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다.

어느 순간 찾아온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파리를 쫓아내듯 무더위를 손으로 쫓아낼 수는 없다.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에 서서 바람이 불기를 기다린다. 바람이 불지 않아 연신 손부채를 흔든다. 온몸은 땀범벅이 되지만 시원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잰걸음으로 인도를 벗어난다.

늘 다니던 도서관 건물에 들어서니 서늘한 바람이 내 몸을 감싼다. 정수기로 가서 시원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이제야 얼굴에 화색이 돌고 몸의 열기가 식기 시작한다. 무더운 한낮에는 도서관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책을 읽는다. 한여름에는 이 맛에 도서관을 찾는다.

 

느릅나무 보호수(대관령면 차항2리)
대관령면 바우파머스몰

 

며칠째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하루의 마감은 안경을 벗고 눈을 감는 순간이다. 평소에는 머리가 베개에 닿으면 바로 잠이 든다. 요즘은 열대야로 한숨도 자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고 있다. 더위를 잠시나마 잊으려고 선풍기 바람에 몸을 의지하지만 헛수고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은 열심히 살지 않은 하루에 대한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곤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세상을 초록빛으로 물들여 놓고 7월은 저물었다.

휴가철의 시작과 함께 건조하고 메마른 날씨가 더욱 더위를 부추기고 있는 8월이 시작되었다. 하늘은 아침부터 흐리고 도시를 둘러싼 산자락엔 먹장구름이 가득한데 기다리던 비는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마당에 어머니가 가꾸는 화분의 꽃들은 각양각색으로 싱그럽게 피어있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죽음의 살기를 느끼며 여름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계절임을 실감 중이다.

 

능소화
해당화

 

타닥타닥 타닥타닥

비가 온다. 빗방울이 지붕에 부딪히는 소리가 열린 창문을 통해 귓가에 들린다. 8월 장마가 시작되었다. 처마 안쪽에 우두커니 서서 지붕을 타고 대아에 떨어지는 물줄기의 정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비가 만들어낸 소리 이외엔 아무 소리도, 아무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빗소리만이 세상에 가득하다.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었다.

입추가 지나면서 여름이 가고, 때늦은 폭우가 쏟아지면서 가을이 찾아왔다. 폭우가 동반한 강풍에 아직 익지 못한 감나무 열매가 땅에 내던져졌다. 서럽게 슬픈 모습이고, 허탈하고 허무한 감정이 일었다.

 

비 오는 날 우리집 마당 정경

 

비 오는 거리를 걷는다.

나뭇가지가 속절없이 흔들리면 내 마음도 같이 흔들거린다. 빗속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바람의 떨림에 두둥실 떠다니는 뭉게구름처럼 미지의 곳을 여행하고 다닌다. 방랑의 길은 언제나 즐겁고 소중한 경험이다.

비가 내린 후부터 시간마다 바람의 냄새가 달랐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 맺혀 있던 빗방울이 아래로 떨어진다. 흙이 젖고, 도로가 젖고, 세상이 촉촉해지는 정경이 색다르게 보인다. 문득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 비 오는 거리의 꿉꿉함보다 커피숍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껴본다. 창밖의 비를 보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비 오는 거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늘이 온통 짙은 회색빛이다.

먹장구름에서 시작된 비가 내 발끝을 스치고 땅에 떨어진다. 일주일이나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열대야로 못 자고 깨어 있던 밤의 시간만큼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세상은 얼마 동안 목욕을 하지 않은 걸까?

비가 온 뒤 후텁지근한 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지듯 세상의 모든 묵은 때를 깨끗하게 씻어내고 있다. 금방 세상이 깨끗할 것 같았는데 비로 씻어내면 낼수록 세상이라는 욕조는 더욱 더러워지고 있다. 언제쯤 그 목욕이 끝날는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세상이 다시 화사한 빛을 발산할 때까지 우리는 굳건히 버텨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비가 갠 후 세상 참 깨끗하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울진 망양정
울진 망양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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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뜨거운 열기가 몰려왔다.

