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델발트 터미널

 

알람이 울렸다.

이런. 언제나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깼는데, 재빨리 알람 해제를 한 후 조용히 옷을 갈아입었다. 서둘러 객실 밖으로 나와 양치와 세수를 했다. 롯지나 호스텔 공용침실(Dormitory)의 단점은 이런 점일 것이다. 이른 새벽에 움직여야 할 때 소란스러운 부스럭거림이 언제나 발생한다. 미리 부탁한 아침 도시락을 받고 롯지를 나섰다. 오늘도 고요함이 내 혈관을 통해 몸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브리엔츠 호수
사르넨(Sarnen) 호수

 

그린델발트 터미널에서 620분 첫 기차를 탔다.

엊그저께 올라왔던 그 길을 기차는 다시 내려갔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다시 루체른행 기차로 갈아탔다. 오른쪽 차창으로 보이는 에메랄드빛 브리엔츠 호수에 낮게 깔린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기차가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풍경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사진을 찍으려는 내 노력이 무색하게 얻어지는 성과물은 형편없었다.

 

루체른역
루체른 선착장
배의 엔진

 

오전 9시가 전에 루체른에 도착했다.

루체른 역은 매우 혼잡했다. 입구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니 바로 앞이 유람선 선착장이 있었다. 표 검사를 하지 않아 그냥 배에 탑승했다. 배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2층은 일등석이라 올라갈 수 없었고 배 엔진이 훤히 보이는 중앙 나무의자에 앉았다. 견학이라도 가는지 초등학교 아이들과 중학교 학생들이 많았고 그만큼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 배는 언제 출발했는지 엔진이 작동하면서 큰 소음을 냈다.

 

베기스 (Weggis)

 

 

 

 

배는 호수를 가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배가 베기스(Weggis)에 도착했을 때 이 혼잡에서 벗어나려고 무작정 배에서 내렸다. 배는 다시 비츠나우(Vitznau)로 출발했고 나는 그 모습을 선착장에서 바라보았다. 다시 루체른으로 돌아갈 때 비츠나우에서 다시 타야 할 테니까. 지금은 잠시 이른 이별을 했을 뿐이었다.

 

케이블카 탑승장

 

 

 

 

베기스는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도심 거리를 걸어 리기 칼트발드(Gigi Kaltbad)행 케이블카 탑승장까지 왔다. 그러고 보니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와 있었다. 잠시 탑승 차례를 기다린 후 미국에서 온 대학생들, 스위스 초등학생들과 함께 케이블카를 탔다. 5분여간의 케이블카 탑승은 초등학생들의 계속되는 비명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산악기차
추크호수 (Zugersee) 와 도심지
철길 옆 트레일

 

케이블카에서 내린 후 나는 걷기 시작했다. 산악기차를 타면 손쉽게 리기산에 오르겠지만 걸으면서 주변 풍경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오르막이라 발이 무겁게 느껴졌다. 어제 피르스트를 다녀온 후 완전히 몸이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았다.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니 탁 트인 풍경 속에 철길 옆으로 길이 시작되었다. 추크호수(Zugersee)와 도심지가 눈에 보였는데 미세먼지 때문인지 희뿌연 하게 보였다.

 

철길 옆 트레일
리기산

 

리기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바로 옆이 철길인데도 아무런 안전시설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나의 이목을 끌었다. 우리나라는 중대재해법 때문에 철길 옆 걷는 길들이 폐쇄되고 있는데 말이다. 혼자서, 부부끼리, 때론 단체로 길을 걷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철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리기산이 눈에 들어왔다. 지그재그 오르막을 힘겹게 올랐더니 시원한 바람이 내 젖은 옷을 말려줬다.

 

리기산 정상
알프스 설산
리기산 전망대
산악기차
방목중인 소들

 

저 멀리 알프스 설산들이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제 피르스트에서 엄청난 경험 때문에 리기산이 평범하게 느껴졌다. ‘이게 뭐야? 겨우 이 정도 풍경인데 다들 그렇게 좋다고 말했나?’ 사람 마음이 이럴 때 보면 참으로 간사하다.

리기산 정상 주위를 돌면서 주변 풍경을 바라봤다. 알프스 설산에 감동하는 다른 사람들을 뒤로하고 12시에 출발하는 산악기차를 타고 비츠나우로 내려왔다.

 

비츠나우 선착장
유람선

 

유람선을 탔다. 배는 아침에 탔던 배보다는 작았다. 배에 앉을 자리는 없었고 그냥 한 시간가량을 서서 루체른으로 갔다. 다행인 것은 멋진 장면을 목격해서 사진을 찍느라 그럭저럭 시간을 잘 보냈다.

 

카펠교
빈사의 사자상

 

햇살이 뜨거웠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카펠교로 향했다. 1,300년대 목조다리에 들어섰는데 17세기 미술품으로 장식된 대들보와 석조로 만든 물의 탑이 눈에 들어왔다. 루체른 하면 카펠교를 떠올릴 만큼 대표적인 상징물이지만 나는 그저 그늘이라 좋았다.

빈사의 사자상으로 가면서 COOP에서 맥주를 샀다. 사자상 주변은 복원작업 중이었다. 사자상이 보이는 나무 그늘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그래, 이 맛이지!’

 

무제크 성벽
루체른 도심, 로이스강

 

 

 

 

카펠교

 

다시 무제크 성벽까지 걸었다. 한낮에 도심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무제크 성벽은 오래된 성벽이었고 망루에도 오를 수도 있었지만, 창문을 모두 막아놓아 비지땀이 쏟아졌다. ‘왜 창문은 모두 막아놓은 거야? 더워 죽겠네.’ 투명한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로이스강을 건너 도심을 걸었다. 이국적인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왔고 사진을 찍으면서 다시 카펠교를 지나 루체른역으로 왔다.

 

루체른 기차역
브리엔츠 호수

 

인터라켄행 기차를 탔다.

맥주를 마신 후 잠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 잠에서 깨었을 때는 브리엔츠였는데 차창으로 비가 내렸다. 오후가 되면 비가 내리고 한두 시간 지나면 또다시 해가 떴다. 브리엔츠 호수를 보니 수영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기차가 인터라켄에 도착했을 때 비는 폭우로 바꿨었다. 인터라켄 여행을 내일로 미루고 그린델발트행 기차로 바로 갈아탔다.

 

저녁식사
아이거 북벽

 

오늘은 밥을 먹을 생각이다.

