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새벽 5. 이불 밖을 벗어났을 뿐인데 온몸이 서늘하다. 비가 내렸고 그 비가 눈으로 변했다. 그리고서 겨울다운 한파가 찾아온 것이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보일러를 가동한다. 화장실 입구 왼쪽 벽면에 있는 전원을 어둠 속에 누른다. 문을 열고 화장실 불을 켠 후 보일러 스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길게 뻗은 연통이 용트림하듯 큰 소리를 내지며 보일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마치 뱃고동 소리처럼 새벽하늘에 우렁찬 외침으로 절규한다.

엄마 방으로 간다. 어둠 속에 텔레비전이 켜져 있고 이미 깨어 있는 엄마는 밀크커피를 마시고 있다. 방 안 공기에는 달곰한 커피 향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듯 내 코를 자극한다. 포트에는 이미 끓은 물이 있다. 방 불을 켜고 나도 커피를 탄다. 잠자느라 당이 떨어졌는지 입에 대기도 전에 냄새에 푹 빠져버린다.

 

오늘은 일찍 집을 나선다. 크리스마스 때에 맹추위가 기성을 부리다 연말이 되면서 따듯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해가 바뀐다는 것은 50대에 들어선 나에게 죽음이 한 발짝 더 다가왔다는 의미이다. 삶 속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내 삶을 더 충만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육체가 움직일 수 있을 때 마음이 원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게 나이니까.

한파가 지나고 기온이 예년 기온을 회복한 것 같다. 아침을 먹고 배낭에 이것저것을 챙겨 넣는다. 오랜만에 계룡산을 갈 생각이다. 107번 버스를 타고 동학사정류장에 왔다. 주차장과 도로에는 눈이 쌓여 있다. 터벅터벅 도로를 걷는다. 오늘은 동학사로 가서 천정골로 하산할 생각이다. 구름이 점점 산을 집어삼키고 있다. 나는 점점 구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동학사를 지나 등산로 초입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쉼 없이 걷는다. 물도 먹지 않고 쉬지도 않고 정상까지 한 번에 올라간다. 주차장에서 관음봉 정상까지 정확히 1시간 30분이 걸렸다. 오랜만에 산행의 짜릿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구름에 휩싸인 산은 나를 지워버리고 있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 전에 하산을 시작한다.

바람은 구름을 뚫고 갑사에서 불어와 산릉을 넘어 동학사로 향한다. 올해의 온갖 사연들이 바람에 실려 와 상고대가 피어있는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내 마음을 세차게 때린다. 시계가 없어 삼불봉을 오르지 않고 남매탑으로 내려간다. 허기진 배를 전투식량으로 채우고 천정골로 하산을 한다.

 

요즘 하루가 신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여행준비를 마치려고 한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로 유럽여행을 갈 계획이다. 아직 5개월도 더 남았지만, 하루하루가 설레는 기분이다. 일정을 계획하고 세부적인 것들을 알아보는 과정이 재미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에 애정을 쏟는다는 것은 삶의 활력을 준다. 그 뭔가가 난 여행이니까 더 좋다.

이제 하루 남았다. 정확히 12시간 30분 남았다.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 건가? 스스로가 분주해진다. 내년도 계획도 세우고 올 한해를 정리해야 한다. 할 일이 많은데 머리는 쇠망치에 맞은 듯 띵하다. 차분차분 한가지씩 저리를 해야 하는데. 내년에는 화려한 한량이란 신조로 현실의 비루한 한량을 벗어나 보자.

 

비가 내린다. 2023년의 마지막 날이라 구슬피 우는 건가? 아니면 묵을 때를 씻어버리고 싶은 마음인가? 세상은 고요한 적막이 어둠과 함께 찾아왔다. 가로등 불빛이 대로에 띄엄띄엄 희망의 빛을 발산할 때 그곳에서 한줄기 비가 불빛을 가른다. 오늘은 저무는 해를, 내일은 떠오르는 해를 기다릴 테지. 그게 인생이다.

 

Good By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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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가장 드문 월요일에 계룡산을 찾곤 한다. 계룡산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은 삼불봉이다. 삼불봉에 서서 한참 동안 주변 풍광을 살펴본다. 봄엔 생명의 기운이 돋아나고 여름엔 녹음으로 가득 차고 가을엔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겨울엔 헐벗은 가지에 눈 코드를 입는다.

