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새벽 4.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람도 울리기 전인데 눈이 떠진 것이다. 열린 창문의 방충망 뒤편은 여전히 어두웠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처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비였다. 두두두두. 빗소리는 커다란 소음을 일으키며 대야에 떨어졌다. 첨벙첨벙. 순식간에 그 소리가 변했다. 벌써 대야에 물이 차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 고추에 물은 안 줘도 되겠네.’

도시는 비에 흠뻑 젖었다.

비가 내리면서 어둠살이 깔린 거리엔 왠지 모를 우울함이 바람과 함께 나부끼기 시작했다. 아침이지만 거리의 가로등과 상점들은 다양한 색깔의 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는 몸짓을 시작했다. 그들만의 빛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빛의 현란함 속에서도 도시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엔 우산을 받쳐 든 사람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7월, 어느 비오는 날 아침

 

폭우 속에 나와 K가 있었다.

내가 커피를 사고 K가 물과 담배를 샀다. 우리들의 루틴은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루틴을 마치자 나와 K는 폭우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비는 액체이지만 차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고체처럼 선명하게 앞 유리에 부딪혔다. 유성을 출발하여 진천터널을 지날 때쯤에서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무겁게 깔린 먹구름은 흰 구름으로 대체되었다.

대관령면에 도착했다.

올해만 4번째 방문이고 평소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3월과 5월에는 하루, 6월에는 3일을 체류했다. 7월에는 5일을 체류할 예정이었지만 비가 와서 4일째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3월은 폭설이 내렸고 5월은 비가 왔고 6월과 7월은 흐렸다. 6월의 낮은 서늘했고 7월의 낮은 해발고도만큼 해가 비치는 곳만 뜨거웠다.

다른 지역보다 여름이 시원하다는 것은 대관령면에 오고 나서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3월, 폭설
3월, 횡계리 배추밭
6월, 능경봉 아래 전원단지
7월,횡계리 배추밭

 

 

[훑어보기]

 

1. 대관령면

대관령면은 대부분이 산악지대이다.

강원도 평창군의 북쪽에 위치하며 강릉시에 인접하고 있다. 북쪽에는 황병산, 동쪽에는 백두대간 선자령 · 능경봉 · 고루포기산이 있고, 남쪽에는 발왕산이 있고 서쪽에는 매산 · 장군바위산이 둘러싸고 있다. 높은 고산으로 둘러싸인 고위 평탄 분지 같은 모습이다. 한우연구소, 가금연구소, 양떼목장 등 이국적 풍광의 초원이 대관령면 전역에 산재해 있다.

기후는 변화무쌍하다.

해가 뜨는 듯하다가 안개 같은 구름이 순식간에 뒤덮어 버린다.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다. 여름 기온은 평지보다 4정도 낮다.

 

지르메마을에서 바라본 능경봉과 고루포기산
대관령면
알펜시아 스키점프대

 

2. 대관령

대관령은 큰 고개다.

높은 고개를 뜻하는 관()에 령()까지 붙었으니 높고 험준한 고개였음을 알 수 있다. 대관령은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관문으로 평창과 강릉의 경계에 있다.

4번 대관령에 왔다.

내가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강릉 방향, 위 주차장)을 찾은 것은 6월에 한 번, 7월에 세 번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변화무쌍한 기후에 놀라곤 했다. 뜨겁게 햇볕이 내리쬐다가도 순식간에 구름에 뒤덮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시내는 맑은데 이곳은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구름이 낮게 드리워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주차장은 드넓었다.

현재 이곳은 신재생에너지전시관, 평창대관령수소충전소, 대관령숲길안내센터, 대관령유아숲체험관, 공중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6월말에서 9월말까지를 제외하고는 드넓은 주차장은 한산하다.

서늘함이 느껴졌다.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낮다고 내 마음마저 서늘해지진 않는다. 이곳은 6월 말부터 캠핑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허가된 야영장이 아니다. ‘야영 · 취사 · 쓰레기 투기 금지라는 현수막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질서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음식물을 먹고 있었다.

주차공간이 없었다.

백두대간이나 대관령 숲길을 찾아온 사람들은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캠핑카, 텐트 등 주차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차량이 70대가 넘었다. 이런 행태는 야간이나 주말에는 100대가 훌쩍 넘는다고 한다. 대부분은 한달이상 장박을 한다고 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취사의 위험성, 소음, 쓰레기 투기, 화장실 사용문제 등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다. 불법을 자행하는 사람들이 이런 불편을 호소하며 오히려 악성 민원을 넣고 있는 게 현실이다.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라고 생각된다.

주차료를 받는 휴게소가 있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횡계 방향, 아래 주차장)은 올 초부터 주차료를 받기 시작했다. 최근에 주차료 받는 희한한 휴게소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중앙일보 박진호 기자(7/17, 7/19).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다. 단지, 아래 주차장처럼 위 주차장도 주차요금을 받는다면 캠핑족의 이런 행태는 확 줄었을 것이다.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원만한 해결책을 관계기관에서 하루빨리 찾길 바랄 뿐이다.

 

대관령
6월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 ( 강릉 방향 ,  위 주차장 )
7월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 ( 강릉 방향 ,  위 주차장 )
7월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 ( 강릉 방향 ,  위 주차장 )
7월,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 ( 횡계 방향 ,  아래 주차장 )

 

3. 대관령 국가숲길

대관령에는 국가숲길이 있다.