COOP에서 치킨커리, 라면, 맥주, 포도주를 샀다. 라면을 끓이는 동안 전자레인지에서 4분간 데운 치킨커리의 냄새가 내 식욕을 자극했다. 포도주를 마시면서 라면과 치킨커리를 먹었다. 식사하면서 지인들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보냈다.

갑자기 롯지의 마스코트 검은 고양이가 내 곁에 앉았다. 고양이가 매개체가 되어 여러 사람이 모이게 되었고 술자리가 벌어졌다. 홍콩, 폴란드, 한국인들과 영어와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11시쯤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전날의 용사들(같은 객실 미국인 3인방)이 술을 마시고 있어 다시 그들과 합류했다. 오늘 무엇을 했고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남은 술을 다 마실 때까지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이렇게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새벽에 바라본 아이거 북벽
조식과 커피한잔

 

스위스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아이거 북벽이 바라다보이는 그린델발트 아이거 롯지에서 새벽에 눈을 떴다. 조용한 새벽을 혼자 다 즐기는 동안 조식 시간이 되었다. 뷔페식 조식은 빵, 샐러드, 치즈, , 시리얼, 과일, 음료, 커피 등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후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까지 즐겼다.

 

그린델발트 시내로 가는 길
식수대
그린델발트 시내에서 바라본 풍경

 

오전 730분경 피르스트(First)를 향해 출발했다.

그린델발트까지는 마을 길을 지나는 오르막이었다. 길가의 식수대에서 물을 담은 후 도로의 인도를 따라 계속 걸었다.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졌다. 거리가 너무 조용해서 건물에 사람이 사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린델발트 시내에 도착하니 그제서야 사람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피르스트 올라가는 길1

 

이정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섰고 본격적인 피르스트 도보여행이 시작되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오르막 경사가 급했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차올랐던 숨은 주변 풍경이 내게 주는 놀라움으로 금방 상쇄되곤 했다.

대부분 사람이 케이블카를 타고 피르스트를 올랐다. 그들은 시간을 돈으로 바꾼 것이고 나는 오늘 하루를 오롯이 피르스트에 투자하기로 했기에 자연을 몸으로 느끼며 걷고 있었다. 머리 위로 케이블카가 지나가고 만년설을 품고 있는 해발 4,048mGross Fiescherhorn이 알프스산맥 사이에서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피르스트 올라가는 길2

 

계속되는 오르막길이 나를 지치게 했지만, 고개만 돌리면 그 힘듦을 잊게 만드는 자연이 만들어낸 절경이 있기에 힘을 더 낼 수 있었다. 길은 케이블카를 중심으로 지그재그로 올라가고 있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더 뜨겁게 내리쬐는 아침 햇살에 그늘이 필요했다. 케이블카가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가 생겨 나에게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고개를 숙였고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는 고개를 쳐들었다.

 

 

 

 

 

피르스트 올라가는 길3

 

절반쯤 올라온 것 같았다.

조그만 호수를 지나 아주 짧은 평탄구간을 걸었다.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는 패러글라이딩이 보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는 것의 쾌감을 알기에 그들의 오늘 하루가 최고의 날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더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길을 돌아가는 게 싫어서 샛길로 접어들었다. 거리가 짧다는 것은 그만큼 경사가 급하다는 의미다. 이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직업병이 발산되었다. ‘. 이쯤이야 금방 올라가지. 헉헉. 죽겠다.’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고 얼굴을 흐르는 땀이 눈으로 들어가 따가웠다. 저 멀리 폭포가 보였다. 나에게 물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식수대에서 세수하고 물을 마셨다. ‘. 살 것 같다.’

 

 

 

 

 

피르스트 올라가는 길4

 

똑같은 풍경이지만 보는 각도가 다르니 새롭게 느껴졌다. 내 발걸음은 저절로 멈췄고 눈은 그 풍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너무 좋다.’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길가에 핀 큰금매화 군락지가 지친 나를 환하게 맞아주었다. 설산과 노란 꽃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빠져 잠시 걸음을 멈췄다. 피르스트가 눈에 보였지만 아직도 남은 거리는 1.5km였다. 눈에 보이는데 길을 돌아서 가야 하니 몸은 더 고대고 마음은 착잡했다.

 

피르스트 올라가는 길5

 

이번에도 샛길로 들어섰다. 뜨거운 햇살은 나를 말려 죽이려는 듯 내리쬐었고 구름은 그런 햇살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드디어 해발 2,168m 피르스트 케이블카 종점에 올라섰다. 아주 힘들게 올라왔지만, 너무 놀라운 신세계를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안나푸르나(ABC)을 포함해 여러 번 외국을 다녀봤지만 피르스트만큼 나에게 찐한 여운을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피르스트 클리프 워크 (First Cliff Walk)
알프스 산맥들
Bergrestaurant First

 

피르스트 클리프 워크(First Cliff Walk)를 걸어 해발 2,200mBergrestaurant First에서 맥주를 마셨다. 나에게 주는 특별한 보상이었다. 언제나 맥주는 첫 모금이 가장 맛있었다. 물론 이곳에서의 맥주 맛은 주변 풍경이 더해져 훨씬 더 풍미가 넘쳤다.

 

바흐알프 호수 (Bachalpsee) 호수가는 길

 

꼭 가보고 싶었던 바흐알프 호수(Bachalpsee)로 향했다. 그곳까지도 먼 거리지만 충분히 다리쉼을 했기에 천천히 움직였다. 설산은 보는 위치가 달라져도 그 매력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그저 얼굴에 울음 꽃이 피었다. 그렇게 쉬다 걷기를 반복하다 바흐알프 호수에 도착했다.

 

바흐알프 호수 (Bachalpsee)

 

 

 

 

빙하가 아직도 녹지 않고 위쪽 호수에 떠 있었다.

아래쪽 호수에는 Wetterhorn(3,692m)Schreckhorn(4,042m)의 설산 풍경이 호수에 비추어져 있었는데 물결의 출렁거림 때문에 선명하지는 않았다. 호수와 설산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앉아 셀카봉을 설치해두고 앉아 있었다. 눈은 연신 호수를 바라보았지만 입은 포도, 사과 등 과일을 먹었다.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오면 언제든 사진을 찍을 생각으로 만발의 준비를 했지만 나에게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큰금매화
애기동국(유럽데이지)
바흐알프 호수 (Bachalpsee)에서 하산하는 길1

 

1시간이 지났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산을 타는 사람이 가진 직감으로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호수 아래 협곡으로 내려갔다. 길은 엉망진창이지만 설산과는 또 다른 풍경이기에 내 흥미를 끄는데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눈앞의 설산과 물길이 자연의 신비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늘엔 여전히 패러글라이딩하는 사람들이 허공을 맴돌았고 하산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엔 안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흐알프 호수 (Bachalpsee)에서 하산하는 길2

 

걸어도 걸어도 길은 끝나지 않았다. 임도와 숲길을 반복해서 걷다보니 아침에 피르스트를 올라갈 때 지나쳤던 갈림길에 도착했다. ‘.’ 한번 지나갔던 길이라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그렇게 30분을 더 내려갔다. 아이거 롯지에 도착했을 때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를 맞지는 않았지만 피르스트에서 조금 더 지체했다면 비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녁식사
같은 객실 미국인 친구들과 파티

 

샤워하고 난 후 COOP을 다녀왔다.

