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꾸었다.

지금보다 어릴 적에 더 많은 꿈을 꾸었다.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여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악몽을 종종 꾸었다. 악몽을 꾼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오줌을 싸고 말았다. 졸지에 오줌싸개가 된 것이다.

하늘을 나는 꿈도 꾸었다.

나비처럼 유유자적하게 꽃과 하늘 사이를 날아다녔다. 마음만 먹으면 꿈속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꿈속은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를 모르는 대다수를 위해 나를 소개하겠다. 나는 꿈을 꾸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살아있다는 것에 원초적 행복을 느낀다. 오늘날처럼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 순수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

예전에 그랬다는 말이다.

누구도 나를 길들일 수 없다. 내 신조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악습은 따르지 않는다. 예외는 없다. 내 신조에 어긋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는 늘 행복한 꿈을 꾸며 그 꿈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

 

 

어린 시절이 그립다.

꿈을 꿀 수 있는 그때가 그립다. 삶이 다른 두 세상을 살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 행복한 꿈을 꾸었다.

내 이름은 문성식이다.

나는 대전 유성에서 태어났다. 유성에서 초, , 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다녔다. 유성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 이후 베트남,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지금은 일과 모험과 여행을 적절하게 공유하며 나 하고픈 대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

 

 

내 맘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버릇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휴가철 전이나 후에, 주말이나 공휴일 말고 평일에, 나는 해마다 여행을 떠났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

15년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제주도에 갔다.

3월 초에는 오름에 올라 봄바람을 맞았다. 5월 말이나 6월 초에는 백패킹을 하며 제주 자연을 느꼈다. 9월 말이나 10월 초에는 곶자왈을 걸으며 숲 향기를 맡았다. 12월 초, 중순에는 눈 덮인 한라산에 올랐다.

 

 

처음엔 그랬다.

여행은 신발이 닳도록 낯선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다녀야만 했다. 나의 발자취가 허무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남들에게 자랑하는 보여주기식 여행이 힘들고 피곤했다. 여행을 다닌다고 삶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주 찾고 오래 머물렀다.

호젓하게 앉아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았다. 노을에 물들어가는 바다의 몸부림을 볼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새 소리를 통해 숲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현실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숨통이 트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나의 꿈은 내가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것은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고, 하고자 하는 것은 글쓰기이다.

생각을 글로 쓰고 있다.

하루 세 끼를 먹듯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 있다. 습관처럼 볼펜을 쥐고 메모지에 끄적거린다. 숨을 쉬듯 한 글자씩 써 내려 가다 보면 어느새 말하는 것처럼 생각이 글로 표현된다. 여행기나 단편을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도 난 떠날 준비를 한다.

가본 적은 없으나 들어본 적은 있는 장소로 향할 것이다. 내 앞에 어떤 여행지의 모습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여행은 경험과 더불어 추억을 남긴다. 나는 여행을 통해 꿈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나에게 여행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나만의 글쓰기 > 단편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의 어느 날  (0) 2022.05.02
그 남자 그 여자  (0) 2022.03.16
어느 수요일  (0) 2022.02.21
좋은 습관  (0) 2022.02.03
나의 초상(肖像)  (0) 2022.01.27

다른 날과 다른 점이 없었다.

125,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서관을 나왔다. 왕복 8차선 도로의 인도를 걸었다. 수년 동안 보아오던 흔한 거리의 풍경이 펼쳐졌다.

10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사이 태양은 조금 더 높이 떠올랐다. 햇살이 지표면으로 엄청난 광선을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이 순간 계절이 변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햇볕은 따뜻했다.

2월의 어느 수요일, 하늘은 구름 한 점도 없다. 모든 게 밝고 고요하며 바람마저 향기롭다. 향기는 새롭지 않았다. 오랫동안 맡아오던 익숙한 냄새였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햇살의 온기가 열린 창문 사이를 통과하여 실내로 들어왔다. 바람의 향기에 햇살의 열기가 더해져 방안으로 퍼져나갔다.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떡볶이는 가래떡에 채소 등을 넣어 볶거나 끓인 음식이다. 유튜브(youtube)에서 떡볶이를 검색했다. 백종원의 요리 비책을 보고 황금비율 양념장 제조법을 습득했다.

