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석양이 질 무렵,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남쪽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한층 더 짙은 먹색이 되었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2시간이 지났을 때 공기에서 생선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통영에 왔다.

월요일 오전 651, 첫배를 타고 두미도에 가야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 번째 방문이다. 통영여객터미널 인근에 숙소를 정했다. 밤늦은 시간이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불 켜진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 낼 아침 또한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원조설렁탕, 수육 - 통영맛집

 

월요일 새벽 5.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나는 일어났다. 간단히 세안하고 짐을 꾸려 숙소를 나왔다. 이른 새벽이지만 서호시장은 활기찼다. 불 켜진 식당에서 복국을 먹었다. 어두웠던 새벽은 어느새 사라지고 해가 떠올랐다. 새롭게 단장한 통영항여객터미널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바다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면 비로소 바다가 보이는데 출발한 항구는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본 사람은 바다는 넓고 육지는 좁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육지가 좁아서 바다로 나아가면 바다는 더 넓어지고 거기서 또 작은 섬을 만나게 된다.

 

부일식당, 복국 - 통영 서호시장 맛집
통영 바다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두미도

 

두미도는 살아 숨 쉬는 섬이다.

바다는 다정하게 섬을 껴안아 주고 있었다. 섬은 봄비와 봄볕에 숲이 부풀고 땅에 생명의 기운이 돌았다. 나무는 꽃을 통해 대기의 수분을 흡수했고, 초록의 잎을 통해 봄볕을 간직했다. 하늘도 아기 돌보듯 섬을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미도 북구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건물 앞 조형물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1월에 다녀가고 3개월도 안 지났다. 만남이란 언제나 반가운 것이다. 짐을 놓아두고 두미도 옛길을 걸었다.

 

두미도의 봄
두미도 바다펜션 - 북구항

 

두미도 옛길은 발칵 뒤집혔다.

봄날의 두미도 옛길은 깊은숨을 쉬었고 더욱 견고해졌다. 봄비가 내려 풀과 야생화가 뒤섞여 자랐고 흙이 부풀기 시작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길 위에 그림자도 흔들렸다. 나무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벚꽃길에 들어섰다.

벚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려서 연분홍빛 벚꽃잎이 길 위에 떨어졌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에서 빛이 들어와 땅에 닿았다. 떨어진 벚꽃잎은 빛을 받아 반짝이며 뒤섞였다. 육지는 벚꽃이 만개했는데 두미도는 벌써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두미도 옛길
홀아비꽃대

 

둥글레
남산제비꽃
꽃깔제비꽃
고은마을 벚꽃길 - 두미도 옛길

 

나는 천황산을 다시 찾았다.

숲의 나무 색깔이 바뀌었다. 만개한 진달래꽃, 벚꽃이 봄볕을 받아 그 색깔이 숲으로 퍼져나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숲의 색깔이 파도쳤다. 섬을 찾는 사람들과 섬사람들은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두미도 옛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숲속은 더 짙은 녹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숲의 색깔은 나무 우듬지 위를 굽이쳐 파도를 일으키듯 바다로 흘러갔다. 산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졌다.

 

천황산 등산로 조망점
진달래

 

산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순간 나는 돌출된 바위에 두 다리로 섰다. 두 다리가 바위에 닿았을 때 닿는 느낌으로 바위가 단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구항 선착장 공사는 마무리단계에 들어섰고 어선이 흰 거품 자국을 남기며 바다를 스쳐 갔다. 욕지도가 보이는 바다는 아득하니 멀었다.

계절이 바뀌었다.

핏빛처럼 붉게 핀 진달래는 바람에 흔들거렸다. 산은 각양각색의 색깔로 물들었고 새 생명이 움트는 나무에선 아기 젖내 같은 냄새가 났다. 바닷바람이 땀으로 젖은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등산을 시작한 지 4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두미도 남구항
청석마을과 동뫼섬
천황산 숲속
천황봉

 

안 가본 길을 갔다.

나는 투구봉 등산로는 가본 적이 없었다. 천왕산 정상에서 암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마치 바다가 하늘처럼 보이는 북구항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큰 바위와 그 바위에 붙어있는 바위솔, 숲을 뒤덮고 있는 현호색 군락지는 내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등산로는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등산로라고 생각했다. 등산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멀었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지만 걷고 또 걸어 임도에 도착했다.

