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첫째 주 목요일

아침에 나는 카키색 바지에 검은 스웨터를 입고 검은색 목도리를 한 후 아이보리색 점퍼를 입었다. 발목까지 오는 운동화를 신고 검은 장갑을 낀 체 미세먼지가 하늘을 여러 번 덧칠한 희끄무레한 하늘을 올려다본 후 길을 걸었다.

내가 걷는 왕복 8차선 도로는 지하터널을 빠져나온 차량이 학교 앞 횡단보도 앞에서 속력을 줄였고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엄마 손에 이끌려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길가에 아무렇게 놓인 공유 전동킥보드는 이용자의 비양심만큼 녹슬어 있었다. 오늘 한낮의 기온이 영상 7까지 올라가는 겨울치고는 따뜻한 1월의 한낮이다.

 

스물다섯 살 여름

나의 첫 해외여행으로 한 달 동안 베트남을 다녀왔다. 그 이후 싱가포르, 인도, 네팔,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 홍콩, 마카오, 러시아를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10개월 동안 다녀왔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낯선 나라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도시를 봤고 농촌을 봤고 산을 봤고 강과 바다를 봤다. 밤이 되면 지는 해의 자취를 따라 하늘을 봤고 달과 별을 봤다. 하지만 결국 내가 본 것은 낯선 사람들 속에 머물고 있던 나 자신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스무살이라는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남들이 흘리는 눈물보다 더 빨리 우리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위 문장을 각색하여 내 남은 인생을 표현해 봤다.

똑같은 365일이지만 작년보다 올해가, 똑같은 24시간이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더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는 오십 살이 지나고 나면 오십 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십 살 이후가 오는 것이다.

나는 더는 스무 살이 아니다. 그보다 두 배 반이나 더 나이를 먹었다. 스무 살 때의 내 모습에서 이미 많이 변환 내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십 살, 내 나이다.

생물학적 오십은 작년 가을이었지만 어쨌든 202315일 나는 정확히 만 오십 살이 되었다. 100세 달리기에서 이제 반환점에 도달했는데 나머지 50년을 더 열심히 달려야 하나 아니면 다른 길로 빠질까 고민 중이다.

처음의 40년은 뭣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삼십 대까지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지만 고단한 현실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다. 사십 대까지는 이기지도 못하는 현실과 치고받고 싸우느라 나를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될 대로 되겠지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나에게 사십 살 이전은 그런 시절이었다.

사십 대에 들어선 후 최근까지 무척 계획적인 삶을 살았다. 뭐든지 계획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룬 성과도 여럿 있었지만, 삶이 조금씩 지쳐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나는 상상을 한다.

오십 살의 여섯 번째 달에는 자동차를 타고 동유럽을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름 오십 년을 그럭저럭 잘 살았으니까 6월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스물다섯 살에 베트남을 다녀온 후 죽기 전에 전 세계를 여행해야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웠었다. 돈 때문에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여행에 필요한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느라 아주 계획적으로 돈을 모았다. 나에게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니 망설이지 말고 떠나자!

이제 나의 무대는 유럽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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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이었다.

이미 해는 떴지만 안 뜬 것처럼 어두컴컴했다. 갈천약수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을 먹고 구룡령으로 향했다. 어제부터 강원도를 뒤덮은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황태해장국처럼 희뿌옇게 흐려졌다.

차창으로 보이는 달만이 막 떠오른 햇빛을 받아 뚜렷한 형태로 산을 넘고 있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지나간 것처럼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했던 옛길은 어느새 아스팔트 포장길로 변해 있었다.

 

치래마을(갈천마을)
백두대간 구룡령 비석

 

나는 백두대간에 서 있었다.

뼛속까지 전해지는 강한 울림 때문에 우리나라 등줄기에 나 홀로 선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차가운 바람 속에 구불구불 이어진 구룡령 고갯길의 음침한 그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구룡령에서 갈전곡봉까지는 체 4km가 안 되었지만 나는 서둘러 길을 걸었다. 걷다가 능선 아래를 내려다보면 깎아지른 벼랑이 펼쳐졌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참나무 가지에 붙어 있는 겨우살이를 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바람은 시원하게 불었고 오늘 산행은 포근한 날씨 속에 이루어질 거라는 낙관적 마음이 스며들었다.