오전의 햇빛이 냉장고 속 상추처럼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은 것이라면 오후의 햇빛은 젖은 수건을 골판지같이 딱딱하게 바싹 말린 것이다.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녹아내린 듯한 뜨거운 날씨였다.

나는 방 한쪽 벽에 기대어 앉았다.

주말이지만 밖에도 나가지 않고 텔레비전을 켰다. 프로야구 중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한화이글스가 9연패의 사슬을 끊고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떠들어 댔다. 텔레비전의 소음과 달리 집은 고요하고 모든 것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 햇볕을 쬐며 길을 걸었다.

여행이라도 온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계속 걸었다. 낯선 장소를 지나온 내 자취는 벌써 햇빛에 말라버려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푸르렀던 하늘빛은 시간이 지나면서 엷은 주황색에서 짙은 보라색으로 물들어 갔다. 도로의 이팝나무는 바람에 흔들려 흰 꽃을 떨구는데 18개월을 길러온 내 머리카락은 전혀 흩날리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인도를 걸었다.

길을 걸을 때마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냄새가 났다. 요란스럽게 질주하는 차량의 움직임과 함께 강력한 돌풍이 내 머리칼을 날려버렸다. 후텁지근하고 기름 냄새나는 바람이었다.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청년기를 지나 이제 막 장년기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처럼 오십 대가 되어도 여전히 혼자 여행을 다니려고 노력 중이다. 어제의 다음 날인 오늘은 내가 여행을 떠나려고 생각한 미지의 내일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대도시를 벗어나 적당한 소음만이 존재하는 평화로운 장소이다. 그 장소가 농촌이든, 산이든, 섬이든 상관없다. 내가 늘 접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그런 곳에서는 호흡도, 걸음도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내 속에 감춰져 있던 본능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나는 일출보다 석양을 좋아한다.

새벽의 어둠이 밝으므로 변하는 시간보다 저녁의 어스름이 어둠으로 변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새벽은 모든 것이 잠들어 있어 고요하지만, 저녁은 모든 것에 생명력이 깃들어 있어 시끌벅적하다. 24시간이 지났다. 나는 일출과 석양을 같은 공간에서 맞이했다.

머무름은 완벽했다.

내가 머물렀던 자리에 내 몸 크기만큼의 여백이 생겼다. 그 여백에 내 흔적이 남아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려고 늘 노력 중이다. 오늘도 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낯선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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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파도에 간 적이 있다.

청보리의 흔들림으로 바람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어디에 서 있든 바람이 속삭였다. ‘네 인생을 나에게 맡겨볼래.’ 나는 단호하게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청보리는 자신의 짧은 인생을 바람에 맡겼다. 중심을 잡지 못하는 청보리 인생, 바람이 사라질 때까지 그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다.

햇살이 넓은 청보리밭을 비췄다.

바람을 타고 청보리가 외치는 아우성이 들려왔다. 나는 아우성을 잘 들으려고 주의를 집중했다.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해야 했는데.’

 

제주 가파도

 

지금 모습이 초라하다고 결코 좌절해서는 안 된다.

남과 비교하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내 인생을 확신하게 되면 그 길로 가자는 결심을 할 수 있다.

나의 젊은 날을 회상하면 하루하루가 힘겹고 괴로운 일상이었다.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씁쓸한 일상이 토대가 되어 지금의 내 인생이 되었다. 마음의 응어리가 사라진 후에 어른이 되었고 비로소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인생은 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누구나 고민과 번뇌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은 마음을 찾는 과정이다. 마음이 흔들리면 짧은 인생은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내가 걸어가야 할 인생은 내적 자신과의 진실한 교감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내가 진심으로 결정한 일은 그 누구도 좌지우지할 수 없어야 한다.

나는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인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스스로 생각한 것을 스스로 판단하여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지다. 자유의지로 이룬 것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자유의지를 믿으며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내 인생의 설계자는 나이기 때문이다.

