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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유럽 2탄 - 17일차(6/12), 프랑크푸르트~트리베르그 가기, 트리베르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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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이 열린 창문으로 들렸다. 해가 너무 길다 보니 언제부터가 밤이고 낮인 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새벽 4시쯤 잠깐 눈을 떴을 때 이미 바깥세상이 환해서 당황했다. 어쩌다 보니 하루를 더 일찍 시작했다. 객실은 화장실과 샤워실도 구분되어 있는데 5인실 치고는 굉장히 넓어 마음에 들었다.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기 전에 양치질해서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었다. 유스호스텔이 만실이라 조식을 먹으려는 사람도 많았다. 조식을 먹기 위해서 10분이나 줄을 서다니 내일은 아예 늦게 내려와야겠다.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이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뒤섞여 먹으니 먹을 만했다. 한방을 쓰는 독일 아저씨가 빵 먹는 법도 알려줬다. 빵 종류에 따라 먹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도 내일은 잘 할 수 있겠지.

 

 

 

화장실을 다녀오고 유스호스텔을 나왔다. 그렇게 춥지 않은 것 같은데 나만 반바지에다 민소매라서 남방을 걸쳤다.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Deutschland-Ticket으로 지하철을 타고 중앙역에 왔다. 개찰구도 없고 검사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이것을 조금 일찍 알았다면 독일에서 교통비를 많이 줄였을 것이다. 중앙역은 EURO 2024의 열기가 가득했다.

 

 

 

예정 시각보다 8분 늦게 기차가 출발했다. 중간에 기차를 갈아타야 해서 걱정이 되었지만, 경유 시간이 충분한 것을 DB 앱으로 확인하고 안도했다. 이 기차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해서 스위스 인터라켄 동역까지 가는 기차다. 작년 스위스 여행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늘 여행지인 트리베르그(Triberg)를 가지 말고 이 기차를 타고 스위스로 갈까?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해 봤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지만 흐리지는 않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아 기차 여행하기 좋은 날씨다. 오늘은 나만의 기차식이 맥주가 아닌 포도주로 바뀌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안주 삼아 한 모금 마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체 시간이 30분을 넘었다. 이렇게 지연되다가는 기차를 갈아타지 못할 수도 있다. 경유지인 오펜부르크(Offenburg) 도착했을 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4분이었다. 기차가 1번 플랫폼에 도착한 후 냅다 뛰어 5번 플랫폼으로 달려갔다. 간신히 놓치지 않고 기차에 탑승했다. 진땀이 다 나네.

 

 

 

 

트리베르그로 향하는 길은 독일가문비와 전나무가 우거진 첩첩산중 협곡을 지나간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흑림(Black Forest)이구나. 이따금 나타나는 마을은 스위스 풍경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나처럼 기차를 타고 이곳을 찾는 한국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여행 전 이곳을 꼭 방문해 보고 싶었다.

 

 

 

45분 동안의 즐거운 협곡 기차 여행이 끝났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긴 이동을 한 끝에 트리베르그에 도착했다. 시간은 브뤼셀에서 룩셈부르크 가는 것과 비슷했지만 그때처럼 지루하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가장 먼 곳으로 먼저 가서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면 돌아갈 때 편하다. 근데 먼 곳 어디를 가야 하나?

 

 

 

뻐꾸기시계로 유명한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정보가 없었다. 처음엔 걸어 다닐 생각이었는데 Deutschland-Ticket이 있어 550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일단 버스가 가는 노선을 구글맵으로 확인했다. 마을 중심가를 벗어나자 버스는 내가 검색한 노선과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해 순간 당황했다. 이렇게 무작정 가면 숲만 보이고 마을은 없을 것 같았다. 이름 모를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에 하차 벨을 눌렀다. ~.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지 서늘했다. 무작정 걷다가 소나흐(Schonach)라는 마을 이름이 공원 앞 큰 돌에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마을 중앙에 자리한 공원은 생각보다 부지가 넓고 분수, 쉼터, 놀이터, 산책로 등 여러 시설을 잘 갖추고 있었다. 특히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놀이시설에 눈길이 갔다.

 

 

 

마을 뒤쪽 숲에 통나무집(Baumhaus)이 있는 것을 구글맵으로 확인하고 그곳을 가보기로 했다. 한적한 마을을 천천히 걸어 다니다 마트에 왔다. 와인과 사과, 오렌지는 있으니 씹을만한 것을 사고 싶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훈제베이컨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딱 보면 그냥 삼겹살이다. 번역기로 그냥 먹어도 되는지 묻고 나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매했다. 벌써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들뜬 마음으로 숲으로 향했다.