 

현호색
투구봉
북구항
임도

 

섬의 밤은 고요했다.

낮의 선착장 공사 소음은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자리돔 회, 돼지고기 볶음, 데친 나물들(두릅, 방풍나물, 꾸지뽕잎), 달래, 돌나물 등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특별히 할 것도 할 일도 없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섬은 밤은 생각보다 길었다.

새벽부터 안개가 짙었다.

바닷가에 안개가 끼면 바다는 무언가에 놀란 듯 창백해져 수면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았다. 바다의 표면을 타고 배가 왔는데 바다의 배는 보이지 않고 뱃고동 소리만 들렸다. 안개 속에 배 엔진 소리만 가득했다. 바다엔 안개뿐이었다. 안개 때문에 배는 보이지 않았다. 안개 속에서 배에 탔다. 배 위에서 안개를 마시고 바람을 마셨다. 배는 천천히 두미도를 떠났다.

 

저녁식사
안개
안개낀 북구항에 접안중인 바다누리호

(통영)두미도에 가기 위해서는

통영항 연안여객선터미널이나 신수도차도선여객터미널(삼천포)을 이용해야 한다.

 

통영항 연안여객선터미널, 경남 통영시 통영해안로 234
신수도차도선 여객터미널, 경남 사천시 유람선길 128

 

통영항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는

매물도, 소매물도, 비진도, 삼천포, 두미도 북구/남구,

산등, 탄항, 상노대/하노대, 욕지도, 추도(한목), 추도(미조)를 갈 수 있다.

 

매표소는 7번이고

챠량은 선착순 6대만 선적이 가능하다.

 

섬주민 2대, 외지인 4대 - 선착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차량은 안 가지고 가는게 좋다.

제 때에 못 나올 수 있다.

 

통영여객터미널 내부
통영여객터미널 내 두미도 매표소

 

두미도행 바다누리호 운항시간표이다.

(주)한솔해운 https://hshaewoon.kr/?page_id=570

 

통영~두미도를 1일 2회 운항중이며

삼천포 장날(4, 9일)에만 삼천포항까지 운행된다.

 

두미도 남구는 선착장 공사중으로  두미도 북구만 운항중이다.

 

바다누리호 운항시간표

 

통영항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는

두미도행 배로 (주)한솔해운의 바다누리호가 운항중이다.

 

바다누리호

 

바다누리호 여객 운임표이다.

(주)한솔해운 https://hshaewoon.kr/?page_id=613

 

바다누리호 여객운임표

 

통영 출발,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두미도
신수도차도선여객터미널(삼천포 출발),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두미도 북구항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미도에 왔다.

여행은 나에게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특히 섬 여행은 내가 유일하게 매력을 느끼는 취미 생활이 되고 있다. 새로운 생각을 위해서는 언제나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

여행은 자유로워야 한다.

여행의 최대 장점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다. 진정한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바다누리호
두미도 북구항

 

두미도는 느낌이 있다.

섬의 모양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이 아니라 섬에 숨어 있는 마을 터, 옛길 등에서 풍겨 나오는 임의로 할 수 없는 불변의 것에서 이끌림을 느낀다. 나는 이 이끌림 때문에 두미도를 다시 찾게 되었다.

섬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차를 타고 임도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면 이색적인 풍경은 볼 수 있어도 섬을 관찰할 수는 없다. 어떤 장소를 잠깐 지나치는 게 아니라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천황산에서 바라본 북구항
천황산에서 바라본 청석마을, 동뫼섬

 

두미도에는 마을이 산재해 있다.

북구 항에서 반시계방향으로 고운, 설풍, 덕리, 순천, 대판, 청석, 남구 항, 사동으로 이어진다. 섬은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다. 가구 수도 얼마 안 되고 없어진 마을도 있다.

섬은 시간여행을 준비 중이다.

