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푹 잤다. 잠들고 일어날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아직 퇴근하지 못한 능선 위쪽의 달을 올려다봤다. ‘우리를 지켜줘서 고마워. 근데 너 많이 외롭구나!’ 텐트에서 가부좌하고 명상을 했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났다.

텐트 밖으로 날이 밝기 시작했다. 하화도에서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배를 탈 시간이 밀물이 밀려오듯 빠르게 다가왔다. 서쪽 바다의 먹구름을 보고 조금 빠르게 야영지에서 철수할 준비를 했다. 아침의 바닷바람은 차가웠고 이따금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쏟아지지는 않았다.

배낭을 다 꾸리고 주변 정리까지 마친 후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봄과 가까운 겨울의 끝자락에서 섬과 섬의 공간은 더없이 가깝게 느껴졌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게 보이지만 현실은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었다. 상화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야영지를 벗어나자 하화도 선착장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영어회화를 들으며 걸어갔다. 구름 사이로 이따금 비추는 햇볕은 따뜻했지만, 여전히 바닷바람은 차가웠다. 선착장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선착장 주변을 걸어 다녔다. 배가 올 때까지 하릴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뱃고동이 울렸다. 상화도에서 출발한 배가 10분 먼저 도착했다. 하화도에 들어올 때와 반대로 개도 제도를 거쳐 백야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이틀 만에 다시 진남시장에 왔다. 점심은 먹고 헤어져야 할 것 같았다. 옛골집에서 내장국밥에 순대를 먹었다. 물론 나는 여수생막걸리도 먹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끝이 났다. 혼자보다 둘이라서 더 좋았던 순간이었다.

 

 

내가 하룻밤 거쳐야 할 곳이라 느껴지는 곳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찾아왔다. 자기가 마음 편하게 느낀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누가 이야기해준다고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언제나 나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는 중에 고난도 겪으면서 삶의 의미를 배우는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이렇게 또 한 계단에 올라섰다.

 

 

 

영하 4도였는데 춥지 않았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기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다.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제 아침과 같은 강풍은 불지 않았다. 세상은 하루 만에 평온을 되찾았다. 어두컴컴한 세상에 새벽 어스름이 깔린 바다는 적색 편광이 돌산도 위로 멋지게 퍼져나간다. 노지 야영의 가장 좋은 점은 온전한 자연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의 모습, 끊임없이 출렁거리는 파도의 생성과 소멸,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색채의 웅장한 변화를 어떤 장벽도 없이 관조할 수 있다.

갑자기 배가 아팠다. 자연에서 해결할 수 있는 지형이 아니라 잰걸음으로 백야 선착장 화장실까지 갔다. 어둠의 보자기에 싸여있던 고요한 마을이 새벽부터 소란스러웠다. 일단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백야도 여객선 대기실로 향했다. 환하게 불 밝힌 대기실 문을 열었을 때 따뜻한 공기가 나를 맞아주었다. 오늘은 배가 뜨는구나!

야영지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무엇보다도 배가 뜬다는 사실이 더 좋았다. 여유롭게 1155분 하화도행 두 번째 배를 타기로 했다. 야영지에서 철수하기 전에 물을 끓여 커피를 마셨다. 커피 한 잔의 여유, 그래 이 맛이지. 야영 후 마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다.

 

 

 

백야 선착장에 차를 주차하고 백호산으로 향했다. 백야도는 흰 섬이란 뜻이다. 섬의 주봉인 백호산 정상 바위들이 하얀색을 띠어서 섬이 하얗게 보인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등산로 1구간으로 백호산에 올라 등산로 2구간으로 하산하는 3.8km 구간을 이용하였다.

웅장한 삼나무 숲길을 지나니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급경사지를 한동안 오르다 보니 더위가 느껴졌다. 백야 선착장과 저 멀리 돌산도가 보이는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성두는 더웠는지 여러 겹 껴입은 옷을 벗었다. 잠깐의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산을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계가 확 트인 바위가 나타났다. , 기분 좋다. 백야대교, 힛도, 그리고 어제 우리가 야영했던 장소도 눈에 들어왔다. 세상은 높은 곳에서 멀리 보아야 훨씬 아름답다.