 

구룡령
등산로 입구
겨우살이

 

달은 높은 능선을 넘어 잠들었다.

동시에 태양은 능선 위로 솟구쳤다. 낮 동안의 햇빛 아래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구룡령 옛길을 지나면서 적막함과 함께 외로움이 찾아왔다. 쓸쓸함을 느끼지 않도록 나는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부지런히 걸어 갈전곡봉에 1시간 만에 도착했다.

해발고도 1,204m인 갈전곡봉은 휑했다. 자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헐벗은 가지와 떨어진 낙엽만 보고 겨울이 코앞에 왔음을 확신하는 나에게 반감이 치솟았다. 나는 자연 편에 서서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지 않는 내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백두대간
구룡령 옛길 정상
갈전곡봉

 

2년 전

이맘때에 단목령에서 조침령까지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를 위해 현장조사를 했었다. 4, 조침령에서 왕승골 삼거리까지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를 위해 현장조사를 했었다. 이번에도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명확했다. 왕승골 삼거리에서 갈전곡봉까지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를 위해 현장조사를 해야 했다.

오랫동안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에 숨겨진 자그마한 흔적이라도 찾아내려고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떴다. 이제 당분간 짙은 초록을 한껏 머금은 푸른 숲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날이 추워지면서 더 분명해졌다.

 

백두대간 등산로 조사
조침령방향 백두대간

 

자연은 아무 조건 없이 그 자체를 인간에게 내줬다.

인간이 자연에 저질렀던 것을 생각하면 자연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맡겼다. 나는 말도 없이 그저 능선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백두대간을 걸었다. 능선의 가파르고 좁은 길만이 내가 갈 길이었다. 봉우리에 올라 물 한 모금 마시고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둘러보았다.

바람에 감기는 몸으로부터, 내 몸이 하늘로 떠오를 수 있는 풍선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떠오르기만 하면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리라.

 

백두대간 어디쯤... 점심식사
왕승골삼거리
왕승골로 하산
구룡령 쉼터에서

 

다음날

백두대간 트레일 6구간을 찾았다. 백두대간 트레일 6구간은 방태산을 기점으로 강원도 인제군과 홍천군의 3(월둔, 달둔, 살둔) 4가리(아침가리, 명지가리, 연가리, 적가리) 일대에 조성된 21km의 숲길이다.

둘레길은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도록 산의 둘레를 따라 조성한 길이며 트레일은 산줄기나 산자락에 길게 조성하여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길을 말한다.(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 제22조의 2)

 

백두대간트레일
아침가리 전망대

 

하늘엔 여전히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대기의 먼지와 습기가 막을 이뤄 먼 거리일수록 사물의 윤곽을 흐리게 할 정도로 이 막들의 색채가 우세해졌다. 멀리 있는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는 앞에 펼쳐진 풍경에 비해 미세먼지 자욱한 색으로 변해버렸다.

숲길 입구의 자작나무 조림지와 박달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황철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만날 수 있고, 계곡과 숲을 교차해 지나며 감상할 수 있어 아름다운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자작나무

 

아침가리에 왔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국토의 63.7%가 산림인 우리나라에서 아침가리는 작은 계곡일 뿐이지만 자연 그대로 흐르고 있는 그 숨은 가치는 실로 거대하다. 아침가리 주변에는 자작나무 숲이 있다. 그곳에 서 있으면 북유럽 어느 숲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안구가 정화된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우듬지의 함성이 들리고, 구불구불한 계곡을 흐르는 물의 노래를 들으며 명상에 빠졌다. 인제를 몇 년 동안 자주 오게 되면서 맞이하게 된 소중한 추억이다. 참으로 괜찮은 경험이다.

 

 

아침가리

또다시 길을 나섰다.