자연스럽게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으면 잿더미 속에서도 한줄기 생명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살고 싶은 섬, 두미도 가꾸기 사업의 하나로 작년 말부터 남구 항에서 사동, 북구 항, 고운, 설풍까지 옛길을 복원 중이다.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남구항
설풍마을에서 바라본 고운마을

 

섬 속에 옛길이 묻혀 있다.

섬은 옛길을 둘러싸고 옛길은 세월의 흐름에 잊혀 있었다. 콘크리트 임도의 편리함 때문에 옛길은 무시되었다. 삶을 되돌아볼 때 옛길은 소중한 삶의 흔적이며 추억이 된다.

마을은 옛길을 통해 이어진다.

옛길을 따라 삶의 공간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보석의 아름다움이 사람들을 홀리듯 옛길의 복원이야말로 두미도 사람들과 두미도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게 할 것이다.

 

북구항에서 고운마을 가는 옛길

 

마을 사이의 거리는 시간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덤불을 걷어내고 무너진 돌담을 다시 쌓으면 옛길은 선의 흔적을 걷는 길로 드러낸다. 설풍에서 묵은 밭 사이로 난 좁은 돌담길을 따라 서남쪽으로 걸어가면 덕리를 만나게 된다. 무거운 돌절구를 지고 오갔던 옛길이다.

그 옛길을 찾아 헤매던 중 칡을 보았다.

칡의 굵기는 얼마나 될까? 바위 밑까지 뻗어 있는 칡은 이제까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굵은 것이다. 칡의 즙은 쌉쌀하지만 건강한 맛이다. 칡을 보고 있으니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칡은 오랫동안 인적이 드문 장소에 있어서 이렇게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설풍마을에서 덕리마을 가는 옛길 입구

 

덕리는 돌담만 남았다.

덕리는 산속 깊숙이 떨어진 외딴 마을이지만 돌구덕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칼로 두부를 잘라놓듯 돌담만 남은 옛 집터는 한때 반듯한 집들로 동네를 이루고 살던 곳임을 말해준다.

풍경을 바라보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해안 절벽과 돌구덕이 아무리 지척이라도 절대로 한걸음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돌구덕 풍경을 보고 파도와 바람 소리를 듣는데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다 다르다. 각자가 지닌 마음속 세계의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덕리마을(겨울)
덕리마을(봄)
돌구덕
돌구덕 파노라마 사진

 

절벽 위에 길이 있다.

덕리에서 돌구덕을 발아래로 내려다보며 길을 걷는다. 낭떠러지 위 바위를 쪼아 만든 길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절벽 구간을 지나 동백숲에 다다르면 이내 임도와 만나게 된다.

임도가 옛길이다.

대판을 지나 청석까지는 옛길을 넓혀 임도로 만든 길이다. 따분하게 느껴지는 임도가 절대 아니다. 대판의 비탈은 고즈넉하고 청석의 들판은 평화롭다. 두미도 꼬리인 동뫼섬을 바라보며 임도를 걷는 즐거움이 있다

 

절벽 길
조망점
임도에서 바라본 동뫼섬

 

고갯길을 넘는다.

청석 임도에서 다시 대숲으로 들어선다. 대판과 청석 사람들이 남구 항을 가기 위해 넘어 다녔던 고갯길이다. 지금은 천왕봉 등산로와 인접하고 있다. 고개를 넘으면 남구 항이 한눈에 보인다.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다르다.

들으려는 의지가 있기에 귀가 있고 보려는 욕망이 있기에 눈이 있는 것이다. 섬에서 생활이 외로울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살아가는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행복의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남구항 동백 숲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았다.

몸과 마음의 안식을 위해 23일 동안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건물 앞에는 재활용품을 이용하여 만든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비닐하우스 같은 두미 쉼터에는 난로도 설치되어 있어 휴식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살고 싶은 섬은 두미도다.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은 한호수 사장님 부부가 운영 중이다. 캐나다에서 20여 년 동안 관광업을 하다 귀국한 후 두미도의 매력에 반해 이주하셨다. 두미도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다.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
두미도 바다 펜션 (민박)
저녁식사
두미쉼터

 

섬의 밤은 먹색이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고기잡이배의 불빛만이 넓은 바다를 좁게 비추고 있다. 밤바다의 경외감에 빠져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점점 옅어진다.

