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석양이 질 무렵,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남쪽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한층 더 짙은 먹색이 되었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2시간이 지났을 때 공기에서 생선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통영에 왔다.

월요일 오전 651, 첫배를 타고 두미도에 가야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 번째 방문이다. 통영여객터미널 인근에 숙소를 정했다. 밤늦은 시간이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불 켜진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 낼 아침 또한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원조설렁탕, 수육 - 통영맛집

 

월요일 새벽 5.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나는 일어났다. 간단히 세안하고 짐을 꾸려 숙소를 나왔다. 이른 새벽이지만 서호시장은 활기찼다. 불 켜진 식당에서 복국을 먹었다. 어두웠던 새벽은 어느새 사라지고 해가 떠올랐다. 새롭게 단장한 통영항여객터미널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바다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면 비로소 바다가 보이는데 출발한 항구는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본 사람은 바다는 넓고 육지는 좁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육지가 좁아서 바다로 나아가면 바다는 더 넓어지고 거기서 또 작은 섬을 만나게 된다.

 

부일식당, 복국 - 통영 서호시장 맛집
통영 바다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두미도

 

두미도는 살아 숨 쉬는 섬이다.

바다는 다정하게 섬을 껴안아 주고 있었다. 섬은 봄비와 봄볕에 숲이 부풀고 땅에 생명의 기운이 돌았다. 나무는 꽃을 통해 대기의 수분을 흡수했고, 초록의 잎을 통해 봄볕을 간직했다. 하늘도 아기 돌보듯 섬을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미도 북구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건물 앞 조형물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1월에 다녀가고 3개월도 안 지났다. 만남이란 언제나 반가운 것이다. 짐을 놓아두고 두미도 옛길을 걸었다.

 

두미도의 봄
두미도 바다펜션 - 북구항

 

두미도 옛길은 발칵 뒤집혔다.

봄날의 두미도 옛길은 깊은숨을 쉬었고 더욱 견고해졌다. 봄비가 내려 풀과 야생화가 뒤섞여 자랐고 흙이 부풀기 시작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길 위에 그림자도 흔들렸다. 나무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벚꽃길에 들어섰다.

벚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려서 연분홍빛 벚꽃잎이 길 위에 떨어졌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에서 빛이 들어와 땅에 닿았다. 떨어진 벚꽃잎은 빛을 받아 반짝이며 뒤섞였다. 육지는 벚꽃이 만개했는데 두미도는 벌써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두미도 옛길
홀아비꽃대

 

둥글레
남산제비꽃
꽃깔제비꽃
고은마을 벚꽃길 - 두미도 옛길

 

나는 천황산을 다시 찾았다.

숲의 나무 색깔이 바뀌었다. 만개한 진달래꽃, 벚꽃이 봄볕을 받아 그 색깔이 숲으로 퍼져나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숲의 색깔이 파도쳤다. 섬을 찾는 사람들과 섬사람들은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두미도 옛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숲속은 더 짙은 녹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숲의 색깔은 나무 우듬지 위를 굽이쳐 파도를 일으키듯 바다로 흘러갔다. 산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졌다.

 

천황산 등산로 조망점
진달래

 

산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순간 나는 돌출된 바위에 두 다리로 섰다. 두 다리가 바위에 닿았을 때 닿는 느낌으로 바위가 단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구항 선착장 공사는 마무리단계에 들어섰고 어선이 흰 거품 자국을 남기며 바다를 스쳐 갔다. 욕지도가 보이는 바다는 아득하니 멀었다.

계절이 바뀌었다.

핏빛처럼 붉게 핀 진달래는 바람에 흔들거렸다. 산은 각양각색의 색깔로 물들었고 새 생명이 움트는 나무에선 아기 젖내 같은 냄새가 났다. 바닷바람이 땀으로 젖은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등산을 시작한 지 4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두미도 남구항
청석마을과 동뫼섬
천황산 숲속
천황봉

 

안 가본 길을 갔다.

나는 투구봉 등산로는 가본 적이 없었다. 천왕산 정상에서 암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마치 바다가 하늘처럼 보이는 북구항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큰 바위와 그 바위에 붙어있는 바위솔, 숲을 뒤덮고 있는 현호색 군락지는 내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등산로는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등산로라고 생각했다. 등산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멀었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지만 걷고 또 걸어 임도에 도착했다.

