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산행 - 벼르고 별렸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등산복을 입는 것은

도전을 입는 것이고


등산화를 신고

산을 오르는 것은

도전을 신는 것이다.



사진출처 : 블랙야크 명산 유성도전단 밴드



셰르파와 함께하는 명산산행

블랙야크 명산 유성도전단들과 함께

소백산을 찾았다.


도전이라는 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


고맙습니다.





느린 발걸음은

주변을 보다 자세히 보고

관찰하는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빠른 발걸음은

온몸이 땀으로 젖어

노폐물이 분비될 때 시원함을 느낀다.


처음엔 느린 발걸음으로 시작했지만

부지불식간에 빠른 발걸음으로 변하고 말았다.





내가 걸어 들어온 숲에

자연이 숨죽이며 깨어나고 있다.


내 시선은

나뭇가지 사이의

허공을 향하고 있지만


내 평화로운 마음은

숲속을 향해 열려 있다.


마음으로 자연을 느껴본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연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






눈을 보면 즐겁고

상고대를 보면 기쁘고

멋진 설경을 보면 그냥 행복하다.


산을 오르는 동안 내가 힘들지 않게

솜사탕 같은 흰 눈의 달콤한 속삭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보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했던 상고대가 시작되었다.


첫사랑은 사랑이 처음이라 감정 표현에 서툴다

산을 오를 때마다 내 서툰 첫사랑은 내 가슴을 앓게 만든다.


내 안에 첫사랑의 감정이 없다면

자연의 신비에 설레이지 않을 것이다.


앞 사람의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을 조용히 포개며 걸었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

멈췄다고 산행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가지를 벋은 나무가

다른 나무를 껴안고 있다.


가지 사이에 상고대 터널이 만들어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되야 한다.

흔들려야지만 꺾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바람과 함께 나무는 춤을 춘다

춤을 춰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정상에 올라 가뿐 호흡을 내쉰다.

지구도 같이 호흡을 해서 바람을 내게 보내줬다.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곳에 서 있다.


흰 눈으로 둘러쌓인 정상은

구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상에 올라섰을 때의 느낌은

결코 올라서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감싸고 돈다


내 체취를 실고

먼 유량의 길을 떠난다.


비로소 나는

바람과 하나가 되었다.


걸음을 멈췄다.


먼 곳을 돌아온 바람을

다시 이곳에서 만났다.


바람이 나부끼는데로

가벼운 모든 것들이 방향을 바꾼다.


정상석을 곁에 두고 다시 길을 찾는다.

이제 하산할 준비를 해야 한다.







소백산 정상에서

칼바람속에 내동댕이 쳐졌다.


칼바람의 고통도

견딜 수 있을때까지가 고통이다.


바람을 마주하고 서면

바람은 오장육부를 훑으며 분다.


최대한 체온유지를 해야한다.


바람을 등지고 서서

최대한 바람과 맞섰다.


어찌 된 일인지

칼바람속에서도 따뜻함을 느꼈다.






눈 덮힌 산을 보고

춥다고 생각하는 사람


백색의 세상이 눈부실정도로

맑다고 생각하는 사람


같은 자연을 바라보지만

각자가 느끼는 감정은 정반대일 수 있다.





겨울이 오기를

눈이 내리기를

차가운 바람이 불기를

벼르고 별렀다.


모진 추위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꽃봉오리처럼 피어난 상고대, 순백의 그림자가

눈부신 슬픔으로 내 가슴에 스며든다.


이제 겨우 모습 보였는데

벌써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차가원진 내 손끝에

상고대의 속울음이 느껴진다.





상고대의 옷을 입은 나무 앞에 섰다.


비밀 대화를 나누는 연인처럼

나무와 나 사이는 아주 가까웠다.


나의 시선은 늘 서럽고 애달픈 것들을 향해 있다.


차가운 칼바람이 흘러 들어와

내 몸을 식히고 쿨하게 사라져 버렸다.





해를 등지고 어의곡으로 하산을 했다.


눈을 뒤집어 쓴 채 서 있는 나무

눈을 이고 늠름하게 서 있는 나무


나무 위에 쌓인 흰 눈은

살짝 구겨진 흰 눈이다.