 

제주 함덕서우봉해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매달린다. 그런 순간의 행복 따위는 인생의 행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순간의 행복은 단지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루를 소중히 여기면 인생이 소중해진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노력하면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는다. 잠에서 깨면 굳은 결심을 해 보자. 굳은 결심이 후회라는 적을 물리친다. 인생의 행복은 주거나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화천 딴산 자작나무

 

인간관계는 줄다리기다.

한쪽이 힘이 세서 일방적으로 끌거나 끌리기만 한다면 그 관계는 유지될 수 없다. 서로 밀고 당기는 과정이 유지되어야 인간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똑똑한 관계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관계는 내가 선택하고 상대가 선택한 인생의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크게 가치를 느끼는 것을 내줄 때 인간관계는 최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화천 딴산 출렁다리

 

매 순간의 선택이 내 인생을 좌우한다.

긴 인생의 여정에는 언제 닥칠지 모를 무수한 상황이 발생한다. 언제나 유연성을 가지고 과감한 궤도수정이 필요하다. 목표를 설정하고 실천 계획을 세워야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실망감을 느끼기보다는 소신껏 목표지점까지 걸어야 한다.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산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마음의 평화로움이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곧 행복이다.

 

제주 위미 동백나무군락지

 

내가 좋아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 누구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에 대해 늘 생각한다. 뭐든지 내가 편하고 좋아하면 그만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소신에 따라 당당하게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좋거나 싫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살아간다. 내 가치관은 내가 지켜야 한다. 감정표현을 두려워하면 자신의 삶을 지키지 못한다.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맞춰 살고 있다. 남을 의식하기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좋아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을 때만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지만 싫어하는 것은 일절 하지 않는다.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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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월요일 새벽이다.

내가 다시 인제에 온 것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마침내 백두대간(조침령~구룡령)을 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다섯 시에 잠에서 깨어나 샤워를 마치고 창문의 커튼을 열었다. 동이 뜨기 전이지만 오늘 날씨가 썩 좋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호텔을 나섰다.

나뭇가지를 흔들리게 만든 바람이 내 얼굴도 스치고 지나갔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바람은 여전히 밉살맞게 불었다. 아침을 먹는 동안 날이 밝았다. 차를 타고 인제에서 출발하여 조침령으로 향했다. 내린천 변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눈이 내리듯 흩날렸다. 바람은 찾아온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생떼를 부렸다.

 

인제 - 스카이락호텔

 

조침령에 도착했다.

바람은 인제에서보다 더 밉살스럽게 불었다. 가까이 있는 CCTV 스피커에서 연신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하늘에는 봄의 어떤 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다 탄 나무의 재처럼 그저 옅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환하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바람이 불면 쌀쌀했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더위를 느꼈다. 아침 기온은 높았지만 바람이 불어서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에어컨을 켠 차 안에서 얼음이 가득한 냉커피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백두대간 조침령

 

너는 가고 나는 본다.

우리는 조침령에서 서남쪽으로 나아갔다. 20m마다 측량을 하면서 백두대간을 걸었다. 네가 폴을 들고 20m를 걸어가면 나는 측량한 것을 기록한 후 너의 뒤를 쫓아갔다. 측량하는 동안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의 행동을 쳐다만 볼 뿐이다.

너와 내가 떨어질 수 있는 최대 거리는 20m이다.

이름도 없는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걸어갔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네가 남기고 간 자취는 내 피부에 와 닿았다. 노면이 다 드러난 흙길 위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등산로 주변에는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 향기가 가득 차 있다.

 

숲길 측량

 

처음 뵙겠습니다.

내가 노루귀를 발견한 것은 오전 열한 시였다. 백두대간 갈림길에서 길의 흔적을 찾아 우거진 조릿대 숲을 걷고 있었다. 어깨까지 올라온 조릿대를 손으로 밀어낸 순간 그곳에 노루귀가 있었다. 별다른 특징이 있는 노루귀는 아니었다. 봄이면 산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노루귀였다.