 

현호색
투구봉
북구항
임도

 

섬의 밤은 고요했다.

낮의 선착장 공사 소음은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자리돔 회, 돼지고기 볶음, 데친 나물들(두릅, 방풍나물, 꾸지뽕잎), 달래, 돌나물 등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특별히 할 것도 할 일도 없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섬은 밤은 생각보다 길었다.

새벽부터 안개가 짙었다.

바닷가에 안개가 끼면 바다는 무언가에 놀란 듯 창백해져 수면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았다. 바다의 표면을 타고 배가 왔는데 바다의 배는 보이지 않고 뱃고동 소리만 들렸다. 안개 속에 배 엔진 소리만 가득했다. 바다엔 안개뿐이었다. 안개 때문에 배는 보이지 않았다. 안개 속에서 배에 탔다. 배 위에서 안개를 마시고 바람을 마셨다. 배는 천천히 두미도를 떠났다.

 

저녁식사
안개
안개낀 북구항에 접안중인 바다누리호

(통영)두미도에 가기 위해서는

통영항 연안여객선터미널이나 신수도차도선여객터미널(삼천포)을 이용해야 한다.

 

통영항 연안여객선터미널, 경남 통영시 통영해안로 234
신수도차도선 여객터미널, 경남 사천시 유람선길 128

 

통영항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는

매물도, 소매물도, 비진도, 삼천포, 두미도 북구/남구,

산등, 탄항, 상노대/하노대, 욕지도, 추도(한목), 추도(미조)를 갈 수 있다.

 

매표소는 7번이고

챠량은 선착순 6대만 선적이 가능하다.

 

섬주민 2대, 외지인 4대 - 선착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차량은 안 가지고 가는게 좋다.

제 때에 못 나올 수 있다.

 

통영여객터미널 내부
통영여객터미널 내 두미도 매표소

 

두미도행 바다누리호 운항시간표이다.

(주)한솔해운 https://hshaewoon.kr/?page_id=570

 

통영~두미도를 1일 2회 운항중이며

삼천포 장날(4, 9일)에만 삼천포항까지 운행된다.

 

두미도 남구는 선착장 공사중으로  두미도 북구만 운항중이다.

 

바다누리호 운항시간표

 

통영항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는

두미도행 배로 (주)한솔해운의 바다누리호가 운항중이다.

 

바다누리호

 

바다누리호 여객 운임표이다.

(주)한솔해운 https://hshaewoon.kr/?page_id=613

 

바다누리호 여객운임표

 

통영 출발,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두미도
신수도차도선여객터미널(삼천포 출발),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두미도 북구항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미도에 왔다.

여행은 나에게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특히 섬 여행은 내가 유일하게 매력을 느끼는 취미 생활이 되고 있다. 새로운 생각을 위해서는 언제나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

여행은 자유로워야 한다.

여행의 최대 장점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다. 진정한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바다누리호
두미도 북구항

 

두미도는 느낌이 있다.

섬의 모양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이 아니라 섬에 숨어 있는 마을 터, 옛길 등에서 풍겨 나오는 임의로 할 수 없는 불변의 것에서 이끌림을 느낀다. 나는 이 이끌림 때문에 두미도를 다시 찾게 되었다.

섬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차를 타고 임도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면 이색적인 풍경은 볼 수 있어도 섬을 관찰할 수는 없다. 어떤 장소를 잠깐 지나치는 게 아니라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천황산에서 바라본 북구항
천황산에서 바라본 청석마을, 동뫼섬

 

두미도에는 마을이 산재해 있다.

북구 항에서 반시계방향으로 고운, 설풍, 덕리, 순천, 대판, 청석, 남구 항, 사동으로 이어진다. 섬은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다. 가구 수도 얼마 안 되고 없어진 마을도 있다.

섬은 시간여행을 준비 중이다.

자연스럽게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으면 잿더미 속에서도 한줄기 생명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살고 싶은 섬, 두미도 가꾸기 사업의 하나로 작년 말부터 남구 항에서 사동, 북구 항, 고운, 설풍까지 옛길을 복원 중이다.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남구항
설풍마을에서 바라본 고운마을

 

섬 속에 옛길이 묻혀 있다.

