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토요일
계절은 가을이지만 기온은 여전히 여름이었다. 나는 계룡산을 찾았다. 천정골에서 등산을 시작한 후 큰배재, 남매탑, 삼불봉, 자연성릉, 관음봉, 은선폭포, 동학사로 하산을 했다. 주말이라 등산로는 오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숲속 나뭇잎은 여전히 녹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10월 27일 목요일
날씨가 화창한 가을날이라 오랜만에 다시 계룡산을 찾았다. 자동차를 타면 10분 남짓한 거리이지만 버스를 타도 동학사 종점까지 15분이면 도착한다. 습관적으로 천정골로 등산을 시작했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을씨년스럽다.
나뭇잎 떨어진 숲에는 무수한 낙엽들이 뒤엉켜 층을 이루고 있다. 계곡에 떨어진 낙엽은 물길을 가로막고 등산로는 낙엽 밟는 감촉과 함께 부스럭 마른 소리가 났다. 나무의 잎은 누렇고 붉게 점점 물들고 있었다.
호흡을 조절했다.
평지를 걷는 것처럼 오르막을 쉬지 않고 걸었다. 오버페이스(overpace)를 하면 호흡이 거칠어지고 힘이 많이 든다.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면 비탈이 심한 등산로도 쉽게 오를 수 있다. 평소보다 2분 늦은 37분 만에 큰배재에 도착했다.
나무는 월동준비를 시작한다.
늦가을이 찾아오면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려고 더는 물을 보내지 않는다. 가지와 나뭇잎 사이에 떨겨층이 있어 바람에 잎이 쉽게 떨어지게 한다. 떨겨층에 막혀 양분이 줄기로 가지 못하면 햇빛을 받아 만들어낸 녹말(탄수화물)은 쌓이게 되고 엽록소가 파괴된다.
단풍 색깔은 수종별로 다르다.
붉은색은 단풍나무, 붉나무, 사람주나무 등이 있고 노란색은 은행나무, 생강나무, 자작나무 등이 있으며 갈색은 고로쇠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단풍이 들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하다.
가을 단풍은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커야 하지만 영하로 내려가면 안 되고 일사량이 많아야 한다. 또한, 너무 건조하지 않은 적당한 습도가 유지돼야 한다.
사진을 찍을 때를 제외하고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붉고 누르게 변한 나뭇잎은 눈을 호강하게 하고 솔솔 부는 가을바람은 이마의 땀을 식혀줬다. 남매탑을 지나면서 물을 마시고 자두 맛 사탕을 입에 물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그림자가 돌계단과 철제계단에 영상처럼 상영되었다. 종아리 근육이 조금 땅겼고 발걸음이 조금 늦춰졌지만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
산은 매일 조금씩 변해간다.
변화는 관심을 가지고 볼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사방이 확 트인 공간에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 사라질 것 같아 핸드폰을 들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굳게 닫혀 있던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나니 지금까지 없었던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엔 산과 구름과 바람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삼불봉에 올랐다.
삼불봉에서 바라보던 계룡산 주 능선의 모습이 내 방만큼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다. 각양각색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계룡산의 가을 풍경은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나의 안목을 충족하기에 그만이었다.
계룡산의 매력은 많은 조망에 있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맥은 시선을 확장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있다. 삼불봉에서 내려다볼 때 불쑥 솟아오른 굴곡진 능선, 주름치마 같은 산맥의 주름, 저수지를 둘러싼 황금 들녘은 계절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게 만든다.
가을 낮의 햇살이 산뜻하게 농촌의 들녘에 쏟아져 내린다.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농촌 들녘을 바라보는 나의 머릿속에 ‘풍성함’과 ‘평화로움’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산맥, 호수, 들녘이 이토록 융화되는 농촌 풍경은 흔하지 않다.
등산로는 암반을 피해 능선 좌우로 연결된다.
도시의 가로수와 다르게 생긴 나무들이 나를 맞는다. 나무껍질, 줄기, 잎사귀가 도시에서 보던 나무들과는 다르다. 나무는 공간여행을 하지 못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시간을 통해 여행한다. 지형이 험할수록 생명력이 더욱 강해진다. 나무는 시간여행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능선은 뾰족한 암반들로 이루어져 있다.
등산로는 흙길, 암반, 목재계단이나 철제계단에 따라 폭이 좁아졌다가 넓어지면서 때론 넓어졌다가 좁아지면서 자연성릉까지 이어진다. 안전울타리 너머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 아래의 광경을 말없이 바라봤다. 저 멀리 동학사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숲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에 설레고 땅에 평온함을 느낀다.
이 능선을 넘어가면 하늘과 닿고 저 능선을 넘어가면 땅과 닿는다. 하늘이 땅을 품고 땅이 또 하늘을 보듬는다. 나는 하늘을 붙잡고 땅을 붙잡아서 오늘 하루를 즐기고 있다.
자연성릉에서 관음봉으로 올라가는 철제계단은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동학사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나뭇잎들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가을에 나무가 잎을 떨구는 건 봄에 새로운 싹을 틔우기 위해서다.’ 나는 언젠가는 가지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나뭇잎을 뒤로한 채 아쉬운 마음을 간직하고 관음봉에 올랐다.
많은 사람이 산을 오른다.
각자 다른 길을 통해 산을 오르지만, 목적지는 같다. 각자 관심 있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여 바라볼 뿐이다. 같은 산을 오르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수많은 발자국이 산에는 교차한다.
산을 오른다는 건 발자국을 산에 남기는 것이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내 발자국이 남는다. 내 머릿속에 그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매번 그 발자국을 난 글로 남기려고 노력 중이다.
이번엔 동학사가 아닌 연천봉을 거쳐 갑사로 하산할 생각이다.
가을이라도 똑같은 단풍은 없다.
저 멀리 나무와 바위 사이로 색의 물결이 흐른다. 가을엔 흐르지 않는 숲은 없다. 오늘 나는 색의 물결을 따라 이리로 저리로 숲속을 거닌다. 숲에 쌓인 단풍이 내 발자국을 적신다. 떨어진 낙엽에서 바짝 마른 잎 냄새와 가을바람의 선선함을 느꼈다.
틈을 발견했다.
한낮인데도 나무 지붕이 햇빛을 막아 숲은 어둠이 내려앉은 듯 고요하다. 다른 식물들과 공존해가며 숲에 활력을 더하는 여백의 공간이며 채움의 공간인 계곡엔 물이 흐르고 있다. 가을바람에 우듬지를 흔들며 갈참나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어느새 고로쇠나무, 고욤나무, 팽나무도 합세한다. 나는 자연이 만들어낸 가락에 장단을 맞추며 갑사로 하산을 했다.
황정산 자연휴양림 - 석화봉(2022.04.01) (0) | 2022.04.09 |
---|---|
소백산 산행 - 벼르고 별렸다 (0) | 2020.02.09 |
칠갑산 산행 - 어느 화창한 날 (0) | 2020.01.28 |
가야산(충남) 산행 - 바람 부는 날 (0) | 2020.01.28 |
덕유산 산행 - 움직이지 않는 구름은 구름이 아니다 (0) | 2020.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