낙엽 속에 숨어있었다.

내가 얼레지를 발견한 것은 오후 한 시였다. 낙엽 속에 있어 오히려 그 존재가 눈에 띄었다. 분홍색 꽃잎이 뒤로 말린체 도도하게 서 있었다. 녹색의 잎은 흙탕물이 튄 것처럼 군데군데 자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얼레지는 무방비한 구석이 있다. 등산로에 자란 엘레지를 실수로 밟게 되어 나를 당황케 했다. 언제나 미안하다.

 

노루귀
얼레지

 

시간을 들인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산에 온 목적에 맞게 백두대간을 걸었다. 20m마다 측량을 하면서 걷다 보니 오늘 하루 4.8km밖에 못 왔다. 속도는 느렸지만, 그만큼 산에 더 많은 애정을 품은 시간이었다. 내일 다시 이곳에서부터 측량을 시작해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숲은 평온함에 빠져 있었다.

산불통제 기간이라 허가 없이는 백두대간(조침령~구룡령)을 다닐 수 없다. 인적없는 숲에는 야생화, 계곡, 폭포 등 극적인 요소들이 언제나 숨어있었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미줄처럼 치밀할 정도로 잘 짜여 있었다. 내일 다시 이곳을 지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형이상적인 봄의 화원을 소리 없이 걸었다. 아주 길고 넓은 꽃밭으로, 그곳에는 얼레지, 바람꽃, 제비꽃, 현호색, 괭이눈, 노루귀 등의 다양한 야생화가 파도치고 있었다. 꽃냄새와 더불어 물 냄새가 났다. 바위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속삭이고 있었다.

계곡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건조한 대기의 냄새가 났다. 나무의 잎사귀는 햇빛을 한껏 받았지만 메마름보다 촉촉함이 느껴졌다. 땀이 흐를 정도로 더웠다. 나는 바위 사이에 다리를 딛고 허리를 숙여 세수했다. 두 손을 오므려 계곡물을 담아 얼굴로 가져갔다. 몇 번이나 그렇게 했다. 어느새 땀은 물로 대체되었다.

 

바람꽃
얼레지
현호색
고비
괭이눈
처녀치마
연영초

 

봄의 어느 맑은 오후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기온이 쑥쑥 올라갔다.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에서 노란 꽃이 완벽하게 핀 한계령풀을 발견했다. 봄만큼 화사한 한계령풀이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누런 낙엽 사이에서 초록빛 풀 사이에서. 노란 꽃은 초록의 잎과 줄기에 대비되어 더 멋져 보였다. 한계령풀은 순도 100%의 황금색 꽃을 가졌다.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계령풀을 본 적이 있는가? . 있다. 작년 이맘때 곰배령에서 한계령풀을 처음 보았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의 비옥한 토양이었다. 한계령풀은 환경부에서 희귀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한계령풀

 

나는 몇 번이나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안이 찾아온 시력이지만 초점을 정확히 잡으려고 안경을 콧등 끝에 걸쳤다.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한계령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두 개만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800m 이상 등산로 주변에 자생하고 있었다. 천상의 화원이 이런 것이었다. 한계령풀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심장박동 수는 점점 빨라졌고 발걸음은 현저히 느려졌다. 실수로 밟지는 않을까 가슴이 조마조마해졌지만, 사진을 찍는 손놀림만큼은 번개처럼 빨랐다.

 

한계령풀 군락지
산바다, 지리산고무신 - 박무열

 

천상의 화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백두대간의 변덕스러운 바람에 한계령풀 씨앗이 주변으로 운반되었다. 해가 지날수록 그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씨앗이 떨어진 거리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꽃을 피우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바람의 흔적은 말했다.

