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리듬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보통 자정에 잠을 자고 오전 6시에 일어난다. 널리 알려진 수면 주기는 1.5시간이다. 나는 이 단위의 4배인 6시간을 잠을 잔다. 일과의 규칙성을 살펴보면 이는 이미 습관으로 자리 잡은 시간의 흐름 속 행동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생산활동, 유지활동, 여가활동으로 보낸다.

 

일주일 168시간을 기준으로 수면시간을 제외하면 126시간이다. 직업의 종류가 다르고 근무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생산활동에 투입되는 시간은 40시간(표준근로시간)이다. 나머지 86시간은 이동, 식사 등 유지활동과 취미, 휴식 등 여가활동이다.

보통 여가활동은 TV 시청, 스마트폰 사용, 운동이나 영화감상 등이 대부분이다. TV보다 더 중독성이 강한 것이 스마트폰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스마트폰에 무아지경으로 빠진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자극적이고 얄팍한 정보를 눈으로 읽는 것에 불과하다.

주위에 기상천외하고 색다른 자극을 주는 것이 많이 있다. 지금까지 자극을 주는 모험을 찾아다녔고 거기서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자기계발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이 하루하루 더해지면 큰 시간이 허공의 안개처럼 형체 없이 사라질 뿐이다.

 

내 인생을 걸고 가장 해 볼만한 일은 독서다.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전하지 않거나 너무 어려운 책을 선택하여 독서를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다수가 속하는 특별하지 않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유지활동과 여가활동의 시간을 잘 활용하면 삶이 알찰 수 있다. 나는 하루 6시간, 일주일에 42시간을 규칙적으로 책 읽기에 사용하고 있다.

누군가 정해 놓은 방식은 내 것이 아니다. 독서 시간도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자기가 정한 시간과 목적이 뚜렷해야 독서에 몰입을 더할 수 있다.

 

독서는 놀라울 만큼 특별한 능력은 아니다.

 

지적 호기심은 끊임없이 두뇌를 발전시킨다. 읽고자 하는 열의만 있다면 나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질은 헤지거나 망가지면 내 버려지지만 읽어서 몸에 익은 것은 죽는 날까지 함께 한다.

독서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계속 흐르기만 하면 큰 바다가 될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두뇌를 썩혀야 하겠는가? 독서에 있어 졸업은 없다. 졸업은 곧 바보로 전략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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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들뜸으로 인한 부산스러움은 없다. 늘 그랬던 것처럼 시간에 쫓기어 변화되어 가는 차창 밖의 흐름도 외면한 채 길을 재촉했다. 조금만 더 여유로웠더라면 인제에 잠시 들러 막국수 한 그릇의 즐거움을 위장에 담아 갔었을 텐데 그날도 초행길인 양 낯선 여행을 하고 있었다. 두 주일 전쯤 그렇게 진부령에 발을 디밀었다.

 

대관령의 넉넉함이나 미시령의 더딘 아름다움과는 사뭇 다르게 진부령은 늘 시리게 서럽다. 향로봉을 향해 백두대간의 걸음을 더는 옮길 수 없어서인지, 고성전망대에서 바라본 갈 수 없는 해금강의 아름다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진부령은 오늘도 서럽게 나를 맞는다.

오랜만에 흘리에 들렀다. 흘리는 넉넉해야만 한다. 백두대간 위에 선 그 만큼의 넉넉한 땅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허나, 흘리도 여전히 쓸쓸한 풍경으로 이방인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은 겨울 끝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바람도 잦아들고 날도 많이 풀려 봄바람을 기다리는 때다. 곧 겨울을 밀어낸 움틈이 시작되면 진부령이나 흘리나 연둣빛 웃음으로 이웃을 맞을 것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선유실리로 이어지는 임도에 들었다.

 

넓게 펼쳐진 임도를 따라 늘어서 있는 나무들은 손짓으로 인사하며 우리 일행을 반기고, 저만큼 보이는 탑동리 너머 간성의 바다는 코발트 빛으로 어서 오라고 수작을 한다. 간성의 바다는 금강산 아래 해금강과 연이어 있다. 그리움 한 조각을 바람에 실어 간성의 바다에 보내본다. 혹여 바다의 흐름이 남쪽으로 향하는 때면 어떻게 하나라는 쓸데없는 걱정이 머리를 조여온다.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녀석을 밀어버렸다.

오늘은 이만큼으로 좋다. 시리게 서러운 진부령에도 연둣빛 움틈이 봄바람을 타고 올 때쯤이면 따스해 지리라.

