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와 파도 소리에 눈을 떴다.

세상은 아직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가로등 불빛만이 어둠에 항거하고 있었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쌀쌀했다. 산속이라 그런지 텐트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해가 빛을 내뿜기 전에 배낭을 꾸렸다.

주변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나와 K는 산에서 내려와 일주버스를 타고 사동항에 왔다. 관광안내센터에서 승선을 기다리며 이번 울릉도 여행을 되돌아봤다.

 

학포마을의 새벽
LNT(Leave No Trace)

 

캠핑과 백패킹을 함께 했다.

나는 큰돈 들이지 않고, 배낭에 꼭 필요한 것만을 넣어 가볍게 메고, 울릉도 자연 속을 걸어 다니는 여행을 했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즐겼다.

울릉도를 다 돌아보지 않았더라도 여행을 즐겼기에 그것으로 충분했다. 여행을 즐기고 행복함을 느꼈기에 충분히 가치 있는 여행을 한 셈이다.

 

KTX 포항역

34일이 훌쩍 지나갔다.

새벽 4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한 야영장은 해가 뜨기 전부터 사람들로 분주했다. 이른 아침을 먹고 서둘러 텐트를 철수하고 배낭을 꾸렸다. 최대 3박만 가능하므로 오늘 야영장을 나가야만 했다. 일단 우리는 배낭을 야영장에 맡겨 두었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다.

야영장을 벗어나 일주 버스를 타기 위해 언덕을 올랐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여러 대의 자동차가 지나갔고 갑작스럽게 은색 자동차가 우리 앞에 멈춰섰다. 울릉도에서의 세 번째 행운이었다.

오늘 함께 다닙시다.”

 

학포야영장 9번 데크
아침엔 라면

 

처음에 U형을 만난 건 야영장이었다.

사흘 동안 학포야영장에서 야영을 한 공통분모로 유대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특별히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몇 번 얼굴을 마주쳤다는 것만으로도 유대감이 긴밀해졌다. 살아온 시대나 환경이 다르지만,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존경심을 서로 가지게 되었다.

누구나 여행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부질없는 근심을 떠안고 있어 봐야 여행은 즐겁지가 않다. 매 순간에 몰두하고서 동시에 여행의 즐거움을 생각해야 한다. 낙관적인 태도로 순간을 즐기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다.

 

뚜벅이
U형과의 만남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가 보고 싶은 장소를 상대에게 강요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U형은 여행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와 K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다. 여행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과연 우리는 함께 여행할 수 있을까?

차는 태하에서 멈춰섰다.

5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떤 설명도 없이 아침을 먹자는 U형의 말에 우리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원래 U형이 가려고 했던 중국집은 문을 열지 않았다. 인근에 문 연 식당에 들어갔다. 먹방 유튜버 쯔양이 방문한 우진이네였다. 우리는 야외 탁자에 앉아 홍해삼물회를 먹으면서 간단히 통성명했다. 초고추장을 넣지 않아도 맛있는 홍해삼물회가 두 번째 아침이었다.

 

태하, 먹방 유튜버 쯔양 방문 맛집, 우진이네
홍해삼물회

 

해가 높이 떠 있는 화창한 날이었다.

이따금 괭이갈매기가 창공을 순찰하듯 날아다녔다. 아침을 두 번이나 먹었으니 커피를 마시면 좋을 것 같았다. 추산에 다다랐을 때 차는 속력을 줄였다. 긴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데 관광버스 때문에 길이 막혀 있었다. 5분이 더 흘렀을 때 우리는 카페올라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먼 안쪽 창가에 앉았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K는 아이스 소금라테, U형은 아이스 녹차라테를 마셨다. 우리는 오랫동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을 찍으러 밖으로 나왔다.

듬직한 울라는 우울해 보였다. 울라는 수많은 사람을 반겨줬는데 사람들은 그저 사진만 찍고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울라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반가운 인사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다. 송곳봉 아래 독불장군처럼 서 있는 울라와 흰색 건물이 바다와 묘하게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카페울라
울라-울릉도 고릴라

 

오후 1시가 넘었다.

태양이 머리 정수리에서 조금 비껴 나갈 때쯤 우리는 삼선암에 도착했다. 그늘에 서서 U형이 주신 산양유 가루를 마셨다. 도로 건너편 바위에 올라서서 손차양하고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세 개의 바위를 바라봤다. 가까이 있는 두 개의 바위 위쪽에는 짙은 녹색의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제일 늑장을 부린 막내 선녀 바위에만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뒤쪽의 조그만 바위에는 녹색이 전혀 없었다. 나는 해안가 평평한 바위 위에 두 다리로 우뚝 서서 아름다운 울릉도 해안 비경인 삼선암과 좀 더 가까이 마주했다.

석포마을로 향했다.

일주도로에서 석포마을까지는 굽이굽이 급경사지를 올라야 했다. 차를 타고 가는 이 길을 7년 전에는 걸어서 내려왔었다. 숭고한 나라 사랑과 독도수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독도 의용수비대기념관과 독도를 지킨 안용복의 업적을 기리는 안용복 기념관을 갔다. 전망대에서는 섬목과 관음도를 연결한 보행 연도교와 울릉도의 부속 섬 중 가장 큰 죽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삼선암
죽도
섬목, 관음도, 죽도

 

임도를 따라 석포전망대에 왔다.

