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백패킹 3일차 – 화순금모래해수욕장]
밤은 추웠다.
한낮의 따뜻함은 어둠이 가져가 버렸다. 물론 불량 핫팩이 문제였지만 숲은 내 생각보다 더 추웠다. 보온 옷(우모복)과 보온 신발(다운 슈즈)로 완전무장하고도 침낭 속에서 몸을 움츠렸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아침이 밝았다. 어둠이 떠난 순간 나는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침 명상을 했다.
화장실에 뜨거운 물이 나왔다. 이런 호사가 다 있었다. 용모를 단정히 한 후 휴양림 내곽을 산책했다. 텐트로 돌아와 커피와 크런치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텐트 옆 빈 데크 공간에서 반가부좌를 했다. 아침마다 하는 20분 명상을 붉은오름에서 했다. 내가 늘 꿈꾸었던 모습이었다.
오늘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안개가 숲을 조금씩 점령하고 있다. 예정보다 일찍 휴양림을 나서야 할 것 같다.
30분을 기다렸다.
버스가 늦게 온 게 아니라 내가 일찍 나온 것이었다. 선택은 할 수 없었다. 231번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 안이 따뜻했다. 버스 안에서 다음 야영지를 고민했다. 일단 종점까지 가기로 했다.
교통카드가 사라졌다.
종점에 왔는데 하차를 못 했다. 기사님께 말씀드리고 좌석 수색에 들어갔다. 교통카드는 의자와 등받이 틈으로 떨어져 있었다. 1분 만에 다시 교통카드를 찾았다.
환승을 했다.
서귀포 (구) 터미널에서 202번 버스를 탔다. 오늘의 야영지는 화순 금모래해변으로 정했다. 야영지에서 산방산을 조망할 수 있다. 안덕계곡을 지나 화순리에서 하차했다. 마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12년 전 걸어서 이곳을 지나갔었다. 무더운 여름날 해변에서 해병대가 훈련하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야영장은 유료지만 비수기엔 그냥 사용할 수 있는 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도 다른 야영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랜 기간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텐트가 흉물처럼 보였다. 야영장 앞쪽 모래 해변은 공사 중이라 온종일 소음이 컸다.
텐트를 쳤다.
그 많던 금모래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올레길을 걷지 않았다. 나만의 추억이 있는 길을 다시 걸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듯 이곳도 많이 변했다. 해안과 인접한 길을 따라 산방산까지 걸어갔다. 아침과 달리 따뜻해진 날씨가 반갑지 않게 느껴졌다.
마트에 갔다.
산방산에서 도로를 따라 안덕 하나로마트까지 걸었다. 물, 맥주, 포도주, 즉석밥, 라면, 김치, 고기, 배추를 샀다.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을 위해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양만큼 샀다. 에코백에 다 안 들어가 결국 물은 손으로 들고 야영지로 갔다. 마을 길에 있는 팽나무 한그루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가 저물고 나니 추워졌다.
해안가라 그런지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이런 날에는 김치찌개가 최고였다. 냄비에 고기, 김치를 넣고 물을 부어 끓였다. 어느 정도 끓었을 때 소금으로 간을 했다. 뽀글뽀글 끓고 있는 냄비를 보니 군침이 흘렀다. 소주 대신 선택한 포도주가 김치찌개와 궁합이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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