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첫 주말이다.

한주만 더 지나면 추석이다. 명절을 앞두고 즐거워야 할 세상은 구겨진 종잇조각처럼 뒤숭숭하다. 경기침체도 침체지만 여름내 조용했던 태풍이 명절을 앞두고 북상을 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힌남노이다. 각가지 뉴스매체는 연신 역대 최고의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라고 당부하고 있다. 또한, 제주 서귀포로 진입할 태풍 힌남노의 경로는 여수, 통영 등 남해안을 통과한 후 경주, 포항, 울산 등을 거쳐 울릉도 인근 동해안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자마자 집을 나왔다. 내일이면 우리나라가 직접적인 태풍 영향권에 들어서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고 싶었다.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게 더 멀리까지 가볼 수 있다. 페달을 힘차게 밟으니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층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주변 녹음이 한층 더 짙어진 하천 변 자전거길을 통해 이동한다. 도심지를 벗어나니 공기의 냄새가 평소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공기에 물비린내가 짙게 묻어있다. 세상은 고요하고 하천의 물 흐르는 소리는 오늘따라 더욱 애달프게 들린다. 자전거를 타고 30여 분만에 계룡산 수통골에 도착한다.

 

 

서서히 잿빛 구름이 몰려든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서 옷은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수통골 주차장은 만차다. 등산객과 인근 식당 이용객들이 많다 보니 주차장은 언제나 차산차해를 이룰 수밖에 없다. 태풍이 오기 전 조금이라도 여가를 더 보내려는 사람들로 수통골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수통골까지 온 김에 빈계산, 금수봉, 도덕봉 종주는 시간관계상 안 되고 가까운 빈계산만 올라갔다가 오려고 생각 중이다. 자전거를 주차장 한쪽에 세우려 하는데 잘 안된다. 공공자전거라 전용구역 외에 반납처리가 되지 않았다.

 

 

자전거를 재대여하다.

복잡한 수통골을 벗어나 한밭대 정문에서 공공자전거를 반납하고 바로 재대여한다. 대전 공공자전거 타슈는 1시간 이내에 반납하면 무료로 다시 재대여할 수 있다. 작년까지는 매해 1년 회원권(30,000)을 구매하여 이용했었다. 올해부터 앱도 바뀌고 자전거도 바뀌어서 더욱 편리하게 이용 가능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전거가 예전과 비교해 턱없이 적다는 점이다. 다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이적까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로 다니며 1시간 동안 자전거를 알차게 타려고 한다.

 

 

광수사에 왔다.

수통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대한불교 천태종 힐링 행복 도량이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보다는 불교가 조금 더 친숙하다. 세계와 나를 따로 구분하는 이원론보다는 세계와 나는 하나인 일원론을 더 믿는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一切唯心造).

포대화상은 대 자유인이다.

긴 막대기에 포댓자루 하나 둘러메고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는 얼굴로 세속 모든 이들과 분별없이 어울리며 불법을 전하고 탁발한 모든 것을 어려운 중생에게 나누어주며 무애(無碍)의 삶을 살았다. 자연과 함께 행()하고 자연으로 돌아간 걸림 없는 대 자유인이다.

 

 

거리를 누비다.

자전거는 도로를 건너고 새로 구획정리가 된 주거지구의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대부분 비슷한 형태의 건물들이지만 간혹 한옥도 있고 특이한 모양의 건물도 있고 넓은 자연공원도 있다. 간판을 대충 눈으로 훑어보다 특이한 이름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들녘은 아직 푸르다.

하천의 제방길을 따라간다. 왼쪽은 하천이 흐르고 오른쪽은 드넓은 들녘이 펼쳐진다. 밭도 있고, 논도 있고, 과수원도 있다. 들녘에는 아직 익지 않은 초록의 벼가 물결치듯 출렁거린다. 자전거를 멈추고 논에 가까이 가본다. 낱알은 아직 여물지 않았지만 벼는 벌써 고개를 숙이려고 한다.

 

 

세상은 변한다.

제방길은 어느새 좁은 마을 길로 이어진다. 재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여러 가구 수가 살았던 곳인데 지금은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내 키보다 두 배나 높은 담벼락은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얗던 담벼락은 거무칙칙한 그을음으로 얼룩져 있고 그 아래의 하수도에 매캐한 시궁창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나무만이 그대로 서 있다.

모두가 떠나고 황폐해지어 버린 그곳에는 여전히 나무가 서 있다. 보여줄 사람도 없는데 한층 더 성장해 잎을 피웠고 한낮의 태양을 가려 그늘을 마련해주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오늘처럼 구슬프게 들리는 건 왜일까? 이번 태풍에도 부러지거나 뽑히지 않고 잘 버텨주기를 간절히 빈다.

 

 

비가 내린다.

주말은 어찌어찌 버텨내더니만 결국 월요일이 되어서 비가 내린다. 아직은 간접적이긴 하지만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서고 있다는 증거다. 대전은 중부지방이고 내륙이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태풍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 같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분주하다.

물에 불린 쌀을 빻아다 냉장고에서 숙성을 시킨 후 반죽을 시작한다. 요즘 집에서 송편 빚는 집이 있을까? 우리 집은 명절날이면 아직도 떡을 직접 빚는다. 시중에 파는 떡은 별로 안 좋아하셔서 번거로워도 집에서 직접 빚는다. 나는 떡을 잘 안 먹는데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떡을 다 좋아하신다. 솔잎과 함께 쪄진 송편이 오늘따라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어둠이 찾아왔다.

열린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낙숫물이 처마를 타고 대야에 폭포수처럼 떨어지고 있다. 비 오기 전의 후텁지근함은 어느새 싸늘함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따금 들려오는 바람의 커다란 고함을 들으며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아침을 기다린다.

새벽 5.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습관적으로 알람을 끄고 불을 켠다. 날이 밝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간밤에 발생한 일들이 궁금하여 텔레비전 전원을 켠다. 매체는 연신 태풍 속보를 방송하고 있다. 예상했던 태풍의 위력보다는 약해졌다지만 태풍이 동반한 강풍의 위력은 대단했다. 남쪽 해안가보다 동풍이 발생한 경주 포항의 피해가 훨씬 더 컸다. 태풍 힌남노는 오전 7시를 지나 동해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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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났다.

돌풍이 바람의 방향을 순식간에 변화시키듯 계절은 여름을 지나 겨울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직 8월 하순이지만 아침저녁의 체감온도는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를 켜놓고 잤었는데 지금은 창문을 닫고 얇은 이불로 배를 덮고 잔다.