계룡산의 매력은 많은 조망에 있다. 곳곳에 숨어 있는 바윗덩어리들은 험준한 산맥으로 시선을 확장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있다. 높은 바위에서 내려다볼 때 불쑥 솟아오른 굴곡진 능선, 주름치마 같은 산맥의 주름, 저수지를 둘러싼 황금 들판은 계절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게 만든다.

계룡산의 또 다른 매력은 계절감이다. 봄의 노란 생강나무꽃이, 여름의 푸른 소나무 솔잎이, 가을의 청량한 은선폭포 물소리가, 겨울의 하얀 운해의 관음봉이 산을 찾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산은 매일 조금씩 변해간다. 변화는 관심을 가지고 볼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산의 나무는 올해도 나이테를 하나 더 만들었다.

 

나는 산꾼이다

 

봉우리든, 나무든, 암석지든, 새들이든, 꽃이든 숲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애정을 갖는 사람이다.

자연은 언제나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좋아하는 숲은 가식적 포장이 없는 세월의 흐름을 몸소 보여준다.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암석,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울창한 나뭇가지, 비가 오면 큰 소리로 울어대는 폭포의 비명 등을 볼 수 있다. 누구나 똑같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보다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특이한 아름다움에 더 관심을 가진다.

숲속 작은 오솔길에 해가 비추면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며 해를 맞이한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수풀 사이로 기웃기웃 수줍게 해바라기 하는 구절초가 화들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숲속 바위에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물의 흐름은 알지 못한다. 굽이굽이 흘러가면서 이끼들이 들러붙은 바위에 부딪힌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흩어졌다가 물은 다시 흐른다. 흐르는 물은 손으로 움켜쥘 수 없지만, 손바닥을 모으면 담을 수 있다. 한번 흘러간 물은 긴 흔적을 남기면서 빠르게 숲속으로 사라진다. 여전히 물은 흐른다.

 

들어서다

 

벌써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풍경보다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좋다. 조촐한 풍경 속에는 어딘가에 예술적 미학이 있다. 산이 양팔을 벌려 껴안듯 자리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늘이 하늘이고 산줄기가 산줄기이고 땅이 땅인 자리에서. 하늘과 산줄기와 땅이 경계처럼 구분되기보다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맞닿은 곳에서 소통하고 싶다.

자연의 품인 산을 난 자주 찾고 있다. 도시 생활에 피곤함을 느낄 때 아픈 상처를 치료하러 산에 들어선다. 세상이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업신여기고 외면해도 자연의 품인 산은 절대로 나를 외면하지 않는다. 오늘은 산에서 숨을 쉬고 상처를 치유한다.

처음엔 아는 만큼 보였지만 지금은 느끼려고 노력한 만큼 자세히 보인다.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우연히 과거의 산과 만나 하나의 완전체가 되었다.

 

모든 여행은 즐겁다. 목적지까지의 이동 시간이 길더라도 여행 일부이기에 순간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주로 숲으로 여행을 떠난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만족감보다 오르는 과정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낀다. 산 정상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산속을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는 것에 더 매력을 느낀다.

 

다시 찾은 계룡산

 

마음 내키는 대로 슬슬 걸었다. 자연은 그 자체가 가장 아름다워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울창한 숲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천정골 계곡에서 신선이 되어 유유자적 노닐고 있다.

숲에는 물이 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처럼 바위로 떨어져 산산이 흩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짙어지듯 그 물소리가 더 짙어진다.

숲속을 걸어 다니면 많은 소리가 들린다. 메마른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의 청량함을,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가지의 시원함을,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의 멋짐을, 최고의 시간이고 최고의 순간이다. 나비는 오늘 아침 정말 상쾌하지 않니? 이리저리 풀 위를 날아다니는 게 너무 근사한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갓난아기의 천진난만함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 것 같은 시간이다.

 

공기의 움직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뭇가지의 흔들림으로 공기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비록 장벽이 있더라도 공기는 구부러져 흐른다. 공기는 꼭 직선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공기가 지나간 자리에 엄청난 고요가 찾아온다. 숨소리가 그렇게 큰 소음일 줄 미처 몰랐다. 공기의 움직임을 우리는 바람이라 부른다. 센 바람과 마주하지 않으면 공기의 흐름이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없다.

하늘은 왜 파랗게 보이는 걸까? 공기 알갱이들이 태양에서 오는 모든 빛 중에서 파장이 짧은 파란빛을 가장 많이 산란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기가 없는 달은 하늘이 검게 보인다.