1봉에 올랐더니 주변 바위에서 하화도가 가깝게 보였다. 3시간 후면 저곳에서 하루를 보낼 곳이기에 더 정감이 갔다. 그 뒤로 희미하게 나로도도 보였다. 능선 주변에는 어느새 진달래 꽃봉오리가 맺혔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봄은 우리 곁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능선을 따라 제2봉과 제3봉을 거쳐 등산로 2구간으로 하산을 했다.

 

 

매표를 마치고 하화도행 태평양 3호를 탔다. 16개월 전 개도에 갈 때 이 배를 탔었다. 그 당시 태풍의 영향으로 배가 뜨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사선을 타고 백야도 선착장으로 나왔었다. 이번에도 제도, 개도를 거쳐 하화도로 간다. 뱃길이 낯설지가 않았다. 배가 개도에 닿았을 때는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흐뭇했다. 배는 개도 북서쪽을 반시계방향으로 움직이며 출발한 지 40여 분 만에 하화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야생화 공원으로 이동했다. 다른 섬에 비해 이동 거리가 짧아서 좋았다.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공원 잔디밭에 야영지를 구축했다. 캔맥주 한잔의 여유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저녁은 섬 식당에서 사 먹기로 하고 점심을 간단히 해결했다. 그러는 동안 침낭과 우모 복을 따스한 햇볕에 널어놓았다.

와쏘식당에 저녁 예약을 했다. 선착장에서부터 유유자적 꽃섬길을 걷기 시작했다. 계절상 꽃을 볼 수는 없었지만, 꽃 대신 주변 풍광을 눈에 담고 향기 대신 바닷내음을 품에 안았다. 꽃섬길을 따라 조성된 여러 조형물과 관목 조림지를 보고 가슴이 탁 막혔다. 특히 꽃섬다리(출렁다리)와 데크는 천혜의 자연자원에 대한 최악의 테러행위였다. 능선에서 바라본 섬섬옥수 같은 섬들의 아름다운 모습만이 위안이 되었다.

 

 

 

이른 저녁을 먹으러 예약한 와쏘식당에 들어섰다. 당연히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고 메뉴 선택에 대한 권한도 없었다. 주인장이 내어주신 서대회정식에 개도막걸리를 마셨다. 오후 7시가 막 지났을 뿐인데 섬의 밤은 더욱 짙은 어둠에 휩싸였다.

섬 밖으로 하늘이 어두워졌다. 밤이 점점 깊어갔다.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 체 야영지로 돌아왔다. 섬에서의 밤은 또 다른 세계처럼 인식되었다.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가시거리에 있는 섬들도 깊은 잠자리에 들었다. 깨어있는 것은 섬마을에 설치된 조명시설뿐이었다.

섬은 도시의 모든 소음에서 벗어난 곳이다. 그래서 섬은 적막감이 감돌았지만 잠을 자야만 한다는 게 더 아쉬웠다. 그런 나를 섬 공기가 부드러운 감싸 안으며 보호해줬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많은지 별은 잘 보이지 않았다. 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내가 보는 세상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의자에 앉아 시간의 흐름에 항거했다.

어둠은 더욱 칠흑 같은 밤으로 변했다. 나는 텐트에 들어갔다. 텐트 밖의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와 바람에 흔들리는 텐트에 명암을 드리웠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사위가 아직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다. 온돌방이 뿜어내는 열기를 식히려고 창문을 조금 열었는데 찬 공기가 확 밀려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바람은 포악한 괴성을 질렀다. 어제와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오전 7시가 지나 아침을 먹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온몸을 강타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게 아니라 몽둥이로 때리는 것 같았다. 정말 인정사정없이 불어댔다. 이렇게 바람을 맞다가는 온몸에 멍이 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어제와 달리 너무 추웠다.