 

새벽 5.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2주 전에 바꾼 핸드폰 알람 소리가 익숙하지 않지만, 몸에 밴 습관은 나를 깨우기 충분하다. 확실히 어둠은 색이 더 짙어졌고 길어졌다. 커피포트의 전원을 켜놓고 밖으로 나온다. 아직 뽑지 않은 고추와 새로 파종한 씨앗에 물을 준다. 여름만큼 충분히 물을 주지 않아도 촉촉하게 대지가 젖어 든다.

 

커피를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믹스를 큰 머그잔에 타 먹는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김에서 달콤한 향이 코를 찌른다. 뜨거움을 조금이라도 식히려고 호호불어가며 머그잔에 입을 대었다 떼기를 반복한다. 나른한 몸을 일순간에 깨우는 달콤함이 혈관을 타고 흘러 구석구석 퍼져나간다.

 

벌초 날이다.

아침의 느긋함은 해가 뜨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뭇국에 밥을 말아 먹고 낫 2, 갈고리, 소주, 담배, 육포, , 음료수, 빵 등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한다. 어제 오후에 녹슨 낫을 열심히 숫돌에 갈아 두었다.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등산화를 신으면 벌초 준비는 끝이 난다.

 

 

고속도로를 달린다.

집에서 불과 1시간의 거리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고속도로는 정체가 시작된다. 지금은 용담댐으로 수몰되어 마을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지만, 선조의 혼이 서린 지역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금산에서 용담댐 수문을 지나면 한적한 도로가 계속된다. 작년의 홍수피해로 방류를 많이 했는지 댐의 수위가 한결 낮다는 느낌이 든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하는 곳이라 지금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 창을 여니 자취를 감춘 봄의 벚꽃 냄새가 살며시 다가오는 듯하다. 오늘의 집결지인 월계교가 눈앞에 보인다.

 

칡덩굴을 뚫고 나가야 한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독 칡덩굴이 무성하다. 낫으로 칡덩굴을 끊어가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칡덩굴에 가려져 있던 찔레나 초피나무 가시가 피부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칡덩굴을 낫으로 끊는 순간 내 등을 강렬한 무엇인가가 찌르기 시작한다. ‘아 따가워.’

 

벌침을 맞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칡덩굴 사이 어딘가에 벌집이 있다. 제트기가 굉음을 내며 하늘로 치솟듯 갑자기 벌떼가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도망가라는 짧은 비명과 함께 우리는 달리고 달려 다행히도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벌에 쏘이지 않았다. 길로 나와서 벌에 쏘인 곳을 확인한 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월계교 옆 수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간 후 댐수위 위쪽으로 우회한다.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 산소에 도착한다. 예년과 비교하면 봉분의 피해는 상당히 적어 다행이다. 벌초한 후 성묘를 마치고 할아버지 산소로 이동한다. 다니던 능선길이 아닌 계곡 부로 질러간다. 청미래덩굴과 초피나무를 제외하곤 이동하는 데 방해물이 없어 손쉽게 도착한다. 성묘를 먼저 한 후 다시 30여 분간의 벌초를 한다. 잡풀로 무성했던 산소가 깨끗하니 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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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연구용역 보고서를 쓰고 있다.

‘00000 지역 활성화 전략수립이라는 제목이 막막해서 참고문헌을 많이 준비했지만, 현장자료가 부실하다. 일주일 동안 보고서를 끝내보려고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자료를 토대로 현황을 분석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쓰고 있다. 처음 노트북 모니터를 마주했을 때 막막하기만 했다. 기승전결을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지 생각은 넘쳐나는데 뒤섞여 있어서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시간은 폭포처럼 흘렀지만 글쓰기는 민달팽이가 움직이는 속도만큼 더뎠다.

조급히 쓸 수 있는 보고서가 아니기에 끈기를 가지고 노트북 앞에 진득이 앉아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분량을 조금씩 쓰면서 글발이 생겼고 언제 끝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갖지 않게 되었다. 낮에는 백색소음에 시달리고 깊은 밤에는 풀벌레의 구슬픈 속삭임을 들으며 새벽 2시쯤 보고서를 끝냈다. 일주일이 걸렸다. 아직 완성도가 높은 보고서가 아니라서 회의를 통해 수정·보완해 나가야 한다.

 

글쓰기에 집중하다 보니 정신이 자주 멍해졌다.

보고서는 자유로운 글쓰기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온 정신을 장기간 집중해서 쓴 것에 만족한다. 짧은 글을 매일 쓰고 있지만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매일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표한다. 홀가분하게 책을 읽거나 메모지에 글을 끄적거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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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석양이 질 무렵,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남쪽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한층 더 짙은 먹색이 되었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2시간이 지났을 때 공기에서 생선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통영에 왔다.

월요일 오전 651, 첫배를 타고 두미도에 가야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 번째 방문이다. 통영여객터미널 인근에 숙소를 정했다. 밤늦은 시간이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불 켜진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 낼 아침 또한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원조설렁탕, 수육 - 통영맛집

 

월요일 새벽 5.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나는 일어났다. 간단히 세안하고 짐을 꾸려 숙소를 나왔다. 이른 새벽이지만 서호시장은 활기찼다. 불 켜진 식당에서 복국을 먹었다. 어두웠던 새벽은 어느새 사라지고 해가 떠올랐다. 새롭게 단장한 통영항여객터미널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바다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면 비로소 바다가 보이는데 출발한 항구는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본 사람은 바다는 넓고 육지는 좁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육지가 좁아서 바다로 나아가면 바다는 더 넓어지고 거기서 또 작은 섬을 만나게 된다.

 

부일식당, 복국 - 통영 서호시장 맛집
통영 바다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두미도

 

두미도는 살아 숨 쉬는 섬이다.

바다는 다정하게 섬을 껴안아 주고 있었다. 섬은 봄비와 봄볕에 숲이 부풀고 땅에 생명의 기운이 돌았다. 나무는 꽃을 통해 대기의 수분을 흡수했고, 초록의 잎을 통해 봄볕을 간직했다. 하늘도 아기 돌보듯 섬을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미도 북구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건물 앞 조형물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1월에 다녀가고 3개월도 안 지났다. 만남이란 언제나 반가운 것이다. 짐을 놓아두고 두미도 옛길을 걸었다.

 

두미도의 봄
두미도 바다펜션 - 북구항

 

두미도 옛길은 발칵 뒤집혔다.

