성게 덮밥을 순식간에 먹었다.

 

초밥

 

된장국
초밥먹방
가라토시장 앞 바닷가 산책로

 

망설임은 초밥을 살 기회를 빼앗아간다.

다시 초밥을 사기 위해 혼돈의 시장에 들어섰다. 진열된 초밥이 먹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야 한다. 우리는 우럭, 도미, 장어 초밥과 짱뚱어가 들어간 된장국을 샀다. 이번에도 바로 시장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적은 바다가 산책로로 가서 바다를 배경으로 초밥을 먹었다. 바다에서 막 잡아 온 생선으로 초밥을 만든 것처럼 신선했다. 초밥의 생선이 일반 초밥에 비하면 두 배나 컸으며 그만큼 밥도 많았다. 초밥 한 개면 입안이 꽉 찼다. 우리는 초밥 먹기에 마음을 다했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초밥 중에 신선도, , 크기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초밥이었다.

최고예요.’

 

가라토 등대
가라토 거리

 

12월의 첫 번째 일요일이다.

평일처럼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용무나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다. 늦잠을 자거나 침대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 하루다. 내가 있는 곳이 낯선 여행지라도 일요일에 내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배가 부르니 걷기에 더욱 좋은 날이었다

비는 그쳤고 바람이 불지 않아 춥지 않았다. 하늘에 회색 구름이 가득했지만, 바다색만큼 짙지는 않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은 나에게는 소중한 시간이다.

 

시모노세키, 간몬 해저 터널 입구
간몬 해저 터널

 

가라토시장에서 간몬터널 입구까지는 1.4km를 걸어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갔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도 해저 터널을 이용할 수 있었다. , 엔진을 끈 상태로 밀어서 통행해야 했다.

해저 터널을 걷는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한국도 아니고 일본에서 혼슈와 규슈를 잇는 1958년에 개통된 간몬 해저 터널을 걸었다. 해수면 58m의 아래의 터널은 혼슈에서 규슈 방향으로 내리막임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긴 줄을 팽팽히 잡았다가 살짝 힘을 푼 것처럼 터널은 완만한 곡선을 유지하고 있다. 혼슈의 시모노세키에서 규슈의 모지코까지 이어진 약 780m의 거리였다. 지금 걷는 이 해저 터널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멈추지 않고 걷다 보면 환한 불빛이 나를 반겨줬다.

 

모지코, 간몬 해저 터널 입구
메가리 신사와 간몬대교
모지항
노포크 히로바역
모지항 낚시 배

 

해저 터널을 나왔다.

메카리 신사가 있는 해안은 물살이 끊임없이 소용돌이쳤다. 수심이 낮고 해류가 빠르게 흐르며 어종이 다양하여 어업이 발달하였다. 더 넓은 바다로 흘러가는 바닷물이 다 똑같아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물살의 세기가 천차만별이다. 거친 물살을 피해 배들은 모지코가 아니라 시모노세키 쪽으로 왕래를 했다. 작은 배들은 물살에 쉽게 흔들리니까 빠르게 지나가려고 엔진의 출력을 높였다.

모지코까지 가는 길은 한적한 거리였다.

메카리 신사를 지나 노픽 광장으로 거기서 노포크 히로바역까지 이어졌다. 철로를 따라 벚나무가 서 있는 해안 길을 가다 보면 항구를 만나게 된다. 새벽에 낚시 배를 타고 바다를 다녀온 낚시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잡아 온 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지항 레트로 전망대
블루잉모지

 

나는 의자에 앉았다.

오늘도 많이 걸었다. 친구 K는 발바닥이 아픈 듯 신발을 벗고 쉬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 의자에서 블루윙모지가 가장 잘 보였다. 부산의 영도대교처럼 다리가 올라갈 때를 기다리며 광장과 다리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큰 나무 아래에서 만담하는 이야기가 마이크를 통해 크게 들렸고, 캐릭터 탈을 쓴 남자가 아이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고, 일정한 목적 없이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다.

약간 멍한 상태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피곤함을 느꼈는데 나중에는 몸이 편안해졌다. 오후 1시가 되자 블루윙모지가 분주해졌고 이내 건너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다리는 오른쪽부터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달팽이가 길을 건너가듯 너무 느렸다. 왼쪽까지 다 올가을 때는 10여 분이 훌쩍 지난 뒤였다. 마지막으로 배만 지나가면 되는데. 이렇게 이벤트는 완성되었다. 잠시 후 다리는 올라간 속도만큼 천천히 내려왔고 사람들은 다시 블루윙모지를 건넜다.

 

모지항 벼룩시장

 

기차 시간까지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벼룩시장의 흰 천막은 은은한 조명을 밝혔지만, 하늘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 보였다. 눈앞에는 똑같은 천막들이 일렬종대나 횡대로 펼쳐져 있었다. 아무리 벼룩시장이지만 복고풍 항구와 어울리지 않은 현대적인 분위기가 어색했다. 액세서리, 의류, 화분, 생활용품, 음식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있었다. 천막마다 자신들의 물건들을 전시해 놓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벼룩시장 천막 사이를 걸었다.