막걸리 두 병을 사 들고 어제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어갔다. 내가 빨리 걸으면 걸을수록 남쪽에 떠 있는 해와 점점 가까워졌다. 나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긴 머리카락을 흐트러지게 했다.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걷고 있는 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등허리에 땀이 흥건했다. 잠시 쉬었다 가려고 웅장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 그늘에 앉았다. 익어가는 대추를 바라보며 뜨거워진 몸의 열기를 식혔다.

그늘을 만들지 못하는 나무는 이미 나무가 아니다. 그늘이 움직인다는 것은 나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나무 그늘의 위치와 모양이 바뀌어야 한다.

 

지주식 김양식장
느티나무

 

길 위를 지키는 사마귀가 있었다.

갈막잔등으로 향하는 언덕길 모퉁이를 돌아서니 한낮의 햇빛을 받아 한층 더 달궈진 콘크리트 위에 권투 자세를 취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단지 이 길을 걸었을 뿐이야.’

내 말을 이해한 듯 사마귀는 길 한쪽으로 물러났다.

만나서 반가웠어.’

나 때문에 놀라지 않았지.’

길 위에 인사말을 남기고 나는 다시 길을 걸었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낯선 만남이 나의 마음에 가냘픈 흥분을 일으켰다. 바람에 흔들리는 길섶의 풀 소리가 내 심장 소리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땀에 젖어도 가벼운 오늘 하루의 무게를 야영장까지 짊어지고 걸었다.

 

사마귀
갈막잔등 전망대에서 바라본 다도해

 

바다와 인접한 야영장은 공기 냄새가 달랐다.

졸참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해의 위치가 변화면서 나도 그늘을 찾아 이동해야 했다. 도시의 삶은 자연이 어떻게 변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다. 나는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려고 자연과의 밀접한 접촉을 자주 하고 있다. 그만큼 자연에 내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지나치게 빠른 이동보다는 느린 속도로 자연을 느끼는 그런 여행이 좋다. 속도가 느린 만큼 감성의 온도는 더욱 높아진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백패킹과 독서 - 인생의 베일(서머싯 몸)
멍때리는 나
막걸리와 꽁치찌게로 저녁식사

 

슬그머니 어둠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젖어있던 고독감은 어둠이 더해져 더욱 짙어졌다. 고요하기 그지없는 이 밤은 여느 때와는 아주 달랐다. 이상한 느낌이 든다. 신경이 날카로워서 잠을 자고 싶지만 잠을 이룰 수 없다.

나무에서 떨어진 잔가지와 솔잎 등을 모아 바닷가에 불을 피웠다. 바싹 마르지 않은 솔잎 때문에 흰 연기가 피어났지만, 불꽃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뚜렷한 형태를 보이지 않는 불꽃은 지금의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달리도 야영장에서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의 종착지에 도달할 때까지 나는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달리도에서의 두번째 밤
불멍

불놀이야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달리도에서 두 번째 밤은 깊고 어두웠다. 이슬을 가득 머금은 텐트를 정리하여 배낭을 꾸렸다. 첫배를 타고 목포로 나갈 생각이다. 사위는 아직 어둡지만 나는 떠날 준비가 끝났다. 마지막 남은 비상식량인 사과를 베어 물고 길을 나섰다.

아직 가보지 않은 해안길을 따라 남부염전으로 향했다. 폐허가 된 북부염전과는 달리 남부염전은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일손을 놀리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섬을 방랑하는 즐거움을 아는가?

모험과 탐험에 대한 호기심과 용기가 있다고 방랑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방랑은 내가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떠도는 것이 방랑이고 달리도에서 내가 걸은 그 길이 방랑길이 되는 것이다.

나는 0831분 첫 배를 탔다. 나의 달리도 백캐핑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한적한 해안길
남부염전
슬로아일랜드를 타고 목포로 go

여전히 어스름이 깔린 새벽이다

텐트에서 눈을 떴다. 나는 결코 불면의 밤을 보낸 것이 아니다.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을 뿐이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어디인지

나는 지금 어떻게 밤을 보내고 있는지

어둠이 뒤덮고 있는 바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늘에 총총한 별들은 무엇을 비추고 있는지…….

