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다.

어느 순간 찾아온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파리를 쫓아내듯 무더위를 손으로 쫓아낼 수는 없다.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에 서서 바람이 불기를 기다린다. 바람이 불지 않아 연신 손부채를 흔든다. 온몸은 땀범벅이 되지만 시원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잰걸음으로 인도를 벗어난다.

늘 다니던 도서관 건물에 들어서니 서늘한 바람이 내 몸을 감싼다. 정수기로 가서 시원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이제야 얼굴에 화색이 돌고 몸의 열기가 식기 시작한다. 무더운 한낮에는 도서관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책을 읽는다. 한여름에는 이 맛에 도서관을 찾는다.

 

느릅나무 보호수(대관령면 차항2리)
대관령면 바우파머스몰

 

며칠째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하루의 마감은 안경을 벗고 눈을 감는 순간이다. 평소에는 머리가 베개에 닿으면 바로 잠이 든다. 요즘은 열대야로 한숨도 자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고 있다. 더위를 잠시나마 잊으려고 선풍기 바람에 몸을 의지하지만 헛수고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은 열심히 살지 않은 하루에 대한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곤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세상을 초록빛으로 물들여 놓고 7월은 저물었다.

휴가철의 시작과 함께 건조하고 메마른 날씨가 더욱 더위를 부추기고 있는 8월이 시작되었다. 하늘은 아침부터 흐리고 도시를 둘러싼 산자락엔 먹장구름이 가득한데 기다리던 비는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마당에 어머니가 가꾸는 화분의 꽃들은 각양각색으로 싱그럽게 피어있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죽음의 살기를 느끼며 여름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계절임을 실감 중이다.

 

능소화
해당화

 

타닥타닥 타닥타닥

비가 온다. 빗방울이 지붕에 부딪히는 소리가 열린 창문을 통해 귓가에 들린다. 8월 장마가 시작되었다. 처마 안쪽에 우두커니 서서 지붕을 타고 대아에 떨어지는 물줄기의 정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비가 만들어낸 소리 이외엔 아무 소리도, 아무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빗소리만이 세상에 가득하다.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었다.

입추가 지나면서 여름이 가고, 때늦은 폭우가 쏟아지면서 가을이 찾아왔다. 폭우가 동반한 강풍에 아직 익지 못한 감나무 열매가 땅에 내던져졌다. 서럽게 슬픈 모습이고, 허탈하고 허무한 감정이 일었다.

 

비 오는 날 우리집 마당 정경

 

비 오는 거리를 걷는다.

나뭇가지가 속절없이 흔들리면 내 마음도 같이 흔들거린다. 빗속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바람의 떨림에 두둥실 떠다니는 뭉게구름처럼 미지의 곳을 여행하고 다닌다. 방랑의 길은 언제나 즐겁고 소중한 경험이다.

비가 내린 후부터 시간마다 바람의 냄새가 달랐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 맺혀 있던 빗방울이 아래로 떨어진다. 흙이 젖고, 도로가 젖고, 세상이 촉촉해지는 정경이 색다르게 보인다. 문득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 비 오는 거리의 꿉꿉함보다 커피숍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껴본다. 창밖의 비를 보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비 오는 거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늘이 온통 짙은 회색빛이다.

먹장구름에서 시작된 비가 내 발끝을 스치고 땅에 떨어진다. 일주일이나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열대야로 못 자고 깨어 있던 밤의 시간만큼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세상은 얼마 동안 목욕을 하지 않은 걸까?

비가 온 뒤 후텁지근한 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지듯 세상의 모든 묵은 때를 깨끗하게 씻어내고 있다. 금방 세상이 깨끗할 것 같았는데 비로 씻어내면 낼수록 세상이라는 욕조는 더욱 더러워지고 있다. 언제쯤 그 목욕이 끝날는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세상이 다시 화사한 빛을 발산할 때까지 우리는 굳건히 버텨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비가 갠 후 세상 참 깨끗하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울진 망양정
울진 망양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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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훑어보기 1탄

 

6. 양떼목장

알프스가 아니라 대관령이다.

푸른 하늘에 양떼구름이 유유자적 떠다닌다. 드넓은 바다를 고래가 헤엄치듯 푸른 초원에도 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수확을 앞둔 인근의 양상추밭, 감자밭과 함께 양떼목장은 알프스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대관령하면 제일 먼저 양떼목장이 떠오른다.

대관령에는 대관령양떼목장, 대관령하늘목장, 대관령삼양목장, 대관령순수양떼목장, 알프스양떼목장, 바람마을양떼목장 등이 백두대간과 인접한 높은 봉우리로 둘러싸인 낮은 경사면에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양떼목장의 즐길거리는 먹이주기 체험과 산책로 걷기이다.

양은 5월 중순에서 10월 말까지 초지 풀이 자라는 시기에 방목된다. 드넓게 펼쳐진 초지를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풀을 뜯는 양떼를 보게 된다. 먹이주기 체험은 축사 안의 양에게 건초를 주는 체험이다. 양은 배가 부르면 더는 건초를 먹지 않는다.

 

대관령양떼목장

 

7. 티롤빌리지

알프스 테마마을이다.

티롤빌리지는 오스트리아의 티롤지방을 모델로 유럽의 광장문화를 접목했다. 용산리 알펜시아리조트 입구에 있다. 도로와 광장의 레벨 차를 이용해 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전형적인 알프스 산악마을의 모습이다.

인형박물관과 노기하우스도 있다.

인형박물관은 국내 유명 인형작가 및 수집·창작한 인형이 10여개의 전시실에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다. 연애계 대표 피구어 매니아인 전영록은 특별관을 통해 취미를 공유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라이브공연을 할 수 있는 노기하우스와 희귀앨범 등 개인소장품을 전시하는 개인박물관도 있다.

 

비엔나 인형박물관
티롤하우스
노기하우스

 

8. 눈꽃마을

대관령은 1950년대 우리나라 스키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목장 경사면에서 고로쇠나무로 만든 전통 썰매를 타고 활강했다고 한다. 썰매는 스키를 짧게 만든 것처럼 생겼다. 이는 사냥과 이동의 편리함을 위해서였다. 그 역사적인 장소에서 2018년에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린 것이다.

대관령은 눈과 얼음의 나라이다.

눈꽃마을은 차양 2리에 있다. 겨우내 눈이 내리면 쌓이기만 하지 녹지 않는다. 백두대간 준령인 황병산 자락이 뒤를 감싸고 있다. 봅슬레이 눈썰매, 스노우래프팅으로 짜릿한 활강을 즐길 수 있다. 전통 썰매, 설피 등과 대관령풍력단지를 조망할 수 있는 눈꽃마을 트래킹도 빠질 수 없는 체험이다.

 

눈꽃마을 유아숲체험 1
눈꽃마을 유아숲체험 2

 

9. 의야지바람마을

의로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횡계2리에 있고 그런 의미로 자연부락명이 생겼다. 바람은 자연의 바람희망의 바람으로 마을 이름을 의야지바람마을이라고 했다. 임진왜란때 경주김씨의 후손이 사부랑이라는 관직을 지냈는데 그 묘가 있는 마을 골짜기를 사부랑골이라고 한다.

·관협업 우수사례 사업지이다.

행정안전부가 공모한 인구감소지역 통합지원사업1호 사업지로 선정되면서 마을의 모습이 점차 바뀌고 있다. KT의 지원을 받아 세계 최초의 5G 시범 마을이 되었다. 지역활력센터가 건립되면서 치즈만들기, 아이스크림 만들기, 양 먹이주기, 눈썰매 타기 등 마을관광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부랑골
의야지 향토음식점
의야지바람마을 안내도

 

10. 지르메마을

스키와 황태 발생지이다.