섬의 새벽은 짙은 먹색 빛깔에서 엷은 안개 빛깔로 바뀌고 있다.

나의 육체, 어둠에서 나와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머릿속 생각의 끈을 마음껏 풀어 놓는다. 창의적인 사고는 늘 나를 성장시킨다.

오늘도 살고 싶은 섬, 두미도에서 불멸의 희망을 꿈꾼다.

 

북구항 조형물(두미도 바다 팬션)

오랜만에 통영에 들렀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든, 언제쯤 들고 나는지에 대한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굳이 기억하려고도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함께 통영을 누볐던 기억만은 그날의 강렬한 햇볕에 박제된 체 뚜렷이 남아 있다.

통영 서호시장에서 시락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두미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것과 머리 두() 자와 꼬리 미() 자를 이름으로 가진 섬이라는 정도의 무지함을 걸머지고 두미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사월 중순이었다. 남구 항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차를 타고 일주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 때도 아주 특별한 인상은 없었다. 물론 청석의 앞바다나 덕리마을의 기암괴석들은 아름다웠지만 아주 특별한 풍광은 아니었다. 그 두미도에서 오월 초까지 일주일을 살아냈다.

 

두미도의 삶터는 북구 항에서 시작한다. 북구는 두미도의 대처다. 제법 반듯한 항구와 몇몇 신식으로 지어진 건물들 그리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항구에서부터 이어지는 비탈에 기대어 앉은 집터들은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곧바로 토해내고 있었다.

북구항의 우측 모퉁이에서부터 옛길이 시작된다. 2015년쯤 완성된 일주도로가 있기 전에 모두가 걸음 하였던 그곳으로 길을 잡았다. 처음부터 오르막길이다. 여전히 잘 보존된 그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와 마주하였다. 그곳에서 실거리를 만났다. 지독한 가시 탓에 그들이 부르는 이름 옷까시나무, 그 실거리를 본 것이다. 섬사람들의 삶 속에서나, 불리는 이름에서나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이쁜 꽃을 품은 실거리, 그가 피워낸 노란 아름다움이 한창인 계절이다.

 

옛길의 흔적을 더듬어 첫 번째 다다른 곳이 고운마을이다. 마을 입구인 능선에서 보이는 삶터가 제법 부드럽다. 옹기종기 어우러져 섬사람들의 질긴 삶을 이어가는 몇 채의 집들이 그 너머 바다와 맞닿아 있었고, 그 유순한 삶터만큼이나 선한 고운마을의 사람들이 사는 그런 마을이었다.

옛길은 고운마을의 삶터를 휘휘 돌아 숲속으로 이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설풍마을, 겨우 두어 채의 집들이 비탈진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도 마을의 옛이야기 한 보따리나, 달고나 커피 한잔쯤은 넉넉히 내어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고운마을과 설풍마을은 그 부드러운 삶터만큼이나 선한 옥빛의 바다에 안겨 산다. 이따금 바다를 지나는 어선들도 힐끔힐끔 마을을 바라볼 뿐, 그 흔한 뱃고동도 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그렇게 침묵의 안부를 확인하며 옥빛 바다의 삶을 지켜내고 있었다.

 

다시 숲을 따라 옛길을 찾아 나섰다. 덕리마을로 가는 길은 고단한 생활 길이다. 덕리마을이 돌절구 제작으로 열을 올리던 시절, 그 무거운 돌절구를 지고 북구를 오가던 길이다. 그 아릿한 흔적을 따라 덕리마을에 들었다. '! 빈터의 흔적이란!' 마치 선사시대의 유적처럼 녹슨 돌담들만이 덕리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들이 절묘하게 가슴을 휘저어 댔다. 이 비탈진 골짜기의 삶을 살아내던 그들은 누구였을까? 어떤 마음으로 겨우 정과 망치에 기대어 돌과 사투를 벌이며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그렇게 살아냈을까?

덕리마을의 바다 끝에는 돌구덕이라고 이름 붙여진 해안 절애가 산다. 덕리마을의 바다는 늘 으르렁대며 돌구덕에 덤벼들고, 돌 구덕은 그 넉넉함으로 우뚝 서 있을 뿐 말이 없다. 결국, 바다는 하얀 물꽃을 돌구덕에 내어주고, 덕리마을 사람들은 그 물꽃을 벗 삼아 골짜기의 고된 삶을 살았으리라.