국가숲길은 산림·생태적,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아 체계적인 운영·관리가 필요한 숲길을 정부에서 지정·고시하고 관리하는 정책이다. 그간 최초 지정된 지리산둘레길, 백두대간트레일, DMZ편치볼둘레길, 대관령숲길과 추가 지정된 내포문화숲길, 울진금강소나무숲길 총 6개소가 국가숲길로 지정되었다.

대관령 국가숲길은 12개 노선으로 약 103km이다.

숲길은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성산면에 걸쳐 있다. 개별노선으로 관리되던 숲길을 대관령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4개의 주제 순환 숲길(목장코스, 소나무코스, 옛길코스, 구름코스)로 새롭게 구획했다.

 

대관령숲 안내도
대관령 국가숲길 목장코스
올림픽트래일

 

4. 국민의 숲

국민의 숲은 인공조림지다.

대관령 국가숲길 중 개별 숲길에 포함된 국민의 숲은 전나무, 낙엽송(일본잎갈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독일가문비 등이 조림되어 있다. 숲 옆에는 양묘장이 있다. 침엽수가 주종을 이뤄 강력한 살균물질인 피톤치드를 즐기며 걷기에 편안한 숲길이다.

야생화도 다양하다.

은대난초, 동자꽃, 좁쌀풀, 쥐오줌풀, 노루오줌, 은방울꽃, 개쉬땅나무꽃, 고광나무꽃, 산사나무 열매 등 잘 정리된 숲길 주변으로 계절에 따라 야생화가 피고 진다.

숲에 벌레가 없다.

7월 한낮, 무더위에도 숲은 시원하며 모기 등 벌레가 거의 없었다. 국가대표 등 운동선수들의 훈련장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국미의 숲 1
국미의 숲 2
국미의 숲 3
동자꽃

 

5. 등산안내

선자령

백두대간 중심부에 있는 봉우리로 해발고도는 1,157m이다. 강릉시가지와 푸른 동해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초원 위의 풍력발전단지도 장관이다.

능경봉

백두대간에 있는 고산으로 해발고도는 1,123m이다.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겨울에는 무릎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는 곳이다.

고루포기산

백두대간에 있는 고산으로 해발고도는 1,238m이다. 울창한 숲, 초원지대, 야생화가 조화를 이루어 풍경이 아름답다.

발왕산

대관령면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우뚝 솟아 있고 해발고도는 1,458m이다. 사계절 휴양리조트인 용평리조트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다. 정상에는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의 수백년 묵은 주목 군락과 철쭉이 장관을 이루는 산이다.

장군바위산

칼산, 투구봉과 함께 횡계의 고원지대를 지탱하면서 명성을 지키고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140m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신선바위, 코끼리바위 등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특히, 맑은 물이 흐르는 백일평 계곡을 끼고 있어 청청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칼산

횡계리를 기점으로 하여 차항리와 용산리 사이의 산으로 해발고도는 941m이다. 참나무숲 사이로 스키점프장과 알펜시아스키장이 보이고 정상에서는 이국적인 풍력발전소와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대관령면 등산 안내도
발왕산 엄홍길 숲길 입구
능경봉 등산로 입구

 

이년 전 사월 어느 봄날, 오래 묵은 빚의 이자라도 갚는 심정으로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나들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는커녕 늘 마음으로는 죄인이다.

유성 나들목을 지나 자연스럽게 우회전을 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대전 IC에서 국도로 길을 잡았다. 왜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흑석리를 지나고 우명동을 지나면서 길은 논산 벌곡으로 접어든다.

"진산 가려고?“

"어떻게 허다 보닝께 이리루 왔구먼!“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자주 다니던 드라이브 코스였지만 꼭 우연만은 아니었다. 왠지 모를 끌림으로 차는 자꾸만 고향 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매년 봄날 하루쯤은 시간을 내어, 들로 혹은 산으로 쏘다니며 나물 사냥을 하곤 했었다. 국수딩이든 벌금자리든 냉이든 달래든 돌미나리든 돌나물이든 취나물이든 두릅순이든 다래순이든 때론 산부추나 도라지나, 우리에겐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루 종일 함께하며 웃고 떠들고 힘들다고 투정하다가, 저녁 무렵 나름대로 어렵게 얻은 노획물을 풀어놓고 소주 한잔을 기울이면 족할 일이었다.

 

덕곡리 도산리를 지나고, 행정리 두지리를 지나 묵산리에 접어든다. 접바위 지나 을음실, 그래 고향이다. 그렇게 이년 전 고향 땅을 걸음 하였다.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을음실, 깊은 내력은 알 수 없으나 뫼 산자가 셋이요, 새가 우는 마을이란 이름을 가진 것이 내 고향임은 변함이 없다.

백마가 끄는 수레가 개울을 건너는 날, 급히 몸을 피한 물비늘을 찬란하게 앉고 도는 햇살의 눈 부심이 사는 땅. 더위에 지친 각다귀들이 잠시 쉬는 밤, 소금밭처럼 하얀 별 무리를 이기겠다고 그 여린 빛을 뽐내던 반딧불이가 살던 땅. 그런 삶터가 을음실이다.

을음실은 그런 터였다. 진산 읍내에서 문우고개를 넘어서고 심방골을 지나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옥순이가 나온다. 신작로에서 보면 왼쪽의 산기슭이 옥순이다. 어린 기억으로 보면 그곳에서 고향의 삶터가 시작된다.