같은 산이라도 해도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산의 모습은 달라진다. 계절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여 바라보면 계절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언제나 맑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좋은 곳이 된다.

구름은 왜 하얗게 보이는 걸까? 구름은 크고 작은 물방울로 이루어졌고 모든 색깔은 빛을 발산시킨다. 구름에 반사된 모든 빛이 섞여 하얗게 보인다.

능선을 타고 넘는 골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땀에 젖은 온몸의 세포를 일깨우기 충분할 정도로 계곡의 시원함과 능선의 뜨거움이 함께 노란 생명의 꽃향기를 실어왔다. 꽃이 피어 단 하루밖에 가지 않는다는 원추리. 마른 땅 위에 무릎을 꿇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계룡산에서 원추리를 볼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

 

내 맘대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변하고 더욱 단단해졌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명상하고, 공부하고, 운동한다. 모든 행동이 다르게 보이지만 똑같은 목표를 위해 힘쓰고 있다. 나의 성장을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서 오늘도 내 맘대로 노력 중이다.

절실하게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절실함이 더해질수록 희망이 커져 더 고통스럽다. 절실함에 걸맞은 노력이 필요하다. 한 발짝 한 발짝 노력이 더해지면 소복소복 눈이 쌓이듯 내가 희망하는 곳까지 닿을 수 있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조급하게 행동하지 마라. 절실함에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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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충청지역 명산7 - 계룡산 산행



2017년 충청지역 명산7은

2013년 블랙야크 마운틴북 명산40을 추억하기 위해서

충청 셰르파들이 진행하는 "Multi Challenge 마운틴북 아웃도어 활동" 중 하나입니다.





늘 그렇듯...

유성에서 107번 버스를 타고 동학사에 왔습니다.


비가 내릴듯... 말듯...

헷갈리는 날씨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와 다르게

북적이던 등산객들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무풍교를 출발하여

배넘이재로 향했습니다.


습도가 상당히 높았기때문에

온몸의 땀구멍에는 연신 땀방울이 흘러내렸습니다.


땀의 폭포

이런 이름은 들어보셨나요??


배넘이재에는 골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땀을 식혀주는 골바람이 아주 좋습니다.


이 맛에 산행을 하는 거겠지요!!!





남매탑 하부에서

한 무리의 등산객을 만났습니다.


조용하던 등산로에는

이내 소음으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때론 소음도 반가울 때가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나서

남매탑 한쪽 구석에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이곳 남매탑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삼불봉을 지나 자연성릉에 왔습니다.


보기만해도 시원해지는 자연풍경처럼

나도 오래도록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는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해야한다는 생각만큼

재미도 매력도 없는 생각은 없으니까요.





조금만 더 가면 관음봉입니다.


바위틈사이에서

비방울을 머금은 원추리가

노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꽃은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그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않는 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원추리도 노란 꽃이 아냐 시들겁니다.

우리는 지금 이순을 즐겨야 합니다.






현수막을 설치하고 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산의 매력은 정상이 있어 도전의욕을 갖게 만듭니다.


오늘도 산행의 힘겨움을 이겨내면서

도전단들이 계룡산 관음봉에 올라섰습니다.


모두들 반갑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블랙야크 명산100 도전자들을 기다렸습니다.


관음봉 정상은

여전히 비줄기가 내리고 있습니다.


나도 이제 하산을 할 시간입니다


은선폭포의 물줄기가 기대되는 하산길입니다.


도전은 남과의 약속이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과의 약속입니다.

계룡산 산행 - 아름다운 동행

 

 

저는 SNS에 대해 저만의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트위터를 제외하고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밴드 등의 SNS를 전혀 이용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카카오톡도 이용하지 않습니다.

 

SNS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구시대 사람같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SNS를 통한 이야기의 90% 이상이

아무 의미없이 주고받는 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과감히 제 생활에서 그 부분을 제외한 것입니다.

 

 

 

 

 

오늘은 충청셰르파의 지역 모임을 겸한

블랙야크 명산100 첫 도전을 하는 도전자들과의 산행으로 계룡산을 찾았습니다.

 

원래는 아침 10시부터 산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침 7시 3분 이명섭 사다 셰르파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서울남부터미널을 7시에 출발하여 8시 50분쯤 학동삼거리에 도착합니다.

 

헉... 문자를 다시한번 확인했습니다.

 

 

 

 

곧이어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처음보는 번호입니다.