 

다음날 평창의 발왕산에 올랐다. 초입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가슴팍을 후비는 냉기에 덕지덕지 옷을 겹쳐 입고, 장갑에, 모자에 정신이 없었다. 스키장 입구는 많은 이들의 걸음으로 분주하다. 추워질수록 행복한 그들은 리프트를 타기 위한 긴 줄 앞에서 마냥 즐거워한다.

잠깐의 절차를 마치고 곤돌라를 타고 발왕산에 오른다. 넉넉한 걸음으로 오르는 곤돌라 아래 여러 개의 활강코스가 눈에 들어온다. 날렵한 맵시를 뽐내며 활강하는 그들에게 발왕산은 온전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사방을 할퀴면서도 앓는 소리조차 없이 몸을 맡기고 누워있는 발왕산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스키를 타본 경험은 없지만, 굳이 스키장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늘 그렇듯이 할퀴어진 세상을 보는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그것도 삶의 한 방향이라고 되뇌며 발왕산에 도착했다.

 

영하 19.7, 발왕산이 이방인을 맞는다. 칼바람까지 더해진 정상은 체감온도 영하 30도 이하다. 즐거운 걸음을 하던 이방인들은 앙칼진 발왕산의 외침에 스카이워크 아래 대피소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내빼기 일쑤다.

옷깃을 여미고, 모자를 눌러쓰고 발왕산을 맞이한다. 백 년의 세월을 살아낸 나무들은 여유로운 몸짓으로 산을 지키고, 산 아래 군상들은 오늘도 올망졸망 제멋으로 삶을 산다.

발왕산의 하늘은 푸르다. 발아래 흰 눈을 덧대어 그 푸르름이 더 하겠지만,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발왕산은 늘 푸르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묘한 확신이 칼바람을 타고 가슴으로 온다. 옆구리 한쪽에 그 큰 생채기를 안고 살면서도 의연하게 푸르른 발왕산에도 연둣빛 움틈이 곧 올 것이다.

 

어제 진부령의 봄이 66.9cm의 눈에 묻혔다는 소식이 바람을 타고 온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그 두꺼운 눈 이불 속에서 연둣빛 움틈은 봄을 재촉하고, 곧 나는 진부령으로 따스한 봄을 맞이하러 갈 것이다.

 

 

[저자소개]

그는 (주)하늘그린 대표이사 권경익이다.

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고, 일부 오타자 등 간단한 편집만을 했을뿐이다.

 

지난 2월 1일 영덕 출장을 그와 함께 다녀왔다.

소주 한잔 하다가 의기투합이 되어 '여행'이란 꼭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글 '그편'은 홀수번호, 나의 글 '식이편'은 짝수번호

격주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성장은 나이와 무관하다. 변함없는 일상의 삶에 빠지면 성장에 필요한 능력을 잃게 된다. 도전을 포기하고 현재 상황에 만족하면 삶을 바꾸는 건 상당히 어렵다.

삶 속에는 절박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이 된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일상을 바꾸는 작은 습관을 실천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첫 독서는 읽기 쉬운 책이었다

 

읽는 것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독서에 흥미가 생기고 난 후에는 좋은 책,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 순으로 책을 읽고 있다.

책은 주로 지역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일 도서관에 간다. 독서가 일상이 되다 보니 지금은 읽을 책의 목록을 사전에 정해 두고 있다. 소설, , 경제, 자기계발, 인문, 역사, 종교, 정치, 과학 등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관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여러 종류의 책을 읽으면 생각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고 세상을 다양하고 폭넓게 보게 된다. 독서를 통해 자신을 넘어설 수 있다. 의식이 깊어지면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자신의 한계를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시간의 주인이 되자

 

하루 24시간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주어지는 시간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하다. 소신껏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쓰면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길러야 한다.

삼시 세끼를 먹듯이 독서를 삶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저녁에 잠들기 전 2시간은 규칙적으로 책을 읽는다. 3시간이면 200쪽 내외의 책 한 권은 거뜬하게 읽을 수 있다.

개인 성향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오히려 집중력이 좋아진다. 다른 사람들이 정보의 바다인 스마트폰에 빠져 있을 때 난 책을 읽는다. 한 권을 계속 읽는 게 아니라 여러 권을 상황에 따라 바꿔가면 읽는다. 독서는 나에게 오로지 집중하는 시간이다.

다른 잉여시간을 포함하여 하루에 평균 6시간 정도 책을 읽는다. 시간의 주인이 되기 위한 의식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건 인간의 당연한 감정이다. 세상살이가 늘 변화를 요구하지만,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이다.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조금씩 벗어난 행동을 통해 서서히 거부감을 줄어야 한다. 거부감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몸에 익숙해진다. 무언가를 할 때 잘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성취감이 강하게 밀려온다. 성취감을 느끼면 뇌에 자극이 가고 작은 의지력의 실행이 삶을 변화시킨다. 작은 행동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31,000권 독서

 

매년 100권 내외를 읽다가 2018년부터 하루 한 권 독서를 통해 3년 동안 1,300여 권을 읽었다. 하루 한 권 독서는 4년째 계속되고 있으며 지금은 월평균 50여 권을 읽고 있다.

