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첫 주말이다. 한주만 더 지나면 추석이다. 명절을 앞두고 즐거워야 할 세상은 구겨진 종잇조각처럼 뒤숭숭하다. 경기침체도 침체지만 여름내 조용했던 태풍이 명절을 앞두고 북상을 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힌남노이다. 각가지 뉴스매체는 연신 역대 최고의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라고 당부하고 있다. 또한, 제주 서귀포로 진입할 태풍 힌남노의 경로는 여수, 통영 등 남해안을 통과한 후 경주, 포항, 울산 등을 거쳐 울릉도 인근 동해안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자마자 집을 나왔다. 내일이면 우리나라가 직접적인 태풍 영향권에 들어서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고 싶었다.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게 더 멀리까지 가볼 수 있다. 페달을 힘차게 밟으니 무겁..
처서가 지났다. 돌풍이 바람의 방향을 순식간에 변화시키듯 계절은 여름을 지나 겨울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직 8월 하순이지만 아침저녁의 체감온도는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를 켜놓고 잤었는데 지금은 창문을 닫고 얇은 이불로 배를 덮고 잔다. 새벽 5시.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2주 전에 바꾼 핸드폰 알람 소리가 익숙하지 않지만, 몸에 밴 습관은 나를 깨우기 충분하다. 확실히 어둠은 색이 더 짙어졌고 길어졌다. 커피포트의 전원을 켜놓고 밖으로 나온다. 아직 뽑지 않은 고추와 새로 파종한 씨앗에 물을 준다. 여름만큼 충분히 물을 주지 않아도 촉촉하게 대지가 젖어 든다. 커피를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믹스를 큰 머그잔에 타 먹는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
나는 지금 연구용역 보고서를 쓰고 있다. ‘00000 지역 활성화 전략수립’이라는 제목이 막막해서 참고문헌을 많이 준비했지만, 현장자료가 부실하다. 일주일 동안 보고서를 끝내보려고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자료를 토대로 현황을 분석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쓰고 있다. 처음 노트북 모니터를 마주했을 때 막막하기만 했다. 기승전결을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지 생각은 넘쳐나는데 뒤섞여 있어서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시간은 폭포처럼 흘렀지만 글쓰기는 민달팽이가 움직이는 속도만큼 더뎠다. 조급히 쓸 수 있는 보고서가 아니기에 끈기를 가지고 노트북 앞에 진득이 앉아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분량을 조금씩 쓰..
어젯밤 일기예보는 적중했다. 새벽 4시쯤 세상을 환하게 만든 번개와 천둥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돌격, 앞으로’라는 호령에 맞춰 비는 맹렬하게 세상을 향해서 돌진하는 중이다. 올여름은 아직 태풍은 오지 않았는데 폭우와의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상은 끈적끈적하고 습한 날들의 연속이다. 오후에 폭우가 할퀴고 간 화단을 정리했다. 물에 잠겨 썩은 쪽파를 뽑아내고, 키가 훌쩍 자라고 열매는 영글지 않는 방울토마토를 뽑아버렸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태풍도 안 왔는데 폭우의 위력이 대단하다. 평상시에 좋은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텃밭 겸 화단이기에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 올여름 폭우는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고 자연에 순응하도록 요구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 세상의 질서는 파괴되지 않을까? 위대한 ..
한여름이다. 어느 순간 찾아온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파리를 쫓아내듯 무더위를 손으로 쫓아낼 수는 없다.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에 서서 바람이 불기를 기다린다. 바람이 불지 않아 연신 손부채를 흔든다. 온몸은 땀범벅이 되지만 시원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잰걸음으로 인도를 벗어난다. 늘 다니던 도서관 건물에 들어서니 서늘한 바람이 내 몸을 감싼다. 정수기로 가서 시원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이제야 얼굴에 화색이 돌고 몸의 열기가 식기 시작한다. 무더운 한낮에는 도서관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책을 읽는다. 한여름에는 이 맛에 도서관을 찾는다. 며칠째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하루의 마감은 안경을 벗고 눈을 감는 순간이다. 평소에는 머리가 베개에 닿으면 바로 잠이 든다. 요즘은 열대야로 한숨도 자..
6. 양떼목장 알프스가 아니라 대관령이다. 푸른 하늘에 양떼구름이 유유자적 떠다닌다. 드넓은 바다를 고래가 헤엄치듯 푸른 초원에도 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수확을 앞둔 인근의 양상추밭, 감자밭과 함께 양떼목장은 알프스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대관령’ 하면 제일 먼저 양떼목장이 떠오른다. 대관령에는 대관령양떼목장, 대관령하늘목장, 대관령삼양목장, 대관령순수양떼목장, 알프스양떼목장, 바람마을양떼목장 등이 백두대간과 인접한 높은 봉우리로 둘러싸인 낮은 경사면에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양떼목장의 즐길거리는 먹이주기 체험과 산책로 걷기이다. 양은 5월 중순에서 10월 말까지 초지 풀이 자라는 시기에 방목된다. 드넓게 펼쳐진 초지를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풀을 뜯는 양떼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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