 

 

 

일단 이정표는 없었다. 구글맵을 보고 그냥 찾아가기로 했다. 숲과 조금 더 가까운 마을 위쪽으로 이동했을 때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까지는 사람을 거의 볼 수가 없었는데 이곳에서 한꺼번에 다 보는 것 같다. 알고 보니 이곳에 유치원(Kindergarten)이 있었다. 놀이시설에서 노는 아이들, 숲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신명 나는 웃음소리가 끝이질 않았다. 이런 게 진정한 의미의 유아숲이고 숲체험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마을이 훤히 다 내려다보였다.

 

 

 

무작정 숲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정해진 길을 찾는 건 지금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물론 나중에 이정표와 길을 발견했지만. 곧게 뻗은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나무 아래로는 이끼가 바위를 뒤덮으며 더욱 푸르게 살아나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쉽사리 닿지 않은 곳이라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다.

 

 

 

 

숲의 분위기에 흠뻑 취해 혼자만의 행복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이정표와 길을 발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나무집에 도착했다. 지금은 관리가 되지 않아 활용은 안 하는 듯 보였다. 그래도 한번 올라가 볼까? 하는 마음을 애써 누르면서 한동안 그곳에 서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꼈다. 야 좋다.

 

 

 

 

 

조금 더 깊숙이 숲으로 들어갔다. 평평한 능선에 조그만 숲체험 시설이 있어 그곳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와인을 마시고 훈제베이컨을 뜯어먹었다. 맛은 좋았는데 너무 질겨 임플란트를 하지 않았으면 못 먹었을 것이다. 물론 껍질 부분은 아예 씹히지도 않았다. 이곳에서 한 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개인 SNS에 올릴 이 남자가 노는 법이라는 동영상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와인을 다 마셔서 그런지 술기운이 올라왔다. 숲을 벗어나 세계에서 가장 큰 뻐꾸기시계인 것을 처음으로 인정받은 곳까지 도로를 따라 걸었다. 도중에 버스가 지나가서 한 정거장을 타고 이동을 했다. 지금은 이곳보다 더 큰 시계가 다른 곳에 있다. 굳이 내부구조까지 볼 필요가 없어 외부에서 사진만 찍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도 뻐꾸기시계가 있었는데.

 

 

 

 

 

뻐꾸기시계만큼 유명한 트리베르그 폭포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곳은 입장료를 10유로 받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폭포와 연결된 숲길을 모두 걸어봤다. 폭포 소리가 나고 더 가까이 다가서려고만 하면 입장료 받는 곳이 나왔다. 그렇게 넓은 곳이 아니라 모든 숲길을 다 걷는데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현지인들이 많이 다니는 곳, 딱 한군데만 입장료를 내지 않고 폭포까지 갈 수 있었다. 숲의 동쪽 지점에 Froschbrünnele이라는 작은 식수대가 있다. 이곳 사거리에서 큰길을 따라 걸으면 돈을 내지 않고도 폭포에 갈 수 있다. 식수대 인근에는 쥐라기 공원에 나올듯한 공룡의 얼굴을 닮은 바위가 있으니 한번 구경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마주한 폭포는 우렁차게 물줄기를 쏟아냈지만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이걸 보기 위해서 내가 10유로를 내고 들어왔다면 엄청나게 후회했을 거다. 갑자기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순식간에 비가 내린다. 날씨가 좋다는 예보를 믿고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기차역으로 돌아갈 시간도 되었고 서둘러 마을로 내려왔다. 마을의 상점 구경을 하려다 마침 버스가 오는 것을 보고 그냥 탔다.

 

 

 

다행히 비는 오래 내리지 않았다. 캔맥주를 마시며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한적한 기차역에서 멈춰 선 기차, 오늘 프랑크푸르트까지 잘 부탁해. 오늘은 기분이 좋아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빌링엔-슈베닝엔(Villingen-Schwenningen)을 가보고 싶어졌다.

 

 

 

어김없이 지연된 기차, 오후 930분이 지나 프랑크푸르트역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으려고 부랴부랴 한식당에 갔는데 영업종료란다. 주변 아시아식당들도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유스호스텔로 돌아왔다. 객실은 어두웠고 아무도 없었다. 얼굴과 발만 닦고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시간은 벌써 오후 11시가 넘었는데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긴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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