백두대간에서 양양 앞바다를 건너온 바닷바람을 맞았다. 백두대간을 스쳐 간 바람의 흔적, 그 모든 것이 바다의 냄새였다. 시계가 트였을 때 양양 앞바다가 몇 킬로미터쯤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오늘은 양양에서 하룻밤 묵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박새와 현호색
바람꽃
미천골자연휴양림 방향

 

하산은 선택의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은 연가리 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고 나만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선택의 중심에 항상 내가 있었다. 산악가이드인 내가 차량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태우러 가야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발길을 잡았던 천상의 화원은 나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헐떡거리면서도 연신 오르막을 뛰다시피 올랐다.

시간은 뒤로 돌아가진 않는다.

오늘은 근심 없이 감각적으로 야생화를 보고 즐겼다. 해가 지기 전에 양양 낙산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드넓은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저녁을 먹으면서 저녁노을을 바라봤다. 동쪽에 와서 서쪽의 노을을 바라보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해물두부전골
모듬생선구이

 

또 하루가 지났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아는가? 난 그 질문의 답을 석양을 보려고라고 말했다. 달마는 해가 제일 먼저 뜨는 동쪽에서 해가 지는 서쪽을 그리워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내 마음이 어제 그랬다. 사람은 변하는 게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육신의 고통을 느낀 후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어제 하산했던 장소로 가기 위해 갈천으로 왔다. 백두대간 왕승골삼거리로 올라오는 등산로는 내 육신에 고통을 주기에 매우 가팔랐다. 두껍게 쌓여 있는 낙엽 때문에 연신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가벼웠는데 배낭의 무게가 삶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바람은 좀처럼 불지 않았다.

메마른 대지에 미세먼지가 자욱했다. 아무 생각 없이 어제 하산했던 장소로 이동했다. 굵은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평평한 곳에 앉아 두 눈을 감았다. 우듬지에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색한 침묵의 순간처럼 내 몸의 열기는 오랫동안 식지 않았다.

아무도 지나간 적 없는 길은 없다.

시간이 흘러 그 흔적이 사라졌을 뿐이다. 백두대간을 측량하며 다시 왕승골삼거리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흘 동안의 백두대간 조사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갈천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산작약
숲길 측량

 

내 시선이 닿는 곳에 피나물과 금낭화가 있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숲은 출렁거렸다. 멈춘 것처럼 보였던 모든 것들이 분주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를 지각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다. 눈으로 본 것 때문에 가슴이 설레고 흥분되었다. 순간이 이처럼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백두대간은 나름의 소리도 머금고 있었다.

바람 소리, 나무 소리, 새소리, 계곡물 소리 등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 소리가 들렸다. 백두대간의 매력에 한 번 사로잡히니 헤어나오기 쉽지 않았다. 백두대간은 서두르며 지나는 그런 길이 아니다. 자연과 시선을 맞추며 천천히 걸어야 백두대간의 진가를 제대로 볼 수 있다.

 

피나물
금낭화
귀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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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67일간의 제주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다.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다. 유성온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석역에서 하차했다. 6번 출구로 나가 오송행 B1 버스를 탔다. 세종 도심을 관통하여 40여 분 만에 오송역에 도착했다.

공항행 버스를 기다렸다.

배낭은 벤치에 올려놓았다. 가는 곳이 다른 버스가 들어왔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분주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청주공항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창문 틈으로 생기있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버스는 바람을 가르며 공항에 도착했다.

 

 

김장비닐 안에 배낭을 넣었다.

온라인 체크인을 이미 했기에 수화물로 배낭을 맡겼다. 평소 배낭 무게보다 4kg이나 적은 8kg이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캠핑장비만을 가져왔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보안 절차를 받으러 갔다.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보조배터리, 랜턴, 라디오, 물은 에코백에 담겨 있었다. 1분도 지나기 전에 보안 절차가 끝났다. 탑승장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연착 없이 바로 탑승이 시작되었다. 탑승권을 확인하는 기계의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탑승구로 느지막하게 향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탑승은 이미 끝났다. 짐을 선반에 넣는다고 길게 줄 서게 되는 일도 없었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진에어 승무원의 움직임이 활기찼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항상 웃고 있는 표정이란 걸 눈동자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비행기가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몸이 흔들거렸다. 승무원들은 안내방송을 진행되고 있었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28년 전에 군 복무했던 활주로를 행하여 비행기가 이동 중이었다.

