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야크 마운틴북 명산100 도전기 87, 오봉산 산행



비가온다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습하고 무더웠던 지난 6월 30일 목요일 춘천 오봉산을 찾았습니다.





명산100 도전을 진행하면서

2016년부터 대전에서 자주 이용하게 된

민수산악회 버스를 타고 청평사 주차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오봉산~용화산 연계산행은 백치고개정상에서 하산을 했고

오봉산 산행을 위해서 저, 이정훈 셰르파를 비롯하여 총 6명이 이곳으로 왔습니다.





주차장에서 청평사관광단지를 지나갔습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나무 그늘과

얼음처럼 찬 물이 한여름의 더위를 말끔히 씻어내는 이곳은

흐르는 물이 손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얼음같이 차다하여 '냉장골'이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물줄기가 메말라 있습니다.





춘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향토음식점, 산책로와 야영장을 지나서

거북휴게소가 있는 청평사 문화재구역 매표소에 도착을 했습니다.





문화재관람료는 2,000원입니다.


청평사에는 국가지정 회전문(보물 제164호), 고려선원(명승 제70호)와

강원도 지정 청평사지(기념물 제55호), 삼층석탑(일명 공주탑, 문화재자료 제8호)가 있습니다.


청평사로 향하는 길목에는

공주설화,

거북바위,

구송폭포,

공주굴,

진락공 이자현 부도,

영지명문바위,

영지,

고려선원 등의 볼거리가 있습니다.





공주설화


국 당나라 태종의 딸 평양공주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다.

태종이 청년을 죽이자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붙어서 살았다.

당나라 궁궐에서는 상사뱀을 떼어 내려고 여러 치료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공주는 궁궐을 나와서 방랑을 하다가 한국의 청평사에 이르게 되었다.

 

공주굴에서 하룻밤을 자고 공주탕에서 몸을 깨끗이 씻은 공주는 스님의 옷인 가사를 만들어 올렸다.

그 공덕으로 상사뱀은 공주와 인연을 끊고 해탈하였다.





거북바위


거북바위는 자연암석으로

예전부터 거북이가 물을 바라보게 되면

청평사가 크게 융성할 것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구송폭포


구송폭포는 주변에 소나무 아홉 그루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폭포 위쪽에 사람이 쉴 수 있는 구송대가 있다.

구송폭포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아홉가지 폭포 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구성폭포라고도 불린다.


이 폭포에서는 일년 내내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 내린다.

특히 폭포의 양쪽에 수직으로 펼쳐진 절벽은 단정한 모습의 선비처럼 아름답다.






공주굴과 고목


공주가 머물렀던 굴을 공주굴이라 한다.

공주굴 앞에는 오랜 세월이 흘러 제 살을 드러낸 물푸레나무가 지키고 서 있다.







진락공 이자현 부도


진락공 이자현이 죽고 난 후 임금이 내려준 이자현의 시호이다.

이 부도는 청평사를 세 번째로 중창한 고려시대 이자현의 부도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자현의 유골은

질그릇으로 만든 함에 넣어서 청평사 북쪽의 청평식암 근처 바위 틈에 안치했다고 한다.





영지 명문 바위


영지 명문 바위는 윗면에 한문으로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것들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모든 것들이 사라지네.

이와 같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곳곳이 모두가 극락세계로구나.


이 시는 스님이 깨우침을 얻고 나서 지은 시라는 뜻의 오도송이라고 알려져 있다.





영지


영지는 고려시대 이자현이 조성한 것으로

조선 초기 김시습의 한시에도 언급되어 있다.

 

영지는 전체적으로 직사가형의 연못으로

부용봉에 있던 견성암이 연못에 비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고려선원


청평사는 973년(고려 광종24년)에 백암선원으로 창건되어 1,000년 이상을 이어 온 선원이다.


고려시대에는 이자현, 원진국사 승형, 문하시중 이암, 나옹왕사 등이

조선시대에는 김시습, 보우, 환적당, 환성당 등이 이 곳에 머물렀다.

고려선원에 머문 당대 최고의 고승과 학자들은 학문과 사상을 전파하였고

뛰어난 문인들은 시문으로 이 곳의 자연과 문화를 노래했다.