바닷냄새가 바람을 타고 해안 절벽을 휘감아 돌았다. 발아래 울릉 북구 해안이 드넓게 펼쳐져 보였다. 가까운 곳에 홀로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딴바위가 있었다. 정상부가 분화구 모양을 하고 있어 흡사 백록담이나 성산일출봉 같았다. 석포전망대에 올라오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을 한눈에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반가워

풍경은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졌다.

타이밍에 따라 더 좋은 모습이 될 때도 있다는 말이다. 햇빛을 받은 바다는 춤을 추는 것처럼 계속 반짝거렸다. 울릉도는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흑백으로 찍은 사진을 보니 더 멋진 풍경이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만 개의 별이 바다에서 영롱하게 반짝였다. 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되 감상에 빠지지는 않았다.

 

석포전망대, 딴바위

 

아름다운 동행은 계속되었다.

석포전망대에서 태하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었다. 아침에는 U형이 가려던 그 중국집에서 짬뽕에 탕수육을 먹었다. 지금은 울릉도에서 많이 안 잡힌다는 오징어가 아이러니하게 짬뽕에 들어 있었다. 모두 배가 고팠는지 쉴 새 없이 젓가락이 움직였다.

잘 먹었습니다.”

학포야영장으로 돌아온 후 배낭을 메고 인근 산으로 향했다.

전망대에 텐트를 친 후 학포해변으로 향했다. 학포해변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어둠은 금방 찾아왔고 우리의 아름다운 동행은 여기서 끝을 맺어야 했다. 오늘 나와 KU형 덕분에 아침, 커피, 저녁을 대접받고 온종일 편안하게 차도 함께 타고 다녔다.

오늘 하루 정말 감사했습니다.”

 

탕수육
짬뽕
학포인근 야산
학포일몰

 

한층 더 어둠에 휩싸였다.

백패킹은 여러 감정을 느끼게 했다. 모든 것이 불편하지만 직접적인 야외체험을 통해 색다른 감정과 희열을 만끽하게 된다. 캠핑의 꽃은 모닥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노을로 물든 서쪽 하늘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 최고의 안식을 느낀다.

 

어둠에 휩싸인 학포마을
학포인근 야산

늦잠을 잤다.

그래 봐야 오전 6시가 막 지났을 뿐이다. 욱신거리는 종아리를 손으로 주무르며 텐트에서 나왔다. 카누와 시에라컵을 들고 정수기로 갔다. 온수 버튼을 누르고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았다. 카누를 컵에 부었다. 커피 입자가 물에 녹아들면서 순식간에 검은 아지랑이가 나타났다.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금방이라도 햇빛이 비처럼 쏟아질 것 같았다.

햇반과 라면을 끓였다.

파김치를 곁들여 느긋하게 아침을 먹으면서 어젯밤 마시다 남은 막걸리로 반주를 했다. 아침 후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거나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변함없이 괭이갈매기는 날아들었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우리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해는 공기를 뜨겁게 데우기 시작했고 우리는 나무 그늘에 앉아 한가한 아침을 즐겼다.

 

휴식
청명한 하늘
괭이갈매기

 

한낮이 되어 일주 버스를 타고 도동에 왔다.

관광객들이 비좁은 골목을 배회하며 무리를 이루고 걸었다. 이사부 초밥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지만 예약하지 않아 먹을 수가 없었다. 어제 브레이크 타임(Break Time)이라 못 먹었던 만원의 행복을 다시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사장님께서 아는 체를 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뷔페식이라 음식도 다양하고 맛도 좋아서 풍족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K는 초밥을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나는 모든 음식을 다양하게 먹었다.

점심 후 호박 막걸리를 구매했다.

하루 만에 다시 나타난 우리를 보고 반가우셨던지 앉은 자리에서 막걸리 한 병을 두 번에 걸쳐 전부 따라 주셨다. 꿀꺽꿀꺽 목 넘김이 정말 좋았다. 술은 역시 낮에 먹는 술이 최고였다. H 마트에 들러 참외와 방울토마토를 샀다. 도동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도넛과 꽈배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제보다 두 개 더 많은 6개씩 2봉지를 구매했다. 물론 나는 설탕을 듬뿍 뿌려달라고 했다. 어느새 에코백이 가득 찼다. 2시간의 짧은 도동 외출을 이렇게 마쳤다.

 

일주버스
만원의 행복
도동 호박막걸리 이송옥할머니

 

학포야영장으로 돌아와 익숙한 텐트를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잠깐의 도동 방문은 알차고 실속있었다. 도동에서 사 온 호박 막걸리, 꽈배기와 도넛, 방울토마토와 참외를 꺼내놓고 의자에 몸을 맡겼다. 두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들었다. 파도가 부르는 손짓을 거역할 수 없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학포해변으로 내려갔다.

철썩철썩, 촤르르

한낮의 학포해변은 스노클링(snorkeling)을 하는 사람들과 스킨스쿠버(skin scuba)를 배우는 사람들,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었다. 학포해변은 모래는 없고 오직 몽돌만이 가득했다. 나는 바다에 반사된 햇살에 눈이 부셔 고개를 숙였다.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몽돌 해안에 앉아 있었다.