그런 게 궁금했을 뿐이다.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벗어나 나의 행위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목포구등대
새벽에 홀로깨어

 

그렇게 새벽을 맞았다.

새벽이슬이 내리고 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해풍이 찝찝하게 내 피부에 와 닿는다. 새벽에는 쌀쌀했다. 청명한 가을밤, 별이 이처럼 빛나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검은 어둠 위에 별이 총총한 밤하늘과 대비되어 텐트주위는 휑한 느낌이 들었다.

태초의 사람들은 하늘에 흩어져 있는 별들을 그냥 바라보지는 않는다. 북두칠성처럼 별과 별을 이어서 하나의 별자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모습 속에 견우직녀와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적어 넣었다. 말하자면 별을 만들어낸 것은 하늘이지만 별자리를 만들어낸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 이어령, 책 한 권에 담긴 뜻(2022, p18)

 

별과 별자리 그리고 불켜진 텐트

 

아침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다도해는 자욱한 물안개가 하얗게 퍼져 있다. 긴 어둠의 터널에서 겨우 빠져나왔을 때는 해는 이미 뒷산 능선에 걸려 있었다. 아침 8시가 지나 산을 넘어온 햇살의 손길이 미치자 텐트 표면의 이슬은 알전구에 불이 켜진 듯 빛을 발하고 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신 후 나는 길을 나섰다. 차가 지나갈 수 있는 비포장도로는 바퀴가 지난 자리를 제외하곤 이름 모를 풀로 뒤덮여 있었다. 아름다운 오솔길이 아니라 방치된 비포장도로 그 자체였다.

나무에 가려 바다는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람을 타고 함께 날아온 공기에서 짠 내음만이 날 뿐이었다. 걷는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이기에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싶었다. 오늘 날씨는 걷기에 덥지 않고 선선했다. 숲길을 벗어나니 무화과밭 사이로 몽돌해수욕장이 보였다.

공기의 고요 속에 잔잔한 파도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몽돌은 거의 다 사라지고 고장이 나고 방치된 어선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목포구등대
달리도 야영장의 아침
해안길
몽돌해수욕장

 

시선이 바다를 향한다.

손으로 흉터를 긁듯 그런 괴로움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 나타날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칡덩굴 사이의 좁은 흙길을 벗어나며 여태껏 보지 못한 바다의 생물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작은 붉은 깃발처럼 숲과 바다를 가로질러 분주하게 이동하는 도둑게였다.

한참을 더 걸어 나는 도두마을에 도착했다. 담 너머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도로에 떨어졌다. 떨어진 감을 바라보며 나는 햇살이 골고루 비추는 마을의 공간 속으로 기어들었다. 농사일에 바쁜 마을 어르신들과 인사도 나누고 어망촌에서 지금은 폐허처럼 변한 황량한 염전을 바라보며 과거의 융성했던 염전 모습을 떠올려 봤다.

나의 상상 속에는 그 옛날 햇빛에 작열하는 반듯반듯한 염전의 반짝임을 볼 수 있었다.

 

칡덩굴
도둑게
율도와 맥도가 보이는 해안길
떨어진 감 - 도두마을
도두마을 들녘
폐허로 변한 북부염전
달리도항 바다

 

이른 점심을 먹었다.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동명마을에 도착했다. 문득 점심은 사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도의 유일한 식당, 숙자네식당에서 단돈 9,000원에 사 먹는 시골밥상은 그 어떤 만찬보다 식욕을 돋웠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길 수 있는 야외에 자리했다. 밥 한 숟가락을 먹고, 반찬 한 젓가락을 먹고, 막걸리 한모금을 마셨다. 낯선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렇게 밥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이 순간과 잘 어울렸다.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바로 이런 것이다.

바다는 살아있다. 바다는 고요하고 움직임도 없는데 잔잔한 파도에 정박한 배가 움찔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달리도항
숙자네식당 시골밥상

달리도에 도착했다.