회전문은 청평사의 대문으로

1555년경 보우대사가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운데 칸을 출입문으로 하고

양쪽 한 칸씩은 사천왕상을 조각하여

세우거나 그림으로 그려서 걸도록 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봉산 산행은

청평사 대웅전 뒤 극락보전 옆의 등산로를 따라

로프 암릉구간을 통과한 후 오봉산에 오를 예정입니다.


청평사 해우소 앞에 세워져 있는 등산로 안내도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아침을 휴게소에서 먹었지만 이상하게 허기가 집니다.

허기를 참지 못하고 이정훈셰르파가 삶은 달걀을 먹고 있습니다.


연속적으로 이어진 급경사지 로프 암릉구간은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산행에서 무덥고 습한 날씨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로프 암벽구간을 오르던 중 전망 좋은 곳에서 행동식을 먹으며 쉬어갔습니다.


발 아래로 청평사와 소양호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몸을 타고 흘러내리던 땀줄기가 어느새 말라버립니다.

이 맛에 산행을 하는 것입니다.





젖먹던 힘까지 쏟아붓고 나서 천단에 올라섰습니다.


청평사에는 제석단과 천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재석천에 제사를 올리는 제석단은 문수원기와 시장경비가 없었던 경내의 큰 마당 중간에 있었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천단은 부용봉 아래 어딘가에 있었다고 합니다.






아름드리 소나무 고목을 지나 소요대에 올랐습니다.


대에서는 청평사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산기슭의 머리부가 잘려져 대가 된 것인데, 그 위에 4~5인이 앉을 만합니다.

대 아래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습니다.





저 멀리 배치고개를 사이에 두고 오봉산과 부용산은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두 산이 마치 새가 날개를 편 듯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빼어난 산세와 소양호의 아름다운 모습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합니다.






소요대부터 오봉산 정상까지는 비교적 완만합니다.


구멍바위의 구멍크기가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마지막 난관인 구멍바위를 지나서 오봉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5개의 암봉이 줄지어 있다고 해서 오봉산이라고 합니다.

아무도 없는 오봉산 정상에서 셀카모드로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정훈 셰르파가 탈진상태인 여자분의 손을 잡고 올라오셨습니다.



[사진제공 : 이정훈 셰르파]



오봉산~용화산 연계산행을 하지 않고

오봉산 산행만 하다보니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습니다.


오봉산 정상 소나무 그늘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모처럼 여유를 가지고 자연을 느끼면서 산행하고 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배후령으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배후령 하산길도 로프 암릉구간이 여러군데 있습니다.

진혼비와 청솔바위를 지나 완만한 능선을 타고 배후령으로 하산을 했습니다.






해발 600m 배후령 정상이고 북위 38선입니다.


배후령은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과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을 잇는 고개입니다.

국도 제46호선이 통과했지만 자동차의 사상사고가 잦아서 지금은 배후령터널을 건설했습니다.


배후령에서 여유로운 오봉산 산행을 마쳤습니다.

블랙야크 마운틴북 명산100 도전기 86, 공작산 산행



지난 4월25일 비슬산 산행이후

아주 오랜만에 블랙야크 마운틴북 명산100 도전을 하게되었습니다.





화창한 월요일 아침


남들은 월요병이다 뭐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없는 시간에

대전의 모 산악회 버스를 타고 유유히 홍천 공작산을 찾았습니다.





산악회가 안내한 공작산 산행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작고개를 출발하여 공작산, 수리봉, 약수봉, 수타계곡, 수타사, 공작산 생태숲 안내소로 이어지는 약 10.5km의 능선코스입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준비운동도 없이 서둘러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명산40 도전때는 다함께 준비운동도 했었는데...


공작고개 등산로 입구에는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의 참나무가 길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초입의 등산로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간간히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인공조림된 낙엽송이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간간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등산로를 걷다보면 오래 묵어 나이가 많은 참나무 고목을 만나기도 합니다.





안골 갈림길을 지나

공작릉 갈림길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제는 공작산까지 쉼없이 올라가려고 합니다.


저만의 방법이긴 하지만...

오르막에서 쉼없이 꾸준하면서도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산행의 피로를 줄일 수 있습니다.





암반 로프구간을 올라

조금만 더 걸어가면 공작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공작산은 높이 887m로 꼭대기에서부터 뻗어나간 능선이

마치 공작의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하여 공작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대전에서 함께온 도전단들이

삼삼오오 돌아가면서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저도 예외없이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블랙야크 마운틴북 명산100 도전 86번째는 공작산입니다.