역시 스위스에서는 우산보다 우비가 감성적이었다. 맥주, 포도주, 라면을 샀다. 비가 오니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다. 라면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셨다. 매콤한 국물이 내 몸을 전율하게 했다. 남은 오후 시간은 포도주를 마시며 음악을 들었다. 비가 오는 아이거 북벽을 바라보며 소파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저녁이 되어 남은 포도주를 다 마실 때까지 같은 객실 미국인 친구들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회화를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반성을 남긴 체 하루를 마감했다.

잘츠부르크 중앙역
취리히행 기차 안과 밖의 풍경

 

뜨거운 햇살이 객실의 통창으로 침입했다.

어제저녁에 미리 짐을 챙겨놔서 아침에는 전혀 부산스럽지 않았다. 여느 때보다 여유롭게 샤워를 했고 오전 7시가 지났을 때 3일간 머물렀던 호스텔을 나와 잘츠부르크 중앙역에 왔다. 오늘은 오스트리아에서 스위스로 가는 날이다.

커피와 빵을 샀고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플랫폼 의자에 앉아 먹었다. 4분 연착된 기차를 탔을 때는 많은 사람이 피곤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독일 풍경

 

그렇게 10분이 지났을 뿐인데 기차는 독일을 지나고 있었다. 로밍 문자가 아니었다면 오스트리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새 한 시간가량을 독일을 지나 다시 오스트리아로 들어섰다. 기차는 중간 정차역에서 잠시 멈출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내달렸다.

 

인스부르크
점심식사

 

 

 

 

인스브루크역에 도착할 때쯤 2,334m의 하펠레카르산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사실, 전날의 여행기를 쓰느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어느새 정오가 다된 시각이라 또 빵으로 간단히 한 끼를 해결했다. 기차 안 사람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리히텐슈타인

 

 

 

 

그러는 사이에 기차는 오스트리아 국경을 벗어나 리히텐슈타인에 들어섰다.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유럽의 작은 주권 공국이다. 조금만 더 가면 스위스에 들어서게 된다.

 

 

 

 

포도와 납작복숭아

 

다리를 건너기 전부터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동영상 촬영을 하는 동안 스위스 Buchs에 도착했다. 기차는 이곳에서 7분여를 머물렀다. 스위스 역무원들이 여권 검사를 했고 여행지, 여행 기간 등을 간단히 물어봤다. 이제부터 기차는 스위스를 지나게 된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토록 와보고 싶던 곳이기에 그런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포도와 납작 복숭아를 먹으면서 한껏 흥분된 기분을 가라앉혔다.

 

wallen  호수
추리히 호수
취리히 중앙역

 

기차는 wallen 호수와 취리히 호수를 지났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이색적인 호수 풍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봤다. 기차의 출발은 연착이었지만 정시에 취리히 중앙역에 도착했다. ‘야호, 여기가 취리히다.’

인터라켄 동역행 기차 플랫폼을 확인한 뒤 린덴호프(Lindenhof)로 향했다. 취리히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40분이었다. 시간상 충분히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데도 발걸음이 빨라졌다.

 

반호프 (Bahnhof)
린덴호프

 

 

 

 

반호프(Bahnhof) 거리를 걷다가 린덴호프로 들어섰다.

이곳은 작은 공원으로 리마트강과 구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였다. 기원전 로마 시대에 세관 자리가 요새화되면서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로 더 알려져 있었다.

외국인 부부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어주고 나도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이번 여행 동안 다른 사람이 나를 찍어준 첫 번째 사진이 되었다. 10여 분을 그렇게 성벽에 앉아 있었다. 그로스 뮌스터 사원도 보이고 취리히 중앙도서관도 보였다. 관광객들과 달리 현지인들은 공원 한쪽 모퉁이에서 체스를 두며 일요일 한낮을 보내고 있었다. 작은 공원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린데호프 골목
프라우 뮌스터
그로스 뮌스터
취리히 거리의 사람들
린덴호프
리마트강

 

 

 

 

골목을 계속 걸었다. 프라우 뮌스터 앞 작은 분수에서 귀여운 꼬마가 물놀이하고 있었다. 그로스 뮌스터를 바라보며 뮌스터 다리를 건넜다. 리마트강은 에메랄드빛이었다. 구시가지는 세계의 모든 사람이 모인 듯 들려오는 단어들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말도, 의상도, 너무 다른데 모두가 어느새 조화롭게 도시에 스며들었다. 기차 출발시각보다 일찍 취리히 중앙역으로 돌아왔다. 이제 인터라켄 동역으로 가는 기차만 타면 된다.

 

취리히 중앙역
튠 호수에서 설산을 보다

 

 

 

 

2SBB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이등석 객차의 문이 열리고 나는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스위스는 기차표를 사면 좌석은 아무 곳이나 앉으면 된다. 한마디로 선착순인 셈이다. 항상 고수하는 정방향 좌석에 앉았다. 햇살이 차창으로 들어와 내 살갗에 닿았다. 큰 진동도 없이 기차는 출발했고 스위스 수도인 베른을 지나 튠(Thun)에 도착했을 때 설산을 볼 수 있었다.

 

튠 호수

 

기차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고산 호수인 튠 호수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스피츠(Spiez)에 도착했다. 빙하가 녹아 미네랄이 풍부한 튠 호수에서 사람들은 수영도 하고 일광욕도 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인터라켄에 가까워지면서 기차는 속도를 줄였다.

 

인터라켄 동역

 

 

 

 

그린델발트 터미널

 

아레강을 따라 인터라켄 서역에서 동역까지 기차는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나는 지체 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그린델발트행 기차로 갈아타야 했다. 7번 플랫폼에서 내린 나는 2번 플랫폼까지 쉼 없이 잰걸음을 걸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무거운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달렸다.