내가 걸어야 할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된 해안 길이다.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어느 섬에나 볼 수 있는 그런 조금은 밋밋한 길을 걸었다. 넓은 바다에 지주식 김 양식장이 펼쳐져 있고 해안가 모퉁이를 굽이 돌아가는 길은 인적 없는 쓸쓸한 곡선으로 뻗어 있었다.

새로 지어진 마을회관

파란색·빨간색 양철지붕

이지러진 담벼락

밭에 길게 늘어선 비닐하우스

논의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벼

길가의 해당화…….

꾹 눌러쓴 모자 아래로 보이는 원달마을은 정적이면서 단출한 풍경이다. 나는 그 길을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었다.

 

달리도항
슬로아일랜드
해안길
원달마을 입구
원달마을

 

언덕을 올랐다.

희미하게만 보이던 언덕길은 전봇대를 따라 원달마을 뒤편의 갈막잔등이라 부르는 곳을 른다. 그 길은 가난하고 굴곡진 옛사람들의 삶의 길이었다. 뱃고동 소리가 가끔 들릴 뿐 길 위에는 고요의 무게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크고 무거운 바위가 길 한가운데를 막고 서 있는 듯한 막막함이 있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을 걸을 때 나는 고요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발소리에 놀라 갑작스럽게 날아오르는 꿩처럼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야영장에 헐떡이며 도착했다.

 

원달마을과 갈막잔등
갈막잔등에서 바라본 다도해
달리도 야영장
야영데크

 

텐트를 쳤다.

텐트 뒤로는 산이 둘러싸고 있고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의자에 앉아 있으니 정말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 옆에 벗어놓은 운동화와 그 속에 넣어둔 양말,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책

주파수를 찾고 있는 잡음 소리 내는 라디오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의 모습

배의 움직임이 만든 파도가 밀려와 해안가의 바위와 부딪치는 소리

텐트 옆 졸참나무 열매가 떨어져 굴러가는 소리…….

지금 내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다. 또다시 졸참나무 열매가 떨어졌을 때 나는 혼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곳은 고독의 자리이며 눈으로 볼 수 없는 무언가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 가을이 찾아오고 있었다.

 

내 텐트
잔잔한 파도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이지만 따가운 한낮의 열기를 피해 졸참나무 그늘에 숨어 있었다. 광활한 바다를 지나온 해풍을 맞으니 한결 기분이 상쾌해졌다.

알코올 중독은 절대 아닌데 캔이나 병에든 것을 보면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 결국 유혹에 빠지고 만다. 특히 소주병보다 캔맥주나 병맥주를 보면 그 안에 든 액체를 내 위장에 쏟아버려야 직성이 풀린다. 입안을 가득 채운 맥주가 내 좁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하나의 예술적 행위이다. 천천히 마실수록 예술적 감흥은 더욱 짙어진다.

나는 빈 맥주캔을 바라보며 앉아 있을 뿐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마저 떠나버리면 이곳은 누가 찾아오겠는가?

 

낮술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석양이 만들어낸 몽환적이고 황홀한 광경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가을 하늘의 청명한 구름을 삼켜 버리는 어둠의 물결이 밀려왔다. 낮 동안 불타오르던 해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면서 수줍어하는 첫날 밤 새색시의 연지곤지 찍은 볼처럼 광활한 하늘을 검붉게 물들였다. 나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말없이 노을을 바라보며 자연의 신비에 관해 골똘히 생각해본다.

내가 달리도에 있는 까닭은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아름다운 석양에 타는 저녁놀을 보기 위해서다. 넓은 공간에 나의 작은 텐트가 나의 종착지인 셈이다.

아름다운 석양을 보고 집으로 향하는 날이 나의 방랑이 끝나는 날이다.

 

달리도 석양
달리도 백패킹

나는 오늘도 배낭을 졸라맨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었다. 출근길 지하철은 지옥철답게 사람들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나는 주말이나 연휴가 지난 월요일이나 평일에 여행을 간다. 남들 다 노는 주말이나 연휴에는 될 수 있으면 집에 머무른다. 교통체증과 북적거림이 싫어 절대로 여행은 다니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남들 일할 때 당당하게 놀러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는 목포 달리도에서 야영을 하려고 한다.

