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앞 도착'
오전 6시 15분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약속 시각보다 15분 빨랐다. 이미 예상하였던 터라 당황하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기에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밖으로 나갔다. 1년도 넘게 얼굴 한번 못 보았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2차 집결지인 대덕밸리 만남의광장으로 향했다.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어둠의 기세는 가로등 불빛에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대부분은 1차 집결지인 안영생활체육센터에서 버스를 탔고 이곳에는 나를 포함하여 3명만이 버스에 탑승했다. 중국까지 운반해야 할 할당된 소주 3병과 안주 2봉이 담긴 검은 비닐을 왼손으로 들고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다. 다시 버스가 출발한 후 불이 꺼지고 이내 조용해졌지만, 여행의 들뜬 기운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미 하루를 시작한 후라 도통 잠이 오지 않아 무선이어폰 하나만 왼쪽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듣는 동안 버스의 속력만큼 빠르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인천대교를 지나 인천공항 2청사에 도착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여행용 가방을 다시 정리하고, 환전하고, 유심을 사고, 이심을 설치하고, 가이드와 미팅도 마쳤다. 탑승 3시간 전, 수화물을 부치고 항공권을 받은 후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여 출국장에 들어섰다. 탑승 전까지 면세점 쇼핑, 점심,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12시 45분에 탑승이 시작되었지만, 비행기는 여전히 이륙하지 않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벌써 8시간 30분이 지났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내달렸다. 많은 비행기를 타봤지만, 여전히 앞바퀴가 들리고 기체가 기울 때의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기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안정 고도에 도달할 때까지 미세한 흔들림은 계속되었다. 샤먼항공은 좌석 모니터가 없어서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기내식이 나왔는데 난 볶음면을 먹었고 캔맥주도 마셨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3시간 15분의 비행은 타이어 마찰음이 전한 짧은 진동으로 끝이 났다.




입국심사에 섰다. 여권을 주고 기다리는데 느낌이 싸했다. 다른 사람이 오더니 나를 옆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나를 세워놓고 그들은 내 여권을 들고 뭔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저 그들을 말없이 쳐다보는 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5분여가 지난 후 다시 여권을 돌려받고 아무런 문제 없이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 최근의 캄보디아 사태 때문에 2024년 12월에 다녀온 캄보디아, 베트남 여행 중 육로로 국경을 통과해서 내가 의심받은 것 같다. 아무튼, 잊을 수 없는 여행의 한순간이 되었다.

수화물을 찾고 입국장 밖으로 나와서 현지 가이드와 만났다. 오랫동안 자유여행만 다니는 나에게는 패키지여행의 가이드가 가장 어색하다. 나는 항상 내 모든 여행의 가이드였으니까. 버스를 타고 호리산포대로 이동을 했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환도로 풍경구가 있는 해안가에 들어섰다. 차장으로 바라본 해안가 풍경은 우리네와 다르지 않았다. 한 시간 후면 멋진 석양이 펼쳐질 것 같다.
버스에서 내리자 날이 선 칼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얇은 긴소매만을 입고 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이내 활력을 되찾았다. 매표소로 향하는 돌담길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가이드가 표를 구매하는 동안 단체 사진을 찍음으로써 이번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선포한 것이다.



중요한 해안 방어 시설인 호리산포대는 포의 무게만 87톤에 달한다. 원형 레일을 설치하여 회전을 가능하게 했다지만 저 무거운 쇳덩이를 어떻게 이곳으로 옮겼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이곳이 관광명소이고 그저 차가운 쇳덩이에 불과한 포이지만, 130여 년 전 여러 전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어느덧 해는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면서 멋진 석양을 연출하고 있었다. 저 멀리 해안가에 우뚝 솟은 샤먼의 랜드마크인 쌍둥이 빌딩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색감이 하늘에 물들고 그 빛이 바다에 서서히 드리워지며 한 폭의 풍경화를 탄생했다.



어둠은 순식간에 찾아왔고 도심의 불빛이 그 어둠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도로는 차량들로 뒤엉켜 혼잡했으나 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증조안 거리에서 우리를 내려줬다. 저녁 식사 바로 전에 이곳에 오다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일단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람에 떠밀려 앞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왔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서 굴전만 맛보기로 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줄을 선 건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돈을 내고 손가락으로 2개를 표시한 후 잔돈을 받았다. 그때부터 할 수 있는 것은 굴전을 줄 때까지 쳐다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굴전을 부치는 것이 아닌데 하나씩 만드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했다. 마침내 굴전 2개를 받고 여러 명이 나누어 먹었다. 배가 무척 고팠는데도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입맛 버렸네.



다시 버스를 탔고 이름모를 식당으로 향했다. 어디로 향하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구글 지도는 그렇다 치고 고덕 지도도 유용하지 않았다. 대충 내가 지도 이쯤에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 빙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자리에 앉고 보니 자연스럽게 주류, 비주류가 나누어졌다. 이번에도 기름진 음식이 대부분이지만 청두(성도), 여강(리장) 여행 때보다 다들 잘 먹었다. 원래 고량주는 먹지 않는데 이번에는 연태 고량주라고 해서 조금 맛을 봤다. 나만이 느끼는 건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량주의 특유에 향이 싫다. 칵~ 본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루가 길다. 아직 숙소에는 발길도 닿지 않았다. 식당에서 숙소까지는 30분이 걸린단다. 샤먼 본섬에서 하이창대교를 지나 하이창 메리어트 호텔로 향했다. 도로는 여전히 차들로 혼잡했지만, 거리의 상점들은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조명의 조도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우리나라보다는 조명이 어둡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째 눈이 침침해.


“여행 첫날 밤이니 술 한잔 더하실 분들은 10분 내로 로비로. 다시 집결하세요.”
17명의 방 배정이 끝나고 나랑 한방을 쓰는 권모시기의 공지사항이 있었다. 서둘러 방에 짐만 내려놓고 다시 로비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예상했던 사람들만 내려왔고 호텔 주변 술집을 어슬렁거리며 적당한 곳을 찾았다. 그러다 몇 명이 다시 합류했고 결국 처음 들어간 술집에 모두 들어갔다.
떨어져 있던 테이블을 붙여 앉은 후 수제 맥주를 시키고 꼬치안주까지 주문했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것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동묘 씨 덕분이다. 수제 맥주가 나올 때까지 긴 고통의 시간이 있었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여행 첫날 밤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오후 11시 지나 호텔로 돌아왔지만, 지금부터가 진짜 영업이 시작된 셈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할당된 소주, 호텔 인근 매점에서 산 맥주, 그리고 나의 비밀병기 위스키까지 출전 대기 중이었다. 첫날이니만큼 안줏거리도 풍성했다. 시쳇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얼굴도 아닌데, 아무리 늦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같이 술 먹는 술친구끼리 새삼스럽게 구구절절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한다고 해도 오늘만큼 즐거운 시간이 없기에 용서가 된다. 용서가 안 되는 단 하나는 박모시기가 양말을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도망갔다는 사실뿐이다.
어찌 되었건 12시 전에 샤워는 못 했다. 으윽….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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