오픈 시간 전이라 커피는 포기하고 모텔로 돌아왔다. 모텔 방의 온기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약속 시각까지 온돌방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일정대로 목적지에 못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It’s my life(중략).”

전화벨은 고요한 모텔 방의 정적을 깨웠다. 성두가 10분 후에 도착한다고 해서 배낭을 메고 모텔 입구로 나갔다. 2022 12월에 규슈여행을 함께 다녀오고 1 3개월 만이었다. 아침에 못 마신 커피를 사 들고 진남시장에 갔다. 점심때 먹을 회와 간식으로 먹을 토스트를 사서 차로 돌아왔다. 바람은 여전히 멈출 기미가 없었다. 차에서 토스트를 먹고 해안도로를 따라 백야항으로 향했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백야도 여객선 대기실은 굳게 닫혀 있었고 입구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A4용지에 적혀 있었다. ‘금일 기상악화로 인하여 입, 출항이 통제되었습니다. 061-686-6655 태평양해운.’ 이미 짐작했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때로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내가 처한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배가 뜨지 않는다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체 야영지를 찾아 백야도와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야영할 곳은 생각보다 많이 있을 테니 어떤 걱정도 들지 않았다. 우린 야영 전문가니까.

제일 먼저 백야등대로 향했다. 등대 아래 바닷가에 해양낚시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관광객이나 낚시꾼이 많이 찾는 장소였다. 다음으로 백호산 자락 남쪽 몽돌해변에 갔다. 상화도와 하화도가 한눈에 들어왔고 인적이 없어 한적하고 좋았다. 하지만 탁 트인 곳이라 바람을 막아주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화백해안길은 바다와 맞닿은 곳이었고 물결이 바람에 출렁거리며 연신 흰 물거품을 만들었다. 바람이 멈추길 기다리는 어선은 파도가 만들어낸 너울에 육중한 몸체가 좌우로 흔들렸다. 힛도는 마땅한 야영지를 찾을 수 없었다. 힛도에서 산을 넘어 삼섬으로 걸어가 봤지만 마을 공동양식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안포리 해안가를 따라 안일초등학교까지 바닷가마을을 돌아다녔다.

어느덧 오후 2시가 지났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백야등대에 왔다. 이곳이 우리에겐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었다. 바람을 피해 전망대 한쪽에 아기자기한 자리를 마련했다. 양지바른 곳이라 따스한 햇볕이 내리쬈다. 소주가 아닌 위스키에 회를 먹기 시작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든든해지니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미 마음속에 야영지를 정했기에 급할 이유가 없었다. 해가 지기 1시간 전에 그곳으로 이동했다. 서풍이 불어오고 성난 파도를 일으키며 포효하는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바다와 맞닿은 절벽 위의 옛 해안초소가 있던 자리를 야영지로 정했다. 야영준비를 거의 다 마쳤을 때 저 멀리 낭도 넘어 고흥반도 쪽으로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저녁을 먹고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어두워진 바다를 바라봤다.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위태롭게 서 있는 해송이 바람을 막아주었고 야영지 주변의 찔레 덩굴이 우리를 보호하듯 사주경계를 섰다. 바닥은 칡덩굴과 낙엽들이 깔려 푹신한 감촉이 포근함을 더해줬다. 무엇보다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조용하고 아늑한 장소라 좋았다.

야영지의 텐트는 아늑한 요람처럼 작은 공간이지만 그 무엇보다 평온했다. 매트 위에 놓인 침낭 안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강풍이 만들어낸 성난 파도 소리와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의욕 없이 지내는 일상의 느린 흐름 속에 갑자기 큰 파도가 몰아쳤다. 야영하다 보면 현실 속에서 표류 중인 나를 일깨우며 삶의 방향을 잡고 더 적극적으로, 더 멀리, 더 깊이 있게 행동할 수 있게 만든다.