 

서대전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열차에 올랐다.

서대전에서 0944분 목포행 첫 무궁화호 1401, 1호차 3번 좌석에 앉았다. 출근 시간이 지난 시각이라 열차는 한산했다. 열차는 천천히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빨라졌다. 창밖 풍경은 이미 가을이 찾아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동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아무런 간섭없이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독서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는 기차에서 책을 종종 읽는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의 단편들을 글로 적어놓으면 나중에 짧은 글이 된다. 내가 쓴 글들은 그 순간의 생각들을 적어놓은 것이 많다.

 

열차 창밖 풍경

 

목포는 항구다.

열차는 3시간 4분이 지난 1248분에 목포에 도착했다. 1330분 배를 타기 위해 서둘러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로 향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목포 시내를 걷는 내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강한 의지가 안경 너머 두 눈동자에 불타오른다.

내가 지나온 거리는 과거가 되고

내가 서 있는 거리는 현재가 되며

내가 가야 할 곳은 미래가 된다.

나의 여정은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지는 시간여행이자 공간여행이 될 것이다.

 

목포역
목포시내를 걷고 있는 내 모습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
매표소

 

여객선을 탔다.

매표를 마치고 슬로아일랜드에 탔다. 차량선적이 늦어져 예정된 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배는 항구를 벗어났다. 매캐한 매연을 내뿜은 배는 점점 속력이 빨라졌다. 항구에서부터 배를 쫓아온 갈매기는 배 주변 상공을 날고 있다.

배가 목포 해상케이블카 아래를 지날 때 갈매기는 새우깡을 받아먹으려고 무리를 지어 중구난방으로 아우성쳤다. 갈매기의 아우성에 보조를 맞추듯 새우깡이 바다 위 하늘로 던져졌다. 갈매기는 마구잡이로 던져진 새우깡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잘도 받아먹는다. 나는 먹이가 없어도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먹이를 잡지 않아도 새우깡을 먹을 수 있는 갈매기가 부러웠다.

만족할 만큼 새우깡을 먹은 갈매기는 배가 목포대교 아래를 지날 때 사라져버렸다.

 

슬로아일랜드
목포항
목포 해상케이블카
갈매기

새우깡을 받아먹는 갈매기

 

9월의 첫 주말이다.

한주만 더 지나면 추석이다. 명절을 앞두고 즐거워야 할 세상은 구겨진 종잇조각처럼 뒤숭숭하다. 경기침체도 침체지만 여름내 조용했던 태풍이 명절을 앞두고 북상을 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힌남노이다. 각가지 뉴스매체는 연신 역대 최고의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라고 당부하고 있다. 또한, 제주 서귀포로 진입할 태풍 힌남노의 경로는 여수, 통영 등 남해안을 통과한 후 경주, 포항, 울산 등을 거쳐 울릉도 인근 동해안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자마자 집을 나왔다. 내일이면 우리나라가 직접적인 태풍 영향권에 들어서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고 싶었다.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게 더 멀리까지 가볼 수 있다. 페달을 힘차게 밟으니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층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주변 녹음이 한층 더 짙어진 하천 변 자전거길을 통해 이동한다. 도심지를 벗어나니 공기의 냄새가 평소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공기에 물비린내가 짙게 묻어있다. 세상은 고요하고 하천의 물 흐르는 소리는 오늘따라 더욱 애달프게 들린다. 자전거를 타고 30여 분만에 계룡산 수통골에 도착한다.

 

 

서서히 잿빛 구름이 몰려든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서 옷은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수통골 주차장은 만차다. 등산객과 인근 식당 이용객들이 많다 보니 주차장은 언제나 차산차해를 이룰 수밖에 없다. 태풍이 오기 전 조금이라도 여가를 더 보내려는 사람들로 수통골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수통골까지 온 김에 빈계산, 금수봉, 도덕봉 종주는 시간관계상 안 되고 가까운 빈계산만 올라갔다가 오려고 생각 중이다. 자전거를 주차장 한쪽에 세우려 하는데 잘 안된다. 공공자전거라 전용구역 외에 반납처리가 되지 않았다.