횡계리에 있는 지르메마을은 1960년대 제1 스키장이 개장하면서 스키대회가 처음 열렸다. 마을을 흐르는 송천 주변으로는 황태덕장이 들어섰다. 국내 황태덕장 마을로 가장 유명하며 진부령 아래 용대리보다 먼저 들어선 덕장이다. 또한, 스키와 황태를 주제로 한 벽화 거리도 조성되었다.

겨울바람은 매섭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피난 온 함경도 사람들이 호구지책으로 황태덕장을 꾸렸다. 황태는 하늘이 만들어준다고 한다. 오랜시간 하늘의 날씨에 맡겨야 한다. 황태는 33번의 손이 가야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야 좋은 황태가 된다.

 

지르메마을 황태촌
지르메마을에서 바라본 능경봉

 

11. 황태

명태는 다양한 이름을 가진다.

싱싱한 생물이면 생태, 새끼때는 노가리, 얼리면 동태, 반쯤 말리면 코다리, 완전히 말리면 북어, 그리고 황태가 있다. 밤이면 추운 날씨에 꽁꽁 얼었다가 낮에는 따뜻해서 녹기를 서너 달을 보내야 황태가 된다.

황태 음식은 대관령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이다.

황태국, 황태미역국, 황태구이, 황태찜 등이 황태를 이용한 음식이다. 횡계리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황태촌, 황태덕장, 황태회관을 모두 가보았다. 황태정식을 주문하면 황태국이 서비스로 나온다. , 콩나물, 두부, 황태를 넣고 푹 끓인 황태국은 시원하며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반찬으로 나오는 황태식해가 별미이다. 개인적으로 황태의 색깔, 황태의 크기, , 반찬 등으로 판단해보면 알배추가 나오는 황태회관이 제일 맛있었다.

 

황태회관 황태정식
황태구이
황태덕장 황태정식 및 황태찜

 

12. 오삼불고기

대관령면 횡계리는 오삼불고기의 원조다.

1970년대 초, 어느 젊은 여인네가 처마가 낮은 납작한 곳에서 어렵게 주점을 운영하면서 살게 되었다. 아이스박스에 오징어를 넣고 판매하다 보니 오징어가 변해 있었다. 그 오징어를 고추장에 발라 연탄불에 구워 팔았던 것이 오삼불고기의 유래가 되었다.

독특한 풍미를 맛볼 수 있다.

전통적인 조리법은 철판에 호일을 깔고 양념된 오징어와 돼지고기를 올려 요리하는 것이다. 고산지대인 횡계의 추운 날씨가 매운 고추장과 궁합이 잘 맞고 오징어와 돼지고기와 만나 창의적인 먹거리를 개발한 것이다.

 

횡계리 오삼불고기 거리
오삼불고기

 

13. 막국수

대표적인 메밀 산지의 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

삼교리동치미막국수는 폭설이 내린 3월에 방문했다. 대표메뉴인 동치미막국수와 수육을 먹었다. 면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메밀면 특유의 식감을 느낄 수 있고 동치미육수라 더 시원하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수육은 무척 비싸지만 고기의 질이 좋고 쫀득했다.

평범한 가정집같은 분위기다.

국민의 숲 인근에 있는 가시머리식당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하순에 갔다. 식당 인근 지명인 가시머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더울때는 막국수가 진리다. 메밀면 위에 김가루가 뿌려지고 무채, 오이채가 올려졌다. 빨간 양념장에 삶은 달걀 반쪽을 올린 후 살얼음 가득한 육수를 부었다. 육수는 깔끔하고 시원했고 메밀면은 쫄깃했다.

두 곳 모두 인제의 막국수와는 사뭇 다른 대관령만의 막국수를 맛보았다.

 

삼교리동치미막국수 및 수육
가시머리식당 막국수

[프롤로그]

 

새벽 4.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람도 울리기 전인데 눈이 떠진 것이다. 열린 창문의 방충망 뒤편은 여전히 어두웠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처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비였다. 두두두두. 빗소리는 커다란 소음을 일으키며 대야에 떨어졌다. 첨벙첨벙. 순식간에 그 소리가 변했다. 벌써 대야에 물이 차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 고추에 물은 안 줘도 되겠네.’

도시는 비에 흠뻑 젖었다.

비가 내리면서 어둠살이 깔린 거리엔 왠지 모를 우울함이 바람과 함께 나부끼기 시작했다. 아침이지만 거리의 가로등과 상점들은 다양한 색깔의 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는 몸짓을 시작했다. 그들만의 빛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빛의 현란함 속에서도 도시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엔 우산을 받쳐 든 사람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7월, 어느 비오는 날 아침

 

폭우 속에 나와 K가 있었다.

내가 커피를 사고 K가 물과 담배를 샀다. 우리들의 루틴은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루틴을 마치자 나와 K는 폭우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비는 액체이지만 차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고체처럼 선명하게 앞 유리에 부딪혔다. 유성을 출발하여 진천터널을 지날 때쯤에서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무겁게 깔린 먹구름은 흰 구름으로 대체되었다.

대관령면에 도착했다.

올해만 4번째 방문이고 평소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3월과 5월에는 하루, 6월에는 3일을 체류했다. 7월에는 5일을 체류할 예정이었지만 비가 와서 4일째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3월은 폭설이 내렸고 5월은 비가 왔고 6월과 7월은 흐렸다. 6월의 낮은 서늘했고 7월의 낮은 해발고도만큼 해가 비치는 곳만 뜨거웠다.

다른 지역보다 여름이 시원하다는 것은 대관령면에 오고 나서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3월, 폭설
3월, 횡계리 배추밭
6월, 능경봉 아래 전원단지
7월,횡계리 배추밭

 

 

[훑어보기]

 

1. 대관령면

대관령면은 대부분이 산악지대이다.

강원도 평창군의 북쪽에 위치하며 강릉시에 인접하고 있다. 북쪽에는 황병산, 동쪽에는 백두대간 선자령 · 능경봉 · 고루포기산이 있고, 남쪽에는 발왕산이 있고 서쪽에는 매산 · 장군바위산이 둘러싸고 있다. 높은 고산으로 둘러싸인 고위 평탄 분지 같은 모습이다. 한우연구소, 가금연구소, 양떼목장 등 이국적 풍광의 초원이 대관령면 전역에 산재해 있다.

기후는 변화무쌍하다.

해가 뜨는 듯하다가 안개 같은 구름이 순식간에 뒤덮어 버린다.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다. 여름 기온은 평지보다 4정도 낮다.

 

지르메마을에서 바라본 능경봉과 고루포기산
대관령면
알펜시아 스키점프대

 

2. 대관령

대관령은 큰 고개다.

높은 고개를 뜻하는 관()에 령()까지 붙었으니 높고 험준한 고개였음을 알 수 있다. 대관령은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관문으로 평창과 강릉의 경계에 있다.

4번 대관령에 왔다.

내가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강릉 방향, 위 주차장)을 찾은 것은 6월에 한 번, 7월에 세 번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변화무쌍한 기후에 놀라곤 했다. 뜨겁게 햇볕이 내리쬐다가도 순식간에 구름에 뒤덮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시내는 맑은데 이곳은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구름이 낮게 드리워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주차장은 드넓었다.

현재 이곳은 신재생에너지전시관, 평창대관령수소충전소, 대관령숲길안내센터, 대관령유아숲체험관, 공중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6월말에서 9월말까지를 제외하고는 드넓은 주차장은 한산하다.

서늘함이 느껴졌다.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낮다고 내 마음마저 서늘해지진 않는다. 이곳은 6월 말부터 캠핑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허가된 야영장이 아니다. ‘야영 · 취사 · 쓰레기 투기 금지라는 현수막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질서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음식물을 먹고 있었다.

주차공간이 없었다.

백두대간이나 대관령 숲길을 찾아온 사람들은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캠핑카, 텐트 등 주차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차량이 70대가 넘었다. 이런 행태는 야간이나 주말에는 100대가 훌쩍 넘는다고 한다. 대부분은 한달이상 장박을 한다고 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취사의 위험성, 소음, 쓰레기 투기, 화장실 사용문제 등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다. 불법을 자행하는 사람들이 이런 불편을 호소하며 오히려 악성 민원을 넣고 있는 게 현실이다.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라고 생각된다.