섬은 옛길을 둘러싸고 옛길은 세월의 흐름에 잊혀 있었다. 콘크리트 임도의 편리함 때문에 옛길은 무시되었다. 삶을 되돌아볼 때 옛길은 소중한 삶의 흔적이며 추억이 된다.

마을은 옛길을 통해 이어진다.

옛길을 따라 삶의 공간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보석의 아름다움이 사람들을 홀리듯 옛길의 복원이야말로 두미도 사람들과 두미도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게 할 것이다.

 

북구항에서 고운마을 가는 옛길

 

마을 사이의 거리는 시간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덤불을 걷어내고 무너진 돌담을 다시 쌓으면 옛길은 선의 흔적을 걷는 길로 드러낸다. 설풍에서 묵은 밭 사이로 난 좁은 돌담길을 따라 서남쪽으로 걸어가면 덕리를 만나게 된다. 무거운 돌절구를 지고 오갔던 옛길이다.

그 옛길을 찾아 헤매던 중 칡을 보았다.

칡의 굵기는 얼마나 될까? 바위 밑까지 뻗어 있는 칡은 이제까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굵은 것이다. 칡의 즙은 쌉쌀하지만 건강한 맛이다. 칡을 보고 있으니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칡은 오랫동안 인적이 드문 장소에 있어서 이렇게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설풍마을에서 덕리마을 가는 옛길 입구

 

덕리는 돌담만 남았다.

덕리는 산속 깊숙이 떨어진 외딴 마을이지만 돌구덕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칼로 두부를 잘라놓듯 돌담만 남은 옛 집터는 한때 반듯한 집들로 동네를 이루고 살던 곳임을 말해준다.

풍경을 바라보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해안 절벽과 돌구덕이 아무리 지척이라도 절대로 한걸음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돌구덕 풍경을 보고 파도와 바람 소리를 듣는데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다 다르다. 각자가 지닌 마음속 세계의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덕리마을(겨울)
덕리마을(봄)
돌구덕
돌구덕 파노라마 사진

 

절벽 위에 길이 있다.

덕리에서 돌구덕을 발아래로 내려다보며 길을 걷는다. 낭떠러지 위 바위를 쪼아 만든 길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절벽 구간을 지나 동백숲에 다다르면 이내 임도와 만나게 된다.

임도가 옛길이다.

대판을 지나 청석까지는 옛길을 넓혀 임도로 만든 길이다. 따분하게 느껴지는 임도가 절대 아니다. 대판의 비탈은 고즈넉하고 청석의 들판은 평화롭다. 두미도 꼬리인 동뫼섬을 바라보며 임도를 걷는 즐거움이 있다

 

절벽 길
조망점
임도에서 바라본 동뫼섬

 

고갯길을 넘는다.

청석 임도에서 다시 대숲으로 들어선다. 대판과 청석 사람들이 남구 항을 가기 위해 넘어 다녔던 고갯길이다. 지금은 천왕봉 등산로와 인접하고 있다. 고개를 넘으면 남구 항이 한눈에 보인다.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다르다.

들으려는 의지가 있기에 귀가 있고 보려는 욕망이 있기에 눈이 있는 것이다. 섬에서 생활이 외로울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살아가는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행복의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남구항 동백 숲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았다.

몸과 마음의 안식을 위해 23일 동안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건물 앞에는 재활용품을 이용하여 만든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비닐하우스 같은 두미 쉼터에는 난로도 설치되어 있어 휴식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살고 싶은 섬은 두미도다.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은 한호수 사장님 부부가 운영 중이다. 캐나다에서 20여 년 동안 관광업을 하다 귀국한 후 두미도의 매력에 반해 이주하셨다. 두미도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다.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
두미도 바다 펜션 (민박)
저녁식사
두미쉼터

 

섬의 밤은 먹색이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고기잡이배의 불빛만이 넓은 바다를 좁게 비추고 있다. 밤바다의 경외감에 빠져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점점 옅어진다.

섬의 새벽은 짙은 먹색 빛깔에서 엷은 안개 빛깔로 바뀌고 있다.

나의 육체, 어둠에서 나와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머릿속 생각의 끈을 마음껏 풀어 놓는다. 창의적인 사고는 늘 나를 성장시킨다.

오늘도 살고 싶은 섬, 두미도에서 불멸의 희망을 꿈꾼다.