 

옥순이에는 구백 평쯤 되는 밭이 있었다. 어린 시절 동생을 업고 엄니 젖을 먹이러 다니던 나름 고단했던 기억, 어린 아들의 넉넉한 시험성적에 고구마 가득한 지게를 성큼성큼 지고 가시던 아버지의 첫 웃음 짓던 기억 그리고 늦은 오후 무렵 비탈밭에 지친 엄니가 풀린 다리를 이기지 못해 밭 아래로 구르셨던 전설 같은 기억들이 옥순이의 편린들이다.

옥순이를 지나면 쪽다리가 나온다. 미루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던 쪽다리는 마음에 터다. 어느 봄 늦게 집에 오던 날, 미루나무는 그 큰 몸에 하얀 옷을 걸치고 저 멀리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순간 뒷머리가 쭈삣섰다. 분명 귀신이었다. 허나 망설임도 잠시 이내 씩씩한 걸음을 내디뎠다. 쪽다리 양짓녘에 할아버님께서 누워 계심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쪽다리를 지나 멍미를 돌아서면 마을이 나왔다. 그래 을음실이다. 마을은 겨우 몇십 평쯤 되는 산 아래 여기저기에 집터를 꾸미고 살았다. 몇백 평쯤 되는 농토를 위해 누구의 삶터든 소박한 그런 마을이었다.

아랫말과 윗말을 지나면 옹달샘의 터 얼깅이가 나온다. 그곳에서부터 다시 농토가 시작된다. 바로 뒷짐메다. 제법 번번한 모양새를 갖춘 뒷짐메는 을음실의 곡창지대다. 그곳에 팔백 평쯤 되는 논이 있었다. 어린 나에겐 뒷짐메도 옥순이 만큼이나 멀고 고된 걸음으로만 기억된다.

 

도대체 세월은 무슨 마법을 부렸을까! 옥순이 비탈밭에서 다리가 풀려 밭 아래로 구르셨던 엄니의 아들은 반백의 늙은 군인이 되고, 그의 아들은 오늘 논산훈련소로 떠났다. 아무리 오래전 기억이라고 치도곤을 놓아도 엊그제의 일처럼 고향의 기억이 솟구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삶은 김과 짧음으로, 거침과 부드러움으로 그리고 찬란함과 시린 볕으로 서로 그렇게 순치하며 사는 것인가 보다.

 

그해 뒷짐메 끄트머리 골짜기인 채도골에 들었다. 입구에는 미나리농장이라고 쓰인 정갈한 표지판이 있었다. 평소 나물을 좋아하던 차여서 망설임의 시간도 없이 채도골로 들게 된 것이다. 얼마쯤을 올라갔을까, 아내가 소리친다.

"저게 무슨 꽃이에요?“

"뭔 꽃, 나는 못 봤는디!“

"차 좀 뒤로 빼봐요, 이쁜 꽃이 있었단 말이에요.“

"이쁜 꽃은 무슨" 기어를 넣고 천천히 후진하였다.

"저 꽃, 말이에요, 저 꽃 이름이 뭐예요?“

'! 얼레지!‘

그렇게 이년 전 고향 땅에서 오십 수년 만에 얼레지를 보았다. 늘 지리산에서만 강원도에서만 볼 줄 알았던 얼레지를 채도골에서 본 것이다.

작년에도 채도골에 걸음을 하였으나, 늦은 걸음을 탓하며 얼레지는 꽃을 보여주지 않았다. 올해는 이미 너무 늦은 줄 알면서도 자꾸만 고향 땅이 나를 당긴다. 아니 내 마음이 이미 줄달음을 치는 걸 거다. 그렇게 조만간 걸음 해야겠다. 늦은 얼레지 핑계 삼아 채도골에 들어 짙푸른 고향의 미나리 한 아름 안고 실컷 울어봐야겠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기린에서 길을 들자면 방동리도 멀다. 도시의 삶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더 가야 방동리가 나오나? 할 것이다.

진동리는 그다음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동네가 진동리다. 초입에 들어서 한참을 가다 보면 아침가리계곡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온다. 여기인가 싶지만 어림도 없다. 오늘 가야 할 지표는 설피 마을, 부지런히 페달을 가속한다. 마치 군 경계 하나쯤을 넘었을까 하는 지루함이 몰려들 때쯤 조침령터널을 마주하며 좌회전을 한다. 설피 마을의 초입이다. 그렇게 깊은 골을 품고 사는 마을이 진동리다.

 

진동호를 돌고 돌아 말안장으로 훅 들어선다. 백두대간이다. 오늘은 단목령으로 길을 잡는다. 이렇게 부드럽고 두터운 대간이 있을까! 늘 대간은 가파르고 곧추서고 칼 능선으로 길잡이 노릇을 한 터였다. 너무 낯선 두터운 대간을 걷는다. 우뚝 선 나무들도 있지만 역시 대간이다. 제멋에 겨운 군상들이 대간을 호위한다. 제멋대로 생긴 그들은 나름, 모두가 백 년의 세월 동안 백두대간을 지키는 장군들이다.

대간은 이제 막 첫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다. 박새, 한계령풀, 노랑제비꽃 그리고 얼레지. 사이사이에 노루귀도 얼굴을 내민다. 아직은 이른 봄을 준비하는 대간을 따라 단목령에 들었다. 훅 들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나선 길에 두터움으로 다가오는 대간을 벅차게 안고 도는 하루가 간다. 대간의 오른쪽으로 보이는 양양의 바다는 덤이다.