북적거리는 공작산 정상에서 내려와

수박으로 수분보충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블랙야크 셰르파가 아직도 완주를 못했나요??" 라고 물으십니다.

저는 살짝 웃으며... "네... 아직 완주하지 못했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에는 명산100 완주를 하려고 목표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직업상 산은 거의 매일 가는데 명산100을 위한 인증은 쉽지 않더라고요.


올해만해도 예를 들어...

민주지산은 13회 이상...

덕룡산, 주작산은 7회 이상...

두륜산은 10회 이상...

달마산은 15회 이상...

다녔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륜산은 정작 명산100을 위한 인증은 지금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 듯 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요!!!





공작산에서 하산길에는

홍천군 일원이 희미하지만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봄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었을텐데...

노송사이의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봤습니다.





수리봉을 지나 산행이 진행되는 동안

잘생긴 제 얼굴을 찍어봤습니다.


역시... 멋집니다.ㅋㅋ





약수봉을 올라가는 임도에 도착을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임도를 따라 수타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고픈 심정이었습니다.





임도에서 약수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원주목계단을 설치하면서 등산로 정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약수봉으로 향하는 급경사지의 원주목계단에서

저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끼니를 거른것이...





죽을듯 말듯...

마지막 힘을 짜내서 약수봉에 올랐습니다.

발걸음이 천근같습니다.

 

그렇다고 발이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에너지바를 하나 먹고 다시 힘을 내어 수타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귕소 출렁다리 밑을 흐르는 수타계곡은 암반과 커다란 소,

울창한 수림으로 수량도 풍부하고 기암절벽이 어울려 장관을 이루는 비경지대로

여름철 계곡 피서지로 이름난 곳입니다.





시원스럽게 흐르는 수타계곡을 따라 걸으면서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 공작산 산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참나무 고목이 저에게 속삭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부단히 변화를 한단다.

변화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란다."

블랙야크 마운틴북 명산100 도전기 84, 덕룡산 산행

 

 

주작산과 덕룡산은 봉황이 강진만을 향해 날아오르는 형상입니다.

주작산이 봉황의 머리, 덕룡산 능선이 왼쪽 날개, 오소재로 이어진 암릉이 오른쪽 날개입니다.

 

 

 

 

이번 덕룡산의 산행은 강진의 소금강이라고 불리우는 소석문 협곡에서 시작하여

능선을 타고 동봉과 서봉, 초원능선을 지나 덕룡봉 정상에서 이정표를 따라 수양리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하였습니다.

 

 

 

 

주작산과 덕룡산은 해발 430~475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전국 100대 명산으로 꼽힐 정도로 웅장한 암릉을 자랑하고 있으며 남도의 공룡능선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기암괴석 사이로 진달래가 붉게 타오르고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날씨였습니다.

 

 

 

 

능선에 올라서니

저 멀리 석문산과 석문저수지를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산, 들, 바다가 둘러싼 강진의 덕룡산은

봄이 우리곁에 와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들판에는 보리가 쑥쑥 자라고 있으며

덕룡산에는 진달래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이제는 서서히 지고 있습니다.

 

 

 

 

 

 

덕룡산 능선은 대부분 시야가 활짝 열려 있어 어디에서나 다도해의 섬들이 아련하고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해남의 들녁과 크고작은 구릉지들이 광활한 남도특유의 풍광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동봉에 가까워질수록 덕룡산의 장쾌한 몸매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해남 두륜산과 이어져 있는 덕룡산은

높이래야 고작 400m를 가까스로 넘지만 산세만큼은 해발 1,000m 높이의 산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동봉에서 바라보는 서봉의 모습은 장엄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상인 동봉과 서봉, 쌍봉으로 이루어진 덕룡산은

웅장하면서도 창끝처럼 날카롭게 솟구친 암릉, 암릉과 암릉사이의 초원능선 등

능선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힘의 진수를 보여주는 산입니다.

 

 

 

 

덕룡산은 산이 반드시 높이에 따라

산세가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산입니다.

 

 

 

 

암릉과 육산의 배합이 적절하여

바위를 오르내리느라 많은 힘이 들었습니다.

 

 

 

 

암릉과 암릉 중간에는 길고 부드러운 능선이 있어

기암괴석의 화려한 향연을 즐기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쉬게 해주었습니다.