 

북구항 조형물(두미도 바다 팬션)

주거지 인근에서 휴식은 진정한 휴식이 아니다. 낯선 장소의 아름다움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제공한다. 훼손된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고 재충전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여행도 삶처럼 몰아치듯 한다면 금세 지치게 된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삶의 고뇌는 힘을 뺀 채로 여유를 가져야 놓아버릴 수 있다. 성난 파도의 포효보다 잔잔히 흐르는 유연한 파도의 부드러움이 여행에서 더 필요하다. 몸의 힘을 빼고 마음은 가볍게 할 때 여행은 더 편안한 일상으로 다가온다.

 

미조항 조도호

 

탄산음료의 거품처럼 보글거리는 소리는 배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는 파도로 점철된다. 아무 데도 안 가보고, 아무것도 안 하면 알 수 없다. 여행 중에 경험하게 되는 생소한 분위기와 냄새가 부드러운 바닷바람처럼 좋다.

삶은 여행과 같은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설레고 흥분되어 잠도 이루지 못하지만, 여행길의 험난함과 마주치게 되면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게 된다. 미지의 세상으로 언제든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은 여행과 같아서 더 애틋한 마음이 든다.

 

살고 싶은 섬, 호도

 

360도 주위를 살피며 섬 냄새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 다채로운 식생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호도의 야생화와 더불어 나무는 다른 나무와 똑같이 닮지는 않는다. 훈훈한 초록빛이라도 그 색깔이 다 다르다. 계절은 나무의 변화와 같다. 나는 변화하는 숲속에서 흘러가는 계절을 파악하려 애쓴다. 나는 자연과 유기적으로 얽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충만하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존재들이 있다. 자연은 늘 같은 모습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그 모습이 시시각각 변한다.

갯바위에 앉아 조도와 두미도를 바라보는 한적함이 좋다. 바다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에 호흡을 맡긴다. 이 순간이 여행자로서 가장 좋아하는 명상과 사색의 시간이다. 세상살이에 빠져있을 때는 마음이 흐트러진다. 본래 타고난 밝은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옳고 깨끗한 생각을 하려면 마음을 차분하고 안정되게 해야 한다. 자연과 마주할 때는 언제나 명상에 빠져든다.

생각을 소유하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흘려보낸다. 그래야 집착을 버릴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여행지에서 자연에 몸을 맡긴 채 망중한을 즐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명상에 전념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가꿔나가면 얼마든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

 

호도 여행의 화두(話頭)

 

바람이 부는 데로 떠다니는 구름은 신기하게도 풍경화 속 양 떼의 그림처럼 예쁘게 떠 있다.

새벽에 내린 비는 호도를 적시고 바다로 흘러갔다. 물은 물에서 나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이란 근원은 똑같지만 불리는 이름의 형태만 다를 뿐이다. 똑같은 물을 바라보면서 그 물이 다르다는 착각을 하고 세상을 살고 있다. 모든 자연은 궁극적으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갯바위에 서 있는 낚시꾼의 위태로운 상황만큼 수평선으로 점점 기울어져 가는 햇빛에 비친 바다의 윤슬은 그 어떤 빛보다 휘황찬란하다.

나에게 여행의 가장 큰 화두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찰나의 영원함

 

여행지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접하게 되면 처음 의도와는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한 걸음씩 걸어 다닌 길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흥미진진한 여행이 되는 것이다. 여행은 내가 서 있는 장소에 대해 찰나의 영원함을 매 순간 느끼는 것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싶다. 나는 언제나 미지의 장소를 보러 떠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지난주 월요일, 남해 호도에 들었다. 이른 아침 미조항에서 막 배에 오르려는데 등에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배에서 내린다. 배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사는 곳, 조도에 사는 아이들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호도는 미조항의 지척에 산다.

조그마한 포구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해안 절애와 그래서 더 애틋한 기린초와 해국이 첫 마중을 한다. 섬에 들면 늘 마주하는 포구에 목멘 어선 한 척 없는 조그만 항에는 낚시꾼들 몇 명이 바쁘게 캐스팅을 해대고 있었다. 마을 쪽을 향해 난 콘크리트포장 길을 따라 길을 잡았다. 처음부터 가파른 비탈은 길을 이리저리 갈지자로 끌고 다니고, 두어 번의 모퉁이를 지나 마을 당산을 만났다.