 

학포 몽돌해변

 

밖에서 보는 바다는 잔잔해 보였다.

바다는 내게 목욕탕 같은 곳이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물장구를 치던 어릴 적 놀이터인 셈이다. 바다의 수면은 따뜻한 온탕 같고 바닷속은 차가워 냉탕 같았다. 맨발에 느껴지는 몽돌의 촉감은 부드러웠지만,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미끄러웠다. 바닷속의 물살은 거칠었고 파도는 흰 거품을 일으키며 해안으로 밀려들었다. 맨몸으로 수영 중인 나도 파도에 밀려 해안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학포해변은 울릉도 서쪽으로 시야가 트여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수상/수중 레포츠를 즐긴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드넓은 바다에 갇혀 있는 것이다. 괭이갈매기가 바위에 앉아 우리를 희롱하다 드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학포 몽돌해변_수영, 스노클링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바다의 짠 내가 없어지자 몸이 한결 산뜻해졌다. 수영복도 잘 빨아서 양지바른 곳에 널어놓았다. 따뜻한 커피를 마신 후 매트를 깔고 그늘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어둠은 서서히 찾아왔다.

수영 후 지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참치 범벅(참치를 겨자 소스에 비빈 음식)을 만들었다. 밥 한 수저에 참치 범벅을 올린 후 깻잎으로 싸서 먹었다. 담백한 맛, 단맛 짠맛이 궁합이 좋았다. 옆 텐트에서 골뱅이 무침과 김치전을 주셨다. 호박 막걸리를 안 마실 수가 없었다.

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 때문에 그늘을 찾게 되지만 해가 지면 풀벌레 소리와 새의 지저귐을 시점으로 기온이 서늘해졌다. 나는 랜턴을 켜 놓은 텐트 안에서 그 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밤의 이야기는 내일 또 계속될 것이다.

 

학포마을 일몰

 

아침은 금방 찾아왔다.

새 소리와 파도 소리가 단잠이 든 나를 깨웠다. 대풍감 너머로 해가 떠오르기 전인데도 주위는 환하게 밝아 있었다. 울릉도에서는 낮을 평소보다 조금 더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햇반에 짜장 소스를 데워 이른 아침을 먹었다. 오전 7시도 안 되었는데 아침 햇살은 강렬히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물을 끓였다.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머릿속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학포야영장을 뒤덮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길을 나섰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오르막길에 밭 모서리에 심어진 개복숭아나무의 초록색 열매, 도로에 검은 칠로 그림을 그린 듯한 검붉게 익은 뽕나무의 오디, 강렬한 붉은빛의 딱총나무 열매 등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학포야영장 데크 9
딱총나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주름처럼 구겨진 산맥에 우뚝 서 있는 산봉우리는 옅은 회색 구름이 덮고 있었다. 그물망 속 물고기처럼 산봉우리는 구름 그물에 갇혀 있었다. 오늘 일정은 버스를 타고 나리분지를 가서, 깃대봉을 다녀온 후, 성인봉에 올라 도동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구름이 걷히지 않는다면 오늘 산행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

버스정류장 옆 숲 입구에는 검은 밴이 서 있었다.

이동도 하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간판에는 커피와 피자를 판다고 되어 있었지만 영업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조심스레 차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은 없었고 검은 밴 뒤로 텐트 두 개와 야외 탁자가 나무 그늘에 자리하고 있었다.

 

구름낀 울릉도 산맥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학포마을에서 올라오는 차량이 멈춰 서더니 창을 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K에게 외쳤다.

잡아

천천히 움직이던 차량은 일주도로에 멈춰 섰다. 몇 마디 대화가 이루어진 후 K와 나는 차량의 짐 공간에 앉게 되었다. 다행히 그분과 목적지가 같았다. 울릉도에서의 두 번째 행운이었다.

그분들은 부부와 처형 관계였다.

제주 여행을 마치고 일주일간 울릉도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학포야영장에서 야영을 하고 있으며 때로는 차에서 숙박한다고 했다.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하는 동안 어느새 우리의 목적지인 나리분지에 도착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나리분지
나리촌식당 갈림길

 

나리분지는 조용했다.

나리분지를 둘러싼 산군들은 여전히 옅은 회색 구름이 장악하고 있었다. 구름은 바람의 손길에 따라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원시림 숲속에 들어섰다.

싱그런 아침의 숲 내음을 맡으며 흙길을 걸었다. 구름을 뚫고 나온 햇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존재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마치 나에게 길을 인도하는 듯 내가 걸어가는 그 길에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축구장 수십 배 크기의 밭을 지났다.

예전에는 메밀밭이었지만 지금은 쇠뜨기 풀로 뒤덮인 넓은 평야처럼 보이는 곳이다. 밭이 끝나는 지점에 깃대봉 등산로가 있었다.

 

나리분지 등산로
투막집
메밀밭
메밀밭 끝지점=깃대봉 등산로 시작점

 

깃대봉 등산로에 들어섰다.