주차료를 받는 휴게소가 있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횡계 방향, 아래 주차장)은 올 초부터 주차료를 받기 시작했다. 최근에 주차료 받는 희한한 휴게소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중앙일보 박진호 기자(7/17, 7/19).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다. 단지, 아래 주차장처럼 위 주차장도 주차요금을 받는다면 캠핑족의 이런 행태는 확 줄었을 것이다.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원만한 해결책을 관계기관에서 하루빨리 찾길 바랄 뿐이다.

 

대관령
6월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 ( 강릉 방향 ,  위 주차장 )
7월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 ( 강릉 방향 ,  위 주차장 )
7월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 ( 강릉 방향 ,  위 주차장 )
7월,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주차장 ( 횡계 방향 ,  아래 주차장 )

 

3. 대관령 국가숲길

대관령에는 국가숲길이 있다.

국가숲길은 산림·생태적,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아 체계적인 운영·관리가 필요한 숲길을 정부에서 지정·고시하고 관리하는 정책이다. 그간 최초 지정된 지리산둘레길, 백두대간트레일, DMZ편치볼둘레길, 대관령숲길과 추가 지정된 내포문화숲길, 울진금강소나무숲길 총 6개소가 국가숲길로 지정되었다.

대관령 국가숲길은 12개 노선으로 약 103km이다.

숲길은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성산면에 걸쳐 있다. 개별노선으로 관리되던 숲길을 대관령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4개의 주제 순환 숲길(목장코스, 소나무코스, 옛길코스, 구름코스)로 새롭게 구획했다.

 

대관령숲 안내도
대관령 국가숲길 목장코스
올림픽트래일

 

4. 국민의 숲

국민의 숲은 인공조림지다.

대관령 국가숲길 중 개별 숲길에 포함된 국민의 숲은 전나무, 낙엽송(일본잎갈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독일가문비 등이 조림되어 있다. 숲 옆에는 양묘장이 있다. 침엽수가 주종을 이뤄 강력한 살균물질인 피톤치드를 즐기며 걷기에 편안한 숲길이다.

야생화도 다양하다.

은대난초, 동자꽃, 좁쌀풀, 쥐오줌풀, 노루오줌, 은방울꽃, 개쉬땅나무꽃, 고광나무꽃, 산사나무 열매 등 잘 정리된 숲길 주변으로 계절에 따라 야생화가 피고 진다.

숲에 벌레가 없다.

7월 한낮, 무더위에도 숲은 시원하며 모기 등 벌레가 거의 없었다. 국가대표 등 운동선수들의 훈련장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국미의 숲 1
국미의 숲 2
국미의 숲 3
동자꽃

 

5. 등산안내

선자령

백두대간 중심부에 있는 봉우리로 해발고도는 1,157m이다. 강릉시가지와 푸른 동해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초원 위의 풍력발전단지도 장관이다.

능경봉

백두대간에 있는 고산으로 해발고도는 1,123m이다.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겨울에는 무릎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는 곳이다.

고루포기산

백두대간에 있는 고산으로 해발고도는 1,238m이다. 울창한 숲, 초원지대, 야생화가 조화를 이루어 풍경이 아름답다.

발왕산

대관령면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우뚝 솟아 있고 해발고도는 1,458m이다. 사계절 휴양리조트인 용평리조트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다. 정상에는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의 수백년 묵은 주목 군락과 철쭉이 장관을 이루는 산이다.

장군바위산

칼산, 투구봉과 함께 횡계의 고원지대를 지탱하면서 명성을 지키고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140m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신선바위, 코끼리바위 등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특히, 맑은 물이 흐르는 백일평 계곡을 끼고 있어 청청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칼산

횡계리를 기점으로 하여 차항리와 용산리 사이의 산으로 해발고도는 941m이다. 참나무숲 사이로 스키점프장과 알펜시아스키장이 보이고 정상에서는 이국적인 풍력발전소와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대관령면 등산 안내도
발왕산 엄홍길 숲길 입구
능경봉 등산로 입구

 

1년 전 이맘때에 인제를 갔었다.

어느 지역을 간다고 말하는 순간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나는 오늘 인제에 간다. 늘 만나던 노은동 약속장소에서 K형과 만났다. 이른 아침이라 단골 카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선택된 곳이 파리바게뜨였다. 장거리 여행을 하기 전 승용차에 휘발유를 넣듯 커피는 우리에게 에너지를 제공한다.

월요일인데도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유성에서 출발하여 청주, 오창, 진천, 충주, 홍천을 거쳐 인제로 향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후텁지근하게 느껴지던 바깥 기온은 점점 내려갔다. 아침 하늘은 아이가 생떼를 부린 듯 흐렸다.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것처럼 엷은 먹색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입김을 세게 불면 엷은 먹색 구름이 흩어져 맑은 하늘이 나올 것 같았다.

 

통영 바닷가의 하늘

 

1년 만이다.

원통에 있는 다들림막국수에 왔다. 과속도 하지 않았는데 약속 시각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일행을 기다리며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입구에 간판이 없었더라면 그냥 시골의 여느 집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작년에 왔을 때도 이곳이 식당이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현관 앞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식당의 수호신처럼 자리하고 있다.

맛집이 없는 고장은 없다.

인제에 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막국수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인제에 오면 막국수를 먹고 있다. 막국수는 춘천이 아니라 인제에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제에는 막국수 맛집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중 합강막국수, 다들림막국수, 방동막국수, 옛날원대막국수를 추천하고 싶다. 식당마다 고유의 육수 제조법이 있어 막국수 맛이 다 다르다.

 

다들림막국수
식당내부

 

비빔 막국수 3, 물 막국수 1, 편육 주세요.

내가 인제에 올 때마다 물 막국수를 먹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모닝커피를 마시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행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미리 주문했다. 점심시간 전이라 식당에는 우리만 있었지만 금방 모든 자리가 다 찰 것이다. 면을 뽑는 기계음이 들리고 주방의 분주한 움직임은 다양한 소리로 알 수 있었다.

모든 음식은 색감이 있다.

음식은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맛이 달리 표현된다. 맛으로 표현되는 음식은 주관적이지만 색감으로 표현하는 음식은 객관적이라 더 좋다. 두부는 노르스름하고, 수육은 밝은 회색을 띠고, 상추는 녹색이고, 김치는 빨간색이다. 막국수의 달걀은 하얗고, 오이는 밝은 연두색이고, 면은 옅은 자색이고, 김 가루는 까맣다.

 

두부
편육(15,000원)과 기본반찬
물막국수 7,000원
비빔막국수 8,000원

 

막국수를 먹으면 좋은 이유가 있다.

물 막국수는 시원하고 비빔 막국수는 매콤하다. 비빔 막국수를 먹다가 육수를 넣어 물 막국수로 먹을 수도 있다. 면은 탱탱하지만 부드럽고 얼린 살얼음 육수가 시원하다. 막국수를 먹으면 덤으로 편육(수육)까지 먹게 된다. 과식과 폭식을 해도 배가 더부룩하지 않다. 식후 금방 배가 꺼져 또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막국수를 먹으면 온몸이 서늘해진다.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개인적인 취향을 고려하여 식당마다 양념을 따로 준비해 두고 있다. 막국수에 설탕, 식초, 겨자, 들기름을 넣는 것에 대한 고민은 행복한 고민이다. 막국수를 먹는 순간만큼은 모든 일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막국수를 먹는 행위에 마음을 다하고 색감을 즐기며 먹으면 된다. 그냥 천천히 육수를 마시면 머릿속의 번잡함은 소리 없이 사라진다.

막국수를 먹은 뒤 카드로 계산을 했다.