 

마을에서 만난 첫 번째 사내에게 저간의 마을 사정과 숲에 있을 법한 옛길과 지명 등에 대한 질문을 두서없이 해댔다. 그는 끝없는 친절을 콘크리트 바닥과 허공에 마구 토해냈다. 더 물을 것이 없을 정도로 질문한 이상의 정보들을 얼굴이 벌게지도록 쏟아내고 있었다. 섬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들 친절할까! 순박해서라고, 외로워서라고 말하지 말자. 그냥 그들과의 인연을 섬여행의 첫걸음으로 삼으면 족할 것이다.

사내와 헤어져 마을 길을 따라 10분여 남짓 걸었을까! 마을 길이 끝났다. 저만큼 아래에 검푸른 바다가 혹하고 다가온다. 아직은 호도의 바다를 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급히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숲길로 접어든다. 남녘의 숲들은 늘 새로움으로 이방인을 맞는다. 흔히 보는 예덕나무며 광나무며 마삭줄 등속이 오늘도 반겨준다. 그런데 이 녀석은 뭘까? ‘! 모람이로구나!’ 오랜만에 보는 모람과 더불어 우묵사스레피나무, 섬노린재나무, 돈나무 등이 연속해서 우리를 맞는다. 반갑다.

그렇게 이어진 발걸음이 닫는 호도의 지명들이 예사롭지 않다. 보리마당, 스닷뽀닷, 청늘, 개발매밑, 코밧, 목넘, 진담, 뫼사니홈, 작은홈, 뜨뿌영, 기민장 그리고 서담늘홈 등등. 그 뜻을 알 수 없는 지명들이 연이어 다가온다. 아직은 공부할 것이 많다는 뜻이니 한편 기쁜 일이기도 하다.

 

이미 조성된 탐방로를 벗어나 본격적인 섬 탐사를 시작했다. 먼저 마을 당산 앞에 있는 골짜기를 따라 한달음에 능선에 올랐다. 그리고 작은홈으로 이어졌을 옛 바래길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부터 만만치 않다. 우거진 숲과 가시덤불이 앞을 막는다. 그래도 쉽게 지치지 않는 내 미련스러운 고집에 오늘도 숲은 길을 내주었다.

작은홈에는 시원한 바람이 산다. 덤불과 싸우느라 흥건했던 땀들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등골이 오싹할 만큼 작은홈의 바람은 거칠게 온몸을 덮치고 들었다. 한참을 쉬었다. 지친 몸 하나 의탁하기도 힘든 급경사지에서 그렇게 한참을 쉬며 호도의 첫 속살인 작은홈과 교감하였다.

다시 길을 나섰다. 옛길의 흔적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늘 그렇지만 반복하는 만큼의 호기심이 거친 걸음을 앞으로 이끌고, 기어이는 숲을 벗어나는 길들을 찾게 된다. 뜨뿌영, 기민장을 지나 서담늘홈을 거쳐 다시 출발점인 마을 당산에 도착했다. 숲길을 걷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안도감에 잠시 다리쉼을 한다.

 

얼마쯤 쉬었을까! 다시 능선 삼거리에 올랐다. 이번에는 산봉우리를 따라 능선으로 길을 잡았다. 마을 사람들은 얼만큼이나 숲에 걸음 하지 않았던 걸까. 능선에는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럴 때는 지도와 감각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거친 바람의 친구인 섬의 능선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커다란 상수리 고목과 너럭바위의 부처손 군락지 등을 지나, 기어이 옛 초소가 있던 가물여 앞에 다다랐다. 기암괴석과 바닷가의 연못과 바닷속 동굴과 거친 파도가 함께 사는 곳, 진담과 목넘으로 이어지는 가물여 앞바다는 단연 호도의 절경이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옛 초병들의 흔적을 따라 목넘 골짜기에 다다를 무렵 길을 잃었다. 억지로 올라서면 밭 가생이로 올라설 수 있겠지만, 길이 아니었다. 그때, 마치 짱가라로 되는 양, 저만치 마을 길 위에서 어르신 한 분이 소리를 친다. 힘에 부치시는지 어르신의 목소리는 외마디 비명처럼 골짜기를 맴돌았다. “이리. 빠꾸. 건너.” “일리요? 계곡을 건너야 돼유? 식아, 너 내려오란다.” 어르신의 외마디와 몸짓에 위탁하여 길을 잡았다. 결국, 꼭 맞는 옛길을 따라 마을 길에 도착했다.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전에 어르신은 벌써 돌아서서 잰걸음을 옮겼다. 호도에 사는 강아지들도 이방인에게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꼬리를 흔들거나 살그머니 다가와 바라볼 뿐이다. ‘범섬이라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은 뜻도 모를 삶터와 가물여의 절경과 투박한 친절이 몸에 앉은 사람들이 사는 곳, 호도에 다시 와 볼 일이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이주 만에 다시 찾은 두미도. 오직 선택받은 사람만이 살고 싶은 섬, 두미도를 이해할 수 있다. 헤어진 여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기뻐하는 남구의 누렁이가 나를 반긴다. 종을 뛰어넘은 인간과 동물의 우정이다.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할 때 이미 그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 없다.

