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에 담긴 감잎

 

밭이 넓었고, 밭두둑 가에 감나무가 심겨 있었던 듯하다. 가난한 중국 선비는 농사로 생계를 이었다. 김을 매면서도 생각이 자꾸 이어졌다. 잡초를 뽑다가 악을 제거하는 마음공부의 한 자락을 깨닫고, 거름을 주다가 선을 북돋우는 방법을 떠올렸다. 호미로 돌멩이를 뽑아 내던지다가 며칠째 맴돌던 구절이 문득 이해되었다. 메모해야겠는데 그곳은 밭이었고, 가난해 종이도 없다. 생각 끝에 그는 아예 밭 가운데 작은 항아리를 묻었다. 감잎을 따서 넣어두고 붓과 벼루도 함께 놓아두었다. 김을 매다 짧게 깨달음이 지나가면 항아리 근처에 다다를 때까지 생각을 다듬어 감잎에 적어 항아리 속에 넣어두었다. 항아리는 습기를 막고 건조도 막는다. 한참 뒤에 꺼내도 감잎에 쓴 글씨는 그대로 살아 있었다. 메모가 적힌 잎사귀가 꽤 모이면 그는 어렵사리 마련한 공책에다 이를 옮겨 적었다. 이것이 앙엽, 즉 항아리에 든 잎사귀에 적은 메모 이야기다. 그가 누군지 어느 때 사람인지 그의 그 기록이 남았는지는 따로 알려진 게 없다. 그저 누가 감 잎사귀에 메모해서 항아리에 넣어두었다는 얘기만 전한다.

정민, 책벌레와 메모광, 문학동네, 2015

 

 

길을 걷다가 우두커니 서서 글을 쓴다. 음악을 듣다가 소리를 줄이고 글을 쓴다. 메모지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볼펜을 쥐고 글을 쓴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그냥 끄적거린다. 그렇게 난 메모지에 생각 쓰기를 하고 있다.

순간 떠오른 생각을 메모하지 못하면 바람이 지나가듯 생각도 사라지고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생각이 좋은 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사고의 발전을 위해 좋은 밑거름이 된다. 메모지나 노트에 두서없이 쓴 글들을 주제별로 모으고 내용을 정리한다. 처음엔 막연했던 글쓰기가 메모들의 연계작용으로 날개를 단다.

 

짧은 글을 쓰는 이유

 

생각을 정리하는 데 메모만큼 유용한 도구는 없다. 메모하지 않으면 생각을 멀리하게 된다. 생각을 글로 쓰기 전에 메모지에 적는다. 숨을 내쉬듯 자연스럽게 메모를 하고 있다.

3년 동안 매일 메모지에 짧은 글을 쓴 후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올리고 있다. 올리는 이유는 기계적으로 글을 쓰기 위함이다. 짧은 글이라도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기계적으로 글을 쓰지 못한다. 경험상 글은 쓰고 싶다고 써지지 않는다. 나쁜 글이라도 기계적으로 매일 쓰고 많이 써야 좋은 글 하나라도 얻을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감흥이 생긴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과 생각을 글로 쓰는 것 사이의 간격을 메모 글로 보충한다. 수풀을 헤쳐나갈 때 처음에는 힘이 든다. 하지만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길이 나서 다니기에 편해진다. 생각을 글로 쓰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반복적으로 글을 쓰다 보면 두뇌의 기능이 향상된다.

엉덩이로 글쓰기

 

글을 쓰는 데 있어 나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가? 자아 성찰이 우선이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는 자신만의 차별화를 구축해야 한다. 세상은 정직하다. 글을 쓰려면 경험에 투자해야 한다. 경험한 만큼 세상이 보이고 세상을 본 만큼 글을 쓸 수 있다. 글은 문장의 연결이다. 한 문장씩 차례차례 써 내려가자.

시도하지 않고서 삶에 변화를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와 다르지 않다. 늦지 않았다. 무엇이 두려운가? 타고난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연습과 훈련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글은 뇌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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