기차는 그린델발트를 향해 굴곡진 철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영상으로만 보던 그 장면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30여 분이 지난 후 기차는 그린델발트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이 있는 건물에는 아이거 익스프레스(Eiger Express) 탑승장과 COOP이 있었다.

 

아이거 북벽
아이거 롯지
같은 객실의 일본인과 술한잔
맥주와 아이거 북벽
토카이 포도주와 아이거 북벽

 

아이거 롯지(Eiger Lodge)는 생각보다 큰 규모였다. 물론 장단점은 있지만, 최고는 롯지에서 아이거 북벽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오후 7시까지만 문을 여는 COOP에 가서 맥주를 샀다. 샤워를 먼저하고 같은 객실의 일본인과 함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아이거 북벽을 바라보며 술을 마셨다.

둘의 대화는 원활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여행이라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다. 서로의 사진을 보여주고 번역기까지 동원해서 느리지만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우리는 부다페스트에서 산 토카이 포도주까지 마시며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이거 롯지
아이거 북벽

 

 

 

 

생각보다 밤은 빨리 오지 않았다.

오후 10시가 지나도 세상은 환했다. 객실로 들어가 짐정리를 한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어두워진 밤하늘에 별이 보였다. 꿈에 그리던 이 장소에 내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5번 버스
운터베르그

 

호스텔의 아침은 조용했다.

시끌벅적한 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고요하고 차분한 아침이었다. 낮에는 당연히 덥겠지만 아침 공기는 상쾌하면서도 쌀쌀했다. 숙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5번 버스를 탔다. 어젯밤에 산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안 가본 동네를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이미 들떠 있었다. 종점인 운터베르그 정류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743분이었다.

첫 케이블카를 타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쪽저쪽을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말없이 주변을 거닐었다. 조그만 천이 흐르는 마을 사이로 운터베르그가 조망되었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늘도 물소리와 새소리는 싱그러운 아침을 맞게 하는 동반자였다.

 

운터베르그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풍경

 

 

 

 

잘츠부르크 카드를 이용하여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정확히 오전 830분에 케이블카는 출발했다. 고도를 높이며 올라가는 속도는 일정하지 않았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내려다보이는 모든 것들은 케이블카가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의 1010초를 동영상으로 찍었다. 허공에 뜬 기분이 어떤 느낌인 줄 다들 아실 것이다. 그런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후자다.

 

 

 

 

Hochterthron  정상으로 향하는 길

 

맑은 하늘에 흰 구름이 둥둥 떠다녔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고 입김을 불면 흩어질 것 같이 가깝게 느껴졌다. 부순 돌 같은 자갈이 깔린 길을 걸었다. 운터베르그는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등산 코스가 여러 개 있었다. 어깨에 에코백을 메고, 반바지와 민소매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올라가는 나를 나중에 본 현지인들이 저 녀석은 뭐야!’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웃음 띤 얼굴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내가 한국에서 등산 전문가라는 것을 그들은 모를 테니까.

 

 

 

 

Hochterthron  정상
Hochterthron  정상 풍경

 

설산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는 Hochterthron 정상에서 멀리 2,000m~3,000m의 만년설의 알프스산맥들이 보였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내 몸의 열기를 식혀 주었다. 정상 인근의 의자에 앉아 알프스산맥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모든 게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담자리꽃나무
용담
운터베르그 케이블카

 

지천에 핀 담자리꽃나무, 용담 등 희고, 노랗고, 자줏빛 야생화가 바람에 흔들거리며 나에게 속삭였다. ‘어서 와! 이런 곳은 처음이지.’ ‘잠시라도 즐겁게 쉬었다 가.’ 20여 분을 말없이 즐겼다.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을 때는 너무 아쉬웠다.

나는 해발 1,853m Hochterthron 정상까지만 다녀왔다. 왕복 1시간 거리를 오를 때 15, 하산할 때 10분 걸렸다. 편안하게 등산을 하고 싶었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너무 아쉬웠다. 언젠가 또다시 잘츠부르크에 오게 되면 꼭 등산할 생각이다. 오를 때와는 달리 두 사람과 개 한 마리, 진행요원 그리고 나만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

 

헬브룬궁

 

 

 

 

 

속임수 분수

 

25번 버스를 타고 헬브룬궁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 노란색 벽면이 눈에 들어왔다. 헬브룬궁은 400년전 마르쿠스 시티쿠스 대주교의 속임수 분수로 유명한 곳이다. 헬브룬궁은 성이 아니라 쾌락을 위한 궁전이다. 매표소에서 잘츠부르크 카드로 표를 끊고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예상치 못한 게임의 세계에 참여하게 되었다. 오디오 가이드는 물 기계, 동굴, 분수 등으로 나를 안내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듣느라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낯선 이방인들이 함께 모여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쉰브룬궁 정원

 

게임이 끝나고 정원으로 나왔다. 나무 그늘 의자에 앉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평온하고 좋은 장소였다.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내가 얼마나 분주하고 정신없는 세계에서 살아왔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각자의 삶 속에 여유와 휴식, 이 두 개는 꽃 챙겨가며 살았으면 하는 게 내 작은 바람이다.

 

베트남 음식 - 쌀국수, 새우 롤, 맥주

 

다시 25번 버스를 타고 잘츠부르크 구시가지로 왔다.

베트남 음식점 야외 테라스에서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며 닭고기 쌀국수, 새우 롤을 먹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국물 요리에 고수도 추가하여 먹었다. 매콤함이 당겨 닭고기를 먹을 때는 칠리소스에 찍어 먹었다. 내가 먹는 모습이 맛있게 보였는지 외국 사람들이 하나둘 주변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여주인이 ‘Are you Japanese?’ 묻길래, ‘No, I’m Korean’이라고 말했더니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뜨거운 국물과 매콤함이 몸에 들어가니 한결 몸이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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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안

 

푸니쿨라를 타기 위해 호엔찰츠부르크 성으로 향했다.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용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맨 아래쪽에 탑승하여 출발을 기다렸다. 약간의 흔들림이 출발을 의미했고 48초 만에 성에 도착했다. 구시가지에서 바라볼 때의 성벽처럼 성벽 자체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한 번도 침략을 당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훈터베르그와 그 주변 도심

 

성에서 잘츠부르크를 내려다봤다. 잘자흐강과 중세시대의 건축물 그리고 주변 산들이 조화를 이루며 배치되어 있었다. 박물관 등 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혼잡하고 이동이 쉽지 않았다. 남쪽 전망대에서 아침에 다녀온 운터베르그 주변 풍경을 조망할 수 있었다.