덕리마을에서 다시 길을 나선다. 연이어지는 해안의 절애는 절벽 위에 길을 만들고, 무사하길 빌고 빌며 겨우 숲을 벗어나면 대판마을 가는 임도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청석마을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옛길을 넓혀놓은 길이다.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은 다른 듯하나이다. 고운마을의 부드러운 삶터가 설풍마을에서 끝나듯, 대판마을의 비탈은 청석마을의 넓은 들의 시작이다.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의 앞바다에는 두미도의 꼬리인 동뫼섬이 산다. 호수같이 포근한 청석의 쪽빛 바다를 끌어안고, 동백꽃과 새 울음과 함께 이웃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청석에서 고갯길을 넘어가면 남구가 나온다. 옛 남구의 어린이들이 청석의 학교를 넘나들던 길, 대판마을과 청석마을의 어른들이 남구 항을 가기 위해 무던히도 넘던 길이 바로 이 길이다.

 

남구 항과 북구 항은 다른 듯 닮았다. 비탈에 기대어 사는 모습이 영락없이 닮은 듯하다가도, 조금은 더 외로운 듯이 바다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남구 항의 모습이 다르다. 남구는 두미도 제2의 도시다.

남구 항에서 당산을 지나면 다시 사동마을 가는 옛길로 접어든다. 사동마을은 남구와 북구 사이에 있는 마을로서 덕리마을과 더불어 폐촌이 된 마을이다. 임도 위에 있는 독가촌이 그 명맥을 이어가긴 하지만 옛터는 이미 수풀의 세상이다. 그렇게 임도 아래위로 한참을 더듬어 옛길을 따라가자면 저만큼에서 북구 항이 손짓한다.

그만큼에서 북구 항을 본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북구 항이 한결 정겹다. 이만큼의 삶을 두미도에서 살아냈다. 곧 다시 두미도에 들 것이다. 그땐 사동마을의 옛터도 더 돌아보고, 근처로만 지나온 순천마을의 터들도 찾아보고, 덕리마을의 삶터에 앉아 소주 한잔 기울여야겠다.

 

두미도에는 노란 실거리와 하얀 물꽃과 녹슨 돌담과 붉은 동백과 선한 사람들이 산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울엄마의 가족여행

 

 

7~8년전 청평, 가평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

오랜만에 통영, 거제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요즘 우리네 삶이 그렇다지만...

먹고 살기가 빠듯하고 시간적 여유는 더 없는 듯 하여 갑작스레 슬퍼집니다.

 

 

 

 

가족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바로 옆집이 렌트카 회사인 것이 무척이나 편했습니다.

우리 가족 9명을 태운 스타렉스는 대전을 출발하여 점심때쯤 통영에 도착을 했습니다.

 

여행의 즐거움은 역시 먹는 것입니다.

오늘 점심으로는 통영해물뚝배기가 선택되었습니다.

 

비주얼이 죽이죠~

 

 

 

 

점심식사 후 한려수도케이블카로 이동을 했습니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여자조카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사진기를 주었더니 1박2일 동안 찍은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ㅎㅎ

 

 

 

 

1인당 왕복 1만원인 표를 끊고

8인승 곤돌라 두대에 나뉘어 탔습니다.

 

 

 

 

10분간의 짧은 곤돌라 탑승이지만

아름다운 통영항의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케이블카 상부역사에 내린 후

데크계단을 따라 미륵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엄마의 힘찬 발걸음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저는 어머니보다는 엄마라고 부르는게 좋습니다.

 

아마도 이날에 손자, 손녀, 아들, 딸, 사위까지 대동해서

미륵산 정상을 찾은 최고령 초보 산악인이 아닐까 합니다.

 

 

 

 

미륵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족이란 혈연, 혼인, 입양, 친분 등으로 관계되어

같이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합니다.

 

 

 

 

단체사진을 찍은 후

누나와 조카의 호의를 받으시면서 다시 계단을 힘차게 올라오고 계십니다.