계곡 깊숙이 이어진 등산로는 완만한 경사의 원시림이었다. 호장근, 산마늘, 섬노루귀, 선갈퀴, 관중 등의 야생화가 산 사면에 가득했다. 햇빛도 거의 투과되지 않을 만큼 울창한 원시림에 시원한 골바람까지 불었다. 기온이 높아 땀이 났지만 흐르기 전에 바람에 의해 말라버렸다.

능선에서 휴식을 취했다.

계곡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원주목계단과 돌계단을 연속해서 두세 번 더 올랐다. 어느새 구름이 내 옆에 다가와 아는 체를 하고 있었다. 울창한 숲을 벗어나 주변이 확 트였다고 생각되는 순간 구름으로 둘러싸인 깃대봉 정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장근
선갈퀴
오르막길
깃대봉 정상

 

기다리고 기다렸다.

우리에게는 버스가 아닌 차량으로 이동하여 생긴 여유 시간이 있었다. 시간이 저축되어 이렇게 사용할 수 있으니 더욱 놀라웠다. 생각보다 시간은 더디 흘러갔다. 맨발로 깃대봉 정상을 밟으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주위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복분자 원액에 물을 타서 마셨다.

바람이 점점 세게 불었다.

계곡부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따라 구름이 맹렬하게 이동을 시작했다. 이동한 구름의 공간을 다른 곳의 구름이 순식간에 메꾸어 버렸다. 나는 치열한 눈치작전을 펼치며 바람과 구름과 해의 선택을 기다렸다.

 

깃대봉 인증사진
구름이 사라지길 기다리다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졌다.

깃대봉 정상에 올라온 지 30분쯤 지났을 때였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구름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더니 밝은 하늘이 펼쳐졌다. 우뚝 솟은 송곳봉과 해수욕을 즐기는 코끼리 바위, 노인봉의 위엄있는 기세와 현포항의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 고독을 즐기는 천부항의 외로움, 산으로 둘러싸인 나리분지의 포근함, 울릉도의 상징 성인봉의 수줍음까지 그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다림을 통해 얻게 된 최고의 선물이었다.

기다리지 않았다면, 시간에 쫓겨 그냥 하산을 해버렸다면 이런 모습은 꿈에도 구경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은 묘미를 제대로 느낀 순간이었다. 하산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투막집 사거리까지 신명 나게 걸어갔다.

 

송곳봉과 코끼리 바위
나리분지
천부항
현포항
미륵산과 형제봉
운해

 

신령수로 발걸음을 옮겼다.

점심을 먹기엔 너무 일러서 그냥 성인봉을 오르기로 했다. 신령수에서 목을 축인 후 물병에 담았다. 성인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가파른 경사지를 때론 끊임없이 이어지는 목재계단을 올라야 했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목재계단의 삐걱거림이 근육의 고통과 헐떡거리는 호흡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고사한 섬피나무를 바라보며 인생의 무상함을 동시에 느꼈다.

성인수에서 휴식을 취했다.

성인수를 지나 마지막 남은 가파른 목재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더뎌지고 무거웠다. 포기하지 않고 남은 힘을 쏟다 부어 성인봉 정상에 드디어 올라섰다. 하늘은 맑고 시원한 바람이 나를 맞아주었다.

기분 정말 죽이네

깃대봉, 알봉, 나리분지, 먼바다가 보이는 한갓진 성인봉 정상 부근에서 바람의 노래를 들었다.

 

목재계단
섬피나무
성인봉
성인봉 전망대

 

12(깃대봉과 성인봉)은 마무리되었다.

도동 대원사로의 하산길은 마음은 편했지만, 육체가 느끼는 고통은 심했다. 점심을 먹지 않고 연이어서 산행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먹은 것이라곤 복분자 원액을 물에 희석하여 마신 것과 등산객이 나누어준 오이와 방울토마토가 전부였다.

허기를 느끼는 상태는 이미 지나갔다.

겨울철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장소를 지날 때는 다리가 풀릴 정도로 힘이 빠졌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3시가 되었다. 산마늘(명이나물)밭을 지나 숲길을 벗어난 후에도 콘크리트 하산길은 대원사까지 계속되었다. 망향봉 아래 도동의 모습이 드러났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여도 그 속은 여느 대도시 못지않게 사람들과 차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곳에 내가 들어섰다.

 

대원사 하산길 숲
도동

 

호박 막걸리 할머니를 찾아갔다.

골목에서 보면 다 쓰러져가는 집이었다. 대문 기둥에 붙어있는 안내 문구는 세월의 흔적을 말하듯 헐고 너절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이곳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걸까?

할머니, 술 팝니까?”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방충망이 처진 문 앞에서 말했다. 그곳에 있던 젊은이가 우리를 보고 고마워하는 눈빛으로 막걸리를 사 들고 부리나케 나갔다. 그 자리를 우리가 꿰차고 들어가 앉았다. 할머니는 막걸리를 맛보라며 한 잔씩 따라주고는 이내 말씀을 이어나갔다. 중간에 끼어들 틈도 없이 이어지는 레퍼토리는 10여 분간 계속되었다.

막걸리는 시큼했다.

언뜻 떠오른 생각은 쉬었네였다. 할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왜 그리 말씀을 구구절절 하시는지 맛을 보고 제대로 알게 되었다. 5가지 약초를 달여서 빛은 술이라 가끔 알갱이가 씹힐 정도로 걸쭉한 막걸리였다. 마신 후 5분쯤 지나니 입안이 깔끔해지고 숙취도 없었다. 그 옛날 집에서 만들어 먹던 그런 술이었다.