질은 양이 수반되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어버리겠다.'라는 말은 얼토당토않은 생각같이 보인다. 하지만 생각의 틀을 넓혀 사고를 크게 하면 무의식에 자극이 되어 상상 이상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무의식은 살아 있다. 그 에너지는 자신을 뛰어넘는 원동력이 된다. 인생의 내공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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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을 좋아하는 직장인이 있을까?

나는 대전을 벗어나는 출장을 종종 여행으로 생각한다. 출장은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게 해 주고 지역의 맛 난 음식도 먹을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출장을 다닌 만큼 돈도 벌 수 있다는 점이다.

 

출장의 동반자가 여행의 동반자다

 

2009년 지리산 둘레길부터 그와 함께 출장을 다녔다. 내 모든 출장의 90% 이상이 그와 함께였다. 악연일까? 필연일까? 무슨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를 만난 지도 벌써 만30년이 되었다.

일요일 오후,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만났다. 여행은 아무 생각 없이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다. 즉흥적이든, 계획적이든 떠난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매일을 살아가는 명랑함으로 나만의 여행을 즐기자. 여행은 그곳에 스며드는 것이다.

 

도담삼봉과 도담행복마을

 

원주에서 단양으로 숙박지가 변경되었다.

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감싸고 돈다. 내 체취를 싣고 먼 유랑의 길을 떠난다. 비로소 나는 도담삼봉을 바라보며 바람과 하나가 되었다.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먼 곳을 돌아온 바람을 다시 이곳에서 만났다.

강물과 인접한 산은 가파르고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햇빛을 받아 흰빛을 띤다. 마을 앞 강변은 세월의 색을 머금은 엄숙하고 냉담한 자연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강 건너서 이곳을 바라보면 많은 사람의 자취가 엉성하게 얽혀 있다.

마음을 꺼내어 보여줄 수 없듯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눈의 잣대로 잴 수 있겠는가?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내 마음도 감정에 따라 변하지만, 자연은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존재한다.

겨울은 견디는 계절이다. 해가 질 무렵이라 그런지 단양은 한층 추위가 느껴진다.

 

술한잔

 

단양은 누구나 꿈꾸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이다.

얼어붙은 남한강에 반해 소주 한잔, 고독한 순간에 찾아와준 벗이 좋아 맥주 한잔,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 한잔, 한잔하다 그만 취하고 말았다. 세상은 아름답다.

겨울밤, 문밖을 서성이는 달은 고요히 우리를 엿듣고 있다. 이 밤이 새도록 공중에서 빛나며 어느 슬픈 영혼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날 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세상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어느 슬픈 영혼의 가슴에 희망의 줄기가 트였다.

 

원주 백암산

 

등산은 외로움을 달래고 마음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

등산의 목표가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것이라면 진정한 기쁨은 비탈을 오르는 과정에서 얻게 된다. 평지와 달리 산은 굴곡이 있기에 육체적 고통은 피할 수 없으나 감정의 희열을 폭넓게 느낄 수 있다. 산의 굴곡은 가파른 비탈을 숨겨 놓고 나를 기다린다. 비탈에 올라서면 나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환상적인 풍경과 더불어 살 떨리는 아찔함을 동시에 느낀다.

하늘을 떠다니는 흰 구름, 창공에 몸을 싣고 하늘을 나는 새, 눈 쌓인 깊은 산속을 헤매며 먹이를 찾는 짐승들, 아무도 나를 가두지 않았는데 갇혀 있는 느낌이 든다.

산은 탁 트인 능선에서 보아야 먼 산도 잘 볼 수 있다. 남의 손에 던져질 돌멩이보다는 웅장한 산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바위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높은 하늘 아래 웅장한 능선에 서 있다. 나는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다. 산봉우리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산봉우리는 산행 경로의 일부에 불과하다. 대지와 산이 연결되고 산과 산이 이어져 있다.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끝없이 퍼져나간다. 그 경로의 끝은 어디인가? 그 끝에 도달할 수 없기에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스스로 경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가능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된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의 시작은 설렘이고 여행의 끝은 아쉬움이다.

 

그 아쉬움이 있어 여행에서 느낀 모든 감정이 간절한 그리움으로 남게 된다. 그리움이 더해지고 새로운 날이 밝아오면 예전처럼 떠날 것이다. 여행의 맛은 이런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교과서 외에는 책을 읽은 적이 거의 없다. 방학 숙제 중 독후감 쓰기는 언제나 고통을 안겨주었다. 방황이라는 치료할 수 없는 고질병을 지닌 대학 시절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타락한 시기였다.