 

모차르트 하우스 박물관

 

도심 거리를 걸었다. 딱히 모차르트 탄생지를 가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금은 하우스 박물관으로 꾸며진 곳을 잘츠부르크 카드를 이용하여 들어갔다. 이곳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나처럼 음악에 관심 없어도 많은 사람이 그 명성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

 

모차르트 마라톤 대회
잘자흐강변

 

오늘은 모차르트 마라톤 대회가 열렸고 잘자흐 강변에는 뜨거운 햇살 아래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주말이 시작된 것이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에는 날짜 관념은 뚜렷하고 요일 관념이 무뎌진다. 어쩐지 도심 거리가 인파로 더욱 북적거렸다.

 

Augustiner Braustubl

 

호스텔로 돌아와 샤워하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 내일 아침이면 스위스로 출발해야 한다. 편하게 휴식을 취하다 오후 6시가 되었을 때 Augustiner Braustubl로 갔다. 굳이 한국말로 표현하면 양조장 주점이다. 이곳은 1621년부터 시작된 오스트리아 최대의 맥주 휴양지다. 주말이라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

 

맥주 사는 법

 

 

 

 

맥주를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줄을 서서 1L 맥주를 산다. 영수증을 들고 줄을 서서 가다가 진열된 곳에서 1L 맥주잔을 들고 씻은 다음 영수증과 함께 맥주잔을 내밀었다. 장인이 참나무통에서 잔 가득 술을 채워 내어준다. 다시 잔을 들고 아무 테이블이나 가서 마시면 된다.

 

Augustiner Braustubl에서의 저녁식사

 

야외에서 마시려다 자리가 없어 실내로 들어갔다. 안주로 감자 칩과 슈니첼을 샀다. 오스트리아에서 마지막 저녁이었다. 혼자지만 주변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맥주를 마셨다. 나는 감자 칩에 맥주 한 모금, 슈니첼 한 조각을 썰어 맥주 한 모금을 반복적으로 마셨다.

주말 밤은 평일보다 더해가 늦게 지는 것 같다.

아쉬움 가득한 시선으로 주변을 걸어 호스텔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의 절반이 이렇게 지났다. 이젠 스위스와 이탈리아 여행만이 남았다. 남은 여행도 활기차고 즐겁게 보내자.

잘츠부르크 중앙역

 

잘츠부르크에서의 이틀째 아침이 밝았다.

어제 빈에서 왔는데 오늘은 할슈타트를 다녀올 생각이다. 오랜만에 마시는 커피를 들고 오전 711분 기차를 탔다. 이른 아침이라 기차는 한산했다. 좌석을 예약하지 않았는데 앉을 자리가 많았다.

 

Attnang-Puchheim 역

 

 

 

 

할슈타트 역

 

오전 84분에 Attnang-Puchheim에서 환승을 한 후 왼쪽 창가에 앉았다. 막 그문덴 역을 지났을 때 왼쪽 차창으로 크라운 호수가 기차의 움직임 속도만큼 영화의 한 프레임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바트이슐 역에 도착했을 때는 기차 안이 소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탔다. 방목한 소의 모습을 찍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을 때 거대한 할슈타트 호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기차는 호수를 왼쪽으로 돌아 할슈타트 역에 도착했다.

 

할슈타트 호수

 

하늘은 흐렸고 바람은 차가웠다.

반바지와 반소매를 입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호수는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줄지어 배에 올랐다. 왕복요금은 7유로였다. 왕복표를 한꺼번에 주기 때문에 표를 무심코 버리면 안 된다.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질 때 운항을 시작했고 5분 남짓 걸려 반대쪽 선착장에 도착했다.

 

할슈타트

 

이곳이 말로만 듣던 할슈타트인가? 첫발을 디디면서 호수와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있는 오래된 주택을 뚫어지라 응시했다. ‘정말 아름답구나!’ 전망대로 이동하는데 도로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조용히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관광지 어디서나 이런 문제들이 발생한다.

 

할슈타트

 

사진을 찍는 순간 예술작품이 탄생했다. 자연과 오래된 건축물이 만들어낸 풍경은 인위적으로는 절대로 만들 수 없었다. 건축물 사이의 좁은 골목을 계속 걸었다. 어떤 곳에는 나무가 집에 기대어 자랐다. 어쩌면 집과 나무는 연리지처럼 한 몸이 된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눈개승마가 집 마당에 피어 있었다. 여러 종류의 꽃, 담쟁이덩굴, 나무가 집을 보호하는 경호원처럼 느껴졌다. 우연히 목제 울타리 사이로 본 다이빙대가 호수를 풀장처럼 이용하는 사람은 누구일지 부러웠다.

 

소금광산 올라가는 등산로

 

좁은 계단을 올랐다.

오르다 보니 임도와 만났고 임도를 걷다가 소금광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발견했다. 등산로는 녹음이 진 숲 터널처럼 지그재그로 오르막을 올랐고 새소리가 끊이지 않고 숲에 메아리쳤다. 숲길에는 미나리아재비, 러브 풍로초, 몬타나 수레국화 등과 이름 모를 야생화가 피어 나를 맞아 주었다. 그렇게 20여 분을 혼자 걷다가 앞서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아이를 등에 태우고 아버지가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이가 이 순간을 기억해야 할 텐데.’

 

스카이워크

 

 

 

 

 

 

10여 분이 더 지나 스카이워크에 도착했다. 사방이 탁 트인 스카이워크 끝에 서서 기암절벽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와 거기에 기대어 사는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바로 세계문화유산 할슈타트의 모습이다.’ 더 이상의 수식어는 필요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면 된다.

 

할슈타트
스카이워크
소금광산
푸니쿨라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맥주 한 모금 마시고 풍경을 안주 삼았다. 풍류는 이런 장소에서 즐기는 것이다. 세상 최고의 테라스는 바로 여기였다. 푸니콜라를 타고 올라왔다면 이런 정도의 감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몸을 움직여 힘들 때 느끼는 감정은 그렇지 않을 때의 감정보다 무한대로 감상적인 상태가 된다. 1시간 동안 그렇게 앉아 있다가 올라왔던 그 길로 하산을 했다.

 

식수대
계곡

 

 

 

 

어느덧 햇살이 뜨겁게 느껴졌다.