 

 

 

 

 덕룡의 날카로운 등허리가 주작의 부드러운 목선으로 변해

낮은 관목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노라면 마음은 여유자적 콧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어느새 나타난 제트기 3대가

하늘에 하얀 연기를 내뿜으면 덕룡봉 방향으로 사려졌습니다.

마치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천천히 능선을 타고 덕룡봉정상에 올라섰습니다.

 

 

 

 

해남으로 향하는 주작능선과

멀리 두륜산 위봉과 두륜산 가련봉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덕룡봉정상에서 임도가 있는 주작능선으로 계속 진행을 할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주작산자연휴양림으로 하산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였습니다.

 

덕룡~주작으로의 남도의 정취, 환상의 산악트래킹의

정점을 찍지 못한 체 주작산자연휴양림으로 하산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덕룡봉정상 인근의 수풀에서 활짝핀 구술봉이를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사진을 찍겠다고 한참이나 쪼그리고 앉아서 그곳에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다도해의 바람이 갑자기 매섭게 불어왔습니다.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땀줄기가 바람에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산길에는 하얀 벚꽃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지는 벚꽃이 아쉬워서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편백숲을 지나 도로로 내려왔습니다.

 

산어귀에 살포시 내려앉아 주작의 기운을

가득 담고 있는 주작산자연휴양림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블랙야크 마운틴북 명산100 도전기 83, 동악산(곡성) 산행

 

 

동악산(곡성) 자락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도선국사가 중건한 도림사가

천년세월의 고풍으로 찬란하고 굽이치는 계곡은 곳곳에 아기자기한 폭포와 담소를 빚어내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대전을 출발하여 2시간여만에

도림사오토캠핑리조트 주차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젠 완연한 봄입니다.

동악산(곡성)을 찾은 등산객들의 옷차림이 가벼워 보입니다.

 

 

 

 

이번 산행은 남서쪽 능선을 따라 깃대봉, 형제봉을 돌아

동악산에 오른 후 계곡을 거슬러 내려와 도림사로 돌아오는 순환코스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남서쪽 능선 초입 숲속에 들어서니

소나무와 리기다소나무의 침엽수림이 펼쳐집니다.

 

점점 녹음이 들고 있는 숲을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발을 옮겼습니다.

 

 

 

 

등산로 좌우에는 서둘러 핀 진달래 꽃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진달래꽃은 산 넘어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을 완연히 느낄 때 즈음에 피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몇일이 더 지나면

진분홍 꽃이 잎보다 먼저 가지마다 무리 지어 피는 모습을 구경할 것 같습니다.

 

 

 

 

진달래 만큼이나 눈에 많이 띄는 것이 돌탑입니다.

숲길 곳곳에 쌓여 있는 돌탑들이 마치 돌탑공원을 만들어 놓은 듯 서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 갈까요?

 

능선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는 곡성벌판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니되옵니다. 갈길이 멀어서 오래 쉬었다 갈 수는 없습니다.

 

 

 

 

동악산(곡성)은 높지 않은 산이지만

계곡, 릿지, 능선 등산 등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암벽위에 만들어진 계단이 지나간 세월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이 계단을 밟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순간 또한 지나간 세월이 되겠지요.

 

 

 

 

깃대봉, 동봉을 지난 후

주변의 기암괴석을 구경하면서

경사진 암반길과 숲길을 거침없이 올라섰습니다.

 

형제봉에 도착했습니다.

 

이쯤되니 얼굴에 땀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형제봉에서 멀리 왼쪽으로

동악산이 장쾌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형제봉은 동악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봉우리로

하늘로 우뚝 솟아 춤을 추는 듯한 동악의 기묘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형제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헬기장까지는 급경사지의 암반코스입니다.

자칫 잘못되면 위험할 수 있어 주의를 요하는 구간입니다.

 

얼마나 다리에 힘을 주고 내려왔던지

뒤꿈치쪽 양말에 구멍이 다 났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배넘어재까지의 능선 사면에는

야생화가 즐비하여 산행의 즐거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특히, 숲속의 나무그늘아래 사면에는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얼레지 잎이 누런 낙엽사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얼레지는 나무에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피었다가

잎이 나올 무렵에 열매를 맺고 죽기 때문에 봄을 알리는 식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레지, 노란제비꽃 등

야생화를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다보니 어느새 배넘어재에 도착했습니다.