주방에 들어섰다.

냄비에 물을 붓고 진간장, 설탕, 고춧가루를 섞은 뒤 양배추와 대파를 잘게 썰어 넣었다. 뽀글뽀글 끓어오를 때 삶은 달걀과 어묵을 넣고 졸이기 시작했다. 떡볶이 고유의 색깔이 드러나고 특유의 향이 코를 찔렀다.

 

 

떡볶이를 먹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기 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양치질을 했다. 입안이 상쾌해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에 자전거를 탔다.

선글라스로 바꿔 쓰고 두꺼운 장갑을 꼈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 안장을 장갑 낀 손으로 닦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안장을 닦았다.

 

 

햇볕 속으로 뛰어들었다.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굴렸다. 한참 동안 그렇게 했다. 가고 싶은 곳을 가서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왔다. 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수목원에 도착했다.

수목원 가장자리를 천천히 걸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쪼개지듯 빛의 파편이 쏟아졌다. 추운 겨울은 천천히 물러가고 있었다.

 

 

남은 오후를 집에서 보냈다.

혼자 집에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다. 할 일이 있었고 방해받기 싫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때때로 라디오를 듣거나 낮잠을 잤다.

마당으로 나갔다.

자갈이 깔린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 지붕 위까지 올라간 감나무를 바라보았다. 이파리를 떨군 가지는 외로움이 가득 박혀 있었다. 오후였지만 마당은 그늘져 서늘했다.

 

 

도로의 밤은 환했다.

어두운 도로는 가로등이 밝혔다. 가로등은 왕복 8차선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졌다. 도시에는 어둠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골목의 밤은 어두웠다.

어둠 속을 말 없이 천천히 걸었다. 굉음을 지르며 요란하게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바라봤다. 매캐한 경유 냄새가 골목까지 끼쳐왔다.

 

 

졸음이 몰려왔다.

오늘 하루의 일들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몸 안의 긴장감이 빠져나가고 몽롱함이 찾아왔다. 더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넓은 방 한쪽 구석에 누웠다.

방 안에는 책상, 작은 옷장 2, 탁자 2, 40인치 텔레비전이 있었다. 미닫이 유리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탁자 위 조명을 껐다. 고요한 몸짓으로 어둠에 녹아들어 잠들었다.

이 모든 일이 수요일 하루에 벌어졌다.

 

'나만의 글쓰기 > 단편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남자 그 여자  (0) 2022.03.16
꿈속의 나  (0) 2022.02.28
좋은 습관  (0) 2022.02.03
나의 초상(肖像)  (0) 2022.01.27
(숲으로 떠나는) 일상탈출  (0) 2022.01.15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나무는 봄이 되면 꽃을 피우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 나무는 나이테가 더해질 때마다 늙는 것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것이다.

내일의 성장은 오늘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누구나 변화를 주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두려움이 성장을 막는 방해요인이라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모든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자.

 

최악의 질병은 망설임이다.

꼭 해내고 싶은 일은 주저함이 없이 실천해야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생활에 남게 된다. 실천은 습관을 형성하는 근원이며 그 습관이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거라고 확신한다.

유혹을 이겨내면 성장할 수 있다.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소한 유혹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의지를 약화하는 사소한 유혹을 아무런 의심 없이 지속해서 받아들인다. 사소한 유혹은 삶의 활력소를 주고 절제력을 빼앗아 버린다. 현실 안주가 일상을 괴롭게 한다.

 

핑계는 습관의 적이다.

몸에 익숙한 행동에 변화를 주기는 쉽지 않다. 변화는 강한 의지로 시작되며 시간의 흐름으로 나타나게 된다. 변화에 점점 익숙해지면 좋아지고 즐길 수 있게 된다. 시간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하는 것이다.