 

다음날 다시 들어선 진동호의 산허리, 오늘은 조침령이다. 역시나 두텁고 평활한 산맥이 길라잡이로 나선다. 1000고지에서 삶터를 본다. 얼마쯤인가 걸음을 하였다. 대간을 호위하는 군상들은 제모습을 감추고, 겨우 살아낸 못생긴 나무들이 열병식을 한다. 그들의 삶터는 틈이 없다. 얽히고설키고, 내가 살아있음을 선포해야 하는 그들은 만 가지 모양으로 대간을 지키고 있다. 그렇게 허리를 감고 도는 바람을 벗으로 삼아, 아직은 서늘한 대간은 꿈을 꾼다. 왼쪽으로 보이는 양양의 바다는 오늘도 덤이다.

 

일주일 후에 다시 든 진동리, 오늘은 곰배령이다. 모두 '천상의 화원'이란다. 사실은 늘 꿈꾸었다. 곰배령, 곰배령, 곰배령. 탐방센터를 지나 계곡을 따라 길을 나선다. 초입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속새, 얼레지, 바람꽃, 투구꽃, 개별꽃, 애기괭이눈, 한계령풀 그리고 모데미풀. 사실을 고백하자면 알 수 없어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수백 가지다. 아직은 봄의 초입인 진동리에는 준비하는 봄의 무게가 더 깊다. 알 수 없어 부르지 못하는 그대들의 품에, 미안하지만 오늘도 걸음을 한다.

곰배령을 지나 능선에 든다. 고운 생명의 움틈을 발아래 두고 아직은 시린 거친 걸음을 걷는다. 머리가 시릴 만큼 진동리 능선의 4월의 바람은 거칠다. 얼마를 걸었을까, 저만큼에서 설악산 대청봉이 사람 좋은 웃음으로 고개를 내민다. '그래 설악산이구나, 네가 설악인 거야!‘

오랜만에 방동리 너머 진동리의 삶을 산다. 거친 산들의 아래에, 그렇지만 초라하지 않게 두터운 삶을 살아내는 진동리. 백두대간도 진동리를 지날 때면 거친 걸음을 멈추고 따스하고 두터운 품에 잠시 숨을 쉰다. 그 품속에서 우리는 함께 숨을 쉰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태백산 산행 - 화방재에서 당골까지



영덕에서 오후 늦게 태백으로 왔다.


부랴부랴 저녁을 먹고 황지연못을 찾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일찍 다시한번 황지연못을 찾았다.






황지연못은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이다.


태백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느 황지연못은

솟아나는 물이 드넓은 영남평야를 도도히 흘러가게 된다.






황지연못은 둘레가 100m인

상지와 중지, 하지로 구분된다.


이곳에 살던 황부자가 시주를 요하는 노승에게

시주 대신 두엄을 퍼 주어 이에 천지가 진동하면서

집터가 연못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태백산 산행은 화방재에서 시작하여

장군봉, 천제단, 부쇠봉, 문수봉, 소문수봉, 석탄박물관

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총거리 14..71km이다.







태백산은 암벽이 적고 경사가 완만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봄이면 산철쭉, 진달래의 군락지와 정상에는 고산식물이 자생한다.
여름에는 울창한 수목과 차고 깨끗한 계곡물이 한여름 더위를 잊기에 충분하다.

가을은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수놓는다.
겨울은 흰 눈으로 뒤덮힌 주목군락의 설경을 보여준다.






블랙야크 명산40 도전이

2013년 1월 3일 태백산에서 시작되었다.


나도 그당시에 그곳에 있었다.


태백산의 다양한 길 중에서

가고자 하는 길을 각자가 선택한 것이다.


장군봉과 천제단을 오르기전에

유일사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을 살아 기본 2천년을 산다는

주목과 그 고사목들






겨울이었다면
 흰눈으로 뒤덮힌 주목군락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 가을이라도

그 주목군락의 웅장한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발 1,567m 장군봉에 도착했다.

태백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이지만 천제단에 그 명성을 빼앗겨버렸다.


장군봉에는 장군단이 있다.

장군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한 3기의 천제단 중에 하나이다.
둘레 20m, 높이 2m의 타원형으로 천왕단에 비해 조금 작으며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한배검은 '단군'의 높임말이라고 한다.

천제단 중앙의 한배검 비석 앞에서 약식으로 제를 지냈다.


천제단은 규모 면에서 여느 단과 달리 월등히 크다.






만약 지금이 겨울이었다면

주목에 핀 눈꽃이 감탄사를 자아내게 할 것이다.


눈꽃이 가장 화려한 곳은

정상 일원과 북쪽 고사목 지대와 부쇠봉~문수봉 구간이다.





태백산 문수봉 인근인

경북 봉화군 서포면 대현리 일대 8~9부 능선은

움막 등의 형태를 갖춘 무속인들의 기도처가 집중되어 있었다.


문수봉 주위로

곳곳에 암석이 노출되어 있고 깊은 계곡들이 있다.


문수봉에서 바라본

함백산 일대의 운무가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태백산은 지난해 8월 22일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문수봉~당골광장을 연결하는 등산로는

등산객들이 다니기엔  훼손이 심각하여 위험한 곳이 여러군데 있다.


태백산 등산로의 관리가 시급한 실정이다.

