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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유럽 2탄 - 20일차(6/15), 프랑크푸르트~라인 뤼데샤임 가기, 뤼데샤임여행, 비스바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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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열린 창문으로 도로에 차가 지날 때마다 물 튀기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바람도 강하게 불어 나뭇가지가 꺾일 정도로 휘고 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오전 9시 이후부터는 맑아진다는데 지금으로선 전혀 믿을 수가 없다. 주말이라 유스호스텔이 조용하다. 그렇다고 숙박객이 없는 건 아니다. 평소의 시끌벅적함이 사라졌을 뿐 여전히 조식 먹는 사람은 많았다.

외출준비를 하면서 창밖을 응시했다. 먹색 구름이 차차 사라지고 맑은 하늘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굳이 우산을 챙겨 나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일기예보가 맞긴 맞네.

 

 

 

평소처럼 지하철을 타고 중앙역에 왔다. 오늘은 라인 뤼데샤임(Rüdesheim am Rhein)을 가려고 한다. DB 앱으로 검색을 하니 23번 플랫폼에서 오전 923RB10 기차가 있다. 기차표를 따로 끊을 필요 없이 Deutschland-Ticket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기차를 타고 차창으로 바라본 주말 아침은 여느 나라처럼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목적지보다 한 정거장 전인 가이젠하임(Geisenheim)에서 내렸다. 마을을 관통하는 철길을 벗어나 마을의 좁을 길들을 걸었다. ‘Hello’, 우연히 마주친 현지인들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회전 로터리에서 버스를 탔다. 걸어가 가기엔 뤼데샤임은 너무 멀었다. 버스를 타지 않았다면 내가 전혀 몰랐을 것 같은 곳도 거쳤다. 바라다보이는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 버스 안이지만 사진을 찍었다. 관광지를 벗어나 다른 곳을 가보면 뜻하지 않은 좋은 구경거리를 만나게 된다.

 

 

 

 

 

버스에서 내렸다. 이제부터는 부지런히 걸어야만 한다. 처음에는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걷다가 비포장 길로 접어들었다. 어느 곳으로 걷던지 위쪽으로만 올라가면 된다. 아직 포도 열매가 영그는 시기가 아니라서 조금 아쉬웠지만, 여려가지 볼거리가 있는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계단 전에 평평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발견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그곳에서 신발까지 벗고 철퍼덕 주저앉았다. 에코백에서 로제와인과 오렌지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런 곳에서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면 대체 어느 곳에서 와인을 마신단 말인가? 걸어 다니다 보면 이런 순간이 제일 기분 좋다.

산악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른다. 아무래도 내가 부러운 것이다. 이곳이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고 심지어 포도밭 한가운데서 와인을 마시는 내 모습이 그들에겐 신선한 충격인 듯했다. 한 손으로 와인 병을 들어 그 소리에 화답해 주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산악 케이블카를 탔으면 이런 즐거움은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와인을 1/3 정도 마셨을 때 계단을 올랐다. 등산으로 표현하자면 정상에 오르기 전 마지막 급경사지 구간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 같다. 내가 누군가 이정도 경사는 호흡도 거칠어지지 않고 단숨에 올라갈 수 있다. 실제로도 1분이 안 걸렸다.

 

 

 

 

 

니데르발트 기념비(Niederwalddenkml)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곳에서 광활한 포도밭, 뤼데샤임 전경, 라인강, 강 너머의 빙겐(Bingen), 그 뒤로 펼쳐진 산군과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까지 막힘없이 볼 수 있었다. 한동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분이 전환되는 느낌이 좋았다. 그러다 와인을 꺼내 마셨다. 오늘 와인을 가져온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 화인 향이 주변에 퍼졌다. 쌉쌀하면서도 은은한 달콤함이 오랫동안 내 입안 가득 남아 있다.

 

 

 

 

올라왔던 길과는 전혀 다른 길로 하산을 했다. 먼저, 산악 케이블카를 찍기 위해 동선이 겹치는 길로 내려갔다. 짧은 동영상을 찍은 후 비포장 길을 잠시 걷다가 포도나무 사이의 공간으로 내려갔다. 포도 열매가 영글지 않은 시기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걷다 보니 마을 입구까지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뤼데샤임 중심지는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한곳에 모여드는 바람에 굉장히 복잡한 느낌이 든다. 일명 개똥지빠귀 골목으로 유명한 곳을 걸었다. 와인 상점에 들어가 구경을 하면서 직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국인들도 많이 오는데 중국인들이 어마어마하게 찾아온다고 한다.

 

 

 

오후 25분 기차를 타고 비스바덴으로 향했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기차역을 나와 쭉 뻗은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심가가 나왔다. 그냥 말 그대로 도심이었다. 내가 보고 싶은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식당, 술집, 상점이 즐비한 거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바로 출발하는 RB 기차는 만원이라 3분 뒤에 출발하는 S 기차를 탔다. 처음엔 마인츠를 들렀다 가려고 했지만, 비스바덴의 경험 때문인지 갑자기 가기 싫어졌다. 마인츠를 지날 때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다.

이른 저녁을 먹고 유스호스텔로 돌아갈 생각이다. 구글맵으로 한식당을 검색해서 가 보았다. 막상 도착한 곳은 내가 원하는 그런 식당이 아니었다. 대안으로 인근 베트남 식당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도심 거리는 어제의 축구경기 거리 응원처럼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늘이 토요일 오후라는 걸 나만 잊은 것 같다.

 

 

 

Góc Phố 베트남 식당에 들어갔다. 오후 5시가 막 지나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를 보고 분짜 하노이를 주문했다. 10분쯤 기다렸을 때 큰 접시에 담긴 음식이 나왔는데 면, 고기, 채소를 담가 먹는 소스 그릇이 작았다. 나와 같은 음식을 먹는 다른 사람들은 소스를 뿌린 후 비벼 먹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아주 조금씩 소스에 담가 먹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직원이 소스와 사발 가져다주었다. 이제야 진정한 분짜를 먹게 되었다.

 

 

 

유스호스텔에 오후 6시가 지나 들어왔다.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쉬다가 노트북을 켜고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침대에 누웠더니 졸렸다. 한국 시각으로는 새벽 1시쯤 된 것이다. 자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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