 

 

 

 

배넘어재에서 동악산까지는 3.1km 남았습니다.

 

 

 

 

배넘어재에서 동악산으로 향하는 능선에 올라서서

주변을 내려다 보면 골짜기 골짜기에 녹음이 찾아들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멀리 보이는 저수지에는 물이 가득 고여 있습니다.

 

 

 

 

동악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저 멀리 보이는 암릉에 설치된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멀리서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 계단을 올라 갈때는 아찔한 느낌이 절로 들었습니다.

 

 

 

 

 

드디어 동악산(735m) 정상에 도착을 했습니다.

 

전남 곡성군 곡성읍에 우뚝 솟아 곡성벌판을 굽어보고 있는 동악산(735m)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율에 맞춰 춤을 추다 오늘날의 산세를 갖췄다는 전설로 유명한 산입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명산100' 인증타올을 들고 인증샷도 찍었습니다.

곡성벌판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하산길에 올랐습니다.

 

 

 

 

부드러운 흙을 밟으면서 급경사지를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거울처럼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도림사계곡을 향해 끊임없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도림사계곡은 동악산(곡성) 남쪽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것으로

동악계곡, 성출계곡과 더불어 아홉구비마다 펼쳐진 반석 위로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이 흐리고

 수맥이 연중 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송, 계곡, 폭포들이 어우러져 최고의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부터 풍류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으로

9개의 반석에는 선현들의 문구가 음각되어 있습니다.

 

계곡을 따라 도림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도림사는 신라 무열왕 7년(660년)에

원효대사가 화엄사로부터 이주하여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절 입구에는 허백련 화백이 쓴 도림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도선국사,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

도인이 숲같이 많이 모여 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전해집니다.

 

 

 

 

도림사 계곡에 발달해 있는 암반은

위로부터 제1반석 ~ 제9반석까지 있으며 그 길이는 약 1km에 이릅니다.

 

특히, 오곡반석의 요요대 아래에는 넓다란 담이 있어

감상과 물놀이에 좋으며 계곡물의 중간 중간에는 용소, 소금장이소 등이 있습니다.

 

 

 

 

도림사계곡에 발을 담그고 잠시 쉬었습니다.

산행의 피로를 한 순간에 잊게 만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도림사오토캠핑리조트로 향했습니다.

도림사 문화재 관람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1,500원, 어린이 1,000원 입니다.

 

능선의 솔숲을 오르고, 급경사지의 암벽을 타고,

부드러운 사면의 야생화도 구경하고, 딱딱한 너덜지대를 지나 도림사 계곡을 건넌 후

이 모든 즐거움을 한 곳에서 만끽할 수 있는 동악산(곡성) 산행이 끝이 났습니다.

겨울 동강을 가다.

 

 

겨울 동강을 구경하려고

이른 아침 산악회 버스를 타고 백운산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이 24절기 중 첫번째 절기인 입춘(立春)인줄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겨울 동강을 보려고 봄에 출발을 한 것입니다.

 

 

 

 

대전에서 3시간 30분이 걸려 점재마을에 도착을 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사람들이 무서웠던 걸까요?

슬슬 꽁무니를 빼면서도 연신 신기한 듯 쳐다보는 강아지들이 매우 깜찍하고 귀였습니다.

 

 

 

 

아직 동강의 얼음이 다 녹지 않았는데

조양강은 영월읍 동쪽으로 65km를 흘러서 동강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아직은 겨울이지만 봄 날씨처럼 포근한 날에

급경사지의 백운산 등산로를 힘겹게 올라갔습니다.

 

 

 

 

백운산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등산로에서 바라보는 동강은

물이 불어 홍수가 된다고 해도 동강의 물을 나무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칠족령의 병풍같은 암벽들이 동강의 세월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광풍이 거세게 불어도 온 산야의 초목을 다 꺾을 수 없다고 말하는 듯 보입니다.

 

 

 

 

비교적 짧은 산행끝에 백운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 위에 흰 구름이 늘 끼어 있어 백운산이라 불리웠다고 합니다만

봄에 찾은 오늘의 겨울 백운산과 동강은 희뿌연 미세먼지만이 가득했습니다.

 

 

 

 

아름다운 칼날능선을 내려오다 보면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벽의 낭떠러지 아래로 동강이 흐르기에

밧줄과 함께 '추락위험'이라는 표지판이 등산객들의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저 멀리 동강전망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진 길이 보입니다.