변화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현실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은 나를 변화시킬 수 없다. 적당한 분노와 뉘우침이 작은 실천을 끌어낸다. 작은 실천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몸에 익숙해져 습관이 되는 것이다. 작은 습관이 나를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뇌는 쉽게 시각화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잘 기억한다.

걷기는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걷기를 통해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길 위의 추억이 새롭게 쌓여간다.

내가 명상을 하는 이유는 사소한 일에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통해 마음이 차차 안정된다. 명상은 생각을 평화롭게 하게 데에도 이로우며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걷기나 명상처럼 작은 행동이라도 꾸준히 하면 그것이 좋은 습관이 된다.

 

일단 익숙해지면 습관이 된다.

작은 행동을 실천하는 것은 오늘보다 더 나아진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습관들이기 방법이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이 쌓이면 일상생활로 자리를 잡게 되고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좋은 습관이란 것은 참 묘한 것이다.

실천이란 것이 묘해서 반복적으로 행동하다 보면 그 행동을 따라가게 된다. 현실에 순응하며 지낼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일들이 일상에 펼쳐진다.

 

새로운 습관이 형성되면 용기가 생기고 일상생활을 즐기게 된다.

습관이란 자기가 변화한 만큼 가질 수 있고 몸으로 실천할 수 있다.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내가 달라졌을 뿐인데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

인생의 전환점은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는 순간이다.

해가 뜨면 어둠도 자취를 감추고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도 흔들린다. 좋은 습관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습관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나만의 글쓰기 > 단편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속의 나  (0) 2022.02.28
어느 수요일  (0) 2022.02.21
나의 초상(肖像)  (0) 2022.01.27
(숲으로 떠나는) 일상탈출  (0) 2022.01.15
방랑자  (0) 2022.01.05

얼굴을 본다.

표정은 정직하다. 속마음은 항상 표정에 드러난다. 속마음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다. 땅의 이력은 겹겹이 쌓인 세월의 층으로 알 수 있고 사람의 이력은 얼굴로 드러난다. 얼굴을 보면 나를 알 수 있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면 깨닫게 된다. 지난날의 내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자기가 누군지 알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내가 초상이란 제목의 글을 쓰는 이유는 나에게 정직하기 위해서 나를 글로 풀어보려는 것이다.

 

거울을 본다.

등뼈를 곳곳이 세우고 서서 고개를 좌측으로 돌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는 자태가 진지하고 엄숙하다. 운동화를 싣고 청바지와 흰색 오리털 재킷을 입은 모습이 단순하고 깔끔하다. 차림에서 벌써 성격이 드러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다가 길을 막으면 고이고 물길을 터주면 다시 흐른다. 나는 물처럼 순응하며 살 수 없다. 내 이름 속에는 나만의 성품이 숨어 살고 있다. 인생에서 견딜 수 없는 벽과 마주하게 되면 변화를 주어야 한다.

 

눈에 띈다.

말꼬리처럼 머리를 뒤로 묶은 단신의 남자는 이중섭 거리의 인파 속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퍼석하고 가는 머리카락을 빗질해 한 손으로 움켜쥐고 고무줄로 묶어놓았다. 묶이지 않은 앞 머리카락이 산들바람에 기분 좋게 흩날린다. 새치가 있는 갈색 곱슬머리다.

햇볕에 약간 그을렸지만, 여전히 맑은 얼굴빛을 안경과 마스크로 가리고 있다. 왼쪽 눈썹 끝이 말아 올라가는 눈썹을 가졌다. 안경 렌즈를 통해 보이는 두 눈은 쏘아보고 있는 듯한 강한 눈빛이다.

 

눈매는 부드럽다.

눈은 작은 타원형이고 쌍꺼풀이 없다. 흰 공막에 실핏줄이 군데군데 있지만, 홍채와 동공은 또렷하다. 강력한 눈빛에 비해 눈초리는 예리하게 처져 있다. 눈언저리에는 사선으로 금은 그은 듯 주름 자국이 있다.