 

이송옥여사의 울릉도 호박막걸리

 

점심을 먹기엔 너무 늦었다.

원더풀 꽈배기에서 간식을 사서 굶주린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배에 뭔가 들어가니 조금은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기서 일정을 멈추고 야영장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어정쩡한 시간이 화근이 되었다. 도동에서 행남 해안 산책로를 따라 저동으로 걸어간 것이다. 오후의 뜨거운 햇살은 바닷물에 반사되어 몸의 피로를 누적시켰다.

길이 바뀌었다.

7년 전에 걸었던 그 길이 아니었다. 도동 등대(행남 등대) 사거리에서 저동 옛길로 들어섰다. 해안 길이 아닌 숲길이다 보니 우뚝 솟은 산을 넘어야 했다. 오늘 12봉에 추가로 산 하나를 더 넘게 된 것이다. 땀은 비가 오듯 옷을 적셨고 타는 듯한 목마름에 마른 침을 연신 삼켰다. 산을 넘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다.

 

행남산책로

 

저동에 도착했다.

저동이 떠나갈 듯 선거 차량의 유세방송이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졌다. 내일이 선거날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야영장으로 돌아가기 전 저녁을 먹기로 했다. 차가운 음식이 먹고 싶은 날이었다.

촛대바위가 훤히 내다보이는 대원회집에서 꽁치 물회를 주문했다.

얼린 꽁치를 잘게 썰어 살얼음 육수와 함께 나왔다. 반찬으로 나온 부지깽이 무침과 오징어무침 등이 입맛을 돋게 했다. 꽁치 물회는 보기엔 썩 맛있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먹어보면 비린 맛은 없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했다.

 

저동
저동항 촛대바위
꽁치물회

 

일주 버스를 탔다.

저동에서 오후 630분 막차를 탔다. 관음도, 천부, 현포, 태하를 거쳐 학포까지 1시간여가 걸렸다. 학포야영장까지 마을 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울릉도에서의 첫 일몰을 감상하게 되었다. 둥그런 해가 푸른 하늘을 노을 지게 하면서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그 빛이 하늘을 뒤덮었다.

긴 하루였다.

낮의 모든 힘듦을 씻어내고 싶어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조명을 약하게 켠 후 의자에 앉아 야영장의 밤을 훑어봤다. 호박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 동안 우리에게 펼쳐진 모든 일을 되돌아봤다. 몸은 힘들었지만, 두 번 다시 못 느낄 소중한 경험을 한 하루였다. 내일은 무조건 휴식이다. 울릉도에서의 둘째 날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학포마을 일몰
노을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배가 먼바다로 나오니 떨림의 강도는 조금씩 세졌다. 이층침대의 잔잔한 떨림은 꼭 안마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에어컨의 바람 소리와 어긋나게 아래층 남자의 코 고는 소리도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괴상한 소리의 화음이 6인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6인실을 밖으로 나왔다.

동해의 해는 이미 떠 있었다. 흰빛의 둥근 해는 수줍은 듯이 주변을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위로 제 몸을 일으켰다. 하늘과 구름과 바다 사이를 해가 구멍을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울릉도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판 위로 올라가 점점 가까워지는 울릉도를 바라보았다.

 

일출
울릉도
크루즈
크루즈 갑판

 

배의 떨림은 점점 사라져갔고 어느 순간 멈춰버렸다.

하선 안내방송이 있고 난 뒤 나는 울릉도에 첫발을 디뎠다.

오랜만이군

7년 만에 다시 울릉도에 온 것이다. 일기예보와는 반대로 약간 흐리기만 했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새벽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여기는 울릉도 사동항이다.

강한 바람에 먼지가 사방으로 날리듯 배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적 끊긴 사동항 관광센터에서 버스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고요하고 아늑한 항구를 자유자재로 활공하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나도 울릉도를 자유롭게 다니고 싶어졌다.

 

사동항
하선

 

 

울릉 일주 버스를 탔다.

버스는 울릉도를 시계방향으로 이동하는 버스였다. 울릉도 서쪽 해안과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20여 분만에 학포에 도착했다. 경사진 마을 길을 걸어 학포야영장에 도착했다. 학포야영장은 선착순으로 자리 배치를 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 두 번째로 도착하여 벚나무와 양버즘나무가 울창한 한정한 자리에 야영지를 구축했다. 집처럼 편안한 텐트 야영지에서 복분자 원액에 물을 타 마시며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수다는 계속되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수다는 이번 울릉도 여행의 들뜬 분위기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K는 몇 모금의 희석된 복분자에도 얼굴이 버찌가 익어가듯 울긋불긋 달아올랐다.

 

울릉도 버스시간표

2021_버스운행시간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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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버스
학포마을 입구
학포야영장
테크 9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학포야영장에서 오르막길을 올라 다시 일주 버스를 타고 현포로 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라본 현포항은 고즈넉했다. 그 어디에도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방파제로 둘러싸인 항구는 아늑하고 평화롭게 보였다.

항구에서 바라본 노인봉과 칼바위가 웅장했다.