세월이 지나면이 멋진 풍경도 사라져 버리겠지

사라져 간 모든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한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만이

등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등산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낮은 곳으로

내려오려고 올라가는 것이다.


어색한 침묵의 순간처럼

오늘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칠갑산 산행 - 어느 화창한 날



어젯밤, 달이 떴다.


토끼가 방아 찧는

어릴적 그 달은 아니다.


달에 인간이 발을 디딘후부터

날의 신비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른 아침

두개의 해가 떴다.


하늘에 뜬 해

저수지에 비친 해


삭막한 도심을 벗어나

따뜻함이 느껴지는 천장호에 왔다.


아무도 오지 않은 출렁다리를

걷는 것처럼 기분 좋은 게 없다.






아래서 위를 올려다 본다


칠갑산 정상

내가 가야할 곳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


아래서 올려다 보는 것보다

즐거움이 더 크다.






공기는 햇빛에 반짝거리고

햇빛은 감미롭게 다가온다.


높은 것에 대한 도전의지가 필요하다.

남이 반할 만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가야산(충남) 산행 - 바람 부는 날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좋다.


주체적인 삶을 살면

자연처럼 평화로운 상태에 놓인다.





흙 냄새와 어우러져

낙엽 냄새가 향긋하다.


우연히 찾아온 가야산(충남)이

우울했던 감정을 즐겁게 바꿨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되어야 한다.

흔들려야지만 꺾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나무는 바람과 함께 춤을 춘다

춤을 춰야만 세상을 살 수 있다.






비가 왔었다.

어제와 내일사이에서


한겨울 해가 저물면

그 자리에 서서 오는 밤을 바라본다.


빗방울은 흙과 바위사이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채 얼어버린다.


길쭉한 고드름이 되었다.


해를 향해 기도하는 물빛

고드름마다 그 색깔이 다르다.


빗방울이 고드름을 데려왔다.

고드름 빛이 숲속에 은은하게 퍼진다.







오늘 하루는

죽어라고 바람이 분다.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아무 생각없이 걷고 있다.


눈을 감고

바람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몇번이나

잎 떨어진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흔적없는 바람의 날에 베여

내 마음까지 쓰리고 아프다.


어색한 침묵의 순간처럼

오늘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숲에 의해


숲의 아름다움은

산에 의해


산의 아름다움은

명산도전으로 정상에 섰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된다.

한라산 등산(성판악~관음사)



첫날은 비가 왔다.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해보려고

교래리 삼다수숲길을 다녀왔었다.


둘째날은 흐리고 가끔 비가 왔다.


기상관계로 정상은 입산통제였고

나는 제주시내를 배회하며 돌아다녔다.






삼고초려[三顧草廬]


지금 나에게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믿음이 강력하면 언제가는 이루어진다.


햇볕은 쨍쨍


오늘 날씨 참 좋다.

하루 아침에 천지가 개벽한 듯 하다.


지금 행복을 느끼는 데는

날씨라는 약간의 결핍이 필요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하늘을

내 등뒤에 두고 열심히 산을 오른다.


가끔 바람에 나뭇가지가 나부낀다.

기다리지 않아도 바람은 내 얼굴을 때린다.







상고대를 기대하며 산을 오르는데

기대하던 눈은 자취조차 찾을 수 없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눈꽃 한번 피우면 얼마나 좋을까?


실망하기엔 이르다.


지금 이순간은 태양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맑은 날이다.










곧 죽을 것 같이 거친 호흡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한라산에 오른다.


한라산 정상에 올라와서는

각자의 자리에 안착해서 순간을 즐기고 있다.


산을 오르기전 가졌던

한라산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는 순간이다.







세월이 더해지면서

알게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정상에 오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이 백록담이다.


삶의 모습이 그런 것이고

자연의 모습이 또한 그런 것이다.







있는 곳이 다르면 세상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구름, 바다, 도시가 주변에 펼쳐진다.

내가 어디선든 멀리 떠나왔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되지

무얼 위해서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근심하며 산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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