작은 눈 사이로 콧마루가 길게 뻗어 있다.

곧게 내려오다 인중을 만난 콧날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안경을 오래 껴서 그런지 콧등에 안경 자국이 있다. 안경을 벗으면 눈과 콧등이 살짝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입술은 가늘다.

입술 선은 또렷하고 입술 색은 붉은색이다. 지그시 다문 입술에서 굳은 다짐을 엿볼 수 있다. 입을 꼭 다문 가는 입술 주위로 가는 수염이 보인다. 한올 한올 따로 자라는 수염은 빽빽하지 않고 부드럽다.

귀는 눈보다 아래에 위치한다.

귀는 작고 귓불은 둥글다, 왼쪽 귓불에는 귀걸이가 걸려 있다. 광대뼈는 튀어나오지 않고 볼살은 탱탱하다.

 

얼굴은 갸름하다.

얼굴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는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너무 가까이 쳐다보면 시야가 매몰된다.

지적인 인상이다.

나의 매력은 단순히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다. 흘깃 쳐다보는 사람들 속에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의연함에서 흘러나왔다.

언제나 맑은 얼굴빛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얼굴에 삶이 녹아있다. 지나온 내 삶에 고난이 많다고 해서 내 삶이 아닌가? 내 얼굴에 지나온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나만의 글쓰기 > 단편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속의 나  (0) 2022.02.28
어느 수요일  (0) 2022.02.21
좋은 습관  (0) 2022.02.03
(숲으로 떠나는) 일상탈출  (0) 2022.01.15
방랑자  (0) 2022.01.05

나는 매일 일상탈출을 꿈꾼다.

엎치락뒤치락 자다 깨면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고 별일도 없는 일상이 반복된다. 뻔한 일상은 나태한 생활의 연속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므로 항상 매 순간을 충실히 보내고 싶다.

나는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돈이 많다고 훌쩍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비로소 떠날 수 있다. 신선한 자연과 만나게 되면 한껏 몸을 움직여도 지친 마음은 자연이 알아서 다독여줄 것이다.

 

내 삶은 내 것이 되어야 한다.

타인에게 의지하는 삶은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한다. 내가 떠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창문 밖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즐기기 위하여, 느리게 방랑하며 나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곳에 머물러 안주하는 것은 내 삶이 아니다. 거친 세상 속에서 육체적으로 힘들더라도 영혼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생각이 고정될 수는 있어도 고정된 아름다움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달리는 삶의 시간을 감당하려면 주위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관찰자의 충만한 눈을 가져야 한다. 들여다본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성장을 멈춘 한겨울, 눈 덮인 산을 오를 때 나는 살아 있는 걸 느낀다. 한 걸음씩 내딛는 발자국마다 세월을 견딜 준비를 하게 된다. 게다가 아주 강렬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 욕망은 걸음마다 부풀어 팽창한다.

 

감각의 문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외부의 모든 것들이 오감을 통해 내 몸으로 스며들면 온통 기분 좋은 떨림으로 가득 차게 된다. 내 최초의 감각을 깨운 것은 캠핑이었고 감각을 확장하고 발전시킨 것은 숲길이다.

숲은 내 영혼의 휴식처다.

고요한 숲길에 검은 그림자가 숲을 누비며 움직인다. 숲은 자연의 소리로 나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자 자연에 푹 젖어 들게 된다. 나는 숲을 좋아하고 숲은 그런 나를 반겨준다.

 

나는 숲에서 땀을 흘리는 육체노동이 좋다.

비가 와도 폭염주의보가 발령돼도 눈이 와도 한파주의보가 발령돼도 전국 어디든 숲길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육체는 볼펜이고 숲은 공책이 된다. 육체는 내 생각을 전달받아 움직이게 되고 숲에는 내 생각이 표현된 숲길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숲길을 개척하기 위해 미지의 숲으로 들어서는 모험을 즐기지만 길을 잃을까 봐 걱정하지는 않는다. 숲은 순수의 공간이고 끊임없이 향기로운 내음을 생산하는 순환의 공간이다.