마을 사이로 호수로 흘러들어오는 물줄기를 따라 걸었다. 마을을 걷는 것 자체가 좋았다. 맑고 투명한 물소리가 발걸음에 리듬감을 실어줬다. 숲에 들어가기 전 식수를 채웠고 잘 정비된 숲길을 따라 숲속을 걸어갔다. 계곡 물소리는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하면서 연주를 시작했고 새들은 다양한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폭포가는 숲길
할슈타트 폭포

 

대부분 숲길이 평탄했다. 폭포로 향하는 숲길만 오르막 경사였다. 숲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꼈고 물소리의 청량감이 마음을 정화해줬다. 폭포는 2개였다. 왼쪽 폭포는 굵고 강렬하게 물줄기를 쏟아냈고 오른쪽 폭포는 높은 곳에서 좁고 길게 물줄기를 쏟아냈다. 폭포를 보고 있으니 입을 벌려 그대로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자연은 이렇게 신비로운 존재다.

 

한적한 마을

 

 

 

 

할슈타트
할슈타트 호수

 

숲에서 나와 한적한 마을을 거닐었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을 바라봤다. 내가 가까이 다가서도 도망치지 않고 연신 풀을 뜯었다. 번화가에 다시 들어섰다. 거리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줄지 않았다. 오후 415분 배를 타러 선착장으로 갔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더니 호수에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비가 내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게 비를 뿌렸다. 건물 처마 아래에서 우비를 입고 바람 방향과 반대로 서서 고개를 숙였다. 조금이나마 비를 덜 맞으려는 나의 행동이었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관광객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다행히 제시간에 배를 탔고 건너편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트라운 호수
Attnang-Puchheim 역, 독일행 기차

 

기차는 4분 연착했다.

이때까지도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환승역인 Attnang-Puchheim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OBB 앱으로 오스트리아 기차를 예약했는데 오후 61분에 도착한 독일 기차를 탄 것이다. 환승 출발 시각이 같았고 플랫폼도 같아서 아무런 의심 없이 기차에 올랐다. 이층 기차에 식당칸까지 있어 너무 좋았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의자에 앉았다. 승무원이 와서 표 검사를 하기 전까지도 내가 기차를 잘못 탄 것을 알지 못했다. OBB 앱으로 확인한 결과 기차는 8분 연착된 사실을 그때야 알았다. 역무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현장에서 17.2유로를 주고 기차표를 다시 구매했다. OBB 앱으로 예약한 할슈타트 왕복 기차요금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저녁값을 날렸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논스톱 쾌속 기차라 잘츠부르크에 30여 분 만에 도착했다.

 

무지개
호텔 자허
잘자흐강 야경
미라벨정원 야경

 

호스텔에 와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내일 사용할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러 호텔 자허 잘츠부르크로 갔다. 잠시 멈췄던 비는 또다시 내렸고 야경을 보겠다는 내 굳은 의지를 꺾어버렸다. 맥주를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와 테라스에서 마셨다.

오늘 하루는 역동적인 하루를 보냈다. 객실에 들어서는데 어둠 속에 코를 고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모두 힘들었구나!’ 서둘러 양치만 하고 침대에 누웠다. 카톡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지인들에게 보내고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Do step inn Hostel

 

밤은 더웠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았고 조그만 선풍기만이 문 앞에서 헐떡이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샤워하는데 찬물이 머리카락을 통해 온몸으로 미끄러져 갈 때의 짜릿함이 더위를 가시게 했다.

기차 시간까지 특별한 일이 없기에 어제의 여행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인적이 없던 거리는 오전 6시가 지나면서 이따금 사람들의 발걸음이 보였다. 호스텔 통창으로 바라본 거리는 분주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빈 중앙역
잘츠부르크행 기차

 

9시가 지났을 때 빈 중앙역에 왔다.

다들 어디를 가는지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나만이 느긋하게 사람들을 구경하며 서 있었다. 이미 OBB 앱으로 확인했지만, 기차역 전광판을 통해 탑승 플랫폼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오스트리아에서 기차 타는 방법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차는 출발시각보다 15분 일찍 플랫폼에 들어왔다. 내 좌석에 앉아 아침에 산 빵을 먹었다. , 이젠 빵에도 적응이 끝난 것 같았다.

 

잘츠부르크 중앙역

 

정시에 기차는 출발했고 좌석은 텅 비었다.

좌석 간격이 좁아 앞에 사람이 탑승할 경우 매우 비좁은데 잘츠부르크까지 아무도 타지 않았다. 이제는 어떤 감흥조차 일어나지 않는 창밖 풍경을 안주로 삼아 맥주를 마셨다. 딱히 입에 잘 맞는 맥주는 아니지만, 노란색 캔에 괜스레 끌려 집어 든 것이다. 기차는 2시간 50여 분을 달려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역 밖으로 막 나왔을 때의 느낌은 너무 시골스러운데.’였다.

 

Wolfgang's managed by a&o
세탁실
객실

 

호스텔의 체크인은 오후 3시였다.

일찍 도착한 나는 리셉션의 도움으로 옷 세탁을 먼저 시작했다. 세탁하고 건조까지 거의 2시간이 걸렸다. 요금은 세탁 4.5유로, 건조 4유로로 총 8.5유로를 카드로 결제했다. 이번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 빨래하는 날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더 이상의 빨래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빨래를 마치니 체크인 시간이 되었다.

배정받은 객실은 탁 트인 통창이 있는 넓은 객실이었다. 내부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있는 그야말로 웬만한 시설은 다 갖춘 좋은 객실이었다.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다른 투숙객이 들어왔다. 그는 한국인이었다. 여행 중 처음으로 한국인과 함께 객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미라벨 정원, 사운드 오브 뮤직

 

호스텔을 나왔다.

루틴처럼 지리를 익히려고 미라벨 정원으로 향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인 미라벨 정원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다. 계단 위에서 바라본 페가수스 청동상, 미라벨 정원, 호엔찰츠부르크 성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그게 전부였다. 빈에서 쇤브룬 궁을 다녀온 후부터는 다른 왕실의 정원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마르코 파인골트 다리에서 바라본 잘자흐강 유람선

 

 

 

잘차흐강이 흐르는 마르코 파인골트 다리를 지났다. 강변은 다리, 중세건물, 호엔잘츠부르크 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야경명소였다. 유람선이 출발하려고 헤사 다리 위에서 동영상을 찍었다. 다리 난간에는 자물쇠가 가득 매달려 있다. 세계 어느 곳이든 비슷한 것은 있었다.