블랙야크 마운틴북 명산100 도전기 97, 함백산 산행



작년 12월 축령산 산행에 이어

오랜만에 명산100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산행을 아예 안 한것은 아니지만

4좌 남겨둔 명산100 완주를 위해서 오늘 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가는날이 장날이란 표현이 딱 맞습니다.


평소 혼잡함때문에 주말산행을 거의 하지 않는데

제가 함백산을 찾은 오늘이 바로 일요일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항재에 도착한 버스들은

셀수도 없을 정도의 등산객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이젠 착용을 끝으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잠시만 멈춰있어도 곧 등산객들의 틈바구니속에 갖히게 됩니다.


춥지도 않고 화창한 일요일입니다.


많은 눈이 올거라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눈은 내릴 기미가 없고 등산로에 쌓인 눈만이 나를 반겨주고 있습니다.





한명, 두명....

서른명... 마흔명...

아이고 백명도 넘었는데...


발걸음이 쉴새없이 점점 빨라졌지만 그 발걸음이 무색하게

언제 산행을 시작했는지 모르는 한무리의 등산객들은 가는 곳마다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하늘에 제를 지내는 함백산 신원단을 지나

함백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급경사지의 등산로에도

이미 수없이 많은 등산객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등산로를 조금 벗어나서

경사진 숲을 힘차게 오른 후에 함백산 능선에 올랐습니다.





능선에서 우뚝커니 서서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했습니다.


마치 하얀 구름속에서 걸어 나온듯

사람들의 행렬은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암반위로 우뚝 솟아있는 함백산 정상은

협소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몰려 있을 수 없습니다.


인증사진을 먼저 찍기 위해서 무질서하게 사투를 버리고 있는 등산객과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파속에서 나는 과연 인증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정상 주변에서 잠시 기회를 엿보다

찰나의 순간의 이용하여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함백산 정상 표지석의 '함'자만 겨우 보였습니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디카를 이용하여 셀카모드로 잽싸게 인증사진을 다시 찍었습니다.

참으로 숨가뿐 순간이었습니다.





서두른 보람은 있습니다.


등산객들의 인파에 둘러싸이지 않았다는 것과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절약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늦게 시작한 산행임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먹기엔 너무 이른 시간입니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은대봉으로 향했습니다.


내 평소 산행속도를 보아

은대봉에서 점심을 먹으면 될 거라 판단했습니다.





단단한 속살은 고사가 되어도

살아있는 속살보다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흰 두루마기를 걸친 함백산 자락에 서있는

주목나무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합니다.





중함백을 지나고... 눈쌓인 백두대간 능선을

먼저 지나간 등산객들의 흔적들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적조암 갈림길에서 한 무리의 등산객들을 지나치니

그제서야 조용하게 눈쌓인 숲길을 혼자서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은대봉에 도착을 했습니다.


은대봉 넓은 헬기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차와 함께 간단히 행동식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함백산 정상에서 은대봉까지 오는 동안

많은 등산객들이 버젓이 취사 하고 있는 모습을 여러번 봤습니다.


산을 좋아해서 산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눈치를 보거나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않고

보란듯이 뻔뻔하게 취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씁쓸함을 느끼며 두문동재로 하산을 했습니다.


등산객들의 인파속을 뚫고

만항재에서 두문동재까지 2시간 30분도 안 걸려서 도착을 한 것입니다.

두문동재삼거리까지 눈으로 통제된 도로를 걸었습니다.


블랙야크 명산100 도전자분들은 산에서 취사를 안 하시겠죠??

민주지산 산행 - 치유의 길이 healer다.

 

 

다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다 이루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아직 모자라고 이루고자 하는 것이 많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

내가 먹는 밥,

내가 얻은 사랑에 감사하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온다.

 

- 이외수,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중에서 -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도전해 보고 싶어 하는

각호산에서 삼도봉까지 4개 봉우리를 지나는 민주지산 산행의 시발점인 도마령에 지금 내가 서 있습니다.

 

비로 인해 만들어진 안개, 불당골 그리고 구불구불한 도로가 새삼 감성을 자극하게 만드는 아침입니다.

 

 

 

 

도마령은 해발고도 800m입니다.

 

산림기술자로서의 내가 하는 일에 감사하며

민주지산 명품숲길 조성에 관여하고 있는 분들과 함께

도마령에서 목재데크 계단을 올라가는 것으로 민주지산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민주지산 명품숲길 조성을 위해

현황조사만 3일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4월 말인 민주지산은 이미 녹음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이 활엽수림이지만 능선 등산로 주변 일부에서만 침엽수인 소나무림이 있습니다.

 

 

 

 

가뿐숨을 내쉬면서 각호산 능선에 올라섰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밀려오고 있는 녹음의 잔잔한 파도를 보게되었습니다.

 

 

 

 

해발 1,176m의 각호산은

노령산맥의 기부(基部)를 이루고 있습니다.

 

 

 

 

 

각호산 정상에 선 우리 일행은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각호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등산로는

암벽과 로프로 이루어진 구간이 있습니다.

 

 

 

 

짧은 거리이지만

급경사의 암벽 구간이기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깍아지른 암벽을 우회하여 각호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우회길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졌고 옛길을 찾기도 하였습니다.

 

 

 

 

경사지의 원주목계단도 종종 있습니다.

 

 

 

 

오래전에 설치되어 훼손이 심한 경우와

잘못된 시공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이외에는

민주지산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따라 이동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란꽃이 피었네"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쳐버리는 백만송이 피나물 군락지를 만났습니다.