봄날의 두미도 옛길은 깊은숨을 쉬었고 더욱 견고해졌다. 봄비가 내려 풀과 야생화가 뒤섞여 자랐고 흙이 부풀기 시작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길 위에 그림자도 흔들렸다. 나무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벚꽃길에 들어섰다.

벚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려서 연분홍빛 벚꽃잎이 길 위에 떨어졌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에서 빛이 들어와 땅에 닿았다. 떨어진 벚꽃잎은 빛을 받아 반짝이며 뒤섞였다. 육지는 벚꽃이 만개했는데 두미도는 벌써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두미도 옛길
홀아비꽃대

 

둥글레
남산제비꽃
꽃깔제비꽃
고은마을 벚꽃길 - 두미도 옛길

 

나는 천황산을 다시 찾았다.

숲의 나무 색깔이 바뀌었다. 만개한 진달래꽃, 벚꽃이 봄볕을 받아 그 색깔이 숲으로 퍼져나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숲의 색깔이 파도쳤다. 섬을 찾는 사람들과 섬사람들은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두미도 옛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숲속은 더 짙은 녹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숲의 색깔은 나무 우듬지 위를 굽이쳐 파도를 일으키듯 바다로 흘러갔다. 산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졌다.

 

천황산 등산로 조망점
진달래

 

산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순간 나는 돌출된 바위에 두 다리로 섰다. 두 다리가 바위에 닿았을 때 닿는 느낌으로 바위가 단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구항 선착장 공사는 마무리단계에 들어섰고 어선이 흰 거품 자국을 남기며 바다를 스쳐 갔다. 욕지도가 보이는 바다는 아득하니 멀었다.

계절이 바뀌었다.

핏빛처럼 붉게 핀 진달래는 바람에 흔들거렸다. 산은 각양각색의 색깔로 물들었고 새 생명이 움트는 나무에선 아기 젖내 같은 냄새가 났다. 바닷바람이 땀으로 젖은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등산을 시작한 지 4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두미도 남구항
청석마을과 동뫼섬
천황산 숲속
천황봉

 

안 가본 길을 갔다.

나는 투구봉 등산로는 가본 적이 없었다. 천왕산 정상에서 암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마치 바다가 하늘처럼 보이는 북구항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큰 바위와 그 바위에 붙어있는 바위솔, 숲을 뒤덮고 있는 현호색 군락지는 내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등산로는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등산로라고 생각했다. 등산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멀었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지만 걷고 또 걸어 임도에 도착했다.

 

현호색
투구봉
북구항
임도

 

섬의 밤은 고요했다.

낮의 선착장 공사 소음은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자리돔 회, 돼지고기 볶음, 데친 나물들(두릅, 방풍나물, 꾸지뽕잎), 달래, 돌나물 등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특별히 할 것도 할 일도 없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섬은 밤은 생각보다 길었다.

새벽부터 안개가 짙었다.

바닷가에 안개가 끼면 바다는 무언가에 놀란 듯 창백해져 수면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았다. 바다의 표면을 타고 배가 왔는데 바다의 배는 보이지 않고 뱃고동 소리만 들렸다. 안개 속에 배 엔진 소리만 가득했다. 바다엔 안개뿐이었다. 안개 때문에 배는 보이지 않았다. 안개 속에서 배에 탔다. 배 위에서 안개를 마시고 바람을 마셨다. 배는 천천히 두미도를 떠났다.

 

저녁식사
안개
안개낀 북구항에 접안중인 바다누리호

꽃피는 4월이다.

갑천 변 벚꽃은 이미 꽃을 피워 벚꽃 터널을 만들었다. 제방에 심어진 샛노란 개나리꽃과 어우러져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새벽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식목일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이 되었다. 밤새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다 온몸이 찌뿌드드한 상태로 일어났다. 냉수로 세수를 하고 계절과 어울리는 봄옷을 입었다. 오늘 난 머리털 나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섬으로 출발했다.

 

 

지난 10년 동안 강진, 해남, 완도를 갈 때마다 수없이 지나갔던 그 길이었다.

유성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정읍IC로 빠져나왔다. ‘띵띵 띵띵내비게이션은 광주까지 가라며 한동안 경고음을 울렸다. 그런 울림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갓진 시골길을 달렸다. 어느새 내비게이션도 경로 재탐색을 통해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10여 분 후 선운산IC를 통과하여 서해안 고속도로에 다시 진입했다.

2시간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에게 그다지 특별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는 그런 길이었다. 목포IC를 벗어나 압해대교를 건너 신안군으로 들어섰다. 도로변 불 켜진 커피숍에 들어갔다. 분위기 좋고 경치도 좋았지만 한가하게 앉아 커피를 마실 시간은 없었다.

 

 

송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910분이었다.

차량에 앉아 해무 낀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지금 나는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로 갈 생각이다. 매표소에 들어가 왕복 배편을 예매했다. 소악도 선착장에 내린 후, 진섬, 딴섬,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로 이동할 예정이다.

여객선은 검은 매연을 내뿜기 시작했다.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해무로 인해 시계는 좋지 않았다. 천사대교의 형태가 아주 흐릿하게 보였다.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선실에 들어왔다. 배는 당사도를 거쳐 40분 만에 소악도 선착장이 있는 진섬에 도착했다.

 

 

나는 배에서 내렸다.

해무인지 미세먼지인지 구별할 수 없지만, 바닷가 특유의 짭짤함이 공기에 묻어 있었다. 썰물 때라 갯벌 바닥은 그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섬이라고 바다와 갯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천장굴산, 개바우산, 앞산, 범바우산, 큰잔동산 등 구릉지 같은 산도 있었다.

선착장 옆 숲에는 철탑 가는 길이 있었다.

나는 그 길로 들어섰다.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렸다. 4m 정도의 길이 능선을 타고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자연훼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황량함이 느껴지는 숲에도 자줏빛 붉은 꽃, 진달래꽃이 피어 있었다. 벌써 꽃을 피우다니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달래꽃을 보고 길 복원에 대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시몬의 집이 있었다.

기점·소악도는 순례자의 섬이라고 불린다. 순례자의 섬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졌다. 12 사도 이름을 따서 지은 작은 예배당이 노두길로 연결된 5개의 섬에 산재해 있다. 순례자의 섬을 찾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기점 선착장에서 하선한다. 섬과 섬을 연결한 노두길을 걸어 12 사도 예배당을 돌아본 후 소악도 선착장에서 다시 승선한다.

예배당은 바닷가, 갯벌, 호수, 언덕 등에 자리하고 있다.

