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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가는 길

나만의 글쓰기/여행이야기

by 배고픈한량 2022. 11. 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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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짙게 끼었다. 새벽 찬 기운을 만난 수증기가 희뿌연 연기처럼 아주 작은 물방울이 되어 세상을 조금씩 집어삼키고 있다. 어제까지 익숙했던 세상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오전 830, 어젯밤에 꾸려둔 배낭을 메고 등산화 가방은 손에 쥐고 집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 형님 안녕하세요.’

다 왔습니다.’

, 집 앞에 있어.’

흰색 SUV는 육중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도로를 달린다. 차창으로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풍경에 두 눈이 고정된 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후배와 이야기꽃을 피워본다.

 

안개 자욱한 날

 

출근길 왕복 6차선대로는 정체 중이다. 대로를 벗어나 토박이만이 아는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아뿔싸 유성 장날이었다. 시장 도로에서 골목으로 진입하려던 우회전 차량이 도로를 막고 서 있어서 신호대기도 없이 유성 나들목에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각양각색의 차량이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며 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있다. 흰색 SUV도 한풀이하듯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린다. 그렇게 5분의 시간이 지나고 흰색 SUV는 북대전나들목을 빠져나와 또 한 사람을 태우고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흰색  SUV

 

신탄진을 지나 죽암휴게소에 왔다. 오늘의 종착지는 양양에 있는 구룡령휴게소이지만 단양에 있는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들렀다 가야 한다. 이동 거리가 멀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여유롭게 아침부터 출발한 것이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TOM N TOMS에서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레모네이드를 샀다. 진한 커피 향기가 공기 중에 퍼져 안개에 스며든다. 멍멍한 정신을 차리기엔 커피 한 모금이면 충분했다. 내가 뜨거운 커피를 음미하는 동안 후배는 담배를 피우고 나서 흰색 SUV의 배도 채웠다.

소풍 가기에 딱 좋은 날씨다. 11월인데 봄 날씨처럼 포근하다. 주행 중 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갑지 않다. 유일한 흡연자인 후배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금왕휴게소에, 껴입은 옷을 벗기 위해 한 번 더 졸음쉼터에 들렀다.

 

죽암휴게소
금왕휴게소

 

정오 40분 전에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계절은 가을인데 황정산은 이미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단풍은 거의 다 떨어졌고 낙엽은 바싹 말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거렸다. 낙엽에 갇혀 정체를 숨기고 있던 처녀치마의 잎만이 주위 환경과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후배만이 숲길 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석화봉 등산로를 올랐다. 나와 또 한 사람은 휴양림을 돌아다니며 주변을 관찰했다. 햇빛이 비치는 양지는 따뜻한 느낌보다 더 뜨겁고 그늘로 들어서면 서늘함을 넘어 싸늘함이 느껴졌다.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2시간이 지난 뒤 후배가 산에서 내려왔다. 이미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우리의 배고픔은 극에 달했다.

 

황정산 자연휴양림

 

늦은 점심을 먹으러 대강면 장림산방에 왔다. 장림산방은 60년 전통, 3대째 향토 음식 계승자의 집이었다. 건물 위쪽에 단양마늘축제 곤드레가마솥밥 금상 수상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나는 첫 방문이고 후배와 또 한 사람은 두 번째 방문이다. 건물 내부는 천정이 높아서 식당임에도 음식 찌든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출입문 벽 상단에 음식으로 고치지 못한 병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다라는 문구가 두 눈을 사로잡았다.

 

장림산방

 

우리는 능이버섯전골을 주문했다. 식사 조리시간은 20분 소요된다고 메뉴판에 적혀 있다. 물을 마시면서 핸드폰으로 뉴스 기사를 검색했다. 10분쯤 지났을 때 나물과 채소로 만든 9가지 반찬과 함께 능이, 싸리, 두부, 호박, , 콩나물 등이 들어간 능이버섯전골 나왔다.

내 인생의 첫 능이버섯전골은 아니다. 산을 다니면서 여러 번 먹어봐서 그 맛을 적확히 알고 있다. 버너 위에서 능이버섯전골은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다. 우리는 며칠을 굶은 게걸든 사람처럼 바닥이 보일 때까지 끊임없이 먹었다.

 

능이버섯전골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차량 네비게이션은 구룡령휴게소까지 250km라고 알려줬다. 적어도 2시간 30분은 소요될 것이다. 홍천을 지나면서 양양까지는 터널 구간이 많이 나온다. 터널에서 운전할 때마다 나는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은근히 걱정되었다.

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으려나

후배와 또 한 사람이 식곤증에 잠을 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운전을 했다. 잠든 이의 평화로움과 고요함을 한순간에 깬 것은 후배의 전화벨 소리였다. 공적인 용무의 전화는 후배의 단잠을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강원도 어느 들녘

 

원주휴게소에 왔다. 이번에는 ANGELINUS에서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레모네이드를 샀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후배는 담배를 피웠다. 잠이 확 깬 후배가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계속 운전을 했더라도 홍천휴게소에서 후배와 교대할 생각이었다. 좌우지간 내가 터널 운전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홍천에 가까워지면서 고속도로 공사 구간이 반복되었고 조금씩 지체되었다. 동홍천을 지나면서는 터널의 연속이었다. 반복되는 터널 구간에 피로를 느낀 후배가 내린천휴게소로 들어갔다. 차량에서 내리자 강한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차가운 정도가 사뭇 달랐다. 후배의 입과 코로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가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원주휴게소
내린천휴게소

 

구룡령휴게소까지는 40km 정도 남았다. 5시가 다 되어가니 사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터널을 지나고 또 지나 우리나라 최장터널에 진입했다. 작년에 통과해 본 적이 있는 인제양양터널로 길이가 10,965m이다. 일반 터널과 비교하면 조명도 밝고 갓길도 있어 도로 폭이 넓다. 물론 터널이 구간단속구간이라 속도를 높일 수 없어 한결 안전하게 느껴진다.

 

인제양양터널

 

고속도로를 벗어나 인적없는 도로를 달려 구룡령휴게소에 왔다. 아침에 출발하여 9시간만인 해 질 무렵에 갈천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갈천마을은 구룡령 아래 첫 마을로 칡이 많아서 비롯된 이름이고 치래마을은 갈천을 우리나라 말로 풀어쓴 명칭이다.

예약한 펜션에 여장을 풀고 서둘러 갈천약수식당에서 오리고기로 긴 여정의 회포를 풀었다. 오후 7, 펜션으로 돌아오는데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산속의 밤은 어둡고 길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다.

내일은 구룡령으로 go go~.

 

구룡령휴게소
황토펜션
갈천약수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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