나는 야영을 통해 신체의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자연으로 들어가 내적 성숙을 확장하고 있다. 자연 속에 헐벗은 채 내동댕이쳐졌을 때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살기 위한 처절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된다.

과연 삶이란 무엇일까? 또 그 삶을 살아가는 나는 누구일까?

 

카톡이 온 것은 어제 오전 910분이었다. 2월도 오늘이 지나면 하루밖에 남지 않는다. 세월의 흐름이 연령대의 속력으로 흐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의식하면서도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서서히 곪아가는 종기 같은 내 마음을 한순간에 해방해준 카톡이 그런 순간에 온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이 빠른 나이기에 순식간에 모든 것을 결정했고 일정을 조율했다. 삼일절 연휴가 코앞이지만 어렵사리 왕복 기차표를 예매했고 내일 묵을 여수 숙소도 예약했다. 멈춘 것 같은 심장이 다시 요동치며 뛰기 시작했을 때의 쾌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세심하게 계획된 여행도 좋지만, 때론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이 삶에 더 많은 활력소를 준다. 자 떠나자. 매화가 활짝 핀 남쪽 섬으로. 이제 남은 건 백패킹 배낭을 꾸리는 일만 남았다.

 

 

가슴이 설레는 아침이다. 이것저것 백패킹 장비를 찾느라 아침부터 분주히 집안을 돌아다녔다. 텐트, 침낭, 우모 복, 매트, 탁자, 의자, 버너, 코펠, 가스, 랜턴, 핫팩, 위스키, 견과류, 라면, 햇반, 김치, 고추 절임, 커피, 세면도구를 방에 늘어놓고 테트리스 오락게임을 하듯 배낭에 차곡차곡 넣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소일거리삼아 집에 필요한 식재료를 사기 위해 두 곳의 마트를 다녀왔다. 하늘은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지만 비는 아직 내리지 않았다. 점심을 먹은 후 여수로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이런 짐이 하나 더 늘겠는걸.

큰 배낭을 메고 우산을 쓴다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평일 한가한 오후였지만 지하철은 이상하리만치 사람들로 북적였다. 집을 나온 지 40분 만에 서대전역에 도착했고 다시 40분을 기다리고 나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연휴 전날이라 기차는 만석이었다. 다행히도 어제 기차표를 급하게 예약할 때 앞 좌석을 선택할 수 있어 큰 배낭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서대전에서의 짧은 정차를 마친 여수행 무궁화호 1503은 소름 돋을 정도로 큰 쇳소리를 내면서 출발했다. 3시간 4분간의 긴 장편 영화를 보는 이제 막 보기 시작한 듯 창밖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점점 빠르게 사라지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바뀐 것은 구례구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기찻길 주변으로 매화가 봄을 알리듯 활짝 피어있었다.

 

 

여천역에서 내렸다. 비가 내려 해가 지기 전인데도 어스름이 깔린 분위기였다. 큰 배낭을 메고 우산을 쓴 채 빗속을 걸었다. 오늘 묵을 모텔은 여수시청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2km 남짓을 직진만 하면 된다. 버스를 탈 때 수반되는 기다림, 버스 내 공간확보, 도로정체를 겪는 것보다 육체적으로는 힘듦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체크인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진남시장으로 향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왔다식당으로 향했다. 뜨끈한 내장국밥에 여수생막걸리까지 배부르게 저녁을 먹었다.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는 비가 그친 상태였다. 어둠이 장악한 세상에 항거라도 하듯 여수 거리는 밝은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수시청 옆 골목의 밤 경치는 휘황찬란했다. 날씨는 온화했고 산책하듯 골목을 걷다 보면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선소유적지 안내판을 봤고 자연스레 발걸음이 가막만 최북단으로 향했다. 이곳은 고려 시대부터 선소마을을 형성하여 배를 만들었던 장소로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이순신 장군이 나대용 장군과 함께 거북선을 만든 곳이다. 또한, 뒤로는 병사들의 훈련장과 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는 망마산이 자리한 천혜의 요새이다. 밤이라 인적이 없어 더욱 쓸쓸한 선소유적지, 배를 매어두던 계선주가 있는 자리에서 바라본 야경이 아름다웠고 지금도 그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내가 다시 모텔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8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603호 문을 열었을 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온기는 나를 둘러싼 모든 액운을 스르륵 녹여버렸다. 간단한 샤워 대신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몸을 담갔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 순간이었다. 이보다 더 좋은 기분은 오늘 없었다. 모텔의 온돌방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요를 깔고 최후의 만찬을 즐기듯 몸을 지진다. 이때까지 몇 시간 후에 찾아올 기상변화를 짐작하지 못했다.