 

현실과 이상

 

무더운 한낮의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걸음을 옮긴다. 녹음이 짙어진 그늘진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른다. 계곡물은 바위에 부딪혀 철퍼덕거리기도 하고 급류가 되어 헐떡거리기도 하며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신음하기도 한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계곡물은 졸졸 흘러야 아름답게 느낀다. 우리는 현실의 계곡물을 보고 이상적인 계곡물을 생각한다.

나무는 잎의 광합성을 통해 하늘로 가지를 뻗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다. 뿌리로 물을 얻고 잎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얻어 햇빛을 통해 광합성을 한다.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과 산소를 만든다. 나무가 배출한 산소를 우리는 숨을 쉬고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나무는 광합성에 이용하는 것이다. 나무와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눈에는 볼 수 없지만, 숲은 살아 있는 생물들의 고향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햇빛이라는 동료가 필요하다.

 

섬과 산

 

자연은 있는 그대로 그냥 놔두어야 한다. 늘 거기에 존재해야 한다. 존재하므로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이다. 하늘을 천장 삼아 봉우리를 마루 삼아 아무것도 없는 바위에 앉는다. 인생의 창밖으로 사랑도, 욕지도를 바라본다. 두 손을 입에 대고 힘차게 외쳐본다. 언어는 떠나버리고 소리만 남는다. 언어는 더는 현실 세계의 존재를 표현하지 못한다.

나뭇잎은 산에서 바닷바람에 흔들리고 나무 사이로 드넓은 바다와 인근 섬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바다의 섬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만 하지 말고 아주 잘 보이는 곳인 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먼 곳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산을 오르듯 성장하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성장이 눈앞에 보이는 데 더 노력해서 높은 곳으로 맞으러 가야 한다. 길게 출렁이는 파도가 섬에 도착할 때까지 성장에 대한 열정도 파도처럼 어느 쪽으로 흘러가다 멈출 것이다.

 

긴 하루

 

두미도의 봄은 이미 지났고 여름이 찾아왔다. 섬에 하얀 뭉게구름이 걸려 있다. 아침 해가 수평선 위로 떠 오르고 한층 더 빛나고 있다. 예전 섬사람들이 왕래하던 길을 우리는 옛길, 삶의 길이라 여기며 오늘도 찾아다니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산과 바다가 깨끗하고 아름답다.

긴 하루를 보내고 어느새 밤은 깊어졌다. 산과 바다가 섬을 어루만져준다. 두미도를 찾은 여행자들은 밝은 달빛과 별빛 아래 편히 누워 잠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 마시는 맥주 한잔보다 나은 것 아무것도 없다.

 

오랜만에 통영에 들렀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든, 언제쯤 들고 나는지에 대한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굳이 기억하려고도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함께 통영을 누볐던 기억만은 그날의 강렬한 햇볕에 박제된 체 뚜렷이 남아 있다.

통영 서호시장에서 시락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두미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것과 머리 두() 자와 꼬리 미() 자를 이름으로 가진 섬이라는 정도의 무지함을 걸머지고 두미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사월 중순이었다. 남구 항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차를 타고 일주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 때도 아주 특별한 인상은 없었다. 물론 청석의 앞바다나 덕리마을의 기암괴석들은 아름다웠지만 아주 특별한 풍광은 아니었다. 그 두미도에서 오월 초까지 일주일을 살아냈다.