1. 베드로의 집 2. 안드레아의 집 3. 야고보의 집 4. 요한의 집 5. 필립의 집 6. 바르톨로메오의 집 7. 토마스의 집 8. 마태오의 집 9. 작은 야고보의 집 10. 유다 타대오의 집 11. 시몬의 집 12. 가롯 유다의 집이다.

 

시몬의 집
가롯유다의 집
유다 타대오의 집
작은야고보의 집
마태오의 집
토마스의 집
바르톨로메오의 집
필립의 집
베드로의 집

 

순례자의 섬에는 섬과 섬을 잇는 4개의 노두길이 있다.

노두는 밑물 때는 사라지고 썰물 때에 모습을 드러낸다. 노두는 광맥·암석·지층·석탄층 따위가 땅거죽에 드러난 부분을 말한다. 지금은 노두를 시멘트로 포장해 놓아 차량도 이동할 수 있다.

조심! 밀물 때 통행금지

노두길은 밑물이 되면 물에 잠긴다. 물이 찰랑거려서 길이 보인다고 할지라도 물살이 세고 파래 등으로 매우 미끄럽다. 물이 차면 차량은 물론 사람도 절대로 건너가면 안 된다. 3~4시간이 지나면 썰물이 된다.

 

 

아쉬움이 남는다.

길을 만든다고 굴착기로 무지막지하게 숲을 밀어버려 자연을 훼손했다. 산자고, 보춘화 등 섬 야생화 보호와 훼손된 숲의 복원이 시급했다. 자연 그대로인 노두가 아닌 시멘트로 포장된 노두길이라 감흥이 덜했다. 밀물이 되어 바다에 잠기는 노두길과 그 위의 예배당(8. 마테오의 집)을 보지 못했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다.

노두길을 따라 만나게 되는 12개의 예배당은 조용히 묵상하기 좋을 정도의 공간이다. 나에게는 푸른 바다와 마주 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만들어진 길은 없다.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는 종교를 떠나서 섬의 자연과 더불어 편안하게 명상하며 걷는 그런 길이다.

 

산자고
보춘화

 

순례자의 섬을 다 돌아봤다.

물론 모든 예배당을 다 가본 것은 아니다. 안드레의 집과 야고보의 집은 가지 않았다. 나는 숲길과 노두길을 중심으로 섬을 걸었다. 대기점 선착장에 있는 베드로의 집에서 배를 기다렸다. 오후 432분 다시 배를 탔다.

배고픔이 극에 달했다.

아침은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마셨다. 점심에는 캔맥주를 마시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막 배를 타고 기점·소악도에서 송공항으로 나왔다. 대전을 가려면 목포를 지나가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목포에 올 때마다 꼭 들리는 유달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선경준치회집에 갔다.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주문했다. 꼭 아귀탕과 갈치구이를 먹어봐야 한다. 일단 한번 잡숴봐!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대기점선착장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갈치구이(4미 이상)
목포 맛집 - 선경준치회집, 아귀탕

[프롤로그]

 

나는 지금 여행기를 쓰고 있다.

여행기는 방랑자 in JEJU라는 제목이다. 나는 어째서 제주 백패킹을 여행기로 쓰고 있는가? 백패킹은 10년 동안 꾸준히 해왔던 나의 모험 여행 중 하나이다. 특히 제주에서의 백패킹은 언제나 특별한 나만의 순간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증가하는 시점이다.

이런 시국에 다른 사람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경험을 했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제주 자연과 함께했다. 그 순간들을 내 가슴속에 한 번 더 새기고 싶었다.

 

 

 

[내가 늘 가고자 했던 곳]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67일간의 제주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다.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다. 유성온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석역에서 하차했다. 6번 출구로 나가 오송행 B1 버스를 탔다. 세종 도심을 관통하여 40여 분 만에 오송역에 도착했다.

공항행 버스를 기다렸다.

배낭은 벤치에 올려놓았다. 가는 곳이 다른 버스가 들어왔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분주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청주공항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창문 틈으로 생기있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버스는 바람을 가르며 공항에 도착했다.

 

김장비닐 안에 배낭을 넣었다.

온라인 체크인을 이미 했기에 수화물로 배낭을 맡겼다. 평소 배낭 무게보다 4kg이나 적은 8kg이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캠핑장비만을 가져왔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보안 절차를 받으러 갔다.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보조배터리, 랜턴, 라디오, 물은 에코백에 담겨 있었다. 1분도 지나기 전에 보안 절차가 끝났다. 탑승장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연착 없이 바로 탑승이 시작되었다. 탑승권을 확인하는 기계의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탑승구로 느지막하게 향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탑승은 이미 끝났다. 짐을 선반에 넣는다고 길게 줄 서게 되는 일도 없었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진에어 승무원의 움직임이 활기찼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항상 웃고 있는 표정이란 걸 눈동자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비행기가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몸이 흔들거렸다. 승무원들은 안내방송을 진행되고 있었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28년 전에 군 복무했던 활주로를 행하여 비행기가 이동 중이었다.

벨 소리가 울렸다.

, , . 이어서 승문원의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좌석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동체는 흔들림이 없었다.

굉음과 함께 앞으로 달려가던 비행기는 바퀴가 활주로를 벗어났다. 이 순간 엔진 소리를 제외한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양력을 받아 상승만 하던 비행기는 이내 수평을 유지했다.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진 후 기내의 공기는 소음과 함께 안정을 되찾았다.

햇살이 눈에 부셨다.

경량 재킷을 입고 있기엔 더웠다. 청명한 하늘은 아니지만, 햇살이 창을 통해 기내로 들어왔다. 비행기는 780km/h로 허공을 가르며 움직였다. 도시, , 하늘, , 바다, 구름, 나는 창밖의 풍경변화를 보고 그 속도를 인식할 수 있었다.

 

비행이 끝났다.

우리 비행기는 곧 제주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중략)”승무원의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회전하는 동안 제주 시가지가 점점 크게 보였다. 이륙할 때와 비슷한 굉음을 내며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제주에 발을 디뎠다.

올해 첫걸음이었다. 해마다 3~4번 왔지만, 올해는 몇 번이나 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수화물로 보낸 배낭을 찾았다.

 

 

 

[제주 백패킹 1일차 함덕해수욕장]

 

이제 어디로 갈까?

정해진 곳은 없었다. 10분여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무작정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 가는 곳 중 한 곳이 내가 머물 야영지가 될 것이다. 제주 백패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탄 버스는 326번이었다.