 

태풍 영향으로 개도에서 오후 5시에 사선(개인 소유의 선박)을 타고 백야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처음 계획은 백야도에서 개도, 개도에서 금오도, 금오도에서 돌산도의 여정이었으나 일정이 어긋난 이 시점에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 아쉬웠다. 오늘 밤 백야도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한 시간 후면 날이 저문다. 그전에 백야도에서 야영지를 찾아야 한다. 이틀 전 여수에서 버스를 타고 백야도에 도착했을 때 우연히 본 정자가 생각났다. 아침부터 모든 배가 결항이라 백야항에는 문을 연 식당과 슈퍼가 없었다.

 

정자에서 바라본 백야항

 

큰일이데, 물이라도 구해야 하는데.’

버스정류장에 배낭을 놓고 버스가 백야항으로 들어오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200m 정도 걸어갔을 때 불 켜진 특산물 상점을 발견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주인분이 평상에서 지인과 술을 들고 계셨다.

야호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서둘러 시원한 물과 캔맥주를 사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저녁 어스름과 드문드문 불이 켜지기 시작한 백야도가 묘하게 어울려 운치 있는 밤이 시작되고 있다.

고즈넉한 골목을 걸어 정자에 왔다. 텐트를 쳐놓고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어둠은 소리를 내지 않고 순식간에 주위를 집어삼켰다. 랜턴을 켜 놓고 정자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나의 시선은 백야항 야경에 고정되어 있었다.

 

백야도 비박지
백야항 야경

 

어린아이가 심술을 부리듯 바람은 변덕스럽고 차가웠다. 백야항의 밤을 지키는 건 군데군데 켜있는 가로등뿐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조용히 배낭을 꾸렸다. 먼동이 뜨기 바로 전이 가장 어두웠다. 어둠은 안개처럼 바닥까지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정자야, 잘 쉬다 간다.’

 

백야항

 

백야항 버스정류장에서 새벽 540분에 첫 버스를 탔다. 여수로 향하면서 마주한 첫차 타는 사람들의 분주함을 잊을 수 없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깨어 활동하고 있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백야항 버스정류장
28번 버스

 

여천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 진남시장 왔다식당에서 국밥을 먹었다. 이른 시간이라 시장에 문을 연 식당이 이곳밖에 없었다. 모듬국밥에 여수생막걸리는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뚜벅이에게 주어진 최고의 아침 만찬이었다.

 

진남시장 왔다식당
모듬국밥

 

여행의 참맛은 돌발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굳이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 이번 개도 백패킹도 나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주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개도 백패킹 중, 개도 갯마을식당 앞에서

태풍으로 배가 결항되어

개도에서 사선을 타고 오후 5시에 백야도로 나왔다.

 

백야도 정자에서 야영을 한 후

새벽에 첫  버스(28번)를 타고 여수 진남시장에 왔다.

 

백야도 정자
백야항 버스정류장
28번 버스

 

아침 6시 30분

 

시장은 전날의 분주한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진남시장에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없었다.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있는 진남시장은

관광객보다는 여수 현지분들이 많이 찾는 시장이다.

 

이틀 전,  개도 백패킹을 가기 전 진남시장을 돌아봤었다.

 

천천히 시장을 둘러보며 정찰을 시작했다.