 

내음이 없는 숲은 사막처럼 삭막하다.

이미 닦여져 있는 숲길에서는 많은 사람의 체취가 섞여 있다. 이런 곳에서는 내 감각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인적이 거의 없는 덤불 숲속을 정신없이 헤맨다.

나뭇가지에 뺨을 맞기도 하고 가시에 온몸이 긁히기도 한다. 숲속에서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지 푸석거리는 소리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난다. 어떤 시련이 있어도 좋은 숲길을 찾고자 하는 내 마음은 한결같다.

 

오늘도 나는 일상을 탈출하여 숲에 왔다.

숲 내음 가득한 바람이 부드럽게 나를 감싸 안아준다. 길동무인 바람이 인도하는 곳으로 숲속을 걷는다. 숲속을 거닐 때 내 마음은 고요하고 차분해진다. 계곡물이 흐르고 새소리가 들리는 바위에 앉아 명상에 빠져든다. 들숨과 날숨의 호흡 속에 숲과 하나 되는 이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내가 걸었던 그 길이 나만의 숲길이 되었다.

 

 

'나만의 글쓰기 > 단편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속의 나  (0) 2022.02.28
어느 수요일  (0) 2022.02.21
좋은 습관  (0) 2022.02.03
나의 초상(肖像)  (0) 2022.01.27
방랑자  (0) 2022.01.05

새해에는 여행보다는 방랑하고 싶다.

여행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는다. 추억이 집단으로 저장되는 여행에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지나치게 빠른 이동보다는 느린 속도로 삶의 온도를 느끼고 싶다. 속도가 느린 만큼 감성의 온도는 높아진다.

방랑자처럼 일정한 목적이 없이 세상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싶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숙연해지기도 한다.

오늘 날씨처럼 내일도 맑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는 어차피 지나간 세월이지 잘못된 세월은 아니다. 어떠한 어려움을 겪어도 따뜻한 봄날은 다시 찾아온다. 햇볕 따뜻한 봄날에 벚꽃 피는 것을 걱정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지만 자신의 삶을 예단해 버리면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지 못한다.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닫지 못했어도 오늘의 나는 과거보다 한층 더 성숙해졌다.

 

방랑은 완행버스와 같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의 목적지를 이 마을 저 마을 빠짐없이 다 둘러가는 느림보 버스 같은 것이다. 아침에 완행버스를 타고 훌쩍 떠났다가 저녁에 막차를 타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방랑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낯선 장소로 인도한다. 미지의 세상에 과감히 들어가서 모험을 즐기는 방랑자가 되고 싶다.

 

방랑자는 명사이지만 동사의 의미가 크다.

방랑자라는 명사 속에는 떠돌이가 지피는 작은 불꽃이 담겨 있다. “봄은 산뜻함이 좋고 여름은 싱그러움이 좋다. 가을은 풍요로움이 좋고 겨울은 총명함이 좋다. 나는 즐거운 떠돌이, 낯설음을 음미하면서 즐겁게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방랑자는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찾아 헤매야 한다.

 

방랑은 방랑자의 가치관이 반영된다.

방랑자는 방랑으로 미지의 세상과 사람을 만난다. 방랑자는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미지의 세상에 대해 현재의 관점으로 해석하게 된다.

방랑자가 되는 것은 나의 선택이고 방랑은 방랑자의 길이다. 방랑은 방랑자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행위이다. 방랑하는 삶이 진정한 인생 여행이다. 방랑자는 세상을 떠돌아다니지만, 결코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멍하니 앉아 무위자연(無爲自然) 하며 내 먼 미래를 생각해 본다.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은 무엇일까? 잠시 내 뒤를 돌아본다. 견딜 수 있는 고난을 겪었고 짧지만 강렬한 꽃길도 걸었다. 지금 떠나고 싶으면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얼마나 멋진 삶인가?