은행 계좌에 존재하는 돈이지만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돈을 사용했다. 존재하지만 사용할 때는 없는 돈을 쓴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무엇을 먹고 다니든지 나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의 총량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옛날원대막국수
곰취수육 20,000원
곱배기 막국수 10,000원

 

한계령을 넘었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도시 생활로 찌든 내 안의 번뇌를 깨끗하게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내 모든 발걸음에 선명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걸어온 발자국이 아쉽지 않게.

도로에 한여름 냄새가 난다.

한낮의 불볕더위가 공기를 뜨겁게 달궈 시큼한 냄새가 난다. 살아 있는 식물은 메말라 앙상해지고 그림자의 그늘은 점점 좁아진다. 햇빛의 딱딱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원통에서 한계령을 넘어 필례약수에 왔다.

이곳에 인제 천리길이 있다. 길에도 목적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인데 목적 없이 만들어진 길이라면 쓸모없는 길이 되고 만다. 더군다나 걷는 사람에게 허무감을 주기 쉽다.

 

한계령
한계령휴게소
점봉산 자락(오색방향)

 

지난주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불볕더위라 낮에 햇빛을 받으면 그늘을 찾게 된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 천둥소리와 함께 먹장구름이 산릉선을 넘어와 순식간에 폭우가 쏟아졌다. 눈앞의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렸다.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끄듯 리모컨으로 비를 멈추게 하고 싶었다.

인제에서의 밤은 길었다.

여느 때처럼 저녁을 먹고 술자리가 이어졌다. 늘 보는 사람들이지만 마치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밤늦게까지 왁자지껄했다. 밤이 길었던 만큼 아침은 금방 찾아왔다. 산을 감싸고 있는 안개 같은 흰 구름이 산들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아침 기온은 높았으나 체감온도는 훨씬 낮게 느껴졌다.

 

인제 전통시장

 

인제의 산은 푸르다.

푸른 숲, 내가 찾아간 필례약수의 주변 숲도 푸르렀다. 불볕더위를 이겨낸 찰피나무와 까치박달 나무가 열매를 흐드러지게 맺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필례약수를 가다 보면 찰피나무 가지 틈으로 맑은 하늘이 숨어 있다. 구름을 뚫고 빛이 대지에 닿으면 음지가 사라지고 양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양지는 음지를 없애버린다. 마치 음지는 가짜이고 양지가 진짜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낮의 따가운 햇볕이 도로 위로 쏟아졌다.

햇빛이 장맛비처럼 강렬하게 내비친다. 햇빛을 머리에 이고 걷자니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떨어진다. 아지랑이가 꿈틀거리는 필례계곡에는 사람들이 나무 그늘서 삼삼오오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필례계곡
필례약수
찰피나무
까치박달나무

 

숲속에 앉아 계곡을 흘러가는 물을 바라봤다.

굳었던 몸이 이완되면서 마음마저 차분해진다. 내 호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내 안의 계곡 속에 빠져들었다. 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편안함이 나에게 찾아들었다. 맑은 물처럼 내 의식도 점점 맑아지고 있다.

이곳만큼 숨쉬기 좋은 장소도 없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숲을 이뤄 우거져 있고 맑은 계곡이 사시사철 흐른다. 무심코 쉬는 숨이 아니라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복식호흡을 해야 한다. 호흡에 집중하면 마음과 몸이 편안해진다.

 

5단 폭포

 

숲길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숲길 조사가 고되고 힘들수록 숲길을 더 놓은 길이 될 수 있다. 숲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숲 안을 들여다보면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난공불락의 요새 같이 지형이 험한 숲에 숲길 조사자의 열정이 더해지면 불가능할 것 같은 숲길 노선에 서광이 비치며 온기로 채워진다.

덤불 숲, 흔들리는 이끼긴 돌, 무더위,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 갈증, 산모기의 공격. 느릿느릿 움직이는 뱀, 모든 역격을 이겨내고 지금 내가 내딛는 걸음이 좋은 숲길이 된다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

 

필례약수에서 바라본 귀둔리 야산

꽃피는 4월이다.

갑천 변 벚꽃은 이미 꽃을 피워 벚꽃 터널을 만들었다. 제방에 심어진 샛노란 개나리꽃과 어우러져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새벽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식목일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이 되었다. 밤새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다 온몸이 찌뿌드드한 상태로 일어났다. 냉수로 세수를 하고 계절과 어울리는 봄옷을 입었다. 오늘 난 머리털 나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섬으로 출발했다.

 

 

지난 10년 동안 강진, 해남, 완도를 갈 때마다 수없이 지나갔던 그 길이었다.

유성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정읍IC로 빠져나왔다. ‘띵띵 띵띵내비게이션은 광주까지 가라며 한동안 경고음을 울렸다. 그런 울림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갓진 시골길을 달렸다. 어느새 내비게이션도 경로 재탐색을 통해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10여 분 후 선운산IC를 통과하여 서해안 고속도로에 다시 진입했다.

2시간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에게 그다지 특별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는 그런 길이었다. 목포IC를 벗어나 압해대교를 건너 신안군으로 들어섰다. 도로변 불 켜진 커피숍에 들어갔다. 분위기 좋고 경치도 좋았지만 한가하게 앉아 커피를 마실 시간은 없었다.

 

 

송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10분이었다.

차량에 앉아 해무 낀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지금 나는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로 갈 생각이다. 매표소에 들어가 왕복 배편을 예매했다. 소악도 선착장에 내린 후, 진섬, 딴섬,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로 이동할 예정이다.

여객선은 검은 매연을 내뿜기 시작했다.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해무로 인해 시계는 좋지 않았다. 천사대교의 형태가 아주 흐릿하게 보였다.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선실에 들어왔다. 배는 당사도를 거쳐 40분 만에 소악도 선착장이 있는 진섬에 도착했다.

 

 

나는 배에서 내렸다.

해무인지 미세먼지인지 구별할 수 없지만, 바닷가 특유의 짭짤함이 공기에 묻어 있었다. 썰물 때라 갯벌 바닥은 그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섬이라고 바다와 갯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천장굴산, 개바우산, 앞산, 범바우산, 큰잔동산 등 구릉지 같은 산도 있었다.

선착장 옆 숲에는 철탑 가는 길이 있었다.

나는 그 길로 들어섰다.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렸다. 4m 정도의 길이 능선을 타고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자연훼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황량함이 느껴지는 숲에도 자줏빛 붉은 꽃, 진달래꽃이 피어 있었다. 벌써 꽃을 피우다니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달래꽃을 보고 길 복원에 대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시몬의 집이 있었다.

기점·소악도는 순례자의 섬이라고 불린다. 순례자의 섬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졌다. 12 사도 이름을 따서 지은 작은 예배당이 노두길로 연결된 5개의 섬에 산재해 있다. 순례자의 섬을 찾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기점 선착장에서 하선한다. 섬과 섬을 연결한 노두길을 걸어 12 사도 예배당을 돌아본 후 소악도 선착장에서 다시 승선한다.

예배당은 바닷가, 갯벌, 호수, 언덕 등에 자리하고 있다.

1. 베드로의 집 2. 안드레아의 집 3. 야고보의 집 4. 요한의 집 5. 필립의 집 6. 바르톨로메오의 집 7. 토마스의 집 8. 마태오의 집 9. 작은 야고보의 집 10. 유다 타대오의 집 11. 시몬의 집 12. 가롯 유다의 집이다.

 

시몬의 집
가롯유다의 집
유다 타대오의 집
작은야고보의 집
마태오의 집
토마스의 집
바르톨로메오의 집
필립의 집
베드로의 집

 

순례자의 섬에는 섬과 섬을 잇는 4개의 노두길이 있다.

노두는 밑물 때는 사라지고 썰물 때에 모습을 드러낸다. 노두는 광맥·암석·지층·석탄층 따위가 땅거죽에 드러난 부분을 말한다. 지금은 노두를 시멘트로 포장해 놓아 차량도 이동할 수 있다.