 

두미도의 삶터는 북구 항에서 시작한다. 북구는 두미도의 대처다. 제법 반듯한 항구와 몇몇 신식으로 지어진 건물들 그리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항구에서부터 이어지는 비탈에 기대어 앉은 집터들은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곧바로 토해내고 있었다.

북구항의 우측 모퉁이에서부터 옛길이 시작된다. 2015년쯤 완성된 일주도로가 있기 전에 모두가 걸음 하였던 그곳으로 길을 잡았다. 처음부터 오르막길이다. 여전히 잘 보존된 그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와 마주하였다. 그곳에서 실거리를 만났다. 지독한 가시 탓에 그들이 부르는 이름 옷까시나무, 그 실거리를 본 것이다. 섬사람들의 삶 속에서나, 불리는 이름에서나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이쁜 꽃을 품은 실거리, 그가 피워낸 노란 아름다움이 한창인 계절이다.

 

옛길의 흔적을 더듬어 첫 번째 다다른 곳이 고운마을이다. 마을 입구인 능선에서 보이는 삶터가 제법 부드럽다. 옹기종기 어우러져 섬사람들의 질긴 삶을 이어가는 몇 채의 집들이 그 너머 바다와 맞닿아 있었고, 그 유순한 삶터만큼이나 선한 고운마을의 사람들이 사는 그런 마을이었다.

옛길은 고운마을의 삶터를 휘휘 돌아 숲속으로 이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설풍마을, 겨우 두어 채의 집들이 비탈진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도 마을의 옛이야기 한 보따리나, 달고나 커피 한잔쯤은 넉넉히 내어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고운마을과 설풍마을은 그 부드러운 삶터만큼이나 선한 옥빛의 바다에 안겨 산다. 이따금 바다를 지나는 어선들도 힐끔힐끔 마을을 바라볼 뿐, 그 흔한 뱃고동도 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그렇게 침묵의 안부를 확인하며 옥빛 바다의 삶을 지켜내고 있었다.

 

다시 숲을 따라 옛길을 찾아 나섰다. 덕리마을로 가는 길은 고단한 생활 길이다. 덕리마을이 돌절구 제작으로 열을 올리던 시절, 그 무거운 돌절구를 지고 북구를 오가던 길이다. 그 아릿한 흔적을 따라 덕리마을에 들었다. '! 빈터의 흔적이란!' 마치 선사시대의 유적처럼 녹슨 돌담들만이 덕리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들이 절묘하게 가슴을 휘저어 댔다. 이 비탈진 골짜기의 삶을 살아내던 그들은 누구였을까? 어떤 마음으로 겨우 정과 망치에 기대어 돌과 사투를 벌이며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그렇게 살아냈을까?

덕리마을의 바다 끝에는 돌구덕이라고 이름 붙여진 해안 절애가 산다. 덕리마을의 바다는 늘 으르렁대며 돌구덕에 덤벼들고, 돌 구덕은 그 넉넉함으로 우뚝 서 있을 뿐 말이 없다. 결국, 바다는 하얀 물꽃을 돌구덕에 내어주고, 덕리마을 사람들은 그 물꽃을 벗 삼아 골짜기의 고된 삶을 살았으리라.

덕리마을에서 다시 길을 나선다. 연이어지는 해안의 절애는 절벽 위에 길을 만들고, 무사하길 빌고 빌며 겨우 숲을 벗어나면 대판마을 가는 임도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청석마을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옛길을 넓혀놓은 길이다.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은 다른 듯하나이다. 고운마을의 부드러운 삶터가 설풍마을에서 끝나듯, 대판마을의 비탈은 청석마을의 넓은 들의 시작이다.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의 앞바다에는 두미도의 꼬리인 동뫼섬이 산다. 호수같이 포근한 청석의 쪽빛 바다를 끌어안고, 동백꽃과 새 울음과 함께 이웃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청석에서 고갯길을 넘어가면 남구가 나온다. 옛 남구의 어린이들이 청석의 학교를 넘나들던 길,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의 어른들이 남구 항을 가기 위해 무던히도 넘던 길이 바로 이 길이다.

 

남구 항과 북구 항은 다른 듯 닮았다. 비탈에 기대어 사는 모습이 영락없이 닮은 듯하다가도, 조금은 더 외로운 듯이 바다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남구 항의 모습이 다르다. 남구는 두미도 제2의 도시다.