바람을 등지고 바다 위 신선한 햇빛 속으로 떠나는 돛단배 같은 것이 방랑이다. 나에게 방랑은 가장 큰 즐거움이자 죽을 때까지 함께 하고 싶은 소중한 친구이다. 나는 방랑을 좋아하며 방랑하다가 세월이 가는 걸 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만의 글쓰기 > 단편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속의 나  (0) 2022.02.28
어느 수요일  (0) 2022.02.21
좋은 습관  (0) 2022.02.03
나의 초상(肖像)  (0) 2022.01.27
(숲으로 떠나는) 일상탈출  (0) 2022.01.15

나는 길거리 여행자다. 나는 집이 좋지만, 집에 있으면 곧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나는 거리의 현실을 직시하지만, 꿈속에 살려고 늘 노력 중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여행은 생활이며 생존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어느 장소를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여행은 떠나고 싶을 때 과감히 떠날 수 있는 결단력만 있으면 된다. 여행 장소를 보는 시각은 사물을 얼마나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은 다 다르고 다른 인생의 길을 걷는다. 인생이 그러한데 더군다나 똑같은 여행은 있을 수 없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여행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완벽한 여행 준비는 없다. 시험공부 하듯 여행을 준비하면 세세한 것에 대한 순간의 몰입을 방해받는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마음에 울림을 주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다. 일단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상이 잘 내려다보이는 비행기 창가 좌석에 앉아 농도 짙은 어둠이 깔린 창공을 손바닥으로 지우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밖을 내다봐도 창공에 불빛 한점 보이지 않는다. 비행기는 어둠보다 더 진한 암흑 속을 통과 중이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제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바다를 발밑에 두고 머리로 창공을 이고 있어야 한다. 일주일 후에 다시 돌아갈 바다를 건너고 있다.

 

한라산(관음사~성판악, 영실~어리목)

 

비가 내려 마음이 심란하다. 관음사에서 백록담으로 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무모해 보인다.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비바람은 점점 강력해진다. 악천후로 고생하면서도 결국 정상에 올랐다. 또렷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숙소에서 젖은 등산화를 말리며 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눈이 내린다. 새벽 눈 같은 마음으로 복잡하고 어지러운 내 마음을 눈처럼 희고 깨끗하게 씻어 주었으면 한다. 갑작스러운 추위로 도로에 쌓인 눈이 얼어버렸다. 6시에 숙소를 나왔지만, 도로통제로 인해 영실 주차장에는 11시쯤 도착했다.

세상은 온통 흰 눈으로 덮여있다.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눈의 충돌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흰 눈이 세상을 향해 자유낙하를 하고 있다. 나무에 쌓인 눈을 두 손으로 모아본다. 솜이불처럼 가볍지만 차갑다. 바람결에 흩날리지 않으려고 서로서로 팔짱을 끼고 버티고 있다. 한라산에서 눈을 보니 강아지처럼 그저 좋다.

눈보라에 사방이 난리가 났다. 제정신 못 차릴 정도로 차가운 눈보라의 춤사위가 예사롭지 않다. 나는 장갑을 끼고 모자를 눌러쓴 후 주머니에 장갑 낀 손을 넣었다. 산 아래는 고요하고 맑은데 산 위로 올라갈수록 날린 눈과 눈보라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산을 뒤덮은 수천만 개의 눈이 얼어 얼음꽃이 피었다. 눈이 괜히 온 게 아니었다. 바람에 길게 뻗은 눈길 위를 걷는다. 내가 가야 할 길이다. 겨울 산을 올라봐야 산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

어디서 오는 바람인가? 부드러운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고 지나간다. 나무에 눌어붙은 흰 눈에서 맑고 투명한 냉기가 흘러나온다. 산은 높고 햇살은 더욱 눈에 부시다. 무서운 기세로 폭설이 몰아친 후에 찾아온 짧은 평화의 순간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이 기쁨을 누린다. 한 줄기 빛이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땅에 안착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함박눈이 내려 세상을 온통 하얗게 뒤덮어도 한줄기 햇빛만으로도 눈을 녹여 땅속에 스미게 한다.