처음보는 번호라면 제 핸드폰에 등록이 안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 절대로 낯선 번호의 전화는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받고 말았습니다.

전날 밤 10시 29분에 김창현 셰르파가 문자를 보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내일 대전 도전자 두분이 함께 갈건데 문셰르파 연락처를 알려줬습니다.

 

여보세요.

핸드폰에서 낯선 여자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진찍기를 무척이나 싫어하시는 아직까지도 이름을 모르는 위 사진의 도전자이십니다.

 

 

 

 

전날밤

밴드를 통해 1시간 산행이 일찍 이루어진다는 것과

대전에서 도전자 2분이 함께 계룡산 산행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트위터를 제외한 SNS를 사용하지 않는 저만이 이 모든 사실을 모르거나 나중에 알게 된 것입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즐겁게 산행을 하면은 되는 것이지요!!

 

이런 저런 사연들로 조금 늦게 합류하기로 한 충청셰르파를 제외하고

서울에서 오신 6분의 도전자분들과 대전 도전자 1분, 이명섭 사다셰르파 그리고 제가

계룡산 동학사탐방지원센터 분기점에서 천정골 방향으로 아주 천천히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큰배재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습니다.

평소같으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오늘은 1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큰배재로 향하는 등산로 중간의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명섭 사다 셰르파가 횡성 더덕무침을 직접 해 가지고 오셨습니다.

 

난 무릎이 안좋아서...(연장자)

내년에는 내가 산을 탈 수 없을 것 같아서...(최고 연장자)

저는 돌길이 싫어요...(대전 도전자)

저는 자전거는 많이 타는데 산행은 처음입니다... (젊은 남성도전자)

 

가만히 도전자들의 사연을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했습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느리지만 결코 느리지 않은 그들만의 계룡산 산행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큰배재를 지나 남매탑에 도착을 했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모두들 승리를 한 순간이었습니다.

 

시야에는 남매탑 주변의 잎이 진 나목위로 겨울바람이 차갑게 불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남의 행복과 비교해서 느끼는 불행이 있는가 하면

남의 불행과 비교해서 얻는 작은 위로도 있습니.

 

사연이 각양각색인 명산100 첫 도전자들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아무런 사고도 없이 남매탑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남매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곧바로 하산을 하지 말고 계룡산 주능선을 볼 수 있는 삼불봉까지만 올라갔다 하산을 하자고 말입니다.

 

모두들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주저없이 동의를 했습니다.

이분들에게는 두렵지만 셀레는 또 하나의 도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어제밤 살짝 내린 눈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계룡산의 겨울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습니다.

 

 

 

 

짧은 거리이지만

급경사지의 돌계단과 철제계단을 올라 모두들 삼불봉에 도착을 했습니다.

모두들 한동안 말없이 계룡산의 주능선을 바라다 보시고 계셨습니다.

 

아쉽게도 자연은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제가 원했던 겨울설산을 연출되지 않았습니다.

 

 

 

 

도전자분들이 안개낀 계룡산의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은

갓난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때의 순수함을 간직한 또 다른 세상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정말로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모두들 삼불봉에서의 감동을 그대로 간직한 채

동학사 방향으로 남매탑을 지나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동학사 앞을 흐르는 세진정에서는

혹한을 견딘 보상인 봄에 피는 꽃을 구경하기엔 이르지만

청명하게 흐르는 계룡산의 아름다운 물줄기는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부처에게 공양으로 바치는 쌀인

공양미를 사 가지고 동학사 대웅전에 갔습니다.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합니다.

 

오늘 명산100 첫 도전자들과 함께한 계룡산 산행은

많은 도전자들이 비록 몸은 조금 불편했지만 마음은 정말로 충만했던 분들이라서 좋았습니다.

 

 

 

동학사를 비추는 오후 햇살은

풀, 나무, 사람을 가리지 않고 골골루 비추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5시간이 훨씬 넘는 계룡산 산행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수고 많이 하셨고 다음에 또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비록 관음봉까지 가지 못해서

5시간이 넘은 오늘 계룡산 산행은 실패라 말하지만

실패라는 씨앗이 나중에는 꼭 성공의 열매가 맺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갑하산 산행 - 계룡산 산줄기 조망

 

 

대전은 들이 넓고 커서 예부터 한밭이라고 했습니다.

대전시내에서 바라보면 서쪽으로 금남정맥의 명산 계룡산을 배경으로

금수봉, 도덕봉이 삽재 건너 갑하산, 우산봉으로 이어져 북쪽의 금병산으로 흐릅니다.