 

Getreidegasse
모차르트 동상
호엔잘츠부르크 성
마차

 

 

 

간판이 아름다운 Getreidegasse를 걸었다. 중세시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간판을 만들었다고 한다. Getreidegasse를 지나 모차르트 광장에 도착했다. 중세마차가 관광객을 태우고 좁은 골목을 돌아다녔다. 나는 현재를 살고 있는데 이곳 거리는 마치 중세시대 거리처럼 인식되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오르는 푸니쿨라 탑승장을 지나 모차르트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아직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지 않은 나는 지금은 입장할 수 없었다.

 

 

Getreidegasse에서 바라본 성 블라시우스 교회

 

홨던 길을 거슬러 호스텔로 돌아왔다.

Getreidegasse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객실 동료와 호스텔 야외 테라스에서 각자 준비한 맥주를 마시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침묵하고 지내다가 한국어로 대화를 하니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9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아 우리의 이야기는 해가 진 10시까지 계속되었다. 내일 아침에 할슈타트를 가는 나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 객실, 새 침대에서 잘츠부르크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빈 1일 교통권
빈의 교통표지판

 

한가한 아침을 맞았다.

공기는 평소보다 빠르게 데워졌고 아침부터 빠르게 상상을 달구고 있었다. Billa에서 산 빵으로 늦은 아침을 먹고 호스텔을 나왔다. 오늘은 빈 1일 교통권을 끊어 빈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생각이다.

호스텔을 나오면 오른쪽에 지하철 입구가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와 교통권 판매기에서 1일권을 8유로에 끊었다. 빈은 지하철(U), 노면전차(숫자나 알파벳), 버스(숫자 뒤 A) 등의 대중교통이 있다. 지하철은 우리의 지하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타거나 내릴 때 버튼을 눌러서 직접 문을 열어야 한다는 점만은 확연히 달랐다.

 

노면전차
빈 의회의사당

 

지하철로 네 정거장인 Schwedenplatz 역으로 가서 노면전차로 갈아탔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예전 성벽이 있던 자리를 허물고 그 자리에 노면전차 노선을 만들었다. 1, 2번 노면전차를 타고 한 바퀴 돌면 유명 관광지나 빈의 관공서 등을 짧은 시간 안에 둘러볼 수 있었다.

1번 노면전차를 타고 가다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에서 내렸다. 방송 촬영하는 장면을 우연히 발견해서 사진기로 찍었는데 갑자기 방송하던 여기자가 핸드폰으로 내 사진을 찍었다. 얼떨결에 서로를 쳐다보면 웃었다.

 

D 번 노면전차 종점, beethovengang
베토벤 동상

 

 

 

 

 

 

산책하는 현지인

 

이곳에서 D번 노면전차를 탔다.

종점까지 노면전차를 타고 가서 Kahlenberg까지 걸어갈 생각이다. 한국인들이 전혀 찾지 않는 곳이고 외국인들도 잘 모르는 그런 곳이다. 노면전차 종점에는 베토벤 전원 교향곡 6번의 모티브가 된 베토벤 산책길이 있고 Kahlenberg는 빈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다. 마을길 같은 산책길을 마음을 활짝 열고 천천히 걸었다. 클래식에 무지한 나도 전원교향곡 6번은 들어봤다.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비록 나이가 들어 걸음은 느리지만 친구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은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포도밭
산책중인 개

 

평탄한 길에서 경사지로 접어들면 주변 풍경이 바꿨다. 주변이 온통 포도밭이었다. 이곳은 빈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 중 한 곳이다. 포도밭이 나오면서 그늘은 없지만, 포도밭 풍경과 어우러진 전원이 삶이 평화롭게 보였다. 걷다 보면 개와 함께 산책 중인 현지인들을 자주 만났다. 개도 더웠는지 계곡에 풍덩 뛰어들더니 기분이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덕에서 포도밭과 빈 시가지를 조망
자전거 타는 사람들

 

갈림길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아침에 여기서 마시려고 일부러 사 온 오스트리아 캔맥주다. 포도밭과 빈시가지를 확 트인 공간에서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는 호사로움을 잠시 누렸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이곳도 사람들이 운동을 많이 했다. 이곳은 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봐도 자전거 타기 정말로 좋은 장소였다.

 

 

 

 

Kahlenberg 전망대
38A 버스

 

어느덧 전망대에 도착했다.

도나우강과 빈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라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였다. 물론 38A 버스가 이곳까지 운행했지만 나는 일부러 걸으려고 버스를 타지 않았다. 결과론적으로 걷기를 선택한 것이 잘했다. 버스를 탔으면 내가 보고 느낀 자연을 전혀 몰랐을 테니까.

12시가 되어서 38A 버스를 탔다.

 

Zum Martin Sepp

 

Heuriger라는 빈 전통음식을 먹기 위해 Zum Martin Sepp에 갔다. 이곳은 Martins라는 이름의 하우스 포도주와 Heuriger를 뷔페식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식당이고 한국인들도 가끔 찾아오는 곳이었다. Heuriger는 다양한 고기요리에 소시지, 감자, 배추절임 등이 제공되는 빈의 전통음식이다. Heuriger는 포도주와 함께 마시면 입맛 까다로운 사람도 무난하게 먹을 수 있었다.

나는 Martins 포도주 중 하나를 추천받았다. 드라이 화이트 포도주인데 고기를 먹고 마시면 입안을 개운하게 해 주었다. 뷔페라 나도 모르게 과식을 하게 되었다. 뷔페 가격은 14.9유로이고 포도주는 별도 계산해야 한다. 빈에 오면 다른 음식보다 Heuriger를 꼭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만드는 음식이었다. 포만감으로 행복해진 나는 노면전차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호스텔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빈 시청사
부르크극장 앞 마차
식수대
슈테판 대성당

 

오후 5시가 넘어 다시 호스텔을 나왔다.

빈에 머물면서 안가면 후회할 것 같아 쇤브룬 궁에 갈 생각이다. 가는 도중에 시청사에 잠시 들렸다. 3천만 개의 벽돌로 지은 건축물이 성탑처럼 거대하고 웅장했다. 오늘도 빈 도심은 중세시대처럼 마차가 도로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현대에서 과거의 삶 속으로 마차를 타고 들어가는 상상을 해 봤다.

우리나라에는 있고 빈에는 없는 비엔나커피, 유명한 카페를 앞에 두고 들어가지 않았다. 커피는 아침에 마셔야 제맛이지. 갈증이 나 물을 샀다. 그러고 보니 물 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도심 중간에 식수대가 있었고 일반 가정에서는 그냥 수돗물을 마신다고 했다. 앞으로는 나도 식수대를 이용할 생각이다.