일주도로를 따라 등대 방향으로 걷다가 보니 그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칼바위가 웅장하게 보이더니 노인봉에 가까워질수록 노인봉의 주상절리에 감탄하여 버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노인봉과 칼바위
코끼리바위와 송곳봉
현포항과 현포마을

 

여행의 묘미는 머무름과 걷기에 있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멈춰 서는 것은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 현포항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송곳봉과 코끼리 바위가 한눈에 들어왔다. 코끼리 바위가 나에게 말을 거는 듯 코로 물을 내뿜었다. 송곳봉을 보고 있으니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울릉도에서 첫 끼는 홍합밥이었다.

홍합을 많이 넣어 돈을 더 받아야 하는데

식당 주인은 의도적으로 우리 들으라는 듯 말끝을 흐렸다. 15,000원 하는 홍합밥을 20,000원은 받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우리가 마주한 홍합밥에는 당근만 가득하고 홍합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홍합 향만이 이 음식이 홍합밥인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홍합밥을 놓고 식당 주인과 손님의 동상이몽은

잘 먹었습니다

라는 말 한마디로 일단락되었다.

 

홍합밥

 

무작정 길을 걸었다.

오후가 되니 바람도 잔잔해지고 날씨가 맑아지기 시작해 더욱 후텁지근해졌다. 점심을 먹은 후 H 마트에서 시원한 캔맥주와 호박 막걸리를 구매했다. 일주버스를 타고 내려온 도로를 걸어가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가팔랐다. 30분쯤 오르막을 오른 후에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현포전망대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차가운 캔맥주를 마셨다.

누가 먼저 마시자고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캔맥주에 손이 갔다. 정자에 올라 드넓게 펼쳐진 현포항과 현포마을 풍경을 두 눈에 담으며 한 손으로는 캔맥주를 마셨다. 내가 집을 짓는다면 이런 장소에 짓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맨발로 전망대 이곳저곳을 서성이며 떠나기 아쉬워하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현포전망대

 

자동차를 얻어 탔다.

울릉도에서의 첫 번째 행운이었다. 현포전망대에서 만난 3인의 여성분들이 태하까지 차량으로 태워주셨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들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았다. 고부간에 여행은 정말 쉽지 않은데 시어머니와 딸, 그리고 며느리의 관계였다. 태하에 도착한 후 대풍감 모노레일 탑승장에서 감사 인사를 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해안 절벽을 걸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해안 길을 따라 대풍감에 올라갔다. 황토굴의 흔적을 보고 해안 절벽을 올랐다. 모노레일보다는 느리지만, 자연을 감상하며 걷는 것이 더 중요한 순간이었다. 해안 길이 끝나는 지점에 숲속으로 숲길이 나 있었다.

 

황토구미
대풍감 해안산책로

 

전망대가 있었다.

7년 전에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전망대가 두 곳이나 있었다. 대풍감 제2 전망대와 제1 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는 울릉도 북쪽 해안의 깎아지른 해안 절벽, 파도가 만들어낸 하얀 물거품, 산맥이 형성한 기암괴석, 그곳에 자리한 마을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사진으로는 그 절경을 다 담을 수 없어 오랜 시간 그곳에서 머물며 가슴에 담고 있었다. 몇 분만 더, 1분만 더.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에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대풍감에서 내려왔다.

태하 H 마트에서 냉동 대패삼겹살을 샀다. 태하에서 학포로 다니던 옛길을 통해 고개를 넘어 학포야영장으로 향했다. 그 옛길은 태하마을과 학포마을을 왕래하던 사람들의 삶의 길이며 생활 길이었다. 길을 걸으면서 울릉도 옛 사람들의 고된 삶과 삶의 방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대풍감 전망대
대풍감
태하-학포 옛길

 

짧았지만 긴 하루를 보냈다.

호박 막걸리에 냉동 대패삼겹살을 안주 삼아 울릉도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있었다. 주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학포 해안에서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숲속의 새도 사연이 있는 듯 이야기 좀 들어나 보라며 밤새도록 울부짖기 시작했다. 우리가 듣지 않는 것 같으면 울부짖음을 그치고 우리 곁을 낮게 활공하기 시작했다.

밤하늘의 별은 여기에 다 있었다.

고개를 들어 무심히 바라본 하늘에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별들이 밤하늘에 가득했다. 북두칠성도 보이고 카시오페이아도 보였다. 까만 도화지에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이곳저곳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을 따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별은 항상 내 가슴속에 있으니까! 울릉도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괭이갈매기
학포마을
학포해변
학포야영장

울릉도를 가는 날이 밝았다.