남아도는 시간을 메우려고 중앙도서관을 어슬렁거렸다. 마음이 혼란할 때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우연히 읽기 시작한 책 한 권이 내가 기억하는 첫 독서였다.

기억은 금방 퇴색되고 얻는 것은 별로 없었다.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어떤 활동의 가치가 활동을 위해 투자한 시간과 절대로 비례하지는 않는다.

 

1365권 책 읽기

 

2017년까지는 매년 100권 내외의 책을 읽었다. 마구잡이로 책을 읽었다. 많이 읽고 빨리 읽는 것이 우선이었다.

2018년부터 하루 한 권의 독서가 시작되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 다수가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죽기 살기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읽을 것이 더 늘어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식의 총량은 줄어든다. 그만큼 독서의 영역이 너무도 넓다.

지난 3년 동안 1,300여 권을 읽었다. 나에게 독서는 숨을 쉬는 것과 같다. 살아 있다면 반드시 숨을 쉬어야 하듯이 독서는 매일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런 노력이 부족한 재능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선택한 문장과 의견을 간추려 정리하는 것은 즐거움이 되었다. 지루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롯이 책 읽기를 즐길 뿐이다.

 

변화를 꿈꾸다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지나가는 틀에 박힌 하루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야 할 시간이다. 과거에 살아온 방식이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둘러싸고 있는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하고 싶다고 해도 못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식확장이 필요하다. 의식확장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를 가진 것으로 확장하는 것을 말한다. 의식확장을 위해서 독서만큼 좋은 방법은 아직 없는 듯하다.

독서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독서는 행동을 품위 있게 만들고 인생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다양한 책과 만남이 깊어질수록 마음이 더욱 순수해진다.

 

시간을 독서와 글씨기로 메우다

 

길어진 평균수명만큼 청년, 중년의 길이도 늘어났다. 아직은 청년이지만 조만간 다가올 중년의 긴 시간을 독서와 글쓰기로 메우려고 한다. 다른 많은 일 중에서 독서와 글쓰기에 전력을 다하는 것은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적 성장을 위해서다.

생각을 수집하기 위해서 책을 읽으면서 번쩍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한다. 메모에 축적된 생각의 글을 연결하여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쓴다. 책을 읽는 동안 책 속의 정보와 내 생각이 더해져 새로운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다.

 

의미 있는 일은 몸에 습관을 들이자

 

스스로 경험한 것은 쉽게 얻은 지식보다 스스로 깨닫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는 지식확장을 위한 노력이 즐거움, 기쁨, 만족감 등 내적 성장에 영향을 줬다. 이제는 그것을 활용하고 공유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외적 성장에 힘을 쓸 차례이다.

읽기와 글쓰기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최고의 선물이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혀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다.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꾸준한 내적 성장이 결국 내 인생을 이끌고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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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쉽게 하지 못한다. 꿈은 현재를 기준으로 한 미래의 내 모습이다. 세상의 편견은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로 꿈의 성취를 판단하기도 한다. 지금은 실현할 수 없는 꿈보다 실현 가능한 소소한 것이 내 꿈이었으면 좋겠다.

꿈은 어릴 적에만 꾸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 되어도 꿈을 꿀 수 있다. 실현할 수 있든 실현할 수 없든 간에 꿈을 꾸는 것에는 제약이 없다. 꿈이 없다면 인생은 무미건조한 삶에 지나지 않는다.

 

글을 쓰기로 했다.

 

오래 주저앉아 있으면 걷기가 힘들어진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들로 인해 실천하지 않고 변명과 핑곗거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내 주제에 글을 쓴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글을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었다. 지금부터는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처럼 글쓰기에 열정적으로 빠져들고 싶다.

변화는 사소한 행동의 시작과 지속에서 천천히 삶에 정착하는 것이다. 변화를 주저하고 두려워하면 현실에 안주하는 삶에 만족한다.

 

죽기 전에 책을 내고 싶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장단점을 살펴본 후에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단어에 무게가 있고 문장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아득히 멀게 보이고 실현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글을 쓸 때 호기심과 흥분된 떨림을 느낀다. 인내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목표를 향해 다가서고 있다. 꿈을 향한 모든 활동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이 만족감이 행복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늦더라도 꿈은 좇을 가치가 있다.

 

세상의 양지와 그늘을 응시하며 짧은 글로 세상에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짧은 글이라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라도 내가 쓴 글을 읽는다면 그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많이 읽고 짧은 글을 써왔다. 독서를 통해서 문장의 중요성도 경험했다. 이젠 내 글을 써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며 능력을 다해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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