 

 

 

 

이 무인대피소는 민주지산 300m 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무인대피소는 1998년 4월 1일 특전사 대원 6명이 동계훈련 중 순직한 장소기도 합니다.

 

 

 

 

대피소는 말 그대로 비상시에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설이기에 항상 청결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대피소와 대피소 주변의 활용방안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이루어졌습니다.

 

 

 

 

해발 1,241m의 민주지산은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에서 분기하여
남서로 뻗어내린 소백산맥이 추풍령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기개를 일으키면서 형성된 산입니다.

 

민주지산은 추풍령 남서쪽 약 25km 지점에 있으며
동북쪽 방향인 물한리와 남쪽 아래의 대불리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이틀 연속으로 민주지산 정상을

각각 다른 민주지산 등산코스로 올랐습니다.

 

 

 

 

화강암지역으로 이루어진

각호산 · 민주지산 · 석기봉 · 삼도봉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민주지산 정상부의 활용방안과 안전대책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이루어졌습니다.

 

 

 

 

민주지산에서 석기봉까지의 2.6km 구간은

비교적 완만한 능선길이지만 간혹 원주목계단이나 암벽을 만나기도 합니다.

 

 

 

 

민주지산의 주능선은

봄이면 온통 산죽, 진달래, 철쭉이 군락을 이뤄 꽃산행을 즐기게 되는 곳입니다.

 

봄에 피는 꽃들에는 햇볕을 간절히 그리워한 표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각호산과 마찮가지로 석기봉 주변일대는

급경사지의 암벽 로프구간이 있으니 산행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석기봉은 민주지산의 주릉 중에서 가장 빼어난 산입다.
쌀겨처럼 생겼다 하여 쌀개봉이라 부른데서 석기봉이란 이름이 유래되어 있는 기묘한 모습의 바위산이고 주위 전망도 일품입니다.

 

하지만... 암벽로프 구간이 너무나도 위험한 산이기도 합니다.

석기봉 우회 등산로와 안전대책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석기봉에서 삼도봉까지는 1.3km의 거리입니다.

 

석기봉에서 경사지를 조심스럽게 이동하여

말안장까지 하산을 한 후 완만한 경사를 타고 삼도봉에 오를 수 있습니다.

 

 

 

 

 

석기봉에서 삼도봉구간은

2015년 영동군에서 예산을 들여 노면정리, 돌계단, 이정표 등의

등산로 정비를 한 구간이기도 합니다.

 

 

 

 

헬기장에 도착하니 삼도 대화합 기념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경북 김천시 부항면,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도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삼도봉은 산봉우리가 세 개인도 산봉우리가 삼잎같이 보였다 하여 삼도봉이라 불리워 지고 있습니다.

 

 

 

 

과거 삼도봉 정상부에 돌무더기가 세 곳에 쌓여 있었는데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각기 돌을 던져 자기 도의 돌무더기에 많이 쌓이기를 원하였는데
기것은 돌이 많이 쌓인 도가 대길하다는 예부터 전해오던 전설 때문입니다.


 

 

 

이곳 삼도봉에는 해묵은 지역감정을 일소하고 지역주민 간의 대화합을 기원하는 높이 2.6m의 대화합 기념탑이 1990년 10월 10일 건립되었고
매년 이날을 삼도화합의 날로 지정하여 이곳을 연접하고 있는 영동군, 김천시, 무주군이 삼도봉에서 모여 화합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헬기장과 삼도봉의 활용방안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이루어 졌습니다.

 

4월말 3일동안 민주지산의 모든 등산로를 다녔고

5월 초에 2일동안 민주지산 자연휴양림 임도와 치유의 숲길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조사가 민주지산 명품숲길을 조성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게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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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나는 소소하지만 내가 하는 일의 행복에 열중을 합니다.

하루 하루를 한결같이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민주지산의 야생화를 소개하겠습니다.

 

 

[개별꽃]

[홀아비꽃대]

[피나물] 

[박새]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구슬봉이]

[참꽃마리]

[노루삼]

[애기괭이눈]

[괭이눈]

[큰괭이밥]

[족두리풀]

[양지꽃]

바코드의 숲을 걷다.

 

 

주말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고독이라는 벗을 깊이 사귀는 일이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대전을 출발한 나는

오전 10시쯤 문경새재 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한적한 주차장에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문경새재 도립공원 안내도를 살펴봤다.

뭐... 여행은 언제나 틈을 만나러 다닌다는 평소 신념처럼

아무생각 없이 이곳에 왔기에 산행코스를 우선 정해야만 했다.

 

 

 

 

주차장-영남제1관문(주흘관)-여궁폭포-혜국사-대궐터-주봉-영봉-꽃밭서들-영남제2관문(조곡관)-영남제1관문(주흘관)-주차장

으로의 산행코스를 정하고 은행나무 사이로 난 문경새재길을 따라 영남제1관문(주흘관)으로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의 고개', '새로 만든 고개' 등의 뜻이 담겨 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저멀리 석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설관 하였다는 영남 제1관 또는 주흘관이다.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로 개울물을 흘러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주흘관을 지나 오른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계곡을 따라 여궁폭포로 향하는 숲길은 바코드처럼 쭉 뻗은 전나무가 등산객들을 인도하고 있다.