공항에서 제주 동쪽으로 가는 노선이었다. 동문시장을 거쳐 조천, 함덕을 지나간다. 나는 결정을 지체하지 않았다. 오늘의 야영지는 함덕해수욕장 야영장으로 결정했다. 1시간여의 버스 여정을 마무리하고 함덕 환승 정류소에서 하차했다.

 

6개월 만이었다.

작년 6월과 9월에도 이곳에서 야영했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없는 동안 변화된 모습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날씨가 흐린 탓에 석양이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다. 어서, 텐트를 치러 야영장으로 가자.

바닷바람이 거셌다.

바람을 피해 워싱턴 야자수 아래 텐트를 쳤다. 장소 선택하는데 2분 텐트 치는 데 5분 걸렸다. 넓은 야영장이 휑뎅그렁했다. 군데군데 텐트가 쳐져 있었지만, 사람의 흔적은 수일 동안 없었던 것 같았다.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예상은 했었지만, 석양의 모습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인근 마트로 향했다. 제주에서의 첫날밤, 술이 빠져서야 하겠는가? 부시리회, 소주, 맥주 등을 샀다.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고 텐트로 돌아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텐트에 조명을 밝혔다.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는 야영할 때마다 꼭 가지고 다니는 장비 중 하나다. 내가 자연에 파묻혀 있는 동안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소중한 친구다.

아는 형님과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제주 왔음. 바람 겁나게 붐. 아무도 없는 함덕해수욕장에서 텐트 치고 야영하고 있음. 지금 소맥에 부시리회 먹고 있는 중. 라디오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노래가 나옴. 그곳이 바로 이곳이라 문자 보냄. 언제 함께 옵시다. 얼어 죽지는 않게 해 줄게.”

핫팩을 꺼냈다.

고요한 사방에 들리는 거라곤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잎 소리뿐이었다. ·하의 보온 옷(우모복)을 입고 배에 핫팩을 붙였다. 보온 신발(다운 슈즈)에 핫팩 하나씩 넣고 신었다. 무거운 동계 침낭 대신 가져온 경량 침낭으로 들어갔다. , 생각보다 괜찮았다.

 

 

 

[제주 백패킹 2일차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새벽 450분에 잠에서 깼다.

추워서가 아니라 오줌이 마려웠다. 눈을 뜨고 보니 전혀 춥지 않고 몸에 온기가 느껴졌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보니 밖의 쌀쌀함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야영할 때 발이 시린 것을 가장 싫어한다. 이번 제주 백패킹에 보온신발을 가져온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커피를 마셨다.

카누가 아닌 맥심을 선택했다. 자고 일어나니 달곰함이 그리워졌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은 후에 빗, 수건, 칫솔, 치약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방금 청소를 마친 듯 한결 깨끗한 화장실이 좋았다. 거울을 보니 아직은 몰골이 괜찮아 보였다. 겨우 하룻밤이었으니까.

서우봉에 올랐다.

이곳에 올 때마다 들렀지만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유채밭에 유채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파종하지 않을 듯했다. 간간이 올라온 노란 유채를 보며 밭길을 따라 걸었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을 보고 생각했다. 이곳이 무릉도원이구나. 이젠 떠나볼까?

 

이른 점심을 먹었다.

함덕에 오면 늘 순풍 해장국을 갔었다. 그때마다 뒷집 식당도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식당 이름이 제라진 밥상이다. 문을 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뷔페 음식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 주셨다.

7,900원을 선 결제했다.

식당 안 한갓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접시를 가지러 가면서 대충 훑어보았다. 샐러드, 완숙 달걀, 유부초밥, 탕수육, 돼지고기 볶음, 떡볶이, 콩나물, 무생채, 마늘, , 상추를 담았다. 두 번째로 잔치국수와 김치찌개를 가져왔다. 세 번째로 보리밥에 나물, 채소, 고추장을 올린 후 참기름을 두 바퀴 뿌렸다.

막걸리는 네 번째로 가져왔다.

뷔페 음식을 접시에 담으면서 막걸리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술값이 인상되었는데 아직도 막걸리가 2,500원이었다. 술값을 결제하니 쟁반에 잔과 막걸리를 주셨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닭볶음탕도 나왔다.

막걸리 한 모금씩 마시면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점심 특선인데 내가 일찍 들어와서 직접 접시에 담아 가져다주셨다. 술안주가 추가되었으니 한잔 안 마실 수 있겠는가? 아주 개인적인 맛 평가지만 전체적으로 음식 맛이 좋았다. 음식 중 김치찌개와 닭볶음탕이 가장 맛있었다. 다음엔 꼭 라면도 먹어봐야겠다.

잘 먹었습니다.

순풍 해장국보다 훨씬 맛있어요.’ 내 말에 순풍 해장국 득을 크게 본다며 겸손해하셨다. 테이블마다 비닐장갑, 소독제, 물티슈가 놓여 있었다. 손님이 나가면 바로 테이블을 소독제로 닦았다. 들고 나는 손님들을 친절하게 대하셨다. 오늘 난 뷔페 음식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제라진 밥상은 나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에 왔다.

함덕에서 201번 버스를 탄 후 우당 도서관에서 하차했다. 도로를 건너 6호 광장에서 231번 버스로 갈아타고 1시간 10분 만에 도착했다. 해송 숲 사이의 길을 걸어가니 매표소가 나왔다. 입장료 1,000원과 전기사용료 2,000원을 현금 결제했다. 야영데크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예약했다.

03데크의 이름은 상사화였다.

매표소 우측의 해송 숲에 야영장이 있었다. 우거진 숲을 뚫고 햇살이 데크에 내려앉았다. 밤과 달리 한낮 기온은 따뜻했다. 텐트를 전기를 사용하기 편한 방향으로 쳤다. 장기 백패킹을 할 때 핸드폰, 보조배터리, 랜턴의 충전은 필수요소다. 공중화장실 등에서 도둑전기를 사용하지 말고 떳떳하게 돈을 내고 사용하자.

 

야영테크를 따라 걸었다.

대부분이 해송 숲이고 일부 삼나무 숲을 통과했다. 휴양림 외곽을 한 바퀴 돈 것이다. 복수초를 제외한 다른 야생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

붉은오름에 올랐다.

급경사지에 설치된 침목 계단을 올랐다. 오름 정상까지 350m였다. 내 직업이 직업인지라 걷는 것과 산을 오르는 것은 선수급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제주목장과 주위의 오름 군이 흐릿하게 보였다. 날씨 탓인가? 내가 가본 오름 중에서 이렇게 감흥이 없었던 곳이 또 있을까? 발길을 돌려 야영데크로 돌아왔다.

