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새벽 4시.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람도 울리기 전인데 눈이 떠진 것이다. 열린 창문의 방충망 뒤편은 여전히 어두웠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처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비였다. 두두두두. 빗소리는 커다란 소음을 일으키며 대야에 떨어졌다. 첨벙첨벙. 순식간에 그 소리가 변했다. 벌써 대야에 물이 차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 고추에 물은 안 줘도 되겠네.’ 도시는 비에 흠뻑 젖었다. 비가 내리면서 어둠살이 깔린 거리엔 왠지 모를 우울함이 바람과 함께 나부끼기 시작했다. 아침이지만 거리의 가로등과 상점들은 다양한 색깔의 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는 몸짓을 시작했다. 그들만의 빛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빛의 현란함 속에서도 도시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엔 우산을 받쳐 든 사람조차 찾아보기 ..
1년 전 이맘때에 인제를 갔었다. 어느 지역을 간다고 말하는 순간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나는 오늘 인제에 간다. 늘 만나던 노은동 약속장소에서 K형과 만났다. 이른 아침이라 단골 카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선택된 곳이 파리바게뜨였다. 장거리 여행을 하기 전 승용차에 휘발유를 넣듯 커피는 우리에게 에너지를 제공한다. 월요일인데도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유성에서 출발하여 청주, 오창, 진천, 충주, 홍천을 거쳐 인제로 향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후텁지근하게 느껴지던 바깥 기온은 점점 내려갔다. 아침 하늘은 아이가 생떼를 부린 듯 흐렸다.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것처럼 엷은 먹색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입김을 세게 불면 엷은 먹색 구름이 흩어져 맑은 하늘이 나올 것 같았다...
꽃피는 4월이다. 갑천 변 벚꽃은 이미 꽃을 피워 벚꽃 터널을 만들었다. 제방에 심어진 샛노란 개나리꽃과 어우러져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새벽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식목일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이 되었다. 밤새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다 온몸이 찌뿌드드한 상태로 일어났다. 냉수로 세수를 하고 계절과 어울리는 봄옷을 입었다. 오늘 난 머리털 나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섬으로 출발했다. 지난 10년 동안 강진, 해남, 완도를 갈 때마다 수없이 지나갔던 그 길이었다. 유성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정읍IC로 빠져나왔다. ‘띵띵 띵띵’ 내비게이션은 광주까지 가라며 한동안 경고음을 울렸다. 그런 울림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갓진 시골길을 달렸다. 어느새 내비게이션도 경로 재탐색을 통해 내 의도를 알아차렸..
[프롤로그] 나는 지금 여행기를 쓰고 있다. 여행기는 ‘방랑자 in JEJU’라는 제목이다. 나는 어째서 제주 백패킹을 여행기로 쓰고 있는가? 백패킹은 10년 동안 꾸준히 해왔던 나의 모험 여행 중 하나이다. 특히 제주에서의 백패킹은 언제나 특별한 나만의 순간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증가하는 시점이다. 이런 시국에 다른 사람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경험을 했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제주 자연과 함께했다. 그 순간들을 내 가슴속에 한 번 더 새기고 싶었다. [내가 늘 가고자 했던 곳]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6박 7일간의 제주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다.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다. 유성온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석역에서 하차했다. 6번 출구로 나가 오송행 B1 버..
[제주 백패킹 7일차 – 제주공항]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춥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랜턴을 켜 놓고 소란스럽지 않게 배낭을 꾸렸다. 이번 제주 백패킹은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야영했다. 텐트, 보온 옷(우모복), 보온 신발(다운 슈즈), 경량 침낭, 담요, 랜턴, 라디오, 소형냄비, 소형버너, 시에라컵이 전부다. 40L 배낭에 모든 장비를 다 넣었다. 배낭을 어깨에 짊어졌다. 왜 이렇게 가볍지! 새벽어둠을 뚫고 걸었다. 제주 백패킹의 유종의 미는 공항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새벽어둠을 뚫고 날이 밝을 즘 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 한산한 도로의 여명이 아름다웠다. 배낭을 수화물로 맡기고 보안 절차를 마쳤다. 탑승구로 향하는 길에 면세점을 구경했다. 신축된 18번 탑승구로 향했다. 평소보다 한적한 ..
[제주 백패킹 6일차 – 이호테우해수욕장] 알람 소리에 깼다. 한 번도 중간에 잠에서 깨지 않고 푹 잤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이 실질적인 마지막 야영하는 날이다. 숙소를 예약할지 다른 곳에서 야영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왔다. 라디오를 켠 후 물을 끓여 커피를 마셨다.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바람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202번 버스를 타고 현사마을에서 하차했다. 월요일 오전 11시, 해송 숲 야영장. 내가 이호테우해변을 구경하려고 그곳에 간 것 아니었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트로이 목마 등대 때문도 아니었다. 야영장에서 야영할 수 있는지 확인하러 간 것이었다. 여기도 다른 야영장과 다르지 않았다. 인적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텐트로 야영장은 꽉 찼다.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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