꾸불꾸불한 길이 마치 우리네 인생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봄에 겨울 동강을 찾아왔더니

내 짧은 인생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도 생겼습니다.

 

 

 

 

백운산을 올라가는 시간보다 내려오는 시간이 더 걸리고

칼날같은 바위가 솟아 있고 여섯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하산을 할 수 있습니다.

 

칠족령에서 제장마을로 바로 가지 않고 칠족령전망대로 우회하기로 했습니다.

 

 

 

 

칠족령의 아름다움을 보고 나면 힘들었던 산행의 고통은 말끔히 치유되기 때문입니다.

 

 

 

 

칠족령은 옛날 옻칠을 하던 선비집 개가 발에 옻 칠갑을 하고 도망가,

그 자국을 따라 가보니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의 풍경이 장관이었다는 것에 유래되어 이름 붙여졌다고 합니다.

 

 

 

 

개보다 못한 사람이 안 되려고

봄이 찾아온 칠족령 전망대에서 막걸리 한잔 하면서 망중한을 가져봤습니다.

 

제비가 날아오니 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봄이기 때문에 제비가 날아오는 것이다.

 

 

 

 

 

떠나기 싫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칠족령 전망대로 뒤로하고 제장마을로 하산을 했습니다.

 

 

 

 

동강 중심부에 높게 솟아 있는

백운산을 굽이돌아 동강을 제대로 관찰했습니다.

 

뒤풀이로

따뜻한 어묵 국물에 막걸리 한 대접하고

산악회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얼마 후... 빨간 신호등이 울렸습니다.

다들 이미 많은 경험들이 있으셔서 알겠지만 화장실이 급해진 겁니다.

참다참다... 1시간이 지난서 겨우 휴게소에 들려 시원스럽게 볼 일을 봤습니다.

 

위 두 사진을 보면 딱 아시겠죠??

바코드의 숲을 걷다.

 

 

주말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고독이라는 벗을 깊이 사귀는 일이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대전을 출발한 나는

오전 10시쯤 문경새재 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한적한 주차장에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문경새재 도립공원 안내도를 살펴봤다.

뭐... 여행은 언제나 틈을 만나러 다닌다는 평소 신념처럼

아무생각 없이 이곳에 왔기에 산행코스를 우선 정해야만 했다.

 

 

 

 

주차장-영남제1관문(주흘관)-여궁폭포-혜국사-대궐터-주봉-영봉-꽃밭서들-영남제2관문(조곡관)-영남제1관문(주흘관)-주차장

으로의 산행코스를 정하고 은행나무 사이로 난 문경새재길을 따라 영남제1관문(주흘관)으로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의 고개', '새로 만든 고개' 등의 뜻이 담겨 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저멀리 석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설관 하였다는 영남 제1관 또는 주흘관이다.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로 개울물을 흘러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주흘관을 지나 오른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계곡을 따라 여궁폭포로 향하는 숲길은 바코드처럼 쭉 뻗은 전나무가 등산객들을 인도하고 있다.

 

걸어가고 있는 등산객들과 전나무 숲길이 만들어낸 여백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고독이라는 벗과 함께 걷다보니 눈깜짝할 사이에 여궁폭포에 도착했다.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으로 물줄기조차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메말랐는데... 어떻게 물줄기가... 자연의 신비로움에 다시한번 숙연해진다.

 

 

 

 

높이 20m의 이 장엄한 폭포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 노송의 멋, 기암절벽의 풍치 등과 조화를 이루어 그 경관이 수려하다.

 옛날 7선녀가 구름을 타고와 여기서 목욕을 했다는 곳으로 밑에서 쳐다보면 마치 형상이 여인의 하반신과 같다하여 여궁 또는 여심폭포라 불려지고 있다.

 

 

 

 

여궁폭포를 지나서 주흘산 기슭에 위치한 혜국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등산객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 경사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혜국사를 지나 아름드리 소나무숲 사이를 따라 오르막을 올라가고 있다.

 

 

 

 

숲길을 걸을때 함부로 밟지 마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임을 명심하면서 걸어라.

 

 

 

 

혜국사에서 약 1.5㎞ 앞서가는 등산객들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또 걷다보면

좁은 소로 길이 끝나고 확 트이는 넓은 구릉지가 나오는데 지금은 잡풀과 잡목으로 뒤덮혀 있지만 예전에는 대궐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대궐터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행재소(대궐)를 세운 터라는데 이곳에는 샘이 있다.

