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등산(어리목~영실)



어제 오랜만에 한라산 산행을 했다.

평소보다 무리한 탓에 종아리가 심하게 뭉쳤다.


가볍게 마사지를 해 보지만

뭉친 근육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어리목으로 왔다.

숙소에서 잠깐 망설이다 바로 결정을 내렸다.


풀잎은 이슬을 무서워하지 않기에

새벽마다 이슬이 앉았다 사라진다.






산행으로 뭉친 근육은

산행으로 풀어야 한다


경험은 자신과 비슷한 입장이 된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가이드가 된다.


결코 좋고 나쁨이 아니다.








아주 느리게 걸었다.

간혹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빛이 흐른다.


계단에서 계단으로

사제비동산에서 만세동산으로

만세동산에서 백록담 북벽으로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면 가장자리가 환하다.







한라산 북벽이 어둠을 쓸어내리고

주변 풍경이 햇빛을 맞이하는 시간이다.


혀로 맛보는 기쁨

배로 느끼는 만족감

마을으로 누리는 뿌듯함


어리목 대피소에서 라면을 먹었다.

양달을 깔고 앉은 한때는 이내 응달이 된다.








이제는 뭘 해야 하지?


까마귀가 나를 보고 뭐라 그런다.

'선문대 할망'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문대 할망은 몸집이 큰 거인이었다.


앉아서 쉴 곳을 마련하기 위해

치마폭에 흙을 가득 담아 제주도 한가운데 부었다.

그렇게 한라산이 생겼다.


치마폭 사이로 흘러내린 흙덩어리들은 오름이 되었다.





구상나무는 한 곳을 오래 바라보다

이곳에서 달려오는 생을 온 몸으로 막았다.


다가오는 흰 계절의 감옥이 지나도

구상나무는 그대로 그곳에 서 있을 거다.






기억은 종종 기억을 버리고

기록이 되는 쪽을 택한다.


나는 내 기억을 버리고 지금 기록을 남긴다.


종이 위에 글을 쓰지 않고

구름, 나무, 계곡, 바위 등 자연의 수 많은 지면위에 글을 쓴다.

[제주오름]거친오름



비가 올듯이 하늘이 인상을 쓰고 있다.


바람에 밀려온 구름은

검은 그림자로 세상을 뒤덮고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것 같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343번 버스를 탔다.

거친오름이 품고 있는 노루생태관찰원으로 향했다.


입장료는 1,000원이다.


따뜻한 버스에서 내리니

비인지, 눈인지 모를 것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겨울인데 이렇게 강한 바람이 불어오니

노루는 볼 수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를 하지 않고 상시관찰원으로 갔다.

새끼 노루들은 관찰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먹이를 손에 들고 가만히 있으니

새끼 노루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내가 가장 가까이에서 본 노루이다.

추운 겨울을 잘 보내고 무럭무럭 잘 자라거라.





노루생태관찰원은 천혜의 대자연속에서

제주의 명물 노루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숲속에 각종 동식물이 자연 그대로 보호관리되고 있는 곳으로

자연학습, 생태체험, 오름산행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이곳에는 한라산 노루

10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노루를 관찰할 수 있도록

 거친오름을 중심으로 방목지 주변 둘레에

순환 관찰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또한 숫모르 편백숲길(8km)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대는 한라산의 작은 아우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그대는 억겁의 세월로

만 가지 형상을 하였구나


그대가 생각나 한숨에 올라

저만치 손 뻗쳐 부르면

언제나 그 자리 몸을 누이고

여기 저기 너의 얼굴 내미네


그대는 거친오름의 형제자매

그 언저리 희미한 안개 비추면

누가 제일 예쁘냐고 뽐내며

비너스 여신의 부활을 알린다.


- 노루생태관찰원 -








거친오름은 산세가 거칠고 험한 기생화산이다.

동쪽의 주 봉우리와 서쪽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크고 작은 여러 줄기의 산등성이가 사방으로 뻗었다.

산등성이 사이사이에는 깊은 골이 파여 있어 산세가 매우 복잡한 편이다.











오름은 제주 한라산 기슭에

주로 분포하는 소형 화산체로 368개가 있다.


거친오름에서는 한라산을 비롯하여

세미오름, 바농오름, 족은지그리오름, 다랑쉬오름, 높은 오름,

큰지그리오름, 돔배오름, 민오름, 붉은오름, 절물오름을 조망할 수 있다.






오름 북쪽 비탈면에는 말굽형태의 분화구가 있다.


비탈면 전체에는 낙엽수가 주종을 이루며

해송과 상록활엽수가 드문드문 섞인 울창한 자연림을 형성하고 있다.





거친오름이 있는 노루생태관찰원에서

4.3평화공원을 조망할 수 있으며 지척이다.


제주 4.3은 평화, 통일, 인권의 상징이다.


거친오름을 둘러본 후 꼭 4.3평화공원에 가보자.


기억은 과거 자체라기보다

현재와의 관계 속에서 재구성되는 오늘의 전사()이다.


- 현기영의 순이삼촌 중에서 -

[제주오름]지미봉오름



예하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 왔다.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다가 동일주 201번 버스를 탔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다.

버스에서 게하에서 가져간 책을 읽는다.


1시간이 훨씬 더 지났을때

버스 창문 너머로 지미봉이 보인다.





서둘러 하차벨을 누루고 종달리에서 내렸다.

차가운 기운을 품은 겨울바람이 내 안면을 강타한다.


지미봉은 종달마을 입구 동북방향에 있는 오름으로

산위 등성이는 원뿔모양의 동쪽 봉우리가 주봉(정상)이다.





지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곳이 제주섬의 꼬리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가파른 경사지를 무작정 열심히 걸었다.


지금은 겨울이다.

여름철이면 시원하다고 했을텐데...







옷깃을 더 여미고

지미봉 오름에 오르는데 땀이 나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 추웠는데

지금은 온몸이 덥다.


간사한 나의 마음이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로다.






우도, 성산일출봉, 종달리밭 등이

눈앞에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오름에서 맞이하는 바다와 해는

나에게 또다른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다.






오늘 난 가야할 길이 없었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가야할 길을 찾은 듯 하다.


지미봉 정상에서의 바람은

나를 휘감아 돌다가 이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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