내침김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다시한번 시장을 훑어봤다.

 

진남시장 아케이드

 

많은 사람이 노린내가 난다고 하겠지만

지금 삶아지고 있는 돼지고기 냄새는 구수(??)했다.

 

물론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나는 무척 배가 고팠다.

 

나 : '아침식사 됩니까?'

종업원 : '예'

 

우리의 대화는 간결했다.

 

진남시장, 왔다식당
식당내부

 

식당안으로 들어서니

전날의 여흥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불이 켜지고

에어컨과 선풍기가 돌아갔다.

 

메뉴판을 보고

망설임없이 주문을 했다.

 

'모듬국밥과 막걸리 주세요.'

 

메뉴판

 

무슨 국밥을 먹든

그 지역의 술이 빠질 수 있겠는가?

특히, 나는 지역 막걸리를 좋아한다.

 

주문을 하고 10여분이 지났을때

모듬국밥이 막걸리와 함께 나왔다.

 

특별한 음식은 절대 아니지만

시장에서 파는 국밥은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여수생막걸리
모듬국밥

 

진남시장, 왔다식당은

매일 족발과 수육을 직접 삶고 손질한 후

소포장을 하여 저렴하게 판매를 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단순히 냄새나는 음식일지 모르겠지만

뚜벅이 여행가인 나에게는 최고의 아침 만찬이었다.

 

'육수맛이 끝내줘요.'

 

음력 819, 내 생일이다.

푹 자고 일어나니 새벽 350분이다. 새벽에 내가 바라던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백야도와 금오도 사이 다도해에 떠 있는 섬, 나는 그 섬의 청석해수욕장 암반 위에 있다. 조용히 하늘을 바라본다.

요즘은 도통 별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예전에 본 별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거나 기억 못 하거나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현재 내가 보는 별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혼자서 별을 만끽하는 이런 순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단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영혼이 정화된다는 말로는 부족함이 있다. 하늘을 날아서 달과 별 사이를 내 멋대로 여행을 다니는 공상에 빠져든다. 새벽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태를 안주 삼아 생일 술로 맥주를 마신다. 나에게 행복은 이런 것이다.

 

개도 청석포해수욕장 암반위 텐트
개도 밤하늘에 뜬 별
생일술

 

나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백패킹을 할 수 있기에 행복하다.

마음만 먹고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먹으면 바로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백패킹은 간결하고 소박하다. 최소한의 생존 도구를 가지고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방식이 나만의 신성한 백패킹이다.

내 인생은 멋지게 전개되고 있다.

자아를 찾아 멀리 세상을 떠도는 것은 익숙한 곳에서의 평온함보다 낯선 곳에 있을 때의 서먹서먹함을 더 느끼려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하룻밤 거쳐야 할 곳이라 느껴지는 곳에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찾아간다. 자기가 마음 편하게 느낀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더 나이 먹기 전에 알았으면 좋겠다.

 

신성한 백패킹
성난파도

 

태풍으로 배가 결항되다.

오늘만 결항이 아니라 내일까지도 심하면 모레까지도 결항 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개도에서 탈출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선(개인 소유의 선박)을 탈 수밖에 없다. 사선의 출항시간이 오후 5시다. 배낭을 꾸려 개도 여객매표소에 놓고 섬의 안 가본 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소일한다. 오후가 되니 아침나절과 비교하면 파도도 더 높아지고 바람도 강풍이다. ‘날씨가 더 안 좋아지면 안 되는데.’

사선을 타고 사선을 넘는다.

정각 오후 5시에 사선을 탄다. 6명인데 나만이 여행객이다. 사선으로 개도에서 백야도까지는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사선은 바다의 표면을 미끄러지듯 내달리다가 파도와 부딪치며 요동을 치곤 한다. 이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친다. 백야도 선착장에 도착한 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우여곡절이 많은 개도 백패킹을 마무리한다.