 

걸어가고 있는 등산객들과 전나무 숲길이 만들어낸 여백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고독이라는 벗과 함께 걷다보니 눈깜짝할 사이에 여궁폭포에 도착했다.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으로 물줄기조차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메말랐는데... 어떻게 물줄기가... 자연의 신비로움에 다시한번 숙연해진다.

 

 

 

 

높이 20m의 이 장엄한 폭포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 노송의 멋, 기암절벽의 풍치 등과 조화를 이루어 그 경관이 수려하다.

 옛날 7선녀가 구름을 타고와 여기서 목욕을 했다는 곳으로 밑에서 쳐다보면 마치 형상이 여인의 하반신과 같다하여 여궁 또는 여심폭포라 불려지고 있다.

 

 

 

 

여궁폭포를 지나서 주흘산 기슭에 위치한 혜국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등산객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 경사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혜국사를 지나 아름드리 소나무숲 사이를 따라 오르막을 올라가고 있다.

 

 

 

 

숲길을 걸을때 함부로 밟지 마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임을 명심하면서 걸어라.

 

 

 

 

혜국사에서 약 1.5㎞ 앞서가는 등산객들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또 걷다보면

좁은 소로 길이 끝나고 확 트이는 넓은 구릉지가 나오는데 지금은 잡풀과 잡목으로 뒤덮혀 있지만 예전에는 대궐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대궐터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행재소(대궐)를 세운 터라는데 이곳에는 샘이 있다.

 

 

 

 

대궐터부터 주봉 하단능선까지는 데크계단을 따라 가야한다.

주흘산에서 일명 죽음의 구간이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혹자들은 900여개, 1,200여개라고 말을 하지만 계단의 수를 세는 것은 무의미하다.

처음엔 굳은 각오로 계단수를 세면서 올라가지만 곧 숨이 차오르고 지치기 시작하면 모든것을 한순간에 잊기 때문이다.

 

 

 

 

죽음의 구간인 데크계단을 쉼없이 올라 주봉 바로 아래에 도착을 했다.

짙은 안개와 간간히 흩날리는 진눈개비로 인해 주변풍광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문경의 진산(鎭山)이기도 한 주흘산은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한자 뜻 그대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다.

 

한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中嶽)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 왔다.

 

 

 

 

 

주봉을 지나 영봉까지 능선을 타고 한걸음에 왔다.

 

주흘산 영봉은 높이 1,106m. 소백산맥에 솟아 있다.

서쪽으로 조령천을 사이에 두고 조령산(1,017m)과 마주보며, 포암산(962m)·신선봉(967m)·대미산(1,115m) 등과 함께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주차장에서 영봉까지 2시간밖에 안 걸렸다.

영봉에서 부봉을 거쳐 영남제2관문(조곡관)으로 하산하려 했으나 안개가 더욱 짙어져서 원래 계획대로 꽃밭서덜로 향했다.

 

 

 

 

하산길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식사로 컵라면을 먹었다.

찬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따뜻한 국물이 나도모르게 생각난 것이다.

 

따뜻한 라면국물에 밥도 말아먹고 후식으로 귤과 양갱도 먹었다.

배가 든든하니 발걸음이 한결 더 가벼웠다.

 

 

 

 

산수 수려한 주흘산 깊은 조곡계곡을 따라 하산길이 이어졌다.

 

 

 

 

네 눈은 밝은 해를 알지 못하고,

네 혓바닥은 의로운 말을 하지 못하는구나

눈 없고, 혀 없구나

인간이거든, 눈떠 밝은 세상을 보고

입을 열어 새처럼 노래하라

 

 

 

 

산허리를 돌무더기와 긴 돌로 세워 놓고 그 위에 작고 넓적한 돌을 얹어 마치 장승처럼 세운 곳이 나타났다.

 

 

 

 

이곳이 꽃밭서들인것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소원성취를 위하여 이렇게 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이 여기 와서 빌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꽃밭서들을 지나 계곡을 따라 하산하니 영남제2관문(조곡관)이 나왔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다.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으로

삼국시대에 축성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일명 조곡관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문경새재를 따라 걸어가면 된다.

 

문경새재하면 박달나무가 군생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깊은 산에는 박달나무가 야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새재의 한양 나들이 길가에 자라서 옛 선비의 정취를 돋우웠던 나무이다.

 

 

 

 

평탄한 흙길인 문경새재길을 따라 걷다보니

조곡관과 주흘관의 중간지점인 용연위에 있는 교귀정에 도착했다.

 

교귀정은 새롭게 도임하는 신임감사와

업무를 마치고 이임하여 돌아가는 감사가 관인을 인계인수 하던 곳으로 용추폭포 옆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이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죽령을 지나 대미산, 포암산,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 청화산, 속리산으로 이어져 소백산맥을 이루어 나간다.

 

이곳이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길[嶺南大路]이었던 곳이며 옛날의 유지(遺址)로는 원터, 교귀정, 봉수터, 성터, 대궐터 등이 잔존하고 있다.

조령로의 번성을 말해 주듯 조령로변의 마애비는 관찰사, 현감 등의 공적을 새겨 놓았으며, 주흘관 뒤에는 선정비, 불망비, 송덕비가 비군(碑群)을 이루고 있다.

 

 

 

 

주흘산 조령관문 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어느덧 다시 영남제1관문(주흘관)에 다시 도착을 했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고 한다.

 

 

 

 

이번 주흘산 산행이 마무리 되는 시점이다.

 

 

 

 

눈 가고 바람이 왔다.

늘 그렇듯 풍경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풍경은 옛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늘 이 순간을 살지.