조심! 밀물 때 통행금지

노두길은 밑물이 되면 물에 잠긴다. 물이 찰랑거려서 길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물살이 세고 파래 등으로 매우 미끄럽다. 물이 차면 차량은 물론 사람도 절대로 건너가면 안 된다. 3~4시간이 지나면 썰물이 된다.

 

 

아쉬움이 남는다.

길을 만든다고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려 자연을 훼손했다. 산자고, 보춘화 등 섬 야생화 보호와 훼손된 숲의 복원이 시급했다. 자연 그대로인 노두가 아닌 시멘트로 포장된 노두길이라 감흥이 덜했다. 밀물이 되어 바다에 잠기는 노두길과 그 위의 예배당(8. 마테오의 집)을 보지 못했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다.

노두길을 따라 만나게 되는 12개의 예배당은 조용히 묵상하기 좋을 정도의 공간이다. 나에게는 푸른 바다와 마주 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만들어진 길은 없다.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는 종교를 떠나서 섬의 자연과 더불어 편안하게 명상하며 걷는 그런 길이다.

 

산자고
보춘화

 

순례자의 섬을 다 돌아봤다.

물론 모든 예배당을 다 가본 것은 아니다. 안드레의 집과 야고보의 집은 가지 않았다. 나는 숲길과 노두길을 중심으로 섬을 걸었다. 대기점 선착장에 있는 베드로의 집에서 배를 기다렸다. 오후 432분 다시 배를 탔다.

배고픔이 극에 달했다.

아침은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셨다. 점심에는 캔맥주를 마시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막 배를 타고 기점·소악도에서 송공항으로 나왔다. 대전을 가려면 목포를 지나가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목포에 올 때마다 꼭 들리는 유달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선경준치회집에 갔다.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주문했다. 꼭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먹어봐야 한다. 일단 한번 잡숴봐!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대기점선착장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갈치구이(4미 이상)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아귀탕

[프롤로그]

 

나는 지금 여행기를 쓰고 있다.

여행기는 방랑자 in JEJU라는 제목이다. 나는 어째서 제주 백패킹을 여행기로 쓰고 있는가? 백패킹은 10년 동안 꾸준히 해왔던 나의 모험 여행 중 하나이다. 특히 제주에서의 백패킹은 언제나 특별한 나만의 순간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증가하는 시점이다.

이런 시국에 다른 사람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경험을 했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제주 자연과 함께했다. 그 순간들을 내 가슴속에 한 번 더 새기고 싶었다.

 

 

 

[내가 늘 가고자 했던 곳]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67일간의 제주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다.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다. 유성온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석역에서 하차했다. 6번 출구로 나가 오송행 B1 버스를 탔다. 세종 도심을 관통하여 40여 분 만에 오송역에 도착했다.

공항행 버스를 기다렸다.

배낭은 벤치에 올려놓았다. 가는 곳이 다른 버스가 들어왔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분주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청주공항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창문 틈으로 생기있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버스는 바람을 가르며 공항에 도착했다.

 

김장비닐 안에 배낭을 넣었다.

온라인 체크인을 이미 했기에 수화물로 배낭을 맡겼다. 평소 배낭 무게보다 4kg이나 적은 8kg이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캠핑장비만을 가져왔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보안 절차를 받으러 갔다.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보조배터리, 랜턴, 라디오, 물은 에코백에 담겨 있었다. 1분도 지나기 전에 보안 절차가 끝났다. 탑승장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연착 없이 바로 탑승이 시작되었다. 탑승권을 확인하는 기계의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탑승구로 느지막하게 향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탑승은 이미 끝났다. 짐을 선반에 넣는다고 길게 줄 서게 되는 일도 없었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진에어 승무원의 움직임이 활기찼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항상 웃고 있는 표정이란 걸 눈동자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비행기가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몸이 흔들거렸다. 승무원들은 안내방송을 진행되고 있었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28년 전에 군 복무했던 활주로를 행하여 비행기가 이동 중이었다.

벨 소리가 울렸다.

, , . 이어서 승문원의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좌석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동체는 흔들림이 없었다.

굉음과 함께 앞으로 달려가던 비행기는 바퀴가 활주로를 벗어났다. 이 순간 엔진 소리를 제외한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양력을 받아 상승만 하던 비행기는 이내 수평을 유지했다.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진 후 기내의 공기는 소음과 함께 안정을 되찾았다.

햇살이 눈에 부셨다.

경량 재킷을 입고 있기엔 더웠다. 청명한 하늘은 아니지만, 햇살이 창을 통해 기내로 들어왔다. 비행기는 780km/h로 허공을 가르며 움직였다. 도시, , 하늘, , 바다, 구름, 나는 창밖의 풍경변화를 보고 그 속도를 인식할 수 있었다.

 

비행이 끝났다.

우리 비행기는 곧 제주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중략)”승무원의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회전하는 동안 제주 시가지가 점점 크게 보였다. 이륙할 때와 비슷한 굉음을 내며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제주에 발을 디뎠다.

올해 첫걸음이었다. 해마다 3~4번 왔지만, 올해는 몇 번이나 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수화물로 보낸 배낭을 찾았다.

 

 

 

[제주 백패킹 1일차 함덕해수욕장]

 

이제 어디로 갈까?

정해진 곳은 없었다. 10분여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무작정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 가는 곳 중 한 곳이 내가 머물 야영지가 될 것이다. 제주 백패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탄 버스는 326번이었다.

공항에서 제주 동쪽으로 가는 노선이었다. 동문시장을 거쳐 조천, 함덕을 지나간다. 나는 결정을 지체하지 않았다. 오늘의 야영지는 함덕해수욕장 야영장으로 결정했다. 1시간여의 버스 여정을 마무리하고 함덕 환승 정류소에서 하차했다.

 

6개월 만이었다.

작년 6월과 9월에도 이곳에서 야영했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없는 동안 변화된 모습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날씨가 흐린 탓에 석양이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다. 어서, 텐트를 치러 야영장으로 가자.

바닷바람이 거셌다.

바람을 피해 워싱턴 야자수 아래 텐트를 쳤다. 장소 선택하는데 2분 텐트 치는 데 5분 걸렸다. 넓은 야영장이 휑뎅그렁했다. 군데군데 텐트가 쳐져 있었지만, 사람의 흔적은 수일 동안 없었던 것 같았다.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예상은 했었지만, 석양의 모습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인근 마트로 향했다. 제주에서의 첫날밤, 술이 빠져서야 하겠는가? 부시리회, 소주, 맥주 등을 샀다.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고 텐트로 돌아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텐트에 조명을 밝혔다.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는 야영할 때마다 꼭 가지고 다니는 장비 중 하나다. 내가 자연에 파묻혀 있는 동안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소중한 친구다.

아는 형님과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제주 왔음. 바람 겁나게 붐. 아무도 없는 함덕해수욕장에서 텐트 치고 야영하고 있음. 지금 소맥에 부시리회 먹고 있는 중. 라디오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노래가 나옴. 그곳이 바로 이곳이라 문자 보냄. 언제 함께 옵시다. 얼어 죽지는 않게 해 줄게.”

핫팩을 꺼냈다.

고요한 사방에 들리는 거라곤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잎 소리뿐이었다. ·하의 보온 옷(우모복)을 입고 배에 핫팩을 붙였다. 보온 신발(다운 슈즈)에 핫팩 하나씩 넣고 신었다. 무거운 동계 침낭 대신 가져온 경량 침낭으로 들어갔다. , 생각보다 괜찮았다.

 

 

 

[제주 백패킹 2일차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새벽 450분에 잠에서 깼다.

추워서가 아니라 오줌이 마려웠다. 눈을 뜨고 보니 전혀 춥지 않고 몸에 온기가 느껴졌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보니 밖의 쌀쌀함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야영할 때 발이 시린 것을 가장 싫어한다. 이번 제주 백패킹에 보온신발을 가져온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커피를 마셨다.