해발고도가 높아 춥지만, 마음은 시원하고 흰 눈은 차갑지만, 가슴은 포근하다. 눈은 하늘에서 흐르고 풀덤불 위에도 나무에도 상고대 꽃이 피는 자리가 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사는 모습이 의젓해 보인다. 구름을 뚫고 터벅터벅 산을 올라 그 좋은 자리에 왔다. 흰 이불 덮고 미동도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은 듯 고요함이 가득하다.

 

이중섭 미술관

 

나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가? 눈은 뜨고 있는데 아무것도 본 것이 없다. 항상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하다. 어떤 일을 결정짓지 못하고 정신없이 분주한 생활을 하다 보니 필요한 것만 보게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한 행동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분주해도 여유는 순간마다 찾아오는데 잡으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사물을 자세히 보면 묘한 기쁨과 쾌락을 얻을 수 있다.

작품은 작가의 정신세계가 추구하는 것을 눈의 호기심을 위해 재현하는 것이다. 눈은 작가의 정신세계의 일부 또는 전부가 반영된 작품을 보는 것이 된다. 예술성은 작가의 정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아름다움은 오직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작품에 기울이는 관심으로 드러난다.

 

서귀포 앞바다

 

폭설이 내린 뒤 하늘의 기척은 말쑥하고 아름답다. 버스를 타고 중문에 왔다. 바닷가 기암절벽이 조금씩 무너진 자리를 보고나니 마음이 내려앉는다. 기온은 따뜻하지만, 파도는 크게 일렁인다. 얼굴을 때리는 바닷바람은 뼛속까지 한기가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외투의 옷깃을 세운다. 해변의 모래는 스펀지같이 푹신하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자국이 찍혀다 이내 사그라진다. 희고 길게 뻗은 햇빛이 구름을 가로지르며 바다 한가운데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길을 걷다가 길을 잃었다. 바람이 온몸으로 세상을 흔들리게 만드는 동안 태양도 온몸으로 세상에 빛을 뿌리고 있다. 서귀포 앞바다 가를 지나가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훔쳐보고 있다. 멋들어진 호텔과 쭈뼛쭈뼛 서 있는 워싱턴 야자수가 누가 지나가나 눈길도 주지 않고 몰래 쳐다보고 있다. 이런 곳을 내가 지나가고 있다. 비로소 세상을 담은 바다를 들여다본다. 오늘 하루도 금세 지나간다.

오늘 하루 잘 보냈는가? 짧은 겨울 해가 서산 뒤로 저물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밤이 찾아오면 오늘도 넉넉하지 않은 마음 살피려고 달을 보며 서 있다. 모든 것이 풍족하게 넘쳐나는 세상살이도 남의 호흡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부족하게 보인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라는 속담처럼 나만의 호흡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나의 삶을 알차게 살아야 세상이 아름답다.

 

목욕합시다

 

여행은 몸으로 하는 공부다. 글씨나 숫자로 하는 공부보다 몸으로 하는 공부가 발뒤꿈치에 굳은살이 박인 것처럼 오래 기억된다. 여행할 때 사람들의 감각은 고양이처럼 예민하고 생쥐처럼 빠르게 반응한다. 특히 눈은 세상을 그저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세상의 사물을 깊게 들여다보는 눈이어야 한다. 반짝이는 두 눈빛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여행자가 풍경의 아름다움에만 심취해 있으면 하수이고, 풍경과 어우러져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으면 고수이다.

제주에서 일주일 동안 혼자 목욕을 했다.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며 비에 목욕했다. 윗세오름을 오르면서는 세상을 하얗게 만든 눈으로 목욕했다. 해안가를 걸으면서 몸이 날아갈 듯한 바닷바람에 목욕했다. 해가 뜬 한낮에는 따뜻한 햇볕에 목욕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어서 제주 오셔서 같이 목욕 안 하시렵니까? 올해가 힘들다면 내년에 꼭 함께 목욕합시다.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청소기로 미세먼지를 흡입한 후 물걸레로 깨끗하게 닦아내고 싶다. 능선에서 도심의 아파트를 바라다본다. 한정된 토지를 공유하며 허공에 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소공포증은 없을 것이다. 공간을 찾아 늘어나는 회색의 도심 고층아파트보다 점점 줄어드는 너른 들녘의 휑함이 더 눈에 들어온다.