벨 소리가 울렸다.

, , . 이어서 승문원의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좌석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동체는 흔들림이 없었다.

굉음과 함께 앞으로 달려가던 비행기는 바퀴가 활주로를 벗어났다. 이 순간 엔진 소리를 제외한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양력을 받아 상승만 하던 비행기는 이내 수평을 유지했다.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진 후 기내의 공기는 소음과 함께 안정을 되찾았다.

햇살이 눈에 부셨다.

경량 재킷을 입고 있기엔 더웠다. 청명한 하늘은 아니지만, 햇살이 창을 통해 기내로 들어왔다. 비행기는 780km/h로 허공을 가르며 움직였다. 도시, , 하늘, , 바다, 구름, 나는 창밖의 풍경변화를 보고 그 속도를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35C 선반 번호를 확인했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오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멈춰섰을 때 내 좌석은 아기 의자처럼 보였다. 3열 좌석 가운데에 앉은 그는 체격이 우람했다. 엉덩이는 좌석에 꽉 꼈고 무릎은 앞 좌석에 닿았다. 그는 한 치의 여유 공간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는 창밖만을 바라봤다.

그는 좌석의 불편함을 참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가끔 몸을 좌우로 움직였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야 했다.

마침내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바로 좌석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서자 그는 한결 편안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비행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즐거운 제주여행 되시길.

 

 

눈치채지 못했다.

수화물을 맡기고 보안 절차를 통과한 후 탑승을 기다렸다. 탑승이 시작됨과 동시에 탑승구에 긴 줄이 생겼다. 나는 줄 서는 걸 싫어한다. 평소처럼 계속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통로좌석을 선택하는 건 조금이라도 늦게 타기 위한 나만의 선택이었다.

탑승구로 향했다.

손에 들고 있는 검정 가방을 제외하고는 흰 모자, 흰 마스크, 흰옷, 흰 신발이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떤 잘못도, 어떤 거리낄 일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35C, 나는 선반의 번호를 확인하자마자 좌석에 앉았다. 그녀가 나를 지나쳐갔다. , 나도 모르게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안전띠를 매려고 몸을 움직이다가 좌석 틈으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내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과연 우연일까?

마침내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나는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렸다. 근데 내가 왜 그래야 했지.

 

 

비행이 끝났다.

우리 비행기는 곧 제주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중략)”승무원의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회전하는 동안 제주 시가지가 점점 크게 보였다. 이륙할 때와 비슷한 굉음을 내며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제주에 발을 디뎠다.

올해 첫걸음이었다. 해마다 3~4번 왔지만, 올해는 몇 번이나 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수화물로 보낸 배낭을 찾았다.

이제 어디로 갈까?

정해진 곳은 없었다. 10분여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무작정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 가는 곳 중 한 곳이 내가 머물 비박지가 될 것이다. 제주 비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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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꾸었다.

지금보다 어릴 적에 더 많은 꿈을 꾸었다.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여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악몽을 종종 꾸었다. 악몽을 꾼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오줌을 싸고 말았다. 졸지에 오줌싸개가 된 것이다.

하늘을 나는 꿈도 꾸었다.

나비처럼 유유자적하게 꽃과 하늘 사이를 날아다녔다. 마음만 먹으면 꿈속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꿈속은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를 모르는 대다수를 위해 나를 소개하겠다. 나는 꿈을 꾸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살아있다는 것에 원초적 행복을 느낀다. 오늘날처럼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 순수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

예전에 그랬다는 말이다.

누구도 나를 길들일 수 없다. 내 신조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악습은 따르지 않는다. 예외는 없다. 내 신조에 어긋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는 늘 행복한 꿈을 꾸며 그 꿈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

 

 

어린 시절이 그립다.