 

 

 

 

대궐터부터 주봉 하단능선까지는 데크계단을 따라 가야한다.

주흘산에서 일명 죽음의 구간이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혹자들은 900여개, 1,200여개라고 말을 하지만 계단의 수를 세는 것은 무의미하다.

처음엔 굳은 각오로 계단수를 세면서 올라가지만 곧 숨이 차오르고 지치기 시작하면 모든것을 한순간에 잊기 때문이다.

 

 

 

 

죽음의 구간인 데크계단을 쉼없이 올라 주봉 바로 아래에 도착을 했다.

짙은 안개와 간간히 흩날리는 진눈개비로 인해 주변풍광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문경의 진산(鎭山)이기도 한 주흘산은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한자 뜻 그대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다.

 

한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中嶽)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 왔다.

 

 

 

 

 

주봉을 지나 영봉까지 능선을 타고 한걸음에 왔다.

 

주흘산 영봉은 높이 1,106m. 소백산맥에 솟아 있다.

서쪽으로 조령천을 사이에 두고 조령산(1,017m)과 마주보며, 포암산(962m)·신선봉(967m)·대미산(1,115m) 등과 함께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주차장에서 영봉까지 2시간밖에 안 걸렸다.

영봉에서 부봉을 거쳐 영남제2관문(조곡관)으로 하산하려 했으나 안개가 더욱 짙어져서 원래 계획대로 꽃밭서덜로 향했다.

 

 

 

 

하산길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식사로 컵라면을 먹었다.

찬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따뜻한 국물이 나도모르게 생각난 것이다.

 

따뜻한 라면국물에 밥도 말아먹고 후식으로 귤과 양갱도 먹었다.

배가 든든하니 발걸음이 한결 더 가벼웠다.

 

 

 

 

산수 수려한 주흘산 깊은 조곡계곡을 따라 하산길이 이어졌다.

 

 

 

 

네 눈은 밝은 해를 알지 못하고,

네 혓바닥은 의로운 말을 하지 못하는구나

눈 없고, 혀 없구나

인간이거든, 눈떠 밝은 세상을 보고

입을 열어 새처럼 노래하라

 

 

 

 

산허리를 돌무더기와 긴 돌로 세워 놓고 그 위에 작고 넓적한 돌을 얹어 마치 장승처럼 세운 곳이 나타났다.

 

 

 

 

이곳이 꽃밭서들인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소원성취를 위하여 이렇게 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이 여기 와서 빌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꽃밭서들을 지나 계곡을 따라 하산하니 영남제2관문(조곡관)이 나왔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다.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으로

삼국시대에 축성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일명 조곡관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문경새재를 따라 걸어가면 된다.

 

문경새재하면 박달나무가 군생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깊은 산에는 박달나무가 야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새재의 한양 나들이 길가에 자라서 옛 선비의 정취를 돋우웠던 나무이다.

 

 

 

 

평탄한 흙길인 문경새재길을 따라 걷다보니

조곡관과 주흘관의 중간지점인 용연위에 있는 교귀정에 도착했다.

 

교귀정은 새롭게 도임하는 신임감사와

업무를 마치고 이임하여 돌아가는 감사가 관인을 인계인수 하던 곳으로 용추폭포 옆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이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죽령을 지나 대미산, 포암산,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 청화산, 속리산으로 이어져 소백산맥을 이루어 나간다.

 

이곳이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길[嶺南大路]이었던 곳이며 옛날의 유지(遺址)로는 원터, 교귀정, 봉수터, 성터, 대궐터 등이 잔존하고 있다.

조령로의 번성을 말해 주듯 조령로변의 마애비는 관찰사, 현감 등의 공적을 새겨 놓았으며, 주흘관 뒤에는 선정비, 불망비, 송덕비가 비군(碑群)을 이루고 있다.

 

 

 

 

주흘산 조령관문 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어느덧 다시 영남제1관문(주흘관)에 다시 도착을 했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고 한다.

 

 

 

 

이번 주흘산 산행이 마무리 되는 시점이다.

 

 

 

 

눈 가고 바람이 왔다.

늘 그렇듯 풍경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풍경은 옛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늘 이 순간을 살지.

거친 바람 마다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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