 

 

자전거를 재대여하다.

복잡한 수통골을 벗어나 한밭대 정문에서 공공자전거를 반납하고 바로 재대여한다. 대전 공공자전거 타슈는 1시간 이내에 반납하면 무료로 다시 재대여할 수 있다. 작년까지는 매해 1년 회원권(30,000)을 구매하여 이용했었다. 올해부터 앱도 바뀌고 자전거도 바뀌어서 더욱 편리하게 이용 가능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전거가 예전과 비교해 턱없이 적다는 점이다. 다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이적까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로 다니며 1시간 동안 자전거를 알차게 타려고 한다.

 

 

광수사에 왔다.

수통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대한불교 천태종 힐링 행복 도량이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보다는 불교가 조금 더 친숙하다. 세계와 나를 따로 구분하는 이원론보다는 세계와 나는 하나인 일원론을 더 믿는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一切唯心造).

포대화상은 대 자유인이다.

긴 막대기에 포댓자루 하나 둘러메고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는 얼굴로 세속 모든 이들과 분별없이 어울리며 불법을 전하고 탁발한 모든 것을 어려운 중생에게 나누어주며 무애(無碍)의 삶을 살았다. 자연과 함께 행()하고 자연으로 돌아간 걸림 없는 대 자유인이다.

 

 

거리를 누비다.

자전거는 도로를 건너고 새로 구획정리가 된 주거지구의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대부분 비슷한 형태의 건물들이지만 간혹 한옥도 있고 특이한 모양의 건물도 있고 넓은 자연공원도 있다. 간판을 대충 눈으로 훑어보다 특이한 이름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들녘은 아직 푸르다.

하천의 제방길을 따라간다. 왼쪽은 하천이 흐르고 오른쪽은 드넓은 들녘이 펼쳐진다. 밭도 있고, 논도 있고, 과수원도 있다. 들녘에는 아직 익지 않은 초록의 벼가 물결치듯 출렁거린다. 자전거를 멈추고 논에 가까이 가본다. 낱알은 아직 여물지 않았지만 벼는 벌써 고개를 숙이려고 한다.

 

 

세상은 변한다.

제방길은 어느새 좁은 마을 길로 이어진다. 재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여러 가구 수가 살았던 곳인데 지금은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내 키보다 두 배나 높은 담벼락은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얗던 담벼락은 거무칙칙한 그을음으로 얼룩져 있고 그 아래의 하수도에 매캐한 시궁창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나무만이 그대로 서 있다.

모두가 떠나고 황폐해지어 버린 그곳에는 여전히 나무가 서 있다. 보여줄 사람도 없는데 한층 더 성장해 잎을 피웠고 한낮의 태양을 가려 그늘을 마련해주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오늘처럼 구슬프게 들리는 건 왜일까? 이번 태풍에도 부러지거나 뽑히지 않고 잘 버텨주기를 간절히 빈다.

 

 

비가 내린다.

주말은 어찌어찌 버텨내더니만 결국 월요일이 되어서 비가 내린다. 아직은 간접적이긴 하지만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서고 있다는 증거다. 대전은 중부지방이고 내륙이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태풍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 같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분주하다.

물에 불린 쌀을 빻아다 냉장고에서 숙성을 시킨 후 반죽을 시작한다. 요즘 집에서 송편 빚는 집이 있을까? 우리 집은 명절날이면 아직도 떡을 직접 빚는다. 시중에 파는 떡은 별로 안 좋아하셔서 번거로워도 집에서 직접 빚는다. 나는 떡을 잘 안 먹는데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떡을 다 좋아하신다. 솔잎과 함께 쪄진 송편이 오늘따라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어둠이 찾아왔다.

열린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낙숫물이 처마를 타고 대야에 폭포수처럼 떨어지고 있다. 비 오기 전의 후텁지근함은 어느새 싸늘함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따금 들려오는 바람의 커다란 고함을 들으며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아침을 기다린다.