꿈을 꿀 수 있는 그때가 그립다. 삶이 다른 두 세상을 살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 행복한 꿈을 꾸었다.

내 이름은 문성식이다.

나는 대전 유성에서 태어났다. 유성에서 초, , 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다녔다. 유성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 이후 베트남,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지금은 일과 모험과 여행을 적절하게 공유하며 나 하고픈 대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

 

 

내 맘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버릇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휴가철 전이나 후에, 주말이나 공휴일 말고 평일에, 나는 해마다 여행을 떠났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

15년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제주도에 갔다.

3월 초에는 오름에 올라 봄바람을 맞았다. 5월 말이나 6월 초에는 백패킹을 하며 제주 자연을 느꼈다. 9월 말이나 10월 초에는 곶자왈을 걸으며 숲 향기를 맡았다. 12월 초, 중순에는 눈 덮인 한라산에 올랐다.

 

 

처음엔 그랬다.

여행은 신발이 닳도록 낯선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다녀야만 했다. 나의 발자취가 허무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남들에게 자랑하는 보여주기식 여행이 힘들고 피곤했다. 여행을 다닌다고 삶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주 찾고 오래 머물렀다.

호젓하게 앉아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았다. 노을에 물들어가는 바다의 몸부림을 볼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새 소리를 통해 숲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현실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숨통이 트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나의 꿈은 내가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것은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고, 하고자 하는 것은 글쓰기이다.

생각을 글로 쓰고 있다.

하루 세 끼를 먹듯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 있다. 습관처럼 볼펜을 쥐고 메모지에 끄적거린다. 숨을 쉬듯 한 글자씩 써 내려 가다 보면 어느새 말하는 것처럼 생각이 글로 표현된다. 여행기나 단편을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도 난 떠날 준비를 한다.

가본 적은 없으나 들어본 적은 있는 장소로 향할 것이다. 내 앞에 어떤 여행지의 모습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여행은 경험과 더불어 추억을 남긴다. 나는 여행을 통해 꿈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나에게 여행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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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과 다른 점이 없었다.

125,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서관을 나왔다. 왕복 8차선 도로의 인도를 걸었다. 수년 동안 보아오던 흔한 거리의 풍경이 펼쳐졌다.

10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사이 태양은 조금 더 높이 떠올랐다. 햇살이 지표면으로 엄청난 광선을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이 순간 계절이 변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햇볕은 따뜻했다.

2월의 어느 수요일, 하늘은 구름 한 점도 없다. 모든 게 밝고 고요하며 바람마저 향기롭다. 향기는 새롭지 않았다. 오랫동안 맡아오던 익숙한 냄새였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햇살의 온기가 열린 창문 사이를 통과하여 실내로 들어왔다. 바람의 향기에 햇살의 열기가 더해져 방안으로 퍼져나갔다.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떡볶이는 가래떡에 채소 등을 넣어 볶거나 끓인 음식이다. 유튜브(youtube)에서 떡볶이를 검색했다. 백종원의 요리 비책을 보고 황금비율 양념장 제조법을 습득했다.

주방에 들어섰다.

냄비에 물을 붓고 진간장, 설탕, 고춧가루를 섞은 뒤 양배추와 대파를 잘게 썰어 넣었다. 뽀글뽀글 끓어오를 때 삶은 달걀과 어묵을 넣고 졸이기 시작했다. 떡볶이 고유의 색깔이 드러나고 특유의 향이 코를 찔렀다.

 

 

떡볶이를 먹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기 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양치질을 했다. 입안이 상쾌해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에 자전거를 탔다.

선글라스로 바꿔 쓰고 두꺼운 장갑을 꼈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 안장을 장갑 낀 손으로 닦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안장을 닦았다.

 

 

햇볕 속으로 뛰어들었다.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굴렸다. 한참 동안 그렇게 했다. 가고 싶은 곳을 가서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왔다. 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수목원에 도착했다.