옷깃을 여미고 에코백을 왼쪽 어깨에 둘러멨다. 두 발은 인파 속을 걷고 있었지만 두 눈은 온갖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바삐 움직였다. 이곳에서의 돈은 그저 필요한 것을 얻는데 필요한 교환수단에 불과했다.

 

오뎅 야마구치(おでんの山口)
식당내부
메뉴

 

오후 새참을 먹기 위해 오뎅 야마구치(おでんの山口)에 갔다.

이 식당은 모지코역에서 도보로 2분 거리에 있으며 모지코와 어울리는 복고풍 감성의 식당이었다. 오후 230분이 넘었지만, 식당에 손님이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한참을 쭈뼛거리다 과감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할머니는 오뎅을 만들고 있었다.

오뎅정식 550

메뉴판의 검정색은 메뉴이고 빨간색은 가격이었다. 다행히 사진이 있는 메뉴판이 있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문을 했다. 근데, 할머니가 뭐라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일본어를 못하는 내가 알아들을 방법은 없었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본 할머니도 이내 포기했는지 그냥 자리를 뜨셨다. 5분쯤 지났을 때 주문한 오뎅정식이 나왔다.

 

오뎅정식

 

정말로 사진과 똑같았다.

할머니가 나에게 하려던 말을 나중에 알았다. 내가 오뎅 4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말은 통하지 않고 눈만 껌뻑껌뻑하니까 할머니가 사진과 똑같이 가져다주신 거였다. 한국에서는 어묵 하면 어묵만 생각하는데 일본은 달걀, , 감자, 꼬치(돼지고기) 등이 들어간 오뎅요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국처럼 국물을 마실 수 없어 아쉬웠다.

오뎅은 한국보다는 짠데 항구 특유의 육체 노동자들을 위한 전통 음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음식이 특별히 맛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온 할아버지, 할머니가 운영하는 노포(老鋪)는 틀림없었다.

 

모지코역
고쿠라역
고쿠라-하카타, SONIC 40 특별열차
부산정(釜山亭)

 

우리는 다시 만났다.

아침에 이곳에 올 때의 역순으로 다시 하카타로 돌아가야 했다. 기차 안에는 아침보다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하카타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27분이었다. 오후 5시가 넘으면 해는 서쪽 하늘로 넘어가서 잠들었다. 하카타역의 크리스마스 마켓 축제의 조명은 오늘도 변함없이 불을 밝히고 사람들은 흥분된 상태로 그 불빛을 바라보거나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후쿠오카에서 벌써 5일째 밤이었다.

이제는 밤거리가 익숙해졌다. 저녁 먹을 식당을 찾으면서 가지 않은 골목을 걸었다. 어둠 속에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부산정(釜山亭).’ 고민의 흔적인 미간의 깊은 주름이 식당을 발견한 뒤 축구경기장의 푸른 잔디처럼 평평하게 바뀌었다. 허기짐의 빈자리는 발바닥의 통증과 배고픔의 꼬르륵소리가 채우고 있었다.

 

삼겹살

 

간판을 보고 한국식당임을 눈치챘다.

어떤 메뉴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입구에 갔다가 메뉴에 삼겹살을 보는 순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들어갔다. 예약하지 않았지만, 일찍 식당에 와서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추천메뉴인 무한리필 삼겹살을 선택했다. ‘소주와 맥주도 주세요.’ 오랜만에 한국말로 편안하게 주문을 할 수 있어 좋았다.

12800.

삼겹살 무한리필 가격이다. 한국보다 무한리필 가격은 비쌌지만, 김치 모둠, 나물 모둠, 오징어젓, 잡채, 샐러드, 파채, 쌈장, 마늘, 상추 등 너무 푸짐했고 무한리필까지 해 주었다. 일하시는 외국인 종업원이 삼겹살을 가져다주면서 김치를 불판에 올렸다. '이러면 다 타는데.' 한국인인 내가 가만있을 수 없어 김치를 제거하고 고기 기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김치를 올렸다.

 

삼겹살 무한리필

 

10분쯤 그렇게 고기를 구웠다.

겉이 타지 않게 삼겹살을 잘 뒤집으면서 먹기 좋을 정도로 구운 삼겹살을 한입 크기로 잘랐다. 원래 기름기 많은 구운 음식은 잘 안 먹는 친구인데 이곳에서의 친구 K는 젓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배가 고팠구먼.’ 첫판을 이렇게 순식간에 다 먹었다. 삼겹살 리필을 요청하면서 막간을 이용하여 주꾸미까지 구워 먹었다.

외국인 종업원의 배달 사고인지 리필된 삼겹살은 처음의 3배만큼이나 많았다. 아무 말이 없으니 다시 삼겹살을 구웠다. 손바닥에 상추를 놓고 잘 구워진 삼겹살 2점을 올렸다. 마늘을 쌈장에 찍어 삼겹살 위에 살포시 내려놓고 파채와 고사리로 장식을 마무리했다. 쌈을 잘 접어 손에 들고 술잔을 살짝 부딪친 후 원샷을 했다. 입안에 알코올이 다 사라지기 전에 쌈을 넣고 맛을 음미했다.

삼겹살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밤새 켜져 있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처럼 배가 꺼지지 않는 규슈여행의 5일째 밤도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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