카누가 아닌 맥심을 선택했다. 자고 일어나니 달곰함이 그리워졌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은 후에 빗, 수건, 칫솔, 치약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방금 청소를 마친 듯 한결 깨끗한 화장실이 좋았다. 거울을 보니 아직은 몰골이 괜찮아 보였다. 겨우 하룻밤이었으니까.

서우봉에 올랐다.

이곳에 올 때마다 들렀지만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유채밭에 유채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파종하지 않을 듯했다. 간간이 올라온 노란 유채를 보며 밭길을 따라 걸었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을 보고 생각했다. 이곳이 무릉도원이구나. 이젠 떠나볼까?

 

이른 점심을 먹었다.

함덕에 오면 늘 순풍 해장국을 갔었다. 그때마다 뒷집 식당도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식당 이름이 제라진 밥상이다. 문을 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뷔페 음식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 주셨다.

7,900원을 선 결제했다.

식당 안 한갓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접시를 가지러 가면서 대충 훑어보았다. 샐러드, 완숙 달걀, 유부초밥, 탕수육, 돼지고기 볶음, 떡볶이, 콩나물, 무생채, 마늘, , 상추를 담았다. 두 번째로 잔치국수와 김치찌개를 가져왔다. 세 번째로 보리밥에 나물, 채소, 고추장을 올린 후 참기름을 두 바퀴 뿌렸다.

막걸리는 네 번째로 가져왔다.

뷔페 음식을 접시에 담으면서 막걸리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술값이 인상되었는데 아직도 막걸리가 2,500원이었다. 술값을 결제하니 쟁반에 잔과 막걸리를 주셨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닭볶음탕도 나왔다.

막걸리 한 모금씩 마시면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점심 특선인데 내가 일찍 들어와서 직접 접시에 담아 가져다주셨다. 술안주가 추가되었으니 한잔 안 마실 수 있겠는가? 아주 개인적인 맛 평가지만 전체적으로 음식 맛이 좋았다. 음식 중 김치찌개와 닭볶음탕이 가장 맛있었다. 다음엔 꼭 라면도 먹어봐야겠다.

잘 먹었습니다.

순풍 해장국보다 훨씬 맛있어요.’ 내 말에 순풍 해장국 득을 크게 본다며 겸손해하셨다. 테이블마다 비닐장갑, 소독제, 물티슈가 놓여 있었다. 손님이 나가면 바로 테이블을 소독제로 닦았다. 들고 나는 손님들을 친절하게 대하셨다. 오늘 난 뷔페 음식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제라진 밥상은 나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에 왔다.

함덕에서 201번 버스를 탄 후 우당 도서관에서 하차했다. 도로를 건너 6호 광장에서 231번 버스로 갈아타고 1시간 10분 만에 도착했다. 해송 숲 사이의 길을 걸어가니 매표소가 나왔다. 입장료 1,000원과 전기사용료 2,000원을 현금 결제했다. 야영데크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예약했다.

03데크의 이름은 상사화였다.

매표소 우측의 해송 숲에 야영장이 있었다. 우거진 숲을 뚫고 햇살이 데크에 내려앉았다. 밤과 달리 한낮 기온은 따뜻했다. 텐트를 전기를 사용하기 편한 방향으로 쳤다. 장기 백패킹을 할 때 핸드폰, 보조배터리, 랜턴의 충전은 필수요소다. 공중화장실 등에서 도둑전기를 사용하지 말고 떳떳하게 돈을 내고 사용하자.

 

야영테크를 따라 걸었다.

대부분이 해송 숲이고 일부 삼나무 숲을 통과했다. 휴양림 외곽을 한 바퀴 돈 것이다. 복수초를 제외한 다른 야생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

붉은오름에 올랐다.

급경사지에 설치된 침목 계단을 올랐다. 오름 정상까지 350m였다. 내 직업이 직업인지라 걷는 것과 산을 오르는 것은 선수급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제주목장과 주위의 오름 군이 흐릿하게 보였다. 날씨 탓인가? 내가 가본 오름 중에서 이렇게 감흥이 없었던 곳이 또 있을까? 발길을 돌려 야영데크로 돌아왔다.

커피를 마셨다.

텐트 앞에 앉아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점에 점점 도달할수록 우렁찬 수증기를 내뿜었다. 시에라컵에 카누를 탔다. 뜨거울 때 한 모금을 마셨다. 목을 타고 흐르는 커피가 쉬고 있던 몸의 감각을 일깨웠다. 숲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까마귀가 울부짖었다.

이쪽에서 울면 저쪽에서 화답했다. 아무래도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생긴 것 같다. 짧은 숲속 명상을 마치고 복근 운동까지 했다. 한낮에 텐트에 누워 밖을 내다봤다. 고즈넉한 숲속 풍경은 내가 늘 상상 속에서 그리던 백패킹의 모습이었다.

 

숲의 어둠은 빨랐다.

밝음은 눈 깜짝하는 사이에 물러갔다. 한순간에 찾아온 어둠에 잠시 당황했다. 휴양림 야영장이라 데크로드에 조명이 들어왔다. 텐트에도 랜턴을 켰다. 어둠은 늘 나에게 공포감을 준다.

즉석 육개장을 끓였다.

휴양림은 쓰레기를 되가져가야 한다. 최소한의 장비로 백패킹을 다니는 나는 쓰레기 발생을 줄이려고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 한 끼쯤은 이렇게 먹어도 상관없다. 밤하늘의 별을 벗으로 삼아 소주 한잔 주고받기엔 그만인 음식이다.

 

 

 

[제주 백패킹 3일차 화순금모래해수욕장]

 

밤은 추웠다.

한낮의 따뜻함은 어둠이 가져가 버렸다. 물론 불량 핫팩이 문제였지만 숲은 내 생각보다 더 추웠다. 보온 옷(우모복)과 보온 신발(다운 슈즈)로 완전무장하고도 침낭 속에서 몸을 움츠렸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아침이 밝았다. 어둠이 떠난 순간 나는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침 명상을 했다.

화장실에 뜨거운 물이 나왔다. 이런 호사가 다 있었다. 용모를 단정히 한 후 휴양림 내곽을 산책했다. 텐트로 돌아와 커피와 크런치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텐트 옆 빈 데크 공간에서 반가부좌를 했다. 아침마다 하는 20분 명상을 붉은오름에서 했다. 내가 늘 꿈꾸었던 모습이었다.

오늘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안개가 숲을 조금씩 점령하고 있다. 예정보다 일찍 휴양림을 나서야 할 것 같다.

 

30분을 기다렸다.

버스가 늦게 온 게 아니라 내가 일찍 나온 것이었다. 선택은 할 수 없었다. 231번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 안이 따뜻했다. 버스 안에서 다음 야영지를 고민했다. 일단 종점까지 가기로 했다.

교통카드가 사라졌다.

종점에 왔는데 하차를 못 했다. 기사님께 말씀드리고 좌석 수색에 들어갔다. 교통카드는 의자와 등받이 틈으로 떨어져 있었다. 1분 만에 다시 교통카드를 찾았다.

환승을 했다.

서귀포 () 터미널에서 202번 버스를 탔다. 오늘의 야영지는 화순 금모래해변으로 정했다. 야영지에서 산방산을 조망할 수 있다. 안덕계곡을 지나 화순리에서 하차했다. 마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텐트를 쳤다.

12년 전 걸어서 이곳을 지나갔었다. 무더운 여름날 해변에서 해병대가 훈련하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야영장은 유료지만 비수기엔 그냥 사용할 수 있는 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도 다른 야영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랜 기간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텐트가 흉물처럼 보였다. 야영장 앞쪽 모래 해변은 공사 중이라 온종일 소음이 컸다.