 

숲 향기

 

오늘도 날렵한 산꾼처럼 장시간 길 없는 숲을 해치고 다닌다. 내가 걸어 들어온 숲에 자연이 숨죽이며 깨어나고 있다. 내 시선은 나뭇가지 사이의 허공을 향하고 있지만 내 평화로운 마음은 숲속을 향해 열려 있다. 마음으로 자연을 느껴본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연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

숲에는 나무 하늘엔 흰 구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날마다 새로워진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좋은 향기가 난다. , 낙엽, 나무 향기에 취한다. 속살을 다 드러낸 나무뿌리를 보고 마음이 상하기도하지만, 동물 발자국이나 분변을 보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벗을 본 것처럼 반갑기만 하다. 산에는 여러 존재가 다채롭게 서식하고 고유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정상에 서면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평온해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화를 시작한다. ‘대지가 너무 메말라 가는데 비를 내려 주시겠어요?’ 하늘이 대답한다. ‘비가 오면 추위가 찾아올 텐데 헐벗은 산이 감기라도 걸릴까 봐 걱정이야.’ 자연은 온몸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비를 피하려고 우산을 드는 건 사람밖에 없다.

 

들어서다

 

내가 지나간 자리, 눈에 잘 띄는 나뭇가지에 빨간 끈을 매어 놓는다. 구봉산 능선길을 놔두고 깎아지른 능선 암벽 밑으로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돌너덜 위에 썩지 않고 쌓인 낙엽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자니 여간해서 속도가 나지 않는다. 사람 발자국 없는 곳이지만 야생동물이 이동한 흔적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 흔적을 따라 걸어갈 때면 고마운 마음에 발을 살포시 올려놓게 된다. 그 옛날, 숲속을 지나간 흔적은 이내 길이 되기도 한다.

산은 그저 견딘다. 더워도 견디고 추워도 견딘다. 꽃이 져도 견디고 잎이 떨어져도 견딘다. 바람에 나무가 꺾이고 넘어져도 견디고 암벽이 갈라져 암석이 떨어져도 견딘다. 아무 말 없이 견디기만 하는 산이 안쓰러워 오늘도 산을 찾아 위로의 말을 전한다. 소나무 그늘에 홀로 붉게 물든 단풍이 있다. 산의 활엽수 나무는 대부분 잎을 다 떨구었는데 외로이 홀로 서서 하늘을 향해 일인시위 중이다.

나무가 나무를 때린다. 바람이 세게 불기라도 하면 큰 나무의 가지가 휘청거리며 작은 나무의 얼굴을 때린다.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바람결에 취해 자꾸 따귀를 때린다. 가끔은 큰 나무의 그런 행동을 말려도 보고 타일러도 본다. ‘같이 잘 지내야지라고 말은 하지만, 바람이 부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라 내 마음만 애가 탈 뿐이다. 세상을 사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겨울이지만 바람을 맞고 싶을 정도로 더운 한낮이다. 바람이 불어오자 즐거운 세상 소식을 들은 것처럼 입꼬리가 올라가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높이 올라야 더 멀리 볼 수 있기에 가파른 암벽 능선을 과감히 기어오른다. 솟구쳐 흐르는 땀 줄기가 식어 한기를 느낄 때까지 노루벌을 바라보며 서 있다. 산에 오면 언제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다가온 겨울이 부끄러워 홍조 띤 잎으로 어색하게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본다. 노루벌을 흐르는 물소리에서 힘겹게 한해를 살아온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섞여 있다. 차가워진 수온만큼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큰소리로 외쳐본다. ‘조금만 더 힘내자고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