커피를 마셨다.

텐트 앞에 앉아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점에 점점 도달할수록 우렁찬 수증기를 내뿜었다. 시에라컵에 카누를 탔다. 뜨거울 때 한 모금을 마셨다. 목을 타고 흐르는 커피가 쉬고 있던 몸의 감각을 일깨웠다. 숲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까마귀가 울부짖었다.

이쪽에서 울면 저쪽에서 화답했다. 아무래도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생긴 것 같다. 짧은 숲속 명상을 마치고 복근 운동까지 했다. 한낮에 텐트에 누워 밖을 내다봤다. 고즈넉한 숲속 풍경은 내가 늘 상상 속에서 그리던 백패킹의 모습이었다.

 

숲의 어둠은 빨랐다.

밝음은 눈 깜짝하는 사이에 물러갔다. 한순간에 찾아온 어둠에 잠시 당황했다. 휴양림 야영장이라 데크로드에 조명이 들어왔다. 텐트에도 랜턴을 켰다. 어둠은 늘 나에게 공포감을 준다.

즉석 육개장을 끓였다.

휴양림은 쓰레기를 되가져가야 한다. 최소한의 장비로 백패킹을 다니는 나는 쓰레기 발생을 줄이려고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 한 끼쯤은 이렇게 먹어도 상관없다. 밤하늘의 별을 벗으로 삼아 소주 한잔 주고받기엔 그만인 음식이다.

 

 

 

[제주 백패킹 3일차 화순금모래해수욕장]

 

밤은 추웠다.

한낮의 따뜻함은 어둠이 가져가 버렸다. 물론 불량 핫팩이 문제였지만 숲은 내 생각보다 더 추웠다. 보온 옷(우모복)과 보온 신발(다운 슈즈)로 완전무장하고도 침낭 속에서 몸을 움츠렸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아침이 밝았다. 어둠이 떠난 순간 나는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침 명상을 했다.

화장실에 뜨거운 물이 나왔다. 이런 호사가 다 있었다. 용모를 단정히 한 후 휴양림 내곽을 산책했다. 텐트로 돌아와 커피와 크런치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텐트 옆 빈 데크 공간에서 반가부좌를 했다. 아침마다 하는 20분 명상을 붉은오름에서 했다. 내가 늘 꿈꾸었던 모습이었다.

오늘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안개가 숲을 조금씩 점령하고 있다. 예정보다 일찍 휴양림을 나서야 할 것 같다.

 

30분을 기다렸다.

버스가 늦게 온 게 아니라 내가 일찍 나온 것이었다. 선택은 할 수 없었다. 231번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 안이 따뜻했다. 버스 안에서 다음 야영지를 고민했다. 일단 종점까지 가기로 했다.

교통카드가 사라졌다.

종점에 왔는데 하차를 못 했다. 기사님께 말씀드리고 좌석 수색에 들어갔다. 교통카드는 의자와 등받이 틈으로 떨어져 있었다. 1분 만에 다시 교통카드를 찾았다.

환승을 했다.

서귀포 () 터미널에서 202번 버스를 탔다. 오늘의 야영지는 화순 금모래해변으로 정했다. 야영지에서 산방산을 조망할 수 있다. 안덕계곡을 지나 화순리에서 하차했다. 마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텐트를 쳤다.

12년 전 걸어서 이곳을 지나갔었다. 무더운 여름날 해변에서 해병대가 훈련하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야영장은 유료지만 비수기엔 그냥 사용할 수 있는 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도 다른 야영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랜 기간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텐트가 흉물처럼 보였다. 야영장 앞쪽 모래 해변은 공사 중이라 온종일 소음이 컸다.

그 많던 금모래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올레길을 걷지 않았다. 나만의 추억이 있는 길을 다시 걸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듯 이곳도 많이 변했다. 해안과 인접한 길을 따라 산방산까지 걸어갔다. 아침과 달리 따뜻해진 날씨가 반갑지 않게 느껴졌다.

마트에 갔다.

산방산에서 도로를 따라 안덕 하나로마트까지 걸었다. , 맥주, 포도주, 즉석밥, 라면, 김치, 고기, 배추를 샀다.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을 위해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양만큼 샀다. 에코백에 다 안 들어가 결국 물은 손으로 들고 야영지로 갔다. 마을 길에 있는 팽나무 한그루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가 저물고 나니 추워졌다.

해안가라 그런지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이런 날에는 김치찌개가 최고였다. 냄비에 고기, 김치를 넣고 물을 부어 끓였다. 어느 정도 끓었을 때 소금으로 간을 했다. 뽀글뽀글 끓고 있는 냄비를 보니 군침이 흘렀다. 소주 대신 선택한 포도주가 김치찌개와 궁합이 잘 맞았다.

 

 

 

[제주 백패킹 4일차 올레 휴]

 

술기운에 잠이 들었다.

새벽엔 비까지 내렸다. 바람은 밤보다 더 강하게 불어왔다. 동트기 전 일어나 고민을 시작했다. 오늘 어디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하룻밤 더 야영할 것인가? 결정하기 전에 커피를 마셨다. 따뜻한 온기가 서서히 온몸에 퍼졌다. 비 때문에 배낭 꾸리기가 쉽지 않겠지만 여기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사전 투표를 했다.

배낭을 메고 화순리 정류장으로 향했다. 아침 공기는 새벽보다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사전 투표 현수막을 보고 안덕면사무소까지 걸어갔다. 1.5km의 오르막을 배낭을 메고 걸었다. 사전 투표로 인해 예정에 없던 왕복 3km를 더 걷게 되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길가에 핀 매화를 보고 이제는 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사전 투표를 마치고 다시 언덕을 내려왔다. 안덕 하나로마트에서 포도주와 골뱅이, 파 등을 샀다. 그 이상은 배낭을 넣을 수 없었다. 오늘 야영지에 대한 부푼 희망을 간직한 체 202번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향했다. 서귀포 () 터미널에서 201번 버스로 환승 후 동쪽으로 향했다.

시흥리에서 하차했다.

이동시간만 2시간이 걸렸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농로를 따라 뚜벅뚜벅 오름을 향해 걸어갔다. 경사진 오름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쉼 없이 올라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이마와 등의 땀을 순식간에 식혀주었다. 전망대에서 지미봉, 종달리, 우도, 성산항, 성산 일출봉 등을 감상했다. 경치 한번 끝내주네!

 

오름 야영을 포기했다.