새벽부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집을 비우는 동안 큰 문제가 생기지 않게 사전조치를 취해야 했다. 40년도 넘은 오래된 단독주택에 살다 보면 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보수를 해야만 한다. 아침을 먹기 전인데도 온몸이 땀으로 젖어버렸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날씨는 눈부실 정도로 화창하고 더웠다. 더운 정도가 너무 지나쳐 모든 것이 다 녹아버릴 것 같았다. 아직 6월도 안 되었는데 올여름을 어떻게 넘길까 살짝 걱정되었다. 점심을 먹고 샤워를 했다. 어젯밤 대충 챙겨둔 백패(backpack) 장비들을 배낭에 넣었다. 갈등은 항상 이 순간에 찾아왔다. 배낭여행을 하다 보니 무게를 고려해서 배낭에 장비를 챙겨야 한다. 장비를 가지고 갈까 말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백팩장비

 

대전역에서 기차를 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기차역은 도착한 사람들과 떠나려는 사람들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학생, 아장아장 걷는 아기 손을 잡은 젊은 부부, 휴가를 즐긴 뒤 복귀하는 군인, 데이트를 즐긴 후 이별하는 연인, 중절모를 쓰고 낡은 양복을 입고 있는 70대 초로의 노인 등 각자의 용무를 위해 기차역을 찾은 것이다.

1년 만에 타는 기차였다.

11자 철로를 빠르게 움직이는 기차의 흔들림은 이번 울릉도 여행을 더욱 설레게 하고 있었다. 지저분한 창문 너머로 보이는 기차 밖 세상은 뜨거운 열기로 점점 끓어오르고 있었다. 5월 말인데도 독기를 품은 해는 강렬한 빛을 세상에 계속해서 내리쬐고 있었다. 기차속도와 비례하여 사라져가는 풍경이 내 인생의 슬라이드를 보는 듯 애틋하기만 다가왔다.

 

대전역

 

해가 진 후에 기차는 포항역에 도착했다.

나는 동대구에서 합류한 K와 함께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듯 기차는 사람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기차역 대합실을 벗어나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낮의 열기가 밤까지 이어지고 있다. 셔틀버스를 타고 포항 영일만항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어두워진 거리엔 가로등과 네온사인만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드디어 뉴씨다오펄(NEW SHIDAO PEARL)과 마주했다.

배는 조명을 받아 더욱 위세 등등하게 보였다. 배를 보고나니 뱃멀미는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뱃멀미 안녕.’ 곧 승선이 시작되었고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인파가 사라질 때쯤 유유자적 배를 탔다.

 

 

좌석은 6인실 7516_2였다.

샤워실과 화장실까지 갖추어진 2층 침대 3개의 6인실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6인실처럼 꾸며져 있어 울릉도 여행을 한층 더 실감이 나게 했다. 출항까지는 아직 30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출항 전에 잠이 들면 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침대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엔진이 점화되고 스크루의 회전이 빨라질수록 배의 흔들림이 점점 잦아졌다. 이런 불규칙한 흔들림은 내 감각을 일깨우고 있었다. 배가 일정 속도의 추진력이 생겼을 때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배는 불빛 한점 없는 망망대해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울릉도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다.

 

6층 6인실(화장실 및 샤워실)
5층 식당 및 공연장
뉴씨다오펄(NEW SHIDAO PEARL)

[여행일정]뉴씨다오펄(NEW SHIDAO PEARL)타고 울릉도 한바퀴

 

 

2022년 05월29(일) ~ 06월 03일(월), 1배박 4박 5일 일정으로

사동, 학포, 현포, 태하, 천부, 나리분지, 깃대봉, 성인봉, 도동, 저동, 추산, 석포 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3박은 학포야영장, 1박은 학포야영장 인근 야산에서 비박을 함) 

 

태하, 대풍감 제1, 2 전망대

 

[여행일정]

1배박 4박 5일간의 여행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05/29()

- 20:10PM : KTX 포항역 집결, 

- 20:30~50PM : 포항영일만항 셔틀 탑승(포항역 버스정류장 앞)

- 22:00PM~ : 뉴씨다오펄(NEW SHIDAO PEARL) 탑승

 

포항영일만항, 울릉행 뉴씨다오펄(NEW SHIDAO PEARL)
6인실, 화장실겸 샤워실

 

2.  05/30()

- 06:15AM : 사동항 도착, 관광안내소에서 울릉지도 수령

- 08:05AM : 학포야영장으로 이동

- 08:40AM : 학포야영장 체크인, 사이트구축

- 10:15AM~18:00PM : 현포, 태하, 학포 여행

- 18:00PM 이후 : 학포야영장

 

일출
사동항
학포야영장-당일 선착순 자리배정, 최대 3박까지 가능
9번 테크에 사이트구축
현포여행-칼바위,노인봉,현포등대,중식,코끼리바위,송곳봉,현포전망대
태하여행-항토구미,해안산책로,대풍감
학포여행-태하~학포옛길,학포야영장,학포해변

 

 

3.  05/31()

- 08:25AM : 나리분지 이동(버스X, 히치하이크로 이동)

- 08:55AM~19:25PM : 나리분지, 깃대봉 등산, 성인봉 등산(도동으로 하산), 행남산책로(저동으로 이동), 석식

- 19:25PM 이후 : 학포야영장

 

나리분지
깃대봉
성인봉
도동
행남산책로
저동
학포해변

 

 

4.  06/01()

- 11:20AM 이전 : 학포야영장 휴식

- 11:20AM~14:15PM : 도동이동, 중식

- 14:15PM 이후 : 학포해변 수영, 학포야영장 휴식

 

학포야영장 휴식
도동-호박막걸리구입
학포해변-스노클링
학포해변-수영
학포일몰

 

5.  06/02()

