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깬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비가 내린다. 시계를 보니 오전 4시 59분이다. 알람이 울리기 바로 직전이다. 커피를 마시려고 텐트에서 나온다. 버너에 불을 켜고 물을 채운 냄비를 올려놓는다. 물이 끓는 소리가 빗소리에 맞춰 화음을 더한다. 스테인리스 컵에 카누를 쏟고 끓은 물을 붓는다. 진한 커피 향이 수증기로 변해 원두막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세상은 점점 그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우산을 쓰고 야영장을 걷는다.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진 비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내 다리를 적신다. 잔디에서 야영하던 사람들은 어수선하지만 분주하게 텐트를 철수하고 있다. 나는 매표소 앞 의자에 앉아 비가 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본다. ‘아무래도 온종일 배가 내리겠는걸’ 다시 빗속을 걸어 원두막으..
햇살 가득한 아침이다. 음울하고 축축한 날씨가 이어지는 동안 거친 비바람 속에서 지내온 내 몸이 제일 먼저 반응하고 기분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 맑은 하늘을 본지도 오래된 듯한 느낌이다. 청명한 하늘은 내 안의 우울한 감정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다. 곶자왈에 들어서면 녹음이 드리워져 있고 위에는 큼지막한 나무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나뭇잎은 바람에 살랑거리고 상쾌한 공기는 내 몸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간다. 우거진 수관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 어둠과 균형을 이룬다. 곶자왈에는 난대와 온대 수종이 함께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푸르른 잎을 가득 채운 곶자왈은 어떠한 시련도 이겨내고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산책길에서 곶자왈을 바라보면 싱그러움이 가득한 이끼와 초록의 잎사귀들이 지표를 ..
어스름이 남아있는 곶자왈 아침 외곽 길을 따라 활기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름 모를 풀벌레가 아침을 알리듯 큰 소리로 울어댄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길은 꼬불꼬불 길게 이어져 있고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가 길가에 널브러져 있다. 길 좌우가 숲으로 둘러싸여 길 자체는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야영장 입구로 들어선다. 구름이 집어삼킨 곶자왈 숲을 보며 뚜벅뚜벅 걷는다. 비 때문에 더욱 짙어진 잔디밭과 대조적으로 하늘은 흐릿한 회색 색깔이 펼쳐져 있다. 돌담길을 걷는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길에 달팽이가 우아한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다. ‘산딸나무 열매를 다 먹으려면 하루는 더 걸릴 듯….’ 비가 그쳤다. 제주의 가을을 만끽하러 버스를 타고 표선해수욕장에..
나는 이런 욕망을 품지 않는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고 싶지도 않고, 이름만 들어도 귀가 솔깃한 자동차를 운전하고 싶지도 않고, 명품으로 겉모습을 한껏 치장하고 싶지도 않고,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고 싶지도 않다. 나의 욕망은 그들의 욕망은 다르다. 그래서 그들과 같이 달리지 않는다. 솔직히 그들의 욕망 중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거의 없다.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욕망의 굴레 속에 지지부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진 물건중에 신제품은 거의 없다. 옷은 새 옷을 사본지가 10년도 넘었다. 실제로는 옷은 사지만 모두 중고 옷을 산다. 자세히 살펴보면 유일한 신제품은 등산화, 운동화가 전부인 것 같다. 불필요한 지출에 최대한 돈을 최대한 아낀다. 가장 좋아하는 여..
[프롤로그] 나는 지금 여행기를 쓰고 있다. 여행기는 ‘방랑자 in JEJU’라는 제목이다. 나는 어째서 제주 백패킹을 여행기로 쓰고 있는가? 백패킹은 10년 동안 꾸준히 해왔던 나의 모험 여행 중 하나이다. 특히 제주에서의 백패킹은 언제나 특별한 나만의 순간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증가하는 시점이다. 이런 시국에 다른 사람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경험을 했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제주 자연과 함께했다. 그 순간들을 내 가슴속에 한 번 더 새기고 싶었다. [내가 늘 가고자 했던 곳]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6박 7일간의 제주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다.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다. 유성온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석역에서 하차했다. 6번 출구로 나가 오송행 B1 버..
[제주 백패킹 7일차 – 제주공항]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춥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랜턴을 켜 놓고 소란스럽지 않게 배낭을 꾸렸다. 이번 제주 백패킹은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야영했다. 텐트, 보온 옷(우모복), 보온 신발(다운 슈즈), 경량 침낭, 담요, 랜턴, 라디오, 소형냄비, 소형버너, 시에라컵이 전부다. 40L 배낭에 모든 장비를 다 넣었다. 배낭을 어깨에 짊어졌다. 왜 이렇게 가볍지! 새벽어둠을 뚫고 걸었다. 제주 백패킹의 유종의 미는 공항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새벽어둠을 뚫고 날이 밝을 즘 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 한산한 도로의 여명이 아름다웠다. 배낭을 수화물로 맡기고 보안 절차를 마쳤다. 탑승구로 향하는 길에 면세점을 구경했다. 신축된 18번 탑승구로 향했다. 평소보다 한적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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