수목원 가장자리를 천천히 걸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쪼개지듯 빛의 파편이 쏟아졌다. 추운 겨울은 천천히 물러가고 있었다.

 

 

남은 오후를 집에서 보냈다.

혼자 집에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다. 할 일이 있었고 방해받기 싫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때때로 라디오를 듣거나 낮잠을 잤다.

마당으로 나갔다.

자갈이 깔린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 지붕 위까지 올라간 감나무를 바라보았다. 이파리를 떨군 가지는 외로움이 가득 박혀 있었다. 오후였지만 마당은 그늘져 서늘했다.

 

 

도로의 밤은 환했다.

어두운 도로는 가로등이 밝혔다. 가로등은 왕복 8차선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졌다. 도시에는 어둠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골목의 밤은 어두웠다.

어둠 속을 말 없이 천천히 걸었다. 굉음을 지르며 요란하게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바라봤다. 매캐한 경유 냄새가 골목까지 끼쳐왔다.

 

 

졸음이 몰려왔다.

오늘 하루의 일들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몸 안의 긴장감이 빠져나가고 몽롱함이 찾아왔다. 더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넓은 방 한쪽 구석에 누웠다.

방 안에는 책상, 작은 옷장 2, 탁자 2, 40인치 텔레비전이 있었다. 미닫이 유리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탁자 위 조명을 껐다. 고요한 몸짓으로 어둠에 녹아들어 잠들었다.

이 모든 일이 수요일 하루에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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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나무는 봄이 되면 꽃을 피우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 나무는 나이테가 더해질 때마다 늙는 것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것이다.

내일의 성장은 오늘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누구나 변화를 주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두려움이 성장을 막는 방해요인이라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모든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자.

 

최악의 질병은 망설임이다.

꼭 해내고 싶은 일은 주저함이 없이 실천해야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생활에 남게 된다. 실천은 습관을 형성하는 근원이며 그 습관이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거라고 확신한다.

유혹을 이겨내면 성장할 수 있다.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소한 유혹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의지를 약화하는 사소한 유혹을 아무런 의심 없이 지속해서 받아들인다. 사소한 유혹은 삶의 활력소를 주고 절제력을 빼앗아 버린다. 현실 안주가 일상을 괴롭게 한다.

 

핑계는 습관의 적이다.

몸에 익숙한 행동에 변화를 주기는 쉽지 않다. 변화는 강한 의지로 시작되며 시간의 흐름으로 나타나게 된다. 변화에 점점 익숙해지면 좋아지고 즐길 수 있게 된다. 시간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하는 것이다.

변화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현실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은 나를 변화시킬 수 없다. 적당한 분노와 뉘우침이 작은 실천을 끌어낸다. 작은 실천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몸에 익숙해져 습관이 되는 것이다. 작은 습관이 나를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뇌는 쉽게 시각화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잘 기억한다.

걷기는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걷기를 통해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길 위의 추억이 새롭게 쌓여간다.

내가 명상을 하는 이유는 사소한 일에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통해 마음이 차차 안정된다. 명상은 생각을 평화롭게 하게 데에도 이로우며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걷기나 명상처럼 작은 행동이라도 꾸준히 하면 그것이 좋은 습관이 된다.

 

일단 익숙해지면 습관이 된다.

작은 행동을 실천하는 것은 오늘보다 더 나아진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습관들이기 방법이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이 쌓이면 일상생활로 자리를 잡게 되고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좋은 습관이란 것은 참 묘한 것이다.

실천이란 것이 묘해서 반복적으로 행동하다 보면 그 행동을 따라가게 된다. 현실에 순응하며 지낼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일들이 일상에 펼쳐진다.

 

새로운 습관이 형성되면 용기가 생기고 일상생활을 즐기게 된다.

습관이란 자기가 변화한 만큼 가질 수 있고 몸으로 실천할 수 있다.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내가 달라졌을 뿐인데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

인생의 전환점은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는 순간이다.

해가 뜨면 어둠도 자취를 감추고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도 흔들린다. 좋은 습관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습관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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