울진, 강릉, 동해의 산불로 민감한 시기에 오름에서 야영은 할 수 없었다.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 경치를 다시 한번 눈에 가득 담았다. 오름을 내려와 종달리를 거쳐 해변까지 걸어갔다. 해안가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더욱 사나워졌다.

내 의지에 상관없이 발이 걸어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름을 오르내렸는데 바람까지 나를 막아섰다. 무거운 배낭을 벗어버리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꿋꿋이 그냥 걸을 수밖에 없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이런 고생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비웃듯 종달 해변은 고요했다. 서둘러 텐트를 치려고 배낭을 벗었다.

 

일기예보를 검색하지 않았다.

서둘러 휴대전화로 일기예보를 검색했다. 일요일까지 제주 전 해안지역에 강풍 주의보가 발령되어 있었다. 이런 날은 해안가에서 야영할 수 없었다. 날은 이미 저물고 있었다. 아고다 앱으로 서귀포에 숙소를 예약했다. 다시 2시간을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갔다. 나흘 만에 샤워했고 빨래까지 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결국 제자리였다.

 

 

 

[제주 백패킹 5일차 금릉해수욕장]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바람은 여전히 강하게 불었지만, 오후쯤이면 약해질 것이다. 서귀포에서 하룻밤 편안하게 쉰 숙소를 나왔다. 202번 버스를 타러 갔다. 오늘은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금릉해변 야영장으로 갈 생각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버스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2시간을 이동하여 금릉해변에 도착했다.

금릉해변의 바다는 3월의 파도로 가득했다. 해변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고운 모래 입자가 바람에 흩날렸다. 야영장이 조금 변했다. 작년 6, 이곳에서 야영했었다. 그 당시 야영장을 정비한다는 현수막이 있었다. 오늘 와서 보니 야영장이라고 쓴 안내판을 제외하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해안가에 방풍림으로 워싱턴 야자나무를 심었을 뿐이다. 여전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인적없는 텐트는 곳곳에 많았다. 자주 야영하던 장소에 텐트를 쳤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물을 끓였다. 커피는 이곳에서 마셔야 제대로 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30분 정도 숙면을 했다.

해변이 바라다보이는 야영지에서 낮잠을 잔 것은 오랜만이었다. 에코백을 어깨에 걸쳐 메고 길을 나섰다. 이곳에서 야영할 때마다 한림까지 걸어서 다녀왔었다. 오늘도 주변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향나무와 대웅전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월계사를 만났다. 안 가본 길을 걸을 때마다 약간의 흥분과 희열을 느꼈다.

한림 하나로마트에 도착했다.

특별히 살 것은 없었으나 걷다가 보이기에 그냥 들어갔다. 진열상품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둘러봤다. 견물생심이라고 캔맥주와 봉지라면을 샀다. 낱개라면은 이곳에서만 팔았다. 컵라면은 편리하지만, 쓰레기가 너무 많이 발생한다.

이른 저녁을 먹었다.

한림시장의 풍년 순대국밥에서 내장국밥을 먹었다. 제주도지사 원희룡과 가수 이정이 다녀간 곳이었다. 12년 전, 올레길을 걸었을 때 나도 이곳에서 국밥을 먹었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음식 맛은 변함없이 좋았지만, 청결은 아쉬웠다. 주변 정리가 안 되어서 산만하고 지저분하게 보였다.

금릉 야영장까지 또 걸었다.

왼쪽으로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였다. 도로변 맛집에는 여전히 긴 줄이 서 있었다. 나는 관심이 없는 척 무심히 그들을 지나쳤다. 낮보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협재해변에 들어선 순간 흰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파도를 보았다. 텐트로 돌아와 라디오를 켰다. 아직 오후 5시였다.

 

석양은 없었다.

바람이 구름을 몰고 왔다. 틀림없이 해는 바다 저쪽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낮에 있던 몇몇 사람조차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바람 때문에 더는 밖에 머물 수가 없었다. 보온 옷(우모복)과 보온신발(다운 슈즈)로 완전무장을 했다. 한 꺼풀 덧씌워진 나는 비로소 따뜻함을 느꼈다.

알코올이 온몸에 퍼졌다.

텐트에는 맥주와 포도주가 있었다. 입가심으로 맥주를 마신 후 포도주를 마셨다. 물론 물로 입안을 헹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드디어 포도주 마개를 열었다. 코로 향기를 맡고 한 모금 가득 입안에 담았다. ‘이 가격에 이런 맛이 나다니.’ 자꾸 마시고 싶은 맛이었다. 시중에서 구매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과 어둠은 경쟁이라도 하듯 점점 거세지고 주위는 암흑으로 변해갔다.

 

 

 

[제주 백패킹 6일차 이호테우해수욕장]

 

알람 소리에 깼다.

한 번도 중간에 잠에서 깨지 않고 푹 잤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이 실질적인 마지막 야영하는 날이다. 숙소를 예약할지 다른 곳에서 야영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왔다. 라디오를 켠 후 물을 끓여 커피를 마셨다.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바람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202번 버스를 타고 현사마을에서 하차했다.

월요일 오전 11, 해송 숲 야영장. 내가 이호테우해변을 구경하려고 그곳에 간 것 아니었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트로이 목마 등대 때문도 아니었다. 야영장에서 야영할 수 있는지 확인하러 간 것이었다. 여기도 다른 야영장과 다르지 않았다. 인적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텐트로 야영장은 꽉 찼다. 나의 결정은 빨랐다. 해송 숲 가장자리 빈 곳에 텐트를 쳤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애기동백나무가 심겨 있었다.

예전에 야영장으로 이용되었던 해송 숲은 쓰레기도 없고 방치된 텐트도 없어서 깨끗하고 보기 좋았다. 왜 자연은 가꾸고 보호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등대를 구경한 후 해안가를 따라 도두봉까지 걸었다. 그리 높지 않은 도두봉에 산책하듯 올랐다. 드넓은 활주로가 펼쳐진 제주공항과 흰 눈이 남아있는 백록담 북벽의 한라산이 한눈에 조망되었다.

 

동태찌개에 단무지 반찬은 이상하지 않은가?

도두봉에서 내려와 오일등식당으로 향했다. 사라봉 인근의 슬기식당과 쌍벽을 이루는 동태찌개 전문점이다. 반찬으로 단무지, 김치, 깻잎, 고추가 나왔다. 동태찌개는 양푼 한가득 나왔다. 알 가득하고 푹 익은 무가 식감을 자극했다. 식욕을 더 돋우기 위해 막걸리도 마셨다. 낮술은 진리다. 마지막 야영 날이라 종류별로 술을 먹는구나! 야영장으로 돌아가기 전 마트에 들러 포도주를 구매했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했다.