거친 바람 마다하지 않고.

대간의 중심에서 일사천리를 탐하다.

 

 

 

 

황악산은 산림청 및 블랙야크 선정 100대 명산이자, 백두대간의 중심에 우뚝 솟아 높이가 1,111m(일사천리)인지라

이산에 오르면, 원하는 바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하여 이를 바라는 염원에 신년산행지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2016년 1월 2일 토요일 오전 7시.

대전시청에서 마모트 랩핑버스를 타고 황악산으로 향했다.

대전토요산악회 분들과 3개월만에 함께하는 2016년 신년산행이다.

 

 

 

 

오전 8시 20분.

금강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우두령에 도착했다.

안전산행을 위해 모두가 모여 신나는 체조의 시간도 가졌다.

 

 

 

 

소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우두령이라 불리는 산행 들머리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우두령은 소백산맥의 대덕산에서 동쪽으로 가야산 방면으로 뻗는 지맥 중의 국사봉과 수도산과의 안부에 위치한다.

남북방향의 고개로 북사면은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의 상류계곡과 통하고, 남사면은 낙동강의 지류 황강의 상류하곡과 이어진다.

 

 

 

 

오늘 산행은

우두령 ~ 삼성산 ~ 여정봉 ~ 바람재 ~ 신성봉 갈림길 ~ 형제봉 ~ 황악산 ~ 직지사 갈림길 ~ 직지사(주차장)까지 약 14.5km의 코스이다.

 

 

 

 

 

겨울같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등산로 양쪽에 늘어선 노송과 참나무가 하늘을 덮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평평하고 완만하며 비단같이 부드러운 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니

우두령을 출발한지 1시간도 안되어서 삼성산에 도착을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엷은 미세먼지로 산맥의 풍경이 맑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백두대간의 중심이라는 말이 무색치 않게 서쪽으로 민주지산, 삼도봉, 덕유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이 보였다.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석산이 아닌 육산이어서

선두, 중간, 후미가 큰 차이없이 산행속도가 비슷하여 여정봉에 다 함께 모이게 되었다.

 

 

 

 

 

눈길에 넘어지면서도 아무런 사고없이 여정봉을 내려오니 저멀리 황악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발 1,111m 황악산을 중심으로 백운봉, 신선봉, 운수봉이 치솟아 직지사를 포근히 감싸준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원래는 황학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높은 봉우리라는 뜻에서 '악(岳)'자를 섰으나, 높은 산임에도 석산이 아닌 육산이어서 흙의 의미를 담은 '황(黃)'자를 붙였다 한다.

 

 

 

 

"아이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바람재로 향하는 내리막길에서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모두들 짧은 거리라 그냥 내려가기 시작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음지라 그런지 생각보다 무척이나 미끄러웠다.

 

 

 

 

 

"2016년 안전산행을 위하여..."

 

무사히 바람재에 도착한 대전토요산악회 사람들은

케익과 샴페인으로 신년 기념산행을 자축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람재에서 형제봉까지 1.5km이지만

0.7km를 급경사지를 올라가야 하기에 이번 산행코스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코스이다.

 

천천히 가뿐숨을 고르면서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겼다.

 

 

 

 

 

 

형제봉을 지나 황악산 정상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갔다.

옛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이라고 불렀으나 직지사의 현판 및 택리지에는 황악산으로 되어 있다.

 

 

 

 

 

백두대간의 중심인 황악산 정상에서 한동안 말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우리민족 고유의 지리인식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에 내가 지금 서 있다.

 

 

 

 

왜 보려고 하는가?

왜 들으려 하는가?

왜 알려고 하는가?

왜 생각하려는가?

왜 입을 열려고 하는가?

왜 주먹을 쥐려고 하는가?

.

.

.

하나를 보면 둘을 보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소리를 들으면 뜻을 알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알게 되면 감정이 격하게 마련이다.

생각을 하면 절규하게 마련이다.

주먹을 쥐면 부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뛰면 몸을 다치게 마련이다.

 

 

 

 

황악산 정상 옆 헬기장에서

겨울의 따뜻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점심을 먹은 후 생각에 빠졌다.

 

2016년 나의 키워드(key word)는 '희망'이다.

 

'simple life, high thinking'

물질생활을 간소하게 할수록 인간정신은 충족되고 높이 솟을 수 있다.

 

티가 있다는 것은 눈에 티가 끼어 있다는 뜻이며, 밖에 있는 티를 못 보는 것은 마음의 눈에 티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맑으면, 마음의 거울에 티가 없으면, 눈으로 보는 밖의 객체의 아무리 작은 티도 다 보인다.

 

 

 

 

조금밖에 남지 않은 눈쌓인 등산로를 내려와 직지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계절은 눈쌓인 겨울에서 낙엽이 떨어진 가을로 역행하고 있었다.

 

 

 

 

울창한 소나무, 참나무 숲과 깊은 계곡에 옥같이 맑은 물,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화가 아름답게만 보였다.

 

 

 

 

 

조선시대 사명대사가 출가하여 득도한 절로 유명한 직지사에 도착을 했다.

겨울이지만 봄날같은 산행이 이렇게 끝났다.

 

 

 

 

2016년 신년산행을 자축하는 즐거운 뒤풀이 시간을 가진 후 우리는 대전으로 출발했다.

 

Happy New Year

2016년 새해에는 행복가득,

사랑가득한 한 해가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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