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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유럽 2탄 - 16일차(6/11), 브뤼셀~프랑크푸르트 가기, 프랑크푸르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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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커튼 사이로 햇살이 들어왔다. 해가 뜬 것을 보고 오늘 맑은 날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어젯밤에 틀림없이 창문을 열어놓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창문을 닫혀 있었다. 어제 바람이 많이 불어 술 마실 때는 추운지도 몰랐었다. 내가 아니면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이 닫았을 것이다. 오전 6시가 지나 노트북을 들고 3층 휴게실로 갔다. 벨기에에 체류하는 34일 동안의 여정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조식 시간이 다가오자 객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제는 몰랐는데 아무래도 단체가 숙박했던 것 같다. 일부러 늦게 아침을 먹으러 주방으로 내려갔다. 평소보다 늦게 내려갔는데도 불구하고 그 넓은 주방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한 50여 명 있었다. 나도 한가득 음식을 담아 빈자리에 앉았다. 음식을 다 먹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동안 또 다른 초등학생들이 식당에 들어섰다.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여행용 가방을 챙겨 오전 9시경 체크아웃했다. 호스텔 로비에서 못다 쓴 여행기를 쓰면서 시간을 보내다 오전 11시쯤 호스텔을 나와 기차역으로 향했다. 여전히 싸늘한 바람이 불었지만, 하늘이 맑아 어제만큼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잠시 마트에 들려 빵과 맥주를 사는 동안 하늘이 순식간에 변덕을 부려 비가 내렸다.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날씨다.

 

 

 

브뤼셀 미디역에서 오후 1225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기차를 탔다. 독일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나라이다. 프랑크푸르트를 베이스캠프 삼아 일주일 동안 독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생각이다. 기차를 탈 때마다 나만의 점심 기차 음식을 먹는다. 뚜벅이는 맥주 없이는 기차를 탈 수 없다는 게 나의 규칙이 된 지 오래되었다. 오늘은 한 캔에서 끝나지 않고 두 캔을 마셨다.

 

 

 

글을 쓰는 동안 국경을 넘어 독일 아헨(Aachen) 기차역에 도착했다. 내 옆자리는 벨기에 리에주에서 독일 아헨까지 오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아무도 타지 않아 편안하게 기차 여행을 하게 되었다. 맥주를 마셨더니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었는데 다행인 것은 기차의 화장실은 무료라는 점이다. 차창 밖으로 넓은 초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왜 기찻길 옆 풍경은 하나같이 비슷한 걸까?

 

 

 

 

프랑크푸르트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나라, 독일에 발을 디뎠다. 기차역에서 유스호스텔까지는 걸어서 한참을 가야 한다. 여행용 가방을 끌면서 천천히 도로를 따라 인도를 걸었다.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다니다 보니 이곳의 주변 풍경이 생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마인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체크인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다만, 객실 침대 배정에 문제가 생겼다. 나에게 배정된 2274번 침대를 누군가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도 먼저 체크인한 사람 중 한 명이 빈 침대라 그냥 쓴 듯했다. 짐들이 있어서 함부로 치울 수도 없기에 그 사람이 유스호스텔에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여행 마지막 숙박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일단 여행용 가방과 배낭을 객실에 놓고 유스호스텔을 나왔다. 바람이 불었지만 그렇게 싸늘하지 않아서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녔다. 제일 먼저 간 곳은 뢰머 광장이다. 독일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도로를 건너 프랑크푸르트 재래시장에 갔는데 우리네 전통시장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곳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소시지를 먹으러 갔다. 시식용으로 준 소시지를 먹었을 때 우리나라 프랑크소시지 맛이 났다. 괜찮다 싶어 100g(3.15유로)을 샀는데 내가 받은 소시지는 맛이 확연히 달랐다. 그냥 밍밍한 옛날 소시지 맛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맛이 없었다. 왜 그런 차이가 날까? 왜 겨자 소스와 오이피클을 같이 먹으라고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골목을 걷다가 괴테 생가에 도착했다. 특별한 의미가 있어 온 것은 아니고 그래도 책 좀 읽은 사람으로서 예의를 차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 넓지 않은 프랑크푸르트 시내 중심지를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녔다. 특별히 어디를 가려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유스호스텔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젤너(Eiserner) 다리를 건넜다. 한국에서 내가 즐겨봤던 눈물의 여왕 촬영지가 이곳이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독일 캔맥주와 프랑스 와인을 샀다. 맥주는 오늘 마실 것이고 와인은 내일 트리베르그에서 숲을 걷다가 폭포를 보면 마실 생각이다. 유스호스텔에서 밤이 깊어가고 있다. 석양을 보며 맥주도 다 마셨는데 아직도 내 침대에 몸을 누이지 못하고 있다. 침대 때문에 저녁도 먹지 않았다. 오후 10시 넘었는데, 내가 기다린 지 벌써 5시간이 지났는데, 대체 이 녀석은 언제 들어오는 거야.

 

 

 

11시가 넘어 그 녀석이 친구와 술에 취해 들어왔다. 문 앞에서 가부좌하고 있던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이 내 눈에 띄었다. 이럴 때는 기선제압이 중요하다. 일단 내일 트리베르그에서 마실 와인을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영어로 왜 내 침대를 쓰는지 나에게 설명하라고 말했는데 영어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분위기를 보고 변명을 뭐라고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 독일어로 말하니 나도 못 알아듣지만, 몸짓을 통해 대충 말뜻을 이해했다.

술 취한 놈하고는 상종도 안 하는 게 내 소신이지만 오늘부터 일주일간을 이곳에 숙박해야 해서 이런 놈은 초장에 기를 죽여야 했다. 어차피 서로 말은 안 통하니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법이다. 이럴 때 나의 논리적인 말투에 욱하는 성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한국말로 욕을 하면서 죽여 버리겠다고 윽박지르는 순간 그 녀석의 위축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봤다. 이것으로 승부는 끝났다.

그 녀석과 친구들이 순진하고 어려 보여 나이를 물어보니 21살이란다. 나 참. 내 조카보다 한참 어린놈들이다. 13의 대결은 한순간에 끝이 났다. 또한, 객실의 전운은 이것으로 평화를 찾았다. 어쩌다 보니 오늘은 늦은 취침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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