- 08:25AM 이전 : 학포야영장 체크아웃, 배낭 이웃에 맡김

-  08:25AM~18:30PM : 버스X,

히치하아크(울릉형님과 함께) - 조식, 카페울라, 성불사(송곳봉), 삼선암, 독도의용수비대/안용복기념관, 석포전망대, 석식

- 18:30PM 이후 : 학포야영장 인근에서 비박

 

카페울라
성불사(송곳봉)
삼선암
독도의용수비대/안용복기념관
석포전망대
학포일몰
학포 비박

 

6.  06/03()

- 09:55AM 이전 : 비박지 정리 후 조식

- 09:55AM~13:30PM : 사동항 이동(버스), 관광안내센터 휴식

- 13:30PM~19:30PM : 뉴씨다오펄(NEW SHIDAO PEARL) 탑승, 울릉 사동항~포항영일만항

- 19:30PM 이후 : 셔틀버스 탑승 후 포항역 이동

 

학포마을의 새벽
학포 비박지 정리
포항

[울릉도 여행]내수전 일출전망대

 

 

봉래폭포를 다녀온 후 내수전 일출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어제까지는 비가 내렸지만 오늘은 화창한 전형적인 가을 하늘입니다.

하지만, 섬의 특성상 바람이 많이 부는 울릉도입니다.

 

 

 

 

내수전 일출전망대를 가기 위해서는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합니다.

 

버스 : 도동에서 버스 탑승 - 저동 - 내수전 하차 후 경사로 도보(35분 소요)
택시 : 도동 - 저동 - 내수전해변 - 내수전약수터 - 내수전고개 하차(15분 소요)

 

 

 

 

 

우리 일행은 봉래폭포에서

14,000원을 주고 콜 택시로 내수전 일출전망대 입구로 이동을 했습니다.

저동에서는 10,000원입니다.

 

돈을 쓰면 몸이 편합니다.

 

 

 

 

택시에서 내려 내수전 일출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내수전 일출전망대로 가는 길은 목재계단이 시작되는 곳까지는 완만한 경사의 길을 따라 걸어가면 됩니다.

 

 

 

 

삼거리 입구에서부터 내수전 일출전망대까지는

편도 약 15분 정도 소요되는데 특히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소입니다.

 

여행 일정상 내수전 일출전망대의 야경은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 멀리 수평선과 푸른빛의 청정한 바다위에

정박해 있는 배들과 더불어 관음도, 섬목구역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어제까지 비바람이 심했는데

울릉도에서 아름다운 푸른바다를 수평선 멀리까지 볼 수 있어서

오늘만큼은  화창한 날씨 덕을 충분히 보았습니다.

 

 

 

 

목재계단을 막 오르기 전에 오른쪽 쳐다봤습니다.

 

저동항과 마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수전 일출전망대에서는 아름다운 모습을 생생하게 볼 것 같습니다. 

 

 

 

 

내수전 일출전망대로 올라가는 목재계단이 시작됩니다.

 

 

 

 

내수전 일출전망대로 가는 길은

수많은 동백나무와 마가목등이 터널을 이룬 가운데

두사람이 나란히 걸을수 있는 정도의 완만한 오르막길입니다.

 

 

 

 

 

내수전 일출전망대의 가장 큰 특징은

4각형의 목재데크 시설로서 사방이 탁 트여 있다는 것입니다.

 

내수전 일출전망대의 망원경으로 동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아주 희미하게 독도의 모습이 보입니다.

 

 

 

 

맨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도 독도의 희미한 모습을 눈으로 조망했습니다.

 

날씨의 도움이 아니면 절대로 눈으로 독도를 볼 수 없지만

이날은 비가 온 다음날이고 미세먼지가 거의 없는 완벽한 날씨이기에 가능했습니다.

 

 

 

 

목재계단을 올라서면

울릉읍 도동능선에서 부터 옛날 나리분지와 저동을

지게짐을 지고 넘어 다니던 산능선인 장재고개, 소불알산을 조망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저바위, 저동항, 촛대바위, 행남등대 등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해발 440여m의 내수전 일출전망대에서는

김유곤, 이윤정씨 부부가 살고 있는 죽도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로 느껴집니다.

 

죽도는 울릉도의 부속섬 중 가장 큰섬으로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일명 대섬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섬의 유일한 진입로인 나선형 계단(일명 달팽이계단)이 인상적이며 365개의 계단수를 세며 올라가는 재미가 있다고 합니다.

 

 

 

 

환상적이라는 표현 이외에 더이상 말이 필요없을 듯 합니다.

 

높은 파도로 인해 모든 배편의 하루 지연되었고

또다른 하루를 머물렀기에 이렇게 멋진 울릉도를 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푸른바다, 멋진 기암괴석

그리고 저동항 해안절경에 눈이 저절로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친구가 제 사진을 찍는 모습을

같이 울릉도 백패킹 여행을 온 일행이 찍은 사진입니다.

 

인상적인 저동항의 뒤 배경과 사진찍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같다고 생각됩니다.

 

 

 

 

왼쪽의 북저바위

오른쪽의 저동항의 풍경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1시간여의 짧은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오늘 같이 맑은 날씨라면

하루를 온통 내수전 일출전망대에서 보내도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울릉도를 다시 찾으면 꼭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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