그 많던 금모래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올레길을 걷지 않았다. 나만의 추억이 있는 길을 다시 걸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듯 이곳도 많이 변했다. 해안과 인접한 길을 따라 산방산까지 걸어갔다. 아침과 달리 따뜻해진 날씨가 반갑지 않게 느껴졌다.

마트에 갔다.

산방산에서 도로를 따라 안덕 하나로마트까지 걸었다. , 맥주, 포도주, 즉석밥, 라면, 김치, 고기, 배추를 샀다.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을 위해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양만큼 샀다. 에코백에 다 안 들어가 결국 물은 손으로 들고 야영지로 갔다. 마을 길에 있는 팽나무 한그루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가 저물고 나니 추워졌다.

해안가라 그런지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이런 날에는 김치찌개가 최고였다. 냄비에 고기, 김치를 넣고 물을 부어 끓였다. 어느 정도 끓었을 때 소금으로 간을 했다. 뽀글뽀글 끓고 있는 냄비를 보니 군침이 흘렀다. 소주 대신 선택한 포도주가 김치찌개와 궁합이 잘 맞았다.

 

 

 

[제주 백패킹 4일차 올레 휴]

 

술기운에 잠이 들었다.

새벽엔 비까지 내렸다. 바람은 밤보다 더 강하게 불어왔다. 동트기 전 일어나 고민을 시작했다. 오늘 어디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하룻밤 더 야영할 것인가? 결정하기 전에 커피를 마셨다. 따뜻한 온기가 서서히 온몸에 퍼졌다. 비 때문에 배낭 꾸리기가 쉽지 않겠지만 여기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사전 투표를 했다.

배낭을 메고 화순리 정류장으로 향했다. 아침 공기는 새벽보다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사전 투표 현수막을 보고 안덕면사무소까지 걸어갔다. 1.5km의 오르막을 배낭을 메고 걸었다. 사전 투표로 인해 예정에 없던 왕복 3km를 더 걷게 되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길가에 핀 매화를 보고 이제는 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사전 투표를 마치고 다시 언덕을 내려왔다. 안덕 하나로마트에서 포도주와 골뱅이, 파 등을 샀다. 그 이상은 배낭을 넣을 수 없었다. 오늘 야영지에 대한 부푼 희망을 간직한 체 202번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향했다. 서귀포 () 터미널에서 201번 버스로 환승 후 동쪽으로 향했다.

시흥리에서 하차했다.

이동시간만 2시간이 걸렸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농로를 따라 뚜벅뚜벅 오름을 향해 걸어갔다. 경사진 오름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쉼 없이 올라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이마와 등의 땀을 순식간에 식혀주었다. 전망대에서 지미봉, 종달리, 우도, 성산항, 성산 일출봉 등을 감상했다. 경치 한번 끝내주네!

 

오름 야영을 포기했다.

울진, 강릉, 동해의 산불로 민감한 시기에 오름에서 야영은 할 수 없었다.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 경치를 다시 한번 눈에 가득 담았다. 오름을 내려와 종달리를 거쳐 해변까지 걸어갔다. 해안가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더욱 사나워졌다.

내 의지에 상관없이 발이 걸어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름을 오르내렸는데 바람까지 나를 막아섰다. 무거운 배낭을 벗어버리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꿋꿋이 그냥 걸을 수밖에 없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이런 고생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비웃듯 종달 해변은 고요했다. 서둘러 텐트를 치려고 배낭을 벗었다.

 

일기예보를 검색하지 않았다.

서둘러 휴대전화로 일기예보를 검색했다. 일요일까지 제주 전 해안지역에 강풍 주의보가 발령되어 있었다. 이런 날은 해안가에서 야영할 수 없었다. 날은 이미 저물고 있었다. 아고다 앱으로 서귀포에 숙소를 예약했다. 다시 2시간을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갔다. 나흘 만에 샤워했고 빨래까지 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결국 제자리였다.

 

 

 

[제주 백패킹 5일차 금릉해수욕장]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바람은 여전히 강하게 불었지만, 오후쯤이면 약해질 것이다. 서귀포에서 하룻밤 편안하게 쉰 숙소를 나왔다. 202번 버스를 타러 갔다. 오늘은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금릉해변 야영장으로 갈 생각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버스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2시간을 이동하여 금릉해변에 도착했다.

금릉해변의 바다는 3월의 파도로 가득했다. 해변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고운 모래 입자가 바람에 흩날렸다. 야영장이 조금 변했다. 작년 6, 이곳에서 야영했었다. 그 당시 야영장을 정비한다는 현수막이 있었다. 오늘 와서 보니 야영장이라고 쓴 안내판을 제외하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해안가에 방풍림으로 워싱턴 야자나무를 심었을 뿐이다. 여전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인적없는 텐트는 곳곳에 많았다. 자주 야영하던 장소에 텐트를 쳤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물을 끓였다. 커피는 이곳에서 마셔야 제대로 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30분 정도 숙면을 했다.

해변이 바라다보이는 야영지에서 낮잠을 잔 것은 오랜만이었다. 에코백을 어깨에 걸쳐 메고 길을 나섰다. 이곳에서 야영할 때마다 한림까지 걸어서 다녀왔었다. 오늘도 주변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향나무와 대웅전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월계사를 만났다. 안 가본 길을 걸을 때마다 약간의 흥분과 희열을 느꼈다.

한림 하나로마트에 도착했다.

특별히 살 것은 없었으나 걷다가 보이기에 그냥 들어갔다. 진열상품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둘러봤다. 견물생심이라고 캔맥주와 봉지라면을 샀다. 낱개라면은 이곳에서만 팔았다. 컵라면은 편리하지만, 쓰레기가 너무 많이 발생한다.

이른 저녁을 먹었다.

한림시장의 풍년 순대국밥에서 내장국밥을 먹었다. 제주도지사 원희룡과 가수 이정이 다녀간 곳이었다. 12년 전, 올레길을 걸었을 때 나도 이곳에서 국밥을 먹었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음식 맛은 변함없이 좋았지만, 청결은 아쉬웠다. 주변 정리가 안 되어서 산만하고 지저분하게 보였다.

금릉 야영장까지 또 걸었다.

왼쪽으로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였다. 도로변 맛집에는 여전히 긴 줄이 서 있었다. 나는 관심이 없는 척 무심히 그들을 지나쳤다. 낮보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협재해변에 들어선 순간 흰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파도를 보았다. 텐트로 돌아와 라디오를 켰다. 아직 오후 5시였다.

 

석양은 없었다.

바람이 구름을 몰고 왔다. 틀림없이 해는 바다 저쪽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낮에 있던 몇몇 사람조차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바람 때문에 더는 밖에 머물 수가 없었다. 보온 옷(우모복)과 보온신발(다운 슈즈)로 완전무장을 했다. 한 꺼풀 덧씌워진 나는 비로소 따뜻함을 느꼈다.

알코올이 온몸에 퍼졌다.

텐트에는 맥주와 포도주가 있었다. 입가심으로 맥주를 마신 후 포도주를 마셨다. 물론 물로 입안을 헹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드디어 포도주 마개를 열었다. 코로 향기를 맡고 한 모금 가득 입안에 담았다. ‘이 가격에 이런 맛이 나다니.’ 자꾸 마시고 싶은 맛이었다. 시중에서 구매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과 어둠은 경쟁이라도 하듯 점점 거세지고 주위는 암흑으로 변해갔다.

 

 

 

[제주 백패킹 6일차 이호테우해수욕장]

 

알람 소리에 깼다.

한 번도 중간에 잠에서 깨지 않고 푹 잤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이 실질적인 마지막 야영하는 날이다. 숙소를 예약할지 다른 곳에서 야영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왔다. 라디오를 켠 후 물을 끓여 커피를 마셨다.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바람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202번 버스를 타고 현사마을에서 하차했다.