술을 깨기 위해 야영장까지 걸었다. 재킷을 벗어야 할 정도로 한낮은 더웠다. 햇볕 아래 있으면 그늘이 그립고 그늘에 있으면 햇볕이 그리웠다. 관광객들은 모래 해변에서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가로운 풍경을 나만이 즐기는 건 아니었다.

비행은 계속되었다.

공항과 인접한 곳이라 항공기의 이착륙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술기운의 지속을 위해 캔맥주와 포도주를 연이어 마셨다. 평소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여행만 오면 이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다.

해변이 소란스럽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석양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주 백패킹을 하는 동안 나도 제대로 된 석양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 틈에 끼여 해변을 걸었다. 핸드폰 사진 촬영을 수동으로 조절하여 석양을 찍었다. 작품 하나 건진 듯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 석양이었다.

 

어둠이 주위를 장악했다.

마지막 야영을 위해 랜턴을 켜지 않았다. 남은 이소가스를 약하게 켜놓고 텐트 안에서 조금씩 포도주를 마셨다. 낮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라기보다는 적막하다는 느낌이었다. 제주 백패킹의 마지막 야영은 이렇게 지나갔다.

 

 

 

[제주 백패킹 7일차 제주공항]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춥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랜턴을 켜 놓고 소란스럽지 않게 배낭을 꾸렸다. 이번 제주 백패킹은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야영했다. 텐트, 보온 옷(우모복), 보온 신발(다운 슈즈), 경량 침낭, 담요, 랜턴, 라디오, 소형냄비, 소형버너, 시에라컵이 전부다. 40L 배낭에 모든 장비를 다 넣었다. 배낭을 어깨에 짊어졌다. 왜 이렇게 가볍지!

새벽어둠을 뚫고 걸었다.

제주 백패킹의 유종의 미는 공항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새벽어둠을 뚫고 날이 밝을 즘 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 한산한 도로의 여명이 아름다웠다. 배낭을 수화물로 맡기고 보안 절차를 마쳤다. 탑승구로 향하는 길에 면세점을 구경했다. 신축된 18번 탑승구로 향했다. 평소보다 한적한 공항 탑승장이었다. 느지막하게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의 제주 백패킹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제주 백패킹 7일차 제주공항]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춥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랜턴을 켜 놓고 소란스럽지 않게 배낭을 꾸렸다. 이번 제주 백패킹은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야영했다. 텐트, 보온 옷(우모복), 보온 신발(다운 슈즈), 경량 침낭, 담요, 랜턴, 라디오, 소형냄비, 소형버너, 시에라컵이 전부다. 40L 배낭에 모든 장비를 다 넣었다. 배낭을 어깨에 짊어졌다. 왜 이렇게 가볍지!

 

 

새벽어둠을 뚫고 걸었다.

제주 백패킹의 유종의 미는 공항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새벽어둠을 뚫고 날이 밝을 즘 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 한산한 도로의 여명이 아름다웠다. 배낭을 수화물로 맡기고 보안 절차를 마쳤다. 탑승구로 향하는 길에 면세점을 구경했다. 신축된 18번 탑승구로 향했다. 평소보다 한적한 공항 탑승장이었다. 느지막하게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의 제주 백패킹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제주 백패킹 6일차 이호테우해수욕장]

 

알람 소리에 깼다.

한 번도 중간에 잠에서 깨지 않고 푹 잤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이 실질적인 마지막 야영하는 날이다. 숙소를 예약할지 다른 곳에서 야영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왔다. 라디오를 켠 후 물을 끓여 커피를 마셨다.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바람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202번 버스를 타고 현사마을에서 하차했다.

월요일 오전 11, 해송 숲 야영장. 내가 이호테우해변을 구경하려고 그곳에 간 것 아니었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트로이 목마 등대 때문도 아니었다. 야영장에서 야영할 수 있는지 확인하러 간 것이었다. 여기도 다른 야영장과 다르지 않았다. 인적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텐트로 야영장은 꽉 찼다. 나의 결정은 빨랐다. 해송 숲 가장자리 빈 곳에 텐트를 쳤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애기동백나무가 심겨 있었다.

예전에 야영장으로 이용되었던 해송 숲은 쓰레기도 없고 방치된 텐트도 없어서 깨끗하고 보기 좋았다. 왜 자연은 가꾸고 보호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등대를 구경한 후 해안가를 따라 도두봉까지 걸었다. 그리 높지 않은 도두봉에 산책하듯 올랐다. 드넓은 활주로가 펼쳐진 제주공항과 흰 눈이 남아있는 백록담 북벽의 한라산이 한눈에 조망되었다.

 

 

동태찌개에 단무지 반찬은 이상하지 않은가?

도두봉에서 내려와 오일등식당으로 향했다. 사라봉 인근의 슬기식당과 쌍벽을 이루는 동태찌개 전문점이다. 반찬으로 단무지, 김치, 깻잎, 고추가 나왔다. 동태찌개는 양푼 한가득 나왔다. 알 가득하고 푹 익은 무가 식감을 자극했다. 식욕을 더 돋우기 위해 막걸리도 마셨다. 낮술은 진리다. 마지막 야영 날이라 종류별로 술을 먹는구나! 야영장으로 돌아가기 전 마트에 들러 포도주를 구매했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했다.

술을 깨기 위해 야영장까지 걸었다. 재킷을 벗어야 할 정도로 한낮은 더웠다. 햇볕 아래 있으면 그늘이 그립고 그늘에 있으면 햇볕이 그리웠다. 관광객들은 모래 해변에서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가로운 풍경을 나만이 즐기는 건 아니었다.

비행은 계속되었다.

공항과 인접한 곳이라 항공기의 이착륙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술기운의 지속을 위해 캔맥주와 포도주를 연이어 마셨다. 평소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여행만 오면 이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다.

해변이 소란스럽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석양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주 백패킹을 하는 동안 나도 제대로 된 석양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 틈에 끼여 해변을 걸었다. 핸드폰 사진 촬영을 수동으로 조절하여 석양을 찍었다. 작품 하나 건진 듯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 석양이었다.

 

 

어둠이 주위를 장악했다.

마지막 야영을 위해 랜턴을 켜지 않았다. 남은 이소가스를 약하게 켜놓고 텐트 안에서 조금씩 포도주를 마셨다. 낮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라기보다는 적막하다는 느낌이었다. 제주 백패킹의 마지막 야영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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