 

쇤브룬 궁

 

지하철 U4를 타고 쇤브룬 궁으로 갔다.

지도를 보니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짧은 시간에 어디를 어떻게 둘러보아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일단 정원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잔디에 물을 주는 기계가 작동되고 있었다. 나무터널에는 빛의 어우러짐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미로 속 나무터널이었다. 현지인들에게는 그냥 평범한 동네 공원이지만 나 같은 외국 관광객에게는 동경의 장소였다. 정원의 나무는 끊임없이 관리되고 있었다.

 

 

 

 

쇤브룬 궁

 

 

 

 

 

8시가 지나도 해는 지지 않았다.

쇤브룬 궁과 언덕 위 cafe Glorieffe 건물 사이가 환상적이라서 이곳을 오가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겼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여도 두 눈에 담은 풍경과 똑같은 아름다움을 담을 수는 없었다. 유유자적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도 아깝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왜 쇤브룬 궁을 맨 나중에 방문했는지 후회하며 호스텔로 돌아왔다.

 

케밥

 

오후 10시가 지나니 출출하여 호스텔 앞 식당에서 케밥을 샀다.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는 동안 부다페스트에서 산 토카이 포도주와 함께 먹었다. 빈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Good Night’

Flixbus 정류장, 빈

 

 

 

 

새벽에 홀로 깨어 좁은 공간의 침대에서 넓은 창문을 바라봤다. 녹색의 잎이 얼마나 무거운지 가지가 땅으로 휘어져 포물선을 그렸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떠들고 있었다. 오전 6시가 지날 때까지 침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긴바지를 입고 Flixbus 정류장으로 갔다.

오늘은 슬로바키아 수도인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날이다.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브라티슬라바는 빈에서 1시간 2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버스는 빈 공항을 거쳐 달리던 속도 그대로 국경을 지나쳤다. 어떠한 검문검색도 없었다. 이윽고 버스는 Most SNP에서 멈췄다.

 

조형물
골목계단
Most SNP 다리

 

 

 

 

브라티슬라바 성
브라티슬라바 정원

 

또 다른 나라에 발을 디뎠다.

일주일 만에 4개국이다. 낯선 곳이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은 장소처럼 여겨졌다. 눈앞에 보이는 브라티슬라바성으로 향했다. 초입 부분에 조형물이 서 있는데 Most SNP 다리건설로 사라진 시나고그 탑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성이다 보니 당연히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야 했다.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길 계단에 그늘이 져서 시원했다. 성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힘도 들지 않았다. 브라티슬라바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고 특히 Most SNP 다리가 눈에 띄었다. 성은 천천히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성 뒤편 바로크 양식의 정원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브라티슬라바 성벽마을
성 마르틴 대성당
성 마르틴 대성당 앞 광장

 

 

 

 

성에서 내려와 중세시대의 성벽이 남아 있는 곳을 지났다. 현대와 중세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었다. 중세 성벽을 걷다 보면 고딕 양식의 성탑이 있는 성 마르틴 대성당이 나왔다. 성탑은 도시방어의 요새로도 사용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었다. 내부는 엄숙한 분위기였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은은하게 내부에 퍼져나갔다.

 

구시가광장
청동 조각상

 

구시가지에 들어섰다.

많은 단체관광객이 구시가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다 보니 관광지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었다. 식당들이 영업을 시작했고 야외 테라스에는 커피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파리의 개선문과 비교하면 허접해 보이는 미카엘 문을 통해 예전 사람들은 구시가지로 들어왔다. 이색적인 청동 조각상을 마주했다면 구시가지 광장에 서 있는 것이다. 광장은 만남의 장소였고 평화로웠다. 구시가지는 작은 규모이지만 건물 사이의 골목들이 아기자기하고 특색 있었다.

 

Jasmin  식당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브라티슬라바성 밑에 있는 Jasmin 식당에 갔다. 중국 요리전문점이라 당면, 채소, 달걀, 두부를 넣은 볶음면과 생맥주를 주문했다. 중세 성벽을 마주하고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했다. 간장과 칠리소스를 첨가하면서 연신 젓가락질을 했다. 일주일 만에 매콤한 것이 몸에 들어가니 숨죽여 지내던 몸의 피들이 들끓는 듯 용솟음치고 있었다. 맥주까지 마셨는데 겨우 12.9유로 나왔다.

 

 

 

 

 

공원 의자

 

국립극장에서 Most SNP 버스 정류장까지는 공원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거진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쉼터로서 좋은 장소였다. 식당가를 따라 나무 아래 의자들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의자에 앉아 Billa에서 사 온 맥주를 마시며 포도를 먹었다. 외국에서 이렇게 한적하게 쉬고 있는 나 자신이 좋았다. 그렇게 1시간 넘게 앉아 있었고 나만 아이스크림을 안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기부터 노인까지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선 맥주를 마시는 내 모습이 더 이상했을 것이다.

 

구도심
아이스크림

 

다시 구도심을 걸었다.

빈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도 아이스크림을 샀다. 콘에 파스타치오와 브라우니 두 종류를 올렸다. 가격이 4유로인데 맥주와 포도 가격의 2배였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아이스크림이 빨리 녹아 연신 혓바닥으로 빨아 먹어야 했다. 아이스크림이 딱히 맛있는 건 아니고 여름이니까 먹는 것 같았다. 난 맥주가 훨씬 더 좋다.

 

Most SNP  다리
Most SNP  다리에서 바라본 강가와 브라티슬라바 성

 

Most SNP 다리를 한 바퀴 돌고 Flixbus를 탔다.

꾸벅꾸벅 졸다 보니 어느새 빈에 도착했다.

 

알베르티나
왕궁 정원, 모짜르트 동상
호프부르크 왕궁
성 슈테판 대성당
오레파극장

 

호스텔로 돌아와 샤워한 후 맛보기 빈 도심 여행을 떠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이동했다. 많은 서양 음악가들이 이곳을 본거지로 삼은 이유를 아주 조금 알 것 같았다. 오페라극장을 가는 도중에 우연히 발견한 Naschmarkt가 인상적이었다. 역시 시장은 꼭 방문해야 한다.

오페라극장을 시작으로 알베르티나, 왕궁 정원, 호프부르크 왕궁, 마리아테레지아 광장에서 성 슈테판 대성당까지 짧은 시간 동안 돌아보았다. 빈 여행은 내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오후 9시가 넘으니 가스등이 켜지고 도심의 상가는 하나둘 문을 닫았다. 어둠과 조명 사이에 중간 빛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빈의 밤은 그렇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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