남구 항에서 당산을 지나면 다시 사동마을 가는 옛길로 접어든다. 사동마을은 남구와 북구 사이에 있는 마을로서 덕리마을과 더불어 폐촌이 된 마을이다. 임도 위에 있는 독가촌이 그 명맥을 이어가긴 하지만 옛터는 이미 수풀의 세상이다. 그렇게 임도 아래위로 한참을 더듬어 옛길을 따라가자면 저만큼에서 북구 항이 손짓한다.

그만큼에서 북구 항을 본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북구 항이 한결 정겹다. 이만큼의 삶을 두미도에서 살아냈다. 곧 다시 두미도에 들 것이다. 그땐 사동마을의 옛터도 더 돌아보고, 근처로만 지나온 순천마을의 터들도 찾아보고, 덕리마을의 삶터에 앉아 소주 한잔 기울여야겠다.

 

두미도에는 노란 실거리와 하얀 물꽃과 녹슨 돌담과 붉은 동백과 선한 사람들이 산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옛날부터 두미도에 사람이 살았다. 내가 지금 통영에서 바다누리 호를 타고 그 섬에 가는데 두미도를 모른다면 말이 되겠는가? 두미도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천천히 알아보자. 아름다운 섬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아름다운 섬에 있어도 그 아름다움을 찾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두미도 옛길

 

두미도 옛길을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다. 옛길이 험하다고 찾지 않으면 잊힌 길이 되는 것이다. 옛길을 찾는 데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우선 고지도와 현재 지도를 현장과 비교해 본다. 현지인들의 생생한 증언은 옛길을 찾는 데 최고의 도움이 된다.

두미도의 자연 앞에서는 아름다운 기운을 느끼게 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산의 힘을 보여주고 바다로 뻗어 들어간 갯바위는 바다를 넘치게 한다. 자연의 웅장함에 기가 꺾인 나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내가 더 나아갈 수 없으니 옛길을 찾을 수 있을까?

옛길을 찾다 보면 가시나무에 긁히고, 산속 벌레에 쏘이고, 뱀과 멧돼지 등 야생동물과 마주치기도 하며, 낭떠러지에 서게 되는 경우가 늘 있다. 하늘은 처음에 육체에 고통을 주지만 마음이 강인해지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을 키워준다. 그런 힘듦을 이겨내고 옛길을 하나씩 찾았을 때는 그보다 더한 즐거움과 내재적인 만족을 느끼게 된다.

 

살고 싶은 섬

 

바다의 고기잡이배 위에 바람이 불어오니 봄은 깊어가고 여름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저 멀리 수평선은 하늘과 맞닿고 하늘의 태양은 구름과 마주하고 있다. 부두의 갈매기는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은 나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오랫동안 홀로 서 있었다. 푸른 바다에 선혈을 남기며 수평선 아래로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물이 좋고 산이 좋아서 살고 싶은 섬, 두미도. 드넓은 바다가 만들어낸 파도의 출렁임을 고즈넉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다. 옛길의 흔적 따라 산속을 헤매도 즐겁다. 공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지금 나는 물, 산과 더불어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바다가 바라보는 자리에 텐트를 치고 찬 바닥에 팔베개하고 눕는다. 바닷바람이 차가워도 즐거움이 그곳에 있다.

 

두미도 오락(頭尾島 五樂)

 

밤하늘에 뜬 별들을 우러러보고 밤바다의 고요한 속삭임을 듣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머위, 줄딸기, 산괴불주머니 등 야생화를 발견하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바닷바람이 숲의 나뭇가지를 흔들면 잠에서 깬 새들의 아침 인사를 듣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북구에서는 사랑도, 수우도, 삼천포가 바라다보이고 남구에서는 추도, 노대도, 욕지도를 바라보는 것이 네 번째 즐거움이다. 섬사람 특유의 강인함보다 내면에 숨은 온화한 마음을 느끼게 해 준 두미도 섬 주민을 만나는 것이 다섯 번째 즐거움이다.

 

쉼표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잊고 지내는 것들이 많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유는 돈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된다. 한껏 몸을 움직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지친 마음은 자연이 알아서 다독여준다.

초록빛의 두미도가 푸른빛의 바다를 어우르고 있다. 섬의 봄은 푸른 바다로 충분하고 짙은 녹음으로 충만하다. 오늘 난 이곳에서 쉼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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