 

태풍영향으로 배가 결항되다
여석마을
갯마을식당
갯마을식당에서 사선을 기다리며
사선을 타다

 

세상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잡아내자.

백패킹은 내가 시도해온 여행 중에 가장 흥미진진한 경험이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면 과감하게 미지의 장소로 떠나야 한다. 속세의 편안함을 버리고 불편을 감수함으로써 어떤 깨달음과 자신의 정체성을 얻게 된다. 자연 속에 머물면서 몸과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면 숨겨진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나는 많은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다. 나를 크게 혹은 작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오직 내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백야항
백야항의 새벽

내가 미쳤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오늘 이러고 있나? 나도 모르게 나온 소리다. 장거리 이동에 산행까지 그야말로 강행군이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몸을 이끌고 개도 구릉지의 도로를 걷고 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바라보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이온 음료를 마신다. 그리고 걷고 또 걷는다.

이곳이 개도주조장이다.

개인적으로 주조장보다는 술도가라는 단어가 더 좋다.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을 것 같은 이곳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도 없으면 안 되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안쪽에 어머님이 보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나의 출현으로 당황하시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이 마주치자 어머니 막걸리 주세요.’를 외친다.

 

개도 들녘
개도주조장

 

감로수가 따로 없다.

몇 병 줄까요?’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3병 주세요라고 말한다. 밤도 길고 하니 혼자서 3병 정도는 마실 수 있을 것이다. ‘3병에 5,000이라고 말하면서 냉장고에서 꺼내주신다. 막걸리를 맛보라고 따라주신 한 대접이 산행 후라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파김치 한쪽도 손으로 집어 먹는다. 그 후 차가운 물 한 대접을 더 얻어 마시니 얼굴에 화색까지 돈다.

갈 길이 구만리다.

텐트가 있는 청석포해수욕장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한다. 개도 생막걸리가 든 에코백을 들고 부리나케 길을 걷는다. 신흥마을 입구에 공공화장실이 있다. 세수하고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구석구석 닦는다. 땀의 끈적거림이 사라지니 기분이 좋아진다.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하루다. 다시 텐트에 돌아온 시각이 오후 6시다.

 

개도생막걸리
개도의 오후
청석포해수욕장

 

석양이 질 무렵.

간단히 저녁을 먹는 동안 막걸리를 반주로 마셨다. 흰 구름은 그대로인데 배경이 빠르게 먹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다도해 어느 곳보다 이곳은 황량하다. 남쪽을 향해 V자로 펼쳐진 암반을 광막한 바다 위로 신비롭게 드러내고 있다. 그 암반에 서 있는 나는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친다. 무섭게 다가오는 어둠의 공포를 침착하게 맞을 준비를 한다.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인다.

이곳은 자연이 만든 천혜의 온돌이다. 텐트는 후텁지근함을 넘어 후끈후끈하다. 낮의 햇빛을 가득 머금은 암반은 그 열기를 밤이 되어 그대로 내뿜는다. 온돌침대의 효과가 너무 좋아 텐트에 머무를 수 없다. 밖은 바람이 불어 시원한데도 모기는 나에게 끊임없이 덤벼든다. 진퇴양난을 어찌할꼬?

 

 

후드득, 후드득.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빗소리에 눈이 떠진다. 갑작스레 굵은 빗방울이 텐트에 성기게 떨어지고 있다. 어느새 해풍도 요란하게 불고 바다는 거칠게 포효하며 성을 내고 있다. 해풍의 장난에 밀려오는 파도는 갯바위와 부딪혀 하얀 거품을 연신 토해내고 있다. 밤이 깊어지고 비까지 내리니 암반의 열기가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계속 내릴 것 같은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그친다.

비 온 뒤 하늘이 더 깨끗하다.

보름달은 며칠 사이 그믐달로 기울고 있다. 달이 변하지 않는 것은 바다를 비추는 은빛뿐이다. 달빛을 받은 바다는 은빛 물결을 출렁이며 내 영혼을 설레게 만든다.

 

개도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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