 

 

 

 

1월 25일 오후 2시부터 기상특보(한파주의보)가 해제됨에 따라

계룡산의 아름다운 숲 설경을 보기 위해 유성에서 동학사주차장까지 가는 107번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갑동 버스정류장에서 하차를 했습니다.

그리고 걸어서 1.3km를 이동한 후 삽재에 도착을 했습니다.

 

 

 

 

숲속에서는 나무만 볼 수 있고

숲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눈맛을 자랑하는

대전 서편의 갑하산과 우산봉으로 발길을 돌린 것입니다.

 

 

 

 

 

눈과 낙엽이 뒤섞여 있는 숲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유성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또한 계룡산 수통골지구의 도덕봉도 하얀 설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산행의 맛을 한층 더해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갑하산으로 향하는 숲길과 능선길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서쪽 편으로 펼쳐지는 계룡산 산줄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장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갑하산 정상에 도착을 했습니다.

 

갑하산이라는 명칭은 갑소(甲所), 갑골, 갑동 등으로 바뀌어온 지명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갑소의 소(所)는 고려시대의 행정구역의 하나로 주로 왕실이나 관아의 공물을 생산하던 사람들이 생활하던 구역이며, 주로 갑옷을 만들었던 곳이라 합니다.

 

 

 

 

갑하산에서 우산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은

대전 최고의 능선 산행코스로 손색이 없습니다.

 

서쪽을 바라보면 계룡산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계룡산 전망대라 일컬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세먼지때문에 시계가 좋지 않아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동쪽에는 국립대전현충원, 월드컵경기장 등이 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이 훤히 보이는 곳은 굴참나무 2그루가 무참하게 베어져 있었습니다.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내서 전망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신선봉으로 향하는 숲길에는

요괴소나무라 불리우는 나무가 있습니다.

 

 

 

 

영험한 기운을 품은 소나무의 기운을 탐내던 요괴가 기운을 취하려 하자

신선봉에서 이곳을 지키고 있던 신선이 요괴를 가두고 땅에서부터 족쇄를 나오게 하여 봉인하였다고 합니다.

 

 

 

 

거북이 모양의 거북바위도 볼 수 있습니다.

 

계룡산에 오르면 승천할 수 있는 거북이가 계룡산에 오르기 위해 갑하산을 넘다가

갑하산에서 쳐다본 계룡산의 절경에 반해 갑하산에 남아서 그곳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신선봉 정상에 도착을 했습니다.

 

신선봉에서 우산봉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이동을 합니다.

눈쌓인 숲길이 매우 정겹게 느껴지며 푸근함을 함께 선사하기도 합니다.

 

 

 

 

우산봉을 향하는 숲길에는 효자샘물이 있습니다.

 

먼 옛날 갑동마을에는 갑동이와 노쇠한 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어머니의 건강을 위하여 갑동이는 하루종일 병수발을 하였습니다.

병수발을 하던 도중 잠깐 잠이 든 갑동이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갑동아, 저 앞산의 샘물을 100일간 어머니게 드려라! 그리하면 어머니는 낫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졌습니다.

다음날부터 갑동이는 꿈속에 나타난 노승의 말처럼 100일간 샘물을 어머니께 떠다 드렸습니다.

이후 갑동이의 효심과 100일간의 샘물로 어머니는 회복하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파른 경사의 우산봉에 올라 주변을 살펴 봤습니다.

미세먼지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절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산봉에는 '세시랑이야기'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백제시대 유성 갑천변에 살던 여인이

우산봉 산신령에게 정성껏 기도를 올려 아들 셋을 낳았습니다.

장성한 세 아들은 신라군과 싸움을 위해 떠났으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산신령에게 세 아들이 우산봉의 시랑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순간 여인은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고, 선계에서 세 아들과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우산봉에 정성껏 기도하면 훌륭한 아들을 얻는다는 소문이 자자해 여인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안산산성은

서문지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백제시대 산성으로 유명합니다.

매년 3월 1일에 산성제를 거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전둘레산길 8구간인 안산산성으로 향하지 않고

우산봉에서 구암사 방향인 반석7단지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하산길의 숲길에서 서산대사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글귀이기도 합니다.

 

눈길을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마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어에는 이의 길이 될 것이니

 

이렇게 산행의 참 맛을 느낀 갑하산 산행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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