 

이날 엄마가 신고계신 신발은 제가 설에 사드린 블랙야크 도미닉#2입니다.

웃어른들이 흔히 그렇듯이 자식이 사 주면 특별한 날에만 신고 아껴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울엄마는 오늘이 그 특별한 날입니다.

 

 

 

 

 

 

드디어 울엄마가 미륵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가뿐숨을 내쉬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시고 계십니다.

 

 

 

 

한결 여유로워지신 울엄마가

어서 사진을 찍으라고 재촉도 하십니다.

 

그래서 멋지게 인증샷도 찍어드렸습니다.

1산 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울 가족을 소개하겠습니다.

미륵산 정상에 와서 못처럼 환하게 웃고 계신 울엄마이십니다.

 

울엄마의 간곡한 요청으로 연세는 노코멘트하겠습니다.ㅋㅋ

 

 

 

 

형, 형수, 조카(올해 대학에 들어간)입니다.

 

아쉽게도 두명의 조카가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큰조카는 군복무중이고 막내조카(고등학생)는 시험때문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매형, 누나, 조카들입니다.

남자조카는 고등학생이고 울집안의 최장신입니다. 조만간 190cm까지 클 것 같습니다.

여자조카는 대학교 2학년입니다.

 

 

 

 

다시 곤돌라 2대에 나뉘어 탔습니다.

47개의 곤돌라가 지체없이 좌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10분간의 짜릿한 경험을 안겨준 곤돌라는

마침내 하부역사에 도착을 했습니다.

 

올라올때보다 내려갈때가 더 스릴있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지는 이순신공원입니다.

 

이순신동상 앞에서

엄마가 입고계신 다운자켓은 지난 겨울에 제가 사드린 B제우스다운자켓#2입니다.

웃어른들이 흔히 그렇듯이 자식이 사 주면 특별한 날에만 입으시고 아껴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울엄마는 오늘이 그 특별한 날입니다.

 

 

 

 

이순신공원에서도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쯤되면 이번 울엄마의 가족여행 컨셉을 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가족사진입니다.

 

 

 

 

이번 여행지는 해간도입니다.

크고 작은 배들이 연달아서 거제대교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해간도 선착장에서는 낚시가 한창이었습니다.

뭐... 특별히 물고기를 낚는 강태공들은 없었지만 구경하는 재미도 상당히 쏠쏠했습니다.

 

시원한 바람에 섞여서 불어오는 바다의 짠내가 오늘따라 싫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빈 페트병에 바닷물을 담아오라고 하기전까지는...ㅋㅋ

 

 

 

 

놀라셨죠??

조카가 이날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입니다.ㅎㅎ

이 사진에는 아래의 글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알고보면 대단한 사진입니다.

 

해간도를 다녀온 후 통영전통시장을 갔었습니다.

팬션에서 먹을 횟감, 미역, 충무김밥, 꿀방도 샀고 인근식당에서 갈치조림을 저녁으로 먹었습니다.

 

장도와 필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팬션에서 늦은밤까지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첫날이 지났습니다.

  

 

 

 

울엄마의 가족여행 둘째날이 시작되었습니다.

 

팬션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통영을 벗어나 거제로 향했습니다.

울엄마의 가족여행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제가 안전운전을 해서 바람의 언덕에 왔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조카의 심오한 사진 촬영기법은 오늘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찍은 사진이 몇장 없습니다.

있는 사진도 중간중간에 제가 찍거나 남들이 찍어준 가족사진이 전부입니다.ㅋㅋ

 

 

 

 

변함없이 오늘도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잔디로 이루어진 민둥산이며

바다가 시원스레 바라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서도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가족사진울엄마의 가족여행 컨셉이라는 거 다 아시죠??

 

 

 

 

마지막 여행지는 신선대입니다.

바람의 언덕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카와 매형은 신선대 바닷가에서

어릴적 물가에서 많이 했던  물수재비 놀이를 빠져 있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습니다.

 

 

 

 

이곳 신선대에서는

가족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왜 일까요??

 

바다가 너무 좋다면

울엄마는 한동안 신선대 바위에 앉아서 바다만 바라보셨습니다.

가족사진을 찍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울엄마는 좋았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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