월요일 오전 11, 해송 숲 야영장. 내가 이호테우해변을 구경하려고 그곳에 간 것 아니었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트로이 목마 등대 때문도 아니었다. 야영장에서 야영할 수 있는지 확인하러 간 것이었다. 여기도 다른 야영장과 다르지 않았다. 인적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텐트로 야영장은 꽉 찼다. 나의 결정은 빨랐다. 해송 숲 가장자리 빈 곳에 텐트를 쳤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애기동백나무가 심겨 있었다.

예전에 야영장으로 이용되었던 해송 숲은 쓰레기도 없고 방치된 텐트도 없어서 깨끗하고 보기 좋았다. 왜 자연은 가꾸고 보호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등대를 구경한 후 해안가를 따라 도두봉까지 걸었다. 그리 높지 않은 도두봉에 산책하듯 올랐다. 드넓은 활주로가 펼쳐진 제주공항과 흰 눈이 남아있는 백록담 북벽의 한라산이 한눈에 조망되었다.

 

동태찌개에 단무지 반찬은 이상하지 않은가?

도두봉에서 내려와 오일등식당으로 향했다. 사라봉 인근의 슬기식당과 쌍벽을 이루는 동태찌개 전문점이다. 반찬으로 단무지, 김치, 깻잎, 고추가 나왔다. 동태찌개는 양푼 한가득 나왔다. 알 가득하고 푹 익은 무가 식감을 자극했다. 식욕을 더 돋우기 위해 막걸리도 마셨다. 낮술은 진리다. 마지막 야영 날이라 종류별로 술을 먹는구나! 야영장으로 돌아가기 전 마트에 들러 포도주를 구매했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했다.

술을 깨기 위해 야영장까지 걸었다. 재킷을 벗어야 할 정도로 한낮은 더웠다. 햇볕 아래 있으면 그늘이 그립고 그늘에 있으면 햇볕이 그리웠다. 관광객들은 모래 해변에서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가로운 풍경을 나만이 즐기는 건 아니었다.

비행은 계속되었다.

공항과 인접한 곳이라 항공기의 이착륙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술기운의 지속을 위해 캔맥주와 포도주를 연이어 마셨다. 평소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여행만 오면 이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다.

해변이 소란스럽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석양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주 백패킹을 하는 동안 나도 제대로 된 석양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 틈에 끼여 해변을 걸었다. 핸드폰 사진 촬영을 수동으로 조절하여 석양을 찍었다. 작품 하나 건진 듯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 석양이었다.

 

어둠이 주위를 장악했다.

마지막 야영을 위해 랜턴을 켜지 않았다. 남은 이소가스를 약하게 켜놓고 텐트 안에서 조금씩 포도주를 마셨다. 낮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라기보다는 적막하다는 느낌이었다. 제주 백패킹의 마지막 야영은 이렇게 지나갔다.

 

 

 

[제주 백패킹 7일차 제주공항]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춥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랜턴을 켜 놓고 소란스럽지 않게 배낭을 꾸렸다. 이번 제주 백패킹은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야영했다. 텐트, 보온 옷(우모복), 보온 신발(다운 슈즈), 경량 침낭, 담요, 랜턴, 라디오, 소형냄비, 소형버너, 시에라컵이 전부다. 40L 배낭에 모든 장비를 다 넣었다. 배낭을 어깨에 짊어졌다. 왜 이렇게 가볍지!

새벽어둠을 뚫고 걸었다.

제주 백패킹의 유종의 미는 공항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새벽어둠을 뚫고 날이 밝을 즘 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 한산한 도로의 여명이 아름다웠다. 배낭을 수화물로 맡기고 보안 절차를 마쳤다. 탑승구로 향하는 길에 면세점을 구경했다. 신축된 18번 탑승구로 향했다. 평소보다 한적한 공항 탑승장이었다. 느지막하게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의 제주 백패킹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제주 백패킹 7일차 제주공항]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춥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랜턴을 켜 놓고 소란스럽지 않게 배낭을 꾸렸다. 이번 제주 백패킹은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야영했다. 텐트, 보온 옷(우모복), 보온 신발(다운 슈즈), 경량 침낭, 담요, 랜턴, 라디오, 소형냄비, 소형버너, 시에라컵이 전부다. 40L 배낭에 모든 장비를 다 넣었다. 배낭을 어깨에 짊어졌다. 왜 이렇게 가볍지!

 

 

새벽어둠을 뚫고 걸었다.

제주 백패킹의 유종의 미는 공항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새벽어둠을 뚫고 날이 밝을 즘 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 한산한 도로의 여명이 아름다웠다. 배낭을 수화물로 맡기고 보안 절차를 마쳤다. 탑승구로 향하는 길에 면세점을 구경했다. 신축된 18번 탑승구로 향했다. 평소보다 한적한 공항 탑승장이었다. 느지막하게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의 제주 백패킹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제주 백패킹 6일차 이호테우해수욕장]

 

알람 소리에 깼다.

한 번도 중간에 잠에서 깨지 않고 푹 잤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이 실질적인 마지막 야영하는 날이다. 숙소를 예약할지 다른 곳에서 야영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왔다. 라디오를 켠 후 물을 끓여 커피를 마셨다.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바람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202번 버스를 타고 현사마을에서 하차했다.

월요일 오전 11, 해송 숲 야영장. 내가 이호테우해변을 구경하려고 그곳에 간 것 아니었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트로이 목마 등대 때문도 아니었다. 야영장에서 야영할 수 있는지 확인하러 간 것이었다. 여기도 다른 야영장과 다르지 않았다. 인적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텐트로 야영장은 꽉 찼다. 나의 결정은 빨랐다. 해송 숲 가장자리 빈 곳에 텐트를 쳤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애기동백나무가 심겨 있었다.

예전에 야영장으로 이용되었던 해송 숲은 쓰레기도 없고 방치된 텐트도 없어서 깨끗하고 보기 좋았다. 왜 자연은 가꾸고 보호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등대를 구경한 후 해안가를 따라 도두봉까지 걸었다. 그리 높지 않은 도두봉에 산책하듯 올랐다. 드넓은 활주로가 펼쳐진 제주공항과 흰 눈이 남아있는 백록담 북벽의 한라산이 한눈에 조망되었다.

 

 

동태찌개에 단무지 반찬은 이상하지 않은가?

도두봉에서 내려와 오일등식당으로 향했다. 사라봉 인근의 슬기식당과 쌍벽을 이루는 동태찌개 전문점이다. 반찬으로 단무지, 김치, 깻잎, 고추가 나왔다. 동태찌개는 양푼 한가득 나왔다. 알 가득하고 푹 익은 무가 식감을 자극했다. 식욕을 더 돋우기 위해 막걸리도 마셨다. 낮술은 진리다. 마지막 야영 날이라 종류별로 술을 먹는구나! 야영장으로 돌아가기 전 마트에 들러 포도주를 구매했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했다.

술을 깨기 위해 야영장까지 걸었다. 재킷을 벗어야 할 정도로 한낮은 더웠다. 햇볕 아래 있으면 그늘이 그립고 그늘에 있으면 햇볕이 그리웠다. 관광객들은 모래 해변에서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가로운 풍경을 나만이 즐기는 건 아니었다.

비행은 계속되었다.

공항과 인접한 곳이라 항공기의 이착륙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술기운의 지속을 위해 캔맥주와 포도주를 연이어 마셨다. 평소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여행만 오면 이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다.

해변이 소란스럽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석양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주 백패킹을 하는 동안 나도 제대로 된 석양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 틈에 끼여 해변을 걸었다. 핸드폰 사진 촬영을 수동으로 조절하여 석양을 찍었다. 작품 하나 건진 듯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 석양이었다.

 

 

어둠이 주위를 장악했다.

마지막 야영을 위해 랜턴을 켜지 않았다. 남은 이소가스를 약하게 켜놓고 텐트 안에서 조금씩 포도주를 마셨다. 낮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라기보다는 적막하다는 느낌이었다. 제주 백패킹의 마지막 야영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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