새벽 5.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습관적으로 알람을 끄고 불을 켠다. 날이 밝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간밤에 발생한 일들이 궁금하여 텔레비전 전원을 켠다. 매체는 연신 태풍 속보를 방송하고 있다. 예상했던 태풍의 위력보다는 약해졌다지만 태풍이 동반한 강풍의 위력은 대단했다. 남쪽 해안가보다 동풍이 발생한 경주 포항의 피해가 훨씬 더 컸다. 태풍 힌남노는 오전 7시를 지나 동해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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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났다.

돌풍이 바람의 방향을 순식간에 변화시키듯 계절은 여름을 지나 겨울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직 8월 하순이지만 아침저녁의 체감온도는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를 켜놓고 잤었는데 지금은 창문을 닫고 얇은 이불로 배를 덮고 잔다.

 

새벽 5.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2주 전에 바꾼 핸드폰 알람 소리가 익숙하지 않지만, 몸에 밴 습관은 나를 깨우기 충분하다. 확실히 어둠은 색이 더 짙어졌고 길어졌다. 커피포트의 전원을 켜놓고 밖으로 나온다. 아직 뽑지 않은 고추와 새로 파종한 씨앗에 물을 준다. 여름만큼 충분히 물을 주지 않아도 촉촉하게 대지가 젖어 든다.

 

커피를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믹스를 큰 머그잔에 타 먹는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김에서 달콤한 향이 코를 찌른다. 뜨거움을 조금이라도 식히려고 호호불어가며 머그잔에 입을 대었다 떼기를 반복한다. 나른한 몸을 일순간에 깨우는 달콤함이 혈관을 타고 흘러 구석구석 퍼져나간다.

 

벌초 날이다.

아침의 느긋함은 해가 뜨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뭇국에 밥을 말아 먹고 낫 2, 갈고리, 소주, 담배, 육포, , 음료수, 빵 등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한다. 어제 오후에 녹슨 낫을 열심히 숫돌에 갈아 두었다.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등산화를 신으면 벌초 준비는 끝이 난다.

 

 

고속도로를 달린다.

집에서 불과 1시간의 거리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고속도로는 정체가 시작된다. 지금은 용담댐으로 수몰되어 마을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지만, 선조의 혼이 서린 지역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금산에서 용담댐 수문을 지나면 한적한 도로가 계속된다. 작년의 홍수피해로 방류를 많이 했는지 댐의 수위가 한결 낮다는 느낌이 든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하는 곳이라 지금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 창을 여니 자취를 감춘 봄의 벚꽃 냄새가 살며시 다가오는 듯하다. 오늘의 집결지인 월계교가 눈앞에 보인다.

 

칡덩굴을 뚫고 나가야 한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독 칡덩굴이 무성하다. 낫으로 칡덩굴을 끊어가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칡덩굴에 가려져 있던 찔레나 초피나무 가시가 피부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칡덩굴을 낫으로 끊는 순간 내 등을 강렬한 무엇인가가 찌르기 시작한다. ‘아 따가워.’

 

벌침을 맞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칡덩굴 사이 어딘가에 벌집이 있다. 제트기가 굉음을 내며 하늘로 치솟듯 갑자기 벌떼가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도망가라는 짧은 비명과 함께 우리는 달리고 달려 다행히도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벌에 쏘이지 않았다. 길로 나와서 벌에 쏘인 곳을 확인한 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월계교 옆 수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간 후 댐수위 위쪽으로 우회한다.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 산소에 도착한다. 예년과 비교하면 봉분의 피해는 상당히 적어 다행이다. 벌초한 후 성묘를 마치고 할아버지 산소로 이동한다. 다니던 능선길이 아닌 계곡 부로 질러간다. 청미래덩굴과 초피나무를 제외하곤 이동하는 데 방해물이 없어 손쉽게 도착한다. 성묘를 먼저 한 후 다시 30여 분간의 벌초를 한다. 잡풀로 무성했던 산소가 깨끗하니 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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